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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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철, 탄탄 가창력부터 섬세 연기력까지…2개월간의 '빅피쉬' 마무리
    [동포투데이] 배우 김성철이 무한 호평 속 뮤지컬 '빅피쉬'를 마무리했다. 더욱 탄탄해진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마지막까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끈 것. 지난 9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국내 초연 뮤지컬 '빅피쉬'는 허풍쟁이 아버지 '에드워드'가 전하고자 했던 진실을 찾아가는 아들 '윌'의 여정을 통해 인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팀 버튼 감독의 동명 판타지 영화가 원작이며 뮤지컬로 각색해 한국 버전으로 새롭게 재탄생됐다. 극 중 김성철이 연기한 '윌'은 한때 아버지의 이야기에 잠 못 이루던 소년이었지만 점점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들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인생 속에 숨겨진 진실과 진심을 알게 되고 자신 역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면서 모든 걸 이해하게 되는 인물. 김성철은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서히 변화를 맞게 되는 '윌'의 감정선을 섬세하고도 확실하게 그려내 공감과 몰입을 이끌었다. 특히 아버지와의 대립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에는 상대 배우와의 호흡은 물론 가창력까지 폭발시키며 진정성 가득한 열연을 펼쳐 관객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극 초반에는 아버지의 허풍 가득한 과거를 부정하는 냉철한 면모를 선보였다가 모순투성이인 단서를 찾아낼수록 혼란스러워하는 깊은 내면 연기,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철없던 지난날을 후회하고 각성하게 되는 감정 연기 등 빈틈없는 호연으로 150분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렇듯 때로는 객석을 숨죽이게 하고 또 때로는 환호하게 하며 감동과 재미 모두를 선물한 김성철은 19년 12월부터 20년 2월까지 약 2개월간 '윌' 그 자체가 되어 매 순간 관객들에게 따뜻함을 선사, 뮤지컬 배우로서의 진가를 다시 한번 대중에게 확인시켰다. 한편, 2014년 뮤지컬 '사춘기'로 데뷔한 김성철은 이후 '베르테르' '스위니토드' '팬레터' '미스터 마우스' 등 다양한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으며 '슬기로운 감빵생활' '투 제니' '바람이 분다' '아스달 연대기' 등 브라운관뿐만 아니라 '배반의 장미'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82년생 김지영' 등 스크린 진출까지 알리며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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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0
  • 中 누적 1만 1921명 의료인원 후베이 지원
    [동포투데이 김현나 기자] 9일 열린 중국 국무원 뉴스 브리핑에서 국가 위생 건강위 대변인이며 홍보 사(司) 부사장인 미펑(米锋)은 9일 현재 국가 위생 건강위는 누계로 1만 1921명의 의무인원이 전국 각지로부터 후베이를 지원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9일, 타이왠 우쉬(太原武宿) 공항에서 제4진으로 후베이로 향발하는 산시성(山西省) 의료대가 출정식을 가지고 선서하고 있는 장면이다. 이 날 후베이로 향발하는 산시성 제 4 진 의료대의 인원은 도합 300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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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0
  • 이라크 중국과 ‘무기와 석유 교환’ 원해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003 년 이라크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항상 이라크 신군의 최대 무기 공급업체였으며 M1A2 <아브람> 주전 탱크, F-16IQ 전투기 등 선진적인 것처럼 보이는 무기장비를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 이라크 국방부의 한 관원은 중국과 이라크 사이의 <석유로 인프라 교환>이란 무역 욕망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즉 일련의 <석유와 무기 바꾸기> 기제를 건립해 미국 달러를 우회해 중국의 무기를 구입하려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것이었다. 외계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산 무기를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며 그렇다고 결코 나쁜 것도 아니다. 많은 국가들에서는 미국산 무기를 구매한다는 것은 그저 <쳐다 볼 수 없는 나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미국산 무기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려한 표면 뒤에 숨겨진 내면을 보면, 이라크는 미국과의 무기거래에서 계속 당하고만 있었다. 미국정부는 무기거래에서 가격표를 자신이 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탱크나 비행기 등 중무기에서는 그 가격이 흔히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가 많았다. 그리고 무기를 판매한 금액을 결재할 때 미국은 줄곧 미국 달러만 받아냈고 이라크가 달러를 대가로 사용할 석유의 양에 대해서도 모든 것을 미국이 결정하군 했다. ▲ 사진 : 인터넷 이렇듯 2중으로 되는 <수탈>을 당하면서도 이라크는 오랫동안 입이 있어도 말할 수가 없었다. 미국이 이라크의 금융기구 내부에 많은 양의 부서를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 앞에서 이라크는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구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결정권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높은 가격을 지불한 후에도 자주 구매해오는 이라크 무기는 거의 모든 고급 기능에 고정되어 보기 좋은 <원숭이 판>이 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물류를 제외한 단가 5500만 달러에 달하는 F-16IQ 전투기는 최신 AIM-120 및 AIM-9X 미사일의 발사능력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런 전투기는 낙후한 전 세대 <참새(Sparrow)>와 <방울뱀(Rattlesnake)>을 대처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었고 공중 전투능력은 주변 국가의 전투기보다 한 차원 낙후한 것이었다. 이 <원숭이 판> 무기를 사용하는 방법에 한해 <미국 고문>이 이라크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으며 <청시 회보> 역시 필수적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라크는 미국과의 무기거래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때로는 간사하고 때로는 흉악하며 또한 그 수단이 빈번한 미국의 위험에 직면한 이라크는 많은 방법이 없었다. 달러에 대한 석유 교환은 미국에 의해 통제되기에 미국 달러로 해결해야 하는 기타 국가들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었다. 바꾸어 놓고 말해 이라크가 외국무기를 구입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미국이란 이 <슈퍼대국>이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금융제재>가 러시아와 이란에 가해질 때 일종 옛날의 거래방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완비한 거래정보 플랫폼을 통해 거래는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가 미국 달러를 피하면서 성사되기가 쉬웠다. 실제로 지난해 이라크 총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중국과 <석유와 기초건설 바꾸기> 등을 포함한 일련의 협의에 조인했다. 미국은 이라크의 기초건설을 도울 수 없지만 기타 나라들은 이라크의 <기초건설>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거래 상대를 바꿔 <석유로 기초건설 바꾸기>는 완전히 이라크 인들의 유일한 선택으로 되고 있다. 모든 공정성에서 보면 중국무기는 중동사람들의 마음을 <싼 가격과 충분한 수량>으로 사로잡고 있다. 이 중 <무지개>와 <익수룡(Pterodactyl)> 드론(无人机)은 최근 몇년 동안 <고급 라인>을 구축하면서 시장에서 미국의 <바돈(Chadone)> 통합 드론보다 한발 앞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무자비한 수탈과 통제는 이라크로 하여금 필연적으로 <우방국>의 문턱을 넘어 철저하게 중국의 <품에 안기는 결과>를 낳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마지막으로 중국 고대의 명언 한마디로 이 글을 마무리 한다. “도를 가지면 많은 것을 얻게 되고, 도를 잃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得道者多助,失道者寡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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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0
  • 우한 지원 의사 왕쥔훙 6시간 내 24명 환자 치료
    ▲ 사진출처 : 신화통신 [동포투데이 김현나 기자] 8 일 인민일보는 <우한 지원 의사 6시간 내 24명 환자 치료>란 기사를 발표하면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의<인민 전쟁>에서 거둔 한 의사의 이모저모를 집중 조명하였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1 월 29 일부터 2 월 8 일까지 베이징 의과대학 제 3 병원의 우한 지원 의료대원인 왕쥔훙(王军红)은 이미 11일째 우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이 기간 왕쥔훙의 <전염병 박멸 일기>는 중단된 적이 없었다. 첫 며칠 동안 그녀의 일기를 보니 1월 29일 새벽 3시가 왕쥔훙이 우한에서 정식으로 근무를 시작한 첫 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의 일기에서 이렇게 서두를 썼다. “오늘은 내가 직접 전염병과 마주하는 첫 날이다. 긴장하고 근심스러우며 마치 전사가 전장으로 나서는 심정이다. 하지만 나는 자신감으로 차 넘친다.” 그녀는 이른 아침의 시간대에 출근하는 것이 별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으며 7 년간 응급의사로 근무한 경력자로서 이전에 베이징에서 영시를 보았다면 이번에는 우한에서 0시를 쳐다보며 근무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왕쥔훙이 토로하다 싶이 그녀는 확실히 늦은 밤의 우한을 목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병원과 병동이었지만 깊은 밤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왕쥔훙의 근무 내용으로는 환자 접수, 환자 상태 평가, 의사의 처방 쓰기, 환자의 병력 기록 등으로 6시간 동안 물 마실 시간과 밥 먹을 시간도 없었지만 별로 불편함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왕쥔훙은 자신의 일기에서 근무 당시의 정경을 상세히 기록했다. 2월 3일의 저녁 8시 50분부터 새벽 3시까지 6시간 동안 그녀는 도합 24명의 환자를 치료, 이 중 3명은 중증 환자였다. 왕쥔훙은 매일 수십 명에 달하는 환자와 근거리에서 접촉하게 되었고 때로는 몹시 불안할 때도 있었다. “토끼띠인 사람은 담이 비교적 작다고 해요. 하지만 동료들이 나를 항상 격려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내가 응급실에서 긴장해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겁내지 말라 우리가 항상 함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왕쥔훙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왕쥔훙은 주동적으로 우한에 가는 의료대원으로 신청한 의사였다. “우한으로 가야 한다. <전선>으로 가야 한다.” 이는 당시 왕쥔훙의 사명감이었다. 베이징을 떠나기 전, 그녀는 일기장에 “의사로서 항상 준비되어 있다고 맹세했다. 지금 바로 그 맹세를 실천할 때가 되었다” 라고 썼다. 우한에 도착한 후 왕쥔훙은 더욱 안전하고도 충실하게 근무하기 위하여 15년 간이나 길렀던 머리칼을 잘랐다. 긴 머리카락은 근무에 장애가 클 수 있었고 머리카락을 통해 감염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뭐니 뭐니 해도 각종 전염 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현재 방호복을 착용 여하는 사소한 일에 불과합니다. 감염 예방과 통제의 개념은 이미 사업과 생활에 깊이 침투되었거든요. 일부 간호사와 자매들은 붕대로 얼굴을 감기도 한답니다. 모두가 묵묵히 목전의 생활에 적응하고 있으며 나도 이에 충실하고 있다는 느낌이예요.” 왕쥔훙은 말을 마친 후 살짝 웃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공포와 번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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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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