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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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사법계의 수치, 피해자를 매음녀로 몰아넣은 사건
    [동포투데이 김민 기자] “최고인민법원에서 33년간 사업한 경력이 있는 법관 시쇼밍(奚晓明)이 다른 한 위법변호사 및 기타 사법인원들과 짜고들어 피해자를 매음녀로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한 것은 중국 사법계의 커다란 수치이다.” 이는 지난 8월 20일 중국 전국변호사사업회의에서 거론된 화제이다. 몇년전 허난성 상웨시 량왠구(河南省商丘市梁园区)에서 한차례의 윤간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후 한 가해자의 아버지가 원 량왠구 인대상무위 주임 헤이짠(黑占)을 찾았다. 이어 헤이짠의 주도하에 당시 검찰원 부검찰장, 법원 부원장 등 11명 사법분야의 일군들을 불러놓고 금전공세로 이들을 매수했다. 이어 법정에서 윤간사건에서의 피해자는 “매음녀”로, 윤간사건은 “매음사건”으로 되었으며 가해자들은 모두 경하게 판결받았다. 이는 헤이짠이란 원 인대 주임이 주역을 놀았고 기타 사법일군들의 각각 보조역을 하면서 저지른 한차례 시비를 전도한 사법계의 비리사건이었으며 내막이 드러난 후 중국 전국에서 사법계를 아니꼽게 보는 시각이 보편화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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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15-08-24
  • 세계에서 미녀가 가장 많은 나라는?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전통 관념의 제약과 영향 때문에 중국은 현재 실질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그러나 중국과 반대로 현저하게 남성이 여성보다 적은 유명한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바로 라트비아이다. 라트비아는 발트해 연안에 위치해 있으며 경치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미녀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2차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이 나라는 남녀 비율이 현저한 차이가 있는 나라로 되어 현재 라트비아 남녀 비율은 84:100을 기록하고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많기 때문에 여성들은 배우자 선택에서 조건은 매우 낮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여성들은 국외로 나가 마음에 드는 배우자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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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15-08-23
  • 김영권, 광저우 헝다와 4년 연장 계약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23일 오후, 광저우 헝다 클럽은 한국 용병 김영권(25, 수비수)과 정식으로 4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19년 6월 30일 까지이다. 광저우 헝다 클럽 관계자는 "4년전 일본에서 발견한 다이아몬드 김영권은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로부터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광저우 헝다에서 완벽하게 성장을 이룩했다."며"앞으로 김영권은 팬들에게 보다 정채로운 경기를 보여줄 것이며 국내 및 AFC 경기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라고 밝혔다. 한국의 축구선수인 김영권(25)은 2009년 U-20 월드컵 이후 많은 J리그 팀들의 관심을 받았고 2010년 FC 도쿄에 입단하였다. 2011년 마토 네레틀랴크의 대체자를 찾던 오미야 아르디자의 눈에 띄어 오미야로 이적하였고 2시즌 간 활약하였다. 2012년 7월 2일 광저우 헝다로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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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3
  • 평화다문화센터, 외국인 근로자 ‘신나는 1박 2일 캠프’ 개최
    [동포투데이] 평화다문화센터(센터장 정혜경)는 지난 8월 15일부터 16일까지 1박 2일 동안 충북 단양 평화수양관에서 외국인근로자를 위한 ‘신나는 1박 2일 캠프’을 개최하였다. 이 날 캠프에는 캄보디아, 베트남, 중국, 스리랑카, 네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60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참여하여 친목을 다지고 대한민국을 체험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그동안 낯선 한국 생활과 일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를 체육대회, 바비큐 파티, 캠프파이어, 물놀이를 통해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근로자들이 대한민국을 더 가깝게 이해할 수 있게 부채만들기, 천연염색하기 등의 체험활동을 하였다. 캠프에 참여했던 외국인근로자 소타라(캄보디아)는 “캠프가 처음이었어요. 여름동안 일과 무더위와 싸워야 했는데 캠프에 참여하니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캠프파이어와 불꽃놀이는 캄보디아에서도 하지 못했던 것인데 이번 캠프에서 처음 경험했어요. 이제 즐거운 마음으로 회사에 돌아가서도 일할 수 있을 것 같고, 한국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이번 ‘신나는 1박 2일 캠프’는 평화다문화센터에서 매년 여름 휴가기간 동안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성실히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개최한 것으로써 올해로 세번째이다. 정혜경 평화다문화센터장은 “우리나라 경제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하며, 캠프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여 일터로 돌아가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캠프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참여한 외국인근로자들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들이 캠프를 통해 좋은 한국 이미지와 생활 적응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니 기쁨이 큽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평화다문화센터는 법무부 사회통합프로그램 7거점과 이민자조기적응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육, 문화교육, 기초법제도 등을 교육하며 이민자와 외국인들의 한국의 조기 정착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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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15-08-23
  • [실크로드 경주 2015] 개막 첫 휴일 가족 나들이객 ‘부쩍’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개막 후 첫 휴일을 맞은 22일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자녀들과 함께 한 가족 나들이객들의 입장이 부쩍 눈에 띠었다. 자녀들의 손을 잡고 행사장을 찾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끄는 곳은 그랜드 바자르. 바자르에 통용되는 화폐로 교환한 관람객들은 터키, 아제르바이잔, 태국, 베트남, 키르키즈스탄 등 19개 나라의 대표 먹거리를 즐기고, 이란 은공예품에서부터 중국 장식 유리병, 터키 세라믹 공예품 등 다양한 볼거리에 놀라는 표정.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터키 케밥에 익숙한 까닭인지 이란 케밥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줄이 이어져 진풍경을 자아냈다. ‘반량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화폐는 옛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으로 물건을 사는 재미에 즐거움을 더했다. 이와 함께 관람객들은 공원 곳곳에 흩어져 있는 주제관, 새마을관, 한민족전시관 등을 돌아보며 가족 또는 연인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번 행사의 의미를 담은 주제관은 관람객들은 찬란한 황금문화 도시였던 경주를 출발해 초원길·사막길·바닷길을 통과하며 실크로드의 신비를 경험한다. 여기엔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유물 사진과 대표 유물인 황금보검 실물을 전시한다. 공간을 사막협곡 이미지를 모형으로 재현하고 건축양식 모형, 낙타 조형물 등을 흥미로운 표현 기법으로 시각화했으며, 움직임에 따라 흘러내리는 모래 폭포는 어른, 아이 할 것도 없이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을 안겨 줬다. 특히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끈 곳은 석굴암 HMD 트래블 체험관. HMD를 쓰자 360도로 석굴암 내부를 볼 수 있으며, 마치 진짜 돌을 만지는 것 같은 질감에 놀라움을 자아냈다. 또 석굴암 본존불의 뒷모습도 볼 수 있고, 자유롭게 석굴암 내부를 돌아 볼 수 있으며, 게임요소도 가미했다. 체험을 마친 박성훈군(10․대구시 동구 반야월초 3)은 “와우 너무 재밌어요”라며 “책에서만 보던 석굴암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부처님 얼굴에 있는 보석도 맞춰 기분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엑스포 공원을 빛으로 물들인 일루미네이션쇼는 연인들에 인기. 민요와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빛의 향연에 손을 맞잡은 연인들은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저녁 7시 30분부터 시작되는 공연은 15분 진행, 15분 휴식을 단위로 매일 3차례 진행된다. 경남 진해에서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 등 온가족 모두가 함께 행사를 구경하러 왔다는 김중배옹(75)은 “가장 인상에 남은 곳은 새마을관이었다”며 “예전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었던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 이렇게 여행을 다니며 세계 40여개 나라의 풍물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겨진다”고 말했다. 한편 엑스포 공원에서 첨성대 영상관의 실크로드 애니메이션, 특설무대 플라잉 -화랑원정대, 드론 체험, 실크로드 리얼리즘전 등 다양한 전시와 공연, 체험들이 관람객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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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2015-08-23
  • [실크로드 경주 2015] 경주 시가지 퍼레이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22일 오후 6시 경주시가지는 실크로드로 물들었다. 경주역에서 시작해 중앙시장 네거리를 거쳐 대릉원에 이르는 1.4km의 코스. 실크로드 기차를 시작으로 터키 메흐테르 군악대, 키르키즈스탄, 아제르바이잔 공연단과 포항 해병대, 실크로드 퍼레이드단 등 총 100여명이 참여해 경주시민들과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경주문화엑스포
    • 문화
    2015-08-23
  • [실크로드 경주 2015] ‘아제르바이잔의 날’ 행사 열려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불을 뜻하는 ‘아제르’와 나라를 뜻하는 ‘바이잔’이 결합되어 ‘불의 나라’로 알려진 아제르바이잔. ‘실크로드 경주 2015’ 개막 이튿날을 맞아 총 10개 국이 참여하는 국가의 날 첫 테이프를 아제르바이잔이 끊었다. 22일 오후 4시 경주엑스포 공원 내 백결공연장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의 날’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람지 테이무로스 아제르바이잔 주한대사와 사부히 아둘라예브 아제르바이잔 가발라시 시장, 최양식 경주시장, 홍종경 경북도 국제관계 대사 등이 참여했다. 공식 행사에 이어 시작된 공연은 즐겁고 경쾌한 잔치였다. 아제르바이잔 ‘영광’ 훈장을 받은 아파그 말리코바가 예술감독을 맡아 진행된 공연에는 국가 무용 앙상블과 국가 고대 악기 앙상블 등 국가를 대표하는 가수, 연주자, 무용단 등 총 출연해 19개의 악기공연, 민속무용, 민속노래 등을 펼쳤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의 얼굴에도 즐거움이 가득했다. 특히 이날 공연에서 눈길을 끈 것은 ‘위제이르 하지베오프’ 오페라 중 ‘듀엣’. 아제르바이잔 최초의 오페라로 공훈 예술가 ‘아나르 슈살르’의 아름다운 음성으로 표현한 이 노래는 아름다운 연인들이 첫 만남에서 사랑을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노래. 남녀 출연자의 아름다운 ‘몸동작’이 더해져 관중들에게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 행사에서 아르제바이잔 공연단은 민속 무용, 고대 악기 앙상블, 전통공연과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의 춤과 음악, 무용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으며, 관중들 또한 한 무대가 끝날 때마다 환호로 답하는 등 수준 높은 매너를 보여주었다. 아제르바이잔 공연단의 공연은 25일까지 백결공연장에서 이어진다. 대구에서 ‘실크로드 경주 2015’를 찾아 아제르바이잔의 날 콘서트를 관람한 김지은씨(38)는 “아제르바이잔은 낯선 나라였는데, 공연단의 수준이 높고 볼거리가 많아서 놀랐다”며 “‘실크로드 경주 2015’를 통해 다양한 나라들의 공연과 전시를 제대로 보기에는 하루로 부족해 재입장 신청을 하고 다시 찾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국가 무용 앙상블은 1970년에 조직되었으며, 미국,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고 있는 대표 공연단이다. 국가 고대 악기 앙상블은 13명의 음악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제르바이잔 공훈예술가 무니스 셰리포브가 총감독을 맡았다. 아제르바이잔은 ‘실크로드 경주 2015’에 그랜드바자르를 설치해 전통 수공예품을 전시판매하고 있으며, 자국의 음식과 문화 등을 선보이고 있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은 카스피해를 접하고 있으며 러시아, 이란, 터키, 조지아 및 아르메니아와 접경하고 있다. 구소련에 속했던 국가로 인구는 9천600만이며,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등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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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3
  • 中 충칭서 열린 '달콤한 키스 대회'
    [동포투데이 김민 기자] 턴센트에 따르면 8월 22일, 중국 충칭에서 “달콤한 키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기”를 주제로 한 충칭융창키스콩쿠르(重庆永川接吻大赛)를 개최하였다. 이 날 콩쿠르에 신청등록한 20쌍의 커플들은 많은 시민들 앞에서 키스시범을 보였는데 그 키스동작 중에는 남친한테 매달려 키스하기, 서로 허리를 껴안고 키스하기, 여친이 눕고 남친이 엎드려 팔을 굽혔다 폈다 하며 키스하기 등 7가지 동작들이 있었다. 이 날 50여분간 진행된 콩쿠르에서 “고강도의 키스”로 인해 일부 “키스체력”이 약한 커플들은 분분히 두손을 들고 퇴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이 날의 콩쿠르에서 적지 않은 커플들은 서로 상대방을 관심하면서 얼굴의 땀을 닦아주거나 등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주기도 했으며 어떤 커플들은 휴대폰을 들고 자기들의 키스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최종 한쌍의 커플이 56분간의 키스시간을 견디어 우승, 이 거동은 많은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커플들의 키스장면 키스하며 촬영하는 장면 커플들의 키스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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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3
  • [장편실화연재] 한 여인의 인생변주곡(36)
    ■김철균 순자는 용환이를 무척 아끼고 사랑했다. 평소에 집에 뭘 색다른 음식이라도 있으면 자기도 먹지 않고 남겼다가는 용환이한테 가져다 주었으며 집에서 누가 용환이에 대해 귀에 좀 거슬리는 소리를 하면 슬며시 두둔해 나서군 했다. 그 뒤 얼마 안있어 용환총각이 진짜로 시험에 합격되어 동북군정대학 용정분교에 붙자 순자는 오빠들앞에서 용환총각을 드러내 놓고 자랑하기도 했다. “너, 아직 혼인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도 용환이를 자랑하며 싸고 돌고 싶느냐?!” 오빠들은 넌지시 순자와 농작을 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순자는 오빠들의 살을 꼬집으며 고개를 비틀군 했으나 속으로는 그런 소리를 그닥 싫어하는 양상은 아니었다. 또한 셋째 오빠 구완이는 농담으로 용환이한테 “순자가 자네한테 이토록 잘해 주는데 앞으로 순자를 구박하는 일같은 것이 없어야 하네”하고 못이라도 박으면 순자는 그 자리에서 “사람을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가”고 하면서 셋째 오빠한테 면박을 주군 했다. 그 외에도 매일 공부가 끝날 때마다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다가 용환이가 나오면 동행해 주군 하던 순자, 아버지 명기 어른이 셋째 오빠한테 끊어다 준 옷감이 맘에 들어 그것을 용환 총각한테 주자고 셋째 오빠 구완이와 사정하던 순자, 면방추(棉棒锤)를 돌리면서 누빈 실로 용환 총각한테 장갑과 목도리 같은 것을 떠주던 순자… 용환이는 점차 순자로부터 단지 약혼녀만이 아닌 어머니와 같은 따사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홉살을 잡으면서 아버지를 잃은 용환으로 놓고 말하면 성인이 되는 그 때까지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 보지 못하고 늘 남들이 먹다 남은 찬밥이나 얻어 먹으며 살아 왔던 터라 갑자기 순자로부터 살뜰한 사랑을 받고 보니 꿈만 같았다. 그 때로부터 용환이는 순자한테 아내 이상으로 모든 것을 의탁했고 순자 또한 외롭고도 불쌍하게 자란 용환이를 자상히 보살피는데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수십년간을 살아오면서 일종의 습관으로 되기도 했다. …… 인생만년에 들어 병석에 누워있는 용환 영감은 더욱 마누라한테 “아기”와 같은 존재로 돼 버렸다. 하지만 여느 환자들과는 달리 운신할 수는 없어도 사유는 비교적 명석한 용환 영감인지라 자신을 정성껏 간호하는 마누라의 소행에 자주 눈물을 흘리군 했다. 그리고 순자가 가끔씩 그제날 함께 낭만에 넘치던 연애시절을 추억하며 그 때 함께 불렀던 노래를 부르기라도 하면 용환 영감은 유달리 눈에 생기가 돌며 즐거운 표정을 짓군 하였다. “영감, 그 노래들이 그렇게 듣기가 좋수? 영감이 좋다면야 백번인들 못 부르겠수, 천번인들 못 부르겠수.” 그러면서 순자는 또 추억이 담긴 그 노래들을 부른다. 무산대중의 봄이 왔네/ 이 봄은 해방의 봄이라네// 얽히운 쇠사슬 깨뜨려라/ 해방의 봄맞이 얼씨구 좋다… 한편 용환 영감은 순자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로 인생을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는 반대로 가령 마누라가 투병생활을 한다고 할 때 자기도 순자처럼 마누라한테 잘해줄 수 있을가고 반성해 보았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나빠서가 아니라 남성들한테는 여성들만이 갖고 있는 특유한 사랑의 정감세계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몸을 가르는 그 진통속에서 새 생명을 낳는 여성의 사랑의 힘, 그것이 어떻게 남성들한테 있을 수 있으랴?! 여성이 갖고 있는 사랑의 힘은 위대하고 거룩한 것이다. 거기에 순자는 더욱 돌출했다. 고아한테 앞날을 기탁한 순자, 자신의 자식 6명 외에도 한족고아 6명이나 돌봐준 순자한테는 여느 여성들한테도 없는 사랑의 세계가 별도로 있었던 것이다. 용환 영감은 5년이란 오래고도 지루한 투병생활 끝에 2008년의 봄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누라인 순자한테서 더 이상 그 무엇을 바랄 것이 없다는 그런 모습이었다. 운명할 때 용환 영감은 순자의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이 세상을 하직했다. 마누라가 하는 일처사가 몽땅 시름이 놓이는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 한마디도 없었다. 그 노래는 여전히 용환 영감이 젊었을 때 즐겨 부르던 “낙화유수”였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엮어 지은 맹세야// 세월의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제17회 만년의 소망 (명신녀자중학창립 90돐 경축모임에 참가하여) 젊어서는 희망으로 살고 노년에 들어서는 추억으로 산다고 최근 들어 김순자 할머니는 자주 추억속에 빠질 때가 많다. 순자 할머니한테는 지금도 옛날부터 간직해온 물건들이 있다. 바로 학교시절 입었던 교복, 그 때 팔에 꼈던 완장, 받았던 상장과 졸업장 그리고 넥타이와 14살 때 명주실로 베천에 쌍그네를 뛰는 처녀의 모습을 곱게 담은 수놓이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시집올 때 갖고 온 “예장함의 쌀”마저 지금까지 64년간 보관하고 있었다. “예장함의 쌀”을 놓고 말하면 위에서 언급하다싶이 영감의 투병생활 때 그것을 얼마간 갈라내 쌀죽을 끓여 대접했으니 가장 요긴한 일에 사용한 셈이었다. 순자할머니는 그제날부터 보관하고 있던 물건들을 꺼내놓고 어루만지면서 명상에 잠기군 한다. 순자 할머니가 간직하고 있는 이런 물건들은 역사가 깊었고 또한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기도 했다. 학교 때 입었던 교복, 그 때 팔에 꼈던 완장 및 그 때 받았던 상장과 졸업장은 꿈많던 소녀시절 때의 긍지와 자랑이었다. 그 때 그 시절 순자는 그 누구에 못지 않게 이쁘게 생긴데다 키도 훤칠하게 컸다. 거기에 교복을 입고 완장까지 끼고 마을길에 나서면 온동네가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거기에 예절까지 밝아 동네사람들은 모두 김민기 어른이 덕망이 높아 자식들을 잘 두었으며 특히 순자를 며느리로 삼는 가정은 그야말로 복덩이를 받아 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입을 모으군 했다. 그만큼 순자는 훌륭한 인물체격에 공부를 잘했고 또한 마음씨도 비단처럼 부드러웠던 것이다. 당시 학기말마다 순자가 최우등생으로 받아안은 상품만 해도 한아름씩이나 되군 했고 그것을 가져올 때면 항상 친구들이 도와 주어야 집까지 가져올 수가 있었다. 순자는 그렇게 상품으로 받은 학용품들을 절대 혼자 독차지하지 않았다. 자기를 도와 집까지 날라다준 친구들한테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한테도 선물하군 했다. 그리고 순자가 받은 상장들에는 모두 강덕 ××년, 중화민국 ××년 등 글자들이 박혀 있었는데 이 역시 한시기 그가 온동네가 부러워할 정도로 날린 소녀였다는 유력한 증거물로 되고 있다. 한편 순자한테는 이름도 몇개 있었다. 어릴 때는 기숙이었고 학교에 붙었을 때는 일본놈들의 억압에 못이겨 창씨개명을 했을 때에는 기슈구었으며 해방과 더불어 고쳐진 이름은 희숙이었고 결혼할 때에 와서 지금의 이름인 순자로 되었다. 그 중 희숙이던 이름이 순자로 고쳐진 것은 순자의 위로 숙자가 아까운 22살 꽃나이에 절명하여 순자가 외 딸로 된데다 순자 역시 봉천에 끌려가 상한병에까지 걸리면서 죽을번했기에 앞으로는 이런 액운을 피해 인생항로를 “순항”으로 살라고 결혼을 앞두고 아버지 김민기 어른이 일부러 고쳐준 것이었다. 순자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화룡 서성구 소학교의 교원 통지서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아들을 둔 동네사람들은 순자를 며느리감으로 탐내면서도 혼사말을 넣을 엄두조차 못내었다. 그 중에는 농촌에서는 그래도 부자란 소리를 들으면서 떵떵거리며 사는 가정도 몇집이 잘 되었다. 당시 그런 가정들에서는 모두 순자가 도시의 높은 간부한테로 시집갈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헌데 그들의 판단과는 달리 순자가 의지가지 없는 고아인 김용환 총각과 백년가약을 맺을줄이야. 그것도 이미 결정된 교원사업도 포기하고 말이었다. 이에 놀란건 동네사람들뿐이 아니었다. 순자의 동창생들과 모교인 용정중학교의 교장 선생님까지 몹시 놀라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심지어 순자의 한 학교의 모 남성 동창생은 “이럴줄 알았더면 내가 먼저 청혼했을텐데…”하며 일부러 순자를 찾아와 서운감과 유감을 표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순자를 평가하기도 했다. “아무리 총명하고 공부를 잘해도 여자는 머리칼만 길었지 생각이 짧다”, “순자가 공부를 너무 해서 이상주의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 이상과 현실은 완전히 다름에도 말이야”, “순자가 환장했어. 환장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고아총각을 인생반려로 선택할 수 있담” 등으로 횡설수설했다. 이들의 말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아무리 사랑이 중하다 해도 교원사업을 포기한 것은 너무나도 단순한 결정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그것 때문에 순자는 평생 고생을 밥 먹듯이 해왔다. 순자는 자기가 가령 처녀시절 용환 총각과의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교원사업을 시작했더라면 지금쯤 자기의 운명이 어떻게 되였을가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 동안 긍정코 연길시 및 주와 성의 우수교원으로 몇번 당선되었을 것이고 소학교 교장직에 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지금쯤은 수천원이 되는 퇴직금으로 자신의 노후가 아주 화려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순자는 인차 그 생각을 부정해 버렸다. 비록 오랫동안 힘들고 가난한 인생살이를 해왔지만 용환 영감과 살면서 영감의 사랑을 독차지 하다싶이 많이 받아왔고 그 누구에 못하지 않게 자식도 아들 3명과 딸 3명을 낳아 키웠는가 하면 한족자식 6명이나 두게 되었으며 또 사회생활도 그만큼 보람있게 해왔으니 그것이 여느 직위나 두터운 퇴직금 봉투보다 못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리고 자기가 한족자식 6명을 돕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칠수 있게 된 것도 전적으로 영감의 뒤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순자는 잘 알고 있었다. 이렇다고 생각하니 순자는 순자는 한쪽에 돈낟가리가 있고 한쪽에 용환 영감이 있을 때 그 중 하나만 선택하고 하면 두말없이 돈을 포기하고 용환 영감을 선택할 것 같았다. 순자는 또 자기의 일생을 초불과 비교해 보군 했다. 자기의 몸을 녹여 세상을 밝히는 초불, 그렇다면 자기 역시 자신을 희생시켜 남편과 가정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고 할 때 이 역시 지나온 인생에 대한 커다란 위안이 된다고 순자는 생각했다. 2 최근 들어 한명, 두명 저 세상으로 가는 동년배들을 보면서 순자 할머니는 뭔가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며칠 전에도 순자 할머니는 그제날 주정부 서쪽 동네에서 살 때 이웃으로 보내던 한 할머니네 집으로 다녀왔다. 순자는 그 할머니와 근 60년간 친 형제제처럼 살면서 우정을 나누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몇년간 그 할머니의 건강상태도 통 심상치가 않았다. 그 할머니는 자기 자신이 바깥출입을 할 수 없으니 자꾸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순자 할머니더러 놀러 다니라고 한다. 그 할머니가 하는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옛날 함께 동고 동락하던 노인들이 이젠 대부분 가버리고 몇명 안 남았다. 올해 94세인 윤할머니, 82세에 나는 염옥순 할머니, 82세에 나는 오춘선 할머니와 최연옥할 머니 등으로 30명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가 이런 할머니들은 자꾸 순자 할머니를 보고 싶어하며 불렀고 그러면 순자 할머니 역시 불편한 몸을 큰 딸 영순이한테 의지하며 찾아 다니군 했으며 할머니들 또한 반가워서 야단들이다. 특히 며칠 전에 찾아간 그 할머니는 순자 할머니가 갈 적마다 붙잡고 놓지 않는다. 할 얘기도 많았다. 토지개혁, 국내전쟁과 공화국창립, 대약진, 문화혁명 그리고 30년 전의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 기억력이 매우 비상하기도 했다. 바깥출입을 못하니 집안에 앉아 늘 옛날에 대한 추억으로 사는 모양이었다. 그 할머니와는 달리 순자할머니는 인생에 대해 이젠 늙었다고 느껴본지가 그닥 오래지 않다. 10여년 전 거민위원회 조장직에서 물러날 때만 해도 젊은이들한테 책임을 넘겨야 한다고는 감안했으나 자기가 일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2008년 남편 용환 영감을 저 세상으로 보낸 뒤에는 많은 생각이 달라졌다. 이 세상을 위해 보다 해놓은 일이 너무나도 적다고 생각해졌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 때 중국에는 9급에 달하는 특대지진(2008년 5월 12일)이 발생했다. 이는 1949년 공화국창립 이래 파괴성이 가장 강한 한차례의 강진이었다. 당시 정부부문의 통계에 따르면 사천 특대지진시 6만 9227명이 조난당하고 37만 4643명이 부상당했으며 1만 7923명이 실종, 인민폐로 8452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이는 웬간한 전쟁이 초래하는 손실을 초과할 정도였다. 지진이 발생한 후 당중앙과 공화국정부에서는 신속히 위문단을 현지에 파견하는 한편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재해구조사업에 달라 붙었다.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는 각급 적십자조직을 통하여 재해지구에 위문금을 보내는 활동을 전면적으로 벌였다. 이 소식은 순자 할머니도 TV방송을 통해 접하였다. 순자 할머니의 딸 김영순의 소개에 따르면 TV를 통해 무수한 형제자매들이 조난당한 장면을 시청할 때마다 특히 어린 애들이 죽고 상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저렇게 아까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하늘도 무심하다”고 낙루했다고 한다. 그러던 할머니는 어느 날 큰 딸 영순이를 앉혀 놓고는 자기의 타산을 털어놓았다. “요즘 난 많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너의 부친이 돌아간 뒤 처음으로 나라에서 발급해주는 생활보조비로 200원을 받았다. 나라의 덕으로 생활비를 받았으니 암만해도 첫 달의 생활비 200원을 몽땅 지진재해지구에 보내야겠다.” 이 말에 큰딸 영순이는 놀란 나머지 한동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아니 어머니, 그건 어머니의 생활비예요. 그걸 몽땅 기부하고는 어떻게 생활한단 말씀이세요?!” “이 돈이 없어도 굶어 죽지는 않는다. 이전에 이런 돈이 없을 때도 살아왔을라니 한달 생활비를 바친다 하여 입에 풀칠을 하지는 않을거다.” 순자 할머니의 주장은 강경했다.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아는 큰 딸 영순이는 그대로 어머니의 뜻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튿날 순자할머니는 지팽이를 짚은대로 큰 딸과 함께 택시에 앉아 연변적십자회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들 모녀가 찾아가자 처음에 주적십자회일군은 잘못 찾아왔는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지팽이를 짚은 노인이 돈을 기부하러 찾아올줄은 생각지도 못한터였다. “할머니, 오늘의 이 행사는 할머니가 올 곳이 아닙니다. 지진재해지구에 보낼 위문금을 모금하는 장소입니다.” “나 잘 아우다. 그래서 찾아온 것이 아니겠수?” “뭐라구요? 할머니도 성금을 내련다구요?!” “그렇수다. 올해 영감이 돌아간 뒤 얼마전에 나한테로 내려오는 생활비 200원을 받았는데 이 첫달 생활비는 나라의 긴요한 사업에 보태려고 그런다우.” 이에 적십자회일군은 감동된 나머지 “나라의 보조를 받는 노인이 재해지구에 성금을 내놓는다”고는 “적십자회사업을 하면서 이렇듯 훌륭한 할머니는 처음 본다”며 순자 할머니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동안 순자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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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15-08-23
  • 중국축구 갑급순위, 연변 13경기째 단독 선두 질주
    [동포투데이 김민 기자] 8월 22일, 중국축구 갑급리그 제23라운드에서 연변팀은 하태균과 스티브의 2골에 힘입어 청도황해팀을 2 : 0으로 제압하며 현재 14승 8무 1패 승점 50점으로 갑급선두에서 질주, 13경기째 이 자리를 굳건히 지켜가고 있다. 현재 연변팀과 2위 할빈의등과의 차이는 8점으로 벌려지고 있다. 한편 갑급 2위부터 아래로 내려가면서 순위는 뒤죽박죽으로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아래의 도표는 8월 22일까지의 갑급순위이다.
    • 스포츠
    201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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