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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억만장자 “러-우 분쟁 미군 개입시 3차 세계대전 발발할 것”
    [동포투데이] 미국의 억만장자 데이비드 삭스(David Sachs)는 7일 러-우 분쟁에 미군이 개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앞서 하킴 제프리스 미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미군이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키이우가 패배하고 워싱턴이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나중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삭스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그들이 아무리 반복해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며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월 서방 지도자들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병할 가능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떤 것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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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우크라이나
    2024-05-07
  • 이스라엘, 유엔 난민구호기구 시설 공격
    [동포투데이] 6일, 외신에 따르면 5일 밤, 이스라엘 방위군은 성명을 통해 이날 국가안보총국(신베트)의 협조로 이스라엘군이 하마스가 지휘센터로 사용하고 있는 유엔 난민구호기구(UNRWA) 시설 한 곳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성명에서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최근 이 지휘센터를 이용해 이스라엘군과 인도주의 구호 차량 행렬을 여러 차례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 이 지휘센터가 가자지구 지하 터널에 있는 하마스 무장대원들에게 무기와 기타 물자를 제공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유엔과 하마스 측은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 1949년 설립된 UNRWA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요르단·시리아·레바논 등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인도주의적 구호와 교육·의료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팔-이 전쟁이 발발한 이후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한편 라자리니 UNRWA 사무총장은 라파 인근에서 발생한 공격은 가자에 안전한 곳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난 4월 30일, 라자리니는 이스라엘이 IS 직원들을 살해·구금하고 IS의 가자지구 내 건설시설을 공격했다고 비난하며 국제사회에 수사를 촉구했다. 라자리니는 또 현재 미국, 영국 등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가 현재 UNRWA에 대한 자금 지원을 재개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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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4-05-07
  • 중국-프랑스 영부인 오르세 미술관 방문
    [동포투데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6일 오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과 함께 파리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했다. 브리지트는 미술관 정문 앞에서 펑리위안 여사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두 국가원수의 부인들은 ‘파리 1874: 인상주의의 발명’ 전시회와 걸작 유화를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에 입장했다. 두 사람은 수시로 발걸음을 멈추고 클로드 모네, 반 고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 유명 화가의 인상주의 고전 작품을 감상하며 소감을 주고받았다. 펑리위안 여사는 중국과 프랑스 국민 모두 그림을 매우 사랑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양국 국민이 서로의 문화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상호 이해를 심화할 수 있도록 양측이 더 많은 교류를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술관 홀에서 두 국가 원수의 부인은 이곳을 방문한 프랑스 학생들과 따뜻한 교류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중국어를 배운 경험을 나누고 중국 문화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펑리위안 여사는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잘 배워 중국에서 공부하고 돌아다니며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격려했다. 펑리위안 여사는 또 학생들이 중국-프랑스 친선의 작은 사절이 되어 양국 국민 간 소통의 다리를 놓아 중국-프랑스 친선이 대대로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86년에 설립된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 국립 박물관으로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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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2024-05-07
  • 중국-프랑스 공동성명...“민간인 강제이주·라파 공격 반대”
    [동포투데이] 중국과 프랑스 양국은 7일 중동 정세와 관련해 공동성명을 내고 중국과 프랑스가 국제인도법에 기반한 가자 민간인 보호의 절대적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양국 정상은 더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할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과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강제 이전에 반대했다. 성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과 프랑스 양국이 국제법에 기반한 건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국제 안보와 안정이 직면한 도전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중국과 프랑스 양국은 모든 테러 폭력 행위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포함한 모든 국제 인도법 위반을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양국은 국제 인도법에 근거하여 가자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더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할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강제 이주 반대했다. 양국 정상은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확보하고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지속가능한 휴전이 시급하다며 모든 사람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 인도적 접근 보장, 그들의 의료 및 기타 인도적 요구 해결, 모든 억류자에 대한 국제법 준수, 유엔 관련 결의,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2712호, 제2720호 및 제2728호의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모두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가 2023년 10월 7일 공격 이후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보장하는 유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성명은 양국 정상이 가자지구 전체에서 인도적 지원이 신속하고 안전하며 지속 가능하고 방해받지 않고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통로와 국경을 효과적으로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은 국제인도주의 노력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명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결정적이고 비가역적으로 정치 과정을 재개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롭고 안전한 공존과 함께 공동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사용하고, 1967년 국경을 기반으로 생존 가능하고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두 국가 방안'을 구체화할 것을 호소했다. 두 정상은 지속적인 평화와 안보에 대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의 정당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이 해결책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양국 정상은 또한 역내 정세 악화 위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역내 불안정을 피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과 프랑스는 파트너들과 함께 상황 악화를 완화하고 모든 당사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성명은 중국과 프랑스가 이란 핵 문제에 대한 정치적, 외교적 해결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고 홍해와 아덴만에서 항해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정상은 또 2024년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동안 올림픽 휴전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초청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이 2024년 5월 5일부터 7일까지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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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2024-05-07
  • 이스라엘, 가자지구 라파 공격...두 가족 16명 사망
    [동포투데이] 5일(현지 시간)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두 가족 구성원 16명이 사망했다고 외신들이 구조당국을 인용해 보도했다. AFP 통신은 구조당국의 소식통을 인용해 "라파의 사망자 수가 16명에 달했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한 가족 구성원 7명과 다른 가족 구성원 9명이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의료당국은 AFP통신에 두 차례의 공격이 라파시의 서로 다른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고 확인했다. 이에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5일 이스라엘이 인질을 풀어주는 대가로 팔레스타인 과격파 운동인 하마스와 잠정 휴전에 합의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하마스의 군사적∙정치적 잠재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의 모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측이 합의 도출을 막았다는 보도를 비판하며 이 같은 보도가 협상 과정을 해치고 인질 가족들의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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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4-05-06
  • 시진핑, 마크롱-폰데어라이엔과 3자 회동
    [동포투데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일 오전(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중국-프랑스-유럽 정상 3자 회동을 가졌다.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시진핑은 마크롱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다시 한번 회동을 갖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가 올해 그의 첫 해외 방문지이며, 오늘 3자 회담이 유럽 방문의 의미를 더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시종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EU 관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유럽을 중국 특색을 지닌 강대국 외교의 중요한 방향이자 중국식 현대화 실현의 중요한 파트너로 간주하고 중-프랑스, 중-유럽 관계가 서로를 촉진하고 함께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오늘날 새로운 격동의 전환기에 접어들어 이 세계의 두 가지 중요한 힘으로서 중국-유럽 양측이 동반자적 위치를 고수하고 대화협력을 지속하며 전략적 소통을 심화하고 전략적 상호신뢰를 증진하며 전략적 공감대를 결집하고 전략적 협력을 전개하여 중국-유럽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에 새로운 기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슈유크 헝가리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의 초청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5일부터 10일까지 이들 3국을 국빈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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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2024-05-06
  • 시진핑, 파리에 도착... 아탈 총리 영접
    [동포투데이]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 국빈 방문을 시작하기 위해 5일 오후(현지시간) 특별기를 타고 파리 오를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탈 프랑스 총리가 공항에서 시 주석을 영접했다. 시 주석은 오늘(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3자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중국이 글로벌 이슈에 계속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일부 학자들은 유럽에 전쟁이 재발하고 안보와 외교를 미국에 의존하는 등의 요인으로 인해 프랑스의 불안감이 깊어졌으며, 프랑스가 유럽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올리국제공항 도착 후 서면 연설을 통해 중국-프랑스 수교 60년간 양국관계가 많은 '퍼스트'를 창조하고 결실을 맺었으며, 이는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국제 관계의 다극화와 민주화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마크롱 대통령과 새로운 정세 속에서 중국과 프랑스, 중국과 유럽의 관계 발전, 그리고 현재의 중대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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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2024-05-06
  • 전문가 “日 700년 후 15세 이하 어린이 단 1명 남게 될 수도”
    [동포투데이] 일본 사회의 저출산 현상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도호쿠대 경제학과 요시다 히로시 교수가 2024년판 '어린이인구시계' 연구보고서 2024년판 최신 개정판을 내놨다. 이 연구는 요시다 교수가 2012년 미국의 '종말의 시계'에 영감을 받아 저출산 위기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시작했다. 일본 총무성이 4일 발표한 인구추계에 따르면 일본의 어린이 인구는 1982년 이후 43년 연속 감소했다. 4월 1일 현재 거주 외국인을 포함해 일본의 15세 미만 아동 인구는 1401만명으로 전년 대비 약 33만6000명 감소했고, 연평균 감소율은 2.3%다. 일본의 아동인구는 총인구의 11.3%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감소해 195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의 저출산 추세가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요시다 교수는 이 데이터를 토대로 5월 5일 어린이날까지 어린이 인구가 13.979189명으로 더욱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어린이인구시계'는 '696년 후인 2720년 1월 5일'에 일본의 15세 미만 아동인구가 단 1명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2023년 인구시계 예측은 '798년 후인 2821년 10월 27일'이다. 이 예측의 원래 2012년 버전은 "4147년"이었다. 이는 또한 지난 12년(2012~2024) 동안 예측 시간이 1427년 앞당겨졌다는 의미이기도하다. 이러한 가속은 "2023년 일본의 신생아 수가 8년 연속 감소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총 출산율'(여성 1인당 평생 동안 태어나는 평균 자녀 수)은 1.26명으로, 인구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2.07명에 훨씬 못 미친다. 요시다 교수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로 인해 일본 젊은이들이 낮은 소득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이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동 의료비 및 급식비 무상화, 남성 육아휴직 활성화 등 보육 환경을 개선하고 육아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부모가 3~5년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 개혁을 제안했다. 그는 또 출생 수 감소 추세를 되돌릴 수 없다면 “일본은 저출산으로 멸종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일본의 어린이 인구는 1982년 이후 43년 연속 감소했다. 성별로는 남자아이가 약 718만 명, 여자아이가 약 683만 명이다. 지난해 10월 1일 현재 일본 전체 47개 도도부현의 아동 인구는 전년 대비 감소했다. 도쿄와 가나가와 현만이 어린이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다. UN 인구통계연감에 따르면, 인구추계 마감시점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전 세계 인구 4000만 명이 넘는 37개국 중 일본의 전체 인구 대비 어린이 인구 비율은 꼴찌에서 두 번째로 한국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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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24-05-06
  • 치솟는 인플레이션, ‘아메리칸 드림’ 참혹한 현실에 무너져
    [동포투데이] 사우디아라비아 매체 아랍뉴스는 최근 논평을 내고 미국의 높은 인플레이션과 물가 상승으로 민중의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기본적인 생활소비재가 감당할 수 없는 '사치품'이 되고 '아메리칸 드림'이 참혹한 현실에 무너졌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인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이 턱없이 부족하고, 민중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하는 것보다 당파적 문제를 앞세우며 민중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사의 저자인 달리아 아키디는 미국 반극단주의 센터의 집행 책임자이다. 글의 내용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최근 몇 년간, 인플레이션이 치솟으면서, 미국의 경제 상황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물가가 상승하고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의 구매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신속한 조치와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과 불확실성이라는 암울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식료품 소비지출로부터 매달 에너지 요금까지 계속되는 생활비 상승은 미국 가정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정부가 이 시급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했다. 2021년 이후로, 미국의 연간 물가 상승률은 평균 5%를 넘었다. 이와 함께 최근 수치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가 다시 급등해 지난 3월까지 12개월 동안 3.5% 올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식과 주거지 같은 기본 생필품 가격이 점점 더 비싸지고 있어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이 기본 생활소비재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뚜렷했고, 기본식품 가격 급등은 가계 예산을 더 빠듯하게 만들었다. 식품가격 상승은 저소득 가구에 불균형한 영향을 미쳐 식품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취약계층을 더욱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영향은 그 이상이다. 휘발유, 전기 에너지 비용도 급증하고 있어 예산 상황과 가계의 재정적 압박을 악화시키고 있다. 또한 유가와 공공요금이 치솟으면서 노동자 가정과 개인의 생계 능력이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출퇴근 교통비는 엄청나게 비싸고 가정 냉난방은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사치가 되었다.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가계의 재정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을 세우기보다는 무모한 지출 계획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다. 미국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재건" 법안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악화시키고 정부 지출을 급격히 증가시켜 인플레이션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미국 정부는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하기보다는 당파적 어젠다를 실무적 해결책보다 우선시해 수백만 국민이 그 결과를 감수하도록 했다. 또한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정책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느슨한 통화 정책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악화시키고 인구의 구매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연준은 완화적인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인플레이션 우려를 더욱 부추기고 경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오늘날 '아메리칸 드림'은 높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심각한 현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젊은 직장인들에게 내 집 마련과 재정 안정의 꿈은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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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24-05-06
  • UN 보고서, 가자지구 완전한 재건에 80년 필요
    [동포투데이] 2일 발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가자지구의 주택 재건은 분쟁의 추세가 계속될 경우 다음 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폭격은 지난 7개월 동안 수십억 달러의 피해를 입혔고, 가자 지구의 많은 고층 콘크리트 건물은 파괴됐다. 팔레스타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7일 쟁이 시작된 이후 약 8만 채의 가옥이 파괴됐고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평가를 통해 "가자지구가 완전히 파괴된 가옥을 모두 복구하는 데 약 80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는 2021년 위기 때보다 5배 빠른 속도로 건축 자재가 공급되고 2040년까지 복구가 완료될 수 있다. 아킴 슈타이너 UNEP 사무총장은"단기간에 전례 없는 인명 손실과 자본 파괴, 빈곤의 급격한 증가는 다음 세대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심각한 개발 위기를 촉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전쟁이 9개월간 지속될 경우 2023년 말 가자지구 인구의 38.8%였던 빈곤층이 60.7%로 증가하고 중산층의 상당수가 빈곤선 아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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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4-05-05

사람들 검색결과

  • 중국 조선족 가수·음악 프로듀서 김지문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중화권의 많은 가수 중 편곡과 가창력을 겸비한 조선족 음악 프로듀서가 있다. 그가 바로 김지문(金志文)이다. 1982년생인 김지문은 지린(吉林)시 출신으로 지린예술학원(吉林藝術學院)을 졸업하고 현재 가수,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문은 초·중학교 시절 학급의 문예위원으로 활동하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우상인 주화건·두덕위·유징칭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이 다가오자 김지문은 어머니의 뜻과 달리 지린예술학원에 진학해 노래를 배웠다. 졸업 후에는 술집에서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프로 가수에 못지않은 실력을 쌓았다는 후문이다. 김지문은 2002년부터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많은 인기 클래식을 만들었다. 2006년 그가 작곡한 원 월드 원 드림(One World One Dream)이 올림픽 노래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2007년 첫 싱글 앨범 '형제 소문'을 시작으로 2009년에는 두 번째 싱글 앨범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외로워’ 그리고 2010년에는 앨범 ‘도문 강 원’을 발표했다. 2012년에는 저장위성TV의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 ‘중국의 고운 목소리’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사랑에 미쳐’를 각색해 불러 전국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 후 2013년 선전위성TV 음악 콩쿠르 프로그램인 ‘중국음초’(中國音超)에 출연해 ‘음초가왕’(音超歌王) 칭호를 수여받은 그는 같은 해 음악선봉차트 올해의 선두 싱어송라이터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에는 앨범 ‘꿈·집’으로 제18회 중화권 차트에서 신인 음악 프로듀서상을 수상했다. 김지문은 탄탄한 편곡과 창작 능력으로 2017년 노래 ‘옛날 일은 되새길 수밖에 없다’ ‘중국 처녀’로 각각 MTV 글로벌 중화음악축제 최우수 편곡상, 베스트 10 금곡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싱글 ‘겨울철 지린에서 눈 놀이’를 시작으로 저장위성TV 음악프로그램 ‘천혜의 목소리 시즌2’ 그리고 후베이위성TV 춘제롄환야회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연예계의 한 축을 담당해 오고 있다.
    • 연예·방송
    2021-06-04
  • 中 '외교의 꽃' 미녀 대변인 - 화춘영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의 외교부는 긴장하고도 엄숙하며 또한 민감한 부문이다. 이러한 부문에서 근무한다는 건 분명 영광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자랑스럽기에 앞서 자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기민하고도 지혜로워야 하며 웅변능력 또한 비범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래에 소개되는 여성은 바로 웬간한 남자들도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는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의 일꾼, 그것도 외교부 대변인이다.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쩍하면 넘겨짚기를 잘하는 중외 기자들 앞에서 때로는 침착하게, 때로는 날카롭고도 당당하게 또한 어떤 경우에는 상냥하고도 겸허하게 기자들 앞에 나서는 그녀 - 화춘영(华春莹)은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1970년 화춘영은 중국 강소 회안의 한 간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화춘영은 별로 간부가정의 자녀라는 우월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자랐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단발머리를 하기 좋아했으며 늘 얼굴에 웃음기를 담고 있는 친절하고도 예의가 바른 소녀였다. 중학교 시절, 화춘영은 학습 성적이 돌출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남한테 뒤지는 편도 아니었다. 당시 그녀는 남자애들이 즐기는 축구운동을 좋아했으며 고중입시를 앞두고는 여학생들을 이끌고 남녀 축구 대 항전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고나 할까? 선생님과 동창생들의 눈에는 조용하고도 기타 사심이 없어 보이는 화춘영 - 그한테는 조용한 가운데 강인한 일면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그녀는 대학교 숙소의 ‘영춘화(迎春花)’로 불렸지만 대학교 4년간 그녀는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극소수 여학생 중의 한명이었다. 이렇게 아련한 것 같으면서도 강한 일면이 있고 또한 다른 측면으로 보면 부드럽기도 한 것이 화춘영의 과거의 주소라면 후에 외교관이 된 다음의 화춘영은 강자 앞에서는 약하지 않고 약자 앞에서는 또한 절대 강하지 않는 것이 외교부 대변인으로서의 현주소였다. 2012년 11월 19일, 당시 42세가 되는 화춘영이 중국외교부 브리핑 장소에 나타나자 장내는 삽시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발머리 미녀가 외교부 대변인의 신분으로 나섰으니 말이었다. “드디어 중국에도 미녀외교관이 나타났군 그래.” “그래그래, 미녀이면서도 어딘가 카리스마가 있어” 한편 화춘영의 언변과 실력에 대해 시험대에 올려 보려는 외신 기자들도 없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엉뚱한 속셈을 가졌던 외신기자들도 눈알이 동그랗게 되면서 잠잠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날카롭다가도 다시 친절한 화춘영의 언어실력은 장내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긴 화춘영은 외교부에 갓 입문한 햇내기가 아니라 이미 거의 20년간 외교전선에서 단련된 외교능수라는 것을 외신기자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사실 화춘영이 중국 외교부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3년이었다. 외교부에 입문한 화춘영은 선후로 서 유럽사(司) 과원, 주 싱가포르 대사관 수행인원, 3등비서, 외교부 서 유럽사 3등비서, 부처장, 주 유럽연맹 사절단 2등비서, 1등비서, 참사관, 외교부 유럽사 참사관 등 직에 머물다가 2012년 강유(姜瑜)에 이어 중국 외교부 보도 사 부사장으로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중국외교부 대변인으로 부임, 중국외교부가 대변인 제도를 건립한 이래 모두 5명의 여성대변인이 탄생했다. 역대 중국외교부의 여성대변인들로는 각각 이금화(李金华), 범혜연(范慧娟), 장계월(章启月), 강유와 화춘영이었다. 알려진데 의하면 화춘영이 외교사업에 종사한 28년 간 유럽사 및 유럽, 아시아 지구에서 근무하면서 비교적 풍부한 외교경험과 양호한 소통능력을 키웠으며 외교부 대변인으로 되기에 매우 합당한 인선이 되었던 것이다. 화춘영은 늘 “나는 최선을 다 하여 모든 이들을 도와 적시 적이고 정확하며 또한 전면 적으로 중국의 외교정책을 요해하게 하는 동시에 나 역시 모든 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평등하게 교류하며 그리고 양호하게 합작하는 것으로 중국과 세계와의 상호 요해와 이해, 신입과 합작을 추진하기에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군 했다고 한다. 화춘영은 진실로 그렇게 했다. 2012년 11월 16일, 화춘영은 중국외교부에서 개최한 정례브리핑이 거의 마무리가 될 무렵에 중국외교부의 신임대변인의 신임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그 때 그녀는 외교부의 제 27번째 대변인이자 5 번째 여성대변이기도 했다. 당시 자기의 어깨위의 책임이 중대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화춘영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는 한창 심각한 조정 시기에 있으므로 중국은 세계를 더욱 많이 요해해야 하며 세계 또한 중국을 더욱 많이 요해해야 한다고 표했다. 이어 11월 19일, 화춘영은 정식으로 중국외교부의 정례 브리핑을 주최, 브리핑에서 화춘영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연임 후 첫 출국방문이 아시아태평양 지구를 선택한 것과 중국공산당 제 18 차 당 대회 이래의 중국의 외교정책 등에 관한 기자들의 물음에 답하면서 논리성이 강한 그녀의 답변과 막힘없는 화술구사는 모든 기자들의 찬탄을 자아내면서 중국의 젊은 여 대변인의 매력과 풍격을 충분히 과시하였다. 그 이튿날 중국 홍콩의 한 매체는 당시의 정경을 두고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1월 19일 오후, 외교부의 신임대변인 화춘영이 첫 브리핑을 주최, 20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화춘영은 선후로 10명에 달하는 중외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주었다. 중일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구 전략 및 향후 어떻게 매체를 대하겠는가 하는 것을 두고 경외 기자들은 불쑥불쑥 ‘도전적’이고도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으나 신임대변인 화춘영은 기민하고도 자유자재로, 개방되고도 솔직하게 답했으며 난감한 문제들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대범하고도 상세하게 답변하여 모든 기자들의 긍정을 받았다. 브리핑이 끝난 후 화춘영은 웃음기가 어린 얼굴을 하고는 처음으로 발언대에 올라 기자들한테 진심으로 소통하고 평등하게 교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뒤로부터 중국과 외국의 매체의 기사들에는 중국외교부 대변인 화춘영이란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면서 그 이름은 지구촌 방방곳곳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화춘영은 외교부 대변인이란 본직에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이어 2020년 1월 1일, ‘중국부녀’ 편집부로부터 ‘2019년 10대 여성인물’로 평선 되었고 2020년 9월 8일에는 전국 코로나 19 대응 선진개인 및 전국 우수 공산당원으로 선정 되기도 했다. 현재 화춘영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보도사(司) 사장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 사람들
    2020-10-20
  • 中 성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의 조선족 원로가수 방초선
    ▲전설의 조선족 원로가수 방초선. [동포투데이]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베 짜기 노래’,‘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붉은 해 변강 비추네’ 등 명곡을 불러 이름을 떨친 원로가수 방초선 선생은 지난 7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국가 1급 성악가인 방초선 선생은 연변에서 북경, 전국, 나아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높은 실력을 인정받았다. 국무원에서 수여하는 “정부 특별예술가”칭호를 받은 방초선 선생은 “중국 예술가 사전”과 “중외 여성 명인 사전” 등 사전에 약력이 수록될 만큼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1932년 조선 김책시에서 출생한 방초선은 여덟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왕청현으로 이주했다. 마을의 꾀꼴새로 불리던 그는 일본유학을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외국 노래를 배우고 불러 늘 마을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15살 나이의 방초선은 길동군분구 문공단의 선전대원으로 성장하였다. 1949년 연변가무단 전신인 연변문공단이 세워지면서 방초선은 연변문공단에 전근하여 독창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초선은 연변가무단에서 화려한 데뷔를 했다. 1957년, 방초선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차 세계청년연환축제 음악콩쿠르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삐어난 목청과 춤사위로 방초선은 ‘처녀의 노래’로 수백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은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 후 방초선 선생은 공장, 광산, 병영, 향촌 그리고 변방의 방방곡곡에 무수한 발자국을 남겼고 열정과 희망을 안고 북경 최고 음악학부에서 성악공부를 계속하였다. 방초선 선생의 음악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을 말하면 인생 동반자인 남편 왕개평 선생이다. 1975년 방초선 선생은 연변가무단의 저명한 성악가인 남편 왕개평과 함께 중앙방송예술단에 전근되어 독창 가수와 성악교원으로 활동 분야를 넓혀갔다. 이 기간 방초선 선생은 북경, 연길 등 지역에서 개인 독창음악회를 가졌고 성악가인 남편 왕개평과 함께 북경, 상해, 남경, 중경, 연길, 카나다, 미국, 일본, 한국 등 국내외를 순회하면서 80차의 음악회를 개최했다. 많은 사람들은 방초선 선생을 보고 선천적으로 좋은 목청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그는 한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목소리 가꾸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방초선 선생은 음악은 자신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 무대위에서 빛났던 그의 70여 년의 예술 생애를 돌이켜보면 실로 수많은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그의 고운 목청을 타고 ‘명곡’으로 탄생했다.
    • 사람들
    2020-09-20
  • 12년의 젊음을 과외교육에 바친 오미화 씨
    [동포투데이] 오미화 교원(41세)은 조선족 교육사업에 대한 불타는 신념과 의력으로 장장 12년동안 과외교육에 몸과 마음을 이바지하고 있다. 1997년 9월에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사범분원 한어문(중국어)전업을 졸업한 오미화는 선후로 왕청림업국 조선족학교에서 4년, 한국에서 중국어 강사로 6년동안 활약하면서 번 돈으로 연변자치주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대한 일편단심과 전력투구로 풍성한 성과를 거두어 학부모와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 오미화 교원 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한 첫해에 40여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양부모가 없는 어린이 8명, 홀부모어린이 10명, 한족 어린이 9명으로서 한족, 결손가정 어린이는 인수의 65%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결손가정 어린이들은 친척 집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며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우울하고 괴벽했다. 오미화는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늘 사랑으로 어린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하나하나 녹여주고 부모들이 외국으로 돈벌이를 가고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늘 집에 가 거짓말을 하여 노인이 교원을 오해하게 하였고 노인이 간혹 어린이의 필기장을 들여다보고는 전후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담임교원만 탓했다. 오미화는 노인과 어린이에 대한 고까운 생각보다 우선 어린이가 거짓말을 하게 된 원인부터 찾기에 노력했으며 정황을 상세히 요해한 후에는 평소보다 더 따뜻한 사랑을 몰 부었다. 차츰 우울하던 어린이는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선생님을 잘 따르고 학급활동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으며 하루는 “우리 엄마가 한국에서 오면 꼭 선생님께 고운 옷을 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 오미화의 마음을 울려놓기도 하였다. 오미화는 어린이들의 정황을 요해하기 위해 늘 여유시간을 이용해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이들 특히 결손가정 어린이들의 심리를 장악하였으며 자그마한 우점이라고 보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우어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주먹이 세고 남의 음식을 잘 빼앗아먹고 수업시간 규율을 지키지 않았으며 다른 애들이 벗어놓은 신을 변기에 처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반급 청소와 좋은 일을 하는 습관도 있어 오미화는 이와 같은 우점을 칭찬하면서 남을 때리고 욕하는 나쁜 습관만 고치면 반장감이라고 하였더니 그 애는 신심과 용기가 생겨 나쁜 습관을 차차 고치기 시작하였다. 그 어린이가 된 감기에 걸려 학습센터에 오지 못했을 때에도 오미화는 학급 어린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담은 과일 구럭을 들고 찾아가 집단의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하여 이 어린이는 학습과 생활면에서 많은 진보를 가져왔으며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이제껏 반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미화의 엄마와도 같은 사랑에 받들려 많은 결손가정 어린이들이 제 궤도에 들어섰고 마음껏 배움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의 매 하나의 성적과 진보에 학부모들은 너무도 고마워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오미화의 좋은미래강습과외학습센터는 처음의 50평방미터로부터 300평방미터로 늘어나고 어린이도 처음의 50명으로부터 지금의 150명으로 늘어났으며 교원대오도 처음의 2명으로부터 지금은 10명으로 늘어났다. 이외에도 오미화는 빈곤 어린이들의 학비는 면제해 주거나 1년에 300, 500위안씩 면제해 주어 학부모들의 뒷근심을 덜어주고 있으며 왕청현회중아동애심협회, 왕청현애심어머니협회에도 해마다 500, 1000위안씩 기부하고 있다. 오미화는“학부모들의 인정을 받을 때마다 교원 사업의 신성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고 학부모들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백배로, 천배로 되는 힘을 얻게 된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후대 양성사업에 혼신을 다 바쳐가고 있다.
    • 사람들
    2020-07-11

오피니언 검색결과

  • 중국혁명에 이바지한 외국인 장군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 노농홍군이 강행한 2만5000리 장정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외국인들도 있었다. 거기에는 저명한 외국국적 공산당원이 있었는가 하면 이름도 남기지 않은 ‘무명영웅’도 있었다. 또한 장정도중 홍군을 위하여 많은 유익한 일을 한 외국인 전도사도 있었다. 그럼 오늘 이 글에서는 주로 4명의 외국인 공산당원을 소개, 이들로는 소련에서 온 이덕(李德), 조선에서 온 필사제(毕士悌)와 무정, 그리고 베트남에서 온 홍수(洪水) 등이다. ‘서양고문’ - 이덕(李德) 이덕(오토 브라운), 필명은 와플이며 소련에서 온 독일적 공산당원이었다. 그는 중국 노농홍군 장정의 전 과정을 체험했을 뿐만 아니라 장정의 중요한 결책자였으며 장정 초기의 주요한 지휘자였다. 지어는 전문가들이 중국 노농홍군의 장정을 연구함에 있어서 회피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1900년 9월, 이덕은 독일 뮌헨에서 출생, 제 1 차 세계대전 기간에 독일공산당에 가입했으며 1918년에 바이에른 소비에트 창건에 참여했다. 이덕은 1926년 독일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감급되었다가 1928년에 월옥해 소련으로 갔으며 소련에서 푸룬제 군사학원에 들어가 학습하였다. 1932년 이덕은 공산국제의 파견으로 중국 상해의 극동국에서 사업하게 됐고 그 뒤 1933년 중공 임시중앙이 상해로부터 중앙소비에트 구역으로 전이됨에 따라 이덕 역시 중공중앙 군사고문의 신분으로 서금에 가게 되었다. 소비에트 구역에 온 후 이덕은 비록 중국혁명을 방조하려는 좋은 욕망을 갖고 있었지만 착오적인 군사지휘로 홍군은 중대한 손실을 입었으며 최종 제 5 차 반 ‘토벌’전에서 엄중한 손실로 부득불 중앙 소비에트 구역에서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장정 초기, 기획결책 ‘삼인단(三人团)’의 일원이었던 이덕은 여전히 착오적인 지휘를 고집, 첫 번째는 과분하게 기밀을 강조, 전략적 전이에서 있어야 할 정치동원 등을 하지 않았고 두 번째는 소극적인 전쟁 회피의 도망주의를 주장, 중앙홍군이 장정초기에 막대한 손실을 보게 했다. 1935년 1월에 소집된 준의회의에서는 ‘삼인단’을 철회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군사에서의 박고와 이덕의 지도직을 박탈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여러 번 중앙 정치국 회의에서 그 모습을 보였다. 특히 1935년 6월, 양하구에서 있은 중앙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이덕은 중앙의 북상항일의 방침을 선명하게 지지, 장국도의 남하주장을 견결히 반대하였다. 1935년 10월, 이덕은 홍군과 함께 섬북에 도착했고 1939년 8월 연안을 떠나 모스크바로 갔다. 1974년 8월, 이덕 - 오토 브라운은 동부 독일에서 사망하였다. ‘군위 간부퇀 참모장’ - 필사제 필사제 - 원명은 김훈(金勋)이었고 또 양녕(杨宁), 양림(杨林)이란 별명도 있었으며 1898년 조선 평안북도에서 태어났다. 필사제는 1919년 조선에서 ‘3.1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후에 비밀리에 중국으로 왔다. 1924년 그는 운남 육군 강무당(云南陆军讲武堂)을 졸업하고는 황포군관학교에 입학, 선후로 구대장, 교관 등 직을 맡았었고 1925년 여름 비밀리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으며 엽정(叶挺) 독립 퇀 영장으로 북벌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 후 1927년부터 1930년까지 필사제는 소련으로 가 선후로 모스크바 중산대학과 모스크바 보병학교에서 학습, 1932년 7월에는 조직의 배치에 의해 중앙소비에트 구역에 가 홍군 제 1 군 퇀 참모장, 노농홍군 학교 교관, 홍군 제23군 군장, 월강군구(粤赣军区) 사령원 등 직을 맡아했다. 상강전역 중 필사제는 군위 간부퇀을 따라 진경(陈赓) 퇀장과 송임궁(宋任穷) 정위의 지휘 하에 맡겨진 임무를 출중하게 완성, 1935년 2월 군위 간부퇀 참모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진경, 송임궁과 더불어 간부퇀을 이끌고 ‘개전전국(开展战局)의 관건시기’에 누산관(娄山关)을 점령했다. 또한 1935년 4월, 필사제는 간부 퇀을 지휘, 전 퇀 사병들을 국민당 부대로 변장시켜 140킬로미터를 강행군 하여 계획대로 교평도(皎平渡)를 점령한 뒤 이어 지형이 험준한 요새인 통안주(通安州)를 탈환하기도 했다. 홍군 제 1 방면군과 제 4 방면군이 회사(会师)한 뒤 홍군 간부퇀은 홍군대학의 특과퇀(特科团)으로 개편되었고 필사제는 간부퇀의 동지들과 함께 장국도(张国焘)의 분열책동을 견결히 반대하였고 1935년 10월 성공적으로 섬북 오기진(吴起镇)에 당도하였다. 조선인으로서 중국혁명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필사제는 1936년 2월 22일, 홍군 제 15군단, 제 75사 참모장 신분으로 황하를 도하하는 전투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한 최후를 마치었다. 홍군 포병의 원조(元祖)’ - 무정 무정 - 원명은 김무정이었고 1905년 조선 함경북도에서 태어났으며 1923년 초 비밀리에 중국으로 건너왔다. 무정은 선후로 홍군 연장(连长), 영장과 퇀장 등 직을 역임, 아울러 중앙 소비에트 구역의 제 5 차 반 ‘토벌’전에 참가했고 중앙군위 제 1 종대 제 3 제대(梯队) 대장 겸 정위를 맡았으며 1934년 12월엔 홍군 제 3 군단 포병영 영장으로 되었다. 적의 4겹으로 된 봉쇄선 돌파 전쟁, 광서 용승 저격전(龙胜阻击战), 누산관 공략전 등 전투에서 무정은 포병영을 이끌고 맡겨진 작전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수하였다. 1935년 6월, 홍군 제 1 방면군과 제 4 방면군이 사천 무공(懋功)에서 회사한 후 장국도는 당과 홍군의 최고 지도권을 망녕되게 시도, 그 해 8월 중순, 홍군 제 3 방면 군(원 홍군 제 3 군단) 군장 팽덕회는 장국도가 군위 참모부가 각 군 사이 및 각 군과 군위 그리고 모택동 통신연락의 비밀 번호 책을 전부 압수하고 각 군과 군위사이의 직접적인 연락을 중단한 것을 적 시적으로 발견하고는 무정한테 명령을 내려 임표(林彪)가 인솔하는 홍군 제 1 방면 군과 연락을 회복하도록 하였다. 무정은 팽덕회의 명령에 따라 무전기와 비밀 번호 책을 갖고는 지남침에 근거하여 감숙의 아계(俄界)에서 끝내 홍군 제 1 방면 군을 찾아냈다. 바로 무정이 비밀 번호 책을 홍군 제 1 방면 군에 바치던 날, 장국도가 바로 중앙과 중앙 홍군을 해치려고 했던 날이었다. 이러자 모든 것을 간파한 모택동은 즉시 과단하게 홍군 제 3 방면 군과 군위 종대를 아계로 보내 홍군 제 1 방면 군으로 하여금 계속 북상하게 하여 장국도의 음모가 좌절되게 했다. 장정이 결속된 후 무정은 홍군 총부의 작전 과장, 총부 포병퇀 퇀장 직에 종사, 장기적은 포병에 종사하고 또 포병을 조직 지휘한 자격으로 무정은 ‘홍군포병의 원조’란 칭호를 받아 안기도 했다. 항일 전쟁이 승리한 후 무정은 귀국, 조선인민군 중장 직함을 받았으며 조선 임시 인민위원회 중앙위원, 노동당 제 2 서기, 조선인민군 제 2 군단 군단장, 인민군 동부전선 사령관, 수도 방위사령관 등 직을 역임했다. 무정은 1952년 10월, 오래전부터의 고질인 위병으로 사망하였다. 중국과 베트남 군의 이중 소장 - 홍수 홍수(洪水) - 원명은 무원박(武元博)으로 1906년 10월,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태어났다. 1925년 초, 홍수는 보로든의 비서로 근무하는 호지명의 요청으로 중국 광주로 왔으며 황포군관학교 학원으로 되었다. 대혁명이 실패한 후 홍수는 비밀리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32년 1월, 홍수는 홍군 중앙 군사정치 학교 선전과 과장 겸 정치 문화 교원으로 있었고 1935년에는 ‘노농극사 장정(工农剧社章程)’을 집필한 것으로 하여 박고한테 호된 비판을 받았고 이어 ‘고급특무’로 분류되어 당적을 박탈당하였으며 ‘고급특무’, ‘국제간첩’이란 딱지를 붙인 채 장정을 계속했다. 그 뒤 주덕과 유백승 등은 선전사업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홍수로 하여금 홍군 간부퇀 직속 대에 편입되게 하여 그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준의의 기간 동안 홍수는 전사들을 이끌고 거리에 나가 연설하고 광장표현을 했으며 혁명표어를 써서 붙이고 홍군 신 가요를 열창하는 것으로 많은 농공과 진보 청년들이 참군신청을 하도록 동원하였다. 이러자 중앙 종대 당위에서는 홍수의 돌출한 표현에 근거하여 그에 대한 처분을 철회하고 당적도 회복시켰다. 홍군 제 1방면군과 제 4 방면군이 회사한 후 홍수는 주덕과 유백승을 따라 좌로 군에서 사업, 후에 소속 부대가 중대한 좌절을 당하고 해산되자 홍수는 당지의 백성으로 가장, 제 3 차로 설산을 넘고 초지를 지나 천신만고 끝에 1936년 초 연안에 도착했다. 1945년 8월, 홍수는 프랑스 침략군과 싸우는 베트남의 수요에 의해 베트남으로 갔으며 많은 중요한 직무를 담당, 1948년 소장으로 진급하였다. 1950년 10월, 홍수는 사업의 수요에 의해 재차 중국에 와서 사업하게 되었고 1955년 중국 인민해방군 소장직함을 획득,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최초로 소장직함을 받은 외국적 군인으로 되었다. 1956년 여름, 폐암으로 진단받은 홍수는 중앙군위에 귀국을 청구,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가 그를 접견했으며 엽검영 등이 북경역에서 배웅하였다. 1956년 10월 21일, 홍수는 베트남에서 별세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 '삼국지' 재해석⑤ 삼국시대의 막을 올린 원소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나관중의 <삼국지 통속연의>에서 원소에 대한 평가는 매우 인색하다. 실제로 원소는 당시 대단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 한국 작가들의 <삼국지> 여러 버전들에서도 원소를 그저 그런 인물로 취급하고 비중을 두지 않았다. 원작이든 여러 버전이든 원소를 이렇게 홀시한 이유는 무엇일까? 패배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패배자일지라도 역사는 역사이기 때문에 원소에 대해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럼 원소의 역사적인 존재와 그의 행적이 어떠한 것이어서 합당한 평가를 그에게 부여해야 한단 말인가?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던 후한 말기에 한 계급을 대표하는 인물이 몇 안 되는 상황에서 원소는 사족(士族)이라는 계급집단의 대표자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가 재해석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주나라 때 천자, 제후, 대부, 사인, 서민 등 다섯 계급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 다섯 계급 중에 사인(士人)은 공부해서 출세하여 권력을 잡는 집단으로서 사대부가 되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진나라 때 귀족세습 제도를 폐지하고 간부 임명제를 실시하였고 한나라 초기 동중서에 의해 사족집단이 권력층에 대거 진출하게 되었으며 후한시기에 이르러 관료계급을 독차지할 만큼 사족집단이 힘이 컸다. 그런데 후한 시기 황제들이 나이가 어린 탓에 외척과 환관들이 권력을 점유하고 있었으며 사대부 집단은 제3의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환관이 황궁을 관리하는 것은 전례의 법이자 제도인데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하물며 선제가 막 붕어하셔서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는데 내가 또 어떻게 노골적으로 사대부의 편에 서겠습니까?” 수렴청정을 하면서 천하를 호령하던 하태후가 환관을 죽이라는 간언에 대해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우리는 당시 사대부가 하나의 강력하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원소 가문이 바로 사대부였다. 고조부부터 4대가 내리 ‘삼공(三公)’의 직무를 맡아서 ‘사세삼공’이라 불렀다. 후한의 삼공은 태위(太尉), 사도(司徒), 사공(司空)이었다. 그들의 지위는 구경(九卿)보다 높고 황제 다음이었으며 재상(총리)에 버금갔다. 원씨 가문은 사세삼공이었으니 당연히 전형적인 사족이었다. 원소는 가문이 좋은 덕인지 영제를 지키던 근위군의 두 번째 인물이었다. 첫 번째 인물은 환관 건석(蹇碩)으로서 상군 교위이자 대장이고 세 번째인 포홍(鮑鴻)은 하군 교위, 네 번째인 조조는 전군(殿軍)교위였다. 당시 환관과 외척의 다툼에서 원소는 외척의 손을 들어주었고 자신이 군벌이 아니었으므로 직접 나서 환관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 버거워 동탁을 끌어들인다. 명의상으로는 동탁의 상경을 대장군인 하진이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그 아이디어는 원소가 낸 것이다. 그 와중에 하진이 환관을 죽이는 일에 머뭇거리는 바람에 오히려 환관들 손에 하진이 먼저 저승으로 가고 만다. 하진이 죽자 눈에 달이 오른 원소가 환관 척살에 의지를 불태운다. 선한 자든 못된 자든 가리지 않고 무릇 환관이면 닥치는 대로 죽여 무려 2천 명의 목숨을 앗았다. 외척도 죽고 환관무리도 몰살되었으니 원소를 대표로 하는 제3의 세력이었던 사족 즉 사대부 집단의 천하가 되는 것이 아니냐? 사족이 벼슬길을 농단하고 여론을 통제하고 집권자로 변신하는 꿈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냐? 애석하게도 역사는 사족집단의 바람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동탁 때문이었다. 사실 동탁을 수도로 끌어들이는 일에 조조는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환관이 문제가 된 것은 그 책임이 군주에게 있고 그들의 죄를 다스리려면 우두머리를 주살하면 된다. 그것은 옥리 한 명만 맡아도 되는 일인데 왜 굳이 바깥의 장수를 부르는지 모르겠군.” 군벌을 조정에 끌어들이면 어떤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조조는 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소는 남의 칼을 빌어 사람을 잡자는 작전으로 동탁을 끌어들인 것이 결국 늑대를 집안에 불러들인 꼴이 되고 말았다. 상경한 동탁은 힘을 믿고 황제까지 갈아치우려 들자 원소가 결사반대했다. 이에 동탁은 버럭 화를 내며 손을 검에 얹고 심하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 천하의 큰일은 내가 결정하면 그만이지 감히 네가 반대해. 너는 이 동탁의 칼이 얼마나 빠른지 시험해보고 싶으냐?” 원소도 지지 않고 맞섰다. “이 세상 천지에 설마 귀하의 칼만 빠를 것 같소?” 원소는 말을 마치자마자 물러서 퇴장했고 그 즉시로 낙양을 떠나 기주(冀州)로 도망쳤다. 동탁이 원소를 추적하여 죽일 수는 있었으나 주비(周毖)와 오경(吳璟)이 만류했다. “원소는 대세를 못 읽을 뿐이지 사실 큰 뜻은 없는 자입니다.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기보다는 은혜를 베풀어 고마워하게 하는 편이 났습니다. 어쨌든 원씨 가문은 4대가 삼공을 지내서 관련자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동탁은 이 말을 듣고 원소를 발해태수로 임명했다. 어찌되었든 이 사건을 계기로 원소는 문벌이란 신분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군벌과 맞설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고 군벌로 변신하려고 마음먹었다. 동탁이 어린 황제를 지 마음대로 갈아치우자 거국적인 반 동탁 연대가 생겨나게 되었고 원소가 연합군의 맹주가 되었다. 세력이 커지면 정치적인 욕심이 생겨나고 커지는 법이다. 원소는 한복과 따로 황제를 세울 것을 모의했고 그들이 점찍은 인물은 유주목(幽州牧) 유우(劉虞)였다. 이는 동탁이 한 짓과 다를 바가 없었으므로 조조는 극구 반대했다. 원소와 조조는 어릴 때부터 불알 친구였고 젊어서 함께 황궁의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잘 지내고 있었으나 동탁이 죽고 나서 사사건건 부딪히다가 나중에 결별하고 만다.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까지는 좋은데 원수가 되어 서로 죽고 죽이는 생사결단의 전쟁까지 벌이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원소가 조조에게 원한을 품은 것은 조조가 헌제를 끼고 천하를 호령하면서부터 시작 되었던 것이다. 당시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한다(挾天子令諸侯).’는 말은 원소 측에서 먼저 지어낸 것이다. 원소의 원망을 알면서도 조조는 원소를 주목으로 임명하는 등 배려하려고 했으나 원소는 조조와의 생사결단을 내고야 마는 결심을 내린다. 한편 원소는 정치적인 감각이 한참 떨어진 인물이었다. 그 일례로 군사의 생명은 군량과 군수품인데 당시 원소의 해결책은 배고프면 약탈하고 배부르면 남은 것을 버리는 것이었다. 그 결과 군량 부족 때문에 싸우기도 전에 포기하는 자가 속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원소와 조조의 싸움에 판돈을 원소에게 거는 자가 더 많았다. 왜냐하면 조조는 출신도 그렇고 별 볼꼴이 없는 인물로 보았고 원소는 가문이 좋고 또 과거의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각 지방의 사대부 관료들이 대거 원소를 밀어주는 바람에 70만의 대군을 갖는 군벌로 성장하였다. 사족집단 외에도 천자를 등에 없고 천하를 호령하려는 조조의 움직임이 마음에 안 들어 좋게 보지 않고 원소에게 한 손을 들어주는 바람에 원소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관동연합군의 맹주였던 원소는 북쪽에 웅거하던 공손찬을 멸하고 기주, 청주, 병주, 유주의 땅을 소유하여 중국의 북방을 대부분 차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사람도 많고 세력도 크며 군사도 강력해서 조조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이에 비해 조조는 무척 딱해 보였다. 그가 가진 것은 황제 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나라 제국의 그 천자는 땅 한 뙈기, 병졸 한 명, 돈 한 푼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이 다수 사람들이 원소에게 판돈을 걸었던 것이다. 건안 5년(200) 원소와 조조의 생사결단 전쟁이 펼쳐졌다. 역사에서는 그 전쟁을 관도대전이라 부른다. 관도대전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3대 대전 중 하나이자 첫 번째 대전이었다. 관도대전은 원소와 조조의 역량 대비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소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군사적인 작전 원인 외에도 원소의 책사였던 허유가 조조와 대화했던 말을 빌어 원소의 패배 원인을 알아보자. “원소는 첫째 자기만 알아. 일단 아랫사람을 도통 믿으려고 허지 않지. 자기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면 자초지종 설명도 하기 전에 화부터 낸다네. 둘째 아량 따위는 없어. 수장이면 아랫사람이 실수하고 그래도 때론 넓은 가슴으로 품어 주기도 하고 알고도 모른 척도 해주고 그래야 되지 않나. 그런데 사람을 구석까지 몰아세운 다음 집요하게 캐물어 한 번 실수로 목 날아간 책사들 한둘이 아닐세. 한 번은 나도 곤장 200대나 맞았어. 나중에 미안한지 200냥 주더군. 셋째 원소는 자네도 알겠지만 판단력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네. 공들여 지략을 짜주면 뭐하나?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하는데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온 걸세.” “허허. 나도 곤장 200대 맞아볼까. 200냥 벌게.” 조조의 변죽 좋은 농담이었다. 조조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장난꾸러기였다. 미성년자 신분에 술 마시고 저잣거리에서 여인 희롱하기를 즐길 정도였다. 물론 책도 좋아하고 다독가이기도 했지만 주로 병법서를 읽으며 그것을 직접 실험해보고 싶어 안달 나 있었다. 이에 비해 원소는 어릴 적에 주로 집에서 책만 보는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조조의 자유로운 일탈은 그저 부러운 면모였다. 조조는 샌님 같은 원소를 꼬드겨 저잣거리로 끌고 나가곤 했다. 원소가 자기로 인해 본모습이 드러나는 걸 보는 게 조조의 즐거움이었다. 이 둘이 어느 하루 막 식을 올린 신부를 야밤에 납치하려던 것이 동네 사람들에게 걸려 줄행랑치는데 그만 원소가 깊은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원소가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했지만 구덩이가 너무 깊어 나오지 못한 채 버둥대며 진이 빠져 가고 있었다. 이때 조조가 외쳤다. “신부 보쌈한 도적놈이 여기 구덩이에 있어요!” 이 소리를 들은 동네 주민들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오기 시작했고 깜짝 놀란 원소는 초인적 힘을 발휘하여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젖 먹던 힘을 다해 뛰었다. 만약 조조의 꾀가 아니었다면 원소는 동네 사람들 매질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릴 적 샌님 스타일 원소가 꾀가 많은 조조에게 밀렸듯이 어른이 되어도 역시 그 패턴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한편 이렇듯 송아지 친구였던 두 사람이 함께 황궁에서 일했던 사이였는데 천하를 다투는 원수로 변하였고 결국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패하자 피를 토하고 말 위에서 죽었다. 만약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이겼다면 역사는 유가의 패턴으로 흘렀을 것이고 조조가 이겼기 때문에 역사는 법가의 패턴으로 흘렀던 것이다. 동탁, 원소, 조조는 서로 스타일이 현저하게 달랐다. 동탁은 현 질서를 파괴하는 자였고, 원소는 공자를 닮아 옛 질서를 회복하려 했고 조조는 상앙이나 한비자를 따라 새로운 미래사회를 구축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8
  • [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김염의 탈선행위는 왕인미와의 사통관계뿐이 아니었다.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진의와의 감정모순이 커가던 시기, 김염과 진의는 서로 별거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다. 바로 그 시기 김염은 진의의 여동생인 진문(秦文)을 불러들였다는 풍설도 있었다. 이는 우리의 관념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세상사는 가끔씩 이런 일도 생긴다는 것을 우리에게 귀뜸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헌데 김염과 진의의 여동생 진문과의 관계에 대해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이 또한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진의는 지금까지도 함구무언이라고 한다. 이러는 진의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 자기의 탈선행위 즉 왕인미와의 사통관계에 대해 김염은 숨기지 않았다는 것이 진의의 말이다. 그리고 진의가 김염한테 이혼하자고 제의하자 김염의 대답은 더욱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한다. “나의 마음속에는 임자밖에 없어. 내가 사고를 친 건 일시적으로 방황과 고민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였어. 그리고 임자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다면 나의 곁을 떠날 수도 있어. 하지만 이혼만은 안 돼!” 김염의 이 말은 그야말로 뻔뻔스러운 것이었으며 웬간한 여인이라면 결코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뻔뻔스러운 남자는 김염 말고는 천하에 있을 수가 없다고 진의는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의는 김염의 부탁대로 해주었다. 당시 진의가 생각한 것은 그래도 김염의 사회상의 형상이었고 또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한 것도 있었다. 결국 진의는 이혼보다는 별거를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로 말하면 별거란 부부로서의 허울뿐이지 이혼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별거로 있던 상대가 어떤 불행에 빠졌을 때 등 경우에는 부부란 그것이 아주 중요했다. 아니나 다를까 진의와의 별거 후 김염은 과음으로 위출혈이 생겨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다행히도 구급결과 생명은 건지었지만 신체는 이미 폐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걸을 수는 있었지만 몇 발자국 가지 못하고 숨이 차 헐떡거리군 했다. 한편 이렇게 되자 그제 날 김염의 술친구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김염의 신변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도 귀와 살쩜을 감빨며 친밀하던 정인들 역시 한명도 찾아와 문방하는 이가 없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이 된 김염은 우정과 애정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업능력마저 상실하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별거한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가슴이 아파하며 다가온 건 선량하고도 정을 중히 여기는 진의였다. 이미 폐인이 된 김염의 앞에서 진의는 더 이상 그를 나무람하지도, 귀찮아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아내의 역을 맡아하면서 김염의 수발을 들었다. 어찌 보면 진의의 개인 인생은 기구하면서도 첩첩애로였다. 1962년 남편 김염이 병석에 누운 지 2년 만에 아들인 김제(金捷)마저 정신적 충격에 의해 정신분열증에 걸렸던 것이다. 이러자 진의의 어깨위에 있는 부담은 더욱 중해지기만 했다. 집에 있을 때면 두 환자를 돌봐야 했고 또한 수입내원이 끊어지면 안 되겠기에 시간만 있으면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출연무대로 찾아나서군 했다. 1983년 김염은 병고 끝에 사망하였다. 당년 상해탄의 <영화황제>로 름름하던 모습은 찾을 곳 없고 몰골만 앙상히 남은 김염은 임종 전 진의한테 “아직도 날 미워하고 저주하는가?”고 물었다. 이에 진의는 “나 진작 당신을 용서했어요. 기나긴 인생이라 혼인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건 정상이죠. 지나간 일은 그냥 흘려 보냅시다”라고 했다고 한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진의는 김염이 사망하던 당시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염이 사망한지 얼마 안 되어 한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는데 김염의 생전에 내가 그를 잘 돌봐주지 않았다고 책망하더군요. 그래요. 김염한테는 여인이 많았어요. 또한 여인들의 호감을 살만한 매력을 가진 사내다운 남자였고 잘 생겼지요. 나 역시 그의 탈선행위를 알면서도 그를 돌봐준 건 그젯 날 그를 따르던 애모감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우리의 딸이 현재 한국에 있는데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참 이쁘게 잘 생겼어요…” 김염이 사망한 후 진의는 모든 정력을 아들 김제한테 쏟아 부었다. 간병인을 쓸 수도 있었으나 모성애 때문에 자신이 직접 아들의 잠자리를 봐주고 밥을 먹여주고, 화장실로 데려가 머리를 감겨주는 등 일들을 맡아하군 했다. 그렇게 고되고도 힘든 나날 속에서도 진의가 사회적으로 이룩한 업적은 놀라울 정도였다. 제1 회 중국 TV 금응상(金鹰奖) 우수 여배우상 획득 제 11 회 상해국제영화제 종신 성과 상 획득 제 27 회 중국 영화 금계 상 종신 성과 상 획득 2009년 2월 중국 부녀연합회와 인민일보 등 11개 중국 매체가 수여하는 <중국 10대 여걸 칭호> 획득 … 어찌 보면 진의의 인생은 2개의 인생이 서로 교차되는, 극히 모순되는 인생이었다. 그녀의 인생을 명암(明暗)으로 평가할 때 사회와 연예 권에서의 그녀 인생은 눈부신 활약과 더불어 명랑과 기백의 인생이었고 가정에 들어가서의 그녀 인생은 사회 최하층 생활을 하는 간병인, 가정주부와 별반 다름이 없는 인생이었다. 지금도 생존해 있는 진의 여사는 아들이 눈 감기 전에 한 말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죽어야 한다”는 말을 되 외우며 눈물을 짓는다. 정신분열증 환자라면 이런 말을 못하겠는데 임종을 앞두고 아들 김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하면서 울고 또 울고 한다. 휘황한 인생 그리고 고달프고도 기막힌 인생, 이는 영화배우인 진의의 인생을 놓고 볼 때 그 자체가 기나긴 대하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끝)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27
  • 함부로 여자를 건드리지 말라
    ●김희수(중국) 어릴 때 내가 살던 마을의 어느 한족 부부가 늘 싸움을 했는데 승자는 항상 아내였다. 그 시기에 조선족 여성들이 남편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지만 한족들은 달랐다. 한족들의 경우 남자들이 아내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다. 그 한족 부부는 싸운다 하면 동네가 떠들썩하게 싸우군 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싸우다가 아내가 매를 들면 남편은 무서워 밖으로 달아나군 했다. 나는 그 집의 아내가 남편을 밖에까지 쫓아오며 구타하는 장면을 서너 번 목격했다. 아내는 달아나는 남편을 따라잡은 후 한 손으로 남편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남편의 뺨을 짝짝 소리 나게 때렸다. 그 시기에 한족 남자들이 아내에게 쥐여사는 공처가였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아내에게 폭행을 당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조선족의 경우 여자가 남편을 구타하는 일은 더구나 보고 죽자 해도 없었다. 그런데 개혁개방 후 세상이 달라졌다. 조선족 남자들도 아내에게 쥐여사는 과거의 한족 남자들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간 큰 남자 시리즈까지 나왔다. 반찬 투정하거나 아내에게 말대꾸를 해도 간 큰 남자가 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여자들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 1990년대에 연변에서 잠자는 남편을 도끼로 찍어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하면 여자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했으면 남편을 죽였겠는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고 그 여자의 입장에서 이해해 보려고 해도 그 잔인한 살인까지 용납할 수는 없다. 어느 날 퇴근하는데 한 20대의 여자가 길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40대의 남자가 몇 초동안 그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담배 피우던 여자가 그 남자를 쏘아보면서 “보긴 뭘 봐?”하고 꽥 소리 질렀다. 여자의 고함소리에 겁에 질린 남자는 찍소리도 못하고 도망치듯 가버렸다. 작년의 어느 날 새벽 3시쯤에 떠드는 소리에 잠에서 깨여나 창밖을 내다보니 세 청년이 한 청년을 사정없이 구타하고 있는데 한 젊은 녀성이 곁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청년이 맞아서 반죽음이 되여서야 세 청년은 손을 떼고 가는데 그중 한 청년이 구경하던 젊은 여성을 보고 “저쯤 패주면 되니?”하고 물었고 그 여성이 흡족하다는 듯 “만족이요!”하고 대답했다. 작년의 어느 날 밤에 술자리가 끝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20대의 세 여성이 한 남성을 주먹으로 치고 발길로 차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금년 여름의 어느 날 밤에 또 한 20대의 여성이 손으로 한 남자를 가리키며 “이 아새끼, 죽여 버린다!”하고 고함치는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구타하는 건 일도 아니다. 이제는 여자가 어린이의 눈알을 뽑기도 하고 자신이 갓 낳은 핏덩이를 가차 없이 창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한다. 중국에서 남편이나 동거남의 생식기를 잘라버리는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여자가 남자를 구타하는 것쯤은 여기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여자가 무섭다. 여자에게 죄를 짓지 말라. 여자를 화나게 하지 말라. 함부로 여자를 건드리지 말라. 섣불리 여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말라. 잠을 자다가 어느 순간에 여자의 가위에 거시기가 잘리거나 여자의 도끼에 죽음을 당할지 모른다. 폭력은 남자들만의 소유물이 아니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오늘날에는 여자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한다고 해도 여성들이 남자들과 폭력 따위를 공유해서는 안된다. 남존여비사상이 지배하던 과거에 여자들이 아무리 수난을 당했다고 해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되며 그런 폭력을 정당화해서는 더구나 안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 해도 남자는 남자다, 여자는 여자답게 온순해야 한다, 이런 뜻이 아니다.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여자도 평등을 주장하며 같이 담배를 피운다면 자신의 건강만 해칠 뿐이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폭력을 휘두른다고 해서 평등을 주장하며 같이 폭력을 휘두른다면 결국 감옥행, 자신만 해칠 뿐이다. 그럼 여자들보다 10배, 100배는 더 많고 악렬한 남자들의 천인공노할 폭행은 묵과해도 좋단 말인가?! 단죄하려면 남자들부터 단죄해야 할 게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남자들의 폭행은 더없이 잔인하고 악렬하기에 본받지 말라는…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0-08-23
  •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사고
    ●김인섭 중국의 개혁개방에 가속이 붙은 가운데 조선족 인구 감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 일로를 걷고 있다. 이 현상을 두고 중국 정부는 의사일정에 상정시킨 지 오래고 여러 사회조직들과 수많은 지성인들이 부동한 분야에서 관심을 쏟고 있지만 뭇사람들은 막연히 지켜볼 뿐이다. 인구 급감으로 하여 많은 민족 관련 정책과 조치들이 늘 효과 반감이 되면서 민족자치지역의 존폐까지 의심하는 쑥덕공론 소문도 들려온다. 그러나 그 갈음으로 민족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이중 언어를 위시한 민족문화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다. 현재 나타난 조선족 인구는 통계상의 수자로서 인구구조에서 혈연적으로 조선족이지만 민족교육을 이탈 하였거나 민족어를 상실한 인구는 반영하기 어렵게 되여 있다. 이들은 아직도 실질적 조선족으로 남았지만 민족문화생활이 어려운 상당수의 부류이다. 허나 민족문화가 아직 몸에 배어 있으면서 민족문화 완전 이탈의 한계선을 밟고 좌우동(左右动)하는 세대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엄연히 직시해야 할 중대 사항으로서 전사회가 염두에 두고 하나의 중요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오늘의 민족교육 정책 수립에는 일반적 민족교육, 문화이탈의 방지, 산재인구의 문화교육, 여가의 문화교육, 탈 민족문화 가능의 동아리들에 대한 문화교육이 병행하는 대책을 세워야 하고 문화문맹들을 민족문화 반열에 복귀시키는 복합적 시책이 마련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조선족 문화인구의 실질적 감소를 억제하는 조치로서 인구감소를 방지하는 중요한 대비책이 된다. 인구의 절대적 감소와 민족문화 이탈로 민족사회는 공동체의 공동화, 민족교육의 위축, 민족문화 쇠락이라는 3중 위기를 맞고 있다. 이것은 사회 발전에 따른 시대적 아픔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적극적으로 그 발생을 최소화하고 미래지향적 전략을 펴야 한다. 지금 시급한 것은 아이들을 인위적으로 타민족 학교에 진학시키거나 또 교육 환경의 부족으로 아이들이 민족교육에서 제외되는 현상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이것이다. 조건이 구비되었음에도 아이들을 민족문화와 격리시키는 단 시적 행위와 어쩔 수 없이 후대의 민족교육을 포기하는 이 두 과제는 민족사회의 존속에 직결되는 중대사로서 장기적이고 치밀한 사업이 필요한 것이다. 오늘 세차게 일고 있는 제4차 산업 혁명은 바야흐로 지능화 시대를 당겨오고 있다. 매개인은 자기의 개성과 장점을 키우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진 플랫폼(平台)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변혁의 혼돈 속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가장 필요한 정보력, 사고력, 팀워크(团队合作) 력, 리더십(领导力) 등 기질을 육성하는 데는 민족문화가 가장 적합한 정신 인프라(基础设施)라는 이 긍정적 인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새 시대에는 고학력이나 고 학위가 아니라도 여러 문화 터전에서 원활한 교류를 진행할 수 있는 유연한 정서 지능을 지닌다면 어느 분야에서 최고로 될 수 있는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적어도 생계 걱정을 해소할 수 있다. 한족과 조선족 이중 문화가 생존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이 우세는 조선족만의 우수한 민족성이다. 우리 조선족은 나라에 기여하면서 중한 교류의 교두보 작용을 발휘하였고 민족사회도 발전시켜왔는바 이것은 우리 민족문화를 긍정할 수 있는 충족조건이 된다. 그런데 인구의 절대적 감소와 대량의 후대가 민족문화를 이탈한 결과로 인재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는 수급 모순(需给矛盾)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것은 인재의 양적 부족과 민족문화 수준의 저하라는 이중 부족 현상이 가져온 직접적 결과이다. 이것을 효용가치라는 측면에서 고찰한다면 민족문화와 민족 인재의 희소성 가치가 급등한다는 반증인 것이다. 인간은 교류 기능이 능란하고 범위가 넓을수록 더 보람 있는 삶을 영위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는 민족문화의 수용 능력, 자정 능력과 창조 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야 한다. 기성세대는 후대들에게 민족문화의 길을 개척해 주기 위하여 물심양면의 노력을 쏟아야 한다. 진입 가능한 문화 세계가 넓다는 의미는 목표 선택에서 선택지가 많고 성공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현실적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조선반도(한반도) 남북과 동시에 교류하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조선족만의 지정학적 강점으로서 반드시 반도의 평화 추세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불원한 장래 이 시대가 오면 조선족 사회는 새로운 전기를 맞아오게 된다. 그렇다면 민족사회 위기는 전화위복(转祸为福)이 되여 새 번영을 이룩하는 천재일우(千载一遇)의 호기로 되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전제는 민족문화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립하고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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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3
  • [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④
    ▲김염과 왕인미.ⓒ인터넷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왕인미는 1914년 호남 장사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녀의 부친 왕정권(王正权)은 일명의 교사로서 지식이 연박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고귀한 것은 사상이 아주 개명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왕인미한테 몇 명의 언니가 있었지만 왕정권은 딸들에게 전족(裹脚)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지어는 보모로 들어온 어멈까지도 발이 큰 여인이었다. 그리고 왕인미의 모친 역시 자상하면서도 엄한 민국의 여인이었다. 왕인미가 7살 되던 해 셋째 오빠가 몰래 밖에서 노름을 하다가 모친한테 발각되었는데 원래 몸에 병이 있는데다 아들이 노름을 하는 것을 본 모친은 너무 큰 충격을 받은 탓에 아들의 귀쌈을 세 번 때린 후 그 자리에서 쓰러진 것이 그냥 사망되고 말았다고 한다… 왕인미는 바로 이른 가정의 환경에서 자랐던 것이다… 1934년, 왕인미는 채초생 감독이 찍은 영화 <어광곡(渔光曲)>에서 여 주인공을 맡은 한편 영화의 주제가를 불러 전반 상해탄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고금중외로 연예권에서 관중들을 정복한 여 스타가 탄생하면 이에 뒤따르는 건 당연히 애정거리가 화제로 되기 마련이었다. 왕인미 역시 마찬가지었다. 당시 그녀가 추구한 남자는 바로 당시 상해탄 연예권에서의 풍류남아 김염이었다. 기실 왕인미는 명월가무단에서 가수로 활동할 당시 김염과 합작하여 영화촬영을 한 적이 있었고 당시 김염은 그녀에 대해 아주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 남자는 <영화황제>이고 여자는 <영화여왕>이라 둘은 아주 빨리 애정의 소용돌이 속에 말려들어 갔다. 헌데 왕인미의 가정에서 김염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반대할 줄이야. 하지만 왕인미는 김염이 아니면 그 누가한테도 시집가지 않겠노라며 버티었다. 지어 그녀는 신문에 글을 발표하여 “김염은 중국인이 아니지만 독립사상으로 충만된 청년이다. 때문에 난 나라를 잃은 망국자와 결혼할지언정 절대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적과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되어 왕인미는 결국 김염과 단란한 가정을 뭇게 되었다. 결혼 후 왕인미한테는 두 가지 선택이 기다렸다. 하나는 예전처럼 계속 연예 권에서 활동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집안 살림에 충실하면서 현모양처로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가정교양의 영향으로 독립자주의 의식이 비교적 강한 왕인미는 결혼 뒤에도 여전히 자기의 두 손으로 생활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 진보단체인 대붕극단(大鹏剧社)과 계약을 맺았고 또 미군 타자원으로 활동하려는 생각도 하였다. 이에 남편 김염은 견결히 반대하였다. 결국 왕인미는 김염과 타협하여 극단과의 계약을 해제하고 전심전의로 가정에 충실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결혼생활이란 일방의 희생으로 원만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어 왕인미는 임신하였다. 임신초기 여러 가지 활동으로 태아가 위험해지게 되자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여 태아가 안전하게 들어앉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유감스러운 것은 그녀가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할 때까지 김염은 겨우 한번 그녀를 보러 온 것이었다. 이는 그녀한테 큰 상처를 남기었다. 그리고 더욱 상심이 큰 것은 아이가 조산하여 8일 만에 요절한 것이었다. 이는 김염과 왕인미의 결혼생활에 어느 정도 결렬이 생기게 했다. 그 뒤 둘은 언짢은 일 같고도 자주 다투었으며 결국 1944년에는 이혼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혼당시 둘은 격렬한 다툼도 정면적인 소통도 없이 그냥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기실 당시 왕인미한테는 이혼은 하였지만 김염에 대한 미련마저 완전히 버린 것은 아니었다. 헌데 김염은 그것이 아니었다. 얼마 안 되어 김염은 왕인미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린 듯 재차 다른 여인과 결혼해 버렸다. 그것도 같은 연예권의 동료였고 거기에 왕인미보다 훨씬 젊었으며 당시로는 연예 권에서 한창 잘 나가는 진의와 결혼했던 것이다… …… 한편 그 때로부터 10년이 흐른 뒤 왕인미도 엽전예(叶浅予)란 남성과 결혼하였다. 헌데 두 번째로 결혼한 여인은 늘 알게 모르게 원래의 남자와 현재의 남자를 비교해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는 법이다. 하다면 두 남자를 비교해 볼 때 두 남자 모두 사업을 첫째로 놓는 건 같았지만 김염은 직설적이었고 엽전예는 은폐적이었다. 특히 엽전예는 왕인미와 지향하는 세계관이 부동했으며 심지어 생활습관마저 각각이었다… 둘은 상대와의 정감세계에서 점차 서로 멀어져 가면서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럴 즈음, 왕인미는 김염 역시 진의와의 결혼생활이 윤탁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비록 다시 결합하지는 못하더라도 김염과 왕인미의 옛정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가정적 환경이 주어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편 김염의 탈선행위는 왕인미와의 사통관계뿐이 아니었다. 확실한 건 아니었지만 당시 진의와의 감정모순이 커가던 시기, 김염과 진의는 서로 별거생활을 하던 때가 있었다. 바로 그 시기 김염은 진의의 여동생인 진문(秦文)을 불러들였다는 풍설도 있었다. 이는 우리의 관념으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세상사는 가끔씩 이런 일도 생긴다는 것을 우리에게 귀뜸해 주는 것도 사실이다. 헌데 김염과 진의의 여동생 진문과의 관계에 대해 확실한 것은 없다는 것이 또한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진의는 지금까지도 함구무언이라고 한다. 이러는 진의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을 것이 아닌가?…(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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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3
  • '삼국지' 재해석④ 황건적(黃巾賊)의 난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중국역사를 살펴보면 왕조가 교체될 따마다 농민봉기가 있었다. 그 중에는 성공한 봉기도 있었고 실패한 것도 있기 마련이다. 봉기가 성공하면 혁명이요, 실패하면 역모다. 또 봉기를 이끈 지도자들은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역적이다. 또한 성공하면 봉기라 부르고 실패하면 ‘난(亂)’이다. 불순한 동기와 목적으로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게 했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후한 말기에 있었던 황건적의 난이다. 황건적의 난은 후한 말 여러 전란 중에 가장 큰 전란이었다. 30만의 대군에 대륙의 반을 휩쓸었으니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한정권(漢政權)이 매우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들은 왜 목숨 걸고 난을 일으켰을까? 앞서 후한 말기 환관들이 천하를 호령했다는 당시 상황을 언급하긴 했는데 여기서 그들의 만행이 어느 정도였나는 데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영제 때 환관 중 최대 실세인 장양이란 자가 있었다. 이 자가 영제의 신임을 어느 정도 받고 있었느냐면 황제가 일개 환관을 아버지라 불렀다. “황제 폐하, 나라 곳곳에 흉흉한 얘기들로 가득 차 뒤숭숭하기 그지없습니다.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다는 기이한 현상까지 생겨나서 이런 불길한 일들로 백성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 민심이 말이 아니옵니다.” 상소문을 한 보따리 안고 황제를 알현한 관리의 말이다. “아니 별 일 다 보겠네. 암탉이 수탉으로 변하든 수탉이 암탉으로 변하든 그게 짐과 무슨 상관이더냐. 그렇지 않습니까, 아버지?” 영제는 천하의 흉흉한 민심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고 황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환관 탓이었다. “네, 황제 폐하, 위대하신 하늘의 아들이신 천자 폐하께서 들을 얘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황제가 다른 일정이 있다면서 자리를 뜨려하자 우직하고 충성스런 관리가 죽을 각오로 머리를 바닥에 박으며 또 한 마디 간언했다. “하늘의 아들이시라면 제발 이 나라를 돌봐 주소서! 폐하의 아버지는 저 간사한 환관 놈이 아니라 하늘이시옵니다! 하늘이 땅을 굽어 살피듯 천자께서 백성들을 굽어 살피는 것이 순리이지 아니옵니까? 가난과 수탈에 허덕이는 이 나라가 보이지 않습니까? 제발 저 요사한 환관들을 멀리 하시고 들어야 할 것을 똑 바로 들어주시옵소서.” 곁에서 시무룩하게 듣고 있던 환관 장양이 사악한 맘의 결정을 내린다. “황제 폐하, 또 다른 역적의 무리일 뿐입니다. 저들은 폐하가 행복한 것을 눈 뜨고 보질 못합니다. 처벌하시지요.” “아버지께서 알아서 하세요.” 충성스런 관리는 곧 끌려 나가 참수 당했다. 당시 장양은 천자를 끼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집 앞에는 날마다 뇌물을 싣고 온 가마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마가 없는 자들은 뇌물이 가득 든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 찾아왔다. 뇌물을 바치는 목적은 관직을 사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뇌물의 값어치에 따라 관직 등급이 달랐다. 심지어 관직을 외상으로 파는 일까지 있었다. 어느 한 번 가산을 몽땅 털어 갖고 온 한 젊은이의 뇌물이 눈에 차지 않자 장양이 잔머리를 굴린다. “내가 자네 관상이 마음에 들어서 말이야. 정말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기회이지만 하나 방법을 마련해 주겠네. 외상으로 관직을 사게. 물론 갚을 때는 원래 값보다 두 배로 갚아야 하지만 걱정할 필요 전혀 없어. 그 정도는 백성들에게서 충분히 빨아낼 수 있네. 어때 할 수 있겠나? 낙양에 근사한 자리 하나 줌세.” 변변치 않는 뇌물을 들고 온 젊은이는 지옥에서 천당에 옮겨진 듯 갑자기 세상이 훤히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매관매직이라는 비리를 해 먹다 못해 싹수가 보이는 젊은이에게 외상으로 관직을 팔아먹는 일까지 있었으니 그들의 부정부패는 실로 가지가지였다. 후한 말기는 장양을 비롯한 환관들의 전성기이자 전횡기였다. 환관들은 일족이나 양자를 관리로 중용하고 관료나 호족과 결탁하여 중앙이나 지방의 관계에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정권을 독점했다. 그들은 뇌물을 받고 부정한 선거로 관리를 등용하였으며 백성들에게는 혹독한 가렴주구로 일관하여 호화 방탕한 생활을 일삼게 되니, 부정과 부패가 사회에 만연했다. 이것이 결국 황건적의 난을 불러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장각(張角)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관직 등극에 실패한 그는 매일 산에 올라 약초를 캐는 것으로 세월을 죽이고 있었다(요즘 대한민국 역사 강의자로 가장 ‘주가’가 높은 설민석 선생은 자신이 지은 <삼국지>에서 ‘장각은 과거시험에 실패한 선비출신’이라고 했는데 당시는 과거시험이 없었고 관직은 효와 예를 바탕으로 하는 윤리도덕을 갖춘 선비들이 천거(薦擧)에 의해 등용되는 것이 제도였다. 환관들이 이 제도를 무시하고 매관매직했으며 진짜 과거시험은 수나라 때 수 문제에 의해 창설된 관리 선발 제도였다). 장각은 어느 날 산에서 남화노선이라는 산신령을 만난다. 산신령은 그에게 책 한 권을 준다. “이 책으로 도술과 신통력을 익혀 좋은 곳에 쓰게나. 만약 나쁜 쪽으로 쓴다면 세상이 뒤집어질 것이니 명심하오.” 책 제목은 ‘태평요술’이다. 장각은 태평요술을 익혀 바람과 무술을 관장하는 도력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낭야(산동성)의 우길(于吉)이 창시한 것을 이어받아 부수주설(符水呪說)로 질병치료를 행하여 민심을 얻었다. 장각은 <대현량사(大賢良師)>라고 자칭하고 병자에게 죄의 참회를 구하고, 돈이나 영수를 마시게 하고 주문을 외워서 신의 용서를 청하는, 그런 방법으로 포교를 했는데 십 수 년 사이, 신자는 중국 동반부의 넓은 지역에 걸쳐서 수십만 명에 이르고, 36의 <방(方)>이라고 하는 집단으로 조직되었다. 대방(大方)은 1만여 명, 소방,(小方)은 6000~7000명인 이 조직을 만들었다. 장각이 만든 이 조직을 태평도라 불렀다. 장각은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30여 만이 되는 신도를 모을 수 있었을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환관의 천하가 된 조정은 백성들의 삶을 살피지 않아 그들은 정권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태평도를 유일한 희망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아울러 태평도는 말 그대로 세상을 균등하고 평화롭게 한다는 뜻이므로 이것이야말로 백성들이 원하는 바였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둘째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궁핍한 백성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병이 나도 병원을 찾지 못하고 민간요법에 의한 치료가 매력적이어서 이에 몰리기 마련이다. 태평도가 바로 이 역할을 했다. 같은 시기 서방의 파촉 및 한중 지역에서 발전한 오두미도(五斗米道)가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져 세력을 확대해가고 있었는데 좌절과 실의에 빠진 농민들 사이에서 태평도(太平道)와 오두미도의 광신도가 되었다. 신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정치적인 욕심이 생겨난 장각은 184년에 황건적(黃巾賊)의 난을 일으켰다. 장각이 이끈 이 태평도의 각 지부가 군사조직으로 전환되어 일어난 대규모 농민봉기이다. 중국의 전통적 오행설에 의하면 불에서 흙이 생성된다. 이들은 화덕(火德)에 해당하는 한나라는 곧 몰락하고 이어서 토덕(土德)에 해당하는 황건의 세상이 다가올 것이라고 굳게 믿고, 머리에 새 세상을 상징하는 황색의 띠를 동여매었다.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한꺼번에 36만이 봉기한 이 전대미문의 항쟁은 들불처럼 광대한 지역에 번져나갔다. 장각은 천공(天公)장군이라고 하고, 아우인 지공(地公)장군 장보, 인공장군 장양과 함께 반란의 지도자가 되었다. 황건군은 그해 가을 주모자 장각이 죽고, 동생 장량, 장보 또한 전사하는 등 유능한 지도자를 잃고 주력군이 쇠미해졌으나, 각지에서 약 30년간 끈질긴 항쟁을 벌였다. 대규모 농민봉기에 봉착한 지배층은 즉시 권력투쟁을 중지하고 당고를 해제하는 등 호족세력을 무마하여 항쟁의 진압에 안간 힘을 썼으나, 유명무실한 왕조체제를 유지할 뿐이었다. 목적이 좋다한들 결과가 좋다는 법은 없다. 장각이 이끈 태평도, 정부 입장에서 말하는 황건적의 난은 1851년 홍수전이 이끈 태평천국운동처럼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농지의 균등 분배, 남녀평등, 사회 악습의 철폐 등 구호를 내세운 태평천국운동은 초기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 성세호대 하였다. 남경에 정부를 세운 이후 승리에 도취되어 기강이 해이해졌고 따라서 금욕정신을 제창하던 홍수전은 황제로 등극하고 전통왕조와 다를 바 없는 정치를 펼치려 하였고 그를 따르던 무리는 백성의 지지를 받고 나서 돌아서서 백성을 수탈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14년 세월을 가다보니 중도에 초심을 잃은 것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장각의 태평도도 홍수전의 태평천국처럼 출발은 좋았으나 30년이나 가는 도중에 백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나쁜 조직으로 변질되었고 내부 조직이 권력다툼으로 와해되어 결국 실패하게 된다. 이것이 태평도의 실패에 있어서 주관적인 원인이라면 외부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와해를 앞당기게 된다. 외부세력이란 진압군이다. 옛 유비의 스승이었던 노식과 황보숭, 주준 등 3명의 장수가 황건적과의 전투 부대로 편성되고 조조도 기도위에 임명되어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한편 강동의 손견도 하비에서 부하 황개, 한당, 정보, 조무와 함께 1500명의 군대를 이끌고 토벌에 참여한다. 그리고 유주의 탁현에서는 유비가 장비, 관우와 함께 의형제를 맺고 수백 명의 장정들을 모집했는데 모집된 용사 500명을 이끌고 황건적 토벌에 나선다. <삼국지>는 후한 말기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서술하고 나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를 맺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들은 황건적 난에 맞서 싸우려는 결의를 다지는 것이다. 황건적의 난은 진압되고 만다. 하지만 그 근간인 태평도는 오두미도와 함께 도교 형성의 토대가 된다. 무슨 말이냐면 본래 공자의 유학이 한 무제 때 동중서에 의해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면서 유교로 되었고 노자의 도학은 이렇게 후한 말기에 이르러 태평도와 오두미도에 의해 도교로 변화되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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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0-08-16
  • [연재] 진의(秦怡)-눈물겨운 김염(金焰)과의 결혼생활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진의와 김염이 결혼하자 모든 친구들이 진의를 대신하여 기뻐해 주었고 진의 또한 이전 혼인의 음영에서 벗어나 진정한 남자다운 남자를 만났다고 내심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김염의 나쁜 습관은 결혼 첫 날부터 드러났다. 결혼식 날 김염은 입이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셨고 흐트러지게 만취상태가 되었으며 집안 바닥의 여기저기에 토해놓았다. 이러자 진의는 만취한 김염을 달래어 침대에 눕게 하는 한편 난장판이 된 방안을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다. 아니 이보다는 심리상의 불안이었다. 전 남편 진천국이 주정뱅이더니 김염도 같은 <술 귀신>이 아닐까? 그녀는 김염만은 진천국 같은 남자가 아니기를 맘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비록 마음속으로는 불안했지만 필경은 신혼이라 진의는 이러한 불안은 피면할 수 없으며 앞으로의 결혼생활은 보다 많은 아름다운 여정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그런데 결혼 후 김염과 같은 방안에서 생활하면서 시간이 길어질수록 진의의 실망은 점점 커가기만 했다. 왜냐하면 김염은 거의 매일 밤마다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는 날이 밝을 녘에야 집으로 돌아 오군 했으며 또한 그럴 때마다 인사불성이 되군 했다. 진천국보다 더 심했지 조금도 나은 점이 없었다. 진의는 어릴 적부터 대 봉건적인 가정에서 자랐기에 여자로서의 어느 정도 인내심이 있었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묵묵히 모든 것을 참으면서 이한 가정을 잘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아울러 자녀 1남 1녀를 낳기도 했다. 한편 김염은 아주 출중한 인재로서 한시기 전체 상해탄을 휩쓸었던 영화황제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술 마시기를 즐기는 것 외 김염은 다른 흠집이 크게 없었으며 진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나이인 것만은 분명했다. 적어도 자기의 자식을 남한테 주려고 한 진천국보다는 인격상 고상하다고 점찍을 수 있었다. 또한 진의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남자의 스타일은 진천국보다는 김염같은 어딘가 고집은 세지만 떳떳한 그런 사나이 스타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의는 가정과 사업을 따로 생각하는 여인이었다. 결혼생활이 그닥 이상적이 되지 못하자 그녀는 사업에 일심의 정력을 몰부었으며 해방 후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보면 그녀의 출중한 연기력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진의는 1961년 중국의 <22대 영화스타> 평의에서 제12위로 입지를 굳혔으며 또한 그 때 그녀의 나이는 39세로 더욱 휘황한 앞날이 기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이 50살을 넘긴 김염은 여전히 낡은 시대의 생활방식을 고집, 술을 마시고 집에서 꽃을 가꾸고 강아지를 키우는 등으로 남들이 보는 시선이 그닥 곱지를 아니했다. 그리고 가끔씩 성격이 조폭하여 남한테 미움을 사기도 했으며 점차 그 누구도 그와 합작촬영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진의는 자주 김염한테 그런 자본주의 시대식 생활방식을 버리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강한 김염은 외부로부터 오는 시선 때문에 자기의 생활방식을 고치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사회의 환경에서 김염의 이런 아집은 자아고립을 자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적당히 어울릴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렇게 환경에 어울리지 못한 김염은 자연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그렇게 되니 그의 인생은 피곤했으며 한편 김염 또한 자신의 인생에 위안이 될 수 있는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 돌파구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이런 시기에 김염의 인생에는 그의 본처 왕인미(王人美)가 다시 뛰어들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김염이 왕인미를 불러들였느냐 아니면 왕인미가 김염을 유혹했느냐 하는 것은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당시 진의는 사업이 한창 분망한 시기라 늘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촬영을 하였기에 부부 사이에 교류하는 시간이 갈수록 적을 수밖에 없었으며 남편 김염의 신변에서 일어난 변화에 대해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터였다. 그러다가 타인의 입을 통해 김염의 탈선행위를 알게 되었을 때 진의가 받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다음에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15
  • 민족과 모국어에 대한 생각을 말한다
    ●김호웅(연변대학조한문학원교수) 요즘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안티 이오스와 조선족>>(최학송, <<안티 이오스와 조선족>>, 길림신문, 2019.3.4.)이란 글과 <<우리말 굳이 배워야 하나>>(대가 숲을 이룰 때, <<우리 말 굳이 배워야 하나>>, zhixinzhe512.)라는 글을 읽었다. <<우리말 굳이 배워야 하나>>의 작자는 <<안티 이오스와 조선족>>라는 글에서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안티 이오스 장군의 이야기를 통해 연변을 비롯한 조선족 공동체의 붕괴 또는 부재를 기성사실화하고 있다. 안티 이오스는 천하의 장사였지만 대지에서 발을 떼는 순간 힘이 빠져 웬만한 상대에게도 번쩍 들려 바다에 처박힌다고 한다. 조선족 사회도 대지를 떠난 안티 이오스가 되어 버렸으니 우리 족보와 같은 것들을 일찌감치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 저장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선족 공동체 재건을 위한 움직임이 들불처럼 타오르는 마당에 이런 말을 하는 친구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은 주로 <<우리 말 굳이 배워야 하나>>라는 글에 대해 토론하고자 한다. 이 글은“누구도 같은 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두 번 발을 담글 때 강은 같은 강이 아니고, 그도 같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라는 고대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리투스의 만물류전(万物流转)의 사상에 철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되며 역사는 오늘의 거울이 된다는 진리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산해관이남의 대도시에 자리 잡은 젊은이들이 그 옛날 선비족(鲜卑族)처럼 강세문화 속에 깊이 들어가 스스로 발을 빼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철을 밟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비족은 옛날 북방에서 우리민족과 이웃해 살았고 종횡무진으로 맹활약을 했다. 그들은 선후로 10여개의 나라를 건립했고 중국의 절반 강산을 통치했다. 하지만 오늘 중국의 56개 민족 중에는 선비족이 없다. 지금 선비족의 일부 후예들이 시버족(锡伯族)이라는 이름으로 신강, 요녕성과 길림성의 일부 지역에 남아있다만 그들은 이미 망망대해와 같은 중국에서 창해일속과 같은 존재로 되여 버렸다. 물론 <<우리 말 굳이 배워야 하나>>의 작자는 자신의 절실한 체험을 통해 산해관 이남의 대도시에 있는 조선족 젊은이들의 고충을 대변하고 있다. 현지에 조선족 유치원이나 소학교가 없으니 자녀를 다른 민족의 유치원이나 소학교에 보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설사 가정교육을 통해 우리말과 글을 배웠다해도 초급중학교, 고급중학교에서 대학교까지는 어차피 한어를 써야 하고 한어의 수준여하가 학업성적과 졸업배치를 좌우지하게 된다. 그러니 어차피 다른 민족의 유치원이나 소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는 게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절해고도와 같은 상황에서도, 디아스포라로 천애지각을 떠도는 경우에도 자식들에게 모국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쳐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유태인이 그러하고 중국인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제가 <<새는 좌우 두 날개로 하늘을 난다>>(김호웅, <<경계의미학과창조력>>, 연변인민출판사, 2019년 판.)라는 글에서 사례로 든 연변대학의 유일한 러시아인교수 다위도브선생의 자녀들이 그러하고 한국대전의 홍문장 중화요리집주인 왕 씨네 자녀들이 그러하다. 이중언어 구사 능력을 글로벌시대의 중요한 자본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대도시에서 끝끝내 자식들을 모국어를 아는 사람으로 키워냈다. 자식들에게 모국어를 배워주자면 적어도 자식을 가정에서나마 모국어환경에 노출시켜야 하는데 이는 우리 젊은 부모들의 목표와 의지여하에 달린 문제이다. 우리 젊은 부모들이 가정에서 중국어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자식을 모국어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드는 이다. 그런데 <<우리 말 굳이 배워야 하나>>라는 글을 보면 논리적으로 앞뒤가 서로 모순이다. 전반부에서는“이제 우리와 조선어의 관계는 가부장제혼인에서 벗어난 자유연애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그러나 후반부에 와서는‘엄마의 언어’즉 모국어의 가치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해 강조했다. 참으로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모국어를 버리고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바람직하다는 말인지, 아니면‘엄마의 언어’모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인지 앞뒤가 서로 모순된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작자의 논지는 분명하다.‘강물’이 바뀌었고‘사람’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즉 세상이 변한 것만큼“누구도 우리에게 민족주의를 강요할 권리가 없으며 더욱이 우리 자녀들에게‘민족’을 부담으로 넘겨줄 필요는 없다”, “민족주의를 벗어날 때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체성을 잃고 주류문화에 두 손을 들고 나앉은 사람들, 달갑게 주류문화에 동화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이란 역사성을 띤 개념이요, 민족주의 역시 모든 역사단계에서 다 부정해야 할 명제가 아니다. 민족이란 개념을 두고 많은 견해들이 대립, 충돌하고 있다. 원초론과 근대론이 대표적이다. 스딸린은 원초론적 관점에서 민족이란 역사적으로 형성 되였으며 공통의 언어, 공통의 지역, 공통의 경제생활 및 공통의 문화생활에서 보여준 공통의 심리자질을 가진 안정된 하나의 공동체라고 하였다. 하지만 베네딕트앤더슨은 민족은 근대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역사적 구성물로서 그것은‘상상의 공동체’라고 하였다. (베네딕트앤더슨 저, 윤형숙 역, 〈상상의 공동체〉, 나남, 2003.) 앤서니스미스 같은 학자는 원초론과 근대론의 종합과 절충을 시도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원초적 요소에 기반을 둔 근대적 민족을 강조했다. 즉“민족은 공간적으로 위치 지어진 과거를 공유하는 전통을 기반으로 형성된 집단적 정체성”을 그 표지로 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민족은 근대에 와서 갑자기 나타난 이 아니라 근대 이전의 시간 속에 뿌리박은‘손에 잡히는 민족정체성’의 재료로부터 구성된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는 신화의 공유뿐 만아니라 역사적 기억의 공유가 있고 언어적, 문화적 전통의 공유라는 요소들이 있다고 하였다.(앤서니스미스 저,이재석 역, <<민족과 인종의 기원>>, 그린비, 2018.) 민족이란 이렇게 숙명적인 존재인가 하면 또 오랜 세월을 거쳐 그 구성원들의 삶의 둥지로, 운명공동체로 되여 왔다. 하기에 이어령선생은 민족은 옷처럼 추우면 입고 우면 벗어던지는 그러한 편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잘리면 병신이 되는 손과 발과 같은 소중한 존재라고 하였다. 민족공동체를 잃었을 때, 자기의 민족적정체성을 확인할 없을 때 인간은 무서운 고통과 고뇌를 경험하게 된다. 조선왕조 인조왕시기 연경(燕京)에 파견 되였던 사신들이 이러한 아픔과 치욕을 경험한바 있고 알제리인의 후예이며 마르티니크 출신인 프란츠파농(1925~1961)이 이러한 아픔과 고뇌를 경험한바 있다.(프란츠파농 저, 이석호 역, 〈<은 피부 하얀 가면>>, 인간사랑, 1998.) 또한 김사량의 단편 <<뱃속으로>>, 이창래의 장편<<영원한 이방인>> 허련순의 장편 <<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까>>에 오는 주인공들이 그러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족이 보존되고 그 민족이 강해야 그 구성원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고 사람답게 살수 있다. 민족 또는 민족국가를 잃었을 때 우리는 창씨개명, 치발역복과 같은 치욕을 받아야 했다. 민족이란 이처럼 소중한 이기에 우리 민족의 선열들은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자기의 목숨마저도 서슴없이 바쳤다. 우리 조선족의 선인들도 중국의 자유와 해방, 모국의 국권회복이라는 이중 역사사명을 짊어지고 피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웠다.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은 연변 땅에서 일어났고 우리의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은 항일부대의 주요한 성원들이였다. 이러한 민족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우리 후세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고 공연히 우리 자식들에게‘민족’이란 부담을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될까? 민족과 언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언어는 사물에 이름을 부의하고 불명확한 상황을 명료하게 정리하며 애매모호한 대상을 분명하게 규정해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 "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다. 언어를 어떤 장소라고 한다면 존재는 그 안에 거주한다. 고 하면서 언어를‘존재의 집’라고 했다. 즉 모든 사물은 언어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고 보존할수 있다. 이처럼 언어는 민족의 역사를 담는 그릇이요, 민족의 얼을 담는 항아리이며 한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징표다. 하기에 외솔 최현배(1894~1970)선생은 "우리 말과 글은 우리의 얼”이라고 했고 당신에게는 "한글이 목숨”이라고 했다. 언어는 민족구성원들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될 뿐만 아니라 해당 민족의 사고방식과 심성(心性)을 가장 잘 드러낸다.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역사와 얼은 바로 우리의 말과 글에 고스란히 담겨져 살아 숨 쉬고 있다. ‘구술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도 있지만 말과 글이 없으면 우리의 유구한 역사도 내 가슴에서 너의 가슴으로 전달될 없고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얼도 그 모습을 갖출 수 없다. 언어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역사도, 문화도, 정신도 잃게 되고 그 어디에도 몸담을 수 없는 벌거벗은 존재로 된다. 중국의 주체민족인 한족은 서로 다른 방언계통을 갖고 어 남북 사이에 서로 말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지금도 간혹 복건성 남부(闽南) 출신의 인사가 북방에 와서 연설을 하면 상용중국어(普通话)를 하는 사람이 옆에 앉아 통역을 해야만 현지 청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런데 한족이 어떻게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민족으로 되였을까? 그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한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자는 지극히 중요한 문화통일의 역할을 했다. 한자에 내재한 일맥상통하는 안정된 계승성, 공용성과 민족성은 거대한 응집작용을 했다. 한자가 없다면 한족이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만약 한자가 표의문자가 아니고 표음문자였더라면 역시 강대한 한족이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유럽처럼 몇십개 민족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이처럼 말과 글은 그 민족의 흥망성쇠와 직결되는 문제다. 물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차게 불어치고 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은 바야흐로 국경이 없고 민족의 계선이 없는 대동세계가 된 줄로 착각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너나없이 한집이 되는 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아름다운 이상이다. 그러나 그것은 멀고먼 미래의 일이지 현실의 일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보면 세계화의 진전이 빨라질수록 그만큼 민족주의 물결이 거세차게 일고 있다. 세계화는 개별국가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반면, 민족주의를 야기하고 다문화주의와 병행하게 한다. 따라서 세계화와 민족주의(또는 다문화주의)는 오늘의 세계를 움직이는 두 바퀴 구실을 하고 있다. <<우리 말 굳이 배워야 하나>>라는 글에서도‘다양화 자체가 미덕’이라 했다. 그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은‘세계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이중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켜든지 오보에를 불든지 팀파니를 치든지 자기특유의 개성을 갖고 독특한 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악기들과 하모니를 이루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 민족도 자기 문화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독특한 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민족들과 조화를 이루야 한다. 공자의 말 그대로 동이불화(同而不和)의 세계가 아니라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민족마다 최선의 민족국가를 이룩하고 최선의 문화를 일구어내서 다른 민족과 서로 교류하고 서로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세계주의와 민족주의의 이중변주곡이요, 우리가 동경하는 미래상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훌륭한 민족정책을 펴고 있다. 우리 조선족만 해도 민족자치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고 민족의 언어와 문자의 사용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 편의주의적인 발상을 가지고 스스로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리고 있다. 사실 우리말과 글처럼 아름답고 과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언어와 문자도 세상에 별로 많지 않다. 총명한 사람은 하루아침에 깨칠 수 있고 설사 머리가 좀 둔한 사람이라 해도 열흘이면 깨칠 수 있다. 또한 컴퓨터에 기초프로그램을 깔아야 기타 프로그램을 깔수 있듯이 먼저 모국어를 확고하게 배워두어야 다른 언어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이렇게 갈고 닦은 이중 언어의 능력은 우리 조선족의 양 날개로 된다. 그런데 일부 젊은 부모들은 모국어라는 한 날개를 애초에 꺾어버리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정판룡 선생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바로 다문화주의 사상이다. 다문화주의는 전통적으로 공약(公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다름과 평등’이라는 가치의 조화를 추구한다.‘다름’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평등’을 이유로 동화를 강조하지 않는 사회, 다시 말하면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기의 개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되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공유하는 사회이다. 요즘 말로 하면 다원일체의 조화로운 사회이다. 선생은 다문화사회에서 소수자는 다수자와 담을 쌓고 협소한 민족주의를 고수해서도 아니 되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낙후된 상태에서 다수자의 도움만 받을게 아니라 다수자와 적극 교류하고 힘을 비축하여 다수자에게 도움을 주고 그들의 존중을 받는 존재로 부상해야 한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이른바 평등을 이룸에 있어서 소수자의 주체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선생은 이러한 사상을 보다 널리 확산하고 우리 조선족의 피와 살로 되게 하기 위해‘며느리론’을 내놓았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중국에 시집은 왔으되 허구한 세월 친정 생각만 하고 시집살이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시집동네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이와는 달리 시집어르신을 잘 모시고 남편공대를 잘하면서 아들딸을 많이 낳아 훌륭하게 키워내서 시집마을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때라야만 비로소 친정을 도울 수 있고 친정마을과 시집마을에서 모두 사랑과 존중을 받을 수 있다.(정판룡,<<중국조선족문학의 성격문제>>,<<정판룡문집>>제2권, 연변인민출판사, 1997년 판.) 우리 조선족의 이중문화 신분을 염두에 둘 때, 또 디아스포라의 현지화는 역사의 필연이라고 할 때 정판룡선생의‘며느리론’은 우리 조선족의 바람직한 삶의 자세와 진로를 가장 형상적으로 풀이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다문화주의 사고방식에 입각해 정판룡선생은 중국의 거물급 학자들과 널리 교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 나가서도 금발 머리든 까만 머리든, 파란이든 까만 눈이든 폭넓게 친구를 사귀이었다. 또한 제자를 끝까지 옆에 두고 싶어 하는 스승들과는 달리 그들이 자기의 날개를 키워 중국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소에 훨훨 날아가 자리를 잡게함으로써 중국 경내 조선-한국학의 발전에 기여하고 우리 연변대학의 위상을 높이고 문화령토를 넓혀나갔다.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도 큰법, 밤낮 우는 소리만 하고 받아먹기만 한다면 절대로 다문화사회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허구한 세월 자포자기하고 주류사회에 얹혀사는 존재가 될 것이 아니라 자기의 정체성을 당당히 지키면서도 총명과 지혜, 헌신성으로 중화민족의 대가정에 기여를 함으로써 이 공동체의 존경받는 구성원으로 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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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11
  • '삼국지' 재해석③ 환관과 선비집단의 싸움
    ●김정룡(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앞서 2부 말미에 삼국시대가 열리기 전 전란이 당시 시대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시 전란은 모두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크게 나누면 모두 네 가지 전란이 있었다. 환관과 외척의 싸움, 환관과 선비집단의 싸움, 황건적의 난, 반동탁의 난이다. 앞부분에서 이미 환관과 외척의 싸움을 자세하게 다뤘기 때문에 본문에서는 주로 환관과 선비집단의 싸움을 다루려 한다. 선진시대(先秦時代)의 관료집단은 두 부류였다. 한 부류는 무관(巫官)이요, 다른 한 부류는 사관(史官)이다. 독자들은 무속인, 무속신앙이란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도대체 뭔 뜻일까? 무(巫)란 글자의 뜻은 위 가로는 하늘을 뜻하고 아래 가로는 땅이며 내리 줄은 하늘과 땅을 만나 교감을 이뤄내는 것인데 누가 이 역할을 담당하나? 바로 내리 줄 양 옆에 있는 두 사람이다. 뭘 어떻게 역할을 수행하나? 노래와 춤을 통해서, 즉 가무강신(歌舞降神)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민속종목에 그네뛰기가 있는데 이 그네뛰기 유래를 아는가? 농경사회에서 강수의 양에 따라 풍년과 흉년이 판가름 난다. 오월단오가 되면 파종이 끝나고 천신에게 제를 올리는 행사가 있었다. 이 행사는 거국적인 이벤트였다. 진수의 <삼국지> 고구려 편에 의하면 “매월 오월과 시월이면 나라에서 군데군데 크게 모여 연일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國中大會, 連日飮酒歌舞). 남녀 할 것 없이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머리를 땅에 향했다가 하늘을 쳐다보면서 발로 땅을 힘껏 밟는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우리 민족이 딴따라민족이 된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적어도 2천년의 역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건 그렇고 오월단오에 처녀가 그네 뛰는 것은 여자는 음이고 천신은 양이며 음의 대표자 처녀가 하늘 공종에 치솟아 올라 양신과 결합하면 비를 내를 수 있다는 민속적인 신앙행위였다. 방울을 울리는 것은 처녀가 천신과 교감했다는 것을 대지에 알리는 신호이다. 이 때 여자는 시집갔거나 나이 지긋한 늙은 여인이면 안 된다. 반드시 음기가 왕성한 낭랑 처녀여야 한다. 조선시대까지 기우제 때 거국적으로 300여 명의 무녀(巫女)가 동원되어 속옷을 벗은 채 치마를 벌리고 앞뒤로 가로세로다리를 들었다 놓았다하면서 바람을 일으키는 춤을 추었다. 무녀들의 음기발산을 통해 양신인 천신이 교감되어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다. ‘바람피운다.’는 우리말의 유래.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련다. 이런 행사를 관장하는 관리가 천관(天官)이며 <주례>에 의하면 천관은 힘이 센 관직이었다. 천관이 바로 무관이며 무관은 주로 제사를 관장하는 관직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제사행사가 으뜸의 행사였기 때문에 왕이 제사장을 겸하는 제정일치 시대였다. 이 제사장인 왕을 보좌하는 관료들 다수가 무관(巫官)이며 무관은 당시 정치무대에서 실세였다. 상나라 때까지 귀신의 일이 사람의 일보다 더 중요해서 모든 일에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점을 쳤으니 무관이 얼마나 굉장한 집단이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주나라에 이르러 귀신의 일보다 사람의 일이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즉 귀신의 중심문화에서 인간의 중심문화로 전이되는 과정이었다. 요즘 말하는 ‘인문학’은 여러 가지 세상만사가 내포되어 있으나 실제로 인문학의 뿌리는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공자의 어록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귀신을 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 而遠之).” 뭘 뜻하는가? 귀신중심시대에서 인간중심사회를 구축하려는 사상과 이념이 담긴 말이었다. 당시 공자 같은 선비들(그의 500년 선배인 주공이 물론 인문학의 창시를 열었던 것), 각 학파들의 논쟁을 통해 확실히 인간중심사회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바로 관직 중에 사관(史官)이란 관직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공자보다 더 명성이 높았던 당시 최고 엘리트였던 노자 선생이 바로 주주사(周柱史)였다. 지금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중앙도서관의 관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나라에서 기둥역할 하는 사람의 일을 관리하고 기록하는 높은 벼슬자리였다. 잠깐! 사관(史官)이라면 태사공(太史公) 사마천을 떠올리면서 역사책이나 쓰는 별 보잘 것 없는 관직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일쑤인데 노자가 맡은 사관(史官)이란 관직은 역사서를 쓰는 것이 업무인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을 기록하고 관장하는 관직이었다. 갑골문 학자들의 해석에 의하면 일 사(事)와 역사를 뜻하는 사(史)는 같은 글자에서 분리된 것이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천하를 제패하고 겸병 전쟁을 벌임에 있어서 선비들이 대거 등용되어 각국의 왕의 책사를 맡았다. 공자님도 무려 14년 동안이나 어디 마땅한 감투가 없을까 하면서 여기저기 머리를 기웃거렸던 것이다. 장자는 머리 쓰고 사람과 사람이 아귀다툼으로 부대끼는 것이 싫어 관직을 주어도 팽개치고 거지 삶을 살았던데 비해 가장 휘황찬란하게 자신의 뜻을 펼친 선비는 바로 상앙이었다. 위(魏)나라 출신이었던 상앙이 자신의 나라에서는 뜻을 펼치지 못하자 진(秦)나라에 가서 꿈을 펼쳤다. 물론 마지막 인생길은 참혹했지만 이 부분은 논외로 하고 그의 개혁업적 가운데 필자가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관료세습제를 폐지하고 군공에 따라 사회기여도에 따라 간부임명제를 실시한 것이다. 이는 중국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개혁에 꼽히는 업적 중 하나이다. 당시 주나라 신분은 천자, 제후, 대부, 사인, 서민 등 다섯 계급이었다. 천자가 전쟁을 일으켜 빼앗은 이민족의 땅과 본래 대대로 내려온 토지소유권을 형제, 친인척, 전공이 있는 자들에게 땅을 나눠주고(分封) 제후를 세워 다스리는(建國) 제도 즉 봉건제에 있어서 천자는 천하의 태평을 도모하고 제후는 절대적 세력으로서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에 힘쓰고 그 밑에 대부를 두어 채읍을 다스리는 것을 제가(齊家)라 하였고 대부 밑에 사인(士人)이 있는데 이들 집단은 공부하여 즉 수신(修身)하여 대부를 도와 제가에 힘쓰고 혹자는 대부를 뛰어 넘어 제후의 책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라는 유교이념이 이렇게 유래된 것이다. 혹자는 제가(齊家)란 한 가족의 집식구를 다스리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역사에서의 제가는 대부의 채읍을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굳건하던 봉건제 타파에 나선 인물이 바로 상앙이다. 그는 그 막대한 권력을 갖고 있는 대부 집단의 기득권을 빼앗고 공에 따른 간부 임명제를 실시하였으니 당연히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히게 마련이고 종당에 가서 편안한 천수를 누릴 수가 없이 참형을 당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상앙의 군현제의 꿈은 진시황이 계승하여 능력에 따른 간부 임명제가 실시된다. 그런데 시황제의 태산에 올라 천신에게 제사를 올린 것에 입을 나불거렸다는 이유로 선비들이 변을 당하는 이른바 분서갱유 사건이 있었고 이때 선비들이 고전을 천정에 감추고 땅에 파묻으며 음지에서 연명하면서 기회를 노린다. 그 결실은 한나라 무제 때에 이루게 된다. 그냥 하늘에서 내려주는 것이 아니라 동중서(董仲舒)라는 최고 엘리트에 의해 선비들이 출세의 길이 열린다. 동중서는 오늘날의 상식으로 말하자면 능력이 뛰어난 장사꾼이었다. 그는 무제와 다음과 흥정을 건다. 제국이 천년만년 가려면 법가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만약 법가에만 의지한다면 앞선 왕조 진나라의 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럼 도가의 이념은 어떨까? 무위자연을 이념으로 소국을 지향하는 도가이념으로 한나라 초기 재미를 쏠쏠하게 보았으나 황제는 힘이 없고 주변 오랑캐는 자꾸 시끄럽게 집작 거려 위협이 되고 있으니 강력한 제국 건설이 급선무라고 황제를 선동한다. 황제는 들어보니 들으면 들을수록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임자.” ‘흠, 드디어 황제께서 내가 던진 낚시에 코가 걸렸군.’ 동중서는 속으로 ‘쾌’자를 불렀다. 동중서의 주장은 이렇다. 유가의 선비들이 입을 나불거려 시끄럽긴 하지만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란 삼강과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의 오강으로 강력한 사회질서를 구축한다면 제국이 오래갈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황제는 결국 동중서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따라서 선비들의 출세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군현과 주에 간부를 임명함에 있어서 우수한 인재를 추천하는 ‘천거(薦擧)’제에 의해 선비들이 대거 관직에 등용되어 세상을 주름잡기 시작하였다. 동중서의 덕분에 후한에 이르면 유교가 뿌리를 내려 낙양의 태학 학생은 3만 명에 달했고, 태학의 건물도 여러 번 증축되어 말기에는 24동에 1,850개의 교실을 갖게 되었다. 아마 요즘 지구촌의 지식분야의 최대 상징인 하버드를 훨씬 능가하는 규모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지방에서도 각각 사숙이 만들어져 이름 있는 학자를 스승으로 하는 동문의 학생들이 배출되었다. 그런데 그놈의 환관들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간부로 등용되고 싶다면 뇌물을 바치라고 노골적으로 대놓고 금품사냥에 혈안이 되어 있어 유교적 의식에 고취되고 정상적인 관리 등용문이 가로 막힌 이들은 반환관 운동에 앞장섰다. 환관파와 유생을 주축으로 하는 반환관파의 대립은 '당고의 금(黨錮之禁, '당고의 옥'이라고도 불림)'으로 불리는 2차례의 대탄압으로 청류 지식인(유생들은 자신을 청류, 환관무리를 탁류로 여겼음)들이 관계에서 일소되었다. 그 후 원소가 환관학살에 적극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그 자신이 사족가문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환관은 유생집단을 관직에서 씨를 말릴 정도로 몰아냈으나 결국 사족가문 출신인 원소에 의해 다시 자신들이 씨를 말릴 정도로 학살당했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기도 하고 아이러니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당시 시대배경 중 한 축이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11

외국인· 출입국 검색결과

  • 일본, 외국인 유학생 취업비자 대폭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이 일본 취업에 필요한 재류자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서 실시한다. 3년 연속 유학생이어야 하는 요건을 완화하고 최근 1년체류한 유학생이라도 승인하기로 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국가지정기술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일본에서 학부와 무관한 일을 할 수 있으며, 이 새로운 조치로 연간 3,000명의 유학생이 취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를 시범으로 일본은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 환경 조성과 인재 유지를 촉진하기 위해 국가 전략 특구인 기타큐슈시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하여 전국 확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학생의 최근 상황을 추적하고 불법 체류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요구 사항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면접 및 기타 심사, 졸업 후 정기적인 면접, 취업 중단 시 본국으로의 귀국을 위한 적절한 안내 등이 포함된다. 현재 일본에 취업하고자 하는 해외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일본어 학교에 재학할 경우 유학을 위한 재류자격으로 일본에 남아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졸업한 경우 일본에서 계속 구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특정 활동'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약 75%가 일본 취업 희망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전문학교 졸업생은 더 이상 전공에 맞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더 다양한 업종에서 일할 수 있다. 현지 체류 및 활동에 종사하는 재류자격을 개정해 전문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졸업생이 일본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개정 이후 일본에 취업한 유학생이 연간 약 3,000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의 출생아 수는 2023년에 최저치를 기록해 80만명 이상 자연감소했다. 일본학생지원기구의 2021년 외국인 유학생 조사에서는 약 2,000명의 전문학교 학생 중 약 75%가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재계와 교육계에서는 일부 유학생이 일정 수준의 전문적 수준과 일본어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 제한으로 인해 강제로 일본을 떠나게 된 점을 지적하고정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4-03-02
  • 프랑스 외무장관 "중국 유학생, 석사 졸업 후 5년 단기 복수비자 취득 가능"
    [동포투데이] 프랑스에 유학 중인 중국 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치면 5년간 유효한 단기 복수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콜론나 프랑스 외무장관이 밝혔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일방적 무비자입국 국가의 범위를 시범적으로 확대하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말레이시아 등 6개국의 일반 여권 소지자는 2023년 12월 1일부터 2024년 11월 30일까지 최대 15일간 무비자로 중국에 입국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콜론나 장관은 중국 방문 중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모든 중국 학생들은 학업을 마친 뒤 최대 5년간 유효한 단기 복수비자를 발급받아 중국과 프랑스를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중국 국적자들의 비자 처리 시간도 단축할 계획이다. 콜론나 장관은 또한 프랑스와 중국 두 나라가 고등(대학) 교육, 과학 연구, 문화 및 보건 분야에서 양국 간의 협력을 포함하는 5개의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11-25
  • 일본,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 방역조치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3월 1일부터 완화하고 모든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2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현재 중국 본토에서 직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출발 전 72시간 이내에 음성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조치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마쓰노는 완화 이유에 대해 입국자 양성률이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축적된 경험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항만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모두 일본에서 이미 검출된 오미크론 계열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27
  •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 입국후 핵산검사 의무 해제
    [동포투데이] 22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는 입국후 핵산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핵산검사 의무를 취소하기로 했으나, 출국 전 핵산 검사 음성 소견서로 항공기에 탑승해야 하는 요건은 3월 10일까지 계속된다. 정부는 올해 1월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중국에서 입국하는 승객은 탑승 전 코로나19 음성증명서를 제출하고 입국 후 핵산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 조치는 1월 말에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2월 말까지 한 달 연장되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22
  • 中,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한 중국대사관은 2월 18일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및 영사관은 한국인의 중국행 비즈니스,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고 72/144시간 무비자 체류 제한을 해제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 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이 조치는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2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10일 한국 정부가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40일 만에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다시 풀리게 됐다. 한국 측의 조치에 대응하여 주한 중국대사관은 1월 10일, 한국 주재 중국 영사관은 오늘부터 한국인의 중국 방문, 비즈니스, 관광, 의료,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5
  • 中 외교부 "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적극 검토"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내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마오 대변인은 "한국 측의 대중 비자 제한 조치 해제가 양국 인적 왕래 장벽을 줄이기 위한 올바른 발걸음"이라고 화답했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은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대등하게 재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한국 측이 중국과 함께 양국의 정상적 교류가 더욱 원활히 이뤄지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당초 1월 말까지였던 이 조치는 2월 말까지 연장됐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월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40일 만에 풀리는 것으로 된다. 한국의 조치에 대응해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영사관은 이제부터 한국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이 재개된다. 정부는 1월 2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이 조치는 당초 1월 말까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2월 말까지 한 달 연장되었다. 앞서 복수의 국내 언론은 방역·보건부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는 조만간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중단을 해제하고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사전 검사 및 현장 검사 조치는 유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은 주한 중국영사관은 한국인의,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관련 국가들이 사실에 입각해 과학적이고 적절한 방역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기회를 틈타 정치적인 농간을 부려서는 안 되며 차별적인 조치를 취해서도 안 되고 국가 간 정상적인 인적 왕래와 교류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중국, 일본 국민에 대한 일반 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일본 중국대사관 위챗 공식계정은 29일 자로 주일본 중국영사관이 일본 국민의 중국 일반비자 발급을 재개했다고 공지했다. 앞서 일본은 지난 1월 8일부터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항하는 승객에게 탑승 전 72시간 내 음성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강화하고, 입국 시 검사도 더 정밀도가 높은 핵산 검사나 항원 정량검사로 변경했다. 주일 중국대사관은 10일 주일 중국대사관과 영사관이 앞으로 중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일반 사증 발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당시 관련 문제에 대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을류을관(乙類乙管)’ 총체적 방안과 중외 인사 왕래를 위한 잠정 조치를 발표한 뒤 여러 나라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다만 일부 국가가 과학적 사실과 자국 내 전염병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를 고집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1-29
  • 주중 일본대사관 비자업무 정상화
    [동포투데이] 중국은 지난해 12월 26일 2023년 1월 8일부터 국경 방역 조치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내 대규모 전염병 발생으로 12월 말부터 미국, 일본, 이탈리아, 인도 등 많은 국가에서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상응하는 통제 조치를 연속적으로 도입했다.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의 정례 브리핑에서 "일부 국가가 중국만을 대상으로 한 입국 제한 조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이에 따른 일부 과도한 관행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은 전염병 예방 및 통제 조치를 조작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반대하며 상황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1월 10일 정오에 한국 국민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그날 저녁에는 일본 국민의 중국행 일반 비자 발급을 즉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11일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에 철회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1-22
  • 법무부,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3,865명 적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는 10월 11일부터 2개월간 코로나19 확산 이후 잠정 중단되었던 관계부처 정부합동단속을 재개하여 불법체류 외국인 3,865명, 불법 고용주 466명, 불법취업 알선자 17명 등 총 4,348명을 적발했다고 14일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 정부합동단속은 유흥․마사지업소 등 사회적 폐해가 큰 분야와 택배․배달 대행 등 국민의 일자리 잠식 업종에 대해 중점적으로 실시됐으며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총 3,865명을 적발하였다. 이 중 3,074명은 강제퇴거명령, 207명은 출국명령, 170명은 범칙금 처분의 조치를 하였으며 나머지는 조사중에 있다. 국적별로는 태국 1,441명, 베트남 814명, 중국 587명, 몽골 165명, 우즈베키스탄 126명, 카자흐스탄 119명, 러시아 109명, 필리핀 85명, 기타 419명이다. 아울러 법무부는 불법고용주 총 466명과 불법취업 알선자 17명을 적발하여 범칙금 등을 부과하였으며 그 중 단속을 거부하거나 불법취업을 알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단속하는 등 엄정히 대처하여 1명 구속, 38명 불구속 수사하였다. 또한 법무부는 이번 정부합동단속과 병행하여 범칙금 면제 및 입국규제를 유예하는 자진출국유도 제도를 시행하여 10월 11일부터 12월 10일까지 불법체류 외국인 7,378명이 자진 출국하도록 하였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유연성 있는 이민․출입국정책의 전제는 일관성 있고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불법체류 단속 체계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2-12-14

연예·방송 검색결과

  • 이시언,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서 '꾼'들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맹활약 예고!
    [동포투데이] 육각형 올라운더 이시언이 천재 해커로 컴백한다. tvN 새 월화드라마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극본 박상문 최슬기, 연출 소재현,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피플스토리컴퍼니) 사기꾼, 해커, 파이터, 드라이버! 더 강력해진 '꾼'들이 돌아왔다! '가진 놈'들을 시원하게 털어버리는 팀플레이 액션 사기극으로, 이시언은 극 중 '임병민' 역을 맡아 시즌 1에 이어 시즌 2로 시청자를 만난다. 임병민은 세상 모든 전산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신의 손'을 가진 해커. 그는 겉보기엔 겁도 많고 가벼워 보이지만, 작전 현장에선 진지한 모습으로 '꾼'들의 든든한 지원군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이시언은 특유의 능청스럽고 유쾌한 연기로 '임병민'을 표현, 극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전망이라고. 그동안 이시언은 츤데레 조력자부터 베테랑 형사, 1인 4역으로 시대를 넘나드는 캐릭터까지 모두 소화하며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쌓아왔다. 특히 '플레이어' 시즌 1에서 생활밀착형 연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시언은 타고난 재치와 센스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비타민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는 최근 방영된 MBC '태계일주3’에서 맏형으로 합류해 멤버들을 자상히 챙기며 문위기를 이끌어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에 연기, 예능 모두 잡은 '육각형 올라운더'의 면모를 입증한 이시언이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모아진다. 한편 이시언을 비롯해 송승헌, 오연서, 태원석, 장규리 등이 출연하는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은 오는 6월 3일(월) 저녁 8시 50분 첫 방송된다.
    • 연예·방송
    2024-05-30
  • 배우 오연서, tvN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 포스터 촬영 비하인드 컷 공개!
    [동포투데이]배우 오연서가 미스터리하고 신비로운 비주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28일, 소속사 스토리제이컴퍼니 측은 오는 6월 3일(월) 첫 방송 예정인 tvN 새 월화드라마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극본 박상문 최슬기, 연출 소재현, 기획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피플스토리컴퍼니)에서 플레이어들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의문의 인물, 그들을 또 다른 판으로 끌어들이는 비선 실세 ‘정수민’ 역을 맡은 오연서의 포스터 촬영 비하인드 컷을 여러 장 공개했다. 사진 속 오연서는 중단발 기장의 똑떨어지는 헤어스타일에 올블랙 룩으로 도회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다. 특히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 캐릭터의 대담하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고스란히 표현하기도. 매 컷마다 다른 모습을 선보이는 오연서의 새로운 얼굴은 그가 맡은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오연서는 다수의 작품에서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소화하며 필모그래피를 다채롭게 쌓아가고 있다. 그는 로맨스, 코미디, 휴먼 등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 것은 물론 밝고 사랑스럽지만 사연을 가진 캐릭터부터 털털하고 행동이 앞서는 정의감 있는 캐릭터, 완벽한 스펙과 비주얼에 반전 매력의 캐릭터까지 차진 연기력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완성하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뿐만 아니라 앞서 공개된 인터뷰에서 오연서는 “수민이는 선인인지, 악인인지 파악이 어려운 캐릭터”라고 언급한 만큼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에서 보여줄 의문의 캐릭터에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이에 매번 캐릭터의 매력을 백분 살려내는 그가 뛰어난 두뇌와 비주얼을 지닌 새로운 캐릭터 ‘정수민’을 어떻게 그려낼지 많은 기대가 모인다. 한편 오연서가 출연하는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은 사기꾼, 해커, 파이터, 드라이버! 더 강력해진 '꾼'들이 돌아왔다! '가진 놈'들을 시원하게 털어버리는 팀플레이 액션 사기극으로 오는 6월 3일(월) 저녁 8시 50분 첫 방송된다. <사진 제공 : 스토리제이컴퍼니>
    • 연예·방송
    2024-05-28
  • 배우 오연서, '싱글즈' 화보 A컷 공개! '독보적인 아우라'
    [동포투데이] 배우 오연서가 독보적인 아우라를 발산했다. 23일, 소속사 스토리제이컴퍼니 측은 패션 &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싱글즈'와 함께한 오연서의 화보 A컷을 여러 장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 속 오연서는 유니크한 모습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올블랙 셋업에 올림머리로 스타일링해 시크한 무드를 자아내는가 하면 투명 마네킹을 활용해 매혹적인 분위기로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또 다른 화보에서 오연서는 도회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운 눈빛으로 특유의 매력을 선보이기도. 이처럼 그는 다양한 콘셉트를 완벽하게 소화, 현장 스태프들의 찬사를 한몸에 받았다는 후문이다. 화보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오연서는 tvN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에서 의문의 조력자 '정수민' 역을 어떻게 접근했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수민이 선인인지 악인일지 나조차 알기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부터 단정 짓지 않고 대본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레 감정선을 이동시켰다. 모든 사람이 무릇 한 가지 모습이 아닌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여러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각각의 모습이 모여 수민을 완성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런 불완전함조차 수민일지도 모른다”라고 답해 캐릭터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엿보게 했다. 뿐만 아니라 오연서는 현재 무엇을 욕망하냐는 질문에 “더 많은 작품, 더 많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앞으로도 계속 연기를 하는 것,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연기를 원하는 마음이다”라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뿜어냈다. 한편 오연서의 더 많은 화보와 인터뷰는 '싱글즈' 6월 호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그가 출연하는 tvN '플레이어2: 꾼들의 전쟁'은 오는 6월 3일(월) 저녁 8시 50분 첫 방송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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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23
  • 유희라, 세계 최초 알렉산더 맥퀸 셀럽으로 칸 영화제 참석
    [동포투데이] 지난 15일, Netflix '슈퍼리치 이방인'에 출연한 유희라가 제 77회 칸 국제영화제 오프닝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이날 유희라는 구찌, 생 로랑, 알렉산더 맥퀸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글로벌 럭셔리 그룹 케어링(Kering)의 초청을 받아, 세계 최초 알렉산더 맥퀸 셀럽으로 참여했다. 한편, 유희라는 19일 진행되는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 행사를 준비 중이다. '우먼 인 모션'은 케어링이 주관하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문화예술계 내 성평등 확립을 목표로 여성 아티스트의 공로를 기리는 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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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 “슈퍼리치 이방인” 유희라, 미스틱스토리와 전속계약
    [동포투데이] 유희라가 미스틱스토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8일 소속사 미스틱스토리는 “다채로운매력을 가진 유희라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라고 밝히며 “앞으로의 다양한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유희라는 “미스틱스토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싶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유희라는 상위 1% 슈퍼리치들의 럭셔리한 한국 라이프를 들여다보는 리얼리티 쇼 Netflix “슈퍼리치 이방인”에 출연하여 패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 연예·방송
    2024-05-08
  • 이호원, RISE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체결
    [동포투데이] 최근 가수 겸 배우 이호원이 5월 2일 RISE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호원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연기 및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RISE 엔터테인먼트는 이호원의 연기 및 음악 활동을 전반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할 예정이며,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돕고 협업을 통해 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이호원은 이번 전속계약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포부를 밝히며, 배우로서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랑을, 가수로서는 팬들에게 새로운 음악과 퍼포먼스로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RISE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그동안의 경험과 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RISE 엔터테인먼트 역시 이호원의 합류를 환영하며, 그의 연기와 음악적 역량 및 재능을 통해 함께 발전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호원은 2022년 영화 <서울괴담 - 에피소드 치충>, 영화 <탄생>의 최양업 신부 역, 2023년 <시네마틱 노블2>, <내 인생 최고의 날> 등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폭넓은 연기를 보여줬으며, 매 작품 안정감 있는 연기력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한편 5월 11일에는 6년 만에 팬미팅을 개최해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 연예·방송
    2024-05-02
  • 황금색 거즈 스커트 입은 디리러바 '여신 분위기 물씬'
    디리러바(1992년 6월 3일)는 신장 우루무치 출신으로 중국 여배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으며 상하이연극학원 연기과를 졸업했다. 2013년 첫 TV 시리즈 <아나이한>에 출연했으며, 2015년 TV 시리즈 <다이아몬드 러버>에서 가오웬 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졌다.2017년에는 <삼생삼세십리도화>에 박풍지우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예능 프로그램 <달려라>에 고정 멤버로 합류해 감미롭고 능청스러운 개성으로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맞았다. 2018년에는 드라마 <표량적이혜진>으로 중국 TV 골든이글 어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및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여배우 2관왕에 올랐다.
    • 연예·방송
    2024-04-28
  • 베이징국제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영화와 패션’ 섹션 도입
    [동포투데이] 베이징 국제 영화제는 14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화와 패션' 섹션을 도입하여 영화와 패션 산업의 공생 관계를 강조했다고 행사 주최 측은 밝혔습니다. 이 섹션은 4월 18일 영화제 개막식 직전에 옌치 호수의 멋진 배경을 배경으로 중국의 유명 다운재킷 및 아우터 제조업체인 보시덩(Bosideng) 의 자외선 차단 의류 패션쇼로 시작되었다. 이 쇼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호주의 사운드 디자이너 데이비드 화이트, 배우 궈샤오동, 가수 샹원지,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등 스타들과 저명한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데이비드 화이트는 중국 영화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중국의 급성장하는 영화 산업에 참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언급하며 베이징으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작업으로 유명한 화이트는 내러티브와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사운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토리텔링에서 사운드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이번 쇼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한 보시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트로 페라기나는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1961년 영화 <마리엔바드에서의 마지막 해>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적 예술성과 패션쇼의 융합을 강조했다. 베이징 국제 영화제의 '영화와 패션' 섹션은 영화와 패션 산업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고 두 예술 영역 간의 창의적인 시너지 효과와 상호 영감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 연예·방송
    2024-04-20
  • 배우 김홍파, 브뤼셀 영화제 공식 초청
    [동포투데이]19일 오달수, 장영남, 김홍파 배우가 출연하는 서스펜스 드라마 장르의 영화 ‘오후 네시’가 제42회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은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오후 네시’는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찾아오는 이웃 남자로 인해 평온했던 한 부부의 일상이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서스펜스 영화다. ‘오후 네시’의 주연인 김홍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배우로서 많은 작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여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최근 왓챠(드라마) 트렌드 지수1위를 차지한 ‘나의 해피엔드’에서 서창석(장나라분 의 아버지)역으로 미세하게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대중들에게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등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품격 있는 연기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김홍파 배우는 “좋은 작품을 함께 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오후 네시’가 국제 영화제에 공식초청 되어 매우 영광이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는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홍파 배우의 주요 출연작으로는 ‘화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괴기맨숀’, ‘싱크홀’, ‘남산의 부장들’, ‘비스트’, ‘배심원들’, ‘내부자들’, ‘국가부도의 날’, ‘공작’, ‘검사외전’, ‘사바하’, ‘말모이’, ‘보안관’, ‘카지노’, ‘법쩐’, ’형사록1,2’, ’낭만닥터김사부2’, ’블랙독’, ‘귓속말’, ‘어느날’, 등이 있으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이고 있다.
    • 연예·방송
    2024-04-19
  • 배우 김다솜이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캐스팅
    [동포투데이] 배우 김다솜이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출연한다. 15일, 소속사 스토리제이컴퍼니 측은 "김다솜이 새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캐스팅됐다. 주부 탐정단 막내 '소희' 역으로 변신할 김다솜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살롱 드 홈즈'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전건우 作)을 원작으로, 집안일에 치이고 타인에게 무시당하며 때로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마저 접어야 하는 주부들이 무관심 속 지나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 속 증거들을 추적하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스토리의 드라마다. 김다솜은 극 중 주부 탐정단 4인 중 막내 '소희'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소희는 가장 어리지만 야무진 성격의 소유자로,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동네의 신속 정확한 배달을 책임지는 프로 라이더. 배달을 오가며 수집한 정보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주부 탐정단 내의 정보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예정이다. 앞서 김다솜은 SBS '언니는 살아있다!', tvN '사이코메트리 그녀석', JTBC '우리, 사랑했을까', MBC '꼭두의 계절'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눈에 띄는 캐릭터 소화력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드라마 '우연일까'에 이어 '살롱 드 홈즈'에도 출연하며 멈추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바.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그의 행보에 관심이 커진다.
    • 연예·방송
    2024-04-15

스포츠 검색결과

  • 中 U-17 여자축구, 아시안컵 준결승 진출
    [동포투데이] 중국은 14일 일본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4-0으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2024 AFC U17 여자 아시안컵 4강에 진출했다. B조에서 호주, 태국에 2연승을 거두면서 중국은 이미 조 선두 일본과 함께 4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였다. 일본은 이날 중국을 상대로 4골을 퍼부으며 조 1위를 차지했다. 조별리그 다른 경기에서는 태국이 호주를 3-1로 이겼다. 중국은 16일 준결승에서 A조 1위인 북한과 맞붙고, 일본은 같은 날 한국과 맞붙는다. 5월 6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되는 이번 대회에는 총 8개 팀이 참가하며, 상위 3개 팀이 10월 16일부터 11월 3일까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2024년 FIFA U17 여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 스포츠
    2024-05-15
  • 마라도나 ‘신의 손’ 골든볼 트로피 경매에 나온다
    [동포투데이] 수십 년 동안 사라졌던 마라도나가 1986년 월드컵에서 수상한 골든볼 트로피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7일 BBC 보도에 따르면 이날 프랑스 아구테스 경매회사는 이 트로피가 6월 6일 파리에서 경매될 예정이며 입찰자는 15만유로를 지불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매회사에 따르면 이 트로피는 독특함 때문에 수백만 달러에 낙찰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트로피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트로피가 와일드 포커 게임에서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라도나가 빚을 갚기 위해 트로피를 팔았다고 주장했다. 마라도나가 나폴리의 한 은행 금고에 트로피를 보관했다가 1989년 현지 괴한들에게 강도를 당한 후 금덩어리로 녹아내렸다는 설도 있다. 아구테스 경매사는 "트로피가 금-구리 합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주장이 터무니 없다고 지적했다. 2016년 프랑스 경매에서 골든볼 트로피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는 익명의 구매자가 구입했다. 구매자는 자신의 컬렉션에 많은 트로피를 보유하고 있었고, 온라인으로 검색한 결과 자신이 마라도나의 골든볼 트로피를 구입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주장으로서 '축구왕'은 아르헨티나 팀을 이끌고 결승전에서 독일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개인 5골 5도움을 기록하며 이번 월드컵 최고의 선수가 됐다. 특히 마라도나는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두 골을 기록했는데, 그 중 하나는 논란이 된 '신의 손'이었고, 다른 하나는 5연속 득점을 뛰어넘는 '세기의 골'이었다. 마라도나가 그날 입었던 유니폼과 경기 공은 이전에 수백만 달러의 가격에 경매에 부쳐진 바 있다.
    • 스포츠
    2024-05-09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 스포츠
    2024-03-27
  • 북한, 일본 2-1로 꺽고 U20 여자 아시안컵 우승
    [동포투데이] 16일 막을 내린 20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1-1로 비기고 일본에 0-2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편 호주 여자축구는 3,4위 결승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두 팀은 일본, 북한 등 4개 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 스포츠
    2024-03-17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 스포츠
    2024-03-12
  •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 “최종 목표는 월드컵 진출”
    [동포투데이] 8일 오전 11시, 중국축구협회는 톈진에서 브란코 이반코비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을 위한 정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인 중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3월 21일과 26일 조별리그 36강전 싱가포르와의 연속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반코비치는 “지금 기자회견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선수들의 경기 감각도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의 1차 목표는 최종예선 진입이고 최종 목표는 강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스포츠
    2024-03-09
  • 中 U-20 여자축구, 일본에 완패…월드컵 진출 불투명
    [동포투데이] 7일 밤에 끝난 AFC U-20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중국이 일본에 0 : 2로 패하면서 U-20 여자 월드컵 진출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해졌다. 이번 U-20 여자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전년도 준우승팀인 일본, 그리고 전년도 준우승팀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어 U-20 여자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상대의 강한 실력에 비해 중국은 라인업이 불규칙했고 중앙수비수인 차오루치(乔睿琪)가 경기 준비 마지막 순간 부상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서 중국은 1 : 1로 힘겹게 북한과 비기면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은 지난 경기에서 베트남을 10 : 0으로 대파했다. 중국은 월드컵 진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번 경기에서 적어도 골을 넣어야 하고 최소 1점을 따내야 했다. 왕쥔(王军) 중국팀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은 기술이 뛰어난 팀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강팀”이라며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경기에 비해 중국팀의 이번 라인업이 다소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리팅잉거(李渟英格), 장천징(姜晨璟), 천자위(陈佳宇)가 선발로 나섰다. 초반에는 양 팀 모두 골문 앞의 절대적인 찬스가 있었지만, 득점을 못했다. 경기 20분 중국은 상대의 실수를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루자위(卢家玉)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 의해 무산되었다. 26분 페널티 구역에서 동료의 크로스를 받은 일본의 마야 히지카타가 슈팅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고 88분에 아마노 스즈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대회에는 8개 팀이 참가하며, 중국은 일본, 북한, 베트남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2024년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 스포츠
    2024-03-08
  • 파리올림픽 ·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 공개
    [동포투데이]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가 3월 4일(현지시간) 오르세 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 프랑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우고 가토니가 만든 이 두 포스터는 올림픽 포스터 역사의 큰 혁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요소가 많고 디테일이 풍부해 기존 올림픽 포스터 디자인의 전통을 깼다. 색채 활용에 일가견이 있는 예술가로서, 가토니는 파리와 프랑스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이번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모든 스포츠를 포함하는 다원적이고 번영하는 미시세계를 상상했고, 동시에 파리 올림픽의 혁신적인 특징들을 보여주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두 개의 포스터를 별도의 두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하나로 합쳐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할 수도 있는데, 왼쪽이 올림픽, 오른쪽이 패럴림픽이다. 가토니는 "디자인한 영감의 원천은 파리의 랜드마크 건물들을 재배열한 거대한 도시 경기장"이라며 "에펠탑은 스타드 드 프랑스 중앙을 관통하며 센 강, 개선문, 콩코드 광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즐거운 스포츠 카니발처럼 보이는 포스터 전체는 즐거운 스포츠 축제를 원하는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비전과도 부합하며, 가까이서 보면 포스터의 수많은 디테일들이 관객들에게 발견의 즐거움과 새로운 탐구의 충동을 선사한다. 포스터에는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 8개가 숨겨져 있어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올림픽 오륜기와 패럴림픽 삼색 엠블럼, 대중 마라톤, 올림픽 격언 등도 찾아볼 수 있다. 두 포스터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것으로 전체 제작 과정은 약 2000시간이 걸렸다. 토니 에탕게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이 두 포스터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에탕게는 "이것은 단순한 포스터가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요소를 담고 싶고, 남들과 다르길 원한다"며 "이는 올림픽 역사상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두 포스터는 3월 10일까지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두 포스터는 공개 시점부터 파리 2024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각각 29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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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7
  • 호날두, 팬들 앞에서 ‘음란 제스처’...사우디축구협회 조사 착수
    [동포투데이]아랍 언론 '앗샤르끄 알아우싸뜨'는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 징계윤리위원회가 알 나스르의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알샤바브 FC 팬들을 향해 음란한 제스처를 취한 것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호날두는 지난 일요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로리그 2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알 나스르가 알샤바브 FC를 3-2로 꺾는 과정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했다. 경기 후 홈팬들을 향해 몸을 돌린 호날두는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여러 번 흔들었다. 스페인의 스포츠 일간지 마르카(MARCA)는 상대팀 팬이 관중석에서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의 이름을 연호한 데 대한 호날두의 화답이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 징계윤리위원회는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논평을 낼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만간 호날두에 대한 징계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 스포츠
    2024-02-26
  • 네덜란드 국가대표 프로메스,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6년 선고
    [동포투데이] 유럽타임스(European Times) 보도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14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뛰고 있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퀸시 프로메스(Quincy Promes)가 1톤 이상의 코카인을 네덜란드로 밀반입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2020년 프로메스가 공범자들의 도움으로 벨기에 앤트워프 항구를 통해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로 1,363kg의 코카인을 운송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추정했다. 프로메스의 변호인은 검사가 프로메스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고 프로메스는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50경기 출전한 32세의 이 선수는 네덜란드 경찰에 체포될 것을 우려해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현재 프로메스에 대한 국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며 그는 아직까지 러시아로부터 송환되지 않았다. 프로메스는 또 다른 사건에서 목걸이를 도난당한 후 사촌동생을 칼로 찌른 혐의로 18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 스포츠
    2024-02-19

포토뉴스 검색결과

  • 유희라, 세계 최초 알렉산더 맥퀸 셀럽으로 칸 영화제 참석
    [동포투데이] 지난 15일, Netflix '슈퍼리치 이방인'에 출연한 유희라가 제 77회 칸 국제영화제 오프닝 레드카펫에 참석했다. 이날 유희라는 구찌, 생 로랑, 알렉산더 맥퀸 등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글로벌 럭셔리 그룹 케어링(Kering)의 초청을 받아, 세계 최초 알렉산더 맥퀸 셀럽으로 참여했다. 한편, 유희라는 19일 진행되는 '우먼 인 모션(Women In Motion)' 행사를 준비 중이다. '우먼 인 모션'은 케어링이 주관하는 특별 프로그램으로, 문화예술계 내 성평등 확립을 목표로 여성 아티스트의 공로를 기리는 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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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7
  • ‘중국 브랜드 데이’ 개막... 1,800개 브랜드 참여
    [동포투데이] 2024년 '중국 브랜드 데이' 행사가 '더 나은 품질, 중국 브랜드의 밝은 미래'라는 주제로 10일 상하이에서 개막했다. 행사에는 약 1,800개 브랜드가 참여해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올해의 새로운 주제 전시 영역은 혁신, 친환경 및 저탄소, 삶의 질, 산업 발전에 초점을 맞췄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번 행사는 전시업체의 선진 경험과 혁신 사례를 선보여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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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13
  • 황금색 거즈 스커트 입은 디리러바 '여신 분위기 물씬'
    디리러바(1992년 6월 3일)는 신장 우루무치 출신으로 중국 여배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으며 상하이연극학원 연기과를 졸업했다. 2013년 첫 TV 시리즈 <아나이한>에 출연했으며, 2015년 TV 시리즈 <다이아몬드 러버>에서 가오웬 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졌다.2017년에는 <삼생삼세십리도화>에 박풍지우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예능 프로그램 <달려라>에 고정 멤버로 합류해 감미롭고 능청스러운 개성으로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맞았다. 2018년에는 드라마 <표량적이혜진>으로 중국 TV 골든이글 어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및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여배우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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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8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 스포츠
    2024-03-27
  • 재즈댄스페스타 유료관객 100% 기염...문예총국제댄스갈라쇼 초청공연 진행
    [동포투데이]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실용무용 김미정 교수의 프로젝트 재즈댄스페스타가 지난 2월 24일 SAC 아트홀에서 티켓 오픈 일주일 만에 전석이 매진되며 유료관객 100% 라는 무용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진율을 기록하였으며 이어 매년 개최되는 2024문예총국제댄스 갈라쇼에 초청되어 다가오는 4월 8일~10일 몽골,중국 무용수들과 함께 국제청소년컨퍼런스홀에서 워크샵을 리드하며 다시한번 뜨거운 앵콜 공연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많은 관객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성료된 재즈댄스페스타(Jazz Dance Festa) vol.1 메모리(Memory)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재즈댄스전공 졸업자 안무가들이 주축이 되어 제작된 첫 번째 재즈댄스 페스티벌로서 다양성과 생명력 있는 콘텐츠로 호평을 받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행사 1부에서는 재즈댄스 흐름과 방향성을 밝히는 학술세미나와 전수정, 박정은의 팀 나비야의 공연으로 이루어졌고 2부에서는 조혜성, 김수현.박윤지, 김지원, 이유진, 박예나 안무가들의 재즈댄스 작품과 비온더스테이지의 뮤지컬 축하 갈라쇼, 팀 프라우드먼에서 활동 중인 성민경 안무가와 이춘명 서울탄츠스테이션, 양시정 튠댄스컴퍼니, 김미정 나인아트프로젝트 재즈댄스 마스터들의 공연까지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작품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은 공연이다. 김미정 교수는 “뮤지컬 시장의 확대와 K-pop의 글로벌화 등 대중문화예술의 발전으로 실용무용의 위치가 높아지고 있고 재즈댄스 움직임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안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재즈댄스 공연이 더욱 활성화되어 국내,해외 재즈댄스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재즈댄스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교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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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2024-03-11
  • 광저우 리신샤 대교 붕괴...5명 사망
    [동포투데이] 22일 05시 30분경 컨테이너선 한 척이 포산 남해에서 광주 남사로 가는 길에 홍치류 수로를 항해하다가 리신샤 대교 교각을 들이받아 2차선 도로인 상판이 무너져 내렸다. 광저우시 해상수색센터는 차량 2대가 바다에 추락했고, 3대가 선박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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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2-22
  •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봄꽃축제
    [동포투데이] 2월 3일부터 4일까지 이틀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용의 해' 봄꽃축제가 열렸다. 행사 기간 동안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은 다양한 축제용품을 구매하고 용춤, 사자춤 등 중국 민속공연도 즐겼다.(사진/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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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24-02-08
  • 고속열차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
    [동포투데이] 최근 중국의 한 고속철도가 춘제 여행의 혼잡 속에서 식당차를 어린이 놀이터로 바꿔 많은 승객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1월 29일 푸젠성 샤먼에서 상하이로 출발하는 G1654 열차는 식당차의 일부를 장난감과 동화책이 제공되고 열차 승무원이 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어린이 놀이터로 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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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2-02
  • 류더화,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 선출…대회 현장 공개
    [동포퉤이]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영화인협회(中國電影家協會) 제1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천다오밍이 중국영화인협 주석을 연임하고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가 처음으로 중국영화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류 부주석의 회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을 모았고, '싱다오환구망(星島環球網)'은 그의 대회 참가 사진을 여러 장 단독 입수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류더화는 블랙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포멀한 룩을 연출했다. 그가 투표할 때 웃는 얼굴로 '지나가던' 모자를 쓴 남자가 바로 우징. 류더화는 현장에서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유명 배우 리쉐젠을 부축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차기 중국영화인협회 지도부와 중국 문련 지도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앞줄은 리이 중국문련 당조 서기 등 문련 지도부와 천다오밍 영화인협회 주석, 리쉐젠 전 영화인협회 주석, 부주석이 뒷줄, 류더화가 뒷줄 오른쪽 2번째.
    • 연예·방송
    2024-02-01
  • 쑨이, 핑크색 밀착 드레스와 섹시한 다리로 男心 저격
    • 연예·방송
    2024-01-19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러시아 대외정보국 “프랑스, 우크라이나에 기동부대 파견 준비”
    [동포투데이] 19일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나리슈킨 러시아 대외정보국장은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약 2,000 명의 군인으로 구성된 기동부대를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정보국은 나레쉬킨의 말을 인용해 "프랑스 현 집권당은 일반 프랑스인들의 죽음에 관심이 없고 장군들의 우려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대외정보국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파견될 기동부대가 편성되고 있으며 첫 단계로, 약 2,000 명의 군인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나레쉬킨은 프랑스군이 러시아군의 최우선 타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언론은 "프랑스 군부가 우려하는 것은 이 중무장한 부대가 눈에 띄지 않게 우크라이나에 진주시킬 수 없다는 점"이라며 그렇게 되면 이 부대는 러시아군의 우선적이고 합법적인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는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살해된 프랑스인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외정보국 관계자에 따르면 프랑스는 20세기 후반 알제리 전쟁 이후 프랑스가 해외에서 이런 피해를 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다. 기사는 1월 17일 하루에만 러시아군이 하르코프 인근의 외국인 무장세력 임시 배치 지점을 파괴해 프랑스 시민 수십 명이 사망한 뒤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이런 공격이 일상화됐다"지적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군 지도부는 현재 프랑스군 중위급 장교들의 반발을 우려하고 있다. 엘리제궁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프랑스인의 수가 "심리적으로 중요한 임계치를 넘었다"며 이 수치를 공개하면 시민들의 시위를 촉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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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우크라이나
    2024-03-20
  • 하늘을 나는 중국 자동차, 광저우 도심 상공 횡단
    [동포투데이] 3월 8일 샤오펑후이톈 비행 자동차 여행자 X2가 도심 '티안더 광장-광저우 타워' 지역에서 저고도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여 향후 도심 항공 모빌리티 및 저고도 관광과 같은 저고도 경제 응용 시나리오의 포괄적인 보급을 위한 경험을 제공했다. 이번 비행에서 여행자 X2는 광저우 톈허구의 티안더 광장 A급 오피스 단지에서 수직으로 이륙해 자율주행 모드로 랜드마크인 광저우타워 방향으로 비행하며 광둥성 박물관, 화청 광장, 하이신아시안게임공원 등 광저우의 랜드마크를 횡단했다. 이 비행경로는 향후 도심 항공 교통뿐만 아니라 관상 가치가 높은 저고도 투어 루트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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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24-03-09
  • 중국공산당은 악의 모체? 조선족간부는 악의 실천자? 황당주장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있는데 독일 유태인 출신 미국 정치철학자가 1963년 '이스라엘 아이히만'이란 책을 출간하면 내놓은 개념인데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가 600만 유태인 학살 당시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서 유태인을 수용소에 이송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2차 대전에 끝나자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망명 갔는데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체포되었고 이듬해에 재판이 열렸는데 아이히만은 이미지가 아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고 그는 재판장에서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 한 사람도 직접 죽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무죄다라고 진술했다. 재일조선족 학자가 지난해에 한국에서 '한국인이 모르는 조선족 정체성'이란칼럼을 발표했는데 "조선족간부들은 악의 평범성을 실천하는 모범생들이라고 말했고 조선족 지식인을 얼치기 중국인이라고 공격했는데 같은 조선족으로서 굳이 이렇게 까지 비하하고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이 분의 주장은 너무 항당하다.(김정룡) https://youtu.be/EMQe8mETHps?si=Wg92x3QheDi0zNKA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4-01-13
  • 조선족 어떻게 빨갱이 되었나
    빨갱이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려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왜 조선족이 빨갱이 되었고 또 조선족이 빨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한국사람들이 이해하고 나아가서 조선족이 빨갱이기 때문에 차별하고 거부했던 편견을 버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함께 노력하기를 원하는 입장에서 본 강의를 진행하였음. https://youtu.be/tw2fMhYOBjw?si=p8r6AiD6IsG5RkLx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25
  • 홍범도는 한국인인가?
    앞 부분은 방송 프로그램 설명입니다. 뒤 부분은 제1편 입니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홍범도에 대한 이념 논쟁이 심각합니다. 우선 이념논쟁은 시대역행이라는 저의 관점을 피력하고 한국법무부 정책에 따르면 홍범도는 무연고동포일 뿐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저의 이 관점에 대해 찬반양론이 뜨거울 거라 믿습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21
  • 중국인은 왜 만만디인가
    한중일 세 민족성격 비교 한 민족의 성격형성에 있어서 자연지리환경이 결정적인 역할한다. 중국은 황하중하류 지역은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빠 물을 끓여 마시고 차를 타 마시는 과정이 긴데서 만만디 성격이 형성되었다. 한반도는 산이 많고 물이 좋아 과정이 생략된 민족이고 멋의 민족이다. 일본은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절약적이고 섬세하고 정교한 민족이며 대신 츠츠우라우라 고인물 환경에서 정을 나누지 않는 고립된 민족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19
  • 中 산시성 한 회사 고위 간부, 가정폭력 혐의로 정직 처분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한 남성이 한밤중 자녀 앞에서 아내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광범위한 비난을 받은 후 회사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산시 공항그룹 계열사인 뉴실크로드무역은 회사 한 부서의 부국장인 왕펑페이(王鹏飞)가 가한 가정폭력을 깊이 규탄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18일 성명을 통해 왕씨를 정직 처분하고 징계 감찰부에 넘기기로 결정했으며 왕씨의 아내 병문안을 위해 사람들을 보냈다고 밝혔다. 영상에는 왕씨가 주먹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의 머리를 한동안 계속해서 때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시안 공안당국은 20일 성명을 통해 경찰이 왕씨의 아내로부터 신고를 받고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1차 조사 결과 왕씨는 지난 18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한 후 아내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시성 여성연합회는 여성의 법적 권리와 이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 전체가 여성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형태의 가정 폭력을 근절할 것을 촉구하며 왕씨의 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연합회 측은 또 왕씨의 아내에게 필요한 법률지원과 심리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은 행위의 경중에 따라 행정 또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네티즌들의 강력한 비난을 촉발했다. 시나 웨이보 마이크로 블로그 플랫폼에서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시태그가 18일 밤까지 수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네티즌은 해당 영상을 보고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결혼 생활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하면 부부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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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22-01-22
  • ‘얼쑤~좋구나’ 추석 맞이 조선족 민속 문화제
    [동포투데이] 조선족 추석 민속행사 겸 중국·안도 제3회 조선족 민속 문화제가 19일 안도현 장백산 문화엑스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현 문화관 배우들과 현지 주민들이 '조선족 농악무'를 선보였고 9개 마을 주민들은 줄다리기 등 경연을 벌였다. 씨름, 윷놀이, 투호 등 경연장에서도 관객들이 즐겼고 전통음식 코너에서는 찰떡, 순대, 막걸리 등 전통음식은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밖에 무형문화재 작품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관광객들이 안투 무형문화재의 매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国润影视航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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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2
  • 헤이룽장, 구조된 동북호랑이 다시 자연으로
    [동포투데이] 중국 국가임업초원국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밀산시의 한마을에 침입했던 동북호랑이가 구조에 성공한 뒤 18일 무링(穆棱) 임업유한공사 시업구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전문가는 동북호랑이가 생리지표가 정상이고 이상행동이나 질병 위험이 없어 자연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적합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야생 동북호랑이를 구조해 풀어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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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8
  • [동영상] 중국·화룡 진달래 국제문화예술축제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5.1 국제 노동절 연휴 첫날 길림(吉林)성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주 화룡(和龍)시 서성(西城)진 진달래 마을에서 제12회 진달래 국제문화예술제가 열렸다. 이날 조선족 민속 패션쇼, 전통 씨름, 대형 가무 '고향 진달래' 등 조선족만의 독특한 민속예술 공연이 번갈아 막을 올렸다. 본회장과 분회장에서 열린 '만인 김치 만들기', '백 미터 순대 만들기', '천인 비빔밥' 코너 그리고 '조선족 꽃떡' 등 민속음식 체험부스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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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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