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02(일)
 

1. 결혼사진에 맺힌 한


하늘 나라에 계시는 시어머님께 올리는 편지


박현옥




어머님
, 안녕하세요?


오늘 밖에서는 철없는 가을비가 구질구질 내리면서 날씨가 많 이 스산하니 오늘따라 어머님이 너무너무 그립습니다
. 그리움에 마음이 많이 슬픈 하루입니다. 어머님, 그간 잘 지내셨지요? 어머님 생각을 떠올리니 불시로 목이 꽉 메여옵니다!


어머님도 알고 계셨죠
? 제가 결혼사진에 한이 맺인 사람이여서 결혼 초에는 사진이라는 말만 나오면 스트레스를 받고 사진 찍기를 꺼려 했다는 것을.


저는 남편과 한
3년 연애하다가 양가 부모님들의 허락을 받고 결혼날자를 잡아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지요.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 혼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환상과 솜처럼 부풀어 오르는 둥둥 뜬 꿈을 안고 결혼식을 올리게 되였습니다.


정말 잘 살아보자고 백년 가약을 맺은 우리들이지만 생각밖의 작은 일로 결혼 초부터 티각태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일생에 단 한번밖에 없는 결혼식 날에 사진 한장도 못남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때문에 저는 엄청 화가 났고 신랑도 저를 달래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변명한다


는 말이
다들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사진사를 부르는걸 잊었을 수도 있다였습니다. 저는 그 변명에 더욱 화났고 신경질이 났습니다. 왜냐면 남편은 육남매가운데 막내로 위에 세 형님과 두 누님이 계셨는데 이미 다 결혼했고 모두가 결혼식 때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같아선 사진기도 흔하게 갖고 있고 사람들마다 스마트폰을 쓰고 있으니깐 수시로 필요할 때 사진을 찍을 수가 있는데, 그때는 사진기가 귀한지라 사진관에 미리 연락해서 사진사를 청해서 결혼 사진이나 회갑잔치 사진 그리고 애기돌 사진도 찍고 그랬지요. 미리 예약했더라면 사진사가 안올리가 만무한데, 사진사가 안왔다는것은 예약을 안했다는 말이 되니 그게 저의 마음에 더욱 큰 서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집 사람들은 왜 나한테 이렇게 무심하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새 색시 인 제가 그일 때문에 시댁식구들 앞에서 내놓고 화를 내기도 그렇고, 그 러다보니 속은 더욱 부글거렸습니다. 그저 불쌍한 신랑한테만 화내고 투덜거렸지요.


그런대로 지지고 볶고 하면서도 우린 아들 하나를 낳고 살았지요
. 그러나 사진 콤플렉스를 가진 저는 그후로 가족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았고 아들애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 남긴 가족사진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것도 아들이 하도 사진을 같이 찍자고 졸라대서 막무가내로 한번 찍었던 것입니다. 남편 역시 나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는지라 가족사진 찍자는 말은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한번은 애를 데리고 우리 가족 셋이서 태산에 여행을 가게 되였 습니다
. 엄마의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애는 여행 가서 기분이 좋아 멋진 풍경만 보면 엄마 아빠 빨리와요, 여기서 우리 셋이서 같이 사진 찍어요하면서 졸라댔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아니 내가 찍어줄게, 너하


고 아빠가 찍어
하면서 이 핑게 저 핑게 사진찍기를 회피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찍은 사진을 빼보니 거의 전부가 남편과 아들이 찍은 사진이었고 몇장은 나와 아들이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습니다. 멋 모르는 아들은 사진을 보면서 셋이 여행갔다는 것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고 못내 아쉬워 했습니다.


그런 저의 서러운 마음을 읽으신 어머님께서는 힘겹게 지으신 얼마 안되는 햇 감자를 파서는 머리에다 이고 시장에 나가 팔아 푼돈을 한잎두잎 모으시고
, 또 강냉이 철이 되면 풋강냉이를 삶아 팔아서 푼돈을 한잎두잎 모으셨다가 어느날인가 저를 조용이 부르시더니 속 호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서 모아두었던 돈을 꺼내서 저의 손에 쥐여주면서 아가야, 돈이 적다만 이걸로 애랑 애비랑 셋이 나가서 사진도 찍고 시원한 냉면도 한그릇씩 사먹고 들어오너라, 너한테는 해준 것이 너무 없어서 정말 미안하구나!” 라면서 눈물을 글썽거렸죠. 제가 우리한테도


돈이 있다며 안받으려고 하니 어머님이
내가 너희들의 결혼사진을 못찍어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아나? 이걸 해주지 않으면 내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것 같다면서 극구 그 돈을 제 손에 쥐어주셨지요. 그때 저는 그만 목이 꽉 메여 어머님 품에 안겨 슬피슬피 울었고 어머


님도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지요
. 비록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그것은 정녕 어머님의 자식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였습니다. 그날 저녁에 저는 그 돈을 손에 꼭 쥐고 어머님의 그 따뜻한 마음을 가슴에 안고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 그때는 왜서 그렇게 가난했던지...


며칠 뒤
, 저희 세 식구가 가족사진을 찍어서 액자에다 넣어가지고 어머님께 가져다 보여드렸어요. 어머님은 그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시면서 보고 또 보고 손으로 연신 사진을 어루쓸면서 또 눈물을 지으셨지요.


그후로 살면서 그때 당시 어려운 생활 형편때문에 우리들의 결혼식을 억지로 올렸다는것을 우연하게 알게 되었고
, 그렇다보니 사진사를부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은 많은데다 생활이 어려웠던 당시 시어머님이 얼마나 힘들었을가 하는 생각은 자식을 낳아 키우면서 생활하면서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자식을 여럿 낳아 키운 것도 아니고 고작 애 하나를 낳아서 키우면서도 그렇게 힘든데 자식을 옹기 종기 앉혀놓으신 시어머님은 얼마나 힘든 인생을 보내왔을가라는 생각이 가끔 들군 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항상 자기보다 며느리들을 먼저 생각해주셨고 한번도 남들 앞에서 며느리들의 흉을 보지 않으셨습니다
. 그렇다고 우리가 다 잘해서, 다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넓은 마음으로 며느리들을 자기 자식처럼 보듬어 그러안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 어머님이 너무 너무 고맙고 지금도 가끔은 하늘 나라에 계신 어머님이 너무 너무 그립


고 보고 싶습니다
.


어머님이 저에게 남겨주신 가장 큰 선물은 부모 자식간의 사랑하 는 마음이였습니다
. 어머님의 그 사랑때문에 저의 마음에 맺혔던 한은 언녕 가셔졌고 가끔은 ! 내가 왜 일찍 이런 어머님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했을까?”하는 후회와 자책감으로 가슴을 탕탕 쥐여 박을 때도 있 었습니다. 살아 생전에 어머님한테 더 잘해드려야 하는데 제대로 못해 드린 것 땜에 가슴이 아파올 때도 많았습니다. 오늘도 구질 구질 싸늘한 가을비가 내리는 날 저는 어머님 생각을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되뇌입니다.


어머님 하늘 나라에서 부디 평안하시고 더는 가난때문에 속을 앓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며느리도 이젠 결혼 사진을 찍어주지 못한 어머님의 아픈 마음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이진 우리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고 잘 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 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보고싶습니다!”


어머님을 그리는 막내 며느리 올림



중국조선족 한국생활수기 모음집 "빵상과 쭝국애 혀네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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