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 中 국가안보국이 공개한 ‘비밀문서’ 1호의 붉은 女 특공요원들
    [동포투데이] 중국 혁명전쟁 당시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용담호소(龙潭虎穴)에 깊숙이 침투하여 생사고난을 겪으면서도 그 은둔 전선에서 공을 거듭 기록하면서 한 공산당원의 신성한 사명을 충실히 수행했던 많은 위대한 여성들이 있었다. 오늘 우리는 3명 여성 전사의 전설적인 경험을 그리워하면서 그들이 숨은 전선에서 파란만장하고도 눈부시게 찬란했던 비범한 삶을 기억하고 있다. 안아: 최초로 국민당 비밀기관에 잠입한 붉은 여 특공 요원 “랄라라 랄라라, 나는 신문 파는 꼬마 신동, 날 밝기를 기다리지 않고 신문 판다네…”, 귀에 익은 이 노래 ‘매보가(卖报歌)’는 그 작사자가 안아(安娥)이다. 그리고 ‘어광곡(渔光曲)’ ‘싸워서 고향으로 돌아가자(打回老家去)’ 등 명곡의 가사도 그녀의 손에서 나온 것이다. 이 재주 많은 여류시인, 극작가이며… 아니 중국 공산당 최초로 그녀가 국민당의 첩보기관에 침투한 붉은 여성 특파 요원일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안아- 그녀의 원명은 장식원(张式沅)으로 1905년 중국 하북(河北) 획록(获鹿)의 한 ‘서향지가(书香之家)’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좋은 교육을 받아 사상적 진보를 추구하였으며 1925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였다. 이듬해 안아는 대련(大连)으로 건너가 노동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 봄에는 명령에 의해 소련 모스크바 중산대학에 유학하게 되었다. 1928년, 공산당 비밀 전선의 전문기관인 중앙 특공과는 국민당의 첩보기관인 조사과에서 중요한 관계를 발전시켰고, 조사과 주 특파원(가명 양청보)은 1929년 안아가 상해로 귀국하여 중앙 특수과에 참여하게 하였으며, 공산당 조직의 지시에 따라 조사과에 들어가 비서를 맡아 정보 수집 업무를 도왔다. 안아는 공산당 역사상 최초로 국민당의 첩보기관에 잠입한 여전사이다. 안아는 첩보원의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듯, 화려한 옷을 입었을 때는 대범하고 우아한 비서 아가씨로, 투박한 장옷을 입었을 때는 소박하고 수수한 아가씨였다. 조사과 내에서 안아의 업무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당 조직에 중요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해 각종 업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어려서부터 고문·고시를 능란하게 익혀 문학과 음률에 관심이 많았던 안아는 다양한 작품을 창작·발표하여 예술성·전파성이 강해 당시 이름난 ‘의용군 행진곡’의 작사자였던 전한(田汉)을 비롯한 많은 재주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많은 사람들이 안아의 청초한 용모와 대범한 행동거지에 매료되기도 했다.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안아는 다시 전쟁터로 달려가 전장 기자로 활약하면서 무한, 중경, 계림 등 지를 돌며 항일 구국 사업에 종사하여 당과 국가의 사업에 기여하였고, 새중국이 창립되자 안아와 전한은 문예 사업에 투신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였다. 호제방: 외국에 공식 파견된 중국 최초의 여성 외교관 호제방(胡济邦)-기자이자 외교관으로 중국 대외교류 최전선에서 활약한 그녀는 수십 년간 조용한 전장에서 꿋꿋이 버티어 온 은둔 전선의 여전사이기도 했다. 1933년 호제방은 중국공산당의 첩보 업무에 참여, 그는 자신을 소개하면서 국민당 병무 서장 변대유의 집에 가서 그의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이 유리한 조건을 틈타 대량의 국민당 핵심 군사 기밀을 입수하여 중국 공농 홍군 중앙 소베트 구역의 반토벌 전쟁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같은 해 여름 변대유는 그녀를 국민당 외교부 여권과에 추천하였다. 이어 당 조직이 소련행 여권 16개를 만들어 내라고 지시하자 호제방은 재빨리 움직여 여권을 손에 넣었고, 국민당 공작원들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기 위해 당원의 애인으로 가장해 16개의 여권을 당 조직에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 일은 주은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새중국이 창립된 후 주은래 총리는 그녀의 앞에서 “동무의 덕분에 우리 공산당은 출국할 수 있는 여권을 구했다”고 칭찬했다. 1934년 중국 공산당에 비밀리에 가입한 호제방은 1936년 남경 국민정부에 의해 국민당의 소련 주재 대사관에 파견되어 근무하다가 ‘중소문화’지의 주 소련 기자를 겸임하면서 중국 역사상 최초로 공식적으로 해외 주재 외교관이 되었다. 소련에 있는 동안 그녀는 공산당의 지시를 마음에 새기고 대중적 신분으로 중-소 문화교류에 주력하는 한편 국내 정세를 염두에 두면서 공산당에 대량의 정보를 제공하였다. 호제방은 다국어에 능통하여 스탈린, 루스벨트, 처칠, 드골, 티토 등 수많은 해외 인물들을 인터뷰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호제방은 전선에 달려나가 독·소 전장에서 유일한 중국 여성 기자가 되었다. 그녀는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서도 수많은 진귀한 전선 사진을 찍고, 전쟁터의 군사‧정치‧경제와 문화생활에 관한 몇 편의 기사를 썼다. 이 자료들은 당시 국내에서 소련의 반파시즘 전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로 되기도 했다. 진수량, 공산당의 첫 대도시 여성 서기 1946년 중국 국민당 통치의 중심지였던 남경은 장개석에 의해 쇠통 같은 도시로 불렸다. 국민당은 군정 인원이 무려 11만 명, 현역 경찰이 만명에 달했고, 중국공산당 남경의 지하당은 연이어 8차례의 파괴적인 타격을 입었고, 다수의 공산당 남경시위 지도자들은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결정적인 시기에 당 조직은 지하 공작 경험이 풍부한 여성 간부 진수량(陈修良)을 남경으로 파견해 시위 서기를 맡게 했다. 같은 해 진수량은 남경 정보시스템을 건립하였고, 1948년에는 남경 지하 반첩보 시스템 만들어 두 극비시스템을 그녀가 단선으로 연결하였으며, 그녀의 주도하에 남경 지하당조직은 200여 명의 지하당원에서 2000여 명으로 급속히 발전하였다. 그들은 국민당 내부는 물론 각 업종에서 비밀리에 활동하면서 대량의 중요한 정보를 입수하여 공산당 중앙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47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전장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두면서 군민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공산당 중앙에서는 국민당 군정 인사들의 봉기를 책동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러자 진수량은 남경 지하당 조직을 이끌고 신속하게 호응하여 국민당 폭격기 제8대대 수하 기동부대, 국민당 해군의 가장 앞선 군함 ‘중경호’ 및 남경과 장개석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민당 소장 사단장 왕안청(王晏清) 등을 차례로 봉기에 가담하게 했다. 1949년 4월 20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장강 도하 전투가 막을 올렸고, 진수량은 남경 지하당을 이끌고 전면 출격하여 해방군의 도강에 협력하였으며, 4월 23일 남경이 해방되자 진수량은 우리 당 역사상 최초의 대도시 여성 공산당 서기로서의 위험천만한 호랑이굴에서의 삶을 마감하였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4-03-12
  • 중국공산당은 악의 모체? 조선족간부는 악의 실천자? 황당주장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있는데 독일 유태인 출신 미국 정치철학자가 1963년 '이스라엘 아이히만'이란 책을 출간하면 내놓은 개념인데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가 600만 유태인 학살 당시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서 유태인을 수용소에 이송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2차 대전에 끝나자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망명 갔는데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체포되었고 이듬해에 재판이 열렸는데 아이히만은 이미지가 아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고 그는 재판장에서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 한 사람도 직접 죽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무죄다라고 진술했다. 재일조선족 학자가 지난해에 한국에서 '한국인이 모르는 조선족 정체성'이란칼럼을 발표했는데 "조선족간부들은 악의 평범성을 실천하는 모범생들이라고 말했고 조선족 지식인을 얼치기 중국인이라고 공격했는데 같은 조선족으로서 굳이 이렇게 까지 비하하고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이 분의 주장은 너무 항당하다.(김정룡) https://youtu.be/EMQe8mETHps?si=Wg92x3QheDi0zNKA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4-01-13
  • 조선족 어떻게 빨갱이 되었나
    빨갱이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려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왜 조선족이 빨갱이 되었고 또 조선족이 빨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한국사람들이 이해하고 나아가서 조선족이 빨갱이기 때문에 차별하고 거부했던 편견을 버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함께 노력하기를 원하는 입장에서 본 강의를 진행하였음. https://youtu.be/tw2fMhYOBjw?si=p8r6AiD6IsG5RkLx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25
  • 홍범도는 한국인인가?
    앞 부분은 방송 프로그램 설명입니다. 뒤 부분은 제1편 입니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홍범도에 대한 이념 논쟁이 심각합니다. 우선 이념논쟁은 시대역행이라는 저의 관점을 피력하고 한국법무부 정책에 따르면 홍범도는 무연고동포일 뿐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저의 이 관점에 대해 찬반양론이 뜨거울 거라 믿습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21
  • 중국인은 왜 만만디인가
    한중일 세 민족성격 비교 한 민족의 성격형성에 있어서 자연지리환경이 결정적인 역할한다. 중국은 황하중하류 지역은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빠 물을 끓여 마시고 차를 타 마시는 과정이 긴데서 만만디 성격이 형성되었다. 한반도는 산이 많고 물이 좋아 과정이 생략된 민족이고 멋의 민족이다. 일본은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절약적이고 섬세하고 정교한 민족이며 대신 츠츠우라우라 고인물 환경에서 정을 나누지 않는 고립된 민족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19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아들아, 다음 생애에는 너의 집 개로 태어나고 싶구나…
    [동포투데이] 중국에서 한 독거노인이 아들에게 보내려고 쓴 편지가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열점화제로 되고 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들에게 : 아들아, 어제도 나 홀로 시장에 나가 장사꾼들이 팔다 버린 남새 찌꺼기들을 골라 빈 주머니에 주워담다가 그만 부주의로 한 아가씨의 예쁜 옷을 어지럽히게 되었는데 그 아가씨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면서 욕설을 퍼붓더구나. “빌어먹을 노인네, 제몸도 제대로 못 이기면서 개처럼 쏘다니며 뭘 자꾸 주워대?” 그 말을 듣고 난 정말 기뻤단다. 기쁜 나머지 바보처럼 웃었단다. 나를 개에 비유하다니? 내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개에 비유하다니? 이게 그래 기쁜 일이 아니고 뭐겠니?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의 개가 되고 싶단다. 난 정말 너의 집 개가 되고 싶은 것이 가장 큰 소원이란다. 불면 날까, 쥐면 터질까 애지중지 키운 네가 마침내 좋은 일자리를 찾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예쁜 색시까지 얻어 자가용차 두대씩이나 굴리고 다니며 남 부럽잖게 잘 살고있을 때 이 에미는 아직도 비 내리면 크고 작은 대야로 빗물을 받아내며 지붕이 무너져내릴까봐 조마조마하게 살고 있단다. 한번은 내가 된 감기에 걸려 약방에 가려다가 빗물을 담은 대야에 걸려 넘어진 일이 있었단다. 그래서 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너의 아들 그러니까 내 손자가 받더구나. 그래서 사연을 말하고 너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어. 그리고 이제나 저제나 너에게서 전화 한 통만 오기를 학수고대 기다렸단다. 그러다가 너에게서 불쑥 전화가 오긴 왔는데 넌 일이 바빠서 올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요즘 전화비용이 엄청 올랐어요”하고 전화를 끊더구나. 난 네가 사업에 실패해 빚을 지고있는게 아닌가 해서 걱정했단다. 다행히 그날은 이웃집 젊은이가 사다준 감기약을 먹고 고비를 넘겼단다. 그리고 한 달후에 너도 보고 싶고 손자도 보고 싶어 너의 집으로 갔지. 내가 너의 집에 들어섰을 때 마침 너의 안해 그러니까 나의 며느리가 자가용차에서 내리더니 두손에 무슨 먹거리를 가득 들고 오더구나. 그게 뭔가 물어보니 “우리 아기 옷과 맘마”라고 하더구나. 나는 네가 어느새 둘째를 보았는가 해서 깜짝 놀랐지. 그런데 며느리는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막 매달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보고 “우리 아기 잘 있었어? 오늘 너의 옷과 맘마를 사느라고 이 엄마가 1000원이나 썼단다”라고 하지 않겠니?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 놀라서 멍해졌단다. 지금 나는 천식에 관절염까지 발작했고 당뇨병까지 심해졌단다. 병원에 가고싶어도 돈이 없어 못가고 약 살 돈도 없어서 정통편(진통제)만 먹는단다. 아들아, 난 언제면 너의 집 그 개가 먹는 맘마를 마음껏 배불리 얻어먹을수 있을가? 밤이면 온몸이 쑤시는듯 아파서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새벽녘에야 어슴프레 잠이 들군 한단다.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개가 되고싶구나. 손자의 말을 들어보니 너의 집에서는 애완견인지 뭔지 하는 개에게 고급옷을 사입히고 미용원에 데리고가서 미용도 시킨다더구나. 또 개가 감기에 걸렸다고 동물병원에 공주님처럼 모시고가서 1,000위안씩 하는 고급주사를 맞혔다더구나. 나도 너의 집 개가 되여 병원에 가서 주사 한대 맞고싶구나. 그러면 몸이 아프지 않겠는지? 넌 저녁마다 곱게 단장한 개를 데리고 매일 공원이며 거리에 산책을 간다더구나. 개는 앞에서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너와 며느리는 뒤에서 “귀염둥이야 먼데 가지마"라고 하며 개를 공주님처럼 떠받든다더구나. 그야말로 아름다운 한폭의 풍경이더구나. 아들아, 언제면 넌 늙으 엄마를 모시고 강변유보도라도 함께 산책할수 있겠니? 난 팔다리마저 매우 불편하여 이제는 자체로 움직이기조차 어렵구나. 절강성의 여자애들이 강아지를 불 붙여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너는 너무 격분하여 “짐승보다도 못한 년들, 그런 년들은 온 집안을 몰살시켜야 한다. 개도 생명이다. 어떤때에는 개가 사람보다 훨씬 낫다”고 떠들어댔다더구나. 아들아, 네 말이 조금도 틀리질 않는구나. 내 생각에도 개 한 마리 기르는쪽이 아글타글 무정한 아들을 기르기보다 훨씬 나아보이는구나. 못난 어미에게도 이제는 한가지 소망이 있단다. 다음 생애에 다시 태여나면 꼭 너의 집의 개로 태어나고 싶구나. 하느님께 빌어볼까, 부처님께 빌어볼까? 두손 모아 빌고 또 빌어본다. 아들아, 난 정말 너의 집 개가 너무 부럽구나!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6-06-29
  • “연변에 공룡이 살았다오”
    ● 박정일 지난 2014년 9월 5일 수석애호가 박성철씨가 조양천진 구수하에서 수석을 채집하다 강바닥에서 길이 45cm, 너비가 28cm인 동물의 척추뼈 모양의 암석을 발견했다. 박성철씨는 몇년간 소장해온 암석에 대한 궁금증을 풀고자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 놀라운 답변을 얻었다. 전문가들은 약 1억 3000만 년 전 중생대 공룡 척주뼈 화석이라며 연길 분지가 공룡서식지이였을 수가 있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 이로써 공룡화석이 발견된 연길시 조양천진 중평 제5촌민 소조 서남쪽 구수하원지 북쪽은 전문가들의 주목지로 되었다. 현지답사를 마친 연길시 국토국은 이 정황을 상급부문에 보고하고 언론에 알리면서 연변은 공룡의 서식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연변은 공룡화석에 대한 입담이 그칠새 없이 퍼져가고 있었다. 가정에서, 술상에서, 위챗에서도 공룡화석 발견은 화제로 넘쳤다. “연변에 공룡이 살았다오” 하는 말들이 파다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2016년도 5월 30일 모아산, 민속촌 등 부근에서 공룡화석을 의심케 하는 암석을 발견했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면서 공룡화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증폭됐다. 실제로 2016년 4월 11일 연길에 사는 라동도씨도 연길모아산 민속촌부근에서 11개에 달하는 척추뼈 모양의 암석 조각을 발견하였다. 나동도씨가 암석사진을 필자에게 보내면서 검측부문을 문의하길래 연변지질 6소를 찾아가 보라고 권한적도 있다. 2016년 21일, 성당위상무위원이며 부성장, 주당위서기인 장엄이 주정무중심에서 리계강을 단장으로 한국가 고생물 화석 전문가위원회 고찰단 일행을 회견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리계강이다. 그럼 리계강은 누구인가? 국가 고생물화석 전문가위원회 고찰단단장 리계강의 공식 직무는 국가국토자원부 지질환경사 환경처 처장이며 "중국대지"서적 출판의 주필로 고생물학계에 정평난 인물이다. 리계강은 흑룡강성 공룡서식지 발견 당시에도 국가고생물 화석 전문가위원회 고찰단 단장의 신분으로 나타나는 등 국내 공룡서식지 발견 현지에는 꼭 리계강 처장이 있었다. 우리는 고찰단 단장 리계강의 말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주당위 서기가 리계강을 접견할 당시 리계강은 “연길에서 공룡 화석군이 발견된 것으로 하여 고찰단은 아주 흥분되고 사기가 진작되였다. 전문가들의 초보적인 탐사에 의하면 연길공룡화석군은 지리적 위치 우세가 있고 농축량이 많으며 규모가크고 종류가 많은 등 특점을 갖고 있는데 이제보다 심도 있게 관련 전문가들을 조직하여 표본감정 등 작업을 함으로써 국가 화석 자원을 잘 보호하고 공룡화석을 더욱 잘 개발, 이용하며 연변의 경제, 사회발전을 추진하는데 기여하련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가 말하는 “공룡화석규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리계강은 규모에 대한 자신의 의견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계강은“연길분지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을 보면 5가지 종류의 공룡화석으로 분석돼 전문가들의 흥분을 자아낸다면서 이곳의 공룡화석의 분포와 규모는대단한바 이를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서안의 "변마용"유적 관광지보다도 더욱 각광받는 관광지로 거듭날 것이다”고 밝혔다. 공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는 대단하지만 우리 연변의 사람들은 공룡화석에 대한 일은 우리 지역과 무관한 일인줄만 생각해왔다. 그런데 우리 연변에 공룡이 살았었다니... 공룡이 연변땅에서 화석으로 굳어진 시기와 리유가 전문가들에 의해 차차 밝혀지겠지만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해야 할일은 공룡화석을 잘 보존하면서 어떻게 우리 연변을 공룡문화의 산실로 만들고 어떻게 경제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연변의 공룡문화를 찾아 연변을 찾는 사람들이 혀를 두를 정도로 이 고장을 잘 포장해야 한다. 이런 포장은 치밀하고 방대한 규모의 투자를 소요하기에 재력이 부족한 연변은 공룡문화의 내함을 살려 국가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 일을 잘할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일에 경험이 있는 기획자들이라는 지적이다. 지금 연변은 공룡화석의 존재로 유명기획가들이 필요한 시기에 처해있다. 기획여하에 의해 연변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발전을 이룩할 수도 있다. 지금은 문화가 경제를 육성하는 시대이다. 생태문화를 강조하는 연변의 발전전략이 공룡화석의 발견으로 우리 연변의 생태이미지는 공룡의 존재역사와 더불어 연변의 생태문화 이미지는 한층 격상하게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이젠 연변하면 "아, 공룡이 살던 곳" 이라고 연변을 바라보게 되였다. 연변에서 이보다 더큰 역사적인 발견은 없었다. 공룡화석의 발견은 우리를 놀라게 했고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늘이 연변에 내린 귀중한선물로 받아들일 정도로 연변에서 발견된 공룡화석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신기하고 귀중한 선물을 어떻게 값지고 알차게 포장하는가에 있다. 우리가 만약 중생대에 공룡이 살았다는 우리 연변지역을 재평가하고 상응한 기획을 실행한다면 우리 연변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맞이하게 될 수도있다는 분석이다. 역사가 있는곳에 독특한 문화가 있고 독특한 문화가 있는곳에 상상을 초월할수 있는 경제잠재력이 존재하는 법이다. 중국서안의 “병마용”이 이를 실증하고 있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6-06-23
  • 받고도 기분 나쁜 김민수의 형식사과
    지난 17일 윤빛가람 선수가 김민수한테서 받은 욕설 메세지를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중국과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일파만파 확장된 이번 논란의 메세지 중에는 중국인과 한민족인 조선족 그리고 윤빛가람 선수와 연변FC를 인격적으로 비방하고 모독하는 심한 욕설이 담겨 있어 중국 그리고 재중동포 사회의 공분을 자아냈다. 메시지가 공개된 후 연변FC와 윤빛가람 선수를 모독한데 대해 분노한 중국 네티즌들과는 달리 한국 네티즌들 중에는 "김민수 측의 설명도 들어봐야 한다. 일방적인 얘기만 듣고 판단하면 마녀사냥의 피해자만 생겨날 뿐"이라는 조심스러운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당당하면 어디 한번 설명해보라"는 네티즌들의 요구와는 달리 김민수는 자신의 인스타 계정을 탈퇴하고 잠적하는 등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서 끝까지 김민수를 믿어주는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며 드디어 저녁에 배우 김민수가 공개사과문을 발표하자 그동안 김민수를 두둔하던 여론은 언제 그랬냐 싶게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소속사를 통해 발표한 김민수의 사과문은 아래와 같다. 사과는 받았으나 기분이 개운하지 못하다. 사건이 어딘가 허겁지겁 덮혀진 느낌이고 여전히 찝찝한 기분이 든다. 그 원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분석해 보았다. 첫째: 김민수의 사과문에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다. (1) "불미스러운 일" 이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급히 넘어갔다는 것은 이 일에 대해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짜증이 섞인 표현이다. (2) 사과문 전체가 "죄송합니다","반성합니다", "잘못했습니다" 등과 같은 형식적인 멘트로 꽉 차 있으며 뭘 어떻게 해서 죄송하다고 설명하려는 성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3)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모든 분들께 사과드린다"라는 표현을 써서 자신이 깍듯이 사과했어야 하는 그 많고 많은 상대를 한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김민수가 정말 진심으로 사과 하고 싶었다면 윤빛가람 선수를 포함한 연변FC 선수들, 연변FC 팬들, 조선족들, 전체 중국인들, 김민수 때문에 실망한 한국인들, 이런 순서대로 하나씩 언급하면서 사과를 해야만 했다. "본의 아니게 상처를 드린 모든 분들께"라는 표현은 자신이 사과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지도 않고 그냥 한마디속에 전부 포함시켜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속셈이다. (4) 절대 김민수 본인이 쓴 사과문이 아니다. 사과문을 읽어보면 상황은 겪은 본인이 아니라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제3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상황을 전제로 해서 대신 사과문을 써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어제의 상황을 알고 있는 아무 사람이라도 저정도의 겉핥기식의 사과문을 충분히 쓸 수 있다. (5) 사과문이 너무 짧다. 김민수본인이 썼다고 한들 저렇게 짤막하게 썼다는 것은 속으로 내키지 않아서 억지로 썼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저딴식으로 사과할거면 차라리 안하기만 못하다. 둘째: 사건자체가 황당하다. 83년생인 김민수는 오랫동안 무명배우로 활동하다가 2014년 '압구정 백야'라는 일일극을 통해 겨우 존재감을 알린 조연급 배우이다. 톱스타도 아니고 명품조연도 아니고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에서나 가끔 나오는 아직 조연급도 벗어나지 못한 신인배우이다. 윤빛가람은 10대시절 기성용,이청용과 함께 한국축구를 이끌 3대유망주로 뽑힌적이 있고 축구매니아들속에서는 '축구천재'라고 불리울만큼 인정받는 축구선수이다. 얼마전 한국국가팀을 대표하여 체코전에 출전한 윤빛가람은 1골1도움을 기록하면서 완전히 한국의 국보급선수로 부상했다. 연예계에서 이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신인배우가 한국의 국가대표선수에게 "좆만한 새끼야... 병신아..." 이런 표현을 썼다는건 다시 생각해봐도 황당하기 그지 없다. 명색이 배우인만큼 외모에서는 상대보다 낫을지 몰라도 외모빼면 인지도, 경제수입, 사회지위 등 모든면에서 윤빛가람한테 밀리는 김민수가 대체 뭘 믿고 그랬을까? 셋째: 한국네티즌들에 고마운 한편 실망도 크다. 사과문에 조선족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는 김민수가 조선족들이 아무리 분노했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할지 모르겠다. 김민수 욕설의 최대 피해자는 조선족이지만 한류스타도 아니고 중국에 진출할 일도 딱히 없는 김민수를 상대로 조선족이 뭘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을 아마 김민수 측에서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김민수보다 더 실망적인 것은 한국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조선족의 입장에서는 김민수라는 사람이 얼마나 인성이 나쁘고 욕을 잘하는 사람이냐를 따지기보다는 조선족을 겨냥한 김민수의 발언내용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김민수의 인성에 실망했다','표현이 지나쳤다'등 김민수의 표현방법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은 많았지만 조선족과 중국인 비하 발언 내용에 대해 꾸짖고 비판하는 한국네티즌은 한명도 없었다. 다시말하면 한국인들은 자기네 나라 연예인의 수준이 어떠냐에만 관심있을 뿐, 조선족을 비하한 발언이 굳이 그렇게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무리 상대가 조선족이라도 욕을 그 정도로 심하게 한건 잘못됐다'라는 한 한국네티즌의 말을 다른 각도로 풀이하자면 '그 정도로 심한 욕만 아니라면 조선족한테 해도 된다'라는 말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대부분 한국인의 마인드가 이런 수준인데 과연 중국과 조선족을 비하하는 현상이 사라질 수 있을까? 김민수를 함께 꾸짖어준건 고마운 일이지만 진정으로 그가 뭘 잘못했는지 가르쳐주지 않는 한국네티즌들에게 그만큼 실망도 크다. (제공 : 위쳇 zamzali2016) 주: 본문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오피니언
    2016-06-19
  • “중국축구 ‘메이시(没戏)’”론, 또 재연되는가?
    ■ 채영춘 (연변일보) “중국축구는 미래가 없다! (中国足球没戏了!)” 지난 19년 전 갑A 연맹전 중경전위환도와의 관건적인 원정경기에서 또 한 번 심판의 “검은 휘슬” 희생양이 된 연변오동, 억울함과 원통함을 참을 수 없어 중앙 TV 방송국 기자에게 내뱉은 고종훈의 이 신랄한 저주는 중국 축구의 운명을 관심하고 우려하는 수 많은 축구 팬들 속에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그 당시 중국 부정축구에 대한 비난의 대명사로 각인되었었다. 열악한 경제여건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며 중국 프로축구 백화원의 한 떨기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유일한 소수민족 축구대표팀-연변 FC, 매껨의 경기에서 가장 정중한 대접을 받아야 했을 막둥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부정비리로 얼룩진 축구계는 금전의 유혹에 끌려 연변이 출전하는 경기마다 “검은 휘슬”을 비롯한 비정의 철퇴를 가차 없이 휘둘러 대면서 사사건건 연변을 압살하고자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축구는 미래가 없다!”는 고종훈의 저주는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터쳐낸 울화와 분노의 폭발이었다. 늘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했던 연변지역에서 대학생과 시민들로 결성된 시위 대오의 분노한 움직임에 이어 자치주 지도자가 상경하여 중국축구협회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 상소문을 올리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진 것도 바로 이때였다. 어떤 목적에서였던간에 조선족 축구팀을 천방백계로 괴롭히는 축구계의 불량한 시도가 가시화되면서 연변사람들이 드디여 축구에 대한 그제날의 천진하고 단순한 스포츠적 인식에서 깨어날수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동안 강급, 매각 등 최악의 사태가 겹치고 시장화의 잔혹한 현실과 축구계 부정비리의 혼탁한 기류에 여지없이 노출되는 이중 슬픔을 겪으면서 축구에 대한 전방위적인 이념전환 시련의 언덕을 넘어선 것 또한 연변이 어마어마한 “수험료”를 지불하고 바꿔온 값진 결과가 아닐가? 축구계 부정비리에 대한 무자비한 청산과 더불어 중국축구협회가 출범시킨 축구발전의 거창한 프로젝트가 안아올 중국축구의 굴기(崛起)에 대한 부푼 기대속에 50년만의 갑급리그 우승을 거쳐 15년만의 슈퍼리그 복귀를 일궈낸 연변축구 또한 환생의 고삐를 잡은걸가? 필자의 생각은 우려반, 기대반이다. 나무는 가만있으려는데 바람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슈퍼리그와 갑급리그 진영에 세차게 몰아치는 그 급수가 세계 넘버원 수준인 금원폭풍, 이 무시무시한 금원태풍에 대한 축구계의 찬반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금원경쟁이 단지 해외스타 영입에만 적용된다고 누가 못박을수 있을가? 금원경쟁의 목적이 기실 축구발전의 장원한 이익과 추구가 아닌 시즌 경기성적에만 집착한 각축전에 있다고 할 때 경기흐름을 주도하기 위한 물밑 금원거래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치렬한 금원경쟁의 폭풍속에서도 부정부패는 다만 축구계의 부끄럽던 어제날 역사의 “과거형”이고 “렴결청렴”만이 오늘날 축구계의 아름다운 현실의 “진행형”이라 속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뿐이다. 지금까지 슈퍼리그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행태에서 미루어보면 금원경쟁에서 워낙 상대가 될 수 없는 연변, 또다시 19년전 비극의 희생양으로 전락될 소지가 충분하다는게 필자의 소견이다. 19년전 “중국축구는 미래가 없다”는 “경전비난”의 도출팀인 연변은 19년후 “미래가 없던 중국축구”를 “미래가 있는 중국축구”로 변신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금원으로 잔뜩 부풀린 상대팀과의 격돌에서 연변만의 뛰어난 축구이념, 전술풍격, 정신투지로 다져진 비대칭전략으로 참신한 축구풍경선을 펼쳐보였고 그라운드 외곽에서는 연변의 사랑스런 축구팬들이 축구고향의 아름다운 관전응원문화의 진수를 선물하면서 중국 축구관전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데 일조하였다. 하지만 천시지리인화(天时地利人和)의 좋은 축구환경에서 공평하고 멋진 경기분위기의 도출을 학수고대했던 축구고향 연변사람들에게 넌지시 다가온 현실은 실망적이라 할 수 있었다. 올 슈퍼리그 11라운드의 경기에서 간단없이 노출된 통제불능의 “검은 휘슬” 행위가 주심의 단순한 오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천만다행이지만 광범한 축구팬들은 회의적인 시각이다. 대충 잡아도 네댓건을 웃도는 심판의 틀린 판정은 누가봐도 의도적 인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산동로능전, 중경력범전, 하북화하전, 랴오닝훙윈전 등 경기들에서 속출한 오심들은 연변에게 치명적인 것이었다. 분명한 옵사이드를 골로 인정한 하북화하전 경기후 연변의 강한 반발에 의해 중국축구협회가 심판의 판정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하고 사과함과 동시에 향후 공정한 심판을 약속했지만 연변에게 강요된 억울한 경기결과는 뒤집을 수 없는 것이었다. 사람을 쳐서 능지처참을 만들어 놓고 손해배상도 없는 사과한마디가 과연 “검은 휘슬”의 재발을 원천봉쇄할수 있을가? 아직도 어려운 경기들이 줄줄이 포진돼있는 약소군체 연변의 향후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일전에 필자는 북경에 계시는 80세 고령의 한 조선족축구팬 할머니의 통한의 전화를 받은적이 있다. 올시즌 연변의 출전경기를 빼놓지 않고 관전한 할머니는 “검은 휘슬”의 피해속에서 고전하는 연변의 억울함을 지켜보다가 참을 수 없어 필자에게 울분을 털어놓게 된 것이다. “연변팀이 왜 이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우?...서장이나 신강의 소수민족팀이 이런 수모을 당했으면 어쨌을가 늘 생각해 본다오. 왜 연변은 잠자코 있는거요?” 인터넷을 통해 한 조선족여성축구팬이 털어놓은 진지한 경기소감을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다. “부당한 대우로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잠자코만 있는다면 우리는 한낱 밟아도 꿈틀할줄 모르는 지렁이로 간주될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모아 큰힘을 만들어 ‘나쁜 운’이 또다시 쉽게 우리의 사랑하는 연변팀에 범접하지 못하게 막아서야 한다.” 연변이 19년전에 겪었던 그같은 악몽이 오늘 또다시 재연되는 것은 연변만의 비극이 아니라 중국 축구계의 불행으로 각인될 소지가 많다. 외적스타 영입에만 적용된다고 생각했던 금원경쟁이 결국 그라운드 휘슬의 공정성을 마구 휘젓는 바이러스로 확산되나?! 축구심판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이제는 그라운드의 공정한 경기를 위해서는 축구심판원마저 해외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혹과 더불어 허탈감이 증폭될 위기, 그것을 막기 위해 중국축구계는 자성과 각오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느낀다. “중국축구는 미래가 없다”의 비난이 더는 오늘날 중국 축구의 현주소로 되지 말기를 바라는 소원이 연변축구 환생의 현실속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 스포츠
    2016-06-08
  •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화권 여스타들의 하룻밤 몸값
    [동포투데이] 중국속담에 “즐거운 밤, 여성의 몸값은 천금”이라고 최근 중화권에서 여스타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화제로 되고 있다. 그녀들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해도 많은 액수가 필요하거니와 하룻밤을 동반하여 자려면 더욱 혀를 내두를 가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적지 않은 부자들은 여스타들과의 동침을 위하여 천금도 아끼지 않고 있다. 아래의 것은 최근 년 간 거부들의 돈주머니를 노리는 중화권 여스타들의 이른바 몸값이다. - 편집자 수수썬(萧淑慎): 50만 타이완달러 타이완 매체에 따르면 최근 타이베이(台北)경찰은 한차례의 매음사건을 파 헤쳤는데 뜻밖으로 많은 유명 여스타들이 사건에 말려 들었다. 이 유명 여스타들 중에는 수수쎈도 포함되었으며 그녀는 수차 마약투여사건에도 연루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성매매사건에도 그 이름을 올렸던 것이었다. 내막을 잘 아는 인사에 따르면 수수썬은 여러 차례 안면이 전혀 없는 드라마 연출 혹은 투자상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여 전반 타이완의 오락권에서 선세이션을 말아올렸다고 한다. 한편 타이완 경찰은 10여명 여스타와 모델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이들이 성교역 최저 액수는 10만 타이완 달러였다고 밝혔다. 그 와중 경찰은 자주 수씨 성을 가진 여스타를 거론,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수수썬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수이팅(萧依婷) 30만 타이완달러 2009년 타이완 매체에 따르면 일찍 저우제룬(周杰伦)의 MV에 출연한 적이 있는 신인스타 수이팅이 마약투여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는데 경찰에서 그녀는 수차 강요에 의해 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했으며 이 중 대부분은 각 계의 명류인사들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사람들은 오락권내의 혼란과 난잡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한편 그녀는 생활압력에 의해 타인의 알선으로 10여 차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였는데 제일 처음 받은 돈이 3만 타이완달러였다. 우야신(吴亚馨) 25만 타이완달러 우야신은 “리중루이(李宗瑞CD사건” 때문에 부득불 자신의 연역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리중루이와 함께 판결받았으며 점차 흐리터분한 인생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최근 그녀가 간신히 연예권에 복귀하였지만 인터넷에서는 여전히 우야신처럼 된 여스타들의 사례가 등재되면서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또한 최근 그녀는 홍콩에서 재차 모 성매매집단으로부터 강한 유혹을 받기도 했다.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한 막후보스인 C선생은 2015년 어느 한 모임에서 우야신을 만나자 주동적으로 자아소개를 하면서 그녀한테 “사업”에 대해 의논하자고 건의해 왔다. 사실 C선생은 성매매집단의 보스로서 늘 젊고도 인기가 있는 미녀스타들을 찾아 다니는 사람이었다. C선생에 따르면 선택된 여스타가 한번 “출정”해 4∼5일간 근무하면 100만 타이완달러를 벌 수 있으며 특히 만약 유람선에서 부자들과 침대에 함께 오르면 더욱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옌수밍(严淑明) 35만 타이완달러 1995년 옌수밍이 갓 오락권에 데뷔했을 때 그녀는 일개 방창녀였고 또한 유명 여스타의 공연을 돕기도 했었다. 그러다 1996년 동남아 성매매 사건에 그녀 예수밍이 휘말려 들게 되었다. 후에 그녀는 자신이 쓴 책을 통해 오락권에 데뷔한 뒤 누군가 그녀한테 안면도 모를 연출과 인기 남스타를 소개했고 옌수밍은 출세를 위해 그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였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에서 그녀는 또 연예권 내에서 전해지는 정계 혹은 상업계 거두들이 사업교제를 할 때 여스타들을 찾는 것은 일찍 보통일상으로 되었다고 까밝아 놓기도 했다. 린워이링(林韦伶) 38만 타이완달러 2010년 린워이링은 자기의 한국생활을 기록한 책을 출판, 책에서 그녀는 한 낯선 투자상과 잠자리를 함께 한 후에야 비로서 한국에서 첫 앨범을 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다. 또 한국의 대부분 남녀스타들은 모두 강요에 의해 몸뚱아리로 한국에서 연예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며, 이는 이미 한국오락업내에 잠재된 규칙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적지 않은 한국연예인들이 자살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나 역시 한국에서 늘 남과 잠자리를 함께 할 것을 강요당하곤 했다. 나의 한국생활을 보면 매일 5시간씩 무용연습을 하다보니 무릎이 닳아 모진 동통이 생기군 했으며 자주 주사를 맞아야 동통이 멈추군 했다. 또 3일만에 겨우 토스트 한쪼각을 먹은 적도 있고 장장 1년 반 동안 쌀 한알 먹어보지 못한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눈 감고 입술을 옥물고 남성들과 잠자리를 하려는 생각도 해보군 했다.” 한편 한국측 매니저회사가 그녀와 함께 합작한 영화의 장면 때문에 린워이링은 은폐된 AV 여스타로 의심받으면서 한국법원에 기소되었고 냉동실에 갇히기도 하고 연금되기도 하다가 몇 년전 친구를 통해 비행기 티켓을 사서야 겨우 타이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린쟈치(林嘉绮) 60만 타이완달러 가슴이 풍만한 타이완의 이 행운 여스타는 한 글로벌 홍보대사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자 그 명성이 대뜸 직상승하게 되었으며 그녀에 대한 뉴스는 늘 양안 보도분야를 석권하게 되었다. 특히 그녀가 가슴을 드러내 놓고 아기한테 젖꼭지를 물릴 때면 촬영사들은 그녀 가슴의 사이즈를 최대한 확대하여 린쟈치는 늘 “타이완 제1의 모델”이란 칭호를 달고 다녔다. 수챵(萧蔷): 50만 타이완달러 타이완에서 가령 수챵의 나이가 10살만 젊었다면 부호들이 초청하는 첫 상대는 절대적으로 수창이었을 정도로 한 시기 타이완 제1미녀의 칭호를 받았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도 여자 나이 40살을 넘은지라 아직 싱싱한 그대로인 린즈링(林志玲)과 비길 바가 못되며 무정한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몸값 또한 많이 하락한 상황이다. 이로 하여 일찍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싶어했던 매 타이완의 남자들은 모두 지금은 긴 탄식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다. 왠융이(袁咏仪): 50만 타이완달러 왠융이가 오락권에 조용히 데뷔하였을 때,표독스러운 성격으로 많은 동료들의 원한을 사게 하고 또한 제3자로 되어 타인의 애정을 빼앗는 “악녀”로 되게 한건 그녀를 춰올리는 보도매체들이었다. 이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사건이 폭발, 당시의 거부상인 뤄조후이(罗兆辉)가 한달에 50만 타이완달러라는 가격으로 한 여스타와 동거했다는 뉴스였으며 더욱 놀라운 것은 왠융이 그녀의 입으로 그 거부상인과 동거한 사실을 인정했다는 그것이었다. 2002년 2월, 뤄조휘는 돌연히 지나간 자신의 사생활을 매체에 폭로, 이 중에는 쑨쟈쥔(孙佳君), 왠융이, 류쟈링(刘嘉玲), 마이쟈치(麦家琪)와 Maggie 등과 함께 참여한 기타 부호들의 이름도 거론되었다. 그 뒤 일찍 뤄조후이를 숭배하던 여스타들은 모두 매우 불안해하였다. 특히 평소 그와 자주 연락하던 여스타들은 주동적으로 뤄조후이와 연락, 겉으로는 안부인사를 한다고 했지만 기실은 자기들이 침대에서 뒹굴 때 촬영한 비디오테이프 등이 뤄조후이한테 있는가 하는 것을 시탐하는 것이었다. 차이소우펀(蔡少芬): 1억 홍콩달러 홍콩에는 여스타들과 계약동거를 즐기는 몇몇 부자들이 있다. 몸값이 수억원에 달하는 류롼슝(刘銮雄) 역시 이 중의 한 사람이었다. 지난 10여년간 그는 많은 여스타들한테 부동산, 신식승용차, 보석, 골동품 등을 예물로 선사하군 했는바 그 가치가 10억 홍콩달러에 달했으며 차이소우펀은 그 여스타들 중의 일원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차이소우펀은 오락권에 데뷔한 뒤 얼마 안되어 어머니와 이모한테 이끌려 부자들과 함께 식사하고 차도 마시고 했는데 슈퍼부자 류롼슝이 바로 이 중의 한명이었으며 도박에 인이 박힌 어머니는 딸을 “돈나무”처럼 여길 때가 많았다. 예추이추이(叶翠翠): 30만 홍콩달러 홍콩의 재록신 예추이추이는 부호쟁탈전에서 조워이(赵薇)한테 패하여 몸값 10억달러에 달하는 내지의 부호상인 황유룽(黄有龙)을 빼앗겼지만 그녀는 오히려 버림받은 부자여인으로 변신하였다. 황유룽한테 버림받고 돈줄이 끊어졌지만 그녀의 생활은 여전히 부유했다. 50만 달러에 달하는 Audi 캠핑카(房车)를 소유했는가 하면 5만 달러에 달하는 맛사지 의자도 구입하였다. 알고 보니 황유룽과 작별한 후 그녀는 빠른 시일내에 내지의 다른 한 부호의 품에 안겨들었고 그 부호는 달마다 근 30만위안씩 예추이추이한테 제공했던 것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16-06-06
  • 그제 날의 고종훈과 오늘의 윤빛가람
    □ 철민 한국시간으로 5일 오후 10시,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13번 윤빛가람(중국 옌볜푸더-延边富德) 선수가 경기 26분경에 프리킥으로 선제골을 터트리면서 축구대표팀에 멋진 신고식을 함과 아울러 39분경에는 자로 잰듯한 패스로 석현준에게 추가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찍는 순간들이었다. 소속팀에 있을 때에도 윤빛가람의 활약은 눈부셨다. 특히 지난 5월 28일, 윤빛가람은 옌볜푸더의 전포를 입고 랴오닝훙윈(辽宁宏运)과의 중국축구 슈퍼리그 제11라운드에서 전반 14분경에 터트린 자신의 선제골과 각각 스티브에게 2골, 김승대에게 1골을 도우는 것으로 옌볜푸더가 랴오닝훙원은 4 대 1로 압승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현 한국 국가대표팀, 연변 FC 윤빛가람 선수 윤빛가람은 소속팀 옌볜의 중원핵심이다. 중원핵심이란 말 그대로 중원의 공방절주를 리드하는 핵심으로 즉 상대가 강하게 나오면 그 공세를 차단하면서 팀의 온당한 플레이를 조직하는가 하면 상대가 지치거나 혼란에 빠질 때면 강한 돌파 혹은 정확한 패스로 공격선을 돕기도 하고 자신이 직접 골을 넣기도 하는 역할을 하는 선수이다. 그렇다고 하면 지난 지난 대 랴오닝훙윈과의 경기에서 윤빛가람은 이 역할을 아주 출중하게 잘 해냈다. 이러고 보니 그제 날 옌볜오우둥(敖東隊)의 중원핵심 고종훈이 생각난다. 당시 고종훈은 명석한 두뇌와 넓은 시야 그리고 출중한 발기술로 옌볜의 중원을 통제하면서 공방조절을 해온 선수였다. 지난 세기 90연대 고종훈은 옌볜의 절대적 주력선수였는가 하면 중국 국가대표로도 기둥선수였으며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게임 축구종목서 중국 국가대표팀이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준우승을 할 때 마멸할 수 없는 기여를 한 선수이기도 했다. 특히 고 최은택 감독이 옌볜오우둥의 사령탑을 잡고 있던 1997년 시즌 옌볜팀의 고종훈, 졸라와 황동춘의 “황금삼각 폭격기편대”는 고종훈의 넓은 시야, 황동춘의 강한 파워 및 졸라의 영활함이 잘 조합되어 자주 화려한 경기력을 선보여 현지팬들의 열광적인 절찬을 받았으며 1998년에는 중국축구협회로부터 “미드필더 엔진(中場發動機)”란 칭호를 수여받게 되었다. 옌볜축구는 고종훈이 사라진 뒤 아주 오랫동안 그와 같은 선수가 나타나지 않아 고전했다. 선후로 현춘호, 박성과 지충국이 중원담당을 해보았지만 이상적이 되지 못했다. 명석한 두뇌, 넓은 시야와 패스의 정확도 그리고 거친 몸싸움 등 방면에서 보면 늘 1∼2가지가 부족했다. ▲ 전 연변 FC 미드필터, 중국 국가대표팀 선수 고종훈 그러던 옌볜축구가 올들어 한국용병 윤빛가람을 영입하면서 탈바꿈했다. 그는 매 경기마다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상대방의 공격을 유효있게 차단하면서 팀의 공격을 조직하는가 하면 그 자신도 이미 3골을 기록하여 미드필더의 핵심 겸 “킬러”로서의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제11라운드 대 랴오닝훙윈과의 경기 14분경에는 상대의 수비 몇 명 사이를 뚫고 들어가면서 선제골을 작열, 중국의 유명 스포츠 권위신문 시나스포츠는 이를 “메시식의 현란한 득점 순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자신의 득점 외 이 날 윤빛가람은 팀 동료들인 스티브와 김승대한테 적시적으로 패스해주어 각각 2골과 1골씩 기록할 수 있도록 도왔다. 축구팀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는 선수위치가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위치가 있다면 미드필더 라인에서의 공방조직 위치가 가장 중요한 걸로 알고 있다. 골을 넣거나 효과적으로 수비하는 것 등 고리에서 미더필더의 작용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윤빛가람의 출중한 기량- 이는 지난 5월 28일에만 우연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는 지난 5일 한국국가팀의 대 체코 경기에서 재차 입증되었다. 오늘날의 윤빛가람을 보면서 그제 날의 고종훈을 머릿속에 떠올리노라니 묘한 기분이 든다.
    • 스포츠
    2016-06-06
  • 축구한류와 한민족
    ● 철민 지난 5월 29일, 한국인 이장수 신임축구감독이 올 시즌 이래 1승도 올리지 못하던 중국축구 슈퍼리그(1부리그) 창춘야타이(長春亞太)를 이끌고 시자쫭융창(石家庄永昌)을 1 대 0으로 제압, 2연승을 기록하면서 재차 중국에서의 축구한류를 일궈냈다. 중국에서 축구한류를 몰아온 것은 이장수 감독이 제1임자가 아니다. 1997년 한국 한양대 교수 고 최은택 감독이 해마다 강등위기를 겪군 하던 옌볜오우둥(延邊熬東)을 거느리고 당시의 갑A리그의 4강에 진출하는 것으로 중국 축구계를 놀래웠고, 그 이듬해인 1998년 김정남, 박종환, 이장수, 차범근 등 한국축구인들이 대거 중국축구계에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 중국에서 축구한류로 가장 성공한 이는 그래도 이장수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98년 당시 해마다 갑A리그에서 강등후보로 손꼽히던 충칭룽싱(重慶隆鑫)을 이끌고 중국진출 당해에 반전에 성공했고 2년만인 2000년에는 갑A리그와 축구협회컵에서 동시에 우승하는 쌍관왕을 실현했으며 2000년 중국 갑급리그의 “최우수감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 뒤 10 여 년 간 선후로 칭다오이중(靑島颐中), 베이징궈안(北京國安), 광저우헝다(廣州恒大) 등 팀을 이끌고 수차 우승, 준우승 등 기적을 일궈낸 이장수였다. 그 뒤, 지난 해 전 한국국가축구대표팀 코치었던 박태하가 갑급팀인 옌볜창바이산(延邊長白山)을 인솔하여 일거에 슈퍼리그에 진출하여 재차 “축구한류”의 돌풍을 말아올렸다. 전 22경기의 불패기록을 창조했고 30경기에서 2경기만을 패하였다. 그리고 15년 만에 옌볜축구가 1부 리그인 슈퍼권에 복귀하게 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홍명보, 장외룡, 이장수 등이 중국축구 슈퍼리그에 대거 입지를 굳힐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축구인뿐만 아니라 기타 스포츠분야에서 한류를 일궈낸 스타들도 많다. 예하면 2000년 밴큐버동계올림픽 여자싱글부문 챔피언인 김연아, 2016 리듬체조 아시아선수권대회 챔피언인 손연재 등이다. 이 외에도 한류가 중국대륙과 세계에 주는 영향은 여러 방면에 거쳐 자못 컸다고 할 수 있다. 의류와 화장품, 전자 및 IT 산업을 비롯한 경제 분야의 한류와 장동건, 이민호와 김수현 그리고 송중기와 송혜교 등이 일으키는 연예한류 등은 모두 정도부동하게 우리 한민족의 우수성을 중국과 세계 만방에 알린 것으로 알고 있다. 반면에 한민족한테는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사업을 밀고 나가는데는 불처럼 뜨거우나 뒤마무리를 하는데는 냉정치 못하다는 점이다. 즉 추진력으로 돈은 잘 벌어들이나 그 돈을 유용하게 잘 쓰지 못하다는 평가다. 우리 한민족은 충동과 정감에 쉽게 빠져 들어간다. 충동과 정감에 쉽게 빠진다는 것은 많은 우점과 더불어 폐단도 많이 낳는다. 한민족을 놓고 보면 충동과 정감에 강하게 빠지는 분야가 많다. 성미는 강하고 정에 약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가 본다. 올들어 중국 축구 슈퍼리그에 진출한 4명의 한국의 감독들인 박태하, 홍명보, 장외룡 및 이장수- 이들이 중국 대륙의 방방곡곡에서 강한 돌풍을 일으킴과 동시에 향 후 축구를 비롯한 많은 분야의 한류가 밀물처럼 중국 대륙에 상륙할 수 있도록 토대를 잘 마련하기를 바란다. 한민족은 총명하고도 슬기로우며 다정다감하고도 재간이 많은 민족이다. 몇 가지 폐단만 극복하면 유대민족이나 게르만민족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 스포츠
    2016-06-06
  • [연변 FC] 향후 행보가 더욱 기대
    ■ 김창권(연변대학 체육학원 체육학 박사) 기대는 했지만 예상을 뛰어넘었다. “제로톱 전술”, “압박축구”, “패싱축구”의 진가로 골은 시원스레 터졌다. 쏟아진 “골세레”는 경기장을 찾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번 홈장전 대승으로 연변부덕은 “생존경쟁”에 가쁜히 성공하면서 “슈퍼리그 잔류”라는 지상의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되었다. 그 뿐만아니라 연변은 짙은 색채에 이기는 법까지 터득하게 되여 너무나 기쁘다. 위기의 순간에 홈장전 1승도 값진 것이지만 그보다 더 값진 것은 자신만의 색갈에 이기는 법을 터득한 점이 아닌가 싶다. 경기과정에 연변은 시작 10분간은 상대방의 거센 공격에 밀려 한번의 슛도 성사시키지 못했으나 11분경 오영춘의 중거리 슛과 12분에 있었던 “중원 사령관” 윤빛가람의 현란한 개인기에 의한 득점으로 분위기는 점차 아군쪽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결과 15분도 채 안된 시점에 추가골도 성사시켰다. 비록 아군은 상대방의 매서운 역습으로 경기 17분과 43분 그리고 55분에 3번의 실점위기가 있었으나 그때마다 “거미손” 지문일의 선방으로 운이 좋게 실점을 모면했다. 이번 홈장전 대승을 통해 연변은 팀색갈이 짙어지고 있으며 점차 이기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왜냐하면 “제로톱 전술”은 물론 “압박축구”, “패싱축구”의 진가가 서서히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연변은 실력이나 경기 운영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바로셀로나와 비교할 수 는 없지만 이번 경기 에서 상당부분 바로셀로나의 경기 장면을 방불케 해 너무나 고무적이었다. 바로셀로나가 자주 사용하는 전술이 바로 “제로톱 전술”이다. 이번 경기에서 연변도 “제로톱 전술”로 최전방에서의 압박은 물론 패싱축구로 상대방의 뒤공간을 제대로 노린데서 다득점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연변의 “중원 사령관” 윤빛가람(메시), 원톱 김승대(수아레스), 미드필더 스티브(네이마르)의 조합은 바로셀로나의 MSN(메시 수아레스 네이마르) 조합을 롤모델로 한 “YKT” 조합이 아닌가 싶다. 이번 경기에서 연변의 “제로톱 전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선수들의 경기에 대한 강한 집중력은 물론 승리에 대한 갈망 특히 윤빛가람의 현란한 개인기, 원활한 공수조율 능력, 허를 찌르는 스루패스가 적시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야말로 한국 국가대표팀 선수다왔다. 이번 경기에서 연변은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나 2% 부족한 점도 있었다. 상대방의 고공공격과 크로스 공격이 들어올 때 최종 수비와 중원의 간격유지가 순간적으로 제대로 되지 않았고 수비라인에서의 몇번의 패스미스로 공을 빼앗기면 곧바로 상대에게 슛기회를 내주는 위험스러운 상황이 있었다(3분, 43분, 60분). 상대방 공격수와의 1대1 상황에 수문장 지문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경기결과가 다르게 나타났을 수도 있었다. 연변은 이번 시즌 매력적인 축구로 수많은 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들었다. 어떤 팀을 만나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축구”, “압박축구”, “패싱축구”를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따금씩 이러한 연변의 뚜렷한 색갈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자신들의 색갈을 유지하면서도 승리하는 법을 알아가고있기 때문이다. 짙은 색채에 이기는 법까지 터득한 연변 FC,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 스포츠
    2016-05-31
  • 일어서자, 연변팀!!
    ■ 최 명 광 지난 5월 22일 저녁, 연변부덕은 하북성 진황도시에서 펼쳐진 하북화하와의 중국 슈퍼리그 10라운드 경기에서 통한의 골, 아니 억울한 한 골을 내주고 눈물 먹으며 주저앉았다. 더욱 원통스러운 것은 이 골이 옵사이드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논쟁의 정점이 그 것이 어느 팀이냐라는 것이다. 만일 연변이 아니고 헝다나 상강이나 쑤닝이나 궈안이나 텐진 타이다 그리고 루넝이나…였다면 심판이 간뎅이가 배밖에 안 나온 이상 무슨 배짱에 당당히 골로 인정할수 있었겠는가. 그것은 연변이였기 때문이다. 누구도 대신해 항변해주지 않는 연변이였기 때문이 아니였겠는가! 이래서 연변은 외롭다. 내 편이 없다. 주변은 다 적이다. 연변은 중국 오지에 있는 팀이기에 중국 어느곳에 가든 잘 보살펴주고 좋게 봐주고 이길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는 우리들의 생각이다. 천만에! 이런 꿈을 깨자!! 중국의 축구무대에서 우리가 편파적 심판, 무능한 심판에게 억울함을 당한 것은 한 두번이 아니며 또 어제 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물론 심판이 신이 아닌 이상 오판을 할 수가 있다. 중국 축구무대에서 뿐만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심판들이 뛰고있는 유럽 축구무대에서도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뻔한 반칙도 못 본 것처럼 다른 일방에 불이익을 줄 때는 고의적이고 편파적인 판정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이날 경기에서 화하팀의 동학승선수가 옵사이드 상황에서 연변의 골문을 열었다. 그 당시 동학승선수 한 명이 아니라 몇 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옵사이드 상태였다. 공이 연변 선수의 신체에 맞았기 때문에 옵사이드가 아니라고 하는데 강녕선수가 공을 패스하는 그 순간에 옵사이드 선수 모두가 동작을 취했다. 경기후 "길림신문" 에서는 토론마당을 벌리고 옵사이드규칙을 설명했다. 길림신문에 따르면 옵사이드규칙은 이러하다. “진공팀 패스선수의 발이 공에 닿는 순간, 공을 받는 선수가 마지막 두번째 방어선수보다 골문과의 거리가 더욱 가깝고 동시에 공과의 거리가 골문보다 더 가까우며 또한 이 위치를 빌어 슛하거나 경기를 교란했을 경우 옵사이드로 판정된다.” 이 규칙으로부터 보면 동학승은 옵사이드가 분명하다. 진공팀 패스순간에만 옵사이드판정을 내리는데 어떤 팬들은 강녕의 슛이 연변팀 선수의 몸에 맞았기에 옵사이드에 속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 그 것은 수비선수가 의식적인 백패스(回传)를 한 것이 아니였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 공은 강녕의 발에서 시작된 것이고 동학승은 옵사이드위치에서 공을 가진 것으로 된다. 경기 후 성외 일부 매체에서는 심드렁하게 “옵사이드혐의가 있는 골”이였다고 책임감도 없이 강건너 불 보기식으로 넘어갔다. 이 것이 골이라면 연변과 산동루넝간의 경기에서 하태균이 넣은 골도 옵사이드가 아닌 확실한 골이다. 하지만 옷깃이 살짝 넘어갔다고 하여 심판은 당당하게 옵사이드로 판정했고 골은 무효로 됐다. 루넝과의 경기에서 강홍권의 반칙이 페널티킥이었다면 하남건업과의 경기때 하태균이 대방 금지구역에서 넘어진 것도 엄연한 페널티킥이다. 하지만 외로운 연변에는 이런 신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중국 축구프로리그가 개시된 이래 연변은 아마 중국 여러 구단들중에서도 심판의 피해를 가장 많이 본 팀일 것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중국 축구무대를 주름잡으면서 축구의 한시대를 풍미했던 연변오동, 오동은 자신만의 특유의 강인함으로 킬러의 본색을 보이며 강팀들을 쩔쩔매게 했다. 하지만 연변은 대방팀의 제12번째 선수-심판들에게 억울함만 당했다. 당시 상하이선화, 충칭, 베이징 궈안 등 연변이 1대1로 붙어도 상대하기 버거운 강팀과의 경기에서 심판들은 드러내놓고 편파판정을 하여 연변은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상하이와의 경기에서 연변의 황경량(黄庆良)은 자신의 가슴에 맞은 공을 페널티킥으로 판정하자 너무도 억울하여 하늘을 우러러 소리를 지르며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20년이 지났지만 그 장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연변축구의 살아있는 전설-고종훈선수는 충칭과의 경기에서 심판의 편파판정에 너무도 격분하여 이런 명언을 남겼다. "중국축구는 미래가 없다! (中国足球没戏了!)" 앞으로 믿어야 할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보다 지혜롭게 풀어나가야 한다. 연변대학 체육학원 김창권 교수는 연변축구는 실력보강, 인재양성과 함께 축구외교에도 정력을 몰부어야 한다고 설파한적 있다. 당시 축구외교란 무슨 뜻인줄 잘 몰랐었는데 이번에 이렇게 당하고보니 그 깊은 참뜻이 어렴풋이나마 알린다.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중국 축구무대에서 축구외교가 실력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니깐. 2016 중국슈퍼리그는 10라운드까지 끝났다. 아직도 20껨의 경기가 남았다. 슬픔을 딛고, 억울함을 딛고,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어서자! 연변팀 용사들이여 주눅들지 말자, 가슴을 펴자. 팬들이여. 우리 함께 연변축구를 응원하자. “승리하자, 연변!!”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6-05-26
  • 아는 사람을 멀리하라!
    ■ 허강일 재한조선족들의 소비습관이 과소비로 굳어지면서 “돈을 벌겠으면 아는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달에 200만원을 버는 경우라 해도 전기세, 물세, 집세, 용돈을 떼고 나면 60만원을 적금하기 힘든 상황이다. 게다가 결혼식, 회갑연, 아이 돐잔치까지 줄이으면서 적금은 커녕 사장으로부터 가불해 쓰는 경우가 푸술하다. 불법체류로 14년 있다가 재입국신청을 위해 청도에 돌아온 김모(길림, 64세) 여인은 “한국행에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면서 “돈 모으기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소연하였다. 10여년전 길림지구에서 김치 장사로 소문놓았던 김모여인은 남편의 타계에 충격을 받고 한국행을 선택, 막노동으로 보낸 세월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하였다. “가령 그냥 김치장사에만 전념했더라면 아마 지금쯤 큰 공장을 차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김모의 어조에는 후회가 가득 묻어있었다. 한국인과 거의 대등한 노임을 받는다고 하지만 소비는 한국인을 초과했다는 것이 지성인들의 지적이다. 한국인들은 결혼식에 가서도 1차로 끝나지만 조선족들은 2차, 3차 심지어 새벽까지 축제를 펼치기에 부조돈을 전부 먹어서 없앤다고 했다. 관혼상제에 2, 3만원 혹은 많아야 5만원하는 것이 한국인들의 부조습관이지만 조선족들은 기본으로 10만원을 들고 가는 것이 풍기다. “주말이 무서워요.” 방문취업비자가 만기가 되어 돌아온 홍모(녕안, 여)는 주말이면 촘촘이 기다리고 있는 부조가 지겨울 정도라고 하였다. “네가 쇠니까 나도 쇤다”는 식의 심태가 낳은 소비문화는 평일에 끼인 생일마저 주말로 미뤄가며 “보충잔치”를 펼치다 보니 어떤 날에는 하루에 두세집 부조하러 다녀야 할때도 있다고 했다. 한국에 체류한 시간이 길면 길수록 부조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평소 연락 없던 사람마저 부조 받을 일만 생기면 연락한다고 했다. “부조한 것만큼 돌려받는다고 하지만 아들 딸이 모두 중국에서 결혼한 저희 같은 경우는 부조 받을 일이 전혀 없잖아요. 그러나 울며겨자먹기로 갑니다. 인젠 고향사람도 사실 그렇게 반갑지 않아요.” 한국불법체류 17년차로, 17년만에 중국에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류모는 불법체류에 대한 단속이 심할때엔 돈이 모아졌으나 불법체류에 대한 단속이 느슨해지고 유동이 자유로워진후부터 돈이 모아지지 않았다고 하였다. 더불어 사는 세상, 더불어 산다는 이유로 주말마다 모여서 흥청망청 탕진하는 것은 피땀을 팔아 돈을 버는 우리의 참된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16-05-10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