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김 혁 (재中동포 소설가)
 
 
 
1
 

아리땁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石榴)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맞추었네!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함락될 때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한 의기 논개의 충절을 찬양한 변영로의 시의 한 구절이다.
 
임진년 왜란을 일으킨 왜적은 진주성을 여러 번 쳤으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에 분기탱천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진주성을 무너뜨려 사람과 짐승 씨 하나 남기지 말라 명했다. 야수떼 같은 왜군과 맞서 여러 차례 혈전에서 지켜낸 진주성은 1593년 기어이 무너지고 말았다.  
 
왜적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렸다. 축하연에서 왜적들은 물가의 돋은 바위에 선 한 여인의 아리따움에 홀려 버렸다.
 
그가 바로 임진왜란이 일자 의병장인 남편을 따라 화살이 비발치는 전장을 찾아온 논개였다. 논개는 기생으로 위장해 주연에 참석했다.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마음”의 ‘논개’는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지를 낀 채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강낭콩보다 더 푸른” 남강으로 뛰어들었다.
 
한 섬약한 여인의 거사는 왜군의 기세를 꺾었고 이후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
 
2
 
중국헤이룽성 무단장으로 가면 강녘에 “빈강”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있는데 그곳에 이제는 무단장의 상징물처럼 되어버린 기념비가 있다.
 
여덟 여인들의 군상, 일견에도 예사롭지 않은 석조물이다.  손에는 총대를 꽉 부여 잡고 뒤쫓는 적을 응시하는 모습, 여전사들의 표정은 결연하고 눈빛은 강렬하다. 그 비장하고 결연한 모습들이 살아숨쉬는 듯해 보는이들을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중 두 명의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전사가 유난히 눈에 띄인다. 이 군상 속 여전사들로는 동북항일연군 부녀퇀의 지도원 랭운을 비롯한 여덟 명인데 그중 안순복과 이봉선은 조선족이다.
 
“안언니”라고 친절하게 불리운  안순복은 여전사들중의 골간인물이었다. 키가 1메터55밖에 안되는 작은 체구였다고 한다. 아버지와 오빠를 왜놈에게 잃고 항일에 뛰어든 그는 항일련군의 지도인물인 박덕산과 결혼하여 딸 아이 하나를 보았다. 그후 남편은 태어 난 아이도 보지못한 채 전투에서 희생되었다. 그리고 엄동설한에 적의 소탕을 피하여 부대가 이동하던중 안순복과  여전사들은 아이들을 당지 사람들에게 맡기고 떠났는데 그후 그 아이도 찾지 못하고 말았다.
 
이봉선에 대한 자료는 아주 적다. 그저 조선인이며 20세 남짓하고 린커우현 사람이라는 것 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만주사변"이후 일본관동군은 만주지역에서 피비린 “대토벌”을 감행하였다. 
 
1938년 10월, 원정하여 무단장하류에 도착하였던 항일부대는 무단장 강 기슭에 모닥불을 지피고 숙영하다 밀정의 밀고로 그만 일본괴뢰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일본괴뢰군의 수효는 엄청나 1000여명이나 되었다. 부대의 철수를 엄호하기 위해 8명의 여전사가 나섰다. 
 
 
그녀들의 유인으로 대부대는 순조롭게 적을 따 돌리고 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8명의 여전사들은 삼면으로부터 적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고립무원에 빠지고 탄약이 떨어졌지만 여전사들은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개의 수류탄을 뿌리고 탄약이 떨어진 총을 바위에 쳐 부수어 버렸다. 왜놈들이 각일각 조여오자 일본군의 포로가 될수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손에 손잡고 강심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한송이 또 한송이의 낙화처럼 꽃같은 육신을 차디찬 강물에 서슴없이 던진 것이다.
 
몇해전 중국정부가 선정한 ‘건국영웅 100인’에  재중동포  3명이 선정되었는데 그중 제1위로 “8녀투강”의 여전사들이 뽑힌 가운데 안순복과 이봉선이 방명을 올렸다.
 
  3
 
할일소재의 텔레비드라마 “8녀투강”이 제작중, “8녀투강”의 이야기가 다시 사람들에게 회자(脍炙)되고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베이징”챵룬”영화텔레비제작사에서 항일소재의 드라마 “8녀투강”을 당시 여전사들이 몸을 던졌던 유적지인 헤이룽장성 린커우현에서 제작 중,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황후화"에서 주요역을 맡았던 배우도 출연하는 등 드라마에 인력, 물력을 대거 투입해  제작하고 있다. 
 
 일전 드라마의 컷을 공개 했다. 공개된 사진 속 조선인 여전사 안순복의 역이 눈에 띄인다.
 
"8녀 투강"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영화, 연극, 그림책 등 다양한 쟝르로 각색되어 중국전역에서 항일경전이야기로 떠올랐다. 1950년과 1987년에 두차례 영화로 각색되어스크린에 올랐는데 1950년에 “중화의 딸들”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된 영화는 신중국이 건립된 후의 첫 전쟁영화이며 또 “카로위발리 영화절”에서 “자유투쟁상”을 수상해 중국영화사의 첫 국제수상작으로 되기도 했다.
 
왜적들의 강포앞에서 두려움없이 태산보다 높은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여인들. “붉은 마음”을 품고 “푸른 강”에 뛰여든 여인들의 서사시는 오늘도 전해지고있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김혁 칼럼]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