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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프로축구, 결국 역사 속으로…
[동포투데이] 새 시즌을 위해 동계훈련을 펼치고 있어야 할 중국 축구 을급리그 연변북국축구구락부가 20일 오전 갑작스레 해산을 선포하였다. 이날 전임 연변북구축구구락부 총경리 김영춘과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더는 팀을 운영하기 어려운 사정으로 축구팀을 해산한다”고 선포하고 선수들에게 발급하지 못하고 밀린 4개월간의 로임은 단 시일내에 정부에서 책임지고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변부덕 해산에 이어 연변북국까지 해산되면서 연변 프로축구는 역사 속으로 초라하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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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법원, 연변부덕축구구락부 파산 공식 선고
[동포투데이] 13일, 연변주 중급인민법원에서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공사의 파산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법원은 지난 3월 27일,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회사의 신청에 근거하여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회사의 파산 청산에 관한 신청을 접수. 조사를 거쳐 연변부덕축구구락부유한회사의 자산총액은 39,464,572위안이고 채무총액은 376,608,414.10위안인 것으로 확인되었는 바 자산으로 채무를 청산할 수 없었고 채무를 납부할 능력도 부족하였기에 파산 사유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였다고 밝혔다. 2019년 2월 25일, 2.4억 위안의 세금과 벌금을 체납한 연변부덕구단은 연변주 중급인민법원에 파산 청산을 신청하였다. 연변부덕구단은 중국에서 역사상 세금체납으로 해체된 첫 번째 구단으로 되었다. 연변부덕 전신(前身)은 1955년에 성립된 길림성 축구팀이다. 연변부덕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슈퍼리그에서 활약하였고 2016시즌 9위를 기록하였다. 2017시즌 슈퍼리그에서 갑급리그로 강등되었고 2018시즌 갑급리그에서는 11승 5무 14패 승점 38점으로 10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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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FC, 김승대 · 윤빛가람 선수와 입단 계약 체결
[동포투데이] 연변FC는 16일, 한국 포항 스틸러스 공격수 김승대와 제주 유나이티드의 미드필더 윤빛가람 선수와 입단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윤빛가람 선수는 5년, 김승대 선수는 3년 계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항 유소년 시스템에서 성장한 김승대는 지난 2013년 K리그 클래식에 데뷔했다. 3골 6도움을 올리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지난해엔 10골 8도움을 올리며 팀 주축으로 떠올랐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 대표로 발탁돼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해엔 외국 선수들과 경쟁 속에서 리그 34경기 8골 4도움으로 변함없는 활약을 펼쳤다. K리그 최고의 플레이메이커중 한명인 윤빛가람은 2010년 데뷔와 동시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후 A대표팀 승선하는 등 최고의 주가를 달렸다. 윤빛가람은 올 시즌 7골-6도움을 올리며 K리그 대상 중앙 미드필더 부분 후보까지 올랐다. 윤빛가람 선수는 비자 발급후 곧바로 해남도에 가서 팀과 합류하게 되며 김승대 선수는 내년 1월쯤 합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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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하 감독의 도전 또 통할가?
[동포투데이] 축구결책층은 물론 연변FC 상하가 슈퍼리그 체제로 편입되면서 연변팀의 관련 행보가 또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내년 시즌 박태하 감독과 함께 할 감독진 인선 구성이 완료되고 선수단 보강, 영입 작업이 일사분란하게 추진되면서 올시즌 갑급리그에서 기가 막힌 신화를 써낸 박태하 감독이 여세를 몰아 슈퍼리그에서도 그 도전이 통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태하 감독은 새 감독진 구성에서 선수시절 수비수였던 이림생감독(심수우항팀 전임 감독)을 수석코치로 불러들였고 김성수 전 울산현대팀 키퍼 코치, 연변FC 선수들과 친화력을 자랑하는 문호일, 다년간 심수에서 사업(축구 관련)하며 차범근감독과도 친분을 쌓은 류건강을 체능코치로 발탁, 코칭스태프에 합류시켰다. 이외 박태하 감독은 2명 정도의 한국적 공격수의 추가 영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외적용병 5명 가운데 3명을 한국인 선수로 채운다는 계획이다. 박태하 감독은 내년 시즌 목표를 소박하지만 현실적으로 잡았다. 바로 슈퍼리그 잔류다. 그는 래년 시즌 팬들의 기대가 크겠지만 오랜만에 1부리그(슈퍼리그)에서 뛰는만큼 슈퍼리그 잔류가 최종 목표라며 무엇보다 슈퍼리그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력을 키우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태하 감독은 내년 시즌을 대비해 해남 전지훈련에서 45명 내지 50명 정도의 선수단을 꾸려 면밀한 관찰을 통해 팀 골격을 짤것으로 보이며 일본 전지훈련에서는 40명 정도, 한국 전지훈련에서는 35명 정도의 선수단 규모로 축소해나가며 최종 30명으로 옥석을 가릴 것으로 예상된다. 박태하 감독이 중국 축구무대에서 일으킨 신드롬으로 한국적 감독들의 중국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연변의 히딩크”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연변FC가 내년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감독 박태하의 도전이 또 한번 통할수 있을지에 수많은 사람들은 흥분에 떨기도, 가슴을 졸이기도 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 연변FC가 가야 할 길은 더욱 힘들 것이다. 갑급리그 우승, 슈퍼리그 진출은 이제 모두 지나간 역사이다. 내년을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할 것이지만 절대 쉽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라면 도전하는 것이야 말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태하 감독의 말이다. 220만 연변시민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그런 경기를 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박태하 감독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연변일보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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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박태하 감독의 인간 향기
■ 소나 지난 10월 24일, 연변팀은 연길 홈장 스타디움에서 호남상도팀을 4대0 으로 쾌승하면서 끝내 갑급리그 “우승컵”을 확 거머쥐였다. 이로써 연변은 물론 중국 전역과 지어 해외의 조선족들도 열광했다. 불도가니같이 들끓는 경기장내서 박태하 감독을 소소리 높이 들어올리는 선수들의 헹가레는 그런 마음마음을 담은 감격의 세러머니였다. 그날 경기뒤 박감독은 언론을 통해 연변팀 잔류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더 관심을 끌고 감동적인 사실은 박태하 감독이 시합 전날 23일에 스스로 연변팀에 남겠다는 의지를 굳이고 먼저 구단(구락부)에 재계약을 서두룬 것이다. 다 알다싶이 지난 한동안 연변팀은 너무나 처절했고 파란만장했다. 올해초 3부리그에 빠질번 하다 겨우 리그에 남은게 행운이라면 행운이였다. 그런 팀을 누군가 맡는다는게 참으로 어찌 보면 바보취급을 받을 정도로 비쳐지기도 했을런지 모른다. 그런데, 박태하 감독이 선뜻 맡았다. 그때 모습은 너무다 담담했다는게 후문이다. 거창한 선언도 없어 너나가 긴가민가 불신의 눈길을 보내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기적을 낳았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끝내는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참으로 피땀으로 일궈낸 어거리 대풍이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드라마를 쓴것이다. 슈퍼리그 진출이 결정되자 사실 우리는 감동과 불안이 반죽됐다. 그에 대한 러브콜은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끊기지 않았다. 그로서도 참으로 고민할만했다. 더구나 큰 아들이 축구를 해서 안해는 한국에 남아야 하는 사정이다. 언론이나 누가 재계약을 물어도 그는 “소이무답(笑而無答)”으로 일관했다. 그래서 더 궁금한 것이다. 과연 그가 뭘 생각했을가가 더 궁금한 터였다. 하지만 그는 단연이 잔류를 결정했다. “한해 동안 내가 팀을 만들었는데 선수 한사람 한사람의 강점과 잠재력을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도 나다. 그런데 내가 떠난다면 내게도 손해다. 아까워서 떠날 수 없었다.” 어느 한 언론에서 한 인터뷰 내용이다. 한만디로 애틋한 사랑이였다. 그는 여느 감독들처럼 금전을 일순위에 놓는 인간이 아니였다. 사실 올시즌 중반부터 박감독에 눈독을 들인 한국과 중국의 팀이 한둘이 아니였다. 연변에서 재계약 할때 제시했던 년봉보다 더 많은 돈을 제시한 팀도 있었다. 박감독은 부심하지 않고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그는 “다른 팀으로 가면 돈을 얼마나 더 벌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금전적인 보상은 여기서도 어느 정도 받았다. 돈을 최우선으로 보고 움직이면 일을 제대로 할수 없다. 실패로 가는것”(풋볼리스트)이라고 했다. 이래서 축구팬들이 그에게 열광하고 이래서 그는 다함없는 사랑을 받는다. 이국에서 온 사람이 이 고장에 얼마나 낯설었을가?! 글쎄 말은 통한다해도 그럼에도 그는 혁신으로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의 “3박자론”은 유명하다. 그게 바로 “축구행정과 구단 그리고 선수가 일심동체가 돼야 한다”는 철언이다. 그걸 말로만이 아닌 현실로 이뤄내는데 성공했기에 빛이 나고 갈채를 받고있다. 그날 호남상서도팀을 이겨 슈퍼리그 진출로 스타디움은 불도가니인양 들끓었다. 하지만 박감독은 오히려 담담한 포즈. 그냥 눈꿉을 찍는 모습과 흥건이 고여있는 눈물만 역역했다. 도전과 희생 그리고 원칙과 의리! 박감독은 정신적으로 무장된 인간이다. 그의 인간적가치와 인간의 향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그는 단순히 축구만이 아닌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사랑으로 축구를 품은 인간이다. 더불어 스스로만의 가치관과 철학으로 우리를 일깨준 그 의미는 참으로 깊다. 그의 인간승리의 드라마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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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사상 최대의 “흑색기록 90분”...홈장서 1 : 5 참패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연변축구의 자존심이 재차 땅에 떨어졌다. 10일, 연길인민경기장에서 진행된 2014 갑급축구 제 9 라운드에서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북상해 온 학생군단 북경이공팀한테 1 : 5로 대패하면서 상대방 실력분석, 선수기용 및 기전술 구사 등 고리에서 풀어야 할 많은 숙제를 남겼다. 연변팀의 실점은 너무나도 빨리 찾아왔고 연속적이었다. 경기 5분만에 코너킥 기회에 18번 왕초가 선제골을 터트렸고 14분에 11번 리샹이 2호골에 성공했으며 이어 1분 뒤 39번 리샹빈이 롱슈팅으로 재차 추가골에 골인했다. 연변팀은 경기 35분 경에야 고만국이 이끌어 낸 코너킥 기회에 이민휘가 헤딩슈팅으로 한골 만회했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선수로 최인, 고만국, 강홍권 대신 김도형, 박만철, 강홍권을 교체멤버시키면서 전술변화를 시도하고 투혼을 불사르기도 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도리어 후반 34분에 단독 돌파에 성공한 이공팀의 외적용병 마르크스(9번)와 경기종료를 앞두고는 리공팀의 6번 맹양한테 쐐기골을 허락하며 어이없이 붕괴되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갑급순위를 보면 석가장영창팀이 7승 2패 21점으로 갑급 선두를 달리고 있고 연변팀은 1승 1무 7패로 갑급꼴지를 기록하고 있다. 오는 17일 연변팀은 원정에서 하북중기팀과 자존심 대결을 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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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사상 최대의 “흑색기록 90분”...홈장서 1 : 5 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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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논평] 연변팀 시즌 초반의 부진초래 요소 ABC
- ■ 김철균 5월 4일, 연변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원정에서 천진송강팀한테 1 : 2로 역전패 당했다. 지난해 제 3 라운드 원정에서 2 : 4로 상대방을 역전승하던 경기와 비교해 볼 때 실망이 큰 것은 사실이다. 역전승과 역전패ㅡ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연변팀은 매년 시즌 초반마다 경기성적이 이상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제 8 라운드까지의 성적은 2승 1무 5패로 7점이었으나 올시즌엔 제 8 라운드까지 1승 1무 6패로 겨우 4점을 기록하면서 지난해의 성적에도 못미치었으며 지난 제 7 라운드 홈장에서는 “이호은감독 샤커(下课)”란 원성까지 터졌다. 그럼 왜 매년 시즌 초반마다 연변팀의 성적부진이 나타나는가? 분석하다 보면 아래와 같은 몇가지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출중한 “킬러” 없는 요소 어떤 사람들은 출중한 “킬러(杀手)”가 없는 것이 시즌초 반의 부진과 웬 관계가 있겠는가고 질문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분석으로는 관계가 있어도 크게 있는 것 같다. 모두가 알다 싶이 연변팀은 공중우세보다는 지면배합을 위주로 하는 팀이다. 즉 선수와 선수 사이, 수비, 미드필더와 공격 이 3선 사이의 배합이 위주이다. 지면배합을 위주로 하는 팀은 시즌 초반이면 그 묵계적 배합이 원활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외적용병과의 배합이 원활하지 못하면 득점율이 낮을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이 성적과 직결된다는 생각이다. 반면에 갑급권의 기타 팀들은 출중한 외적용병들을 갖고 있다. 이런 외적용병들은 개인돌파와 슈팅능력 등이 강하기에 기타 동료들의 뒤받침이 없거나 적어도 득점에 성공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지난해 연변팀은 이재민이란 비교적 출중한 스트라이커(前锋)가 있었지만 그 역시 시즌 초반에는 별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기타 선수들과의 배합미숙이 그 요소란 생각이다. 그러다가 시즌 중반부터 그의 역할이 뚜렷하게 상승, 가끔씩 1경기에서 2골씩 성사시킨 적도 있었다. 올해 현재까지 한국용병 김도형의 발휘가 눈에 크게 띄이지 않고 있다. 이는 그의 개인기보다는 기타 선수들과의 묵계적 배합에 어느 정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시즌초반 배합미숙이 모든 구단들의 공동으로 되는 요소겠으나 지면배합을 위주로 하는 연변팀이 더 특별한 것 같다. 심리자질, 자신감 낮은 요소 심리자질로 말하면 연변팀 선수들뿐이 아니다. 하지만 기타 구단들에 비해 연변팀은 매년 시즌초기마다 원정경기가 많다. 원정경기란 홈장에 비해 불리한 요소가 많다. 이는 심리자질이 낮은 구단이라 할 때 더욱 현저하게 노출된다. 현재 한국이나 일본 구단들의 선수 거개가 대졸생들이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중국구단 선수들에 비해 심리자질이 뛰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원정경기에서는 각종 심리적 압력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올해 연변팀은 원정에서 5경기를 치른 뒤에야 홈장경기가 차례졌다. 제4경기만에 홈장이 차례진 지난해와는 더 불리했다. 게다가 첫 홈장에서 신강천산팀을 제압해 자신감이 상승할 무렵 강팀 중경역범팀을 만나 1 : 3으로 패하면서 자신감이 재차 무너졌다. 그 밖에 연변에는 축구를 정통한 관중들이 많다. 이런 관중들은 흔히 “관중석 감독”이 되어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면 지어는 욕까지 해댄다. 지난 제 7라운드 중경역범과의 경기에서 특히 그랬다. 그러니 연변팀 선수들은 홈장에서도 심리압력에 시달린다. 경기일정 요소 현재 슈퍼리그를 망라한 중국 프로축구에는 절대적 강팀이 없다. 어느 구단에서 출중한 외적용병을 영입하면 곧 강팀이 된다. 그렇다면 올들어 시즌 초반에 연변팀이 상대한 팀을 보면 성도천성과 신강천산외는 기본상 강팀이었다. 제 5 라운드까지의 원정경기에 강팀들과의 경기ㅡ 이는 상병선수가 많은 연변팀에 설상가상이었다. 제 1 라운드에서의 대 북경팔희팀전, 올해의 팔희팀은 이전의 팔희팀이 아니다. 현재 갑급 3위로 달리고 있는 팀이다. 그래도 팔희전 당시 연변팀은 한광화, 최인, 김도형, 김기수, 지충국, 강홍권, 오영춘, 원태연 등 알준한 주력멤버가 기본상 출장했기에 0 : 0으로 빅을 수가 있었고 경기장면은 연변팀이 우세였다고 한다. 이어 제 2 라운드에서는 현재 갑급선두주자인 석가장영창과 맞붙었다. 아쉬운 패전이었으나 받아들일만한 경기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짜로 아쉽다면 제 3 라운드 성도천성과 1 : 2로 패전한 것이라지만 원정경기에서의 천시, 인화, 지리란 환경요소를 감안할 때 지나치게 책망할 건 못된다는 분석이다. 그 뒤로 연변팀은 현재 갑급 7-8위를 달리고 있는 청도해우와 심수홍찬과 격돌, 이 두팀 역시 실력, 재력 및 홈장이란 객관요소를 볼 때 연변팀보다 더 큰 우세를 점하기 마련이었다. 그 외에도 연변팀의 패전행진에는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는 외적용병영입 의문, 감독의 지휘능력 한계 등 요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인내성 있는 기다림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특히 홈장전으로는 이제 금방 시작에 불과하다. 때문에 감독의 능력을 놓고 이렇쿵 저렇쿵 할 것이 아니며 “감독사커”란 구호는 더욱 이르다는 생각이다. 자칫하면 팀을 더욱 수습하기 어려운 혼란 속에 밀어 넣을 수도 있다. ※ 연변팀의 시즌초반 부진은 거의 해마다의 일이다. 1997년 최은택감독 시대에도 제 5라운드까지 겨우 1점을 기록했다. 시즌 초반의 성적이 좋은 해로는 아마도 1999년의 갑A시즌뿐이었을 것이다. 연변팀의 성적은 시즌 중반에 가서 상승했다가 시즌 마지막 단계에 재차 부진, 이는 심판요소도 적지 않은 걸로 분석된다. 적지 않은 팀들이 슈퍼리그 진출이나 갑급잔류를 목적으로 심판과 모종의 거래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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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논평] 연변팀 시즌 초반의 부진초래 요소 A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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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천양천 망신살...원정서 천진송강팀에 1 : 2 침몰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연변 장백산천양천(이하 연변팀)이 원정에서 천진송강팀에 1 : 2로 패하며 재차 망신양상을 보였다. 4일, 천진시 단박경기장에서 있은 갑급리그 제8라운드 천진송강팀과의 경기에서 연변팀은 선제골을 넣은 상황에서 그 결과를 지키지 못하고 전반 전에 상대한테 동점골을 내주고 후반들어 22분경에 역전골까지 내주면서 어이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경기에서 14분경에 선제골을 넣은 연변팀의 주인공은 고만국선수였고 천진송강팀에서 연변팀에 골을 넣은 선수들은 영우선수와 클로디네 선수였다. 현재 갑급순위에서 석가장영창이 6승 2패 18점으로 선두에 올라섰고 연변팀은 1승 1무 6패 4점으로 마지막 두번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오는 10일 연변팀은 연길홈장에서 북경리공을 불러들어 한판 승을 노리게 된다. 2014赛季中甲积分榜 排名 球队 轮次 胜 平 负 进球 失球 净胜球 积分 1 石家庄永昌 8 6 0 2 12 6 6 18 2 湖南湘涛 8 5 2 1 16 8 8 17 3 北京八喜 8 4 4 0 6 2 4 16 4 武汉卓尔 8 5 0 3 12 8 4 15 5 重庆力帆 7 4 1 2 16 10 6 13 6 深圳小牛资本 8 3 3 2 8 7 1 12 7 青岛海牛 7 3 3 1 8 8 0 12 8 天津松江 7 3 1 3 8 5 3 10 9 青岛中能 8 2 3 3 11 8 3 9 10 河北中基 7 1 5 1 8 7 1 8 11 沈阳中泽 8 1 5 2 8 10 -2 8 12 北京理工 8 2 1 5 9 15 -6 7 13 新疆达坂城纳欢 7 1 3 3 2 5 -3 6 14 成都天诚 8 1 2 5 5 16 -11 5 15 广东日之泉 8 0 4 4 5 13 -8 4 16 延边泉阳泉 7 1 1 5 3 10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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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 (5) 연변축구 공로자들
- 편집자의 말: 연변축구는 전통이 있고 역사가 길며 중국 축구사상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과 예약하여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편집자 ◐ 민 암 연변에는 축구 명선수가 많이 배출된만큼 유명감독도 많다. 중국의 건국후로부터 보더라도 1955년에 연변축구인들을 주축으로 한 길림성 축구팀이 건립되어서부터 박상복을 시작으로 김사종, 박만복, 정지승, 정종섭, 이호은, 고훈, 염승필 등으로 본토 감독들을 만들어 냈는가 하면 최은택, 조긍연 등 한국적 감독들도 연변축구의 사령탑을 잡아 큰 기여를 했으며 최근에는 김광주, 이광호 등도 자주 팀위기를 만회하는 “촉매제” 작용을 하여 감독으로서의 잠재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초대감독 박상복은 군인출신으로 동북민주련군에 참가했다가 장춘해방전투, 흑산저격전 등 전역에서 몸을 굳혀온 사나이었다. 그의 성격 또한 군인다웠다. 그래서인지 그 시기 길림성팀의 선수들 모두가 군인처럼 강했다.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 이광수, 손중천, 지청용 이 3명의 “폭격기편대”가 출격한다 하면 그야말로 질풍같은 힘이여서, 그 “폭격기편대”를 막을만한 수비진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렇듯 박상복 감독의 풍격은 드세게 몰아 붙이는 축구였으며 그것은 선수들의 기전술 관철에 의해 곧잘 나타나군 하였다. 그래서 당시 길림성팀은 중국내 축구계의 “4대 강팀”중의 하나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한편 그 때도 길림성팀은 “강팀 앞에서는 약하지 않고 약팀 앞에서는 강하지 못한 특징”이 있었다. 그 당시 길림성팀과의 경기에서 자주 주눅이 들군 하던 팀들이라면 이른바 강팀이라는 북경팀, 상해팀과 료녕팀 등이었다. 반면에 길림성팀은 광동팀한테는 어쩐지 자주 패해군 했다. 길림성팀의 제2임 감독 김사종은 서울에서 들어온 사람으로서 선수 개개인의 특점을 중시하는 축구감독이었다. 특히 김사종 감독의 축구풍격이 가장 잘 체현된 때는 1959년 제1차 중국 전국운동회 축구종목경기에서였다. 당시 길림성팀의 매 선수마다 “별명”이 붙었다. 그번 운동회 축구종목에서 13골을 기록해 최우수골잡이로 선정된 지청용은 “대포”란 별명이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청용이 기록한 골은 그 거개가 중거리 슈팅 등으로 통쾌하게 들어간 것들이었다. 또한 어떤 중거리 슈팅은 호선을 긋으며 들어가는 것이 마치 포알이 날아가는 듯한 감을 주어 그한테 “대포”란 “별명”이 붙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이광수한테는 “탱크”, 동경춘한테는 “제비”, 문정오한테는 “변선날개” 등 “별명”들이 붙었는데 당시 한개 구단에 이렇게 많은 선수들이 “별명”이 붙은 구단은 오직 길림성팀뿐이었다. 특히 이 “별명”들은 당시 국가체육운동위원회 하룡주임(군계급으로는 원수)가 만들어 준 것이어서 더욱 값졌다. 다음 길림성팀에 투지와 기술을 동시에 주입한 것은 박만복 감독이었다. 박만복 감독은 지난 세기 50연대 초기 중국국가류학생축구팀 일원으로 헝가리에 가서 전문 축구연수를 하고 돌아온 축구인이었다. 길림성축구팀의 사령탑을 잡았을 초기, 그는 팀에 전문기술축구를 주입하면서 풍격과 투지에 한해서는 어느 정도 홀시하였다. 그러다보니 팀은 내지 기타 성과 시의 구단들과 비슷한 팀이 되고 말았으며 결과 1963년에 성적이 추락하여 갑급으로부터 을급권으로 강등하게 되었다. 그 이듬해 박만복 감독은 경험교훈을 총화하는 과정에서 기술을 강조하되 우리 민족의 고유풍격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감안하고 이 양자를 상호 결합하면서 팀을 정돈, 드디어 우리 민족의 축구사상 한페지에 기록할만한 업적을 쌓게 됐다. 즉 1965년 중국축구무대의 1부리그인 갑급리그의 우승고지를 점령했던 것이다. 하다면 박만복 감독은 우리 민족축구를 가장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축구인으로 우리 민족축구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축구인으로 손색이 없게 된 것이다. 그 뒤 문화혁명이 터지면서 연변의 축구계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쑥대밭”이 되었다. 많은 축구 감독들과 선수들이 공장과 농촌으로 쫓겨가게 되었고 전업단체의 정규적인 축구경기는 볼래야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장이나 농촌으로 쫓겨간 축구인들은 몸에 배길대로 배긴 축구운동을 버릴 수가 없어 각각 자기의 마을이나 기업소에서 축구팀을 조직해서는 훈련도 하고 서로 시합도 하면서 축구운동을 견지해 나갔다. 그 전형들을 말할라치면 연변농구공장, 도문철도, 훈춘시 영안촌 등 기업소와 농촌들이었다. 그러다가 1971년 조선 함경북도 축구팀이 길림성을 방문하면서 축구친선경기를 요청, 그러자 당시 연변 주 혁명위원회에서는 부랴부랴 원 길림성팀에서 볼을 차던 선수들을 모집, 연길시 공원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렀는데 결과 0 : 1로 패했다. 그러자 당시 좌경노선이 판을 치던 시기에도 해당 지도일군들은 축구를 중시, 해산됐던 축구팀을 재건하기 시작하면서 연변의 축구운동은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시기에도 축구팀의 인솔자는 한족을 중용했지만 감독만은 조선족을 선택하군 했다. 그것은 연변의 축구는 그래도 조선족이 이끌어야 된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연변의 축구운동의 “동산재기”를 위해 노력한 이들로는 박만복, 동경춘, 허경수, 정지승, 정종섭 등 감독들이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던 연변축구가 제궤도에 들어서서 재활약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지난 세기 90연대부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3년 그 전해에 을급팀으로부터 갑급에 진출한 연변팀은 당시 제7회 전국운동회에서 “학원파” 감독 이호은의 지휘하에 “전면 진공, 전면 방어”의 3-5-2 포메이션을 구축, 중국축구무대에서 신선한 돌풍을 일으키면서 이호은의 이름은 당시 중국축구계의 화제거리로 됐다. 그 이듬해 즉 1994년 중국의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연변팀은 당시 길림삼성의 이름으로 중국축구 갑A무대에 입문, 이호은이 사령탑을 잡게 됐다. 중국축구가 프로화로 되면서 연변축구는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즉 외적용병들이 중국축구무대에 진출하면서 인구가 적고 경제발전이 더딘 연변의 우세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연변축구는 축구프로화가 되는 해부터 해마다 강등화제에 올랐고 감독 이호은도 자주 경질위기를 초래했으며 그 위기 때마다 원로감독 정종섭이 뒤를 받쳐주면서 1996년까지 3년간 갑A무대에서 버티어냈다. 그러다가 1997년 한국으로부터 “학자파” 감독 최은택 교수가 연변팀의 사령탑을 잡게 되었다. 그해 시즌초반 최은택 감독 역시 제 5 라운드까지 1무 4패로 1점을 기록, 이른바 중국 국내 축구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가장 유력한 강등후보로 추측되었으나 제 6 라운드 석가장에서 8.1팀을 2 : 0으로 제압하면서 반전에 성공했고 최종 갑A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중국축구무대에서 센세이숀을 일으킨 최은택 감독은 3차에 거쳐 중국의 모 권위적인 매스컴에서 선정한 최우수감독으로 되었으며 중국 CCTV는 연길까지 찾아와 최은택 감독에 대한 전문 프로를 제작해서는 연속 2차에 거쳐 “축구의 밤” 프로에 방송하였다. 그리고 최은택 감독의 성공으로 중국축구무대에서는 외국적 감독을 영입하는 붐이 일었으며 한국인 감독만 해도 김정남, 박종환, 차범근, 이장수 등이 선후로 중국축구무대에 진출했다. 최은택 감독에 이어 고훈 감독 또한 연변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쓴 유명감독으로 손색이 없었다. 1998년 6월 최은택 감독한테서 사령탑 지휘봉을 넘겨받은 후 그는 최은택 감독의 기전술에 자신의 축구사상을 결합하여 팀을 지휘, 저조기에 처했던 팀을 최종 갑A의 11위로 되게 만들었다. 그 뒤 1999년은 고훈의 축구감독 생애에 있어서 휘황찬란하던 한해였다. 그해에 고훈 감독은 선후로 갑A순위 선두에 올라서는 산동노능, 북경국안, 상해신화, 사천전흥, 중경융흠 등 5개 팀을 꺼꾸러뜨려 일약 “거물킬러”라는 별호를 갖게 됐다. 순위 선두에 올라서는 5개 팀을 선두에서 끌어내리는 축구ㅡ 이는 중국축구사에는 물론 세계축구사에도 흔치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해 고훈 감독은 길림오동팀을 이끌고 팀을 갑A 8위에 안전하게 고착시키는데 성공했으며 또한 “중국축구협회컵” 리그에서도 팀을 4강에 선착시켰다. 2000년 그 해는 고훈 감독한테 있어서 실로 재난의 연속이었다. 그해 4월 팀성적이 부진인데다 산동원정에서 경기를 지휘하던 고훈 감독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잔디밭에 쓰러졌다. 그 해 길림오동팀은 조영원 감독이 잠시 맡았다가 다시 염승필 감독한테로 넘어갔으며 계속 부진을 겪다가 결국 7년간 지켜오던 갑A리그에서 강등한 동시에 그해 12월 찬바람이 몰아치는 엄동속에서 절강에 매각되어 연변을 떠나게 되었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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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 할 수 있는 무형산업 (5) 연변축구 공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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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할 수 있는 무형산업 (4)
- 편집자의 말: 연변축구는 전통이 있고 역사가 길며 중국 축구사상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좌절, 곡절과 진통 그리고 억울함도 많이 당했으며 서기 1965년엔 전반 중국축구리그를 평정한 영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동포투데이”는 민함 선생과 예약하여 “연변축구 잘 될 수 있는 일종 무형산업”이란 제목으로 연변축구 특별기획으로 된 글을 연재하기로 했다. 연재기간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갑급리그에서의 연변팀 현황 분석도 하게 됨을 알리는 바이다. 편집자 ◐민함 연변축구의 순수하다는 것은 잡질이 적다는 것이다. 금을 놓고 말하면 함금양이 높다는 것일 수도 있다. 연변축구의 순수함을 말할라치면 여러 가지로 나열할 수 있으며 또한 길어진다. 주지하다싶이 연변은 중국 내에서 작디 작은 지역에 불과하다. 인구는 200여만, 그 중 조선족 인구는 현재 80만명에도 못 미친다. 그러니 원래의 이치대로 연변에서 축구팀을 만들자면 내지의 한족도 데려오고 한국이나 조선 혹은 일본에서 데려오며 또한 유럽이나 남미, 아프리카에서도 데려와야 할 것 같다. 이른바 “8국 연합군”을 구성해야 내지의 축구팀들과 대결이라도 벌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를 아니하다. 내지에서 축구하러 연변으로 오기보다는 연변선수들이 내지로 진출하는 경우가 더 허다하다. 그제날 1950연대에는 중국내 조선족 선수가 없는 구단이 별로 없을 지경이었다. 지금도 중국내 몇몇 구단에는 박성, 김경도, 한청송, 최영철, 배육문, 문호일 등 선수들이 활약하며 지난해에는 축구명장 고종훈의 아들 고준익군이 일본프로축구에 가담하면서 중국조선족 중 첫 “해외파” 선수가 탄생하기도 했다. 그럼 연변은 중국에서도 유명한 “축구의 고향”이라는데 왜 중국 내지의 선수들과 외국선수들이 오지 않거나 오는 것을 이렇게 저렇게 꺼리는 걸까? 여기에 그럴만한 이유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선 축구운동이 활발하고 보급이 잘 된 반면에 프로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외부환경이 비교적 열악하다. 경제환경으로 놓고 볼 때 2013년 북경시의 GDP는 1950만 6000억 달러가 되고 연변의 GDP는 고작 853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 차이를 비교해보면 경악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구단에 대한 투자가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북경에는 슈퍼리그 구단과 갑급리그 구단을 포함해 3개 구단이 있는데 그 중 슈퍼리그인 북경국안은 1년 투자액이 인민폐로 수억위안에 달하고 기타 갑급구단인 북경팔희와 북경이공 역시 수천만원위안에 달한다. 하지만 연변은 이 몇년간 갑급구단인 연변팀에 1000만위안 정도밖에 투입하지 못했으며 그것도 정부의 도움에 크게 의뢰하다가 올해에 들어서야 겨우 스폰서(贊助商)를 찾아 제대로 된 시장화로 나가기 시작한데 불과하다. 선수들한테 차례지는 대우 역시 정비례가 된다. 연변에서 내지로 진출한 부분적 선수들에 따르면 그들은 연변에서 1년간 벌 돈을 내지의 구단에 가면 2개월이면 벌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 사례로 현재 북경국안에서 뛰고 있는 박성이 연변에 있을 때 연변팀의 절대적 주력으로 6년간 연변축구를 위해 6년간 의바지해 왔으나 그 6년간 번 돈으로 아파트 한채도 구입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한편 중국 내지의 선수들과 외적용병들이 연변으로 와서 축구하기를 꺼리는 다른 한가지 요인은 훈련이 고된 것이다. 연변조선족 축구선수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발기술이 내지의 선수들보다 못하고 신장도 보편적으로 작다. 그러기에 이 페단을 미봉하기 위해 연변구단은 강훈련으로 체능과 정신력 향상에 모를 박고 있는 상황이기에 훈련이 고될 수밖에 없다. 대우가 보잘 것 없는데다 훈련까지 고된 선수생활, 누구나 오기를 저어하며 혹간 연변구단에 가담하는 선수들을 보면 내지에서 주력멤버에 들지 못하거나 다른 기타 이유로 오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여하튼 이런 저런 요인으로 우리 연변팀은 그제날에도 그랬거니와 현재도 기본상 조선족들로 선수진영을 이루고 있으며 외적용병 또한 지난해부터는 한국으로부터 데려 왔기에 국적만 다를뿐 혈통은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다 같은 조선족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그 순수도가 중국내 축구단계열에서는 물론 세계 각국의 구단중에서도 아마 손가락안에 꼽힐 것 같은 생각이다. 이렇듯 중국축구무대에서의 순수한 연변축구이다. 기타 지방과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중국축구무대를 놓고 볼 때 북경, 상해, 료녕, 광동 등 몇개 지구의 구단들에 자지방 출신선수들이 좀 있을뿐 많은 지방의 구단은 자지방 출신선수가 전혀 없는 이른바 “오합지졸”들로 구성, 그 중 가장 돌출한 구단이 심수, 섬서, 귀주 등 지방의 구단들이다. 이러한 순수함으로 하여 우리는 연변구단이야말로 진정 연변을 대표하는 연변팀이며 특히 중국조선족축구를 대표하는 조선족팀이라고 감히 내놓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다음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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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축구 잘할 수 있는 무형산업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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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팀 예비팀 4 : 1로 중경역범팀 대승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 27일 오전 10시, 연길시 연변대학 서쪽 경기장에서 펼쳐진 2014 중국축구 갑급리그 예비팀 제7라운드 경기에서 연변장백산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4 : 1로 중경역범팀을 대승하면서 1선팀과는 확연히 다른 기백을 보였다. 이날 연변예비팀을 지휘한 리재호코치는 4-2-3-1포메이션을 운영했다. 연변팀은 초반부터 공격주도권을 장악하고 짧은 패스를 위주로 공격활로을 열어나갔다. 경기 21분 왼쪽변선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던 김현이 센터링(传中)하자 27번 김파선수가 그대로 슈팅을 날려 선제골을 뽑았다. 전반 25분 26번 문학이 오른쪽 변선에서 센터링한 공을 23번 원태연이 헤딩슈팅을 날린 것이 빗나갔고 1분후 프리킥기회에 김파선수가 날린 슈팅을 상대 꼴키퍼가 쳐내자 원태연선수가 달려들어가며 보충 슈팅으로 2 : 0으로 앞섰다. 후반들어 쌍방간의 공방전 중 후반 9분 역범팀의 풍경선수가 한골 만회했고 16분 23번 원태연선수가 침착하게 중거리 슈팅을 날려 두번째 골을 뽑았다. 이어 연변팀은 선수교체를 하며 진영을 조절했다. 후반 34분, 원태연선수가 재차 골을 터트리며 올시즌 연변행에서 첫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경기결속을 앞두고 역범팀도 한차례 멋진 배합으로 연변팀 문전을 노렸지만 꼴키퍼 지문일이 잘 막아내면서 최종 4 : 1로 연변예비팀이 홈장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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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팀 예비팀 4 : 1로 중경역범팀 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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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초대석] 리호은, "외적선수 경기에 적응 못해 전체 실력에 영향 주었다"
- 왕보산(중경역범팀 감독): 오늘 경기 아주 간고했다. 작년에 우리는 큰 점수 차이로 연변팀을 전승했었다. 경기전 우리가 분석한 것이 도리가 있었다. 연변팀은 이호은 감독이 지휘하는 특색있는 팀이다. 오늘 원정에서 승리한 것은 운도 따라준 것 같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우리 팀에 많은 압력을 주었다. 패스 등은 연변팀한테서 따라 배워야 할 바다. 리호은(연변천양천팀 감독): 우선 중경역범팀의 원정승을 축하한다. 왕보산 감독의 지휘하에 올시즌 슈퍼리그에 진출할 것을 미리 축원한다. 우리가 분석해 본 결과 중경역범팀은 슈퍼리그실력을 갖춘 팀이다. 오늘 우리 팀은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홈장우세를 빌어 공격을 강화, 두번째 홈장경기도 이기려고 했다. 결과 상대팀에 패했다. 몸이 금방 회복된 두 외적용병이 아직 경기에 적응하지 못해 전체 실력에 영향을 주었다. 동포투데이 김철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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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초대석] 리호은, "외적선수 경기에 적응 못해 전체 실력에 영향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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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이미지 추락한 자존심... 연변천양천 중격력범에 1대3 패배
- 【동포투데이 리포터 김철균】두 팀은 근본 상대가 되지 않는 대결을 했다. 26일, 연변 장백산천양천팀(이하 연변팀)은 연길 홈구장에서 있은 갑급 제7라운드 경기에서 중경역범한테 1 : 3으로 패하면서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게 됐다. 중경역범팀은 경기초반부터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연변팀 문전을 향해 무차별한 공격을 해왔다. 경기 11분, 코너킥을 이용해서부터의 첫 슈팅을 시작으로 역범팀은 선후로 아우그스트, 장지명, 수동육 등이 엇바꿔 가며 연변팀에 향해 슈팅세례를 퍼붓던 중 끝내 25분경 진뢰가 선제골을 터트렸다. 후반들어 연변팀은 진영을 조절, 9번 김도형 선수로 23분 원태연 선수를, 2번 이호걸 선수로 18번 박만철 선수를 교체멤버시키면서 공격을 시도했다. 후반 3분 연변팀의 스트라이커(前锋) 김도형 선수가 동료의 패스를 이어받아 돌파에 성공, 상대방 수비수 2명을 따돌리면서 동점골에 성공, 순간 분위기가 반전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잠시뿐, 2분 뒤 상대방의 9번 아우그스트가 6번 왕동의 패스를 이어받아 헤딩슈팅으로 한골 앞서게 되었다. 그 뒤 연변팀은 근육경련으로 컨디션이 말째인 한광화 선수 대신 19번 이군선수가 출전했고 20번 최민선수가 주로 수비에 가담했다. 그러면서 중원조직이 엉망, 패스 실수가 연발하고 공차단이 적시적이 되지 못하면서 후반 30분경 상대방 수동육 선수한테 추가골을 허락하고 말았다. 현재 연변팀은 1승 1무 5패 4점으로 갑급꼴지를 기록하고있다. 오는 5월 4일 연변팀은 원정에서 천진송강팀과 맞붙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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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이미지 추락한 자존심... 연변천양천 중격력범에 1대3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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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 예견했던 연변천양천 참패, 풀어야 할 과제
- ■ 김철균 이번 패전은 미리 예견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제6라운드 신강 천산전에서 연변팀의 일련의 약점들이 노출되었었다. 1 : 0으로 이겼지만 그 걸로 떠들며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이 말이다. 이번의 상대는 슈퍼리그 진출을 꿈꾸는 팀이고 또 지난해 연변 홈장에서 4 : 2로 홈팀을 제패한 팀이다. 실력을 보면 연변팀과는 도무지 비할 수도 없는 강팀이다. 슈퍼리그권 수준이다. 외적용병이 출중할 뿐만 아니라 국내 선수들도 골고루 실력을 갖췄다. 수비, 중원 및 변선과 공격라인 모든 면에서 연변팀을 압도하는 포메이션을 구축했다. 이런 강팀과의 경기ㅡ 패전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패전이 무서운 것보다는 경기에 임하는 자세상 노출된 문제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우선 지난 신강 천산전에서 돋보이던 한광화, 지충국의 활약상을 볼 수 없었으며 고만국도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지난번보다는 컨디션이 좀 떨어진 감을 주었다. 돋보이는 건 그래도 20번 최민이었다. 총적으로 선수들 거개가 경기에 임하는 컨디션이 최정상에 오르지 못했으며 지난해 도문에서 2 : 4로 패할 때보다도 경기장면이 더 엉망이었다. 가장 큰 약점이라면 패스 실수가 잦고 적극적이지 못한 침투 등이었다. 묵계적 배합이 서툴었다 그 말이다. 한편 패전은 예견했지만 반전이 기대되는 순간이 없은 것은 아니었다. 즉 후반 3분 김도형이 강행돌파로 동점골을 기록한 후 사기도 올랐고 또 몇차례의 화려한 장면도 선보였다. 그 뒤 재차 한골 더 뒤졌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패전요인이 아닌 것 같다. 연변팀은 한광화가 교체되고 이군의 출전과 더불어 중원에서 공방조절을 하던 최민이 수비선으로 처져 들어오면서 전반 진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패스실수가 더 많아졌고 공격 루트도 선명하지 못했다. 상대한테 끌려다니다 보니 체력이 고갈되는 한계를 보이면서 결국 제3호 실점도 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아무리 약체팀도 강 팀과의 경기에서 30% 좌우의 승전요소는 있다”는 말이 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상대를 잘 파악하기만 했어도 이길 가능성은 없는 것이 아니었으며 빅거나 져도 그렇게 허무하게는 지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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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전평] 예견했던 연변천양천 참패, 풀어야 할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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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연변천양천팀 중격력범팀에 1대3 패배
- 26일, 연길에서 펼쳐진 갑급리그 제7륜 경기에서 연변팀은 전반전 40분경에 중경팀의 11번 오경선수의 헤딩슛으로 한꼴을 실점했다. 후반전 연변팀은 23번 원태연을 빼고 9번 김도형을, 18번 박만철을 빼고 2번 리호걸을 교체출전시켜 공격전술을 구사했다. 후반전 8분, 9번 김도형선수의 단독돌파로 한꼴을 만회했으나 11분과 35분에 중경팀의 쾌속기습으로 두꼴을 허락하면서 1:3으로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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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연변천양천팀 중격력범팀에 1대3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