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통항 불안에 원유 확보·운송비 부담 동시 상승
- 중동행 해상 수출 운송비 1년 새 133.7% 올라
- 군사 개입엔 선 그었지만 해상수송로 보호는 새로운 외교 숙제
[인터내셔널포커스] 한국군이 중동전쟁에 직접 뛰어드는 상황에는 일단 선이 그어졌다. 그렇다고 한국이 그 여파까지 피해 가는 것은 아니다.
부담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원유를 확보하는 데 돈이 더 들고 배를 움직이는 비용도 커졌다. 기업들은 운송 일정과 재고를 다시 계산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안전을 위해 한국이 어느 정도 역할을 맡을지도 풀어야 할 문제다.
파병 논란과 별개로 중동전쟁의 경제적 충격은 이미 한국으로 번지고 있다.
호르무즈가 흔들리자 원유 수입부터 달라졌다
올해 상반기 한국이 중동에서 수입한 원유는 약 2억9118만 배럴이었다. 전체 원유 수입의 62.3%다. 지난해 같은 기간 68.7%보다는 낮아졌지만 원유 10배럴 가운데 6배럴 이상을 여전히 중동에서 들여오고 있다.
최근 호르무즈 통항 상황도 평소와 다르다. 9월 17일 호르무즈를 통과한 상품 운반선은 4척으로 최근 10일 평균 16척을 크게 밑돌았다.
배가 줄면 운임이 오르고 보험료가 따라붙는다. 위험 지역을 지나는 선박에는 전쟁위험 보험료가 추가되고, 운항을 꺼리는 선주가 늘면 배를 구하는 비용도 비싸진다. 국제유가가 잠시 안정돼도 한국에 원유를 들여오는 실제 비용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이미 숫자로 나타난 운송비 부담
물류비 상승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관세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8월 수출입 운송비용을 보면 중동으로 향하는 해상 수출 컨테이너의 평균 운송비용은 2TEU당 883만8000원이었다. 한 달 전보다 1.7%, 1년 전보다 133.7% 올랐다.
원유 수입선을 돌리는 것도 공짜는 아니다. 미국이나 아프리카 등으로 도입선을 넓히면 공급 위험은 낮출 수 있지만 운송 거리가 길어진다. 정부가 비중동산 원유를 확보하는 정유업계에 운송비 차액 지원 확대를 검토하는 배경이다.
예전에는 어디에서 더 싸게 사느냐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필요한 물량을 제때 가져오는 것부터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당장 기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7~8월 도입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수입량의 100% 이상을 확보했고, 9~10월 물량도 90% 이상 확보한 상태다.
문제는 중동 상황이 길어질 경우다.
비중동산 원유를 더 들여오면 운송비가 늘어난다. 필요하면 비축유도 활용해야 한다. 공급을 유지하더라도 이전보다 많은 비용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이제 시장이 보는 것은 원유 확보량만이 아니다. 확보한 원유를 얼마를 들여 한국까지 가져오느냐도 중요해졌다.
주유소에서 끝나지 않는다
중동발 충격은 휘발유와 경유 가격에만 머물지 않는다.
원유 가격과 운송비가 오르면 석유화학 제품과 플라스틱, 포장재 등 여러 산업의 원가가 영향을 받는다. 선박 연료비가 오르면 수출입 기업의 물류비도 늘어난다.
기업에는 가격 상승만큼 불확실성도 부담이다. 호르무즈와 홍해 상황에 따라 운송기간과 비용이 계속 달라지면 재고를 평소보다 많이 쌓고 배송 일정에도 여유를 둬야 한다.
당장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기업 수익성을 깎고 제품 가격에도 반영될 수 있다.
파병은 피했지만 외교 문제는 남았다
외교 쪽 계산도 간단하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한국이 중동 분쟁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상선의 안전한 통항과 해상수송로 보호 문제는 별개다.
한국은 중동전쟁의 당사국은 아니지만 호르무즈를 이용하는 주요 에너지 수입국이다. 해협 통항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한국 경제의 문제가 된다.
미국과의 협의도 이어지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만나 호르무즈의 자유로운 통항 회복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재확인했다.
앞으로는 파병 여부보다 한국 선박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하고 해상수송로 보호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지가 더 구체적인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
전쟁에 가지 않아도 비용은 들어온다
중동은 한국에서 멀다. 한국 경제가 필요로 하는 원유와 원자재가 들어오는 길은 그렇지 않다.
비축유를 풀고 수입선을 돌리면 당장의 공급 차질은 막을 수 있다. 기업도 항로를 바꾸고 재고를 늘려 버틸 수 있다. 문제는 그 모든 선택에 돈이 든다는 점이다.
정부가 부담하면 재정 비용이 되고 기업이 떠안으면 생산비가 된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자 물가와도 거리가 가까워진다.
여기에 직접적인 군사 개입을 피하면서 한국 선박과 에너지 공급망의 안전까지 확보해야 하는 외교적 부담이 남아 있다.
중동전쟁이 길어질수록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점점 비싸진다.
파병은 피했지만, 청구서까지 피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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