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막혀도 버틴 국제유가…중국의 거대한 원유 저장고가 변수로
- 미국은 비축유 방출, 중국은 수입 줄여 대응…다음 변수는 ‘재고 보충’
[인터내셔널포커스] 중동에서 원유 수송에 차질이 빚어졌는데도 국제유가는 시장이 처음 걱정했던 수준까지 치솟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원유 물량이 크게 줄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의 흐름이다.
그 배경 가운데 하나로 중국의 원유 재고가 꼽힌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중국이 전략적 성격으로 보유한 원유 재고를 2025년 말 약 13억9700만 배럴로 추산했다. 올해 들어서는 한때 15억 배럴을 넘어선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 정부가 전략비축유 규모를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아 기관마다 계산에는 차이가 있지만, 중국이 상당한 규모의 원유를 저장해 놓았다는 데는 이견이 크지 않다.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이 재고가 실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분쟁 이전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에 달했다. 이후 통과량이 급감하면서 세계 원유시장에는 상당한 공급 공백이 생겼다.
눈에 띄는 것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의 움직임이다.
중국은 부족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국제시장에서 원유를 더 사들이지 않았다. 대신 저장해 놓은 원유를 꺼내 썼다. IEA는 중국의 원유 수입량이 2월에서 5월 사이 하루 약 460만 배럴, 40%가량 감소한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이 평소처럼 대규모 구매에 나섰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 있었다. 중동산 원유가 줄어든 상태에서 중국까지 물량 확보에 나서면 한국과 일본, 인도 등 다른 아시아 수입국도 같은 원유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중국의 수입 감소는 그만큼 국제시장의 구매 수요를 덜어냈다. 공급 차질 규모에 비해 국제유가가 예상만큼 치솟지 않은 배경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풀었고 중국은 꺼내 썼다
미국과 중국의 대응은 달랐다.
미국은 중동발 공급 충격이 커지자 국제에너지기구 회원국들과 비축유 방출에 나섰다. IEA 회원국들은 시장 안정을 위해 총 4억 배럴 규모의 비상 원유를 공급하기로 했다.
중국은 위기가 터지기 전부터 원유를 쌓아놓고 있었다.
EIA는 중국이 2025년 하루 평균 약 110만 배럴씩 전략적 성격의 재고를 늘린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원유 공급에 여유가 있을 때 상당한 물량을 저장고로 돌린 것이다.
당시 중국의 대규모 구매는 국제유가를 떠받치는 요인으로 받아들여졌다. 중동 상황이 급변한 뒤에는 그 재고를 꺼내 쓰면서 수입을 줄였다. 정유공장을 돌리면서도 국제시장에서 원유를 예전만큼 사들이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해까지 원유를 빨아들이던 중국의 저장탱크가 올해는 반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중국이 다시 사기 시작할 때다
하지만 저장해 놓은 원유에는 한계가 있다.
S&P Global이 위성 자료 등을 토대로 집계한 중국 원유 재고는 지난 5월 말 약 13억8200만 배럴에서 9월 초 약 12억9500만 배럴로 감소했다. 중동산 원유 공급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재고가 계속 줄면 중국도 다시 수입을 늘려야 한다.
이때부터 계산이 복잡해진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 하루 수백만 배럴의 구매를 다시 늘리면 공급 부족에 재고 보충 수요까지 겹친다. 특히 중동 공급이 정상화되기 전에 중국이 저장고를 채우기 시작할 경우 아시아 지역의 원유 확보 경쟁이 다시 거세질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중국이 중동발 공급 충격에 대처하는 방식도 이번 사태에서 차이를 보였다. 미국은 자국의 막대한 생산 능력과 전략비축유를 활용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국은 수년간 확보해 놓은 재고로 버티고 있다.
물론 중국의 14억 배럴만으로 국제유가 흐름을 설명할 수는 없다. IEA 회원국들의 비축유 방출과 다른 산유국의 공급, 세계 원유 수요 변화도 가격에 영향을 미쳤다.
다만 호르무즈를 통한 공급이 크게 줄어든 시기에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까지 평소처럼 사들였다면 국제시장의 물량 경쟁은 지금보다 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지금 저장고의 원유를 쓰면서 국제시장에서 한발 빠져 있다.
유가의 다음 고비는 중국이 그 저장고를 다시 채우기 시작할 때 찾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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