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김철균

눈이 내린다. 설을 앞두고 내린 설날이 눈이어서일까? 기대되는 것도 많다. 대줄기처럼 내리 꽂히는 비가 아니어서인지, 한여름도 온 몸이 오싹하게 만든다는 찬비가 아니어서인지 사람마다 눈을 평화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아파트 발코니(阳台)에 기대선채 눈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본다.
 
지금쯤 이 눈은 우리가 사는 고장 외 다른 낯선 산야에도 내리고 있겠지?
 
배고동 울리는 부두가에서, 정든 님 기다리는 젊은 여인의 야린 어깨위에 소복히 내려 앉을 눈, 백두산하 그 어느 두메산골 농가의 지붕을 하얗게 장식할 눈, 아니 국경(휴전선?)선 그 어디선가에서도 고향 그리는 젊은 초병의 마음과 마음을 달래주며 내릴듯한 흰 눈이다…
 
이렇게 짙은 정감을 나타내는 눈이 평화를 상징한다면 평화를 갈망하는 건 모든 인류의 소망이라 해야겠다. 헌데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소망한다는 평화는 이 겨울 어쩌다 눈이 내리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촌에 쉽게 찾아 오지 않고 있다.
 
언젠가 모 간행물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추정에 따르면 인류는 자연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의 약 40%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한다. 상당 부분이 먹고 사는 기본생활 유지가 아니라 이른바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물자와 땅을 차지하고 있다…무질서한 개발, 포획과 오염, 생태계의 다른 구성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류는 터무니없는 탐욕과 횡포를 부리면서 지구촌의 열대우림과 다른 생물족들을 훼멸시키는 한편 이젠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 인류끼리까지 옴니암니하는 싸움을 벌인다…”
 
만약 이 대목을 다른 사람이 읽어 본다면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인류의 행실을 두고 스스로 어처구니가 없어 할 것이다.
 
지구촌 최고의 영장물이고 생물계 문명의 상징이라고 일컫는 인류도 알고 보면 가장 허위적이고 포악한 “짐승”이라는 결론밖에 더 나올 것이 없다고 해야겠다.
 
또 있다. 인류는 늘 “양육강식”이란 인류사회외 “자연계의 동물세계”에서만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하지만 인류사회가 더 심하다는 생각이다. 겉이자 속이 그대로인 “동물세계”와는 달리 점잖은 양복위에 코트까지 차려 입은 신사가 일단 그 허울만 벗어 버리면 하늘이 높은 줄도 모른다. 그것도 배고파야 기타를 잡아 먹는  “동물세계”와는 180도 이상 다르다. 배가 부르면서도, 있고 많으면서도 수탈하고 점유하고 욕심을 부린다. 이는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이다. 똑 같다…
 
그러면서도 티없이 깨끗한 흰 눈을 반겨하고 눈이 내리는 날이면 평화를 기대하는 인류의 모순으로 엉켜진 “내심세계”—그것을 알아채서일가? 몇년전부터인지 우리의 “하느님”은 인간세상에 평화의 눈을 그닥 자주 하사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인간 스스로가 초래해 낸 “보응”이란 생각이다.
 
더 깊이 말 말자 “생태계보호”요, “자연계공존”이요 하고 자꾸 외치지만은 말고 우선 우리 인류부터가 종족과 “체제와 이념”을 벗어나 공존하면서 살자. 욕심 부리지 말고 싸움질 말며 남을 기시하지도 말자. 그러면 생태계보존과 자연계공존도 뒤따라 말만이 아닌 실상으로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명년 이때쯤 인류와 지구촌 평화를 기원하며 눈내리는 밤하늘을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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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겨울, 눈, 평화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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