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동포투데이 논설위원이며 연변 특파원인 김철균 기자가 2014년 연변 주 보도사업 선진일군으로 평선되었다.

 

1957년 생인 김철균 특파원은 일찍 문화혁명의 여파로 정상적인 대학진학의 기회를 놓치었지만 농촌의 집체호에서, 또한 공장 직장에서 생활하면서 열심히 문학창작에 정진하는 한편 자습하는 걸로 1984년 중국 연변대학 통신학부(지금의 성인학원)에 입학했다. 이 해에 김철균 특파원은 훈춘시 방송국 편집기자로 입문해 보도사업에 투신하였고 연변라디오방송국 청년부 기자, 연변일보 체육부 기자, 연변일보 종합신문 편집국장 등 직으로 활약하면서 수천편에 달하는 신선한 보도기사를 써내어 대중들의 환영을 받는 기자로 입지를 굳혔다. 특히 1995년부터 스포츠기자로 되자 선후로 연변축구팀의 감독직을 맡았던 최은택, 고훈, 김광주, 이광호, 고종훈 등 감독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을뿐만 아니라 중국 국내의 치우성(戚武生), 진즈양(金志杨), 츠샹빈(迟相斌) 그리고 한국의 차범근, 김정남, 이장수 등 감독들을 취재하는데도 성공했다.

 

김철균 특파원은 집착적이고도 끈질긴 기자였다. 한편의 “특종기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서는 인물과 사건을 다루었으며 한편의 기사를 위해 많은 투자를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2000년엔 베이징 둥팡병원(东方医院)에 입원한 원 길림오동팀 고훈 감독한테로 달려가 투병 중의 고훈을 위문하는 한편 “푸른 잔디밭에 쓰러진 사나이”을 써냈고, 2002년 초 중국 국가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한일월드컵에 참가하게 되자 역시 베이징으로 달려가 원 중국축구협회 상무 부주석이던 남용씨를 취재해서는 “중국국가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기까지의 내막”이란 기사를 써내기도 했으며 2004년에는 전국을급리그 8강전이 펼쳐지는 허난성 정저우(郑州)로 가서는 연변세기팀이 갑급진출에 성공하는 전반 과정을 몇편의 기사로 생동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이 외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기간에는 혼자서 베이징 올림픽이 펼쳐지는 몇개의 경기장을 돌면서 근 20편에 달하는 경기보도를 하는 한편 “올림픽 정신 협애한 애국주의 아니다”, “주최국 자존심 – 문명고국 중국의 올림픽 저력”, “베이징 올림픽 총결산 – 재래관념의 경신, 기록돌파의 새 풍경선” 등 특종을 만들어 재치있는 필치와 심도 깊은 분석력으로 베이징올림픽을 홍보하여 여러 노기자들의 감탄을 자아내었다.

 

김철균 특파원의 끊임없는 노력과 쌓아올린 성과는 연변 주내는 물론 중국 국내와 한국의 매스컴들의 인정을 받았다. 2014년 중국의 성급 신문인 “길림신문”에서 중국에서 유일한 축구전문 사이트를 개설하자 김철균 특파원은 연변대학 체육학원 박사출신의 교수 김창권 선생과 더불어 이 사이트의 논평원으로, 한국의 인터넷신문 “동포투데이”의 논설위원으로 위촉받았다.

 

한편 기자생활을 하는 기간 동안 김철균 특파원은 짬짬의 시간을 타서는 문학창작에도 꾸준히 노력해 단편소설 “수산나”, “배놈의 세계”, “얻은 것과 잃은 것”, “전쟁과 칠성영감의 여인들”, 장편실화 “젊은 마도로스의 수기”, 작품집 “성공과 실패의 몸부림속에서”, “야망의 축구스타(합작)”,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 번역작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문명기적”, “오묘한 세계 대백과”, 수필 “꿈에 본 어머니”, “사향심” 등과 여 러편의 산문, 잡문, 만필 등을 창작하여 글집필에서의 다재다능의 기교를 한껏 과시하였으며 2003년에 연변작가협회 회원작가로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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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균 특파원 연변주 보도사업 선진일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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