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투데이] 4월 21일, 하버드대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백악관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연구비 동결을 압력수단으로 삼아 학문의 자율성을 침해하려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백악관의 압박에 맞서 정부를 고소한 대학 사례로 기록됐다. 미국 최고(最富)의 명문대와 연방정부 간의 이번 공방은 "하버드의 버티기 가능성"과 "승자는 누구인가"를 둘러싼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국 고등교육계와 정부 간 갈등이 본격화됐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교육 수준이 정치적 양극화를 부추기며 유권자 투표 성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가 더해지면서, 교육이 양당(兩黨)의 새로운 전쟁터로 부상하고 있다.
하버드대는 이번 소송에서 <행정절차법>, 1964년 <민권법>, 그리고 미국 헌법 수정 제1조(표현의 자유 보장) 등 세 가지 법률을 근거로 9개 연방기관을 상대로 6개 항목의 혐의를 제기했다. 특히 전(前) 부시 행정부 출신 변호사 버크와 메릴랜드 주 연방검사를 지낸 후얼 등 보수 성향의 유력 법조인들을 대리인으로 선임해 법적 공방에 나선 점이 눈에 띈다. <뉴욕타임스>는 "하버드가 연방정부의 성급한 조치를 역이용해 예산 삭감을 저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대학 측은 "정부가 '위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하버드 측은 특히 반유대주의 대응 과정에서 <민권법>의 정상적인 절차를 생략한 채 이례적으로 연구비 동결 조치를 취한 점을 문제 삼았다.
법률 전문가 7명은 하버드 <크림슨>과의 인터뷰에서 "연방정부와의 소송에서 하버드가 유리한 고지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올해 들어 연방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다수 소송에서 <행정절차법>이 주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주에도 에너지부의 연구비 삭감 시도에 맞선 기관들이 이 법률을 적용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백악관은 22일 "하버드가 연방법을 준수하지 않아 자초한 결과"라며 강경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CNN이 입수한 내부 문서에 따르면, 정부 측이 세 차례나 협상 재개를 시도했으나 대학 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장관은 "연구비 문제가 표현의 자유 제한과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양측의 합의 없이 이 소송은 수년간 법정 공방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1636년 설립된 하버드는 미국 건국보다 140년 앞선 역사를 자랑한다. 530억 달러(약 72조 원) 규모의 기부금은 전 세계 대학 중 최고 규모로, 약 100개 국가의 GDP를 웃도는 액수다. 전(前) 대장성 장관 출신의 서머스 전 총장은 "이런 재정적 역량을 가진 하버드도 정부에 맞서지 못한다면, 누가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정부와의 전면전은 쉽지 않다. 하버드 기부금의 70%가 기증자의 지정 용도로 한정되어 있어 자유로운 사용이 불가능하다. 연간 운영 예산 64억 달러 중 16%를 차지하는 연방 연구비 22억 달러가 동결되면, 이를 메우기 위해선 기부금을 400억 달러나 증액해야 하는 계산이 나온다. 교육위원회 관계자는 "400억 달러는 하루아침에 마련할 수 없는 금액"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공화당 의원들이 100억 달러 이상 기부금 보유 대학에 대한 세율을 1.4%에서 35%로 인상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추가 부담이 예상된다.
하버드는 공화당 로비스트를 고용하는 등 정치적 액션에도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발라드 파트너스사를 선정한 점이 특징적이다. 또한 대학 측은 공식 웹사이트를 개편해 "의학적 성과로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등 연구 성과를 강조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SNS 팔로워가 1천만 명에 달하는 점을 감안할 때 홍보 효과에는 한계가 있을 전망이다.
백악관 반유대주의 태스크포스는 최소 60개 대학을 상대로 반유대주의 혐의 조사를 예고했다. 이미 7개 명문대에 대한 연구비 삭감·동결이 진행 중이며, 19개 대학이 추가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보수 진영의 대학에 대한 불신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공화당 상원의원 밴스는 2021년 연설에서 "대학은 적(敵)이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역시 "대학이 보수 진영을 배제한다"며 교육 시스템 개혁을 주장해 왔다.
이러한 갈등의 중심에는 다양성·평등·포용(DEI) 프로그램이 자리 잡고 있다. NBC 최신 조사에 따르면, 등록 유권자의 49%가 "DEI가 인종 문제를 과도하게 강조해 직장 내 분열을 초래한다"며 폐지를 주장한 반면, 48%는 "다양한 관점이 혁신을 이끈다"고 반박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 85%가 폐지에 찬성한 데 비해, 민주당 지지자 역시 85%가 유지 필요성을 주장하며 극명한 대립을 보였다. DEI 전문가들은 이 개념이 인종·종교·성적 지향 등 모든 차이를 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보수 진영은 "진보 진영의 정치적 도구"라고 비판한다. 클레어몬트 연구소 소장은 "DEI 이데올로기는 근본적으로 반미적"이라며 "확산될 경우 국가적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교육 수준과 정치 성향의 상관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공영라디오(NPR) 조사에 따르면, 대학 졸업자는 민주당, 비(非)대졸자는 공화당 지지 성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세기 말과 비교해 크게 바뀐 현상이다. 영국 <가디언>은 "하버드와 정부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한 전쟁"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국제문제연구원 미국연구소 부소장 장텅쥔은 "이번 사태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대학과 보수 정부의 이념적 충돌"이라며 "미국 내 양극화와 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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