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백두산 동쪽 자락에서 발원해 525km를 굽이도는 두만강은 중국·러시아·북한 세 나라를 잇는 강이다. 만주어로 ‘만수의 근원(万水之源)’을 뜻하는 이름처럼, 이 강은 중국이 일본해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하다.
이 강변을 따라 자리한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 지도에서 마치 ‘수탉의 부리 끝’처럼 뻗어 있는 국경의 땅이다. 한때 변방으로 불리던 이곳이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조선민족 전통문화와 국경 관광, 그리고 새로운 교류의 흐름이 뒤섞인 ‘두만강 협주곡’이 울려 퍼지는 곳, 바로 연변이다.
해질녘 연변대학 맞은편 거리의 간판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면 도시는 금세 축제의 장으로 변한다. 한글과 조선어가 뒤섞인 간판, 각양각색의 네온이 ‘국경의 밤’을 수놓는다. 젊은 여성 관광객들은 색색의 조선민족 전통 의상을 빌려 입고 거리로 나선다. ‘한복 인증샷’을 찍으려는 인파 속에는 한국 드라마와 K-컬처에 익숙한 중국 내륙 관광객도 많다. 한 연변 주민은 “이제는 우리 민속이 관광의 중심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연길시 남쪽의 중국조선족민속원은 요즘 가장 인기 있는 명소다. 10만㎡에 이르는 부지에는 전통 가옥과 민속 공연, 비물질문화유산 체험이 어우러진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주변에 세 곳뿐이던 ‘한복 체험 스튜디오’는 지금 300곳을 넘어섰다. 한 뷰티 아티스트 TT(27)는 “손님이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져요. 화장만 하루 열 명 이상이에요”라며 “연변이 서울이나 상하이 못지않게 ‘핫플’이 됐다”고 웃었다.
최근에는 연변에 정착한 외지 청년들을 뜻하는 신조어 ‘옌피아오(延漂)’도 등장했다. 카메라를 든 사진가, 술을 빚는 바텐더, 문화해설사 등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국경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흑룡강 출신의 관광 해설사 류양(29)은 방천(防川) ‘일망삼국(一眼望三国)’ 관광지에서 일한다. 그는 “예전엔 연변을 떠나는 젊은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돌아오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연변대학 근처의 택시 기사들도 “예전엔 다들 서울이나 연길 밖으로 나갔지만, 지금은 여기서도 먹고살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두만강은 ‘무역의 강’이기도 하다. 국경 무역의 중심지 훈춘(珲春)에는 각국 상인들이 모여든다. 러시아 출신 청년 상인 안드레이(24)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곳을 오갔다. 지금은 자신이 대표로 중고 자동차를 러시아로 수출하고, 대신 러시아산 곡물과 식용유를 중국에 들여온다. “중국 전기차는 러시아에서도 인기예요.”
2024년 기준 연변 각 출입국 구역을 통과한 외국인은 77만 명에 달했다. 특히 훈춘의 크로스보더 전자상거래 특구에는 러시아 전자상거래 플랫폼 오존(Ozon), 얀덱스(Yandex), 줌(Joom) 등이 입주해 있다. 올해 1~5월 무역액은 28억9000만 위안(약 56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60% 넘게 증가했다. 연길에서는 한국 상품을 사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산 화장품을 진열한 ‘롱마트’ 백화점은 QR코드를 통해 바로 ‘보세몰’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연길시 상무국 관계자는 “한국과의 전자상거래 거점으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만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도착하는 도시 도문(圖們)은 철도 국문(國門)이 상징처럼 서 있는 도시다. 한때 침체됐던 이곳은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1990년대부터 이곳에 터를 잡은 주영덕(朱永德)은 원래 온주 출신의 안경 장인이었지만, 지금은 국문 옆에 대형 복합상가를 세워 카페, 음식점, 전통문화관 등을 운영한다. 그는 “요즘은 하루 1~2만 명이 다녀간다”며 “내년에는 2단계 문화거리 개발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먼 훗날을 내다본다. “언젠가 두만강 건너 북한 쪽으로 다리를 건널 수 있게 된다면, 이곳은 장백산(백두산) 다음으로 큰 관광지가 될 겁니다.”
훈춘의 또 다른 사업가 홍만탁(洪万卓)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두만강을 준설해 5000톤급 선박이 다닐 수 있다면, 이 강은 중국 동북의 새로운 바다가 됩니다.” 그의 구상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다. 훈춘에서 북한 나진항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닝보·상하이까지 이어지는 물류 루트가 이미 연구 단계에 있다. “이 길이 열리면 동북은 더 이상 내륙이 아닙니다. 연변은 동북아의 관문이 될 거예요.”
한때 외진 국경으로 여겨졌던 연변은 지금, 동북아 협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선민족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젊은이,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교역을 꿈꾸는 상인,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들. 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노래 — 그것이 바로 지금, 두만강변에서 울려 퍼지는 ‘변방의 협주곡’이다.
※ 본 기사는 중국 매체 <차오신문(潮新闻)>의 ‘중국 탐방·온라인 동행(寻迹中国·线上相拥)’ 보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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