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내셔널포커스]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싱가포르가 ‘줄서지 않기’ 원칙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양국 간 군사 충돌이 현실화될 경우 현재 중동 위기보다 훨씬 큰 충격이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놨다.
CNBC에 따르면, 싱가포르 외교장관 비비안 발라크리슈난은 22일(현지시간) CNBC 행사에서 “싱가포르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결정은 장기적인 국가 이익을 기준으로 내린다”고 밝혔다.
그는 “싱가포르는 두 나라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양측의 성장 속에서 동시에 기회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외부 압박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정 국가로부터 선택을 강요받고 있지 않다”며 “필요하다면 다른 나라에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겠다”고 했다.
경제 구조 역시 이런 입장을 뒷받침한다. CNBC는 미국이 싱가포르 최대 외국인 투자국으로 약 6000개 기업이 현지에 지역 본부를 두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은 최대 교역국으로, 2025년 양국 간 교역 규모는 약 8533억 위안에 달한다.
발라크리슈난 장관은 안보 리스크에 대해서는 한층 강한 표현을 썼다. 그는 “미·중 관계가 붕괴돼 태평양에서 충돌이 벌어진다면,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단지 ‘예행연습’에 불과하다”며 “국제 질서의 핵심 변수는 중동이 아니라 태평양”이라고 말했다.
해상 교통 문제와 관련해서는 말라카 해협의 개방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싱가포르·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는 협력 체계를 통해 통행료를 부과하지 않고 해협의 자유로운 항행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싱가포르는 중국과 미국 모두에 대해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봉쇄나 차단 조치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불안정한 국제 환경일수록 신뢰가 중요하다”며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국가만이 진정한 가치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의 대이란 군사 행동 이후 호르무즈 해협 항행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싱가포르 내에서도 미국에 대한 인식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미국 MIT 국제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싱가포르 응답자의 61.7%는 경제적 영향력 측면에서, 65.4%는 정치·전략적 측면에서 미국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싱가포르는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해상 교통과 국제 질서의 안정성에 특히 민감하다”며 “개방된 무역, 안전한 항로, 예측 가능한 규칙, 안정된 힘의 균형을 중시한다”고 분석했다.
앞서 싱가포르 총리 겸 재무장관 로런스 웡은 지난 3월 보아오 아시아 포럼 2026에서 “중국은 지역 번영과 안정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히며 협력 의지를 나타냈다.
미·중 경쟁이 구조적으로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싱가포르가 균형 외교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전략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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