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8(월)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실시간뉴스

실시간 기사

  • 받고도 기분 나쁜 김민수의 형식사과
    지난 17일 윤빛가람 선수가 김민수한테서 받은 욕설 메세지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중국과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일파만파 확장된 이번 논란의 메세지 중에는 중국인과 한민족인 조선족 그리고 윤빛가람 선수와 연변FC를 인격적으로 비방하고 모독하는 심한 욕설이 담겨 있어 중국 그리고 재중동포 사회의 공분을 자아냈다. 메시지가 공개된 후 연변FC와 윤빛가람 선수를 모독한데 대해 분노한 중국 네티즌들과는 달리 한국 네티즌들 중에는 "김민수 측의 설명도 들어봐야 한다.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판단하면 마녀사냥의 피해자만 생겨날 뿐"이라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당당하면 어디 한번 설명해보라"는 네티즌들의 요구와는 달리 김민수는 자신의 인스타 계정을 탈퇴하고 잠적하는 등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서 끝까지 김민수를 믿어주는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드디어 저녁에 배우 김민수가 공개사과문을 발표하자 그동안 김민수를 두둔하던 여론은 언제 그랬냐 싶게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소속사를 통해 발표한 김민수의 사과문은 아래와 같다. 사과는 받았으나 기분이 개운하지 못하다. 사건이 어딘가 허겁지겁 덮혀진 느낌이고 여전히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 원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분석해 보았다. 첫째: 김민수의 사과문에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1) "불미스러운 일" 이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급히 넘어갔다는 것은 이 일에 대해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짜증이 섞인 표현이다. (2) 사과문 전체가 "죄송합니다","반성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등과 같은 형식적인 멘트로 꽉 차 있으며 뭘 어떻게 해서 죄송하다고 설명하려는 성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3)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모든 분들께 사과드린다"라는 표현을 써서 자신이 깍듯이 사과했어야 하는 그 많고 많은 상대를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김민수가 정말 진심으로 사과 하고 싶었다면 윤빛가람 선수를 포함한 연변FC 선수들, 연변FC 팬들, 조선족들, 전체 중국인들, 김민수 때문에 실망한 한국인들, 이런 순서대로 하나씩 언급하면서 사과를 해야만 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모든 분들께"라는 표현은 자신이 사과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한마디속에 전부 포함시켜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속셈이다. (4) 절대 김민수 본인이 쓴 사과문이 아니다. 사과문을 읽어보면 상황은 겪은 본인이 아니라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제3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전제로 해서 대신 사과문을 써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아무 사람이라도 저정도의 겉핥기식의 사과문을 충분히 쓸 수 있다. (5) 사과문이 너무 짧다. 김민수본인이 썼다고 한들 저렇게 짤막하게 썼다는 것은 속으로 내키지 않아서 억지로 썼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저딴식으로 사과할거면 차라리 안하기만 못하다. 둘째: 사건자체가 황당하다. 83년생인 김민수는 오랫동안 무명배우로 활동하다가 2014년 '압구정 백야'라는 일일극을 통해 겨우 존재감을 알린 조연급 배우이다. 톱스타도 아니고 명품조연도 아니고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에서나 가끔 나오는 아직 조연급도 벗어나지 못한 신인배우이다. 윤빛가람은 10대시절 기성용,이청용과 함께 한국축구를 이끌 3대유망주로 뽑힌적이 있고 축구매니아들속에서는 '축구천재'라고 불리울만큼 인정받는 축구선수이다. 얼마전 한국국가팀을 대표하여 체코전에 출전한 윤빛가람은 1골1도움을 기록하면서 완전히 한국의 국보급선수로 부상했다. 연예계에서 이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신인배우가 한국의 국가대표선수에게 "좆만한 새끼야... 병신아..." 이런 표현을 썼다는건 다시 생각해봐도 황당하기 그지 없다. 명색이 배우인만큼 외모에서는 상대보다 낫을지 몰라도 외모빼면 인지도, 경제수입, 사회지위 등 모든면에서 윤빛가람한테 밀리는 김민수가 대체 뭘 믿고 그랬을까? 셋째: 한국네티즌들에 고마운 한편 실망도 크다. 사과문에 조선족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는 김민수가 조선족들이 아무리 분노했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지 모르겠다. 김민수 욕설의 최대 피해자는 조선족이지만 한류스타도 아니고 중국에 진출할 일도 딱히 없는 김민수를 상대로 조선족이 뭘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아마 김민수 측에서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민수보다 더 실망적인 것은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조선족의 입장에서는 김민수라는 사람이 얼마나 인성이 나쁘고 욕을 잘하는 사람이냐를 따지기보다는 조선족을 겨냥한 김민수의 발언내용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김민수의 인성에 실망했다','표현이 지나쳤다'등 김민수의 표현방법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은 많았지만 조선족과 중국인 비하 발언 내용에 대해 꾸짖고 비판하는 한국네티즌은 한명도 없었다. 다시말하면 한국인들은 자기네 나라 연예인의 수준이 어떠냐에만 관심있을 뿐, 조선족을 비하한 발언이 굳이 그렇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상대가 조선족이라도 욕을 그 정도로 심하게 한건 잘못됐다'라는 한 한국네티즌의 말을 다른 각도로 풀이하자면 '그 정도로 심한 욕만 아니라면 조선족한테 해도 된다'라는 말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대부분 한국인의 마인드가 이런 수준인데 과연 중국과 조선족을 비하하는 현상이 사라질 수 있을까? 김민수를 함께 꾸짖어준건 고마운 일이지만 진정으로 그가 뭘 잘못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 한국네티즌들에게 그만큼 실망도 크다. (제공 : 위쳇 zamzali2016)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오피니언
    2016-06-19
  • “광복 70주년 행사장에서의 막말 유감”
    ▲국악인 김덕수의 행사차량 [동포투데이] 지난 8월 15일 서울에서는 뜻 깊은 광복7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일본 아베총리의 과거형 표현을 담은 담화로 인하여 개운치 않은 뒤끝이 남긴 하지만...... 세종문화회관의 중앙행사를 마치고 재외동포와 언론인을 초청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마련한 민속공연(해방가)을 관람 후 오후 6시에 있을 광화문 행사를 위해 이동 중 재외동포 기자단은 김모의 사물놀이패의 퍼레이드 행렬을 취재하게 되었다. 행사용 무대를 20여 미터를 남겨두고 퍼레이드를 관전하는 시민인파로 인해 퍼레이드 행렬의 진행이 방해를 받아 일시적으로 멈춰 서게 되자, 국악인 김모는 행사차량에서 하차. 인파를 향해 “이게 뭐 하는거야?”라고 반말에 막말로 소리쳤고, 마이크를 통해 생방송 행사장에 울려퍼졌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심히 부끄러운 일이며, 국악인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공연을 다니는 공인 김모의 인격을 의심케하는 대목이다.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공인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행동이나 언행이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국내외 행사를 주관하는 기관은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게 철저한 검증과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군호
    • 오피니언
    2015-08-17
  • 신념 하나로 살아온 파란만장한 인생길
    ■ 리강춘 (중국 왕천현) 나는 이 세상에 “남자”로 태여나 가정에서는 기둥으로, 안해에게는 훌륭한 남편으로, 자식에게는 떳떳한 아버지가 되려는 굳센 신념 하나로 다른 사람이 상상도 못할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힘들게 걸어왔다. 1980년 1월 22일 아침, 음악교원으로 있던 나는 갑자기 건 피소변이 나가면서 아래배가 아파 연변병원에 호송되여 수술대에 올랐다. 29세 꽃나이에“악성방광암말기”라는 진단을 받을줄이야. 매일 체온이 40도로 오르내리고 동통을 참다 못해 헛소리를 치다가는 혼수상태에 빠지군 했다. 그때 나의 생명은 꺼져가는 불찌와도 같이 가물거렸다. 수술한지 일주일이 지난후 수술실을 뽑으니 응당 아물어야 할 수술자리에서 고름이 왈칵 터져 나왔다. 마취제를 쓰지 않으면 수술자리가 빨리 아문다는 말을 들은 나는 이를 악물고 마취제를 쓰지 않은 대수술을 두번이나 받아냈다. 6개월만에 수술자리가 겨우 아물자 나는 안해한테 업혀 천진시공안병원에 가 한달동안 화학치료를 받았다. 머리가 몽땅 빠지고 체중이 32킬로그람으로 줄어 이 세상에서 남은 시간이 석달밖에 안된다는 “시한부선고”를 받고 고향에 돌아왔다. 7개월만에 고향땅을 밟게된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보다 안해가 더 기뻐했다.안해는 나를 부축하고 고향땅을 한발자국 두발자국 내 디디며 언젠가? 내가 배원준 노래를 조용히 불렀다.“종다리 울어 예는 하늘아래 진달래 곱게핀 고향이로세...”안해의 은은한 노래소리는 나에게 삶의 희망을 안겨 주었다.갈수록 심산이라고 그 기쁨은 얼마 가지 못하고 비극으로 넘어갔다. 그토록 보고싶었던 딸애가 귀신처럼 변해버린 아버지가 무섭다며 내 곁에 오지도 않았고 밖에 나가 해볕쪼임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남들이 나를 보고 놀라 할가봐 감히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할수 없이 나는 안해가 갖추어 주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날이 밝기 전에 마을과 4리나 떨어진 남산 락엽송밭에 가서 하루를 보내다 날이 어두워 캄캄해져야 산에서 내려오군 했다. 두해 여름을 산에서 이름 모를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하루하루 보냈다. 지루하고 고독하고 막막했다. 이제 오래 지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에 서러웠고 맹인이나 지체장애자들이 부러웠다. “시한부선고”를 받지 않은 그들이기 때문에... 병마와의 싸움은 점점 악렬했다. 수술자리가 아물지 않아 동통이 심해 맞은 강통정(强痛定)주사에 은이 박혀 하루라도 주사를 맞지 않으면 못 견디는 상황이였다. 나는 왕청현내의 크고작은 향진과 촌툰 위생소를 찾아다니며 손이야 발이야 빌면서 강통정을 사다가 위생실에 주사기를 감추어두고 아침 저녁으로 맞았다. 강통제에 의거해 사는 나는 마약중독자나 다름없었다. 주사를 맞지 않으면 온 몸에 진땀이 줄줄 나고 발광이 나고 닥치는대로 마스고 부수고 했다. 그러던 1983년 8월의 어느날, 왕청현 대흥구진병원의 리동렬원장이 나를 찾아와 “젊은 나이에 이게 무슨 짓이요? 남들은 대수술을 하고도 하루에 주사 한대를 맞으면 그만인데 하루에 열대씩 맞으면 한달도 살지 못하오”하며 강통정(强痛定)을 떼라고 진심으로 권고했다. 그 말에 나는 “암말기”라는 사형진단을 받고도 버티고 일어섰을라니 강통정을 떼다 죽더라도 주사를 떼봐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3년이나 맞아온 강통제주사를 떼자니 쉬운 일이 아니였다. 대흥구병원에 입원한 나는 주사생각이 난다 하면 속이 답답하고 발광이 나면서 맞고있는 링게르를 잡아당겨 복도창문으로 내던져 주사병이 맞은켠 병실벽에 맞아 박산나기도 했다. 환자들은 병 떼러 왔다가 심장병을 얻겠다며 출원하겠다고 야단쳤다. 병원에서는 나를 철침대에 꽁꽁 묶어놓고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나는 발광하다 맥이 빠져 쓰러지군 했다. 나는 사내대장부라면 안해를 위해, 자식을 위해 죽지 말고 꼭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아픔과 약중독을 이겨내리라 마음먹고 견디고 또 견뎌냈다. 석달동안의 치료를 거쳐 나는 기적적으로 마약중독에서 벗어나게 되였고 혼 나간 사람처럼 동분서주하면서 강통제를 구걸하던 력사를 종말짓게 되였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안해의 정성에 염라대왕이 손을 들었는지 아니면 나의 굳센 삶의 욕망이 기적을 낳았는지? 1986년 2월 나는 건강회복이 빠르고 대체상 치유되였다는 결론을 받았다. 나는 죽지 않고 살았으니 사회, 가정, 안해와 자식을 위해 보람있는 삶을 사는것이 나의 삶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우선 남편을 넘어지지 않게 뒤받침을 해준 안해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안해를 글로 쓰기로 하고 신문, 잡지에 투고하기 시작했다. 1년동안 26번이나 퇴고를 받으면서 쓴 “나의 안해”라는 실화문학이 “청년생활”, “연변녀성” 등 잡지에 발표되였다. 그때로부터 나는 그렇게 애착해오던 음악을 포기하고 신문보도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의 노력으로 12년째 해마다 기사 수백편이 언론매체에 발표되면서 “흑룔강신문”,“로년세계”,“연변로인의 벗”등 아홉개 신문매체의 특약기자로 초빙되었다. 또한 왕청현 신문보도센터의 주임, 왕청지구통신련협회 부주석,중앙인민방송국 연변조선말방송애청자협회 왕청분회 회장,왕청현음악가협회조선족중로년성악예술협회회장,“연변로인의 벗” 왕청현기자소 소장 등 직무를 맡고 선후로 “길림성우수지원자”,“연변주조선어문사업선진개인”,“연변주후대관심사업선진개인”,“왕청감동인물”,“왕청현로년사업선진개인”,“왕청현민족단결선진개인”등 수많은 영예를 받아안아 왕청현을 대외에 홍보하는 중요역할을 하고 있다.
    • 오피니언
    2015-03-1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