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이란 찹쌀로 만든 떡을 말하는데 일명 ‘인절미’라고도 합니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의 전통음식으로 불리는 ‘찰떡’의 유래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있답니다.
옛날 공산성이라고 부르는 곳의 어느 한 시골에 임씨 성을 가진 마음씨 고운 한 농군이 아들 삼형제와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연속 3년째 농사가 되지 않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였습니다.
그해 겨울 임씨는 셋째 며느리를 맞아들였는데 셋째 며느리는 인물도 절색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솜씨도 이만저만이 아니어서 비록 산나물로 끼니를 에우더라도 그 맛이 때마다 다르고 구수했습니다.
하루는 가마 목에 앉은 셋째 며느리가 기장쌀로 밥을 짓게 되였는데 밥이 다 되였는데도 밥을 풀 념을 못했습니다. 죽밥이 되면서 한 덩어리가 되여 버린 것입니다. 셋째 며느리는 그런대로 식구들에게 그 떡이 된 밥을 골고루 나누어주었습니다.
“덩어리가 된 죽밥이라도 식기 전에 어서 잡수세요.”
“음, 어서 먹고 밭으로 나가자구나.” 시아버지 임씨가 이렇게 말하면서 수저를 먼저 들자 모두 따라들었습니다.
그날 아침 비록 모두 배부르게는 먹지 못했지만 그런대로 산으로 일하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다른 날에 비하여 늦게까지 일했는데도 모두 배고파하는 눈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웬 일일가? 셋째 며느리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찰밥덩어리를 먹은 것이 원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에 밥을 지을 때 의식적으로 기장밥을 뭉개서 떡을 만들어 식구들에게 대접했습니다. 그날도 역시 저녁 늦게까지 일했지만 누구 하나 배가 고프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비결을 알아차린 셋째 며느리는 혼자 빙그레 웃었습니다. 바로 그 떡이 된 찰밥덩어리를 먹은 것이 효과를 본 것이었습니다.
그해 임 씨네는 셋째 며느리의 제의 하에 기장쌀, 차수수, 찰옥수수 등을 많이 심었는데 생각 밖으로 대풍년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셋째 며느리는 기장쌀을 씻어 한가마를 찐 후 그것을 퍼내 절구에 넣고는 남편더러 찧게 했습니다. 잠시 후 저녁상이 갖추어졌습니다. 셋째 며느리는 잘 찧어진 기장쌀떡을 칼로 저미여 밥상에 올려놓고 또 어느새 만들었는지 콩가루를 사발에 담아 올려놓으면서 말했습니다.
“떡이 목에 붙지 않게 이 구수한 콩고물을 묻혀 잡수세요.”
“아니, 이것이 별맛이로구나.” 떡 한 덩이를 맛보던 임씨가 엄지를 내들었습니다.
“찰 붙이로 만든 떡이라 이것을 찰떡이라고 하면 되겠다.”
이때로부터 ‘찰떡’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였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시일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당시 조정에 반란이 일어나서 인조임금님이 공주의 공산성으로 피난을 오게 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임씨는 아침 일찍 셋째 며느리더러 찰떡을 하라고 하고는 그것을 임금님께 바쳤습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쫄깃쫄깃하면서도 구수한 음식의 맛에 놀란 임금님이 떡의 이름을 묻자 병졸은 임씨 성을 가진 백성이 만들어왔다고 아뢰었습니다.
“허허… 임서방이 가져온 떡이 절세의 맛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떡의 이름을 임절미라 하면 되겠구나.”
인조임금님의 명명으로 그날부터 ‘찰떡’은 또 ‘임절미’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였답니다. 세월이 가면서 임이 어음 적으로 쉽게 불리는 인으로 변하여 ‘인절미’로 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찰떡소문이 온 나라에 퍼지게 되였는데 후세사람들은 점차 지역별로 찰떡을 만드는 방법을 기발하게 바꾸어 방아에 찧고 절구에 찧고 들판에 놓고 나무로 떡메를 만들어 치고 또 전문 떡구유를 만들어 치게 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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