- 광저우 원징루의 치킨 냄새, 베이징 왕징의 네온사인…한국인 교민 100만 시대의 풍경
[동포투데이] 중국의 여러 도시는 이제 한국인들에게 ‘제2의 고향’으로 불린다. 관광이나 출장으로 스쳐가는 곳이 아니라,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주말에 장을 보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생활의 공간이다. 거리에는 한글 간판이 줄지어 서 있고, 슈퍼마켓에는 한국 과자와 김치가 한쪽 진열대를 가득 채운다. 현지인들은 그 거리를 ‘작은 한국’이라고 부른다. 기자는 광저우에서 베이징까지, 교민들이 모여 사는 8개 도시를 직접 둘러보고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광저우 원징루, 800m의 작은 서울
저녁 7시, 광저우 바이윈구 원징루(远景路) 골목 안. 기름 냄새와 매운 고추 향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한국어 대화가 흘러나온다. 불과 800m 남짓한 거리에 한국 슈퍼마켓만 17곳이 줄지어 서 있고, 간판에는 ‘한남식품’, ‘코리아마트’라는 한글이 선명하다.
“여긴 그냥 서울이에요.” 20년째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한다는 김정수(52)씨는 웃으며 말했다. “라면, 과자, 소주까지 다 팔아요. 현지인들도 한국 라면 맛있다고 자주 사 가요. 저녁시간엔 한국 손님과 중국 손님이 반반쯤 돼요.”
골목 안쪽 치킨집에서는 닭을 튀기는 소리와 함께 “치맥 세트 두 개요!”라는 한국말 주문이 들린다. 사장은 한국식 고추장을 광둥식으로 개량해 소스를 내놓는다. “중국 사람 입맛엔 조금 달아야 하거든요.”
밤이 되면 붉은 전통 간판 불빛 사이로 민트색·분홍색 네온이 반짝이고, 슈퍼마켓 계산대 옆에는 량차(凉茶)와 신라면이 나란히 놓인다. 한국인과 현지인이 함께 섞여 만들어내는 묘한 풍경이다.

톈진 오성체육중심, 유학생들의 기숙사
베이징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 톈진 오성체육중심 일대에는 한국인 유학생 3만 명 넘게 모여 산다. 부동산 중개소 창문에는 ‘한국 유학생 전용 원룸’, ‘가구 완비, 도보 10분’이라는 한국어 광고지가 붙어 있다. 시세보다 15% 비싸지만 방은 금세 나간다.
“중국인 룸메이트와 사는 것보다 한국인 밀집 원룸이 훨씬 편해요.” 톈진재무대학에 다니는 박소현(24)씨는 말했다. “밤에 늦게 들어와도 안전하고, 생활 습관도 비슷하니까요.”
슈퍼마켓 라면 코너에는 신라면과 불닭볶음면이 수입식품 판매 1, 2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의외로 ‘메이드 인 톈진’ 한국식 고추장이다. 한국인 유학생뿐 아니라 중국 학생들도 즐겨 찾는다.

다롄 패션도매시장, 동대문이 옮겨온 듯
랴오닝성 다롄. 한국과 가까운 이 항구 도시는 ‘작은 서울’이라 불린다. 다롄 한국 패션도매시장에 들어서면 서울 동대문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신상품 의류가 매대마다 걸려 있고, 가격은 서울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곳에서 만난 박민호(38)씨는 한국 의류 바이어다. “중국 도매상들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다시 사 가요. 디자인은 같고 가격은 훨씬 싸니까요.”
도시 곳곳에는 한국 기업 사무실도 많다. 사무실 책상 위 달력에는 중국 공휴일과 한국 명절이 함께 적혀 있다. 한 중국인 직원은 “한국 동료들은 월평균 15시간 더 일하지만, 연말 보너스는 20% 더 받는다”며 “일하는 방식도 한국식으로 많이 따라간다”고 했다.

웨이하이, 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산둥반도의 웨이하이는 인천과 90해리, 배로 45분 거리다. 금요일 저녁 고속 페리에는 한국 ‘통근족’이 가득하다. 주중엔 웨이하이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한국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다.
정재훈(39)씨는 한·중 합자회사에서 근무한다. “월요일 아침 배 타고 와서 금요일 저녁 배 타고 돌아가요. 가족은 인천에 있고, 저는 여기서 일하는 거죠. 비행기보다 싸고 빠르니까 가능해요.”
웨이하이 시내 한러팡(韩乐坊) 거리에는 80여 개 한국 기업이 자리 잡았다. 간판에는 한글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한국식 분식집과 중국식 해물찜집이 나란히 있다.

상하이 홍췐루, 네온사인 아래의 ‘서울 야시장’
세계적인 도시 상하이에는 약 13만 명의 한국인이 거주한다. 홍췐루(虹泉路)는 그 중심지다. 저녁 8시, 네온사인이 켜지면 거리는 ‘서울 야시장’으로 변신한다. 치킨집, 노래방, 미용실이 줄지어 있고, 간판은 절반 이상이 한글이다.
최영숙(60)씨는 초창기 이곳에서 잡화점을 열었다. “2000년대 초에는 외롭고 한국 물건이 그리워 가게를 열었는데, 지금은 병원, 변호사 사무소, 미용실까지 다 들어선 완벽한 한인타운이 됐죠.”
한국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상하이에 등록된 한국 자영업자 가운데 63%가 홍췐루 인근에 몰려 있다.

옌타이 해변광장, ‘서울까지 452km’ 이정표
옌타이 해안 광장에는 ‘서울까지 452km’라고 쓰인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옆에서 한국 기업 직원들이 러닝복을 입고 단체로 달리기를 한다.
“회사 한국인 직원들이 모여 매주 뛰어요. 이게 유대감을 쌓는 방법이죠.” 삼성 계열사에 다니는 이현우(34)씨는 말했다. “광장에 나와 보면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개발구 지역에는 한국식 고깃집, 기계공장, 한국어 간판이 어우러져 ‘한국적 생활권’이 형성돼 있다.

칭다오 청양구, 완결된 한인 생태계
칭다오는 중국에서 한국인이 가장 많은 도시다. 매년 30만 명 가까이 드나든다. 청양구에는 한국 국제학교, 한인 교회, 한국 신문 가판대, 심지어 ‘화병(火病) 전문 의원’까지 들어서 있다.
현지 한인회 관계자는 “한국 기업만 4천 곳이 진출했고, 그중 3분의 1이 청양구에 몰려 있다”며 “교육·의료·종교·문화까지 모두 충족되는 완결된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 왕징, 수도 속의 한국 마을
중국 수도 베이징, 그 한복판의 왕징(望京) 일대는 한국인 거주지의 상징이다. 불과 6㎢ 남짓한 구역에 400여 개 한식당과 12개의 한국어 학원, 한국 전용 부동산 중개업소가 빼곡하다.
중소기업 대표 김성훈(46)씨는 “베이징에서 사업하지만, 생활은 거의 서울 강남과 다를 게 없다”며 “출근길에 한국어로 된 커피숍 간판을 보고, 주말에는 교회에 가니 한국 같은 생활”이라고 말했다.
중국 속 작은 한국, 또 다른 다리
광저우의 원징루 치킨집, 상하이 홍췐루의 네온, 칭다오 청양구의 국제학교, 베이징 왕징의 교회…. 이 모든 공간은 단순한 교민 거주지를 넘어 한국과 중국이 서로의 삶을 공유하는 장이 되고 있다.
현지 음식과 한국 음식이 섞이고, 상거래 습관과 생활 문화가 교차하며 만들어진 이 ‘작은 한국’은, 두 나라를 잇는 생활의 다리이자 새로운 문화적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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