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9-22(화)

사람들
Home >  사람들

실시간뉴스

실시간 사람들 기사

  • 평생을 함께 살자 … 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류풍습관절염으로 생활을 자립할수 없는 안해 유형숙씨 (60세)에 대한 남편 리희태(63세)의 헌신적인 사랑은 우리 주위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적셔주고 원근 사람들에게 수없는 감동을 주고 있다. ▲ 풍습관절염으로 생활을 자립할수 없는 유형숙씨 (60세)와 남편 리희태씨(63세) 길림성 연변자치주 왕청진 쟈피구촌에 살고있는 리희태의 안해 유형숙은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서 즐기는 신혼생활은 깨알이 쏟아지고 행복이 넘쳤을 것이다. 두분도 역시 더이상 바랄것 없이 살아갈 수 있었던 것만 같았다고 한다. 세상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그런 생활을 2년 밖에 하지 못했다.유형숙은 왕청현병원의 간호사로 사업하다 1986년 1월에 류풍습관절염으로 하신 신경이 마비되면서 근육이 굳어져 버려 대소변은 물론 모든것을 남편의 손에 의지해야 했다. 공비로 치료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자비로 내는 치료비가 엄청나 모아 두었던 저금이 거덜이 나고 빚이 산더미처럼 늘어만 갔다. 하지만 이런 역경속에서도 안해를 살리려는 책임감과 안해의 병이 꼭 나으리라는 남편의 신심은 꺾을 수 없었다. 안해의 병을 하루빨리 치료하기 위해 리희태는 안해를 업고 현병원은 물론 심양,안산,길림, 돈화,한국월툰병원 등 용하다는 병원은 다 찾아 다니며 병을 보였다.가는 곳마다 리희태는 쪽걸상에 앉아 새우잠을 자면서 병시중을 들었다. 욕창이 생길가봐 안해가 아침마다 일어나기 바쁘게 더운물로 안해를 목욕시켰고 반시간에 한번씩 돌려 눕혔으며 허리에 베개를 받쳐 주었다. 안해의 두 다리 근육을 풀어 감각을 되찾게 하기 위해 남편은 매일같이 안마를 해 주었다. 의무일군이였던 안해의 병이 조금이라도 치유될 수 있고 죽는 날까지 완치가 불가능하다 해도 안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다면 남편은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하였으며 어떤 방법이든지 불사할 각오였다. 안해의 병치료에 돈푼이 될만한 가정기물까지 다 팔아도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지만 힘든 내색없이 늘 밝게 웃는 남편이였다. 이렇게 안해의 병치료에 집 세채와 가정기물을 몽땅 밀어 넣고 세방살이를 하게 되자 1990년에 리희태는 처제의 도움으로 안해를 장모님과 나어린 딸애에게 맡겨놓고 단연히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안해의 병을 치료하려는 일념으로 힘 드는줄 모르고 억척스레 일했다. 낮에는 일을 하느라 생각할 새가 없었지만 저녁에 자리에 누우면 안해가 걱정되고 딸애가 보고 싶어 눈물은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이렇게 6년동안 돈을 벌고 고향에 돌아온 리희태는 안해의 병시중을 들면서 뇌출혈로 쓰러진 장모를 자기집에 모셔다 여섯달 동안이나 대소변을 받아내면서 효성을 다해 장모가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이 미소를 짓고 하늘 나라로 가게 하고 처가집 조카 둘을 자기집에 데려다 6년동안 공부시키며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했다. 안해가 병상에 누운지 옹근 31년이 되던 2015년 1월의 어느날 점심때였다.밑반찬을 만들어 밥상을 갖추려고 하는데 자기 눈을 못 믿을 정도로 뜻밖에 안해가 조심조심 벽을 짚고 위생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기적같은 이 광경을 본 남편은 너무도 좋아 환성을 올렸다. “31년동안 내등에 업혀 다니던 당신이 드디여 자기절로 위생실에 가는걸 보게 되였소. 여보, 용기를 내줘서 정말 고맙소. 이제 내가 조금만 더 시중들면 당신이 일어날수도 있을거요.” 남들앞에서 종래로 눈물을 보이지 않던 남편이였지만 이 순간만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비록 병석에 누워있는 안해였지만 남편에게는 큰 힘이 되여주었다. “결혼할 때 우리는 검은머리 백발이 되도록 사랑하자고 언약을 맺었고 둘 중에 누군가 불구가 되더라고 서로를 버리지 말고 마지막까지 돌보면서 함께 살자고 약속했습니다. 안해가 앉은뱅이라고 버릴수는 없었습니다. 부부로 맺어진 이상 안해는 내 몸이고 내살과 같습니다. 죽는날까지 내가 안해의 손발이 되여서 지켜주고 싶습니다. 내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 그는 안해의 간병을 하면서도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 조금도 소홀하지 않았다.아버지가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면 행여나 딸에게 상처가 될가봐 리희태는 힘들 때면 딸이 잠든 후에 밖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딸 추연이도 돈을 벌어 어머니 병치료에 보태 주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해 장춘외국어어학원 독일어 학과를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현재는 상해독일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아버지를 여러모로 돕고 있다. 경제생활이 급속히 발전하는 오늘날 외국나들이,연해도시 진출로 결혼도 쉽게 하고 이혼도 식은죽 먹기로 하면서 가족의 의미와 부부의 소중한 인연을 미처 깨닫지도 못하는 일부 사람들에게 이 부부의 사랑이 메아리처럼 울려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사람들
    2016-09-02
  • [인터뷰] 재일조선족여성회 전정선 회장을 만나다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일본에서 활약하는 한 재일조선족여성단체가 있다. 바로 2008년2월 10일에 설립되어 지난해 일반사단법인 등록까지 마친 재일조선족여성회(이사장 전정선)이다. 일본사회를 보다 알고 조선족들 사이의 교류를 넓히며 재일조선족 여성들의 생활을 보다 편리하게 하는데 취지를 두고, 주체가 되어 일본사회에서의 취직·사업·육아·친목 등에서의 고민과 난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단체이다. ‘작은 샘물이 바다를 이루듯이 우리의 소중한 참여가 힘이 됩니다.’ 2008년 이래 해마다 여성들의 지혜와 힘을 모아 다양한 활동을 조직하고 있다. 예하면 설립된 당해에 어린이들에게는 우리말 배우기, 동화 들려주기, 종이접기와 같은 재능을 가르쳐 주고 어머니들에게는 김치 교실, 무용 교실, 꽂꽂이 교실, 등 활동을 조직했고, 2009년에는 온천여행, 민족무용 배우기, 초청강사 강연회, 실내스포츠 교실, 일본전통복장 교실, 배구활동, 요리 교실, 어린이 우리말, 중국어 교실 등 활동을, 2010년에는 어린이 우리말 교실을 정기적으로 운영했다. 2014년 11월 29일에는 일본국제홍백노래콩쿠르 "제4회 국제홍백가요제"에 참가하여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영어 4가지 언어로 노래를 불러 장관상을 받아 일본사회에서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지난해 10월 18일 오후, 도쿄올림픽기념 국제청소년센터에서 열린 일본 국제 홍백가요제에서 이 여성회 샘물어린이학교 조선족어린이들은 중국노래 ‘말리화’(茉莉花)와 한국노래 ‘참 좋은 말’을 불러 최우수 장관상까지 받았다. 또한 2015년 2월 1일에는 다년간 키워 온 어린이 우리말 교실을 샘물어린이학교로 개명하여 개학식을 가졌다. 도쿄주변에서 살고 있는 재일조선족을 대상으로 한국어·중국어 배워주기, 동요/동화 들려주기 종이접기, 그림그리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작년 8월달에 제1회 재일조선족운동회에서 여성회에서는 문화문예공연무대를 주최했으며 샘물한글학교 어린이합창, 여성들의 민족무용 부채춤이 주목받았다. 어린이들은 단체노력상도 받았다. 재일조선족여성회는 다년간 재일조선족각단체들과의 융합과 협력, 협조로 조선족사회의 일원으로 많은 역활을 해왔다. 작년에 2개반급으로부터 금년부터는 소학2학년반, 소학1학년반, 유아반등 세개 반급으로 한국어 중국어, 음악, 영어등 기타 교실을그림 그리기·색종이 접기·카드놀이·음악교실 등을 운영하면서 일본에서 출생한 조선족어린이들에게 전통문화 민족언어 교육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4~12살 되는 130여명의 어린이들을 상대로 13여명의 교직원들이 봉사하고 있다. 전 회장은 중국 길림성 연길시 출신으로 일찍 연길시 정부와 상해에서 사업하다가 199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한동안 세계한인무역협회 치바지회 사무국장으로 몸담고 있으면서 일본사회에서의 적응과 취직, 가정육아 등에 관련해 재일조선족 여성들과 상담을 하면서 함께 이러한 난제를 풀어갈 수 있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으며 결국 조선족 여성의 일본 내 정착· 취업·출산·육아 등을 서로 돕자는 목적으로 이 여성회를 만들었다. 또한 일본에는 10만 여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지만 조선족에 대해 전혀 요해가 없는 많은 일본인들은 조선족을 북한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조선족을 일본사회에 알리려는 결심을 가져 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이 앞으로 재일조선족들에게 어떠한 긍정적 영향과 도움을 주게 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하는 물음에 전 회장은 “동포애와 민족공동체 의식 함량, 우리 글과 문화의 전파, 조선족들 간의 교류와 일본사회에서의 적응· 취직·사업·육아·친목 등에서 고민과 난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확신있게 대답했다. ▲선생님과 함께 종이 접기를 하고 있는 샘물한글학교 어린이들 한편 올해에는 자녀교육강좌, 도자기체험, 여성사업가 초청세미나, 다성식품에서 민족음식체험 요리교실, 재일조선족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농활체험교실, 재일조선족들과 함께하는 샘물한글학교 운동회, 동경한국교육원 선생님들을 모시고 전통예의 문화교육 한복입기 체험교실, 동경에서 열리는 홍백가요전 출연, 어린이들 작품발표회 등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전 회장, 동시에 이러 저러한 애로사항도 많다고 토로했다.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활동장소를 마련하는 것으로, 정부 그리고 단체와 지성인 그리고 기업인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전 회장은 "자녀가 현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자신이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또한 중국인인지 그 정체성 혼돈을 겪는 때가 많아요. 우리말이나 중국어를 배우지 못해 중국에서 조부모가 오셔도 의사소통도 안되고 낯설어하는 경우를 종종 보군 하기도 하구요. 중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일본의 대학·대학원으로 유학 온 경우가 대부분인 재일조선족은 고학력 지식인이 많지만 3개 언어와 문화를 아는 이런 균형 감각을 자녀가 이어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이어 "재작년부터 지난해 일본 내 외국인을 대상으로 도쿄에서 열린 국제홍백노래자랑에 여성회 후원으로 조선족어린이 합창단이 등단해 최우수상인 관광청 장관상, 파퍼먼스상을 받는 쾌거를 올린 적이 있다"면서 "이 어린이들이 한국어·중국어·일본어·영어 등 유일하게 4개 언어로 노래해 큰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수상 후 인사말을 일본말로 밖에 표현하지 못해 부끄러웠다"고 그 고충을 털어놓았다. 전 회장은 "부모와 달리 일본 사회에 동화돼 가는 자녀를 위해서는 고국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 중요하다"며 "재외동포재단 등 고국(한국)의 기관에서 시행하는 재외동포 차세대 모국연수에 재일조선족 2세도 참여하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 회장은 “여성회는 재일조선족 여성들이 헌신적인 봉사정신으로 만들어 진 것이므로 계속 초심을 잃지 않고 여성회와 샘물어린이학교를 위해 헌신해 주기 바란다”고 강조하면서 “여성회가 재일조선족 여성들의 친목도모와 생활, 그리고 현재의 어린이들이 우리 글과 문화 교육으로 글로벌 인재로 육성하는데 한 몫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 회장은 또 “다년간 많은 지지와 도움을 주신 지성인 기업인들과 트팀 없이 참모 역할을 해 온 현 JTC일본어학교장 (50년 경력대학 교수), 아세아경제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 조선족연구학회 고문이며 전임회장, 東アジア経済経営学会 회장직을 맡고 있는 남편에게도 진심으로 되는 감사 드린다”덧 붙였다.
    • 사람들
    2016-08-06
  • [인터뷰] 오계근 전 홍콩한국토요학교장
    [동포투데이] 자녀를 둔 재외동포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이 아닐까 싶다. 자녀들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제대로 정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체성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재외동포 2세의 한국어(국어)와 한국의 역사(국사) 교육을 담당하는 홍콩한국토요학교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지난 20일 홍콩한국국제학교 강당에서 있었던 졸업식에서 “꿈이 있는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더 큰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가길 바란다.”고 학생들을 향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하던 오계근 전 홍콩한국토요학교장, 지난 2년간 토요학교를 운영해온 그를 만나 토요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 2015학년도 한국토요학교 졸업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오계근 전 토요학교장 ― 임기를 마친 소감을 말씀해 주신다면. ▲ 2년 동안 토요학교장으로 봉사한 시간은 제 인생에 있어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한인 2세들을 교육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봉사하려 노력했고 큰 보람을 갖고 짐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특히, 메르스(MERS) 사태 당시 학부모와 학생들의 감염 예방을 위해 한 달간 교사들과 학교 정문에서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감열 및 소독 활동을 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 토요학교장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 2년 전 토요학교장을 맡아 달라는 제안을 받고 잠시 고민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이지만 과연 그 임무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당시 주위에서 토요학교장은 명예직이고 장차 한인회의 리더가 되기 위해 거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고, 어느 분은 매주 출근할 필요는 없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나가서 결재만 하면 된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일부 교사들도 토요학교장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현장에서 수고하는 교사들을 대변하기보다는 개인적 명예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실제로 운영을 해 보니 토요학교장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습니다. 40 여 명의 교사와 600여 명 학생의 관리자, 학부모와 교사 간 문제 발생 시 조정자의 역할, 한국 국제학교 관계자들과의 협조체제 및 학교 시설물의 관리자 그리고 KIS의 이사 및 운영위원 등 할 일이 많은 자리입니다. 따라서 매주 토요일 오전 동안 정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재임 시 중점적으로 추진했던 일을 말씀해 주신다면. ▲ 교사 풀(Pool)제를 도입한 것을 첫 번째로 꼽고 싶습니다. 토요학교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먼저 교사 채용이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한인회 홈페이지, 한인 소식지 등에 상시 모집공고를 내서 지원자를 모집하고 1차 서류심사, 2차 면접 및 시강을 통해 평가 후 교사로 선발했습니다. 특히, 시강 결과를 선발 기준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은 교육의 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절차를 거쳐 선발된 교사들을 결원이 생길 시 우선 배정하고 대기 교사들은 정교사의 결강 시 대강을 통해 경험을 쌓게 하고 결원 시 채용하는 제도입니다. 두 번째, 교사의 고용계약서 작성 시기를 조정했습니다. 관례상 매년 3월에 작성하던 고용계약서를 1월 말부터 2월 중순(졸업식 전)까지 마무리해 교사들이 새 학년도 수업준비에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3월부터 1년간 근무할 수 있는 교사들을 대상으로 계약을 진행했으며, 채용 확정된 신임 교사의 경우 학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하고, 학기 시작 한 달 전에 교재 연구 및 수업 준비를 차질 없이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 번째, 출석률 향상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의 경우 재학 중인 학교 행사나 기타 특별활동 참가 등으로 인해 결석하는 학생이 많은 편입니다. 대응책으로 졸업 기준에 출석률(중등부의 경우 1/3 이상 출석)을 반영시켜 출석에 대한 의무감을 심어줬습니다. 결석하는 학생들이 많으면 열심히 다니는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출석률 관리 강화에 특별히 신경을 쎴습니다. 부모님의 관심이 학생의 출석률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토요학교 ‘운영규칙안’ 설계를 마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관리되어 오던 제반 규정을 종합해 ‘홍콩 한국 토요학교 운영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토요학교의 기본 골격과 교육방침 그리고 교사들 근무지침 및 학생들의 상벌 규정까지 담고 있습니다. 임기 내에 마무리하려 했으나 정관 개정 문제, 한인회장 선거 등 한인회 제반 업무에 밀려 마무리를 짓지 못해 못내 아쉽습니다. 후임 교장이 조속한 시일 내에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 문제점이나 개선할 점이 있다면. ▲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봅니다. 토요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출석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교사와 학교 관계자들이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재임 시 교사들에게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가 아닌 인성을 가르치는 스승이 되라고 누차 강조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성을 갖추기 위해 모국어 교육과 함께 한국 역사 교육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국제학교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의 경우 세계사와 함께 한국 역사를 가르치면 더욱 이해를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교사들 간의 화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래 근무한 교사들의 경험과 새로 들어오는 교사들의 참신함이 잘 어우러져야 토요학교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 기득권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열린 마음과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해야 학생들도 토요학교에 애정이 생길 것이고, 교사들이 끈끈한 팀워크로 일할 때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쳐 면학 분위기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 한인회 및 한인 사회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 홍콩한국토요학교는 1960년 개설 이래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한글학교가 되었습니다. 이제 작은 의미의 학원이 아닌 학교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학교로서 독립성을 갖고 운영될 수 있도록 관심은 가져 주시되 지나친 간섭은 지양했으면 합니다. 토요학교 교사는 1주일에 한 번 수업하지만 내실 있는 지도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2세 교육을 담당한다는 사명감으로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하시는 교사들이 보람을 갖고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셨으면 합니다. 49대 한인회 회장단에서도 교사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와 지원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사람들
    2016-03-07
  • 중국 뷰티프로그램 , MC가 한국인이라고?
    [동포투데이] 한중 2개국어MC로 한국과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임정은이 최근 ‘K-뷰티’ 전도사로 활약 중이다. 중국 상하이 SiTV에서 방송하는 신개념 뷰티 버라이어티 <시상가인(時尙佳人)>의 메인MC로 활동하고 있는 것. <시상가인>은 중국과 아시아 각국에 K-뷰티를 비롯한 알짜배기 한류 정보를 전하는 신개념 뷰티 프로그램으로, 한류스타를 직접 담당했던 뷰티 전문가들이 평소 쉽게 알 수 없었던 K-뷰티의 비법을 소개해 큰 호평을 받고 있다. <시상가인>은 상하이 SiTV, 베이징TV와 옌볜TV 등 중국 방송 뿐만아니라 태국 TVK, 미얀마 TV 등에도 방송되고 있어, ‘K-뷰티’를 아시아 전역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상가인>을 진행하는 임정은은 현재 한중 2개국어MC로 한국과 중국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시상가인’을 비롯해서, 중국 최대 인터넷기업 텐센트와 한국 칸타라글로벌이 개최하는 생방송 한류콘서트 <텐센트케이팝라이브(Tencent K-POP LIve)>, 한류스타 인터뷰 프로그램인 <한위쑤디 인터뷰>, KTV의 여행정보 프로그램 <핫플레이스 코리아> 등을 진행하고 있고, tbs eFM의 중국어 프로그램 <서울생활가유참>에 매주 한국인 게스트로 출연해 입담을 뽐내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빅뱅, 소녀시대, 에이핑크, 포미닛, 씨스타, 비스트 등의 스타 아이돌과 한 무대에서 선 임정은은 2016년에도 자신을 설레게 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나고 싶다면서, 올해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중 통역학과 2학년을 시작하는만큼, 진행과 통역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사람들
    2016-02-17
  • 홍진기 이사장의 창조적 사회가치 사랑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홍진기 회장은 지난8월 (사)경기도사회적경제협회 이사장에 취임했다. 사회적기업의 규모와 영향력을 좀 더 키워가기 위한 선택이다. (사)경기도사회적경제협회는 21개 지부로 운영되며 150개 회원사가 있다. 홍진기 회장은 회원가입에 대해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경기도사회적경제협회는 설립된 지 2년 남짓 되었지만 이미 경기도 사회적기업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려면 “기업들이 협회에 회원사가 되면 혜택도 있고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다는 점 등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 내 대기업들도 사회공헌기금 등을 활용해 사회적기업의 제품을 구입해서 명절상품 등으로 지급한다면 지역기업들과도 상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가치를 끌어내는 윈윈의 창조적 활동이라고 그는 믿는다. 더불어 함께 만들어 가는 공공의 이익 홍진기 회장은 “경기도 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대표로 구성된 경기도사회적경제협의회는 사회적기업의 협력과 상생을 도모하며 무엇보다 사회적기업들의 이윤창출을 위한 실질적인 역할에 힘쓰는 단체이기에 지역 내 기업들도 사회적기업과의 상생을 위해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라 전했다. 이미 (사)경기도사회적경제협회는 4개 사단 군부대와 MOU를 체결하였고, 지난12월2일에는 경희대학교 테크노 경영대학원 사회적경제경영전공개설 협약을 체결하였다. 군부대 기지 내 매점에 사회적경제 관련기업의 제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하였고 명문 전문경영대학원에 사회적경제기업 CEO및 사회적경제 활동가를 위하여 사회적경제 경영전공과정을 만들기로 체결한 것이다. 이 계획 속에는 사회적경제 조직이 좀 더 자생력 있는 조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홍진기 회장의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다. 또한 사회적경제 관계기업에 연관이 있는 조직이라면 꼭 협회 회원이 아니어도 함께 품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도 전했다. 그의 뚝심 있는 행보가 기대된다. 새롭고 쓰는 인생 2막의 기대 홍회장은 이제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의 보물을 찾아가고 있다. 개척의 의지로 도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가슴 뜨거운 인생을 달려 온 주인공이 개인의 발전을 뛰어넘어 기업의 성장을 촉구하는 든든한 동행이 되어 준 리더로서다, 홍회장의 인생2막을 펼치는 멋진 이야기를 들어 보자. 홍진기 회장이 사회적기업의 성장에 깊은 관심과 참여를 하게 된 것은 6년 전 그가 30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하면서부터다.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진행한 CEO교육과정을 3개월 정도 배우게 된 홍진기 회장은 사회적기업과 관련해 더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한신대학교에서 MBA과정도 밟고 영국 스코틀랜드로 유학도 다녀왔단다. “조금만 도와주면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기업이 많습니다. 단순히 감투만 쓰는 명예직이 아니라 사명감을 가지고 이들 기업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당시 함께 교육을 받았던 50여 명의 대표들은 사조직처럼 모임을 만들었고 일부는 지정 사회적기업으로 성장도 했다. 이들 사회적경제 기업들은 경기도 내 유망기업 1위에서 8위 안에 들 정도로 경쟁력을 지니면서 경기도 내에서도 기업CEO협의회에 대한 신뢰를 보였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경기도에서 인지도 높은 지정 사회적기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하면서도 보람을 느낀다며 이 협회에서의 사회적경제 기업조직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보였다. 홍진기 회장이 향 후 31개 경기도 시군구 지부장 등 경기도를 통합하는 사회적경제네트웍 중요함사회적기업의 든든한 파트너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오랜 직장생활을 토대로 쌓인 삶의 연륜과 내공의 힘이다. 우선한 사회적가치 창조에 주력 홍진기회장은 문제를 풀어 가는데 있어 필요한 몇 가지를 말한다. 우선 “협동조합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반해 활동하는 비율은 30~40%에 그치고 있습니다.”라며 안타까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선진국에서는 협동조합에서 출발한 조직들이 사회적기업이 되고 마을기업으로 발전해 가는데 우리나라는 사회적관계 기업들이 정부주도하에서 관리되다보니 짧은 시간에 양적인 성장은 했지만 질적인 향상은 부족한 실정입니다.” 홍회장은 협동조합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협회는 경기도와 유기적인 관계 형성, 도로부터 자금 수혜의 방안을 요청하고 따복공동체와도 함께 사회적 가치 실현에 많은 일들을 수행하려고 한다. “사회적기업이 출범한 지 7~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초창기 때 만들어진 관련 법률과 제도는 바뀌지 않은 채 그대로 이다보니 사회적기업의 현실적 목소리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진기 회장은 사회적기업의 성장에 장애물이 되고 있는 제도 개선을 위해서도 협회내에 연구원 제도를 두어 협회 차원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융자 수혜의 적정성등 이다. 현재 사회적기업이 되면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사회적기업 전 단계인 예비적기업의 경우 5천만 원까지 융자지원이 가능하고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면 1억 원까지 융자를 받을 수 있다. 사회적기업이 5~6년 정도 기업운영을 하는 상황에서 1억원의 금액은 적다. 3~ 억원까지 융자규모를 늘리도록 제도 개선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적기업들도 제법 안정성과 규모를 갖춘 기업들이 많아진 것은 정부와 중소기업청의 도움과 협동화 사업의 시너지 효과도 있지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참여한 사회적 기업가인 리더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수고의 결과라고 밝혔다.
    • 사람들
    2016-01-05
  • 한중 외교 가교 역할, 진정한 문화 외교관 김선녀 씨
    [동포투데이] 서울시 중구 무교동과 경기 안산시 고잔동에 위치한 소망여행사 (대표 김선녀) 가 중국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로 성장시키며 여행업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4년 3월 외국인투자개인사업체를 설립한 그녀는 중국 국적의 장점을 살려 중국 특화 여행이라는 아이템으로 성실하고 신뢰받는 여행 상품을 개발하며 한국과 중국의 외교 역할까지 톡톡히 해내고 있어 화제를 모아오고 있다.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여행업에 뛰어든지 11년째.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지만 믿음과 신뢰만큼은 변치 않으며 소망 여행사를 그동안 키워왔다. <월간한국인>에서는 그녀가 생각하는 코리안 드림과 여행사의 어려움에서부터 보람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중국문화를 보급하고자 설립한 슈퍼차이나문화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삶에 대해 다양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노력과 땀으로 일궈낸 코리안 드림 “저도 다른 동포들처럼 처음에는 경제적인 이유로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뇌졸중으로 많이 아프셨던 어머니의 병치료를 마음껏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한국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면 시간당 4~5천밖에 안되였지만 한국에서는 2만5천~3만정도라고 들었습니다. 저는 대박의 꿈을 안고 통역했던 회사의 초청으로 한국행을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더군요. 연변 사투리를 사정없이 쓰던 저에게 아이를 믿고 맡길 부모는 없었습니다. 일자리 광고지를 매일 뒤지며 점점 마음은 조급해졌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당시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주인 언니가 충무로에 있는 지인을 소개해주어서 중국어를 처음으로 가르칠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고 맡겨주었던다는것만도 고마웠던 그녀는 수업을 10~20분씩 더 가르쳐주었고, 중국에서오는 팩스가 있으면 무료로 번역해드리기도 했다. 그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성실성은 주위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중국어 강사는 물론이고 통역, 중국시장조사등 중국 전문가로 자리를 점차 굳혀가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비자문제가 걸림돌이 되었다. 3개월에 한번씩 중국에 다녀와야만 했던 단기비자는 그녀가 하는 일에서 연속성을 잃게 했다. “오랫동안 체류하고자 불법체류의 생각도 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더라도 정직하고 정도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힘들더라도 3개월에 한번씩 다녀야 하는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서 더욱 열심히 뛰었던 거 같습니다. 결국 한국에서 신뢰와 믿음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면서 지인들의 도움으로 외국인투자비자를 발급받게 되었고 지금의 여행사를 설립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직과 성실, 그리고 노력으로 일궈낸 성공 - 맞춤형 나만의 여행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내며 당당히 사업자등록증을 발급받은 제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더군요. 코리아 드림을 꿈꾸는 수많은 동포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성실한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살아가면 꼭 귀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한국인들과의 일자리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특화된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라는 것. 이것이 김선녀 대표가 강조하는 시크릿 노하우이다. 중국과 한국을 잘 알고 있는 중국동포였기에 한국 경쟁 여행사보다 알찬 견적으로 “맞춤형” 나만의 여행상품을 만들 수 있었다. 고객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소망여행사는 가격경쟁을 해서 싸고 품질이 떨어지는 여행상품이 아닌 맞춤식상품으로 고객들을 만났다. 여행사는 크지 않지만 고객들은 최고의 VIP로 모시는 서비스를 구현하고 있다. 쇼핑센터와 옵션이 없는 편안한 일정과 출발전 여행지 안내 서비스, 여행중 사용하는 일상 중국어 제공, 3년이내 새롭게 건설된 호텔을 사용해서 포근한 잠자리 제공, 신차를 사용해서 안전한 차량으로 걱정없이 여행을 즐기게 하는 등 고객의 니즈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상품을 제시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아카데미, 워크숍 등 기업 CEO 들을 위한 맞춤 현장 견학 프로그램 등 한중 문화에 익숙한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고객만족은 소망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며 거미줄처럼 지인소개가 끊이질 않고 있다. 처음 낯설고 막막하기만 했던 한국생활에서 어느덧 안정을 찾고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선녀 대표. 처음 기회를 주었던 모든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이제는 누군가에 감사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선녀 브랜드 가치 창조, 슈퍼차이나문화연구소 설립 소중한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여행사가 자신만이 브랜드를 갖고 오늘처럼 성장했다고 생각한 김 대표는 나눔의 크기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으면 더 빨리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재능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지역아동센터, 자원봉사협의회등을 통해서 각단체에서 중국문화특강을 무료로 해주기 시작했다. 그런 나눔을 통해서 그녀는 중국문화특강의 중요성을 깊게 깨치고 올해 1월에 슈퍼차이나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여행을 통해서 한국인들이 중국문화를 현장으로 느끼고 경험한다면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특강은 경험을 통해서 현실에 직접 응용할 수 있는 좋은 점”이라고 말한다. “나의 사랑, 대한민국” 그녀가 하는 강연은 많은 편견과 아픔을 극복하고 한국생활에 정착하고 성공한 사례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을 주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감동으로 이어져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아니라 “중국인의 상술“, ”중국인의 직업관“, ”중국진출 성공프로세스“ 등 주제로 기업체 , 대학교 , 법원공무원교육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기있는 강의를 진행하면서 한중문화교류에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법무부 지정 한중동포신문 자문위원, 재한동포문인협회 이사, 소울림 총동문회부회장등 여러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동포에 대한 편견을 하나하나 없애고 있다. 그녀의 노력은 카네기최고기업인상, 재한동포문인협회 문화상,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표창상, 중국동포타운신문 칼럼 우수상 등 좋은결과로 이어졌다. 늘 바쁘게 하루를 쪼개살고 있는 김선녀 대표. 그녀는 적자생존(适者生存 )이라는 성어를 좋아했다. 적응하기위해서는 배워야 한다는 그녀는 한국정책재단(이사장-임태희)에서 운영하고 있는 소울림아카데미 (원장-잡코리아 창시자 김승남)로 수료를 했고, 카네기 최고경영자 과정, 소비자정보대학, HK여행작가아카데미, 이주민방송 라디오제작교육을 수료했으며, 지금은 한양대 창조경제 고위경영자 과정을 수료중이다. “맞춤식”여행사상품으로 고객들이 웃을수 있도록 만족을 주었다면 지금은 중국동포로서 김선녀란 이름 석자의 브랜드를 만들어 오는데 최선을 다해오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김선녀 대표에 대한 한줄 정의는 무엇일까? 바로 한국과 중국을 모두 잘 아는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다들 입을 모은다. 대한민국을 너무도 사랑하는 김 선녀 대표. 편견과 차별을 넘어 앞으로 그녀가 꿈꾸는 미래는 아름답고 행복하다. 그 행복한 동행을 <월간한국인>에서도 함께 응원해 본다.
    • 사람들
    2015-12-11
  • “조선족 가수 김미아입니다”
    [동포투데이] “올해는 왕년에 비해 여러번 고향을 찾게 되네요. 얼마전 훈춘 방천에서도 공연이 있었구요. 나이가 들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는듯 해요. 어디에 가든지 고향만큼 좋은 곳은 없다는 생각이 더욱 들구요.” 중국조선족교향음악회 참가차 고향땅을 다시 밟게 된 김미아씨, 음악회 참가는 마치 고향의 어머니를 보러 오는 기분이다. 음악회에서 김미아씨는 “등대”와 “겨울의 홰불”을 불렀다. “등대”가 어떤 년령층에게나 힘을 주고 희망을 줄수 있는 노래이기에 고향인민들이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이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겨울의 홰불”은 다함께 대박 나자는 희망에서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김미아씨가 전국에 이름을 날린 것은 “성광대도”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음악을 좋아하다보니 더 큰 꿈을 실현하고 싶어 무작정 상경했고 지금까지 북경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요즘 들어 “겨울의 홰불”은 원곡자 비상(费翔)보다도 김미아씨의 버전이 많이 들려진다. 2012년 CCTV음력설야회무대에서 김미아씨는 “겨울의 홰불”로 팝가수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몇분 안되는 무대였지만 그 무대에 오르기 위한 경쟁은 치렬했다. 2012년이 CCTV 음력설야회 30회가 되는 해였기에 그동안 불리워진 대표곡들을 선정해 부르는 부분이 마련되였는데 “겨울의 홰불”도 그중의 한곡으로 선정되었다. 원곡자 비상을 초청했지만 그는 감독팀에 김미아씨를 추천했다. 그렇다고 절대 쉽게 오를수 있는 무대는 아니였다. 당시 중국가요계에서도 나노라 하는 쟁쟁한 가수들이 앞다투어 이 곡을 부르겠다고 나섰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지만 그가운데서 최종 김미아씨가 발탁됐다. “원곡자앞에서 어떻게 부르냐?”는 의문도 많이 받은것으로 알려진다. “무대는 요만한데 가수는 이만큼이나 있어요. 그래서 항상 남보다 더 노력하고 남들이 할수 없는 것을 내가 해야만 그 사람의 앞에 설수 있거든요. 무슨 일이든 하루만에 완성될 수 없어요. 또 내가 노력한만큼 그것이 결과로 보여지지요. 그래서 한발작을 내디뎌도 착실히 하려고 노력하고있어요. 지금까지 견지해온 원칙이기도 하죠.” 김미아씨는 항상 “조선족가수 김미아”로 활동하는 것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가요계에서 활동하다보니 비록 민족가요를 부르는 기회가 적지만 “모두로 하여금 내가 조선족인 것을 알게 하는 것이 내가 민족을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언제든지 고향에서 부르면 다른 공연이 있어도 달려오게 되였다고 덧붙인다. 요즘 김미아씨는 신곡을 준비하느라 바삐 보낸다. 다음달말쯤이면 선보일 예정인데 기대해도 좋을듯하다면서 완벽하든 완벽하지 못하든 항상 리해하고 지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사람들
    2015-11-27
  • [인터뷰] “사회에 조선족 알리고 싶었다”
    [동포투데이] 지난 11월 초, 중국 조선족 처음으로 한국 서울특별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 "사단법인 GK희망공동체" 허을진 대표를 만났다. 인터뷰 요청에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허을진 대표가 서울시 명예시민으로 선정된데는 조선족을 위한 그의 사심없는 노고와 한국사회에서의 역활이 뚜렷했기 때문이었다. 허을진 대표는 안도현 석문진 중평촌에서 태여났다. 일찍 중국에 있을 때부터 까페 [중국조선족대모임]을 운영해온 그는 인터넷신문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을 갖고 연변지역내 소식을 국내외 동포지역에 널리 알리면서 중국 조선족을 긍정적으로 알리는데 노력해 왔다. 그동안 끊임없는 헌신적 노력의 결과 현재 허을진 대표가 운영하고 있는 [동포투데이]는 한국은 물론, 중국에도 취재기자를 두고 있으며 인터넷포털 "다음", "구글", "네이트", "줌" 등 과 뉴스검색 제휴를 맺는 전문적인 인터넷 신문으로 발전했다. 다음은 인터뷰 허을진 대표와의 일문일답. ▶조선족을 알리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 입국한지 10년이 다된다. 한국에 처음 입국했을 때 만난 한국사람 중 적지 않은 분들이 조선족은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교포 혹은 동포라면 알았으나 조선족이라 하면 동포(한민족)가 아닌 중국인(한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족 밀집 지역에서는 다르겠지만… 현재 한국에 진출한 중국 조선족은 70여만명으로 헤아려진다. 그들은 한국에 엄청난 재부를 창조해 주고 기여를 하고있는 거대한 공동체로 성장하면서 한국사회에서 절대 홀시할수 없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누구나 알다싶이 어려운 시기 조선반도에서 이주해 와 150여년이 넘는 정착과정을 거친 조선족은 민족독립과 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의 선구자들며 우리 민족 문화와 민족의 "넋"을 지켜가면서 성공적으로 중국에 뿌리를 내렸고 한민족의 우수성을 증명하며 중국 주류사회에 진입한 우수한 민족이다. 자랑스러운 민족, 위대한 민족임을 알려 그들로 하여금 한민족의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재한 중국 조선족에 대한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실천해왔는데 어떠한 생각으로 이러한 선행에 나서게 됐는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중병이 들어 오래동안 병석에 누워있게 되자 집안 환경이 어려워지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그때 이웃과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는데 나이가 어려서인지 도움을 준 이들의 고마움을 몰랐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때 도움을 주었던 고마운 분들이 생각났고 나도 어려운 이들을 돕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것 같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좋은 일도 해보니 보람도 느껴지고 뿌듯한 마음도 느껴졌다" ▶재한 조선족을 위한 각종 사업 진행(성과, 영향력)을 하면서 주변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가. "다년간 단체활동과 온라인커뮤니티,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면서 여러차례 수상 영예를 받았다. 이 자리를 빌어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신 서울시민과 국내외 조선족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현재 기관이나 단체에서 다양한 사업 제휴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최종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꿈, 혹은 목표는? "현재 하고있는 일을 최정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영수 연변일보 기자
    • 사람들
    2015-11-25
  • [인터뷰] 한·중 비즈니스 컨설팅 전문 티앤씨네트웍스 CEO 김홍화 씨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국내 외국인 유학생 8만명 시대, 낯선 한국 땅에서 자신만의 아이템으로 창업을 실현하고 있는 중국 유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창업의 종류는 IT, 무역, 여행사, 컨설팅, 음식점, 옷가게, 신발가게 등으로 다양하다. 중국 길림성 안도현 출신인 중국동포 김홍화씨는 2001년 숙명여자대학교에 입학해 컴퓨터과학 석사학위를 취득 후 SK C&C, 서울관광마케팅주식회사에서 다년간 근무하다가 올 7월에는 서울시 사무실 무상지원을 받아 여의도 IFC에 한중 비즈니스 컨설팅 전문회사 티앤씨네트웍스(T&C Networks)를 설립하였다. 김홍화씨는 회사를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열린의사회 봉사단체의 일원으로 정기적으로 어르신과 아동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매월 기부도 하고 있다. ▲김홍화씨는 회사를 운영하는 바쁜 와중에도 열린의사회 봉사단의 일원으로 정기적으로 어르신과 아동을 돕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매월 기부도 하고 있다. 기자는 김홍화씨가 꿈꾸는 창업과 그를 통한 비전, 창업을 대하는 자세는 어떨까.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Q.티앤씨네트웍스의 경영이념은? -티앤씨네트웍스 경영이념은 ‘기술과 문화로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는 기업’으로 도전과 열정을 핵심가치로, 최상의 품질, 서비스로 세상에 보탬이 되는 기업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Q.티앤씨네트웍스는 어떤 회사인지? -한중기업의 투자유치 컨설팅(법인 및 체인점 설립 등),한중 양국 간 문화교류(기업 및 단체간 교류 예:연수 및 수학여행 등), 기프트 컨설팅(기업간 기프트 맞춤형 제공, 티앤씨 브랜드의 해외 체인점 설립, 글로벌 기념품 전문쇼핑몰 운영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는 한중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이다. Q.인생 좌우명은?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선택을 하며, 온전한 삶을 살자 Q.현재 사업을 하시게 된 계기(동기)는 무엇인지? -공무원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안정된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안정적인 공기업에 입사 하였으나, 이것이 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서적과 다양한 교육에 참여 하면서, 내가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공기업 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선택하게 되었다. Q.현재 추진 중인 주요 사업이 있다면? -현재 추진중인 주요 사업은 기프트컨설팅과 해외체인점 설립 사업이다. 한중 비즈니스 컨설팅을 하다보니 수많은 기업 담당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담당자들의 고민이 예산에 맞는 세련된 기프트 선별 이라는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실제로 서울관광마케팅 주식회사에서의 업무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실무가 쌓여있는 상태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새로운 기프트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따라서, 기존 기념품이 마음에 썩 들지 않더라도 그냥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떠한 기업이든 비즈니스를 하다보면 기프트가 필요할 것이고 그 기프트를 선별하는 작업을 잘 해낼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시작하였다. 저희 제품은 다양하지만 시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 제품이 많다. 그러다보니 가격이 저렴하진 않다. 하지만 소중한 고객을 생각하는 마음이 앞서는 기업이라면 저희 안목을 높이 평가하고 선택을 해주시는 편이다. 최근에는 저희 회사 제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해외에서 체인점을 오픈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고 진행 중에 있다. Q.회사운영 외에 어떤 활동을 하고있는지? -2012년부터 열린의사회 봉사단체를 통해 국내외 의료봉사를 다녔다. 매월 기부도 하고 있다. 월1회 국내봉사는 주로 지방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봉사였고 연1회 해외봉사는 네팔, 방콕, 외몽고 세개 나라를 다녀왔다. 주로 지역주민들을 위한 치과, 외과, 산부인과, 내과, 한의과 등 의료봉사였다. 해외봉사는 한번가면 10일 정도를 소요했기 때문에 한해남은 휴가를 다 사용하여야만 가능했다. 개인휴가기간에 사비를 들여 해외봉사를 간다고 하니 회사 동료분들이 많이 의아해 하였다. SK 회사를 다닐때에는 정기적으로 장애우를 위한 의무봉사도 하였다. Q.재한중국동포 그리고 후배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정말 혜택을 받고 태어난 사람임이 틀림없지만, 그만큼 정체성의 혼란이 오는 시기도 많았을거라 생각한다. 이 모든것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각자의 삶을 만들어가는 우리 동포분들 그리고 후배분들을 인정하고 존경한다. Q.이야기하고 싶은 스토리나 꿈이 있다면? -저의 꿈은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대학교 다닐때 장학금을 받았고, 그돈이 저에게는 공부에만 올인할 수 있게 한 큰힘이 되었음을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에 해외에서 공부하는 동포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 되고 싶어서 언제부터인가 이 꿈을 꾸게 되었다. 안정적인 회사를 용기내서 그만두고 어려운 선택을 하게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Q.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씀이나 강조하고자 하는 사항이 있다면? -제가 한국생활 15년을 하다보니, 주변에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또 제가 필요한 정보를 주변분들을 통해서 빨리 접하고 있다. 현재, 여의도 IFC에 서울시 입주기업으로 있게된것도 지인분이 서울시에 좋은 정책이 있으니까 확인해보라고 하여 알게 되었고 마감임박할 시점에 운좋게 지원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얘기는 서울시글로벌센터에서 외국인 창업기업이나 동포들을 위해 많은 혜택을 주고 있으며 여러 설문조사를 통해 창업에 필요한 다양한 교육과 지원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직 모르시는 분들도 많을거라 사료되어 이번 기회에 널리 알리고 싶고 이러한 혜택을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 사람들
    2015-11-15
  • [인터뷰] 최영우 홍콩한인회장, “시대가 요구하는 한인회로 발전해야"
    [동포투데이] "취임 후 홍콩 교민사회의 '소통과 화합', '변화와 성숙'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봉사는 내 삶의 일부분이다. 앞으로도 교민사회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지난 11일 최영우 제48대 홍콩한인회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셩완에 위치한 ‘두란노’를 찾았다. 최 회장은 바쁜 일정으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밝은 미소와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최 회장은 본격적으로 인터뷰가 진행되자 피곤함도 잊은 채 소신 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머릿속에는 ‘청렴’, ‘소신’, ‘외유내강’ 등의 단어들이 자꾸 떠오르는 건 왜일까? 2014년 3월 한인회장 취임 후 활동과 홍콩 교민사회의 현주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최 회장은 1979년 롯데그룹 홍콩 법인장으로 근무를 하면서 홍콩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됐다. 1994년부터 홍콩 한인회 기획이사,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홍콩 교민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한미사랑의 재단(부총재), 중국한국인기독실업인회(총회장)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앞장섰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 10월 8일 ‘제9회 세계한인의 날’ 기념 유공 포상자(‘국민훈장 동백장’)로 선정됐다. 다음은 홍콩한인회장인 최 회장과의 일문일답. -48대 회장 취임 시, 취임 후 1년은 “홍콩 한인사회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스스로 성과를 평가한다면. ▲오랜 시간 홍콩 한인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느낀 점은 ‘화합’의 필요성이었다. 홍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작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또한 ‘화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을 원활하지 못한 ‘소통’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통과 화합’을 1차 년도 목표로 잡았다. 홍콩 교민 중에는 유독 자존심이 강하고 본인 주견이 확실한 분들이 많다. 소위 성공한 분들이 대부분이라 그런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무엇보다 ‘경청’에 힘을 기울여 자칫 생길 수 있는 오해를 미연에 방지하고 교민들 간의 오해를 풀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을 더욱 이해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소통이 이뤄졌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교민사회에서도 편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이유로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를 지양하고 소통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을 끌어안고자 했다. ‘소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발로 뛰는 게 중요했다. 가능한 모든 단체 모임에 참석했고, 유관 단체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을 했다. 이처럼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는데, 비교적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갈등의 근본원인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이고 이미 골이 깊어진 경우가 많아 개인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모든 갈등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교민의 ‘화합과 소통’을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는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해야 할 문제다.- 2015년 목표를 ‘변화와 성숙’에 둔다고 했는데,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었는지. ▲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거기에 걸맞은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부조리하거나 불합리한 부분을 찾아 개선해 나가고 있다. 대표적인 성과를 굳이 꼽자면, 한인회에서 자체 발행하고 있는 '교민소식지' 인쇄업체를 공개 입찰했다. 이로 인해 수년간 적자를 내던 제작비를 대폭 절감해 흑자로 전환시켰다. 또한, 회계와 행정을 투명하게 처리해 문제의 소지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교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한인회 정관 개정 문제, 토요학교 운영세칙 마련 등 중요한 과제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 과제들도 효율적이고 시대에 걸맞게 개선하여 추진하고자 한다. -임기 중에 꼭 하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제반 여건상 추진하지 못했거나 과정상 미흡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 어느 공동체나 리더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합의를 거쳐 일을 추진하되,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정책을 수립하여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책을 맡은 임원 대부분이 본업 때문에 한인회 활동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팀워크를 요구하는 일을 진행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런 점이 한인회 운영이나 봉사의 한계로 작용하는 것 같다. 틀에 박힌 규제나 관행 때문에 현실적으로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과 이로 인해 계획했던 많은 일들을 충분히 실행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남은 기간 동안 힘이 닿는 곳까지 추진할 생각이다. -한인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만사가 인사’라는 말이 있다. 어느 조직이라도 유능한 사람이 적재적소에 배치돼 헌신적으로 일한다면 그 조직은 분명 성장˙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현 한인회 인사제도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인사제도의 개선 없이는 한인회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으며, 매너리즘에 빠진 직원들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기 쉽다. 손익을 중요시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 최대의 능률을 올리는 기업과 달리, 잘못 가고 있는 것을 알아도 유턴할 수 없는 ‘거버넌스 체제’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래서 사기업의 성과급제도 등을 도입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월급은 근속이 아닌 직무 특성,성과, 능력 등을 고려해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평가기준, 원칙, 법적 규정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불확실성, 불안정성, 복잡성 등 다양한 구조와 특성을 지니고 있다. 한인회가 이러한 흐름에 맞춰 성장˙발전할 수 있는 성숙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래상의 큰 그림 아래 개혁이 필요하며 우리가 모두 협력해야 한다. 한인회 인사가 ‘회전문 인사’라는 말이 있다. 한인회 인사의 문제점은 무엇이며, 개선해야 할 사항은. ▲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학연˙지연˙종교 등으로 얽힌 사람들끼리 반복적으로 서로 자리를 주고받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지금 ‘러닝메이트’ 제도하에서는 인재풀 구축 자체가 어렵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인이 13,000명이라고 하지만, 한인회 회원은 4,000여 명이고 피선거권자는 100명 미만이다. 이들 중 교민사회에 알려진 인사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제도하에서는 능력 있고 참신한 인재를 기대하기 힘들며, 경선을 치르게 된다면 갈등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현행 회장단 선거제도도 다소 문제점을 안고 있다. 홍콩한인회는 지금까지 ‘러닝메이트 제도’로 회장단을 선출해왔다. 다른 어느 나라 한인회에서도 예를 찾아보기 힘든 선거방식이다.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홍콩처럼 좁은 공동체에서는 불합리한 제도라고 생각한다. '러닝메이트 제도'의 특성상 현재 진행되는 선거 방식은 자칫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봉사정신 등을 평가하는 선거가 아니라 학연˙지연˙종교 관계로 구성된 ‘러닝메이트 팀’의 경쟁체제로 돌변하게 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편법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병폐를 막기 위해 자질과 자격 그리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빠른 시일 내에 홍콩 교민사회의 실정에 맞게 피선거권 제도를 개정해 한인회 발전을 꾀해야 한다. 최근 많은 기업이 우수한 인재 확보와 기업 이윤 극대화를 위해 ‘글로벌 아웃소싱’을 하고 있다. 홍콩한인회도 작은 공동체이긴 하지만, 역량을 갖춘 후배들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며, 그에 따른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일부 원로들과 기득권자의 내려 놓음이 필요하며, 그 동안 쌓은 연륜과 경험을 후배들에게 덕스럽게 권고하고 격려함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라고 생각한다. -한국국제학교와 토요학교의 문제점과 발전방안은. ▲한국국제학교 - 학기와 학제가 다른 두 학교가 한 건물에 공존하다 보니 운영 면에서 비효율적이거나 비경제적인 부분이 있다. 게다가 한국어 과정은 한국 교육부에서, 영어과정은 홍콩 교육부에서 각각 통제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 장기적으로 볼 때 학제가 통일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해결책을 찾기 힘든 원초적인 문제다. 하지만 학교 관계자들은 명문학교 만들기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실력 있는 교사 초빙, 교육시설 완비, 학교 관련 규정체제 확립, 신속하고 투명한 행정, 재정 관리 등 완벽한 교육˙관리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프로젝트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학교 장기 발전위원회’를 만들어 발전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앞으로 많은 기관˙단체˙교민들이 동참한다면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토요학교 - 교사의 소명의식과 학교 관계자들의 학교 시스템 개선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현안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을 재인식시키고 학습 동기유발 방안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하나하나 변화를 모색해 나가고 있지만, 완벽한 교육환경을 갖추기 위해서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홍콩 교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기 위한 방안. ▲ 넓은 의미에서 한인회는 토요학교 학부모로 구성된 의무 회원과 오래 전부터 참여해온 자발적 참여회원(교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구성된 회원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회원 자격을 한민족 혈통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검토˙추진 중이다. 또한, 한인회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과 인센티브 방안 연구가 더욱 필요하며,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해 회원 가입을 독려할 것이다. -한인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 한국국제학교(KIS) 증축을 완공했지만, 홍콩정부 당국의 허가문제로 교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문제 해결에 나섰고, 그 결과 1년 반이 지난 올 9월에 완전히 해결했다. 과정상 애로사항은 많았지만, 지금도 그 공간에서 학업에 전념하는 학생들 모습을 생각하면 흐뭇하다. 또한, 많은 교민들의 협조와 참석으로 성황리에 마쳤던 ‘한마음장터’와 올해 처음으로 열린 '열린 음악회'도 보람이 있었다. -리더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자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조직이나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다음 세 가지를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자격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첫째, 건강해야 한다.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도 포함한다. 편파적이지 않고 정직하며 올바른 사고를 지녀야 하는 것은 지도자의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사명감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크든 작든 자신이 이끄는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는 사명감이 투철해야 한다. 셋째, 열정이 있어야 한다. 한인회 임원은 대가 없는 봉사직이다. 자신의 시간, 에너지, 물질 등을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직책이나 권위를 이용해 다른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면 조직이 위험에 빠지거나 불행을 초래한다. 이처럼 뜻한 바가 있어 직책을 맡았다면, 진취적이고 혁신적으로 정열을 바쳐 일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하늘에서 위로를 받아야 한다. 그저 안일하고 구태의연한 생각으로 과거에 안주하려고 한다면 그 공동체는 전진 없는 퇴보만 있을 뿐이다. 뜻있는 지도자라면 잘못된 일이나 관행은 과감히 개선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강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홍콩교민 역사의 맷돌은 돌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민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은. ▲ 우리 교민들도 홍콩 한인사회 안에서 우리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활동할 게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홍콩지역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할 때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시스템과 네트워크 구축의 결여, 인식 부족 등으로 활발한 교류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그러나 앞으로는 현지사회와 교감을 할 방안도 꾸준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가 후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교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 덕분에 부족한 제가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고, ‘국민훈장 동백장’도 수상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 사람들
    2015-11-1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