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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기로 넘치는 매력가수- 최연희
    최연희란 이름은 어딘가 좀 전통적이고도 옛스러운 감이 든다. 하지만 실제상의 최연희는 아주 생기발랄하고도 매력적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가 하면 춤도 잘 추며 모두들 그녀가 한국의 이정현을 닮았다고들 한다. 춤추며 노래하는 모습을 놓고 하는 말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녀를 중국의 보얼(宝儿)이라고도 부른다.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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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06
  • 무도인 박병호, "태권도는 효와 충으로 통한다"
    [동포투데이] OO대 OO태권도장, OO대 석사 OO태권도장 등 유행을 쫒아 식상한 간판과는 달리 그 도장의 특징을 내세운 브랜드(STA)을 내건 도장을 만나게 되면 우선 긍정적인 호기심이 발동한다. 더욱이 지도자의 철학과 진심을 내걸고 수련생들을 지도한다면 어떨까? 경기도 평택시 비전동 ‘STA삼성태권도’는 그 도장의 브랜드 간판으로 내건 대표적인 도장이다. 그 박병호 관장(38)은 어딜 가든 열정관장으로 통한다. 박 관장의 이름만 대도 다들 “아아~ 태권도”하며 자연스레 아이스 브레이크가 이루어진다. 마트에 가도, 은행에 가도 이름만 대면 자연스럽게 태권도로 화제를 옮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내걸린 간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질적인 이름값이다. 박병호 관장은 “나름 태권도 지도자가 되기 위해 20가지가 넘는 다양한 직종을 넘나들며 오랜 시간 준비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당당히 나의 도장에 브랜드 이름을 걸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이름을 걸고 수련생들을 지도하다 보니 그 책임감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저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학부모들과 제 스스로 이름값을 하기 위해, 이름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행동도 교육도 나태해질 수 없었다”고 담담히 밝힌다. ‘STA삼성태권도’에서는 박 관장과 함께 세 명의 제자교범이 함께 수련을 진행 경기도대표선발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초등학교 때부터 박 관장에게서 태권도를 수련한 최찬용 교범과 김종선 교범이 각자의 전문 분야를 맡아 수련생들을 지도한다. 고등학생인 최 교범과 김 교범은 박 관장의 뒤를 이어 태권도 지도자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박병호관장’의 교육 목표는 수련생과는 ‘행복한 소통’ 학부모와는 ‘행복한 동행’에 두고 있다. 교육을 받는 수련생과는 끊임없는 관심과 신뢰를 바탕으로 많은 경험이 필요한 수련생, 자신감이 필요한 수련생, 꾸중이 필요한 수련생 등을 구별하여 각자에게 맞는 인성교육을 실시한다. 민감한 시기의 바른 인성 함양을 위해 콕콕 그에 맞는 인성교육법을 체계화해 지도하는 것이다. 그런 세심한 교육방식에 학부모들 역시 신뢰를 보낸다. 뿐만 아니라 이 모든 교육의 성과를 학부모들과 항상 카스와 밴드로 공유한다. 수련생들의 교육 성과의 공유는 자연스레 학부모들과의 ‘행복한 동행’이라는 교육목표와 연결된다. 지도진이 모든 수업을 임의로 결정하지 않는다. 지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에는 어김이 없지만, 학부모들이 원하는 교육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수련생 지도에 반영한다. 박 관장은 “학교 따로, 지도자 따로, 가정교육 따로가 아닌, 수련생의 바른 몸과 마음의 성장을 위해 지도자와 학부모가 행복한 동행을, 돈독한 유대관계를 유지한다.”고 설명한다. 박 관장은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 큰 적은 자기 자신의 입장에 안주하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정도만 해도 할 수 있는 건 다한 거야’ 하고. 내 브랜드 내건 만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또 ‘행복한 소통’이라는 목표대로 우리 아이들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도장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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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06
  • 中조선족 미사일 전문가 이현옥, 소장으로 진급
    중국의 조선족 여 미사일전문가 이현옥이 최근 중국인민해방군 소장으로 진급되어 중국군내에 조선족 장군이 1명 더 늘어나게 되었다. 8월 3일, ‘로켓보(火箭报)’에 따르면 최근 중국군 제2포병부대(미사일부대)에서는 군계급 진급의식을 거행, 탕궈칭(唐国庆), 천핑화(陈平华) 소장이 중장으로 진급하고 왕리핑(汪利平) , 비융쥔(毕永军), 줘링(卓凌) 대령이 소장으로 진급되었으며 장진청(张金成)과 이현옥 전업기술 대령이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이 중 이현옥은 조선족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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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04
  • “천사의 조합” 쌍둥이 女 가수 김홍과 김향
    한국명: 김홍, 김향 중국명: 金虹,金香 민족: 조선족 출생연월일: 1988년 6월 2일 출생지: 길림성 연길시 취미: 노래, 무용, 피아노, 관광 등 좋아하는 색깔: 흰색, 분홍색 혈액형: B 2010년 5월, 중국 윈난성 푸얼시(普洱市)에서 있은 제 6 회 중국 머장(墨江)국제쌍둥이 및 하니(哈尼) 태양절 음악콩쿠르에는 멀리 길림성 연변에서 온 한쌍의 귀엽고도 아릿다운 여쌍둥이가 나타났다. 청수한 외모, 우아한 거동과 예의 바른 자태 등은 머장의 뜨거운 날씨에 일종 신선한 느낌이 들게 했다. 이들 여쌍둥이가 바로 조선족 쌍둥이자매인 김홍과 김향이었다. 이 날 김홍과 김향 이 쌍둥이자매는 가무표현 “덕담(吉祥话)”을 선보여 관중들에게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물하였고 최종 대상을 획득하였다. 김홍과 김향 쌍둥이자매는 어릴적부터 노래 부르고 춤 추기를 즐겼다. 한편 쌍둥이자매를 둔 부모님은 이들 자매의 훌륭한 성장을 위해 막대한 대가를 바치었다. 쌍둥이딸 자매의 애호를 키워주기 위해 아버지는 5년간 한국에 나가 막일을 하면서 쌍둥이딸의 높은 학비를 보내주었으며 어머니 또한 쌍둥이자매의 곁을 지켜주면서 쌍둥이딸들한테 근검하고 노력하며 향상을 추구하는 습관을 키워주었다. 연변에서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마친 김홍과 김향 쌍둥이자매는 북경으로 진출, “천사조합”을 뭇고 수도권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2012년에는 후베이TV와 네멍구TV의 춘제야회에 출연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 뒤 이들 쌍둥이자매는 몇년간 잠시 잠자코 있다가 최근 들어 중국 타이완과 한국 인사들의 지원하에 실력이 막강한 국제화출연그룹을 구성, 절주가 빠르고도 유쾌하고 선률이 아름다우며 청춘의 율동이 넘치는 EP음반 “대활보로(大步走)”를 발매하면서 제2차 도약을 실현했다. 주요 성과 2005년 길림시에서 개최된 “절대도전” 콩쿠르에서 10강 진입 2006년 전국 12개성 “연맹가요콩쿠르”에서 준우승 2009년 6월, 중국 CCTV “싱광다도우(星光大道)”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상 2010년 중국 CCTV “그대와 약속합니다(与您相约)”에 출연 2010년 4월 15일, 영화 “12 정감(十二情感)” 주제가 열창 2010년 5월 윈난 머장 “제6회 중국 • 머장 쌍둥이절 및 하니태양절 야회”에 참가해 대상 획득, 다음해에 있을 윈난 머허 대회의 대변인으로 선정됨 2011년 8월 26일, 중국 CCTV “유쾌한 사전(开心辞典)” 프로그램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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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14
  • 베이징이 낳은 한송이 아름다운 “예술의 꽃”
    중국명: 金海心 영문명: Hannah Kim 출생년도: 1978.10.30 출생지: 중국 베이징 직업 : 가수, 사회자 혈형: B형 언어: 중,영,한,일 소속: 김해심음악레이블 조선족 가수 김해심은 1978년 베이징의 음악인 가정에서 출생, 부모는 음악교수었으며 일찍 딸 김해심에게 고전음악을 가르쳐 주었다.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음악기초를 다져온 김해심은 1998년 부모의 학생인 저명한 음악가 싼보리(三宝力)의 추천에 의해 소니레코트회사와 계약을 맺고 가수생애를 시작했다. 이 해 김해심은 저명한 대만시인 리만팅(厉曼婷)이 작사한 “조금도 안남겨(毫无保留)”와 “잠들지 않는 바다(睡不着的海)”를 불렀다. 이 중 “잠들지 않는 바다”는 1999년 10대 골든곡으로 선정되었다. 2000년 김해심은 그녀의 두번째 앨범 “그렇게도 자호감 있어(那么骄傲)”을 출판, 직접 앨범의 노래를 제작하는 사업에 참여했으며 이 중 3수의 노래는 자신이 직접 창작한 것이었다. 2002년 김해심은 중국의 유일한 대표가수로 상하이에서 펼쳐진 한류음악회에 참가햇다. 그 이듬해 김해심은 화나음반회사와 계약을 맺고 앨범 “김해심”을 제작, 이 중 김해심이 선정한 주제곡 “대안(对岸)”은 연속 2주간 중국가요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6년 김해심은 독립적인 앨범회사를 창립, 동시에 앨범 “독립일”을 제작했는데 이중 80% 이상의 작품의 작곡은 그녀가 직접한 것이었으며 이 앨범은 음악대상을 받기도 했다. 2008년 김해심은 국내사상 처음으로 있은 대형 패션오락프로 “아름다운 소가인(美丽俏佳人)”의 사회를 맡았으며 베이징올림픽을 맞으면서 “베이징은 그대를 환영한다(北京欢迎你)”를 부르기도 했다. 2009년 김해심은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을 출판, 동시에 음악드라마 “곧 사라지게 될 청춘(致我们终将逝去的青春)”에 출연, 정휘의 역을 맡았다. 2010년 김해심은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사랑은 그대와 나사이에”를 불렀다. 2013년 김해심은 김해심음악레이블 회사를 창립하고 경영주로 되었다. 김해심은 가수일뿐만 아니라 창작일군이며 또한 사회자기도 한 다면수이다. 거기에 중국어와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를 정통하고 있으며 중국의 7대 방언중의 하나인 광동어를 특히 잘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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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07
  • 미소가 아름다운 민요가수- 변영화
    한국명: 변영화 중국명: 卞英花 출생연월일: 1983년 7월 3일 민족: 중국 조선족 학력: 대학(연변대학 예술학원) 직업: 가수 소속: 중앙민족가무단 주요 성과 2003년 제2회 중화민요콩쿠르 우수상 2004년 CCTV 서부민요콩쿠르 생태 금상 2006년 청년가수 콩쿠르 원생태 은상 우리민족의 전통민요 “아리랑”이 아릿다운 조선족 신세대 여가수의 독특한 목소리에 실려 전 세계에 울려 퍼질 때, 익숙한 이름이 우리 눈앞에 선히 떠오를 것이다. 그가 바로 미소가 아름다운 중국중앙민족가무단의 민요가수 변영화, 그녀는 자신한테 주어진 매 하나의 기회를 빛내면서 10여년간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우리 민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변영화가 걸어온 성장의 길을 보면 부모의 각고한 노력과 갈라 놓을 수 없다. 일찍 변영화가 어린 시절, 딸애한테서 예술적 재능을 발견한 부모는 딸애한테 정규적인 예술교육을 시키기 위해 변영화가 8살 나던 해에 연길시에서 10여평방미터가 되는 세집을 맡고 전문가 선생을 찾았고 임시일을 하면서 딸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부모의 사랑과 관심에 감동된 변영화는 꼭 자기의 노력과 성과로 부모한테 보답하리라 결심, 12살에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 소학반에 입학, 고심참담하게 노력한 결과 순리롭게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하면서 자신의 기나긴 예술생애에 발을 들여 놓았다. 이어 변영화는 행운스럽게도 연변대학 예술학원 민족성악 교연실 부교수였던 강신자를 스승으로 모시게 되었다. 당시 부분적 교원들이 변영화의 목소리를 듣고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자 강신자 부교수는 “내가 이 학생을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이 학생의 목소리에 대해 개발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란 우선 다른 사람의 목소리보다 달리 개성이 있어야 하고 또한 앞으로 크게 발전할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그 때로부터 강신자 부교수는 변영화한테 독특한 조선족풍격의 가창법을 주입, 음역에서의 한계를 벗어나게 했으며 독특한 남도민요의 풍격에서의 둘도 없는 가수로 자라게 하였다. 강신자 부교수의 정성어린 지도하에서 변영화의 가창수준은 놀라운 제고와 비약을 가져왔다. ▲민요가수 변영화 변영화는 피타는 노력으로 2000년부터 선후로 연변민족전통음악민요대회 소년조 금상, 전업조 금상, 2002년 8월, 제1기 전국 조선족성악콩쿠르 민족창법 특별상, 9월에는 중국국가민족위원회와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에서 조직한 중국조선족가수콩쿠르에서 민족창법 1등상을 받아안았다. 변영화는 또 2006년 7월 CCTV에서 주최한 CCTV 전국청년가수 콩쿠루에서 원생태조 민요 은상을 수상했다. 당시 평심위원들은 우리 민족복장을 입고 노래를 부른 변영화를 두고 "한국드라마에서 금방이라도 내려온듯한 변영화가수의 ‘아리랑’은 관람객과 평심위원들의 눈과 귀를 번쩍 트이게 하였다."고 절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을 졸업한 후 변영화는 중국 중앙민족가무단에 입문, 가요계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 국내외 무대에서 관중을 흡인했는가 하면 각종 콩쿠르에서도 묵직한 상들을 받아안기도 했다. 지난 2014년 1월에는 SBS '스타킹'에 출연해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으로 '새타령'과 '아리랑', 조수미의 '나 가거든' 등의 무대를 꾸며 MC들과 게스트들을 전율케 했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변영화는 현재 중앙민족가무단 국내외 순회공연으로 분주히 보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저장예술직업학원(浙江艺术职业学院) 캠퍼스에서 열린 축제의 공연무대에서 익숙한 우리민요 “아리랑”“새타령”을 불러 관중들을 열광시켰는가 하면 또 중국대륙을 휩쓴 한국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주제가 “My Destiny”를 불러 관중들의 공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 사람들
    2015-06-30
  • 몸매•인물•목소리 그 모두가 매력인 가수 - 김미아
    편집자의 말: 중국조선족은 근로용감하고 끈질기며 또 총명하고도 지혜롭다. 쪽박을 차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척박하고도 거친 땅에 보습날을 대기 시작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리말, 우리글 그리고 우리의 문화를 지켜왔으며 애초에는 그 거개가 농민의 후손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의 당정분야, 과학분야 군부대분야, 문화•체육•교육 및 기타의 경제분야를 비롯해 중국의 모든 분야에 분포되어 있다. 이 중 유명한 것은 대부분 우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변FC, 연변가무단 등이 전형적이라 할 수 있다. 동포투데이는 오늘부터 시리즈 형식으로 중국 대륙무대에서 활약하는 신세대 조선족 가수들을 소개하게 된다. 몸매•인물•목소리 그 모두가 매력인 가수-김미아 한국명: 김미아 중국명: 진메이얼(金美儿) 외국명: (M.KING / MAYER) 출생: 1984년 3월 27일 학력: 中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표연학부 졸업 성좌: 양좌 혈형: O형 신앙: 불교 김미아는 2006년 1월, “환락의 중국행(欢乐中国行)”의 “멈추지 않는 환락(欢乐播不停)” 춘제 특별무대에서 “돌고 도는 행복(转动幸福)”을 열창해 일약 스타행열에 들었다. 이어 김미아는 2008년 1월, 중국 관영 CCTV가 주최한 스타탄생 프로그램인‘싱광다다오(星光大道)’에서 ‘아리랑’을 열창해 13억 대륙을 열광시키며 무려 3000여명의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 획득. 심사 위원들의 근래 보기드문 인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5월에는 한국에서 자신의 첫 음반 “위대한 사랑”을 출판했다. 이어 2010 제 14 회 중국 전국청년가수 대상콩쿠르 통속가요 경연에서 우승, 총결산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듬해 6월 13일, 김미아는 한국 “세계 신 7대 자연기적 평선” 추천위의 초청으로 한국에 가서 “제주- 세계 신 7대 자연기적 평선활동”에 참가, 중국지역 형상대사로 위촉받았다. 당시 김미아의 외국명은 M.KING / MAYER이었고 별명은 흰돼지었다. 2011년 김미아는 콘서트 “일찍 있었던 사랑(曾经的我)”을 대중들한테 선물했으며 그 이듬해에는 제 30 회 중국 CCTV 음력설야회에서 가요 “겨울의 홰불(冬天里一把火)”을 불러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984년 3월 27일 생인 김미아는 일찍 5살 때부터 한대의 피아노를 갖고 음악의 꿈을 키웠으며 2000년에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입학했으며 졸업한 2005년 7월 북경백첩문화예술유한회사와 계약을 맺고 가수생애를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김미아는 중국 국내는 물론 자주 한국으로 드나들면서 수많은 가요를 열창, 특히 2008년 제29회 북경장애인올림픽 폐막식에서 “멀지 않은 꿈(不远的梦想)”을 열창했고 한국의 사회자 강호동, 가수 인순이 등과 같은 무대에 오르는 행운을 가지기도 했다. 최근년간 김미아의 활동이 어쩐지 즘즘해진듯 싶다. 예술분야의 일군들한테 탐문해도 그렇고 인터넷을 검색해 봐도 점점 궁금해지기만 하다. 하지만 “호랑이가 움츠리고 있는 건 더 멀리 뛰기 위한 것이고 바다가 지나치게 고요한 건 폭풍우가 다가 올 징조”라고 요즘 김미아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그가 새로운 “열풍”을 몰고 올 그 무엇인가를 “잉태”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 마지 않는다.
    • 사람들
    2015-06-22
  • 중국 가요계에 또 한명의 조선족가수 탄생?
    [동포투데이] 5월 28일 저녁, 안휘위성(安徽卫视) 농민노래자랑 리얼리티쇼 “중국농민가요대회(中国农民歌会)” 첫 회가 방송을 탔다. 북부 구역의 동북, 내몽골 등 지역에서 온 선수들 중 연변 화룡시 팔가자촌에서 온 조선족 박혜자(朴慧子)가 아담한 외모임에도 불구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왕봉의 “바람처럼 자유롭게(像风一样自由)”를 불러 관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박혜자의 뛰어난 가창력에 채국경(蔡国庆), 텅거얼(腾格尔), 봉황전설(凤凰传奇)등 맨토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텅거얼은 박혜자씨를 “작은 대포”와 같은 목소리를 갖고있다고 칭찬했다. 박혜자씨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졸업생이다. 2012년 음악교육전업을 졸업하고 예술양성학원에서 일년간 피아노를 가르쳤고 후에는 연변을 떠나 외지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최근에 집안사정때문에 연변에 돌아왔다가 지인의 소개로 이 프로에 참가하게 되었다.
    • 사람들
    2015-06-02
  • 김순옥 화백, 휴머니즘과 자연주의 감성을 화폭에 담아 세계 일주
    [동포투데이] 휴머니즘과 자연주의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행복을 표현해온 김순옥 화백은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파라과이를 중심으로 중남미 교류는 물론 미국,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전역으로 활동영역을 확대하면서 문화외교관으로 인정받아왔다. 김순옥 화백은 한국문화를 널리 알린다는 사명감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외 유명장소에서 김 화백의 작품 소장 김 화백의 작품은 해외의 국립미술관, 박물관 및 주요기관과 공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국내에도 서울시립미술관, 전주역사박물관, 국회, 청남대, 경희대, 서울대병원 등 주요장소에 소장되어 있다, 그중에 외교부에서 소장하여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인터뷰를 한 배경으로도 유명한 그의 대표적인 작품 소나무(700호)는 청렴하고 강직한 공무원의 굳건한 의지를 표상한 것이다. 유연성 있게 상대와 협상하면서도 원칙 있게 국익을 추구하는 외교관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이 그림 외에도 맥(脈 120호)은 썩거나 찢어지지 않는 전통소재인 닥나무를 활용, 자연주의 작가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휴머니즘 작가로 발전해 가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경희대에 소장되어 있는 이과수폭포(2000호)와 금강산(2000호)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을 웅장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를 받아왔다. ◇재료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작품 활동 김순옥 화백은 오래전에 수년간 몰두하다 손목 인대손상으로 접어뒀던 입체작업을 최근에 다시 시작하였다. 재료의 벽을 뛰어넘어 평면과 입체작품을 동시에 작업하는 김 화백의 작품에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게 스며 있다.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하다 보면 재료의 활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상을 참신한 소재를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키는데 열정을 다하고 있는 김 화백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기본적인 베이스 아래 색의 조화 및 배려·존중을 통하여 작품의 완성미를 더하는데 노력해 오고 있다. ◇남미의 정열을 담은 대표작품 '이과수 폭포', 그림은 나의 운명이자 열정의 원천 평화의료재단 이사로 재직 당시 작품판매수익금을 바탕으로 스와질란드에 자선병원을 설립, 의료혜택을 받지 못한 환자들을 위한 무상 치료 환경을 마련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 특히 의미 깊은 활동이 되었다. 또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전시회 개최와 지난 2005년 대한민국 독도전 등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기억 중 하나라고. 화가들이 그림 그리는데 몰입하다 보면 자칫 주위에 소홀해지고 고립될 수도 있지만 김화백은 쉼 없이 움직이며 늘 주변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그림은 저에게 있어 운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일주하며 해외전시는 계속할 것 김 화백은 동양인 최초로 파라과이 대통령궁에서 초대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며 중남미 가장 큰 전시장소인 아르헨티나 국립미술관 초대개인전, 뉴욕 유엔본부와 워싱턴 국립박물관 등에서의 초대개인전을 통해 세계에 널리 그의 작품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에서 전시하며 한국문화를 알리겠다는 김 화백은 한류의 품격을 높이며 세계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순옥 화백은 Norte대학교서 예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경향신문사 갤러리관장과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현재 서울시 미술심의를 맡고 있으며 해외교류작가회 대표로서 세계 일주를 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 사람들
    2015-06-02
  • [재중동포 작가 김혁③]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 고양에 앞장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윤동주시인은 천고절창의 주옥같은 시들을 창작하여 우리한테 훌륭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윤동주의 삶과 그 작품은 시공간과 여러 계층을 초월하여 현대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작가 김혁은 우리 민족의 저명한 시인 윤동주에 심취되고 윤동주에 관련된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두고 “생래적(生来, 天生的)”에 가깝다 할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중국 연변 용정에서 태어나고 또 학창시절을 포함하여 스무살까지의 많은 시간을 용정에서 보냈던 김혁,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후에 조선족 최초로 윤동주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를 창작하고 윤동주 관련 많은 일들을 하게 된다. 그는 용정에서 어려서 신안소학교(지금의 북안소학교)를 다녔는데 그 전신이 바로 윤동주와 문익환이 다녔던 광명학교였다. 그후 용정중학에서 초중과 고중을 마쳤는데 용정중학교는 바로 윤동주가 다녔던 은진, 대성, 동흥 등 학교가 합병한 학교로 지금 교정에 윤동주의 시비가 우뚝 서있다. 이렇게 윤동주와 ‘지연’, ‘학연’을 가지고 있었다. 그후 기자로 뛰면서 조선족 최초의 윤동주 학술회, 시비 건립, 윤동주 관련 학술저서 출간, 관령 활동들을 빠침없이 취재하였고 윤동주를 중국에 맨 처음 알린 오오무라 마스오, 윤동주의 시를 일본에 번역한 아이자와 가쿠, 윤동주의 여동생 윤혜원 녀사 등 관련 친지, 연구가들도 지난 세기90년대에 이미 만나 많은 교류를 했다. 시인에 대한 경모의 마음으로 오래전에 벌써 윤동주 관련 카페도 개설했다. 한국과 중국에서 윤동주 관련 논문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딴 된 사람만도 50명이 넘고 윤동주 시인에 대한 연구론문도 수백편이 나왔다. 평전이나 위인전기물도 여러 권 나왔다. 이렇게 논픽션 작품은 많이 나왔는데 그에 비해 픽션작품 즉 소설과 같은 창작물은 전무했다. 너무나 알려져 있는 시인이었지만 그 높은 위상 때문이었던지 윤동주 시인의 생애를 작품화한 사례가 극히 적었다. 소설로는 1992년 경, 한국에서 방송드라마의 시나리오를 개작하여 한부가 나왔다. 그후 구효서와 이정명에 의해 나왔지만 작가 김혁이 장편 “시인 윤동주”를 2010년에 발표한 후의 일이다. 그리고 윤동주의 숨결은 현재에도 용정의 곳곳에서 느껴지는데 이 곳에서의 윤동주에 대한 추모와 연구작업은 미비한 상태. 그같은 공백들은 시인 윤종주의 고향에서 태어나고 윤동주가 다녔던 학교에서 공부했던 작가 김혁에게 그 어떤 사명감과 창작의 충동을 주었다. 작가 김혁은 본격적으로 윤동주를 소설화 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연변작가협회에는 “계약작가”라는 창작제도가 있다. 작가들이 창작기획서(스토리와 창작취지)를 작성해 제출하면 연변의 유명 대학교수들과 평론가, 원로작가들로 구성된 평심단이 제출된 많은 기획서들 중에서 가능성 있는 작품을 엄선해내 1년간 창작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김혁은 윤동주에 대한 스토리만으로 선정되었다. 그는 조선족 작가들중 유일하게 두 차례나 이같은 계약작가에 선정되었다. 이렇게 장편소설 “시인 윤동주”가 2010년 조선족의 권위문학지 “연변문학”에 1년간 연재되었다. 한편, 지난해 9월에는 윤동주의 고향 용정에서 사단법인 “용정·윤동주연구회”를 발족시켰다. “용정·윤동주연구회”는 조선족의 작가, 학자, 교직원들로 무어졌으며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을 선양하는데 그 취지를 두고 있다. “윤동주 시인의 고고한 삶과 정신은 내 삶속에 깊게 들어와 있다”고 작가 김혁은 말한다. 윤동주의 민족애와 문학정신 고양에 앞장서 용정윤동주연구회 회장으로서의 김혁은 우리 민족의 저명한 시인 윤동주가 선양하려 했던 민족애와 문학정신을 널리 계승, 발양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용정윤동주연구회를 설립한 후 짧디짧은 시간내에 많은 일들을 해왔다. 2014년 12월 20일, 명동촌 윤동주 생가에서 윤동주 탄신 97돐 기념행사를 가졌고 2015년 2월 16일에는 윤동주 옥사 70주기를 기념하여 “항일 시인 윤동주 70주기 기념행사”를 가졌다. 또 용정·윤동주연구회의 편찬으로 문화총서 “룡두레”를 출간하기도 했다. 용정·윤동주연구회의 년중행사의 중요한 일환으로 해마다 정기적으로 펴내게 될 이 문화총서 “룡두레”는 문단의 각 장르에서 뛰어난 실적을 올린 작가들과 대학 교수들로 편집진을 뭇고 그 첫 기를 윤동주 추모특집으로 꾸몄다. 향후 지속적으로 출간하게 될 “룡두레” 총서는 윤동주를 연구하고 그 민족정신과 문학정신을 잇는 문헌들과 회원들의 다채로운 창작품들들을 게재할 뿐더러 용정의 역사, 룡정이 배출한 인걸들을 조명하고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 공동체의 이슈와 현안에 대해 진맥하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비전에 대한 제안 등의 알쭌한 내용들을 여러 코너를 개설해 다양한 문체로 꾸며나갈 계획이다. 올 4월 4일, 청명을 맞아 장춘에서 꾸리는 조선족의 순수문학지 “장백산” 잡지사와 손잡고 윤동주의 묘소를 새롭게 단장했다. 이어 윤동주연구회 사무실을 윤동주의 자취가 서린 용정의 자택 자리에 오픈, 오픈식을 가지고 본격적인 사무에 착수했다. 뿐만 아리라 용정·윤동주연구회에서 주관, 운영하는 사이트가 현재 개설중에 있다. 이 사이트는 윤동주에 대한 연구, 선양과 더불어 그 의미를 넓혀 용정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조명하고 오늘의 이슈와 뉴스를 시효성 있게 다루며 중국조선족공동체의 비전을 알리는 뉴스성, 전문성 종합사이트로 거듭나려 한다. 이제 용정·윤동주연구회 성원들로 구성된 역사답사팀이 본격적으로 역사답사에 나선다. 윤동주의 발자취가 어린 명동, 나아가 조선족역사의 “박물관” 격인 용정 유적지에 대한 계획적인 답사다. 보름에 한번 꼴로 정규적인 답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김혁은 밝혔다. 또 조선족문학의 순문학지인 “도라지” 잡지사, 문화종합지 “문화시대” 등 잡지들과 손잡고 용정·윤동주연구회 회원 특집을 마련했다. 금후에도 여러 간행물과 손잡고 회원들의 우수한 문학작품들을 그에 걸맞는 우수한 지면에 소개할 타산도 해본다. 현재 연구회 회장 김혁이 창작한 조선족 최초의 “윤동주평전”이 대형문학지 “장백산”에 연재중이다.올 하반년에는 윤동주를 위한 인물연구서 “윤동주 코드”를 출간하게 된다. 이 외에도 해당 부문과 손잡고 윤동주 백일장, 윤동주 시랑송대회 등 유익한 행사들을 대거 펼쳐 나갈 예정이다. 에필로그 현재 김혁은 30년 가까이 근무하며 지내왔던 자치주 수부 연길시를 떠나 고향 용정으로 돌아왔다. 윤동주 시인의 용정자택 자리에 앉힌 연구회 사무실에서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 경쟁과 명리만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수십년 내내 문인들의 “문인상경”의 풍토로 얼룩진 문단에서 탈출해 참된 작가의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고 싶었다. 또 중국조선족 역사와 문화의 발원지인 용정에서 조선족의 역사를 직접 밟아보면서 관련 연구물과 작품 쓰기를 창작성향으로 삼고 십여년간 매일 꼬박 십여시간 가까이 창작과 독서를 견지하고 있다. “종당에는 중국조선족의 생성에 대한 호흡이 긴 소설, 이주와 정착, 개척과 항일, 건국과 ‘문혁’과 개혁, 출국과 이산의 수백년의 역사를 대하소설로 창작하는 것으로 만년을 장식하고 싶다”. “진정성을 가지고 영혼의 울림이 있는 큰 글을 쓰고 싶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 아닌 항상심(恒常心) 하나 가슴에 품고 길을 가려 한다. 그리하여 나중에 ‘민족작가’라는 타이틀로 남고 싶다. 단지 유행을 쫓는 소설가나 칼럼니스트가 아닌 역사에 천착하고 민족을 위해 한 목청 내였던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그의 창작에 대한 지론이다. 김혁 그의 30여년의 작가생애, 그간 그는 실로 우리들 앞에, 우리의 역사 앞에 너무나 많은 작품들을 펼쳐보였고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해왔다. 또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쉼모르고 달리고 있다. 재중동포 작가 김혁, 조선족 문단의 갈피에 우렷이 남을 중후한 큰 작가의 앞날을 기대해 본다.
    • 사람들
    2015-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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