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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레시아 군 헬기 에어쇼 훈련 중 충돌… 탑승자 10명 전원 사망
    [동포투데이] 말레이시아군은 23일 말레이시아 페락주에서 에어쇼 훈련을 하던 군용 헬기 2대가 충돌해 추락하면서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왕립 해군의 성명에 따르면 사고는 페락주의 한 해군 기지에서 발생했다. 이날 오전 에어쇼 훈련을 하던 중 헬기 2대가 충돌해 추락했다. 헬기 한 대에는 7명, 다른 한 대에는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희생자 10명은 신원 확인을 위해 해군기지 병원으로 이송됐다. 모하메드 칼레드 노르딘 말레이시아 국방부 장관은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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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4-23
  • 외신 “미,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 추가 파견 검토”
    [동포투데이]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이 20일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주재 자국 대사관에 군사고문단을 추가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21일 러시아투데이(RT)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군인들은 주로 물류, 미국 무기 인도 감시, 무기 유지 보수 지원 등 "비전투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폴리티코는 미 하원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610억 달러 규모의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 국방부는 지원 패키지에 "방공 및 포병 능력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작전 보안과 병력 보호를 위한 이유"로 키이우에 얼마나 많은 군사 고문단을 파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 문제에 정통한 인사들은 폴리티코에 그 수가 최대 60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새 군사고문들이 미국 대사관 국방협력실에서 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가 작년 여름 역공에 실패하고 최근 외국산 탄약 공급 감소로 피해를 입은 이후 전장에서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전장 상황이 러시아에 약간 유리하게 바뀌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은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인정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새 군사 고문단은 여름에 전투가 격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새로 전달된 장비로 우크라이나 돕는 임무를 맡고 있다.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모스크바는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을 분쟁의 실제 참여자로 간주한다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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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우크라이나
    2024-04-23
  •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방중 임박, 어떤 대화 오갈까
    [동포투데이] 미 국무부가 블링컨 국무장관의 24일부터 26일까지 중국 방문 계획을 발표하자 중국 외교부는 블링컨의 방중을 환영했다. 미국은 현재 블링컨의 중국 방문을 위해 여러모로 준비하고 있다. 지난주 G7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블링컨은 글로벌 리더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러시아 측에 민군 이중 용도 장비를 공급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중국이 한편으로 유럽 여러 나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냉전 후 유럽 안전에 제일 큰 위협으로 간주되는 러시아를 돕는 건 타당치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 러시아를 문제 삼아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바이든 정부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산업계와 노조, 정치권은 중국의 전기차, 조선업 등 산업 전반에 있어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상술한 원인 때문에 블링컨의 이번 중국 방문은 중국 측에 압력을 가하고 훈계를 하는 목적으로 언론 플레이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등 지역 문제에 대한 중국과의 협력 모색도 블링컨의 이번 중국 방문에서 검토할 핵심 문제이다. 또한 미국 측은 펜타닐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이는 모두 바이든 정부가 현재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다. 보름 전 중국을 방문한 옐런 재무 장관도 일부 의제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려 했다. 지난 2일 바이든과 시진핑은 전화 통화를 갖고 고위급 외교와 실무 협의를 통해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블링컨의 중국 방문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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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24-04-23
  • 인도네시아서 열차와 버스 충돌...5명 사망, 15명 부상
    [동포투데이]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주에서 21일 열차와 버스가 충돌해 5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현지 철도 관계자 아자리는 도로와 철도의 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열차와 버스가 거의 동시에 교차로에 진입했고 기관사가 제동을 시도했지만 짧은 거리와 관성으로 인해 두 차량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버스는 약 50m가량 끌려갔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일부가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자리는 "1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4명이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으며 15명이 부상을 입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망자 모두 버스 승객이었고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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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4-22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박 침몰 사망자 62명으로 증가
    [동포투데이] 토마스 지마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민방위국장은 언론에 지난 19일 수도 방기의 인근 하천에서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로 사망자가 62명으로 늘었다고 확인했다. 목격자와 잠수부들은 20일 저녁 침몰선에서 멀지 않은 수역에서 여성 3명과 어린이 1명 등 4구의 시신이 추가로 인양됐다고 전했다. 지마스는 20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희생자 58구의 시신이 인양됐다며 "물속에 얼마나 많은 시신이 남아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방기 인근 우방기 강에서 19일 오후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소식통은 침몰 선박에는 300명 이상의 승객이 타고 있었으며 심각한 과적 상태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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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4-04-22
  • 中 주요도시 82개 중 절반 침몰 중...큰 재난 유발할 수도
    [동포투데이] 19일에 발표된 전국 위성 데이터 연구에 따르면, 중국 주요 도시의 거의 절반이 "보통에서 심각한" 수준의 침하를 겪고 있으며, 특히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홍수 위험에 처해있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에 발표된 논문의 저자는 중국 도시 토지의 45%가 연간 3mm 이상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으며, 도시 토지의 16%가 연간 10mm 이상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지하수위 하락과 건축 환경의 무게로 인해 발생한다. 화남사범대 오주루이가 이끄는 연구팀은 중국의 도시 인구가 이미 9억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국의 땅이 조금만 가라앉아도 도시 생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침강으로 인해 중국은 이미 연간 75억 위안(10억 4천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해안 토지의 거의 4분의 1이 다음 세기 내에 실제로 해수면보다 낮아져 수억 명의 사람들이 더 큰 홍수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의 기후변화 연구 틴달 센터의 로버트 니콜스는 "이는 확실히 중국에게 한두 곳이 아닌 전국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며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인구 1500만 명이 넘는 북방 도시 톈진은 피해가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조사관들은 지난해 '돌발적인 지질재해'로 주민 3000명이 대피한 것을 수자원 고갈과 지열정 건설 탓으로 돌렸다. 중국의 오래된 석탄 생산 지역 중 많은 곳에서도 과잉 채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당국은 종종 땅을 보강하기 위해 무너져가는 광산에 콘크리트를 주입해야 했다. 문제는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월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630만 평방 킬로미터의 토지가 위험에 처해 있다. 인도네시아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 수도 자카르타의 대부분이 해수면보 아래에 있다. 니콜스는 취약한 도시들이 1970년대 지하수 채굴이 금지되기 전 약 5m(16피트) 침하된 도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침하 완화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적응과 제방 건설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이 문제를 겪고 있는 44개 주요 해안 도시 중 30개가 아시아에 있다. 중국의 지반 문제는 지하수면의 붕괴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무게와도 연관되어 있어 이것이 다면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지구 기후 변화가 심화되고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이 문제는 더욱 시급한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과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의 경우, 이는 훨씬 더 큰 재난을 유발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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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4-22
  • "美 심각한 재정적자, 글로벌 경제에 '중대 위험'"... IMF 경고
    [동포투데이]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세계 경제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IMF의 최근 '재정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내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7.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다른 선진국의 평균은 2%에 불과하다고 영국 언론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IMF 보고서를 인용하여 미국의 대규모 지출이 세계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다른 경제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미국은 지출과 수입의 심각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게 됐다. MF 자에 따르면 지난해 유로존 등 선진국 재정적자는 통제됐지만 미국은 GDP 대비 적자 비율이 2022년의 두 배가 넘는 8.8%로 '상당한 폭의 재정 둔화'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미 재무부 일일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정부 부채가 34조 달러를 넘어섰다. 에르 올리비아 구린샤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재정 상황이 "특히 우려스럽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대응 국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이는 글로벌 경제가 직면한 재정 및 금융 리스크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IMF는 미국 차비용이 글로벌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미국 금리가 '갑자기 큰 폭으로' 상승하면 글로벌 국채 수익률이 치솟고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 환율이 요동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글로벌 금리 파급효과는 금융여건 경색으로 이어져 각국이 직면한 리스크를 상승시킬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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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2024 KUACE 문예총국제무용콩쿠르 성료
    [동포투데이] 대한민국 문화예술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는 지난 4월6일부터 20일까지 제19회 2024 KUACE 문예총국제무용콩쿠르와 국제무용웍샵을 개최했다. 한국을 비롯한 10개국 참여로 상명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민족무용 부문을 필두로 실용무용,현대무용 발레 경연을 진행했으며 1천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열정은 글로벌 무대의 경쟁력있는 무대로 매년 위상을 높이고 있다. 특히 몽골과 중국 등 해외 참가자는 한류문화체험, 예절교육, 명소탐방을 비롯하여 컨템포러리댄스, 발레, K Pop댄스 워크샵과 무용공연관람 등 한국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체감하며 피날레 갈라쇼 까지 어느해 보다 뜻깊은 프로그램으로 무용경연 축제의 장으로 성료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장유리교수는 참가자들의 기량이 해가 거듭할수록 훌륭한 무대를 만들고 한국무용계의 발전과 위상은 간접적 문화사절단 역할을 넘어 문화 공공외교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전하며 훌륭한 무대를 펼친 국내, 해외 참가자들에게 애정과 격려를 보냈다. 또한 2025년에는 더욱 확대된 스칼라쉽으로 무용인 후학 지원을 하겠다고 전했다. 장학금이 수여되는 각 부문별 그랑프리는 다음과 같다. ▲전 부문 Grand Prize - 종합대상 에스닉댄스 일반부 –BATCHULUUN ERDENEBAYAR(바트촐롱 에르덴바야르-몽골국립예술단) ▲전 부문 Semi Grand Prize – 종합 차상 발레 클래식 – Tian Shisha ( Beijing Normal University3) ▲현대무용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컨템포러리 댄스 창작 고진경 – 덕원중학교3 ▲ 발레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발레 클래식 – 에스메랄다 염다연-고등부 ▲ 대학.일반부 전 부문 Grand Prize (공동대상) 발레 클래식 조서현 - 일반부 / 발레 클래식 안재은 (경희대학교3) ▲ 고등부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컨템포러리 댄스 창작 강희수 – 덕원여자고등학교2 ▲ 중등부 전 부문 Grand Prize (공동대상) 에스닉댄스 창작 – 한지호 - 국립국악중학교3 발레 클래식 서은율 - 선화예술중학교3 컨템포러리 댄스 창작 – 백윤아 - 신월중학교1 ▲초등부 전 부문 Grand Prize (공동대상) 발레 창작 – 정예린 - 여울초등학교4 발레 클래식 – 정훤의 - 서울대영초등학교6 ▲유치부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발레 창작 – 봄날의 피크닉 이시현 ▲실용무용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코레오(Choreography ) - 민지우외 18인 중등부 Group – 아라댄스아카데미 ▲실용무용 초등부 전부문 Grand Prize (대상) K-Pop댄스 Group- Hogjiltei alialagch – 어서흐이래뒤 (몽골) ▲2024 최고작품상 에스닉댄스 group : 다시:어울림(Harmony) - 청심국제고등학교 실용무용 group : 스트릿댄스 - Tesrelt - 몽골 컨템포러리댄스 group - 9회말 투아웃 - 최효진무용학원 발레 group - 백조의 호수 3막 중 pas de six – 발레 숲 팀이 수상했으며 본상 외 기관장 상을 비롯한 특별상에 예원학교 민시유, 중앙대학교 마창성, 다나에스아이 리스킨드지아, 중국난징대학교 JIANGL luy, 명덕여중 정가은, 한강여중 신아린, 일반부 변현정 등 22명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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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동포투데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야스쿠니 신사에 제물을 봉납했다고 일본 공영방송 NHK가 보도했다. 야스쿠니 신사는 21일부터 3일간 '춘계 예대제'를 개최한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마사카키'라는 분재 제물을 야스쿠니 신사에 바쳤다. NHK TV의 생중계 영상에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라는 문구가 적힌 나무 명판이 제의물에 붙어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는 2021년 일본 총리 취임 이후 매년 야스쿠니 신사의 봄과 가을 '연례 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에 제물을 바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기시다 후미오는 2022년과 2023년 8월 15일 일본 패망 항복일에 자민당 총재 명의로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 언론은 기시다 내각 각료인 신도 요시타카 경제재생상이 21일 오전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야스쿠니 신사는 외국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국주의의 정신적 도구이자 상징이며 침략 전쟁에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14명의 A급 전범을 합사하고 있다며 중국 측은 일본 측의 관련 부정적인 움직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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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1
  • 美 고위급 잇따른 방중... 속내는?
    [동포투데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4월 23일 10개월 만에 중국에 방문한다. 지난 4월 4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 방문했다. 이는 올해 미국 측 고위 당국자의 첫 중국 방문이었다. 지난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년 8개월 만에 전화 통화에서 협력을 논의했으며 그 후 미국 측 고위 당국자들의 중국 방문이 잦아지고 있다. 미국 측 중국 방문 행위 원인은 아래와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첫째, 미중 양국은 관계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는 미중 외교관계 수립 45주년 되는 해이다. 특히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대중국 디커플링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디커플링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세계 1위와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세계 경제의 비율과 기여율 모두 40%가 넘는다. 이 두 나라는 세계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두 나라 간의 지속 가능한 소통 채널 유지는 관계 완화의 첫걸음으로 간주된다. 둘째, 미국 경제는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인플레이션, 부채한도, 은행 부도 등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있다. 미국은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자원을 활용해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 한다. 2월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7750억 달러로 한 달 전보다 227억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미국 채권 보유 변화 움직임이 급격한 지정학적 변화 및 미국과 불안정한 관계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셋째, 미국은 중국의 태도를 탐지하려고 한다. 미국은 대만해, 남중국해, 인권 문제 등에서 중국에 대해 군사적 도발과 제재까지 가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취해 왔다. 이는 미중 관계의 심각한 악화로 이어졌고, 양국 간의 불신과 대립을 증가시켰다. 특히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의 추진으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고위 관계자들을 중국에 파견해 중국의 양보나 타협을 이끌어내 자국의 전략과 이익을 조정할 수 있도록 중국의 속내와 반응을 떠보려 하고 있다. 넷째,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을 위해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미국 측 고위 관계자의 중국 방문은 미국 당국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의 관계를 큰 파열음 없이 관리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성적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한반도 긴장 격화로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바이든 정부는 미중 관계를 중요한 성적표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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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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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투사, 양이원영 의원
    [동포투데이] 탈원전 운동가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양이원영 의원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해양투기 저지 대책위원회 간사를 맡아 이 방면의 대표적인 국회의원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양이 의원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해 의정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이다. 양이 의원은 야당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 저지 대응단을 조직하여 4월 6일 일본을 방문했다. 대응단은 “오염수 방출하면 우리 국민의 먹거리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 우려된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번 방문을 두고 여권에서는 ‘빈손 외교’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양이원영은 “정부가 나서지 않으니 국회가 나선 것”이라고 받아쳤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계획을 발표한 이후 줄곧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사회적으로 ‘정부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를 승인 것 아니냐?’는 여론이 들끓자 한국 정부는 ‘지지도 찬성도 한 적이 없다.’고 변명했다. 한국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찬성한 적은 없으나 침묵해 온 것은 사실이다. ‘침묵은 오염수 방류 공범’이라는 것이 양이 의원의 생각이다.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방류 저지 대응단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에 분노하여 이번에는 머나먼 유럽 영국에 날아갔다. 런던 현지 시간으로 9월 16일(토) 오후 4시 더불어민주당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대책총괄위원회 우원식 의원, 송기호 정책기획 본부장은 국제해사기구(IMO) 방문하여 현직 임기택 사무총장과 차기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아르세뇨 도민게즈 국장을 1시간 40분 면담했다. 이 자리에서 대응단은 “미래세대와 해양 생태계를 위해 일본 정부가 허용한 후쿠시마 원전 해양 방사성 폐수 투기는 런던의정서 법률 체계에 따라 즉시 중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서한을 전달하고 또 다음과 같은 우려 사항을 말했다. 먼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최소 30년에서 앞으로 100년 이상 투기될 가능성이 높아 장기간 해양투기에 의한 누적 영향으로 먹이사슬을 통한 생태계 피해를 우려. 두 번째로 바다에 방사성 오염수를 투기하지 않는다는 대안 즉 육상에 보관하거나 수증기 증발 등 다양한 대안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가장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바다를 오염시키는 결정을 한 것에 대한 우려. 마지막으로 원전사고로 인한 오염수 해양투기는 나쁜 선례가 되어 인류와 미래세대 모두의 자산인 바다를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대응단은 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가장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한국과 일본이 협의가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해사기구가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왜 양이 의원을 비롯한 오염수 해양 방류 대응단이 이렇듯 동분서주하면서 적극 나설까? 만약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왔더라면 야권 의원들이 ‘설자리’는 별로 없을 것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양이 의원을 비롯한 야당 대응단의 동분서주는 한국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도쿄전력 1차 오염수 방류 3개월 전쯤 한국 정부는 사회여론의 압박이 거세지자 시찰단을 일본에 보냈다. 5월 21~26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시찰단은 단장인 유국희 원자력안전원장을 비롯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원전·방사선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해양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까지 총 21명으로 구성되었다. 정부 시찰단 인원수는 방대하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해냈는지에 대해서 국민들이 의문을 표할 정도로 말 타고 꽃구경하다 온 것 아니냐는 시선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시찰단 명단조차 밝히지 않고 공명정대하지 못하고 어물어물 쉬쉬하면서 일본 방문을 진행했으니 국민들의 비판은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도쿄전력은 10월 5일부터 2차 방류를 시작한다는 계획을 지난 9월 28일에 발표했다. 한국 정부는 1차 방류 때와 같이 지난 4일 국무조정실을 통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소속 전문가를 후쿠시마 현지로 파견한다.’고 밝혔고 “우리 정부는 지난 1차 방류 때와 마찬가지로, 방류 관련 실시간 데이터와 도쿄전력이 시료 채취 및 분석 후 공개하는 정보 등을 철저히 모니터링한다.”고 말했을 뿐 방류 자체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내지 않고 있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두고 “일본에서도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지진과 해일이 있어서 피해가 컸지만 원전 자체가 붕괴된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방사능 유출은 기본적으로 안 됐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측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데 비해 한국 정부는 반대는 고사하고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목소리에 수산물 오염은 괴담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를 비롯한 관료들이 수산시장을 방문하여 회를 먹는 쇼까지 벌이고 있다. 지금도 그렇거니와 앞으로도 윤석열 정부 임기 내에는 정부 차원의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에 반대하는 입장은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윤석열 정부에 오염수 방류 반대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호랑이와 가죽 흥정을 벌이는 것과 같이 황당한 짓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 전체가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할 수는 없다. 양이 의원 같은 분들을 비롯해 시민사회가 적극 나서야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공조가 매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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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29
  • [단독 인터뷰] 강창일 전 주일대사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내주는 나라가 아니야”
    [동포투데이] 얼마 전 G7 정상회담이 마무리되었다. 개최국인 일본의 초대를 받아 한국도 참석했는데, 이를 두고 단절됐던 한일관계가 회복 및 정상화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 쌓여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생각하면 한일관계를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생겨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약 130만 톤의 해양 방류와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일본 기업 없이 마련하겠다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 갈수록 도가 지나치는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한국인이라면 쉬이 넘어갈 수 없는 이슈가 산적해 있다. 이러한 해묵은 역사문제부터 최근 있었던 G7을 주제로 일본에 정통한 강창일 전 주일대사(현 동국대 석좌교수, 4선 국회의원과 한일의원연맹 회장 역임)와 일문일답을 진행하며,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한국이 취해야 할 태도와 한국에 미칠 영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검증, 피해국도 포함되어야 - 일본의 오염수 방류 문제, 어떻게 생각하나 오염수 방류는 환경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그러므로 바다 환경 전문가, 세계보건기구(WHO), 국제해사기구(IMO), 그린피스 등 환경 전문가가 오염수 검증에 관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객관성이 담보된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만 검증한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을 보낸다? 결과에 대한 신뢰도 어려울 뿐더러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동남아 등 많은 국가가 피해를 입을 걸로 예상되는 국제적인 문제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접근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 일본에서는 지속적으로 오염수가 인체에 해를 줄 수준은 아니라고 하던데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는 확인 또 확인을 거쳐야 한다. 만에 하나라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하지 않다는 신뢰 가능한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 문제와 전혀 관계없는 미국, 캐나다에서 검증할 게 아니라 피해국의 전문가가 검증단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일본은 IAEA 외에 특정 국가에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데, 한국의 시찰을 수용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시찰이야 누구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시료 채취도 못 하는 시찰은 의미가 없다. 시찰이 아니라 ‘검증'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중요한 자료를 절대 내놓지 않아서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 불가한 상황이다. - 이번 시찰단 구성, 어떻게 되는지? 정부 기구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누군지 구체적으로 명단 공개도 안 한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지금 제일 문제인 건, 한국 정부가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기정사실화 한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방류를 전제로 하고 시찰단 파견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국이 일본 오염수 방류 문제에 있어 들러리 선다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 그렇다면 이번 시찰, 신뢰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기대하기 어렵다. 시찰 결과도 분명 큰 이상 없다고 결론지어질 것이 뻔하다. 시료 채취도 안 되는 시찰단이 다녀와서 발표하는 결과에 대해서 신뢰할 수 있겠나. - IAEA에서도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과정을 검증 중이다. 이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는지? 이 역시 마찬가지다. 문제없다고 할 것이다. 일본 정부 발표를 보면 결과는 나온 것 같다. ▶ 강제 징용 배상 문제, 멀티 트랙 접근법 필요 -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제3자변제' 방식으로 배상하기로 했다. 이러한 행보를 어떻게 보나. 잘못된 행보라고 본다. 일본 정부를 동참시켜서, 일본 기업에 사과를 받아야 한다. 피해자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그런데 제3자변제 방식을 통한 배상은 피해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방식이다. 일본 가해 기업이 아닌, 제3자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배상하는 방안인데 일본의 자발적 사과를 끌어내긴 커녕 우리 정부가 먼저 나서서 피해자들과 원만한 해결을 보겠다는 것이다. 이런 모양새는 말이 안 된다. -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 성급한 결정이♘다. 한일관계 정상화도 좋지만 이런 역사 문제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지 않나. 피해자 의견과 국민 여론을 수렴해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없♘다. 그러니 여론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 강제 징용 배상 해법에 피해자가 빠져선 안 된다. 해법 마련, 어떻게 해야 하나. 일본과 꾸준히, 계속해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물밑 작업을 지속해 일본 기업이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현재, 미래는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없던 일로 치부하는 건 매국과 다를 게 없다. - 국익과 역사 문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몇십 년 동안 역사는 역사, 경제는 경제, 안보는 안보 이렇게 각각 멀티 트랙으로 접근했다. 잘 유지되고 있♘고 앞으로도 멀티트랙으로 진행되♘어야 했는데 갑자기 모두 일원화시키며 과거 역사를 없애버렸다. 이는 결국 역사를 팔아버린 집단이 되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 국민에겐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잠재된 어떤 정서가 있다. 물론 일본 여행도 잘 가고, 일본 문화도 좋아하지만, 과거사는 다른 문제다. 그러므로 경제는 경제대로 역사는 역사대로 멀티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 ▶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는 G7 정상회의 - 의장국인 일본의 초청을 받아 G7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됐다. 한국이 일본의 초청을 받은 배경은 무엇인가. 한국도 G7 정상회의에 4번 참석한 이력이 있다.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래서 당연히 초대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만 초대받은 게 아니라 호주,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코모로, 쿡 제도 등 엄청 많은 국가가 초대됐더라. 이번 정상회의 주인공은 일본의 기시다 총리와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조연 그 어디쯤이었을 거다. - G7 정상회담에서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제공됐다고 하던데. 일본에서도 후쿠시마산 농산물은 잘 안 팔린다. 아마 방사능 전부 체크해서 안전한 음식만 갖다 놨을 거다. 술은 증류수라 괜찮다고 하는 술과 안전한 음식 몇 개만 준비한 걸로 알고 있다. 후쿠시마산 물도 안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후쿠시마산 식재료가 정상회의 식탁에 올라 안전하다는 식으로 어필하고 있다. - 원폭 희생자에 대한 참배 일정도 있었다. 한일 정상 참배는 처음이라던데. 이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통령이 가는 건 당연한 건데, 기시다 총리가 간 게 중요하다. 그게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아마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을 배려해서 원폭 희생자 참배 일정을 진행한 게 아닐까 싶다. 이 참배 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원폭 피해자 14명이 히로시마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다. 히로시마 참배 일정 때 만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런데 정부 쪽에서는 회신도 없고 가타부타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히로시마로 향했던 한국 원폭 피해자들은 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참배를 진행한 거였다면, 한국에서 온 원폭 피해자들도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진정성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G7 정상회의 후, 여당에서는 ‘국격을 높였다' 야당에서는 ‘들러리 선 꼴밖에 안 된다'라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국가의 위상을 높인 건 없고, 한미일 회담을 아주 짧게 약식으로 진행했는데 정식으로 길게 진행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한다. - G7 정상회의 참석이 한국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나. 딱히 변할 건 없어 보인다. 얻은 것과 손해 본 것 모두 없다. 다만 이번 회담을 통해 친미, 친일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본다. - 올해 상반기에 나타난 중국무역적자, 친일본 행보와 관련이 있나. 안보 문제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 관계를 다져왔다. 그런데 이번 회담과 일련의 사건을 통해 경제마저도 친미/친일이 된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함으로써 ‘신냉전체제의 구축이다’와 같은 비판도 있었다. 다행히 이번 정상회의 때 중국에 원한 살 발언은 안 했지만, 국가 이익이 걸린 경제 문제이므로 항상 신중해야 한다. - 이에 대한 주변국의 견해는 어떤가. 주변국의 견해에 앞서 중요한 건 All of nothing이다. 경제적으로 수많은 나라가 엮여 있다는 소리다. 그러므로 앞서 계속 말한 것처럼 경제는 경제대로, 안보는 안보대로, 성격에 따라 트랙을 나눠 멀티로 접근해야 한다. ▶ 독도 문제, 과잉 대응하지 않는 것이 답 - 일본이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일본 고유영토’로 지칭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독도 문제는 해결이 어렵다. 당장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은 독도 문제를 시끄럽게 다루지 않는 것이다. 일본이 원하는 게 바로 ‘분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도 문제를 이슈화해서 세계에 알림으로써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끌고 나가려는 것이다. - 그렇다면 한국이 독도를 지키기 위한 영유권 주장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나치게 대응하지도, 예민하게 반응하지도 말아야 한다. 일본은 우리나라가 반응하길 원하고 있다. 그래서 계속 자극을 하는데, 독도 문제는 국제 분쟁으로 끌고 가면 안 된다. 독도문제가 이슈화되면 전 세계 사람들은 사실관계 확인을 떠나 ‘독도는 일본 땅인가?’라고 생각해버릴 수 있다. 그러니 독도 문제는 크게 반응하지 않는 게 좋다. -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은 어떠한가. 다행히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 한국의 독도 영유권 강화를 위해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잉 대응을 하지 않는 것. 무시가 답일 수도 있다. ▶ 한일관계, 큰 문제는 없을 것. 다만… - 통큰 양보를 하고도, 일본 측 태도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보이나. 윤 정부가 일본을 몰라서 그렇다. 일본은 하나를 준다고 똑같이 하나를 주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배 째라 버텼더니 이것들이 깨갱하는구나' 하면서 더 큰소리를 친다. 그러므로 일본과는 논쟁과 논의를 지속하며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반대로 문제를 해결할 명분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 한일 관계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나.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고, 일본의 입장도 헤아리는 식으로 가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문제만 없으면 된다. 인적 교류는 이미 잘 이뤄지고 있고, 일본과는 기술 등 협력할 여지가 많다. 일본은 강압적으로 하지 않고, 한국도 비굴하게 굴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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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9
  • [인터뷰] 박동웅 구로구의장, “구민과 더불어 외국인 주민도 살기 좋은 구로 만들 것”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한국은 노동력 공백에 따른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에 의한 결혼이민자의 증가로 사실상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021년 6월 말 기준 1,981,035명이다. 그중 서울시 구로구에 체류하고 있는 25,316명 외국인 주민 중 18,190명이 중국동포이다. 기자는 지난 4일 구로구의회 7대 후반기 부의장으로 또한 3선 의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의정활동에 열정을 바치고 이번 제8대 의회에서도 후반기 의장으로 지역주민은 물론 외국인 주민 민원이 발생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박동웅 의장을 만나 그동안 의정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동포 및 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과 지원계획에 대해 들어 봤다. 다음은 박동웅 구로구의회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현재 시행 중에 있거나 계획 중인 중국동포 관련 사업은? A.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중국동포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닐 때 보육료를 전액 자비로 부담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산에서는 아마 시행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구로구도 내년부터 보육료 20%가량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외국인 주민 자녀들을 조사해보니 약 천명 조금 넘는데 그 아이들에 대해 우선 보육료 20% 정도 지원해주고 차후에는 그냥 100% 지원하는 쪽으로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 최초로 이와 관련한 예산 편성을 준비하려고 한다. 한 해에 7억 정도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Q. 구민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A. 그런 분들도 있지만 우리끼리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글로벌시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구로만, 구로구 사람들만 뭉치는 것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분들도 다 같은 한민족이고 외국인이던 한국인이던 차별 없이 함께 사회에 흡수돼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주민들에게 잘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Q. 지역주민과 중국동포 간 소통과 화합에 대한 모범 답안이 있다면? A. 가리봉을 중심으로 구로구는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구로구에는 다문화 정책과가 있는데 중국동포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이라든가 필리핀 일본 등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도 명예 통장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또 구로구에는 봉사단이 매우 많다. 이를테면 구로 4동 같은 경우는 다문화 봉사자들이 야간 순찰도 하고 있고 다문화 경노당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구로구가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근래 산발적으로 좀 많이 하고 있는데 향후에는 체계적인 시스템 상에서 동포들과 구청 간에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Q. 현재 가장 시급한 현안과 해결책은? A. 현재 구로구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분들이 중국동포들이다. 과거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 동포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장사가 잘 안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에 대한 것은 우리가 추정할 수 있지만 정책은 정확한 수치를 갖고 하는 것이기에 다문화 정책과에서 우리 동포사회 실태 파악을 다시 해서 제도 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Q. 상호우호도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문화교류 계획은? A. 한국의 수출 규모를 보면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을 앞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계시고 또한 중국과 한국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변과 교류(공무원 교류)를 했지만 사실 문화 교류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향후에는 여러 중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서로 간 문화를 교류하고 우리 축제 때 해당 국가 도시의 전통적인 문화행사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거꾸로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축제라든가 행사가 있을 때 우리 구로구에서도 문화예술단이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A. 현재로서는 일단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안정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자체도 K-방역을 통해서 그냥 열심히 뛰고 있지만 우리 구로구에서도 구로구만의 어떤 방향 시스템을 잘 구축해 구로구가 코로나19에서 좀 더 안전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돼야 구로에서 사업하시는 분들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 될 것이다. Q. 중국동포에 대한 이해정도는? A. 한 예로 아마 한국사람 중에서 가장 양꼬치와 고량주를 많이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좋아한다. 젊었을 때 사실 한국에서 투자 목적으로 중국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어떤 사정 때문에 결국 못 들어간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도시계획 전공이다 보니 연변은 물론 선양, 광저우, 칭다오,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 중국의 많은 도시들을 다녀봤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많다고 생각하고 중국 양꼬치를 중국동포보다도 내가 더 많이 먹는다고 감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Q. 중국동포에 한 말씀 부탁한다면? A.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고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그냥 돈을 벌고 살다가 중국으로 가면 된다는 인식보다도 역시 우리 조상의 뿌리는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이 잘 돼야 동포사회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한민족으로 역할을 한다면 지역주민들과 잘 화합할 수 있고 이제 동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도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생활할 수 있다고 본다. 구로구의장으로서 향후 그 어떤 정책이나 개인적인 꿈도 있겠지만 중국 동포들이 구로구에 와서 잘 살고 여기에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도시가 구로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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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9
  • 中, 98세 “쿵푸 할머니” 온라인 돌풍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최근 한 지역 모임에서 무술을 시연하는 98세 중국 “쿵푸 할머니”의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44만 번 이상 조회되고 4,500개 이상의 좋아요가 쏟아지는 등 순식간에 히트를 치고 있다. “쿵푸 할머니”의 팬들은 “98세에도 걸을 수 있을까. 쿵푸가 장수의 관건일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올렸다. 심지어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 대해 "쿵푸 정신은 늙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주목했다. 본명이 장헥셴(張鶴仙)인 “쿵푸 할머니”는 2017년에 이미 명성을 얻었지만 거의 10년 동안 고향인 저장(浙江)성 닝하이(寧海)현 장컹(張坑)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이 영상이 유튜브에 퍼지자 조카딸은 “할머니는 이제 중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명하시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키는 약 1.5미터이다. 그의 쿵푸 동작은 유창하고 걸음걸이는 꾸준하다. 할머니의 마을은 쿵푸와 오랜 관계를 맺어왔고 할머니는 5살 때 중국 남부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무술 스타일인 장복싱의 6대 계승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때는 매일 연습했다. 지금은 나이도 들고 힘도 예전보다 줄었지만 아직 원기 왕성하다”고 말했다. “쿵푸는 폭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평생 농부인 할머니는 이웃들과도 잘 지낸다. 막내아들인 펑은 “어머니는 항상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어머니는 마을에서 결혼을 앞둔 사람들을 돕고 바느질도 하고 요리도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3남 1녀를 두고 있으며 모두 닝하이현에서 근무하고 있다. 닝하이현은 마을에서 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다. 할머니는 남편이 사망한 2012년부터 혼자 살고 있다. 할머니의 삶은 평범하지만 잘 짜여져 있다. 할머니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매일 세 끼의 요리를 하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해산물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가끔 친구들을 찾아가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오후에는 쿵푸 연습을 한다. 장컹 마을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할머니의 집은 산비탈에 있기 때문에 식료품을 사러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러 갈 때 등산이 필요하다. 언덕을 오르면서 꾸준히 하는 운동이 할머니가 정력이 왕성한 원인일 수 있다. 펑은 “어머니에게 도시에서 함께 살기를 요청했지만 어머니는 혼자 사는 것을 즐겼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할머니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쿵푸 할머니”는 아버지의 장복싱 스타일을 주말과 휴일에 집에 오는 손주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최근 이웃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무술 수업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한 할머니는 자원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펑은 어머니와 가족들은 “쿵푸 정신을 젊은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고 그것이 그들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사람들
    2021-08-16
  • 중국에서 캉테로 불리는 조선족 축구선수 김경도
    [동포투데이 화영 기자] 1992년 11월 18일, 김경도(진징다오·金敬道)는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에서 태어났다. 대부분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김경도도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시절 김경도는 축구에 대해 잘 몰랐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뛰어 노는 과정에서 축구에도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약간의 재능을 보였다. 연변은 축구의 전반적인 환경이 다른 곳과 다르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방과 후 첫 오락으로 축구를 한다. 이러한 축구 환경에서 많은 우수한 축구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김경도는 2003년 옌볜(延邊)의 쑹칭링(宋慶嶺) 축구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축구 전문 훈련을 시작했다. 진징다오의 부모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국으로 떠났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김경도는 독립적이고 힘든 일을 잘 견디는 품성을 키웠다. 2008년 청소년대표팀에 뽑혀 첫 국제대회를 치른 김경도는 눈부신 활약으로 그해 U-20 대표팀에 발탁됐다. 2009년에는 U-20 대표팀 주장을 맡아 사상 두 번째로 국가대표팀 소수민족 주장 자리에 올랐다. U-20 대표팀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2009년 김경도는 시리아와의 경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포지션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다음 라운드 진출을 도왔다. 김경도는 경기전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이니에스타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경기가 끝난 뒤 기자가 이니에스타와 연락해 상대방이 사인 유니폼을 선물한 것도 김경도를 오랫동안 기쁘게 했다고 한다. 2010년 김경도는 연변FC에 입단해 클럽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도 곁에 안 계시고 이제 막 입단한 뒤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김경도는 늘 팀 동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봐야 만 했다. 마침 외사촌형인 박성(퍄오청·樸成)이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동생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퍄오청은 이때로부터 김경도를 돌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한국에 일하러 갔고 나는 연변FC에서 선수로 뛰었지만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박성은 오래 전부터 축구를 했다. 그는 돈을 괜찮게 벌었고 보너스도 받았다. 그때 나는 그의 집에 짐을 풀었다. 그는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사주었고 체육관에 갈 수 있도록 돈도 대주었다. 그리고 내가 U-20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 그는 다른 선수들이 좋은 휴대폰과 명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에게 그것을 다 사주었다. 나중에는 또 휴대폰과 아이패드까지 사주며 축구를 잘하라고 격려 했다” 이는 사촌형인 박성에 대한 김경도의 평가다. 오늘도 두 사람은 여전히 절친한 사이로, 중국 슈퍼리그에서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다. 2011년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에서 김경도는 벤치에서 나와 성인 남자 국가대표팀 데뷔를 알렸다. 이번 국가 대표팀 경험으로 김경도는 중국 슈퍼리그에서 쟁탈하는 인기 선수로 됐다. 2013년 이 쟁탈전에서 승리한 산둥 루넝(山東魯能)은 연봉 100만 위안, 이적료 800만 위안에 김경도를 영입했다. 하지만 루넝 합류 이후 김경도는 그렇다 할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궈안과의 첫 경기에서 비정상적인 플레이로 결국 팬들의 욕설이 쏟아졌다. 다행히 동료들이 그를 격려했고 그가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익숙한 포지션이 아니다 보니 김경도의 플레이는 매우 어색했다. 김경도의 가장 좋은 포지션은 미드필더와 풀백이다. 하지만 그런 위치에서도 김경도는 팀과 감독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달리기와 부상 스틸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많은 칭찬을 받았고, 팬들은 점차 그를 받아들였다. 그해 그는 좋은 활약을 펼쳤고 '최우수 신인'상을 수상했다. 2016년, 마가트 감독은 김경도를 완전히 재탄생시켰다. 마가트는 유명한 "악마 감독"이다. 그는 선수들의 세부 사항에 대한 요구 사항이 매우 높았다. 그는 김경도가 수비형 미드필더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를 풀백으로 변경 시켰다. 김경도는 당시 마가트 감독이 자신에 대한 요구사항이 높았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공을 빨리 잡아 다른 사람이 못 따라온다며 볼을 잡으면 상대 측면 수비수를 상대로 돌파하라고 했다. 처음에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우싱한(吳興涵)이나 류빈빈(劉彬彬) 같은 빠른 스피드 돌파가 없었다. 나중에 하오준민(蒿俊閔)의 도움으로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해 시즌 김경도는 윙백 포지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고 루넝에서 가장 빛나는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은사 마가트 감독은 안타깝게도 팀의 부진한 경기력으로 인해 해고되었다. 김경도 역시 그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암울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ACL 8강 1차전 서울 방문경기를 앞두고 몸에 살코기 성분이 들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소변검사 양성 판정을 받아 60일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때부터 고기는 거의 먹지 않고 음식에 신경을 썼던 김경도는 충격도 컸지만 선수 생활과 컨디션 유지에는 큰 힘이 됐다. 그 해 김경도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았다. 2016년 11월 13일 김경도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왕융퍼(王永珀), 왕통(王彤), 송룡(宋龍) 등 동료들이 대거 참석해 축하하였으며 루넝도 공식 홈페지를 통해 결혼 축하와 함께 김경도 부부의 백년해로를 기원했다. 김경도의 감정 또한 매우 로맨틱하다. 그와 그의 아내는 서로를 수년간 알아왔다. 그들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들은 학교 다닐 때 사귀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들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생겨 함께하게 되었다. 2017년 김경도는 징계에서 풀려나 팀에 복귀했고 루넝은 리샤오펑(李霄鵬)감독을 영입했다. 리샤오펑이 부임한 뒤 팀은 파격적인 변신을 하지 않고 마가트 감독의 플레이 스타일을 이어갔다. 김경도 역시 익숙한 윙백 포지션을 유지했다. 이후 두 시즌 동안 김경도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타르델리 및 펠레와 매우 묵계적인 관계를 형성했으며 종종 도움을 주거나 득점하며 루넝의 측면에서 날카로운 킬러가 되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18시즌 김경도의 수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시즌 29경기에 출전해 6골 6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당 평균 고강도 달리기, 스퍼트 횟수 1위, 경기당 평균 거리 2위, 가로채기 3위, 경기당 4위라는 맹활약으로 시즌 최고 인기 본토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김경도는 대표팀의 단골손님이 됐고 리피는 물론 가오훙보(高洪波), 리톄(李鐵) 등 본토 감독들에게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되었다. 다만 리피 시절에는 김경도에 대한 요해가 부족해 기술적인 특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고 김경도 역시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리피 감독 후임으로 2021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리톄 감독은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40강전 몇몇 경기에서 김경도의 활용에 신경을 썼다. 김경도는 움직임이 좋고 수비 면적이 넓으며 공격은 날카롭다. 현재 김경도는 대표팀 10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자격을 갖춘 '프리 맨'이 됐다. 곧 카타르 월드컵 3차예선인 12강전이 시작된다. 12강전에서 절대 주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김경도는 계속 자신의 색깔을 살려 대표팀을 위해 몇 골을 더 넣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스포츠
    2021-07-28
  • 세계급 중국 조선족 무용가 김성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많은 사람들이 중국 유명 무용가 김성(金星)을 알지만, 그녀의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중국 무용수 중 한 명인 김성은 25세의 나이에 벨기에 왕립 무용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1995년 이미 유명해진 김성은 군구(軍區)예술단에서 퇴직하고 북경향산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수술 과정은 장원 감독에 의해 다큐멘터리 영화 '미스 김성'으로 촬영되었다. 23세에 장가들어 28세에 여자로 태어난 김성은 38세에 독일인 한스와 결혼했다. 현재 54세인 그녀의 인생에는 전설로 가득 차 있다. 김성은 1967년 선양의 한 조선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남자 목욕탕에 데려가 목욕시키자 김성은 매우 불편함을 느꼈다. 이때부터 김성은 자신의 성 인식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다. 아홉 살 때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학교 문예선전대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군구(軍區)예술단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이때로부터 김성은 자신의 내면에 있던 미에 대한 향수가 늘 여성스러움을 깨닫게 되었다. 1985년 군사훈련 멘토 송소원이 제1회 전국 타오리컵(桃李杯) 무용대회에 참가할 것을 권유했다. 그 결과 대회 경험이 전무했던 김성은 탄탄한 기반과 뛰어난 재능으로 400여명이 출전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무용 ‘목가’로 청소년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고 중국에서는 최초로 발레화 없이 발가락을 사용할 수 있는 무용수가 됐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겠다는 결심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행복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성별의 정체성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녀는 내가 언제 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했다. 1986년 광둥현대무용학교에서 국비유학생을 미국에 보내려 한다는 소식을 입수한 그는 무작정 광둥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2년 뒤 뉴욕으로 건너가 무용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캐롤라인과 첫 결혼을 했다. 1993년 김성은 귀국 후 중국문화부가 주최하는 전국 현대무용수련반에 초빙되어 중국 현대 무용의 창시자가 되었다. 1995년 영혼과 육체의 분열은 그에게 큰 문제를 가져왔다. 김성은 오랜 시간 고군분투하다 결국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장악하기로 했다. 그는 성전환 수술을 결심 했다. 김성의 결정은 어머니가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같은 자식이라며 수술이 건강에 지장만 없으면 된다고 말했다. 1999년 김성은 개인의 이름을 딴 중국 최초의 민간 무용단인 '상해김성무용단'을 창단했다. 중국에서 국제 공연 티켓을 판매할 수 있는 곳은 '상해김성무용단'과 '중국곡예단' 두 곳뿐이다. 2004년 무용단을 이끌고 유럽 순회공연을 마친 김성은 귀국길에 독일 신사인 한스를 만났다. 한스는 독특한 동양 여성에게 깊은 매력을 느꼈다. 1년간의 소통 끝에, 그들은 결혼의 궁전에 들어갔다. 결혼 후 세 아이를 입양한 김성은 이젠 엄마와 딸, 그리고 아내가 되어 남성에서 여성으로의 전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성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의구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사회는 심리적 인내를 반복적으로 질문하고 지침을 제공하는 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심리의사와 같다. 김성은 오직 실력만이 유언비어에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오늘도 진지하게 춤을 추고 있으며 그녀의 유럽공연 티켓은 구하기 어려울정도다.
    • 사람들
    2021-07-12
  • 中 유명 거사(居士)화가 탕위밍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유명한 화가 탕위밍(湯餘銘)은 중국 영화배우 탕웨이의 아버지이다. 탕위밍의 작품은 구하기 어렵다. 탕위밍은 1990년대부터 중국 스타일과 서양 스타일을 결합한 독특한 3 차원 작품을 제작했다. 필명은 북안산(北安山)이다. 원저우(溫州) 러칭(樂淸)출신인 그는 전문 미술가로 현재 거사 전문화가 1인자로 불리며 세계문화유산예술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그린 그림은 매우 높은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화가들의 귀감이 되고 벤치마킹해 그림 애호가들에게도 큰 도움이 됐다. 탕위밍은 '신부춘강산거도(新富春江山居圖)'에 참여했을 정도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람이고, 명리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도 가장 돋보이고 존경하는 곳이다. 일부 대가들에 비해 직업적으로 높은 프로정신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탕위밍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산수화를 그리는 데는 능숙하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의 거사 회화다. 그의 작품은 불학적인 매력을 주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느낌을 준다. 정직한 사람이라 그런지 그의 작품에는 자신만의 매력이 배어 있다. 탕웨이밍으로서도 딸 얘기를 할 때마다 뿌듯했다. 탕웨이는 지금의 이름값도 대단했고, 탕웨이밍에게 딸의 성장과 성취를 보여주기도 했다. 딸이 자신보다 이름값을 많이 한다고 해서 탕웨이밍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탕위밍은 화계의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로, 회화 작품도 많은 기관에서 사랑을 받아 현재 세계문화유산예술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불교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고 있는 그에게 불교문화와 중국 문화유산을 칭송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할 일이다. 탕위밍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술에 대한 추구나 신앙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탕위밍은 회화 예술에 대해 높은 이해와 추구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 역시 사람들이 존경하는 점이다. 중국 여배우인 탕웨이는 1979년 10월 7일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태어났다. 2000년 중앙연극학원 연출학과 본과에 입학했다. 2007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리안 감독의 '색·계'에서 여주인공을 맡았다. 2010년 미니시리즈 영화 '월만 헤네시'에 출연해 중화권 영화미디어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탕웨이는 2011년 영화 '만추'로 한국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상, 부산영화평론가상 등 10여 개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2013년 '베이징에서 시애틀을 만나다'는 중화권 로맨스 영화 흥행 신기록을 세우며 상하이 영화평론가상, 중국영화감독협회, 베이징대학생영화제 여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2014년 탕웨이는 영화 '황금시대'에 주연으로 출연하였으며 2015년에는 영화 '블랙 코드'에 출연했다. 2016년에는 주연 멜로 영화 '베이징에서 시애틀을 만나다'가 7억 9000만 위안의 흥행 성적을 거두며 중화권 멜로 영화 흥행 기록을 다시 세웠다.
    • 사람들
    2021-07-01
  • 조선족 환자 위해 한국어 배운 의사 선생님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최근 베이징 지슈이탄(積水潭)병원 안과 병동에 특수 백내장 환자가 입원했다. 환자는 90세 고령의 조선족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지 않으며 중국어 대화도 불가능하다. 할머니는 입원하는 동안 딸에 의해 보살핌을 받아왔다. 환자의 딸은 의료진과의 소통을 돕는 '번역기'로 활용할 수 있지만, 가족은 수술실에 들어갈 수 없어 환자가 수술실에 들어간 후에는 언어 장벽이 큰 문제가 된다. 언어 부족으로 수술에 협조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담당 의사 우이(吳怡)는 수술 전 가족들과 반복적으로 소통하며 수술 중 환자의 협조가 필요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해 환자가 수술 과정을 숙지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의 가족들 또한 환자에게 협조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종이에 필요한 문구를 쓰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안구 수술의 경우 수술 전 소독을 하려면 환자가 눈을 감아야 하고 수술 중에는 수술 도구가 환자의 눈 안에 있기에 환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므로 유일한 방법은 언어 소통뿐이다. 고민 끝에 우이는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수술 중 환자의 협조가 필요할 수 있는 단어를 정리한 후 가족들에게 한국어로 번역해달라고 부탁했다. 한국어 기초가 전혀 없는 그는 발음을 중국어 병음으로 표기하고, 어구의 악센트와 멈춤을 표시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 연습한 뒤 서툰 한국어를 구사하며 환자와 소통하려 했지만 할머니는 알아듣지 못한 채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가족들은 억양 때문이라고 우이에게 말했다. 우이 역시 중국어 병음을 병음해 만든 음조가 원음과 크게 어긋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우이는 조선족 친구에게 연락해 '보충수업'을 부탁하며 한마디씩 공부했다. 몇 마디가 아니었지만 정확한 발음을 만들고 모두 암기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날 저녁 공부를 마친 우이는 친구들에게 각 문장의 정상 속도와 느린 버전을 녹음해 검토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수술 당일 우이는 중국어 병음으로 표기한 한국어 문구가 적힌 종이를 수술실 벽에 붙이고 친구가 녹음한 '한국어 속성 교재'를 몇 차례 복습한 뒤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간호사들은 침대차에 실려 수술실로 들어온 할머니에게 수술 침대로 옮기라고 손짓했지만 할머니는 간호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침대차 위에 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술을 집도한 탕사오화(唐少華)는 우이에게 그동안 학습 성과를 시험해 보라면서 한국어로 환자와 소통하라고 했다. 우이가 환자에게 한국어로 말하자 할머니는 그녀를 쳐다봤지만 옮기지 않았다. 이에 우이는 한국어로 계속 의사소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탕샤오화는 우이에게 다시 해보라고 격려했다. 할머니가 청력이 좋지 않아 잘 못 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탕샤오화의 격려에 우이는 환자의 귓가에 대고 두 번 더 큰소리로 말했고 할머니는 결국 움직여 침대차에서 수술 침대로 옮겼다. 이어진 소독과 수술 도중에도 수시로 한국어가 울려 퍼졌고 환자는 우이의 지시에 따라 긴장을 풀고 의사와 호흡을 맞춰 가면서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 사람들
    2021-06-30
  • 18세 저우쉰의 마네킹 그림, 그것은 예술을 위한 그녀의 헌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얼마 전 TV 드라마 ‘완벽하지 않은 그녀(不完美的她)’가 중국 국내에서 히트, 저우쉰(周迅)만의 독특한 기품과 선명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도 저우쉰은 연예계에 자주 등장, 그럼 오늘은 그녀의 그제 날 이야기를 알아보기로 하자. 저우쉰, 1974년 저장(浙江)에서 태어난 저우쉰은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를 좋아했고 스크린에 나오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마침 아버지는 당시 영화관의 방영원이라 영화를 좋아하는 어린 저우쉰을 영화관으로 늘 데리고 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저우쉰은 중학교 명문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예술학교를 선택, 민속춤을 배운다는 사실에 부모님을 놀라게 했지만 부모님은 인차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한편 저우쉰은 학창시절부터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서는 자신의 얼굴을 달력에 곧 잘 나타내곤 하여 당시 아주 작은 명성을 얻기도 했다.  언젠가 세테리(谢铁骊)란 촬영사가 고분황재(古墓荒斋)’를 촬영할 때 저우쉰더러 합작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그녀는 거절, 후에 세테리가 저우쉰의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해서야 그녀의 동의를 얻어냈다.  또한 저우쉰은 달력을 찍을 때부터 늘 레이밍(雷鸣)과 함께 있었지만 레이밍은 전형적인 남성주의자여서 저우쉰이 모델 등 작품을 찍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 하지만 저우쉰은 마음속에 오직 꿈만 있었다. 결국 레이밍은 그녀를 설득하지 못하자 두 남녀는 즉시 헤어져 연락이 끊어졌다. 1992년, 18세의 나이로 모델분야에 데뷔한 저우쉰은 꿈을 위해 마네킹(人体模特)을 선택했다. 소녀 시절 저우쉰은 청순함과 볼 살 한 가닥으로 강남 여자의 특징을 잘 살렸다. 화백은 판훙하이(潘鸿海) 선생으로 당시 그는 세계적으로도 좋은 명성을 갖고 있었다. 일찌감치 저우쉰의 저력을 보아낸 판훙하이선생은 일찍부터 저우쉰의 앞날은 창창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저우쉰은 손님에게 물을 따라주다가 실수로 자신의 다리에 뿌렸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살짝 닦고 여유롭게 계속 물을 따랐어요.”  판훙하이는 이런 저우쉰의 여유작작한 자태가 앞으로의 성공을 이끈 건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판훙하이한테서는 성공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판훙하이는 많은 유화작품으로 저우쉰의 강남여성을 잘 그려냈다. 그리고 판훙하이가 그린 작품에는 저우쉰이 초지의 들판과 냇물을 배경으로 모델을 선 작품이 많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소중한 작품들이라 판훙하이의 유화작품은 많은 소장가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판훙하이의 작품 중에는 반쯤 벗은 채 옹기동이를 안고 있는 저우쉰의 작품도 있다. 이는 당시의 미적 예술과 잘 맞아떨어져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고 있다. 유화 ‘햇빛 아래의 소녀(阳光下的少女)’는 184만 위안, ‘외할머니의 다리(外婆桥)’는 165만 위안, ‘먼 옛날의 바람(远古的风)’은 80만 위안에 팔렸다. 후에 저우쉰은 이 일을 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는 저우신과 화가의 예상을 뒤엎은 것이었다. 당시 저우신은 예술을 위해 헌신한 것이지 많은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1991년부터 2000년 사이에 저우쉰의 인생길은 여전히 힘든 여정이었다. 1993년 저우신은 술집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당시 그녀는 손님들한테서 술 접대부 취급을 받았다. 저우쉰은 감정생활이 매우 복잡하지만 당시에도 매우 원칙적인 여자인지라 단번에 거절하는 바람에 깡패에게 입 주위를 두 번이나 얻어맞기도 했다. 2000년 이후 저우쉰은 큰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관객들에게 좋은 영상물을 많이 남겼으며 영화스타로도 평가받으면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의 저우쉰은 인생의 성공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거기에는 그녀가 모델로 선 유화작품들도 매우 큰 예술적 자산이 되었다.
    • 사람들
    2021-06-15
  • 중국 연예계 ‘조선족 왕자’ 맹서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맹서(孟瑞)는 중국 연예계에서 건강한 이미지와 연기력, 좋은 입담을 겸비한 배우 겸 가수·사회자이다. 그는 조선족이라는 점에서 ‘조선족 왕자’로 불린다. 맹서는 2007년 영화 ‘마석산 10용사’에 출연하며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는 선후로 드라마 ‘남좌 여우’, 웹 드라마 ‘이건 두라라가 아니야’, 사극 신화 판타지 드라마 ‘물고기 쫓는 전설’, 도시 정감 드라마 ‘10년만 기다려’, ‘힘내라 인턴’, 청춘 멜로 웹 영화 ‘불가항력 남자 하인의 비밀’, 청춘 캠퍼스 웹 드라마 ‘남북 형제’, 사극 웹드라마 ‘약선’ 등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았다. 그리고 음악 분야에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가 부른 ‘갈매기’ 등 영화 주제곡은 여러 차례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맹서는 2018년 드라마 및 드라마 주제곡 분야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올해의 우수 드라마 OST’를 거머쥐었다. 1988년 헤이룽장성 쑤이화(蘇化)시에서 태어난 맹서는 수화 2중에 다녔다. 그 후 대학입시에서 구이저우(貴州)대학 연기학과에 1위로 합격해 구이저우대학에서 2년간 공부한 뒤 베이징(北京) 영화학원에서 연기 공부를 했다. 재학 중 ‘5월의 꽃 전국 대학생 문예공연 사회자 대회’ 우승, 구이저우성 최초 연극 전문 경연 대회 연극 부문 2등상을 받기도 했다. 베이징영화학원을 졸업한 후 맹서는 구이저우 TV방송국에 입사, 음식 프로그램의 외부 진행과 영화 종합 프로그램인 ‘추억 극장’의 진행을 맡았다. 데뷔 이후 꾸준한 노력으로 많은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었던 맹서는 TV·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와 주연, 조연들을 연기하며 천부적 재능과 근면함으로 시청자들에게 인생의 백태를 보여주며 연기 인생을 평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0%는 운명이고 70%는 노력이다. 충분히 노력해야 행운도 찾아온다. 맹서는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는 동력”이라고 말한다.
    • 연예·방송
    2021-06-05

오피니언 검색결과

  • 고강, 임표가 항미원조를 반대했는가?
    ○김희수 1954년에 중국공산당 제7기 4중전회에서 고강(高岗), 요수석사건에 대해 결정을 내린 후 고강이 조선(북한)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이 있었다. 1971년의 “9.13”사건 후에도 또 임표(林彪)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이 있었다. 20세기 90년대 말까지 항미원조전쟁(6.25전쟁)에 대해 언급한 개별적인 저작에서 이런 설법이 있었다. 그럼 고강과 임표가 정말로 항미원조 출병을 반대했을까? 고강과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은 근거가 부족하다. 1950년 6월 하순에 미국이 무장으로 6.25전쟁에 개입하고 대만해협을 노리자 중공중앙에서는 조선에 출병하고 대만 해방을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당시 각 중앙국의 주요 지도자들 중 고강이 제일 먼저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1950년 7월 7일에 중앙군위에서 동북변방군을 조직할 데 대한 문제를 연구했고 그 이튿날에 변방군에 편입된 부대는 즉시 광주, 중원 등지로부터 동북으로 집중되었다. 이미 확정된 변방군 사령원 겸 정치위원 속유, 부사령 소경광, 부정치위원 소화는 병으로 직무를 맡을 수 없었다. 1950년 7월 22일에 주은래와 섭영진은 연명으로 모택동에게 “변방군을 먼저 동북군구에 귀속시켜 고강(사령원 겸 정치위원)의 지휘를 받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하고 건의했다. 모택동은 그 건의를 비준했다. 동북변방군의 공급과 참전에 수요되는 물자준비, 장비의 보충과 수리, 운수, 전방동원 등 참전준비는 모두 고강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진행되었다. 1950년 8월 중순 후에 6.25전쟁은 대치국면이 나타났다. 그해 8월 31일에 고강은 모택동에게 6.25전쟁 상황과 변방군 준비사업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 “현재 아군의 어떤 간부들 중에는 일본군이나 국민당군과 싸울 때의 안광으로 오늘의 적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들의 전술, 공군, 대포 등 특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또 일부 간부들은 미국 공군에 대해 속수무책인데 전문가들을 조직하여 적의 작전 특점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만이 작전 시 적을 소멸할 파악이 있게 됩니다.” 모택동은 1950년 9월 3일에 고강에게 “반드시 현대 전쟁의 관점으로 부대를 교육해야 합니다. 절대 적을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의견은 정확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 연구해봅시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이는 고강이 동북 변방군의 작전 준비사업에 대해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나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은래와 팽덕회가 그 후에 했던 보고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조선 출병에 대해 토론할 때 확실히 부동한 의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상곤 신변에서 사업했던 일군의 말에 의하면 양상곤은 “당시 출병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출병을 하지 말자거나 잠시 출병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강이 출병하는데 찬성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혼자 아니었을 것이다. 찬성했건 반대했건 모두 당내의 민주 체현으로 정상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어떤 의견이든 모두 당과 국가의 이익을 책임지기 위해 고려한 것이었다. 때문에 누가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해서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결정을 내린 후 출병을 찬성하는 고강의 태도는 견결했고 매우 적극적이었다. 1950년 10월 8일에 모택동이 중국인민혁명군사위원회 주석의 명의로 서명한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할 데 관한 명령 중의 규정에는 “중국인민지원군은 동북행정구를 총후방기지로 한다. 총후방기지는 모든 후방사업과 조선을 지원할 데 대한 사무를 담당한다. 동북군구 사령원 겸 정치위원 고강 동지가 총부방사업의 배치를 지휘하고 책임진다”는 내용이 있다. 그날 고강은 방금 지원군 사령원 겸 정치위원직을 맡은 팽덕회와 함께 심양으로 날아갔다. 1950년 10월 9일에 고강은 팽덕회와 함께 지원군 군 이상 간부회의를 열고 출국 작전에 대해 상의했다. 1950년 10월 8일에 주은래는 모택동과 중공중앙의 위탁을 받고 임표더러 소련에 가서 스탈린 등 소련 지도자들에게 중공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출병을 결정한 정황을 통보하고 소련 측에서 무기장비와 공중엄호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라고 부탁했다. 스탈린은 소련 공군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3개월 내에는 중국군 작전을 엄호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 소식이 북경에 전해지자 모택동은 1950년 10월 13일에 다시 중공중앙정치국회의를 소집했다. 그 번 회의에서 고강은 조선 출병에 대한 태도가 매우 견결했다. 고강과 팽덕회는 소련에서 공군이 출동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반드시 출병해야 한다고 표시했다. 모택동은 그날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에서 “고강, 팽덕회동지 그리고 기타 정치국 동지들과 상의한 결과 우리 군은 반드시 조선에 출병해야 한다고 일치하게 인정했습니다”하고 썼다. 1950년 10월 14일 3시에 모택동은 다시 주은래에게 전보를 보내어 “팽덕회와 고강 동지는 적군과 싸우면 승산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들과 나는 모두 참전이 꼭 유리하다고 인정했습니다. 첫째, 지원군이 출동한 후 팽덕회는 동북 총후방기지의 사업에 만족을 표시했다. 팽덕회는 항미원조전쟁 기간에 “지원군이 전선에서 승리한데는 두 사람의 공로가 크기에 응당 그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중 한 사람은 고강이고 다른 한 사람은 홍학지(지원군 부사령원 겸 지원군 후방근무 사령부 사령원직을 맡았음)이다. 둘째,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결책을 내온 후 고강의 태도와 행동을 보면 고강이 항미원조에 대해 태도가 견결했고 적극적 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1951년 11월에 고강과 임표는 동시에 중앙군위 부주석으로 임명되었다.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은 주요하게 그가 병을 핑계로 지원군 통수직을 맡지 않겠다고 한 것과 관계된다. 그리고 또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조선 출병을 결정한 후에도 임표가 의연히 출병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확실히 임표에게 지원군 통수직을 맡기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950년 8월 31일에 고강은 변방군이 출동 후 해당 문제 대해 모택동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부대를 지휘하는 통수와 전문인재가 빨리 동북에 올 것을 건의합니다. 그래야 충분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모택동은 1950년 9월 3일에 고강에게 회답 편지를 보냈다. “임표와 속유는 병이 있고 또 두 사람은 이 기간에 해야 할 사업이 있어서 잠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몇 개월 후에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모택동의 이 편지에서 임표는 확실히 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한 달 후에 중국 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항미원조에 출병할 때 임표는 지원군 통수를 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공중앙의 결정에 의해 임표는 소련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임표는 중공중앙정치국 위원이 아니었다. 양상곤의 일기와 이번 회의에 참가했던 박일파에 따르면 임표는 1950년 10월 4일 오후와 5일 오후에 중공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 참가했다. 임표가 회의에서 무슨 의견을 발표했던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고 말할 수 없다.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조선 출병을 결정한 후에도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은 증거가 없어 믿음성이 없다. 그러나 1951년 11월 5일에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고강과 임표를 동시에 중앙군위 부주석으로 보충선거했다. 1951년 말과 1952년 초에 임표가 3개월간 중앙군사위원회의 일상 사업을 주최했다. 항미원조는 당시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에게 첫째가는 대사였기에 만약 고강과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면 모택동과 중공중앙에서 그들을 그토록 신임하지 않았을 것이고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되어 1년이 지난 후 그들을 중앙군위 부주석으로 보충선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2-16
  • 중국 산아제한 폐지, 노령화에 적극 대응해야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2019년 중국에서 65세 및 그 이상의 연령을 가진 인구비례는 12.6%에 달해 ‘부유해지기 전에 늙어버린 중국’이란 문제가 돌출해졌다. 그 비교로 미국, 일본과 한국의 노년인구의 비중도 12.6%였지만 그들의 GDP는 모두 2.4만 달러 이상에 달했다. 하지만 중국의 GDP는 겨우 1만 달러에 불과하다. 2019년 중국에서 65세 및 그 이상 연령을 가진 인구는 1억 7603만 명으로 2018년에 비해 945만 명이 증가, 점하는 비중은 12.6%였으며 이는 2018년에 비해 0.7%가 늘어난 셈이다. ▲70년대 계획생육 선전 포스터 역사적인 데이터 비교로 인구 노령화 속도를 보면 2001년부터 2010년 사이 중국의 노령화 정도는 연평균 0.2%씩 증가, 2011년부터 2018년까지는 연평균 0.4%씩 증가했다. 그리고 중국의 노령화 수준을 국제사회와 비교해 보면 2019년 중국의 노령화 정도는 글로벌 경제체 중 61위를 차지, 중등이상 수입 계층보다 2.2%가 더 높았다. 2019년 세계의 65세 및 그 이상 연령의 인구가 점하는 비중은 9.1%, 고수입 계층 및 중등이상 수입 계층이 점하는 비중은 각각 18.0%와 10.4%였다. 세계에서 노령화 정도가 앞 3위인 일본, 이탈리아, 포르투갈도 노령인구가 각각 28%, 23%와 22.4%였다. 그리고 노령화 정도와 경제발전 수준의 국제적 대비로 보면 미국, 일본, 한국과 중국의 GDP가 1만 달러로 된 시기는 1978년, 1981년, 1994년과 2019년이었으며 당시 이런 나라들의 65세 이상의 인구가 점하는 비율은 각각 11.2%, 9.2%, 5.8%와 12.6%였다. 또한 미국, 일본, 한국과 중국의 65세 및 그 이상 인구의 비율이 12.6%로 된 시기는 각각 1990년, 1992년, 2015년과 2019년이었다. 당시 이런 나라들의 인당 평균의 GDP는 각각 2.4만 달러, 3만 달러, 2.7만 달러와 1만 달러였다. 다음 발전추세로부터 보면 중국인구의 노령화 속도와 규모는 2022년이면 중국의 노년인구가 점하는 비율이 14%를 초과하면서 정식으로 노령화 사회의 문턱에 넘어서게 되고 2033년에 가서는 노년인구가 20%를 초과하면서 초 고령사회에 들어서게 된다. 그 뒤에는 노년인구가 계속 상승하면서 2060년에 가서는 35%를 점할 것으로 보이고 있다. 생육률의 저하와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 고령화는 지구촌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되고 있다. 다르다면 중국은 장시기 동안 실행한 계획생육 조치로 인해 노령화 속도가 전례 없이 빠르다는 것이다. 발달한 국가의 상황을 보면 65세 및 그 이상 인구가 7%를 초과하면 노령화이고 그것이 과도하여 14%에 이르면 고령화로 인정, 프랑스는 그것이 126년에 거쳐 진행이 됐고 영국은 46년, 일본은 24년(1971년부터 1995년)에 거쳐 진행됐다. 고령화로부터 노년인구가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 고령화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28년(1990년부터 2018년), 독일은 36년(1972년부터 2008년), 일본은 11년(1995년부터 2006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중국은 2001년에 65세 이상의 인구가 7%를 초과하면서 인구의 노령화에 진입했다. 중국은 오는 2022년에 고령화에 진입할 것으로 보이는바 노령화로부터 고령화까지 걸린 시간은 21년이고 다시 11년이 지난 2033년이 되면 중국은 초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이어 2050년엔 노년인구가 29.5%, 2060년이 되면 35.2%로 될 것으로 예측되며 그 때로부터 한 단계의 안정기를 거친 후 다시 2084년이 되면 노년인구가 약 40%가 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게다가 저변인구가 많기에 중국의 노년인구 규모는 전대미문의 규모로 되고 있다. 2019년 중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이미 1.76억 명에 달했으며 그것이 2050년에는 3.76억 명, 2058년에는 4.14억 명으로 직상승하여 그 때에 가면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인 셈이다. 한편 고령화 문제 역시 날로 돌출해지고 있다. 2019년 중국의 80세 이상의 고령노인은 3200만 명을 초과, 비중은 2.3%를 점했다. 예측에 따르면 2030년에 가서 중국의 고령노인 인구는 5300만 명이 달해 전체 인구의 3.8%를 점하게 되고 2073년부터 고령인구가 직 상승, 그 해에는 1.74억 명으로 전체 인구의 17.1%, 2100년에 가서는 고령인구가 1.56억 명으로 전체 인구의 20.8%를 점하게 된다. 이 외 인구연령 중 중간 연령대를 놓고 보면 1980년부터 2015년 사이 중국인구의 중간 연령대는 21.9세부터 36.5세로 상승, 예측에 따르면 2030년과 2050년에 이르러 중국인구의 중간 연령대는 각각 43.0세와 50.7세로 나타났다. 국제적으로 보면 2015년 미국, 유럽, 일본과 인도의 인구 중간 연령대는 각각 37.6세, 41.1세, 54.7세와 38.1세였다. 하다면 2050년에 가서 중국 인구의 중간 연령대는 미국, 유럽과 인도 등에 비해 현저하게 높아 국제경쟁력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인구의 노령화는 사회보험의 수입과 지출의 모순을 더욱 돌출하게 하여 앞으로 양로금 발급 부담이 날로 증가되기 마련이다. 2018년 중국에서 사회보험기금 수입 지출 실제 잉여액은 마이너스 6033만 억 위안으로 6년 연속 마이너스 기록을 작성하였다. 중국에서 양로보험이 사회보장 체계에서 점하는 비율은 70%로 2018년 양로보험 기금의 실제 잉여 액은 - 4504억 위안으로 실제 잉여액 역시 연속 6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현재 사회보험에서 뚫린 구멍은 역사적으로 남아 내려온 연체액으로 계획경제 시대에 국유기업들과 사회의 부분적 부류가 퇴직 전에 보험금을 납부하지 않고도 퇴직 후 양로금 지급 복지를 향수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11월 중국 국무원은 ‘부분적 국유자본을 사회보험기금 실시에 획분 전환할 데 관한 방안(划转部分国有资本充实社保基金实施方案)’를 발부, 2020년 말 전까지 기업의 국유주식 10%로 사회보험에 보충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인구 노령화 속도가 부단히 가심해짐에 따라 양로금의 ‘뚫린 구멍’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돌출해지는 양상, 이는 전 세계가 공동으로 직면한 보편적인 난제이기도 하다. 중국 도시 직원들의 기본 양로보험 기금을 볼 때 중국의 누적 잔액의 지불 가능 시간은 2012년의 18.5개월에서 2018년의 13.7개월로 내려갔고 부양비율(재직 인수/퇴직 인수)은 2.55% 내려갔다. 그리고 2018년에는 4개성이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졌고 18개성의 잔액 지불 가능 시간이 12개월 이하로 내려갔으며 8개성의 부양비율이 2% 이하로 내려갔다. 이 중 헤이룽장(黑龙江)의 양로보험 기금은 2013년부터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졌으며 2016년의 잔액 지불 가능 시간은 마이너스로 전환되었다. 다음 노령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의료지출 압력이 갈수록 커졌다. 중국 국가보건서비스 조사에 근거하면 2003년부터 20013년까지 중국에서 조사받은 지역 주민들의 2주간 발병률(발병인 차 수/조사받은 인원수)은 14.3%에서 24.1%로 증가, 이 중 65세 이상 인구의 발병률은 33.8%에서 62.2%로 증가했으며 2013년 노년 인구의 발병률은 평균 수준의 2.58배로 되었다. (다음에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2-04
  • 中 동북지역 노동인구 평균 연령 40세, 인구유실 ‘심각’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최근 중국 중앙재정경제대학 인력자원 및 노동경제 연구센터는 중국 최신 인력자원 추산 결과 보고서인 ‘중국 인력자원 보고서 2020’(이하 ‘보고서’로 약칭)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중앙재정경제대학 특별 초빙교수인 미 조지아 이공대학 교수 리하이정(李海峥)의 주도로 집필, 중국 인력자원의 분포와 발전 동태를 통해 정량적 설명을 한 것으로 인력자원이 중국 경제발전 중의 작용을 탐구함에 있어서의 중요한 조건을 창조해 주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85년부터 2018년간 중국 노동인구(학생 포함)의 평균 연령은 32.2세로부터 38.39세로 상승하였다. 동북지역 ‘근로자’ 나이가 가장 많아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중국 내 노무시장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근로자들의 소속 성 순으로는 헤이룽장(黑龙江), 랴오닝(辽宁), 지린(吉林), 충칭(重庆), 후난(湖南), 저장(浙江), 네이멍구(内蒙古), 후베이(湖北), 장수(江苏), 허베이(河北)와 쓰촨(四川)이었다. 이 중 동북 3성이 앞자리 3위를 점했다. 평균 나이가 가장 많은 헤이룽장은 40.19살이었으며 중국에서 유일하게 노동력 평균 나이가 40살을 초과하는 성으로 되었다. 그리고 랴오닝과 지린 역시 39.7살을 초과하는 2―3위를 차지했다. 중국 내 노무시장에서 젊은층은 갈수록 적어지고 중년층은 갈수록 많아지는 현상을 보아낼 수 있다. 이 중 동북지역 노동인구의 외지 유출문제가 줄곧 주목을 받고 있다. 공개된 집계 자료를 보면 2019년 전국의 주요 장기거주 인구에서 동북 3성과 베이징(北京)은 장기거주 인구가 마이너스 기록을 보인 성과 시었다. 이 중 헤이룽장, 지린과 랴오닝의 장기거주 인구는 각각 21.8만 명, 13.33만 명과 7.6만 명이 감소하였다. 실제 상황으로 보면 2013년부터 동북지역의 장기거주 인구는 7년간 지속적으로 유출, 인구 유출 규모는 2013년의 0.79만 명으로부터 2019년의 42.73만 명으로 늘어났다. ‘21세기 경제보도’의 집계에 따르면 이 7년간 동북 3성에서 순 유출된 인구는 164만 명에 달했다. 헤이룽장성 하얼빈(哈尔滨)에서 태어난 징 씨 여성은 고중을 졸업하자 동북지역을 떠나 베이징에 가서 대학교를 다녔다. 그녀는 “동창들치고 그리고 외지에서 공부 한 친구들 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친구는 거의 없다"라고 나서 “외지에 가서 공부하다 보면 무의식 간 하얼빈은 총체적으로 연해의 발달 지역보다 낙후하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북방지역은 몹시 추우며 동북의 겨울은 진짜 견디기 힘들 정도로 너무 매섭다"라고 말했다. 징 씨 본인 역시 하얼빈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인터페이스 직장(界面职场)에서 헤이룽장은 경제발전이 상대적으로 낙후하고 주력으로 되고 있는 기둥 산업이 없으며 취업 기회가 적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가 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연극 영화이기 때문에 하얼빈에서는 TV방송국 외에는 별로 알맞은 분야가 없었다. “사업적으로 발전할 기회가 적고 적합한 일자리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헤이룽장 TV 방송국은 수준 상 제약성이 많으며 직업 발전 전망이 매우 암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고향에서 발전하자면 오직 대외사업을 선택해야 한다. 집에서 타성이나 특대 도시에 투자하는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기필코 주요 발전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이는 징 씨의 말이다. 한편 징 씨는 하얼빈에서 대학에 간 친구들이 고향으로 돌아온 사례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친구들을 놓고 볼 때 고향은 안전감이 더욱 높다고 한다. 부모가 주택을 사주기도 하고 자가용과 어느 정도의 인맥도 있기에 생활의 질은 외지에서 표류하기보다 더욱 높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필경 소수에 불과했다. “4년간 대학에 다니다 보니 익숙한 친구와 생활권이 모두 여기에 있기에 이 도시를 선택하여 계속 발전하기로 했어요.” 이는 환고향을 꺼리는 징 씨의 어느 한 친구가 하는 말이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적지 않은 친구들이 동북지역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졸업한 후엔 비록 동북지역에 일정한 사회적 토대를 구축하였지만 여전히 동북지역에 남아 발전하기를 꺼린다는 것, 이것 또한 동북지역이 인재를 붙잡아 두지 못하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동북지역의 지린대학(吉林大学), 하얼빈공업대학(哈尔滨工业大学)과 대련이공과대학(大连理工大学) 등은 모두 동북의 명문 대학으로 해마다 전국 각지로부터 모집하는 학생 수가 적지 않다. 지린대학에 따르면 2020년에 모집한 본과생은 1만 259명으로 전국 대학교의 학생모집 순위에서 앞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반대로 2019년 지린대학의 졸업생 취업 보고서에 따르면 본과 졸업생이 졸업한 후 단 17.7%만이 동북지역에 남아 계속 발전하기를 선택했으며 대부분이 베이징(北京), 광둥(广东)과 산둥(山东) 등 성과 대도시를 선택했다. 일부 동북지역 태생 외 동부 연해지역, 남부 연해지역과 북부 연해지역에서 온 졸업생들은 최종 그래도 고향이 있는 성이나 대도시의 소재지로 돌아갔으며 그 비율은 각각 73.7%, 65.42%와 64.87%가 되었다. “동북지역은 취업 기회가 적고 발전 전경도 별로 없어요.” 이는 지린대학 졸업생 한 명이 인터페이스 직장(界面职场)에서 들려준 말이다. 그에 따르면 지린대학을 놓고 보면 학생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우수한 교수들도 연해지역 혹은 대도시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예하면 지린대학의 명함장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 학부는 말 그대로 지린대학은 ‘5대 학원, 4대 학부’의 대표적인 명문 학부라고 할 수 있으며 최근년 간 유출된 인재들을 조합하면 기필코 하나의 최정상급 법률 학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구 유출을 통제할 수 없는 동북지역이다. 동북지역 출생률과 자연 성장률은 중국 내에서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지역에 속한다. 국가통계국 집계에 따르면 2019년 헤이룽장, 지린과 랴오닝 각 성의 인구 출생률은 각각 6.73%, 6.05%와 6.45%였고 인구의 자연 성장률은 각각 - 1.01%, - 0.85%와 -0.8%였으며 전국에서 3개밖에 안 되는 인구 마이너스성장을 기록한 3개성이었다. 더욱 많은 인재로 하여금 동북지역에 남게 하고 동북지역의 진흥 발전을 위해서는 동북지역의 산업 고리 중 과학과 시장이란 2개의 고급 자원의 부족한 분야를 많이 미봉하고 거기에 동북지역의 무역 발전을 많이 강화해야 하며 이 외 동북지역 진흥의 중요한 개혁과 중대 항목이 뒤떨어지지 말아야 한다고 동북아 경제 연구원 왕훙 정(王洪章) 원장은 제기하고 있다. 그는 또 동북지역의 국유기업 및 시장화를 향도 하는 혼합 소유제 개혁을 심화하고 동북에 토지, 인구와 환경을 주체 내용으로 하는 종합개혁 시험 구를 건립하여 선양(沈阳), 창춘(长春)과 하얼빈(哈尔滨) 등 3개 중심도시의 지역 경제 일체화 발걸음을 다그쳐야 하며 다롄(大连) 국제 자유항으로 하여금 동북아 지역 경제 일체화로 되게 하는 가능성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광둥의 ‘현장 근로자’ 가장 젊어 동북과는 반대로 광동의 노동인구 연령이 보편적으로 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계에 따르면 시짱(西藏), 구이저우(贵州), 하이난(海南), 신장(新疆)과 광둥(广东)의 노동인구 평균 연령이 37세로 나타났다. 시짱, 구이저우, 하이난과 신장 이 2개 성, 2개 자치구는 줄곧 인구 출생률이 비교적 높은 지방으로 일정한 정도로 인구 노령화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에 따르면 경제발전이 빠른 지역일수록 여성의 생육 욕망과 출생률이 비교적 낮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예하면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실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반대로 경제발전이 비교적 낮은 지역 특히는 농촌지역 여성의 생육 욕망이 비교적 강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양자 사이는 절대적 관계가 아니며 부동한 작용은 부동한 영향을 산생하기 마련이다. 예하면 광둥은 경제가 발달한 성에 속하지만 전통적인 생육 관념의 영향으로 인구의 자연 성장률은 전국의 평균 수준을 초과한다. 2019년 광둥성의 인구 증가율은 8.08%로 전국 총 인구의 자연 성장률에 비해 4.74%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외 이 광둥의 노동인구로 유입되는 대량의 청장년의 연령구조도 비교적 젊다. 광둥성 통계국 집계에 따르면 2019년 연말 광둥의 장기거주 인구는 1억 1521만 명, 전년 대비 175만 명이 증가했다. 집계가 보여주다시피 광둥은 이미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성으로 되었다. 그리고 새로 증가된 광둥의 175만 명의 인구 중 광둥 자체의 자연 성장 인구 92.38만 명을 제외하면 2019년에 광둥으로 유입된 인구는 82.62만 명이었다. 최근 5년간 광둥에는 매년 대규모의 인구가 유입되었다. 2015년, 2016년, 2017년엔 각각 51.65만 명, 68.72만 명, 68.47만 명이 유입됐고 2018년에는 무려 84.24만 명이 유입되었다. 후 씨는 후난(湖南) 사람이다. 그녀는 중산대학(中山大学) 석사생으로 졸업하자 광저우(广州)에 남았다. 그녀에 따르면 광저우를 놓고 볼 때 한편으로는 고향이 비교적 가깝고 이 외 경제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취업 기회가 많으며 자기발전에도 더욱 유리하다는 점이다. 지난대학교(暨南大学) 공공관리학원 교수 후강에 따르면 광둥이 지속적으로 외래인구를 흡인할 수 있게 되는 데는 첫 째, 민영기업이 많은데서 취업 기회가 많으며 취업흡수 능력이 매우 강하다. 다음 광저우와 선전(深圳)이라는 양대 일선도시가 있다. 목전 이 양대 일선도시의 인구정책은 4개의 일선도시 중에서 상대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거기에 광둥의 기후와 환경 조건이 우월하고 문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비교적 개방되고 포용되고 있다. 이 역시 인구집결을 흡인하는 다른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되고 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2-02
  • 상하이 암흑가 3대 보스-장소림
    ○김희수 장소림(張嘯林)은 1877년 6월 14일에 절강성 자계현의 한 시골에서 출생했다. 그는 1887년에 사당에서 공부하다가 1890년에 아버지 장전해가 사망되자 형님 장대림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항주로 이주하여 견직물을 짜는 방직실에 들어가 견습공으로 있었다. 1897년에 20살이 된 장소림은 힘이 세고 근육이 발달한 자신의 체질을 믿고 주먹으로 살아가려고 결심했다. 그는 몇몇 깡패들을 긁어모아 상인들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돈을 벌었다. 1903년에 장소림은 절강성 무비학당으로 들어가려고 배에 올랐다가 한 청년이 깡패들에게 죽도록 매맞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달려가 깡패들 중에서 한놈을 두손으로 머리우까지 들어올렸다가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것을 본 다른 깡패들은 무서워서 뿔뿔이 도망쳤다. 장소림이 구해준 청년은 란계현 사람인데 장재양이라 불렀다. 그 후 그들은 막역지교로 되였다. 그들은 함께 청왕조를 위해 하급군관들을 양성하는 무비학당으로 들어갔다. 원래 주먹싸움을 좋아했던 장소림은 무술과와 사격과에 흥취를 가졌고 성적도 매우 출중했다. 하지만 기생집 출입을 한 규율위반으로 그는 학당에서 처분을 받았다. 화가 난 그는 졸업도 하지 않고 학당을 떠나버렸다. 고향 공신교로 돌아온 그는 차집을 차리고 힘깨나 쓰는 사람들에게 술을 사주고 기생을 붙여주면서 그들을 주위에 끌어들였다. 그 시기 그는 12살의 루려금에게 반했다. 그 후 그는 루려금에게 접근했는데 생각밖에도 그녀가 못이기는척 하고 그에게 몸을 맡기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장소림은 루려금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루려금은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미혼부부가 낳은 남자아이를 양자로 삼았다. 그 후 장소림은 아편매매를 하다가 일대에서 자신보다 세력이 더 강한 깡패두목 전표의 패거리에게 아편을 빼앗기게 되였다. 화가 난 장소림은 패거리들을 데리고전표의 패거리와 무리싸움을 벌렸는데 싸움 중에 도망치다가 아내 루려금을 전표에게 빼앗기게 되였다. 전표는 장소림의 아내가 자색이 뛰어난 것을 보고 2개월동안이나 데리고 살았다. 전표에게 쫓기어 강물에 뛰어들었던 장소림은 묘지암의 지능이란 여승에게 구원되었다. 지능은 장소림을 암자에 숨겨놓고 치료해주면서 건장한 체구를 가진 사내에게 반했다. 장소림은 이렇게 미모의 여승과 남녀의 즐거움을 나누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부하를 통해 전표가 숨겨놓은 아내의 거처를 알게 되였다. 그의 아내는 그가 몰래 보낸 편지를 보고 그날 밤에 깊은 잠이 든 전표의 성기를 가위로 베어버렸다. 때를 같이하여 장소림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덮쳐들었다. 전표가 황망히 도망치자 두목이 없게 된 전표의 부하들은 손을 들고 투항했다. 장소림은 앙가품을 하려고 전표의 아내를 찾았으나 벌써 도망치고 없었다. 그대신 전표의 12살 되는 딸을 붙잡았는데 장소림의 아내는 전표의 딸과 자는것으로 앙가품을 하라고 시켰다. 하지만 장소림은 전표의 딸이 못생긴 것을 보고 생각이 없어 기생집에 팔아넘겼다. 1912년에 상해로 들어간 그는 무비학당을 다닐 때 친했던 장재양 등의 도움으로 세력을 넓히고 재물을 긁어모았다. 무비학당을 함께 다녔던 학원 중에 벼슬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군벌군관이 된 사람도 있었다. 그는 1919년에 가족을 데리고와서 상해에 자리잡으면서 “대자(大字)”서열의 번근승을 스승으로 모셨다. 그 후 황금영, 두월생과 함께 “삼흠회사”를 경영하면서 그들과 함께 상해탄의 3거두로 되었다. 1925년에 화격얼로에 위치한 장공간(张公馆)에 이주했는데 그해 북양정부의 재정부 참의에 임명되었다. 1927년 4월 12일에 황금영, 두월생과 함께 장개석을 도와 공산당을 살해했다. 장개석은 그의 공로를 치하하여 그를 “군사위원회 소장참의”, “해륙공군 총사령부 고문”, “행정부참의”로 임명했다. 장소림은 명기로 소문난 장수영을 둘째부인으로 맞아들였다. 그외 셋째부인과 넷째부인이 있었지만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1937년 10월에 일본군이 상해를 맹렬하게 공격해오자 상해를 포기하려고 생각한 장개석은 상해탄의 3거두가 일본군과 괴뢰정부에 이용당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해 황금영, 두월생, 장소림을 불러 홍콩으로 피신하라고 권고했다. 3거두의 서열은 원래 황금영, 장소림, 두월생이였지만 그 당시에는 두월생, 황금영, 장소림으로 변했다. 장소림은 두월생보다 먼저 깡패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자격도 한급 높았기에 마음속으로 두월생이 최고두목으로 된 것을 불복하고있었다. 그는 장개석이 피신하라고 하자 속으로 수판알을 굴렸다. (일본군이 상해를 점령하면 꼭 깡패세력을 끌어들이려고 할것이다. 3거두중에 황금영은 이미 일본군을 위해 일하지 않겠다고 표시했고 두월생은 상해를 떠나겠다고 했으니 이는 내가 혼자서 상해탄을 쥐고흔들 수 있는 좋은 기회야.) 과연 장소림의 예산대로 일본군이 상해를 점령하자 일본의 상해파견군 사령관이 장소림을 찾아와 협의를 맺었다. 그 후 장소림은 일본침략군이 점령한 강서성 정부의 괴뢰성장을 담임하면서 일본군의 괴뢰가 되어 각 항업의 인사들을 일본군에 순종하도록 핍박했다. 그리고 깡패들을 풀어 항일활동을 진압했고 애국지사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그는 “신아평화촉진회” 회장의 명의로 외지에 깡패들을 파견하여 양식, 면화, 석탄, 약품을 강제로 헐값에 사들이거나 빼앗아가지고 일본군에게 보내주었다. 그는 괴뢰군을 모집해들여 일본군한테 충성하게 했고 대량적으로 깡패들을 모아들여 일본군의 졸개로 만들었다. 장소림의 친일활동은 장개석을 불안하게 했다. 장개석은 군통국 국장 대립한테 장소림을 죽여 버리라고 명령했다. 대립은 상해에 잠복한 군통국 상해구 구장 진공주한테 장소림을 제거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진공주는 장소림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진묵을 대장으로 하는 행동소조를 조직했다. 진묵은 두번이나 장소림을 암살하려고 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진묵은 장소림의 측근을 매수하려고 생각했다. 그는 장소림의 경호원 중에서 림회부를 선택했다. 림회부는 장소림의 운전기사 아사의 소개로 장소림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초기에 그는 문지기로 일했다. 장소림은 두 번이나 암살을 당할번 한후 무예가 사격에 능한 경호원을 모집하려고 했다. 그때 문지기로 있던 림회부는 사격시험에서 합격되어 장소림의 경호원으로 되었다. 진묵은 몰래 림회부를 만나서 대한간(大漢奸) 장소림을 제거하는 것은 민족의 대의라고 말하면서 5만원을 넘겨주었다. 진회부는 동의하고 돌아가 장소림의 동향을 살피면서 진묵의 지령을 기다렸다. 1940년 8월초에 진공주와 진묵은 림회부를 만나서 “요 며칠사이에 손을 쓰라. 성사 후 군통총부에서 방법을 대어 자네를 프랑스조계지의 순포방에 들어가도록 해주겠네”라고 말했다. 1948년 8월 14일에 손님이 장소림을 찾아왔다. 림회부는 장소림이 손님을 바래주러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 손을 쓰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후 손님을 모셔온 집사가 내려와 기생을 불러들이러 나갔다. 기생하고 놀면 밤을 지새울 것이니 손을 쓸 방법이 없게된 것이다. 림회부는 생각하다가 차를 닦고 있는 장소림의 운전기사 아사를 찾아가 말했다. “선배님, 집에 일이 있어서 며칠 동안 청가를 맡아야 하겠는데…” “그런데 어쨌다는 거야?” “선배님이 위층에 올라가 장선생님한테 말해줄수 없겠소?” 아사는 머리를 가로흔들었다. “장선생은 손님이 왔을 때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해. 너도 이런 규칙을 알잖아?” 림회부는 격장법으로 아사를 자극했다. “선배님은 평소에 장선생님이 선배님을 가족처럼 중하게 여긴다고 자랑하더니 이제 보니 모두 허풍이였군요. 보아하니 선배님이나 나나 다름이 없군요.” 아사는 화가 나서 “내가 네놈을 장선생한테 소개해주었는데 네깐 놈이 감히 나하고 비기다니?”하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림회부도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층에 있던 장소림은 “누가 떠는거냐?”하고 소리치더니 창문으로 내다보았다. 장소림은 두 사람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림회부를 가리키면서 고함쳤다. “이 거북손자같은 놈아! 밥을 처먹고 일은 하지 않고 싸우기만 하는 거냐? 이 어른이 이제 일본병사들을 더 불러오면 너같은 놈은 필요 없어!” 림회부는 약을 올리느라고 맞받아 소리쳤다. “장선생님, 당신 눈에는 내가 일본 놈들보다 못하다는겁니까?” 장소림은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상반신을 창문 밖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아사야, 그 거북손자놈의 총을 빼앗고 그 놈을 쫓아버려라!” “그럴 필요 없어. 나절로 나갈 테니깐!” 림회부는 허리춤에 총을 뽑아들었다. 모두들 림회부가 총을 바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림회부는 별안간 총을 장소림한테 겨누더니 잽싸게 방아쇠를 당겼다. 장소림은 당장에서 비명을 지르며 숨을 거두었다. 향년 64세였다. 림회부는 장소림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총을 든 채 웃층으로 뛰어올라갔다. 그때 장소림을 찾아왔던 손님이 프랑스조계지의 경찰에 전화를 거는 것을 보고 림회부는 그 손님을 쏘아죽였다. 그 다음 장소림이 숨을 거둔 것을 확인하고 도망치려던 림회부는 장소림의 경호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때 현장으로 달려온 프랑스조계지의 순포장에서 림회부를 붙잡아갔다. 림회부는 15년형을 받았다가 항일전쟁이 승리한 후 석방되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1-24
  • 중국 산아제한 폐지, 노령화에 적극 대응해야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인구대국이다. 무려 14억이란 인구를 가진 인구대국이다. 중국은 인구 우세로 큰 덕을 입기도 했지만 반대로 인구 때문에 큰 골칫거리로 된 적도 있다. 사례로 건국 후 20여 년 간은 낙후하고도 뒤 떨어진 경제토대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나라의 부담이 기하급수로 늘어났으며 그 뒤 그런 폐단을 막고자 1970년대 중반부터 대대적인 ‘계획생육’ 정책을 나라의 국책으로 삼고 강력하게 밀어부친 결과 인구의 대폭발을 효과적으로 억제했다. 하지만 ‘계획생육’ 정책이 지나치게 한 쪽 극으로 강조되었기에 이번에는 또 지나치게 아이를 적게 낳는 폐단이 초래되었다. 그래서 몇 년 전 중국에서는 둘째 아이 출산을 허락하는 정책을 출범하였다가 오늘 와서는 셋째 아이의 출산까지 허락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건의가 제출되고 있다. ▲80년대 대로변에 설치된 계획생육 선전 광고판 최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특별기획으로 ‘생육정책 전면 개방하여 인구노령화 적극 대응해야’란 제목으로 된 장문의 글을 실었다. 그럼 본지는 오늘부터 이 글을 몇 번에 나누어 발췌하여 전재하기로 한다. 출생인구 지속 둔화, 2030년 출생인구 1100만 명 안 될 듯 2018년 들어 중국이 중국의 출생인구가 전년 대비 200만 명이 하락한 후 2019년 들어 출생인구가 재차 58만 명이 줄어든 1465만 명이었다. 1949년에 성립된 신 중국은 선후로 세 번에 거친 자녀출산 고조기가 있었다. 그것은 1950년부터 1958년 사이에 연평균 2100만 명이란 출산기록을 작성했다. 이어 1962년부터 1975년까지 연평균 2628만 명이란 출산기록을 작성했으며 세 번째로 1981년부터 1994년까지 연평균 출산수치는 2246만 명이었다. 그 뒤 중국의 출산인구는 점차 하강세를 보이다가 2003년부터 2012년까지의 연평균 출산인구는 1600만 명 이하로 떨어졌다. 그 중 2012년 중국의 출산인구는 1635만 명에 그쳤다. 중국의 총적인 출산자녀 하강 율은 1970년대 이전의 6%였고 1990연대의 2%였으며 심지어 2010년 후의 1.5%가 되기도 했다. 중국의 제 4 라운드 자녀출산 고조는 규칙적으로 보면 마땅히 2010년 후에 나타나야 했다. 하지만 장시기 동안의 엄격한 계획생육 정책으로 이러한 자녀출산 고조는 소실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중국의 외동자녀 정책은 드디어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2012년 말 중앙에서 두 번째 자녀 출산 정책을 실시, 하지만 효과는 예측했던 목적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2013년부터 2015년 사이 출산인구는 각각 1640만 명과 1655만 명에 그쳤다. 2015년 말, 중공중앙에서는 둘째 아이 출산을 전면 개방하기로 결정, 이러자 그 이듬해 중국의 출생인구는 1786만 명에 달해 2000년 이래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2017년에 와서 중국의 출생인구는 1725만 명, 2018년에는 재차 200만 명이 하강한 1523만 명에 달했고 2019년에는 1465만 명까지 내려갔다. 2019년 출생인구의 감소폭이 현저한 것은 주로 주력으로 되고 있는 가임여성 수자의 감소폭이 현저하게 좁아진 것과 생육율의 기본안정에 있은 한편 외동자녀와 두 자녀 출생 수 감소폭이 2018년에 비해 현저하게 좁아진 데 있다는 분석이다. 가임여성의 데이터를 놓고 보면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15세 - 49세의 가임여성의 데이터는 각각 491만 명, 398만 명, 715만 명과 502만 명이 감소되었다. 이 중 생명자녀 데이터의 85%를 점하는 20세 - 35세 주력 가임여성의 데이터가 각각 194만 명, 264만 명, 398만 명과 331만 명이 감소하였고 2018년의 주력 가임여성 데이터가 2017년에 비해 134만 명이 감소했으며 2019년에는 2018년에 비해 67만 명이 감소하였다. 다음 생육수준으로 놓고 볼 때 2016년의 총 출산율이 1.7%가 높았는바 2015년보다 현저하게 상승, 하지만 2017년에는 다시 하강, 2018년에는 1.5%로 현저하게 하강하였다가 2019년에는 기본상 평형을 유지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볼 때 목전 중국의 총 출산율은 국제 평균의 2.47%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고수입 경제 체의 1.67%보다도 더 낮았다. 그리고 어린애 별 출생수를 놓고 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첫 째 아이 출생 수는 각각 879만 명, 981만 명, 713만 명, 629만 명과 593만 명이었고 둘째 아이 출생 수는 각각 658만 명, 715만 명, 892만 명, 760만 명과 747만 명이었으며 셋째 아이 출생 수는 각각 118만 명, 90만 명, 117만 명, 134만 명과 125만 명이었다. 2016년에는 출생인구가 대폭도로 131만 명이 증가, 주로는 첫째 아이의 출생 율이 대폭 증가하여 출생 기여율이 78%가 되었고 둘째 아이 출생 수는 57만 명이 증가하여 2015년의 53만 명보다 소폭 증가했으며 2017년에는 둘째 아이 출산 효과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비록 그 해에 첫째 아이 출생수가 대폭 하강되어 268 만 명에 그쳤지만 둘째 아이의 출생 수가 대폭 증가하여 총체적인 출생 수는 177만 명이 증가하였다. 하지만 2018년에 들어서는 출생인구가 대폭 하강하여 200만 명이 감소, 주요하게 둘째 아이의 출생수가 132만 명과 첫째 아이의 출생수가 84만 명이 감소하였다. 그리고 2019년에 들어 첫 째 아이와 둘째 아이의 출산수가 각각 36만 명과 13만 명이 감소, 총 출생인구의 감소율은 각각 62%와 22%에 달하였다. 장기적인 추세로 볼 때 생육 퇴적효과가 점차 소실되고 가임여성의 규모가 지속 하강하고 있는 양상이며 지금은 출생인구의 쾌속 하강기가 지속되고 있으면서 2030년에 이르러서는 출생인구가 1100만 명에도 이르지 못할 예측이다. 아이의 출산수별로 볼 때 둘째 아이 및 그 이상의 아이가 점하는 비율은 2015년과 2016년의 45%와 47%에서 2017년엔 58.6%로 상승했고 2018년과 2019년엔 각각 58.7%와 59.5%로 상승했다. 첫째 아이가 없으면 둘째와 셋째 아이가 있을 수 없다. 생육퇴적효과가 소실된 후 첫 번째 아이가 점하는 비율이 이제 곧 둘째 아이가 점하는 비율보다 높은 정상상태로 회복될 전망이다.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1자녀 출생인구가 40%로 대폭 감소, 600만 명도 채 안 되는 역사적 저조기에 이르게 되었다. 거기에 출생인구가 향후 현저하게 하강될 전망이다. 가임여성 데이터로 볼 때 20세부터 35세 사이 주력 가임여성 규모가 1997년에 1.86억 명으로 고봉 기를 맞았다가 2006년엔 1.67억 명으로 하강되었으며 2013년엔 1.73억 명으로 소폭 상승하였다. 예측에 따르면 현재의 가임여성 감소추세는 2031년까지 계속 감소하다가 2032년부터 2038년 사이에 어느 정도 상승세로 돌아설 전망이지만 2039년부터 다시 지속 감소될 가능성이 크다. 분석에 따르면 2030년 20세부터 35세 사이의 가임여성 규모는 2019년에 비해 약 28%가 감소될 전망이고 2050년에 가서는 2030년에 비해 19%가 감소될 전망이다. 목전의 추세로 보아 중국의 출생인구는 향후 지속적으로 쾌속 하다가 2028년에 가서는 1100만 명도 안 될 전망이며 2029년부터 2036년까지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다가 2037년부터 다시 하강되기 시작하여 2050년에 가서는 약 800여만 명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다음 주택, 교육과 의료 등 직접 지출, 양로부담 등 기회적인 지출이 생육행위를 억제하면서 ‘낳기는 쉬워도 키우기가 힘들다(生得起、养不起)’란 말이 나올 정도이다. 첫째 주택 값이 엄청 빨리 오르고 있다. 2004년부터 2018년 사이 주택대출 지출이 (주민 주택대출 잔액/가처분 소득)이 16.2%로부터 47.6%로 상승했고 주민채무를 이끄는 지출(주민 채무 잔액/가처분 소득)은 28.6%로부터 88.4%로 상승했다. 둘째, 교육원가가 현저하게 상승, 특히 공립유치원 공급이 엄중하게 부족하여 가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용이 많이 드는 사립유치원을 선택하게 되는 것으로 자녀교육에 많은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1997년부터 2018년 사이 중국 공립유치원에서 공부하는 유치원생의 비례는 95%로부터 43%로 내려갔다. 셋째, 의료비용이 지속 상승, 1995년부터 2018년 사이 주민들의 의료보건지출이 27배로 상승했으며 이는 주민가처분 소득의 9.2배를 엄청나게 초월하고 있다. 넷째, 외동자녀 부부의 ‘421’ 가정결구가 양로부담을 무겁게 만들고 있어 생육계획을 억누르고 있다. 다섯째, 여성의 노동참여율은 높지만 취업권익은 잘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는 생육기회의 원가를 높게 만들고 있다. 1990년부터 2019년간의 20년 사이 중국여성의 노동참여율은 남성에 비해 11.6%로부터 14.8%로 확대되었으며 미국, 유럽연맹, 일본 등 선진국 남녀의 노동참여율과의 차이가 점점 축소되는 태세를 보이고 있다. (다음에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1-20
  • 추악한 위선, 드러난 이중잣대
    ●천웨이화(차이나데일리 EU 사무국)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1월 6일 워싱턴에서 미 국회 의사당을 습격한 사건은 미국과 전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폭동, 폭도, 반란군, 국내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그리고 CNN 방송은 미국인들은 "공포"와 "혐오"로 국회 의사당 폭동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FBI는 화요일에 160 건의 사건 파일을 열었고 워싱턴 DC 마이클 셔윈 (Michael Sherwin) 미국 변호사 대행은 이미 70 건의 사건이 접수되었다고 밝혔다. 상원 민주당 지도자 척 슈머는 미국 국회 의사당을 습격한 폭도들의 항공기 탑승을 금지하고 정부 "항공기 탑승 금지"명단에 추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폭도들은 이미 탑승 금지 명단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폭동에 대응하여 트위터는 8천8백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트럼프의 계정을 영구적으로 정지했다. 또한 큐아논(QAnon, 극우음모론집단)과 관련된 7만 개 이상의 계정을 폐쇄했다.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도 그 뒤를 따랐다. 애플, 구글 및 아마존은 폭력적인 콘텐츠를 유포 한 혐의로 팔러(Parler)에 대한 서비스를 중단했다. 팔러는 미국 극우 세력이 선호하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다. 그리고 수요일 유튜브는 "계속되는 폭력의 가능성"을 인용하면서 적어도 일주일 동안 트럼프의 계정을 정지하는 최신 온라인 플랫폼이 되었다. 메르켈 총리 대변인은 “기본권으로서 표현의 자유는 입법기관이 제한할 수는 있지만 특정 기업이 이를 제한해선 안 된다”라며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정이 영구 차단된 데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설득하여 트럼프를 해임하기 위한 제25차 수정안을 촉구하는 데 실패한 하원은 수요일에 두 번째로 트럼프를 "폭란 선동"혐의로 탄핵했다. 게다가 2020년 선거 결과에 도전한 테드 크루즈와 조쉬 하울리와 같은 미국 의원들도 폭동 이후의 폭풍을 주시하고 있다. 독일의 도이치 은행과 뉴욕에 본사를 둔 시그니처 은행은 트럼프의 가업에 대한 대출을 중단하거나 계좌를 폐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미국 프로 골프협회(PGA America)는 2022년 챔피언십이 뉴저지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폭동 사태와 관련해 미국과 대부분의 서방 언론 매체와 정치인들의 반응은 2019년 7월 1일 폭도들이 홍콩 입법회를 습격한 후 보여준 반응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홍콩특별행정구 입법부 건물과 기물은 폭도들의 석유, 폭탄 등 투척으로 훨씬 더 심각하게 파괴되고 폭력적이었지만 BBC와 CNN과 같은 언론 매체는 폭도를 "폭도"라고 부르지 않고 시위대라고 불렀다. 뉴욕 타임스는 그날 보고서에서 그들을 "활동가 집단"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크루즈, 홀리, 톰 코튼, 마르코 루비오와 같은 미국 의원들은 폭도들을 비난하는 대신 홍콩 당국의 법적 대응에 대해 비난을 아끼지 않았다. 미 국회 의사당 습격은 비난받을 수 있으며 책임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미 의회에 대한 공격은 서구 언론과 정치인의 위선과 이중 기준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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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7
  • '삼국지' 재해석⑯ 조조의 창업에 공이 컸던 친족들
    ●김정룡(다(多)가치 포럼 위원장) 기원 190년부터 200년 사이 조조의 최대라이벌은 원소였다. 원소의 가문은 4대 삼공을 지낸 명가였기 때문에 그의 친인척과 또 그 친인척들과 맺은 인연으로 얽힌 명문가족들까지 합치면 환관가문의 출신인 조조로서는 원소의 세력과 아예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절대적인 우세였던 원소를 조조가 이긴 데는 그의 친인척들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원소와 원술은 친형제라는 설도 있고 사촌 형제라는 주장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두 형제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서로 상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떨었다. 원소가 죽고 난 후에도 그의 아들 원담과 원상 또한 서로 잡아먹지 난리도 아니었다. 보고 배우고 자란 탓이었는지, 아니면 서로 물고 뜯는 DNA를 부전자전으로 이어받았는지? 아무튼 당시 원소의 형제가 힘을 합쳤더라면 조조가 여럿이라도 그들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조조가 원소를 이긴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가족과 친인척의 끈끈했던 우애가 크게 한몫을 했다고 말하고 싶다. <삼국지>에서 저자는 조조의 많고 많은 친족 중에 조조의 창업에 가장 도움이 컸던 조인(曹仁), 조홍(曹洪), 조휴(曹休), 조진(曹眞)을 한 열전으로 묶어 기록을 남겼다. 하늘이 내린 장수 조인 조인은 조조의 사촌동생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 창던지기, 사냥을 좋아했다. 훗날 호걸들이 일제히 일어났을 때 조인도 은밀히 젊은이들을 모아 1천 명을 이끌고 회수와 사수 일대를 전전하였다. 조조가 원술을 격파할 때 조인이 죽이거나 사로잡은 적군이 매우 많았다. 조조를 따라 서주를 정벌할 때 조인은 항상 기병을 이끌고 선봉에 섰다. 그는 별도의 군대로 도겸의 부장 여유(呂由)를 공격하여 그를 격파하고 돌아와 팽성의 대군과 합류하여 도겸의 군사를 크게 무찔렀다. 조조가 여포를 토벌할 때 조인은 별도의 군대로 여포의 대장 유하(劉何)를 사로잡았다. 조조가 황건적을 평정하고 천자를 맞이하여 허현에 수도를 세웠는데 조인은 여러 차례 공을 세웠다. 조조가 장수를 정벌할 때 조인은 별도의 군대를 이끌고 가까이 있는 현을 공략하고 그곳의 남녀 주민 3천여 명을 포로로 잡았다. 조조가 장수에게 쫓겨 병사들이 사기가 꺾여 있을 때 조인이 격려하여 일어나도록 하여 조조도 감동 받고 용기를 내어 싸우게 되었고 끝내 장수를 물리쳤다. 조조가 원소와 싸울 때 유비는 원소의 편이었다. 조인이 유비를 공격하였는데 유비군대는 달아났고 자주 반기를 들었던 여러 현을 전부 되찾았다. 하북이 평정된 후 조인은 조조를 따라 가서 호관을 포위했다. 조조가 명령을 내렸다. “성이 함락되면 모두 산 채로 매장하라.” 이때의 조조는 아직 정치적으로 그다지 성숙되지 않았을 때였다. 조인이 조조에게 말했다. “성을 포위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살 수 있는 문을 보여주어 그 살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지금 공께서 반드시 그들을 죽이라고 하시니 성 안에서는 사람들을 거느려 스스로를 지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성은 견고하고 식량이 많으므로 그들을 공격하면 우리 병사들이 부상을 입을 것이고 그들을 포위하여 달아나지 못하게 지킨다면 매우 오랜 시일을 낭비해야 합니다. 지금 병사들을 견고한 성 아래 머물게 하여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적군을 공격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조조가 그의 의견을 따르니 성안 사람들은 항복했다. 형주를 평정하러 갔을 때 조인은 오나라 장수 주유를 상대했다. 적군은 많고 아군은 적어 금방 포위되었다. 장수 우금이 삽시간에 포로가 되었다.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을 때 조인만이 의기가 치솟고 있었다. 분노한 그가 말을 가져오라고 명령하니 진교 등이 함께 조인을 한사코 붙잡으며 말렸다. “적군이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설령 수백 명을 잃는다고 한들 무슨 손해가 있습니까? 이것을 알면서도 장군 혼자 그들에게 가신단 말씀입니까?” 조인이 이 말을 듣지 않고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른 다음 휘하의 기병 수십 명을 이끌고 성을 나갔다. 조인이 적군으로부터 1백여 보쯤 떨어진 도랑에 다다랐을 때 진교 등은 조인이 마땅히 도랑에 머물 것으로 생각하고 우금을 원조하는 형세를 취하려고 했다. 그러나 조인은 바로 도랑을 건너 곧장 앞으로 나아가 적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갔고 덕분에 우금 등은 곧 탈출할 수 있었다. 미처 포위망을 뚫고나오지 못한 병사들이 있음을 본 조인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병사들을 구출했다. 진교 등은 처음에 조인이 나가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으나 조인이 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찬탄하며 말했다. “장군은 정말로 하늘에서 내린 사람이구나.” 조인은 어렸을 때 행실이 방탕했지만 성장하여 장수가 되면서 엄격하게 법령을 받들어 항상 법조문을 옆에 놓고 그것에 따라 일을 처리했다. 조인은 조조의 패업에 공이 컸으므로 조비가 즉위하자 그를 대장군에 임명했다. 타던 말을 내주어 조조를 구한 조홍 조홍도 조조의 사촌동생이다. 조조가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동탁을 토벌하려고 형양까지 왔다가 동탁의 대장 서영에게 패했다. 조조는 타고 가던 말을 잃었고 적군의 추격은 너무도 빨랐다. 조홍이 말에서 내려 자기 말을 조조에게 주자 조조는 사양했다. 조홍이 말했다.“천하에 저 조홍은 없을 수 있지만 당신은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고는 걸어서 조조를 수행하여 변수까지 왔는데 뜻밖에도 물이 너무 깊어 건널 수 없었다. 조홍은 강가를 따라가 배를 찾아 조조와 함께 물을 건너 초현으로 달려 돌아왔다. 양주자사 진온이 평소 조홍과 친하게 지냈으므로 조홍은 사병 1천여 명을 이끌고 진온이 있는 곳으로 가서 병사를 더 모은 다음 여강군에서 정예병 2천여 명을 얻고 동쪽으로 단양에 가서 또 수천 명을 얻어 용강에서 조조와 합류했다. 조조가 서주를 정벌할 때 장막이 조조를 배반하고 연주를 내주어 여포를 맞이했다. 당시에 기근이 심했으므로 조홍은 병사들을 앞쪽으로 두고 나아가게 하여 먼저 동평과 범을 점거하고 식량을 모아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조조가 복양에서 장막과 여포를 공격하니 여포는 패하여 달아났고 조홍은 동아를 점거하고 군사를 돌려 제음, 산양, 중모, 양무, 경, 밀 등 10여 현을 공격하여 모두 점령했다. 조홍은 유표를 정벌하여 무양, 음엽, 도양, 박망 등지에서 유표의 다른 장수들을 무찔렀다. 조홍은 공이 커 위장군, 표기장군, 야왕후(野王后)로 되었다가 도양후에 옮겨 봉해졌다. 본래 조홍은 집안은 부유했지만 성품은 인색했다. 조비가 젊었을 때 조홍의 집에서 재물을 빌리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하고 항상 그를 미워했다. 조비가 즉위한 후 조홍의 식객이 법을 어긴 것을 구실로 조홍을 옥에 가두고 사형을 선고했다. 많은 신하가 힘을 합쳐 그를 도우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변 태후가 곽후에게 말했다. “오늘 조홍을 죽인다면 내일 나는 문제에게 칙령을 내려 당신을 황후 자리에서 내쫓을 것이오.” 변 태후는 또 조홍이 없었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영화가 있을 수 있느냐고 꾸짖으면서 석방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조홍은 선제의 공신이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 조비의 이와 같은 박해에 대해 불평했다. 조예가 즉위한 후 조홍은 다시 후장군이 되었고 다시 낙성후로 봉해졌고 특진에 올랐으며 표기장군이 되었다. 조씨 가문의 천리마 조휴 조휴는 조조의 족자(族子)이다. 천하가 혼란스러워지자 위지자 조씨 종족은 각기 흩어져 고향을 떠났다. 조휴는 열 살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오직 전객(佃客, 노비보다 조금 높은 사람) 한 명만이 그와 함께 부친의 영구를 들어 임시로 안장하는 것을 도왔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강을 건너 오나라로 피했다. 후에 조조가 의로운 군대를 일으키자 성과 이름을 바꾸고 형주로 왔다. 길을 물어 북쪽으로 돌아가는 길에 조조를 만났다. 조조는 조휴를 가리키며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우리 집안의 천리마로구나!” 조조는 그를 조비와 함께 머물도록 하고 아들처럼 보살폈다. 조휴는 서쪽을 정벌하러 나선 조조를 항상 따라다녔으며 조조는 그에게 호표기를 통솔하도록 하고 숙위를 맡겼다. 유비가 장수 오란을 보내어 하변에 주둔시켰을 때 조조는 조홍을 보내어 그를 정벌하도록 하고 조휴를 기도위로 임명하여 조홍의 군사에 참여하도록 했다. 오래지 않아 유비는 장비를 파견하여 고산(孤山)에 주둔시키고 조홍 군대의 뒷길을 끊으려고 했다. 많은 장수들이 이 일에 관하여 상의했지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때 조휴가 말했다. “적병이 정말로 우리가 돌아갈 길을 끊으려고 한다면 응당 먼저 복병을 숨겨놓거나 잠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장비는 먼저 과장되게 소리를 내어 세력을 과시하니 이는 그가 어떠한 능력도 없음을 뜻합니다. 그러니 응당 그들이 모이기 전에 오란을 재빨리 공격한다면 오란은 격파될 것이고 장비는 스스로 달아날 것입니다.” 조홍은 조휴의 건의에 따라 즉시 병사를 나가게 하여 오란을 공격했다. 오란을 크게 무찌르니 과연 장비는 달아났다. 손권이 장수를 보내어 역양(歷陽)에 주둔시켰을 때 조휴는 가서 그들을 격파했다. 또한 별도로 군대를 보내어 장강을 건너 무호에 있는 수천 채의 진영을 불태우도록 했다. 조예가 즉위하자 조휴는 장평후로 승진했다. 제갈량의 북벌을 여러 번 물리친 조진 조진도 조조의 족자이다. 조조가 군대를 일으켰을 때 부친 조소(曹邵)는 도당을 모으다가 주군(州郡)의 관원에게 살해되었다. 조조는 조진이 나이도 어리고 고아라는 점을 애틋하게 여겨 거두어 여러 아들과 똑 같이 길렀으며 조비와 함께 기거하도록 했다. 조진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 사냥을 했다. 한번은 호랑이에게 쫓기던 조진이 뒤돌아서서 활을 쏘았는데 활 쏘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호랑이가 꼬꾸라졌다. 조조는 그의 용맹함을 칭찬하고 호표기를 통솔하여 영구현(靈丘縣)의 도적을 토벌하도록 했다. 조진이 도적을 무찌르고 후에 편장군이 되어 병사들을 이끌고 하변에 있는 유비의 별장을 공격하여 무찔렀으므로 중견장군으로 임명되었다. 조조는 또 조진을 촉나라로 보내 군대를 보호하도록 하고 서항 등을 지휘하여 양평에 있는 유비의 별장 고상을 격파시켰다. 조비가 즉위하자 조진은 공이 커 상군대장으로 임명되었다. 조예가 즉위한 후 조진은 소릉후(邵陵侯)로 봉해졌으며 대장군으로 승진했다. 대화 4년(230) 조진은 낙양으로 가서 조예를 뵈었으며 대사마로 승진했고 칼을 차고 신을 신은 채 어전에 드나들고 조정에 들어올 때 종종걸음을 치지 않아도 되는 특별대우를 받았다. 신하로서의 이런 특별대우는 역사상 손꼽을 정도로 적었다. 조조의 사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족자들까지 조조의 창업을 위해 이렇듯 목숨을 바쳐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조조의 넓은 도량과 세상을 품는 기질과 갈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조조는 인류역사상 보기 드문 정치가라고 평가해도 과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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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4
  • '삼국지' 재해석⑮ 직언을 고집하다 조비의 미움을 받아 죽은 포훈
    ●김정룡(다(多)가치 포럼 위원장) 동양역사에 선비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선비 정신은 시대적 사명감과 책임 의식으로 대변되는 정신이다. 또한 선비 정신은 청렴과 청빈을 우선 가치로 삼으면서 일상생활에서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은 정신이다. 선비는 시류에 영합하는 것을 비루하게 여겼고, 역사의식에서 시시비비(是是非非)의 춘추(春秋) 정신을 신봉했다. 관계나 사회 부조리를 목격하고도 눈을 감고 모르는 척 하면 선비정신이 아니다. 그 부조리를 저지른 사람이 고관대작이거나 심지어 왕이라 할지라도 모르는 체 하면 안 된다. 죽을 각오로 바로잡도록 청을 올려 간언해야 한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것이 바로 선비정신이다. 삼국시대에 투철한 선비정신의 대표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포훈(鮑勛)이다. 포훈은 한나라의 사예교위를 지낸 포선(鮑宣)의 9대손이다. 포훈의 아버지 포신은 영제 때 기도위로 임명되었다. 포신은 조조와 함께 동탁토벌 전투에서 사망했다. 조조는 너무 비통한 나머지 포신의 모습을 만들어 나무에 걸어놓고 추모할 정도였다. 포훈은 조조가 가장 아끼던 전우(戰友)의 아들이기 때문에 각별히 관심하고 배려했다. 건안 22년(217) 태자를 세우고 포훈을 중서자(中庶子)에 임명했다. 중서자는 태자의 시중 겸 고문이다. 태자와 가장 친밀해야 하므로 대부분 덕행이 뛰어난 자 중에서 임명된다. 얼마 후 포훈은 지방으로 나가서 위군서부도위(魏郡西部都尉)가 되었다. 태자비인 곽 부인의 동생이 곡주현(曲周縣)의 관리가 되었는데 관의 베를 훔쳤으므로 법률에 따라 목을 베어 시장에 버렸다. 당시 조조는 초현에 있었고 태자만 업성에 있었다. 태자는 처남을 구하려고 여러 차례 친히 편지를 써서 사면해줄 것을 간청했다. 그러나 포훈은 감히 독단적으로 석방하지 않고 사실대로 상세하게 보고했다. 포훈은 이전에 동궁에 있을 때에도 공정한 태도를 고수하며 굽히지 않아 태자는 당연히 좋아할 리가 없었다. 맘속으로 벼르고 있던 차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포훈은 태자의 눈엣가시였다. 어떻게 하나 포훈을 내쫓으려고 하던 와중에 마침 군의 경계 지역에 배치했다가 휴가 중인 병사로 기한을 어긴 자가 있었으므로 은밀히 중위에게 명하여 상주하고 포훈을 면직시켰으나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시어사로 임명했다. 연강 원년(220) 세상이 좁다 하고 주름 잡던 조조가 세상을 떠나자 태자 조비가 즉위했으며 포훈은 부마도위의 신분으로 시중을 겸했다. 조비는 단순히 아버지 조조의 뒤를 계승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해보지 못한 황위에 올랐다. 위왕이 아니라 위황(魏皇)이다. 아버지를 뛰어넘었으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역대로 새로운 황제가 등극하면 황궁을 넓히거나 누각을 멋지게 짓고 동산을 꾸미는 일에 정력을 쏟는 일이 자주 있었다. 조비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 볼 포훈이 아니다. “현재 급박한 것은 오직 군사와 농경뿐이니 백성에게 관대하고 은혜롭게 대하십시오. 누각과 정자, 그리고 동산을 짓고 꾸미는 일은 응당 뒤로 미루어야 합니다.” 조비가 태자 때부터 사냥을 몹시 좋아했다. 최염이 간언하여 한 때 절제하긴 했지만 고질적인 취미를 버릴 수가 없었다. 황제가 되었으니 더 폼 나게 사냥에 나섰다. 조비가 수렵하러 궁궐을 나가려고 할 때 포훈은 수레를 멈추게 하고 상서해 말했다. “신이 듣건대 오제와 삼왕은 근본을 밝혀 교화를 세우지 않은 적이 없고 효로서 천하를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폐하의 어짊과 성스러운 덕과 백성을 측은해하는 마음은 고대의 빛났던 선왕과 똑 같습니다. 신은 폐하께서 당연히 전대 명왕의 자취를 계승하여 만 대로 하여금 폐하를 준칙으로 삼을 수 있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어찌 폐하께서는 복상기일 중에 말을 달려 수렵을 하십니까? 신이 죽음을 각오하고 이 말을 하니 폐하께서는 신의 마음을 살펴주십시오.” 조비는 더는 태자 신분이 아니다. 태자시절에는 관료들의 간언을 받아들여 수렵용 물건들을 폐기하면서까지 절제하였지만 지금은 황제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신분이니 신하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유아독존, 독왕독래(唯我獨尊, 獨往獨來)’하는 천자다. 조비는 즉시 상소문을 찢어버리고 제 갈 길을 떠났다. 가는 도중에 조비는 불편한 심기를 달래보려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려 수행하는 신하에게 물었다. “수렵하는 즐거움은 음악과 비교하면 어떻소?” 조비의 비위를 맞추는데 이골 난 시중 유엽이 대답했다. “수렵하는 것이 음악보다 낮습니다.” 이 볼썽사나운 꼴을 그냥 지나쳐 버릴 포훈이 아니었다. “무릇 음악이란 위로는 신명(神明)에 통하고 아래로는 인리(人理)를 조화롭게 하고 정치를 융성하게 하며 교화를 실행하여 온 지역이 평안하게 다스려지게 합니다. 풍속을 바꾸는 데는 음악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하물며 사냥을 하여 황상의 화려한 수레 덮개를 들녘에 드러내어 생육(生育)의 지극한 이치를 상하게 하고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비로 목욕하면서 계절에 상관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옛날 노 은공은 당(棠)으로 가서 고기잡이하는 것만 보았는데도 <춘추>에서는 이 일을 풍자했습니다. 비록 폐하께서 수렵을 중요한 일로 생각하신다 하더라도 어리석은 신하는 이렇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포훈은 조비에게 이와 관련하여 또 상주문을 올렸다. “유엽은 간사하고 아첨하며 충직하지 않습니다. 그는 폐하께 과분하고 농담하는 말에 영합합니다. 옛날 양구거(梁丘據)는 천대(遄臺)에서 아첨하는 말을 했는데 유엽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컨대 담당 관리가 죄를 논하여 조정을 일신하게 해주십시오.” 조비는 너무 화가 나서 수렵 가던 걸음을 멈추고 말머리를 궁궐로 돌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즉시 포훈을 우중랑장(右中郞將)으로 좌천시켰다. 황초 4년(223) 상서령 진군과 복야 사마의는 함께 포훈을 궁정(宮正)으로 추천했는데 궁정은 즉 어사중승이다. 조비는 여러 신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부득이 그를 기용했는데 모든 관료를 엄하게 다스리자 두려워하고 숙연해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유비가 죽은 후 촉한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제갈량은 북벌에 힘을 쏟았고 조비는 오나라 정벌에 정력을 기울였다. 조비의 이 계획에 포훈이 또 태클을 걸고 나섰다. “왕의 군대가 자주 정벌하러 나갔지만 승리하지 못한 것은 대체로 오와 촉 두 나라가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하고 산과 물의 험난함에 기대어 공격하여 얻기 어려운 지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오나라를 정벌할 때 용주(龍舟)가 표류하여 오나라 군사가 있는 남쪽 해안에 떨어지매 폐하의 육체는 위험에 처했고 신하들은 간담이 부서질 지경이었습니다. 이때 종묘는 거의 기울어 엎어지려고 했으니 이 일은 백 대의 교훈이 될 것입니다. 지금 또다시 병사를 수고롭게 하여 먼 곳에 있는 적을 습격한다면 하루에 천금을 소비하게 되어 나라 안의 재물은 고갈될 것이고 교활한 도적으로 하여금 우리 군대를 농락하도록 하게 될 것이므로 신이 사사로이 이 일을 생각해보건대 불가하다고 봅니다.” 조비는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포훈 때문에 요즘 말대로 하면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싸여왔다. 참는데도 한계가 생겼다. 치서집법(治書執法, 엄격한 법리를 적용하여 관원의 불법행위를 탄핵함)으로 좌천시키고 조서를 내렸다. “포훈은 사슴을 말이라 하고 있으니 체포하여 정위(廷尉, 황제의 명에 따라 진행하는 특별 재판)에 넘기도록 하라.” 정위는 법에 따라 논의하여 판결을 내렸다. “징역 5년이다.” 이에 삼관(三官)이 반박했다. “법률에 따르면 벌금 두 근(斤)이면 족합니다.” 여러 신하들이 포훈을 두둔하자 이에 조비는 단단히 화가 났다. “포훈은 살려줄 여지가 없거늘 너희들은 감히 그에게 관용을 베풀려 하고 있다. 삼관 이하 담당 관원을 체포하여 자간(刺姦, 군대의 동태를 감시하고 반역자가 생기면 보고하는 관직)으로 넘기고 쥐 열 마리와 같은 동굴에 있도록 하라.” 태위 종요, 사도 화흠, 대장군 진군, 시중 신비, 상서 위진, 수연위(守延尉) 고유 등 당시 한다하는 고관대작들이 함께 함께 표를 올렸다. “포훈의 아버지 포신은 태조를 위해 공을 세웠습니다.” 포훈의 죄를 사면해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조비는 받아들이지 않고 포훈을 처형했다. 포훈은 내적으로 수양하며 청렴하고 베풀었기에 죽는 날 집에는 재산이 없었다. 20일이 지나 조비 또한 붕어했다. 많은 사람이 포훈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한탄했다. 조조의 진영에는 포훈과 같이 청렴하고 대가 바른 선비정신을 가진 신하가 많았다. 사마지(司馬芝)란 선비가 있었다. 그는 곧은 태도로 황후의 청탁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을 발휘했다. 사마지는 젊어서 서생이 되었고 전란을 피해 형주로 갔는데 노양산(魯陽山)에서 도적을 만났다. 함께 가던 사람들은 모두 노약자를 버리고 달아났는데 사마지만은 혼자 앉아서 노모를 지켰다. 도적이 다가와서 사마지에게 칼을 들이댔다. 사마지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 어머니는 늙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오직 당신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도적이 말했다. “이 사람은 효자다. 이 자를 죽이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 당시는 사회적으로 아무리 도적떼들 지라도 효만은 중히 여겼던 모양이다. 사마지는 화를 면하고 작은 수레에 어머니를 태우고 갔다. 사마지는 남방에서 10여 년을 살았는데 직접 밭을 갈며 지조를 지켰다. 조조가 형주를 평정하고 사마지를 제남군 관현의 장으로 임명했다. 사마지는 이르는 곳마다 법과 원칙 및 질서를 철저하게 지켜 승승장구했다. 그가 대리정(大理正, 황제의 명에 따라 진행하는 특별 재판을 다룬다. 정위정이라고도 함)으로 있을 때 관부의 베와 비단을 훔쳐 변소에 갖다놓은 자가 있었다. 관리들은 여공을 의심하여 붙잡아 옥에 가두었다. 사마지가 말했다. “무릇 죄인에게 벌을 줄 때 과실이 있다면 그 과실은 가혹하게 함에 있습니다. 지금 장물을 먼저 획득한 후에 그녀를 심문하십시오. 그녀가 만일 견디지 못하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게 될 것입니다.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정서로는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간명하여 쉽게 따르게 하는 것이 대인의 교화입니다. 죄를 지은 자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것은 평범한 시대의 통치일 뿐입니다. 지금 의심받은 자를 용서함으로써 쉽게 따르게 하는 의로움을 융성하게 하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습니까?” 조조는 그의 건의를 따랐다. 조예가 즉위한 후 사마지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다. 오래지 않아 특진 조홍의 유모 당(當)과 임분공주의 시녀가 함께 무간산(無澗山)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다가 옥에 갇혔다. 변 태후가 황문을 사마지의 관소로 보내 뜻을 전했지만 그는 보고하지 않은 채 불시에 낙양의 옥리에게 칙명을 내려 심리하도록 하고는 상소하였는데 조예는 사마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사마지는 천성이 밝고 정직했지만 품행을 바르게 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빈객과 의논할 경우 그의 생각에 수긍할 수 없으면 곧 정면에서 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지만 물러난 후에는 비난하지 않았다. 관직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났는데 집에는 남아 있는 재산이 없었다. <삼국지> 저자 진수는 사마지를 이렇게 평가했다. “위나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남윤을 지낸 사람 중 사마지에 미치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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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1-01-07
  • 연변조선족자치주부련회 초대주임 김찬해
    ●림승학 김찬해는 1905년 4월, 경상남도 김해군 김해면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우수한 성적으로 소학교를 졸업한 그는 1922년 가을에 서울 동덕여자중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 그 학교의 진보적인 교원 권태희는 학생들에게 여성해방과 사회주의 사상을 비밀리에 선전하였다. 이것은 김찬해가 처음으로 접수한 공산주의 사상이었다. 권태희교원의 지도하에 김찬해는 점점 각성하기 시작했으며 “여성동지회”,“여자청년동맹” 등 진보적 단체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약하였다. 1926년 봄 서울 동덕여자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1928년 봄까지 2년 동안 동덕여자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에게 글을 가르쳤는데 이 기간에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초기 혁명 활동가였던 고광수였다. 그의 직접적인 교양 하에 김찬해는 1926년 조선공산주의청년회에 가입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맑스-레닌주의를 알게 되었고 소련 사회주의혁명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조직의 지시에 따라 비밀리에 독서회와 웅변모임을 조직하였으며 이련 모임에서 청년들과 특히 여성청년들에게 반일민족독립에 관한 선전활동을 적극 벌리였으며 소련 10월사회주의혁명에 대해 많이 선전하였다. 하여 그는 점차 공산주의 혁명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1928년 겨울의 어느 날, 조선조선공산주의청년회의 책임자 고광수는 김찬해를 찾아 담화하였다. “조선공산주의청년회에서는 동무를 모스크바동방대학에 보내어 학습시키기로 하였소. 모스크바는 우리들이 동경하는 무산계급의 서울이요, 그곳에 가서 학습을 잘하고 다시 조국으로 돌아와 혁명사업을 본때 있게 벌리기를 희망하오” 이 말을 들은 김찬해는 몹시 격동 되였다. “꼭 조직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혁명의 진리를 학습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고광수의 손을 굳게 잡았다. 조직의 희망과 기대를 가슴속에 깊이 아로새기고 그는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동방대학은 제3국제에서 동방 각국의 혁명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간부학교이다. 이 학교에서는 주로 동방 각국 공산당에서 추천한 우수한 혁명가들에게 맑스-레닌주의 이론을 가르치고 지하공작에 필요되는 각종지식과 기술을 배워주었다 김찬해는 1932년까지 이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그 기간 동만 지구에서 들어간 청년혁명가 림민호동지와 한 반급에서 공부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1929년 겨울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었다 1932년 9월, 김찬해와 림민호는 국제직업동맹 중앙본부로부터 조선의 함흥과 흥남지구에 나가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라는 비밀임무를 맡았다. 조선에 진정한 맑스-레닌주의 당을 건립하자면 우선 그 기초로 될 수 있는 노동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김찬해와 림민호는 먼저 조선에 나가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동지들을 지도하여 이 과업을 완수하여야 했다. 1933년 2월, 김찬해는 한살 반 밖에 안 되는 첫 아이를 국제고아원에 맡기고 모스크바를 떠나게 되었다. 3월 22일 김찬해는 울라지보스또크에 있는 연락부로 사업보고를 왔던 남편 림민호를 만났다. 그때 김찬해는 자기 이름을 최성려로 고치고 농민차림을 하였다. 그들은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 함흥과 흥남지구로 들어갔다. 림민호의 지도하에 함흥과 흥남지구의 적색노동조합의 조직사업은 활기를 띠였고 그 대오도 크게 확대되었다. 이처럼 사업이 한창 진척되고 있을 때 한 반역자의 밀고로 림민호는 일본경찰서에 체포되었다. 김찬해는 울라지보스또크로 들어가 연락부에서 사업을 하다가 조직의 파견을 받고 다시 조선에 나가 지하투쟁을 전개하였다. 1935년 1월 그도 한 반역자의 밀고로 일본경찰서에 체포되어 4년징역 언도를 받았다. 1939년 만기 석방된 김찬해는 그 이듬해 만기 석방된 림민호와 함께 중국 길림성 화룡현 등지에서 생활하면서 당 조직과 항일유격대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다 했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있다가 해방의 날을 맞게 되었다. 1945년 8월 9일 김찬해와 림민호는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소련군이 연변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들은 일본침략자들이 망할 날이 닥쳐왔다는 것을 직감하고 감격과 흥분에 넘쳐 해방의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때 그들에게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겼다. 8월 12일 밤, 돈화의 일본헌병대놈들이 김찬해네 집에 뛰어들어 그들 부부를 체포하여 돈화감옥에 가두었다. 그놈들은“전시치안법”에 근거하여 이른바“위험분자”들을 구류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세 살밖에 안 되는 둘째 아이도 어머니와 함께 유치장에 구류되어 고생을 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은 무조건투항을 선포하였다. 이날 감옥에서 나온 김찬해와 림민호는 소련홍군이 돈화에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넘쳐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그들 부부는 몇몇 진보적 인사들과 함께 소련홍군을 환영하는 활동을 벌리고 돈화 중심거리에다 “위대한 해방자 소련홍군 만세!”,“쓰딸린 만세!” 등 구호를 러시아어로 써서 붙이였다. 8월 19일 소련홍군이 돈화에 들어오자 김찬해와 림민호는 소련군사령부에 찾아가 자기소개를 하고 소련군을 협조하련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 소련홍군사령부에서는 일찍 모스크바동방대학에서 학습하였고 러시아어를 잘하는 김찬해와 림민호에게 사령부의 번역원 겸 연락원 직무를 맡겼다. 이때로부터 그들 부부는 소련홍군을 협조하여 일본군과 위만군부대의 무장해제, 치안유지, 토비숙청 등 사업에 바삐 보냈다. 해방직후 시국이 혼란한 시기에 괴뢰만주국경찰과 그 주구 등 사회의 찌꺼기들이 돈화현 각지에서 토비무장을 조직하여 행패를 부리면서 국민당 중앙군이 돈화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보위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보호하자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의 무장대오가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도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고 인정한 그들은 진보적 인사들로 돈화에 “해방동맹”이라는 혁명군중조직을 건립하기로 하였다. 1945년 9월 20일, 돈화영화관에서는 림민호의 사회 하에 100여명 대표가 참가한 돈화현 민중대표회의가 열리였다. 대회에서는 림민호를 위원장으로 하는“돈화현해방동맹”의 성립을 선고하였다. 그때 김찬해는 해방동맹 산하의 여성해방동맹의 책임자로 당선되었다. 그는 광범한 여성들을 조직, 동원하여 토비숙청, 전선지원사업에 모든 심혈을 몰 부었다. 1945년 10월, 김찬해는 상급의 지시에 의해 길림시에 들어가 길림성부녀동맹과 길림시 부녀동맹에서 지도사업을 맡고 부녀사업에 종사하였다. 1946년 11월에 그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 후 중공길림성위와 길림성정부가 연길시로 옮길 때 김찬해도 연길로 전근되어 연변의 부녀사업을 책임지고 진행하였다. 1949년 12월, 그는 중국공산당 연변지방공작위원회 부녀공작회 부서기로 임명 되였으며 1952년 9월부터 1955년 5월까지 연변조선족자치주부련회(부녀연합회)주임사업을 맡았다. 하여 그는 연변주부련회의 초대주임으로 되었다. 이 기간 그는 중공연변지방위원회 지도하에 광범한 여성들을 조직, 동원하여 해방전쟁과 항미원조전쟁을 지원하고 생산을 복구 발전시키고 증산절약운동을 하는 가운데서 연변여성의 위력을 충분히 과시하였다. 하여 연변여성들 가운데는 리옥금, 김신숙, 동정숙 등 이름난 여성모범과 영웅인물들이 배출되었다. 그는 여성해방사업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는바 남녀평등을 쟁취하고 여성들의 주인공적 의식을 키우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벌리였다. 1950년에 공화국 첫 혼인법이 반포되자 그는 각급 부녀조직을 발동하여 혼인법을 관철하고 실시하는 가운데서 매매혼인, 일부다처제, 민며느리 등 봉건적인 속박에서 괄시받고 천대받던 많은 여성들의 각성을 높여 주었으며 그들에게 출로를 주고 새로운 가정을 꾸려줌으로서 연변여성들의 인격상 존중을 받고 남녀평등을 실시하는데 토대를 닦게 하였다. 그리고 각급 당 조직과 정부에 의거하여 야학을 꾸리고 문명퇴치활동을 활발히 벌려 연변의 부녀사업이 활기를 띠도록 노력하였다. 오랫동안 그와 함께 부녀사업에 종사해온 한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김찬해동지는 여성 활동가로서 사업책임심이 강하고 소박하며 많은 여성간부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1955년 5월, 김찬해는 조직의 수요로 연변사범학교의 제1부교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때 그는 벌써 50세가 넘었었다. 매일같이 한복 옷차림을 하고 학교로 출근할 때면 많은 교원과 학생들은 숭경하는 심정으로 그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곤 하였다. 한것은 그가 연세가 많은데다 또 덕망이 높고 사업을 빈틈없이 밀고나가 학교를 명실이 부합된 “원예사의 요람”으로 꾸린데 있었다. 특히 그는 나젊은 교원과 학생들을 친 자식마냥 따뜻이 대해주고 그들의 애로를 제때에 풀어주어 많은 교원과 학생들은 그를“어머니 교장”이라고 다정하게 불렀다. 김찬해가 사범학교에서 사업하는 기간에 양성해 낸 학생은 무려 1000여명이나 되는데 그들은 지금 연변은 물론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 각지에서 교육사업골간으로 활약하고 있다. 1960년 여름 그는 사업의 수요로 학교를 떠나 연변조선족자치주 민정처 부처장, 자치주 시찰실 시찰원 등 직무를 맡았다 이때 그는 벌써 60이 가까운 할머니였지만 당의 사업을 위해서라면 몸을 아끼지 않고 기층에 내려가 조사연구 사업을 하면서 걸리는 문제는 제때에 풀어주어 기층간부들의 환영을 받았다. “문화대혁명”기간에 그는“반역자”,“소련특무”라는 얼토당토한 감투를 쓰고 박해를 받다가 1972년 12월 22일, 그 억울한 누명을 벗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중공중앙위원회 제11기 제3차전원회의 후 당 조직에서는 그에 들씌였던 누명을 벗겨주고 장중한 추도회를 진행하였다. 추도회 후 김찬해의 유골은 림민호의 유골과 함께 화룡현 흥성촌 뒷산에 모셔졌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12-26
  • 송미령이 사귄 남자들
    미국 웰즐리대학의 기록보관소에는 송미령의 처녀시절 서한들이 소중히 간직되어있다. 그 서한에 따르면 송미령이 장개석과 결혼하기 전에 적지 않은 청혼자들이 있었으며 송미령자신도 좋아하던 남자들이 있었다. 이 서한들은 송미령이 미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의 동창생 이였던 밀스(米尔斯)에게 보낸 것이었다. 송미령보다 4살 연상인 밀스는 그녀의 일생에서 단짝 친구였다. 송미령의 처녀시절의 편지 중에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고 언급했던 남자들이 지금에 와서 누구인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출현으로 하여 송미령은 사랑과 혼인에 대해 많은 사고를 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인생가치를 추구한 마음의 여정을 보여주었다. 1917년 6월에 송미령은 웰즐리대학을 졸업한후 오빠 송자문과 함께 귀국했다. 여객선에서 송미령은 “Mr.Van Eivigh”이라는 “운명의 남자”를 만났는데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 남자는 건축사였는데 아버지가 화란사람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사람이였다. 배우에서 10여 일 동안 얘기를 나누면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였다. 그가 송미령에게 청혼했을 때 19세의 송미령은 마음이 움직였다. 상해에 돌아온 후 그녀의 혼인문제는 부모의 간섭을 받았다. 송미령의 아버지 송요여는 비록 미국유학을 다녀온 선교사였지만 어머니 예계진은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여성으로서 매우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기독교신자였다. 그들은 19살밖에 안되는 딸을 그렇게 어린 나이에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고 더구나 외국인에게 시집을 보내고싶지 않았다. 부모의 반대 때문에 송미령은 정서가 저락되어있었고 혼인문제에서 매우 비관적이였다. 1917년 8월 16일에 밀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송미령은 이렇게 썼다.“나는 집에만 있고 싶었고 결혼하고도 싶지 않았어요. 특히 제가 전번 편지에 언급했던 배위에서 만난 그 운명의 남자하고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남자들과도 결혼하고 싶지 않아요. 명성과 금전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부모의 반대 때문에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 그 남자와의 연애가 끝나버렸다. 그 때문에 부모와 크게 싸운 송미령은 한동안 힘든 나날을 보냈다. 갓 귀국한 송미령은 자신에 대한 부모의 “관심”에 적응되지 못했다. 그녀는 토라지는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표시했다. 사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송미령은 한 남학생에게 호감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대학 2학년에 올라간 후에는 더는 그 남학생을 좋아하지 않았다. 10년간의 유학생활을 하면서 송미령은 독립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귀국 후 며칠이 안 되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이성친구 HK와 양선생이 북경에서 송미령을 찾아왔다. HK군은 2년동안 송미령을 추구했다. 두 사람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언약을 한적이 있었고 송미령도 상대방을 좋아한적이 있었다. 그러나 귀국 후 송미령은 그와 헤어졌다. 1918년 1월말에 HK는 또 북경에서 송미령을 보러 상해로 왔다. 송미령의 어머니는 딸이 그에게 시집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몇번 대면한 후 송미령은 다시 그와 만나는 것을 거절했으며 HK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파티에 출석하는 것을 피했다. 송미령이 냉대했지만 HK는 포기하지 않았다. 송미령을 접근하기 위해 그는 송씨가문에서 예배를 드리는 교회당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검질기게 달라붙자 송미령은 화가 나서 교회당으로 다니지 않았다. 후에 두 사람은 만나도 서로 말도 걸지 않았다. 이렇게 친구가 낯선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HK의 끈질긴 애정공세는 효과를 보지 못했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송미령의 반감을 야기시켰다. 그때로부터 송미령의 편지에는 그녀를 골치아프게 한 HK가 다시는 언급되지 않았다. HK를 거절한 시기인 1918년에 두 남자가 선후로 송미령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그중 한 사람은 미국유학을 다녀왔지만 이미 결혼한 남자였다. 송미령은 자신이 유부남을 사랑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1918년 4월에 송미령은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한편 유부남을 사랑하면서 그와 결혼할 수 없는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1918년 5월초에 송미령의 아버지 송요여가 신장병으로 사망되어 온집식구는 한없는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 기간에 송미령은 혼인에 대해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는 꼭 결혼해야 한다고 여겼지만 의연히 이성과 정감,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어떤 때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기혼남자한테 시집을 가려고 시도했으며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편벽한 곳으로 가서 원시생활을 하려고도 생각했다. 또 어떤 때는 그 나이 많고 부유한 남자한테 시집 가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고도 했다. 물질생활의 풍족과 혼인문제에서의 끊임없는 흔들림이 송미령으로 하여금 무료한 느낌을 받게 했다. 자신의 존재가치와 의의를 증명하기 위해 1918년부터 송미령은 더욱 실제적 의의가 있는 사회사업을 하려고 노력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조건이 우월하고 지식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를 따르는 남자들이 많은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였다. 송미령이 우수한 남자들을 하나하나 거절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녀가 임자 있는 꽃이 아닐가고 의심했다. 요언은 그렇게 생겨났다. 1919년 7월 14일에 송미령이 밀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상해라는 이 도시에서는 가는 곳마다 내가 이미 약혼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게다가 소문마다 내가 약혼했다는 상대는 다른 남자였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내가 약혼한 남자가 도대체 어느 남자인지 몰랐습니다. 더욱 우스운 것은 나와 약혼했다고 소문난 그 남자들은 누구도 소문을 부정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송미령의 어머니 예계진은 딸에게 좋지 않은 소문이 돌자 그해 6월부터 딸이 어떤 남자친구도 만나지 못하게 했다. 2개월이 지나자 소문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온 몇몇 옛친구들이 송미령이 약혼하지 않았다는것을 알고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들이대며 귀찮게 굴었다. 그때문에 그녀는 매우 괴로왔다. 그녀는 그 남자들이 매우 좋은 친구라고 여겨 단지 친구로 지내기 싶었을 뿐이지 그들과 우정을 초월한 사이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이때부터 1921까지 송미령이 밀스에게 보낸 편지는 처음 2년동안보다 적었으며 연애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적게 언급했다. 다만 1921년 5월 25일에 보낸 편지만은 예외였다. 그번 편지에서 송미령은 친구에게 버니라고 부르는 남성에 대해 언급했다. 송미령이 버니와 연애한다는 말을 들은 부모는 화를 내면서 견결히 반대했다. 버니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송미령은 버니를 특별히 좋아했다. 전에 만났던 모든 남자들보다 더 좋아했다. 심지어 최근에 약혼까지 한 그 사람보다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송미령은 알고있었다. 버니와의 관계는 우정을 초월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송미령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 가정은 보수적이어서 가족의 순결한 혈통을 유지해야 된다고 엄격히 규정했기 때문에 죽어도 내가 외국인에게 시집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버니와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단념했습니다.” 송미령은 버니와의 연애사실을 말하면서 밀스에게 현재 다른 한 남자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중이라고 했다. 바로 그녀가 최근에 약혼한 그 남자였다. 이 편지는 송미령이 처녀시절에 보낸 편지 중 애정문제에 대해 언급한 마지막 한통의 편지였다. 자신이 특별히 좋아한다고 했던 버지는 부모의 강력한 반대 때문에 포기했던 것이다. 그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는 우수한 남자의 사랑을 송미령이 받아들였는지는 지금까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후 송미령은 오래동안 사랑에 대한 동경과 갈망을 가지고 있었고 혼인에 대해 이성적으로 깊이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돈이 있고 능력이 있고 신분이 있고 교양이 있는 많은 남자들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할 용기가 없었다. 처첩이 있는 군인출신의 정치인 장개석이 나타날 때까지… 1927년은 바로 송미령과 장개석이 사랑하고 결혼을 한 중요한 한해였다. 송미령은 밀스에게 한통의 편지도 써보내지 않았다. 장개석과 결혼한 후인 1928년 1월에 송미령은 남경에서 “장개석의 부인”의 명의로 밀스에게 한통의 편지를 써보냈다. 편지에서 그녀는 결혼정황과 혼인에 대한 그들부부의 부동한 견해에 대해 언급했다. 비록 신혼시절에 의견차이가 있었고 결혼생활에서 갈등이 있었지만 그런 의견차이와 갈등은 그녀와 장개석의 근 50년에 달하는 혼인생활에 조금마한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번역 :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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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0-12-23

외국인· 출입국 검색결과

  • 일본, 외국인 유학생 취업비자 대폭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이 일본 취업에 필요한 재류자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서 실시한다. 3년 연속 유학생이어야 하는 요건을 완화하고 최근 1년체류한 유학생이라도 승인하기로 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국가지정기술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일본에서 학부와 무관한 일을 할 수 있으며, 이 새로운 조치로 연간 3,000명의 유학생이 취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를 시범으로 일본은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 환경 조성과 인재 유지를 촉진하기 위해 국가 전략 특구인 기타큐슈시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하여 전국 확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학생의 최근 상황을 추적하고 불법 체류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요구 사항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면접 및 기타 심사, 졸업 후 정기적인 면접, 취업 중단 시 본국으로의 귀국을 위한 적절한 안내 등이 포함된다. 현재 일본에 취업하고자 하는 해외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일본어 학교에 재학할 경우 유학을 위한 재류자격으로 일본에 남아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졸업한 경우 일본에서 계속 구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특정 활동'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약 75%가 일본 취업 희망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전문학교 졸업생은 더 이상 전공에 맞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더 다양한 업종에서 일할 수 있다. 현지 체류 및 활동에 종사하는 재류자격을 개정해 전문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졸업생이 일본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개정 이후 일본에 취업한 유학생이 연간 약 3,000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의 출생아 수는 2023년에 최저치를 기록해 80만명 이상 자연감소했다. 일본학생지원기구의 2021년 외국인 유학생 조사에서는 약 2,000명의 전문학교 학생 중 약 75%가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재계와 교육계에서는 일부 유학생이 일정 수준의 전문적 수준과 일본어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 제한으로 인해 강제로 일본을 떠나게 된 점을 지적하고정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4-03-02
  • 프랑스 외무장관 "중국 유학생, 석사 졸업 후 5년 단기 복수비자 취득 가능"
    [동포투데이] 프랑스에 유학 중인 중국 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치면 5년간 유효한 단기 복수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콜론나 프랑스 외무장관이 밝혔다. 앞서 중국 외교부는 일방적 무비자입국 국가의 범위를 시범적으로 확대하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말레이시아 등 6개국의 일반 여권 소지자는 2023년 12월 1일부터 2024년 11월 30일까지 최대 15일간 무비자로 중국에 입국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콜론나 장관은 중국 방문 중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밟은 모든 중국 학생들은 학업을 마친 뒤 최대 5년간 유효한 단기 복수비자를 발급받아 중국과 프랑스를 오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중국 국적자들의 비자 처리 시간도 단축할 계획이다. 콜론나 장관은 또한 프랑스와 중국 두 나라가 고등(대학) 교육, 과학 연구, 문화 및 보건 분야에서 양국 간의 협력을 포함하는 5개의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11-25
  • 일본,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 방역조치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이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3월 1일부터 완화하고 모든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하기로 했다. 27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완화하고 현재 중국 본토에서 직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입국자를 대상으로 하는 코로나19 검사를 무작위 검사로 대체한다고 발표했다. 출발 전 72시간 이내에 음성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조치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마쓰노는 완화 이유에 대해 입국자 양성률이 지속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축적된 경험에 따르면 지금까지 공항만에서 발견된 바이러스는 모두 일본에서 이미 검출된 오미크론 계열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27
  •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 입국후 핵산검사 의무 해제
    [동포투데이] 22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는 입국후 핵산검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정부는 3월 1일부터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핵산검사 의무를 취소하기로 했으나, 출국 전 핵산 검사 음성 소견서로 항공기에 탑승해야 하는 요건은 3월 10일까지 계속된다. 정부는 올해 1월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중국에서 입국하는 승객은 탑승 전 코로나19 음성증명서를 제출하고 입국 후 핵산 검사를 받도록 했다. 이 조치는 1월 말에 종료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2월 말까지 한 달 연장되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22
  • 中,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한 중국대사관은 2월 18일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및 영사관은 한국인의 중국행 비즈니스,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고 72/144시간 무비자 체류 제한을 해제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 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이 조치는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2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10일 한국 정부가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40일 만에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다시 풀리게 됐다. 한국 측의 조치에 대응하여 주한 중국대사관은 1월 10일, 한국 주재 중국 영사관은 오늘부터 한국인의 중국 방문, 비즈니스, 관광, 의료,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5
  • 中 외교부 "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적극 검토"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내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마오 대변인은 "한국 측의 대중 비자 제한 조치 해제가 양국 인적 왕래 장벽을 줄이기 위한 올바른 발걸음"이라고 화답했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은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대등하게 재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한국 측이 중국과 함께 양국의 정상적 교류가 더욱 원활히 이뤄지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당초 1월 말까지였던 이 조치는 2월 말까지 연장됐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월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40일 만에 풀리는 것으로 된다. 한국의 조치에 대응해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영사관은 이제부터 한국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이 재개된다. 정부는 1월 2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이 조치는 당초 1월 말까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2월 말까지 한 달 연장되었다. 앞서 복수의 국내 언론은 방역·보건부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는 조만간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중단을 해제하고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사전 검사 및 현장 검사 조치는 유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은 주한 중국영사관은 한국인의,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관련 국가들이 사실에 입각해 과학적이고 적절한 방역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기회를 틈타 정치적인 농간을 부려서는 안 되며 차별적인 조치를 취해서도 안 되고 국가 간 정상적인 인적 왕래와 교류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중국, 일본 국민에 대한 일반 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일본 중국대사관 위챗 공식계정은 29일 자로 주일본 중국영사관이 일본 국민의 중국 일반비자 발급을 재개했다고 공지했다. 앞서 일본은 지난 1월 8일부터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항하는 승객에게 탑승 전 72시간 내 음성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강화하고, 입국 시 검사도 더 정밀도가 높은 핵산 검사나 항원 정량검사로 변경했다. 주일 중국대사관은 10일 주일 중국대사관과 영사관이 앞으로 중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일반 사증 발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당시 관련 문제에 대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을류을관(乙類乙管)’ 총체적 방안과 중외 인사 왕래를 위한 잠정 조치를 발표한 뒤 여러 나라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다만 일부 국가가 과학적 사실과 자국 내 전염병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를 고집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1-29
  • 주중 일본대사관 비자업무 정상화
    [동포투데이] 중국은 지난해 12월 26일 2023년 1월 8일부터 국경 방역 조치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중국 내 대규모 전염병 발생으로 12월 말부터 미국, 일본, 이탈리아, 인도 등 많은 국가에서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상응하는 통제 조치를 연속적으로 도입했다. 중국 외교부는 여러 차례의 정례 브리핑에서 "일부 국가가 중국만을 대상으로 한 입국 제한 조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이에 따른 일부 과도한 관행은 더욱 용납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은 전염병 예방 및 통제 조치를 조작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반대하며 상황에 따라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1월 10일 정오에 한국 국민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그날 저녁에는 일본 국민의 중국행 일반 비자 발급을 즉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내각관방장관은 11일 "일본 정부가 중국 정부에 철회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1-22
  • 법무부,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3,865명 적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는 10월 11일부터 2개월간 코로나19 확산 이후 잠정 중단되었던 관계부처 정부합동단속을 재개하여 불법체류 외국인 3,865명, 불법 고용주 466명, 불법취업 알선자 17명 등 총 4,348명을 적발했다고 14일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 정부합동단속은 유흥․마사지업소 등 사회적 폐해가 큰 분야와 택배․배달 대행 등 국민의 일자리 잠식 업종에 대해 중점적으로 실시됐으며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총 3,865명을 적발하였다. 이 중 3,074명은 강제퇴거명령, 207명은 출국명령, 170명은 범칙금 처분의 조치를 하였으며 나머지는 조사중에 있다. 국적별로는 태국 1,441명, 베트남 814명, 중국 587명, 몽골 165명, 우즈베키스탄 126명, 카자흐스탄 119명, 러시아 109명, 필리핀 85명, 기타 419명이다. 아울러 법무부는 불법고용주 총 466명과 불법취업 알선자 17명을 적발하여 범칙금 등을 부과하였으며 그 중 단속을 거부하거나 불법취업을 알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단속하는 등 엄정히 대처하여 1명 구속, 38명 불구속 수사하였다. 또한 법무부는 이번 정부합동단속과 병행하여 범칙금 면제 및 입국규제를 유예하는 자진출국유도 제도를 시행하여 10월 11일부터 12월 10일까지 불법체류 외국인 7,378명이 자진 출국하도록 하였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유연성 있는 이민․출입국정책의 전제는 일관성 있고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불법체류 단속 체계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2-12-14

연예·방송 검색결과

  • 황금색 거즈 스커트 입은 디리러바 '여신 분위기 물씬'
    디리러바(1992년 6월 3일)는 신장 우루무치 출신으로 중국 여배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으며 상하이연극학원 연기과를 졸업했다. 2013년 첫 TV 시리즈 <아나이한>에 출연했으며, 2015년 TV 시리즈 <다이아몬드 러버>에서 가오웬 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졌다.2017년에는 <삼생삼세십리도화>에 박풍지우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예능 프로그램 <달려라>에 고정 멤버로 합류해 감미롭고 능청스러운 개성으로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맞았다. 2018년에는 드라마 <표량적이혜진>으로 중국 TV 골든이글 어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및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여배우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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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8
  • 베이징국제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영화와 패션’ 섹션 도입
    [동포투데이] 베이징 국제 영화제는 14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화와 패션' 섹션을 도입하여 영화와 패션 산업의 공생 관계를 강조했다고 행사 주최 측은 밝혔습니다. 이 섹션은 4월 18일 영화제 개막식 직전에 옌치 호수의 멋진 배경을 배경으로 중국의 유명 다운재킷 및 아우터 제조업체인 보시덩(Bosideng) 의 자외선 차단 의류 패션쇼로 시작되었다. 이 쇼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호주의 사운드 디자이너 데이비드 화이트, 배우 궈샤오동, 가수 샹원지,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등 스타들과 저명한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데이비드 화이트는 중국 영화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중국의 급성장하는 영화 산업에 참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언급하며 베이징으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작업으로 유명한 화이트는 내러티브와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사운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토리텔링에서 사운드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이번 쇼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한 보시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트로 페라기나는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1961년 영화 <마리엔바드에서의 마지막 해>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적 예술성과 패션쇼의 융합을 강조했다. 베이징 국제 영화제의 '영화와 패션' 섹션은 영화와 패션 산업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고 두 예술 영역 간의 창의적인 시너지 효과와 상호 영감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 연예·방송
    2024-04-20
  • 배우 김홍파, 브뤼셀 영화제 공식 초청
    [동포투데이]19일 오달수, 장영남, 김홍파 배우가 출연하는 서스펜스 드라마 장르의 영화 ‘오후 네시’가 제42회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은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오후 네시’는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찾아오는 이웃 남자로 인해 평온했던 한 부부의 일상이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서스펜스 영화다. ‘오후 네시’의 주연인 김홍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배우로서 많은 작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여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최근 왓챠(드라마) 트렌드 지수1위를 차지한 ‘나의 해피엔드’에서 서창석(장나라분 의 아버지)역으로 미세하게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대중들에게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등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품격 있는 연기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김홍파 배우는 “좋은 작품을 함께 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오후 네시’가 국제 영화제에 공식초청 되어 매우 영광이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는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홍파 배우의 주요 출연작으로는 ‘화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괴기맨숀’, ‘싱크홀’, ‘남산의 부장들’, ‘비스트’, ‘배심원들’, ‘내부자들’, ‘국가부도의 날’, ‘공작’, ‘검사외전’, ‘사바하’, ‘말모이’, ‘보안관’, ‘카지노’, ‘법쩐’, ’형사록1,2’, ’낭만닥터김사부2’, ’블랙독’, ‘귓속말’, ‘어느날’, 등이 있으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이고 있다.
    • 연예·방송
    2024-04-19
  • 배우 김다솜이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캐스팅
    [동포투데이] 배우 김다솜이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출연한다. 15일, 소속사 스토리제이컴퍼니 측은 "김다솜이 새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캐스팅됐다. 주부 탐정단 막내 '소희' 역으로 변신할 김다솜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살롱 드 홈즈'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전건우 作)을 원작으로, 집안일에 치이고 타인에게 무시당하며 때로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마저 접어야 하는 주부들이 무관심 속 지나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 속 증거들을 추적하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스토리의 드라마다. 김다솜은 극 중 주부 탐정단 4인 중 막내 '소희'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소희는 가장 어리지만 야무진 성격의 소유자로,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동네의 신속 정확한 배달을 책임지는 프로 라이더. 배달을 오가며 수집한 정보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주부 탐정단 내의 정보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예정이다. 앞서 김다솜은 SBS '언니는 살아있다!', tvN '사이코메트리 그녀석', JTBC '우리, 사랑했을까', MBC '꼭두의 계절'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눈에 띄는 캐릭터 소화력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드라마 '우연일까'에 이어 '살롱 드 홈즈'에도 출연하며 멈추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바.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그의 행보에 관심이 커진다.
    • 연예·방송
    2024-04-15
  • 박한별, 라이즈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체결
    [동포투데이] 배우 박한별이 라이즈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15일 라이즈 엔터테인먼트는 배우 박한별을 첫 아티스트로 영입하며,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선다. 라이즈 엔터테인먼트는 “박한별이 연예계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든든한 파트너로서 아낌없는 지원을 펼칠 예정이고 새출발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고 전했다. 박한별은 소속사를 통해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다. 항상 팬분들의 기대와 성원에 보답할 수 있는 배우 박한별이 되겠다. 또한 라이즈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더 좋은 모습과 연기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라고 밝혔다. 박한별의 주요 영화 출연작으로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두 개의 달>, <여고괴담3>, <숙명> 등에 출연했고 , 주요 드라마로는 <슬플 때 사랑한다>, <보그맘>, <애인있어요>, <냄새를 보는 소녀>, <잘 키운 딸 하나>, <프리즈>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박한별은 현재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 연예·방송
    2024-04-15
  • 연변 유명 소품배우 김문혁, 뒤늦게 알려진 사망 소식…향년 59세
    [동포투데이] 중국 연변의 유명한 소품배우(코미디) 김문혁의 사망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김문혁 씨가 2024년 3월 8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해당 소식이 전해진 뒤 각종 SNS에는 추모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0년 3월, 김문혁 씨는 중풍으로 연변병원에 입원하며 기나긴 투병 생활이 시작했다. 연변병원에서 짧은 치료와 함께 “적절한 휴식과 운동을 하면 괜찮다”는 결과를 받고 퇴원했지만 얼마 뒤 신장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1년간 신장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2011년 김문혁 씨는 끝내 신장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에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마와 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연길시 조선족구연단에 입단한 김문혁 씨는 근 20년간 ‘술친구’,‘이웃사이’ 등 80여 편의 소품과 ‘사랑의 품’, ‘샘’ 등 드라마에 출연한 중견 배우이다. 때로는 두 오누이를 둔 삼륜차몰이 조선족 아버지를 진솔하게 그려낸 연기자로, 때로는 조선 족들 특유의 일상을 재치 있게 무대에 녹여낸 소품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연예·방송
    2024-03-16
  • 양대혁, 미스틱스토리와 전속계약…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동포투데이] 양대혁이 미스틱스토리의 새 식구로 합류했다. 7일 소속사 미스틱스토리는 “다채로운 매력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갖춘 배우 양대혁과 전속계약을 하게 되어 기쁘다. 탄탄한 연기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양대혁은 2017년 KBS 2TV ‘고백부부’로 데뷔해 영화 ‘백두산’,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JTBC ‘야식남녀’, tvN ‘스타트업’, KBS 2TV ‘삼남매가 용감하게’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극에 몰입감을 더해왔다. 최근에는 KBS 2TV 새 주말 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에 출연을 확정하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훈훈한 외모는 물론 맡는 배역마다 개성 넘치는 연기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양대혁이 미스틱스토리와 손을 잡고 펼쳐나갈 시너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 연예·방송
    2024-02-07
  • 인도 여배우, 사망 하루 만에 부활...네티즌 맹비난
    [동포투데이] 지난 금요일(2일) 소셜 플랫폼을 통해 인도 여배우이자 전 볼리우드 배우인 32세 푸남 판데이(Poonam Pandey)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는데, 사인은 자궁경부암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각계각층의 주목을 받았지만, 하루 뒤 판데이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해 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자궁경부암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은 즉각 각계각층으로부터 맹렬한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판데이는 2011년 인도 크리켓 팀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면 축하하기 위해 옷을 벗겠다고 약속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또한 발리우드 영화와 리얼리티 쇼의 단골이 되었다.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판데이 소속사는 지난 2일 인스타그램(Instagram)을 통해 130만 팬들에게 사망 소식을 전하며 “오늘 아침은 우리에게 힘든 날이다. 우리 사랑하는 판데이가 자궁경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 또한 판데이가 질병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으나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며 국민들이 질병에 대해 더욱 경각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당 소식이 나오자마자 판데이의 팬들은 댓글창으로 몰려들어 애도의 뜻을 표했고, 언론에서도 이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놀랍게도 하루 뒤 판데이는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최신 영상을 업로드하며 “네, 제가 죽은 척한 건 맞아요, 극단적이라는 건 알지만 갑자기 모두가 자궁경부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판데이는 자궁경부암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가지 않았지만 이미 수천 명의 여성을 죽인 자궁경부암은 다른 암과 달리 HPV 백신만 맞으면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고 조기에 발견하면 적절한 치료가 가능하다며 자신의 가사(假死) 소식이 이룬 성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많은 네티즌들은 "말도 안 되는 홍보 수법"이라며 비난했고 “살아있어 기쁘지만 드라마틱한 홍보를 한 그녀를 체포해 달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판데이 때문에 HPV 백신 접종을 예약한 사람도 많았다.
    • 연예·방송
    2024-02-07
  • 류더화,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 선출…대회 현장 공개
    [동포퉤이]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영화인협회(中國電影家協會) 제1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천다오밍이 중국영화인협 주석을 연임하고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가 처음으로 중국영화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류 부주석의 회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을 모았고, '싱다오환구망(星島環球網)'은 그의 대회 참가 사진을 여러 장 단독 입수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류더화는 블랙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포멀한 룩을 연출했다. 그가 투표할 때 웃는 얼굴로 '지나가던' 모자를 쓴 남자가 바로 우징. 류더화는 현장에서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유명 배우 리쉐젠을 부축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차기 중국영화인협회 지도부와 중국 문련 지도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앞줄은 리이 중국문련 당조 서기 등 문련 지도부와 천다오밍 영화인협회 주석, 리쉐젠 전 영화인협회 주석, 부주석이 뒷줄, 류더화가 뒷줄 오른쪽 2번째.
    • 연예·방송
    2024-02-01
  • 가수 정선연, 지병으로 별세... 윤서병원 장례식장 (31일 발인)
    [동포투데이] 가수 정선연이 28일 구리 한양대병원 병원 중환자실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1973년생인 고인은 1990년 대구출신 락밴드 사계로 데뷔, 1991년 넥스트 기타리스트 김세황과 함께 밴드 다운타운의 보컬로 활동 했다. 이후 솔로로 데뷔한 정선연은 허스키 보이스 로커로 주목을 받으며, 드라마 '어머님은 내 며느리', '고독', '울지 않는 새' 등 다수의 드라마 주제곡을 불렀다. 특히 '어머님은 내 며느리'의 OST '빈처'는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임재범, 박완규와 견주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2년 '고독' 발매 이후 활동이 뜸했던 고인은 2015년 '빈처' 리메이크 앨범으로 13년 만에 컴백해 이목을 끈 바 있다. 고인의 장례식장은 윤서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7시 40분이다. [사진] 가수 정선연 / 자료제공 워너비엔터테인먼트
    • 연예·방송
    2024-01-29

스포츠 검색결과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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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27
  • 북한, 일본 2-1로 꺽고 U20 여자 아시안컵 우승
    [동포투데이] 16일 막을 내린 20세 이하 여자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북한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일본을 2-1로 꺾고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일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된 중국은 조별리그에서 북한과 1-1로 비기고 일본에 0-2로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한편 호주 여자축구는 3,4위 결승전에서 한국을 1-0으로 꺾었다. 두 팀은 일본, 북한 등 4개 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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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7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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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12
  •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 “최종 목표는 월드컵 진출”
    [동포투데이] 8일 오전 11시, 중국축구협회는 톈진에서 브란코 이반코비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을 위한 정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인 중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3월 21일과 26일 조별리그 36강전 싱가포르와의 연속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반코비치는 “지금 기자회견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선수들의 경기 감각도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의 1차 목표는 최종예선 진입이고 최종 목표는 강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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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中 U-20 여자축구, 일본에 완패…월드컵 진출 불투명
    [동포투데이] 7일 밤에 끝난 AFC U-20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중국이 일본에 0 : 2로 패하면서 U-20 여자 월드컵 진출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해졌다. 이번 U-20 여자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전년도 준우승팀인 일본, 그리고 전년도 준우승팀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어 U-20 여자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상대의 강한 실력에 비해 중국은 라인업이 불규칙했고 중앙수비수인 차오루치(乔睿琪)가 경기 준비 마지막 순간 부상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서 중국은 1 : 1로 힘겹게 북한과 비기면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은 지난 경기에서 베트남을 10 : 0으로 대파했다. 중국은 월드컵 진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번 경기에서 적어도 골을 넣어야 하고 최소 1점을 따내야 했다. 왕쥔(王军) 중국팀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은 기술이 뛰어난 팀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강팀”이라며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경기에 비해 중국팀의 이번 라인업이 다소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리팅잉거(李渟英格), 장천징(姜晨璟), 천자위(陈佳宇)가 선발로 나섰다. 초반에는 양 팀 모두 골문 앞의 절대적인 찬스가 있었지만, 득점을 못했다. 경기 20분 중국은 상대의 실수를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루자위(卢家玉)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 의해 무산되었다. 26분 페널티 구역에서 동료의 크로스를 받은 일본의 마야 히지카타가 슈팅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고 88분에 아마노 스즈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대회에는 8개 팀이 참가하며, 중국은 일본, 북한, 베트남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2024년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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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8
  • 파리올림픽 ·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 공개
    [동포투데이]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가 3월 4일(현지시간) 오르세 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 프랑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우고 가토니가 만든 이 두 포스터는 올림픽 포스터 역사의 큰 혁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요소가 많고 디테일이 풍부해 기존 올림픽 포스터 디자인의 전통을 깼다. 색채 활용에 일가견이 있는 예술가로서, 가토니는 파리와 프랑스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이번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모든 스포츠를 포함하는 다원적이고 번영하는 미시세계를 상상했고, 동시에 파리 올림픽의 혁신적인 특징들을 보여주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두 개의 포스터를 별도의 두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하나로 합쳐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할 수도 있는데, 왼쪽이 올림픽, 오른쪽이 패럴림픽이다. 가토니는 "디자인한 영감의 원천은 파리의 랜드마크 건물들을 재배열한 거대한 도시 경기장"이라며 "에펠탑은 스타드 드 프랑스 중앙을 관통하며 센 강, 개선문, 콩코드 광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즐거운 스포츠 카니발처럼 보이는 포스터 전체는 즐거운 스포츠 축제를 원하는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비전과도 부합하며, 가까이서 보면 포스터의 수많은 디테일들이 관객들에게 발견의 즐거움과 새로운 탐구의 충동을 선사한다. 포스터에는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 8개가 숨겨져 있어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올림픽 오륜기와 패럴림픽 삼색 엠블럼, 대중 마라톤, 올림픽 격언 등도 찾아볼 수 있다. 두 포스터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것으로 전체 제작 과정은 약 2000시간이 걸렸다. 토니 에탕게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이 두 포스터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에탕게는 "이것은 단순한 포스터가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요소를 담고 싶고, 남들과 다르길 원한다"며 "이는 올림픽 역사상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두 포스터는 3월 10일까지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두 포스터는 공개 시점부터 파리 2024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각각 29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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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7
  • 호날두, 팬들 앞에서 ‘음란 제스처’...사우디축구협회 조사 착수
    [동포투데이]아랍 언론 '앗샤르끄 알아우싸뜨'는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 징계윤리위원회가 알 나스르의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알샤바브 FC 팬들을 향해 음란한 제스처를 취한 것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호날두는 지난 일요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로리그 2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알 나스르가 알샤바브 FC를 3-2로 꺾는 과정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했다. 경기 후 홈팬들을 향해 몸을 돌린 호날두는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여러 번 흔들었다. 스페인의 스포츠 일간지 마르카(MARCA)는 상대팀 팬이 관중석에서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의 이름을 연호한 데 대한 호날두의 화답이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 징계윤리위원회는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논평을 낼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만간 호날두에 대한 징계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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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26
  • 네덜란드 국가대표 프로메스,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6년 선고
    [동포투데이] 유럽타임스(European Times) 보도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14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뛰고 있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퀸시 프로메스(Quincy Promes)가 1톤 이상의 코카인을 네덜란드로 밀반입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2020년 프로메스가 공범자들의 도움으로 벨기에 앤트워프 항구를 통해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로 1,363kg의 코카인을 운송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추정했다. 프로메스의 변호인은 검사가 프로메스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고 프로메스는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50경기 출전한 32세의 이 선수는 네덜란드 경찰에 체포될 것을 우려해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현재 프로메스에 대한 국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며 그는 아직까지 러시아로부터 송환되지 않았다. 프로메스는 또 다른 사건에서 목걸이를 도난당한 후 사촌동생을 칼로 찌른 혐의로 18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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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메시 '홍콩 노쇼' 사태, 中 언론 "외부세력 개입 가능성"
    [동포투데이] 아르헨티나의 축구스타 메시는 일요일(4일) 홍콩에서 열린 친선경기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일본 경기에서는 30분간 교체 출전했다. 중국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는 사설을 내고 메시와 인터 마이애미의 해명이 납득할 수 없고, 그 배후에는 정치적 동기가 있고 이벤트 경제를 구축하려는 홍콩을 난처하게 하려는 외부세력의 소행이라는 추측이 많다고 지적했다. 사태의 추이를 볼 때 이 같은 추측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설은 주최 측인 테틀러, 메시 본인과 팀은 홍콩전에 출전하지 않은 이유가 메시의 '부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주최 측이 그동안 그가 출전할 것이라고 주장해 팬들을 속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현장에서 실망한 팬들을 달래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고, 사후 성명에서도 사과 없이 "홍콩에 다시 갈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해 이미 속았다고 느낀 팬들에게 무례함을 더했다. 따라서 메시의 일본 무대 활약에 대한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사설은 또 일부 서방 언론이 이 사건을 이용해 홍콩의 국제적 이미지와 명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콩 특구 정부와 시민들은 극도의 성의와 자제로 파문을 수습했고, 전 과정에서 고도의 문명과 개방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이어 일반적인 친선경기에서 어떤 태도와 경기력을 보여줘야 하는지는 누구나 분명히 알고 있다며 늙지 않는 스타는 없고, 늙지 않는 축구에 대한 사랑만이 있을 뿐, 동기가 무엇이든 스포츠의 취지에서 벗어나는 사람에게는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식적인 배경이 있는 내륙의 유명 인플루언서 KOL 정해후도 글을 통해 "홍콩과 일본에서 확연히 다른 표현으로 볼 때 '어떤 지시'를 받은 듯한 메시의 행위가 "괴이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기사는 홍콩 일각에서 주최 측인 테틀러의 일부 자료를 뒤져 이 조직의 일부 인사들이 외국의 반중국 성향의 조직과 연관되어 있다는 취지로 지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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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홍콩 노쇼’ 메시 “다치진 않았지만 불편했다”
    [동포투데이] 아르헨티나 스타 메시의 홍콩 친선경기 불참으로 많은 팬들과 홍콩 각계 인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메시는 6일 인터 마이애미 일본 투어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다치진 않았지만 불편했다"며 "다시 홍콩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화답했다. 메시는 스페인어로 "정말 운이 없었다. 사타구니를 다쳤다. MRI 검사 결과 부상은 없었지만 여전히 매우 불편했다"고 밝혔다. 메시는 “홍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왔고 뛰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상황이 어려워졌다. 또 한 번 홍콩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메시는 2월 4일 인터 마이애미의 홍콩 올스타 팀과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팬들은 불만을 표시했고, 경기는 야유로 끝났다. 홍콩 특구 정부는 메시의 불참에 대해 '극도의 실망'을 표명하는 성명을 두 차례나 발표했다. 존 리(李家超) 홍콩 특구 행정장관은 6일 “메시가 대중의 기대만큼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며 “홍콩 특구 정부는 여전히 주최 측에 사건 설명을 제대로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 마이애미는 2월 7일 빗셀 고베와 친선경기를 펼친다. 메시는 기자회견에서 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며칠 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훈련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아직 경기에 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훨씬 나아진 느낌이다"라고 답했다. 홍콩 특구 정부 양룬슝(楊润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6일 라디오에 출연해 메시는 홍콩이 아닌 일본에서 뛸 수 있다며 "여러분 모두가 당연히 불쾌하고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 스포츠
    2024-02-06

포토뉴스 검색결과

  • 황금색 거즈 스커트 입은 디리러바 '여신 분위기 물씬'
    디리러바(1992년 6월 3일)는 신장 우루무치 출신으로 중국 여배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으며 상하이연극학원 연기과를 졸업했다. 2013년 첫 TV 시리즈 <아나이한>에 출연했으며, 2015년 TV 시리즈 <다이아몬드 러버>에서 가오웬 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졌다.2017년에는 <삼생삼세십리도화>에 박풍지우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예능 프로그램 <달려라>에 고정 멤버로 합류해 감미롭고 능청스러운 개성으로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맞았다. 2018년에는 드라마 <표량적이혜진>으로 중국 TV 골든이글 어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및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여배우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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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8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 스포츠
    2024-03-27
  • 재즈댄스페스타 유료관객 100% 기염...문예총국제댄스갈라쇼 초청공연 진행
    [동포투데이]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실용무용 김미정 교수의 프로젝트 재즈댄스페스타가 지난 2월 24일 SAC 아트홀에서 티켓 오픈 일주일 만에 전석이 매진되며 유료관객 100% 라는 무용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진율을 기록하였으며 이어 매년 개최되는 2024문예총국제댄스 갈라쇼에 초청되어 다가오는 4월 8일~10일 몽골,중국 무용수들과 함께 국제청소년컨퍼런스홀에서 워크샵을 리드하며 다시한번 뜨거운 앵콜 공연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많은 관객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성료된 재즈댄스페스타(Jazz Dance Festa) vol.1 메모리(Memory)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재즈댄스전공 졸업자 안무가들이 주축이 되어 제작된 첫 번째 재즈댄스 페스티벌로서 다양성과 생명력 있는 콘텐츠로 호평을 받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행사 1부에서는 재즈댄스 흐름과 방향성을 밝히는 학술세미나와 전수정, 박정은의 팀 나비야의 공연으로 이루어졌고 2부에서는 조혜성, 김수현.박윤지, 김지원, 이유진, 박예나 안무가들의 재즈댄스 작품과 비온더스테이지의 뮤지컬 축하 갈라쇼, 팀 프라우드먼에서 활동 중인 성민경 안무가와 이춘명 서울탄츠스테이션, 양시정 튠댄스컴퍼니, 김미정 나인아트프로젝트 재즈댄스 마스터들의 공연까지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작품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은 공연이다. 김미정 교수는 “뮤지컬 시장의 확대와 K-pop의 글로벌화 등 대중문화예술의 발전으로 실용무용의 위치가 높아지고 있고 재즈댄스 움직임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안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재즈댄스 공연이 더욱 활성화되어 국내,해외 재즈댄스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재즈댄스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교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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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2024-03-11
  • 광저우 리신샤 대교 붕괴...5명 사망
    [동포투데이] 22일 05시 30분경 컨테이너선 한 척이 포산 남해에서 광주 남사로 가는 길에 홍치류 수로를 항해하다가 리신샤 대교 교각을 들이받아 2차선 도로인 상판이 무너져 내렸다. 광저우시 해상수색센터는 차량 2대가 바다에 추락했고, 3대가 선박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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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2-22
  •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열린 봄꽃축제
    [동포투데이] 2월 3일부터 4일까지 이틀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용의 해' 봄꽃축제가 열렸다. 행사 기간 동안 지역주민과 관광객들은 다양한 축제용품을 구매하고 용춤, 사자춤 등 중국 민속공연도 즐겼다.(사진/신화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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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24-02-08
  • 고속열차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
    [동포투데이] 최근 중국의 한 고속철도가 춘제 여행의 혼잡 속에서 식당차를 어린이 놀이터로 바꿔 많은 승객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1월 29일 푸젠성 샤먼에서 상하이로 출발하는 G1654 열차는 식당차의 일부를 장난감과 동화책이 제공되고 열차 승무원이 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어린이 놀이터로 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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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24-02-02
  • 류더화,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 선출…대회 현장 공개
    [동포퉤이]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영화인협회(中國電影家協會) 제1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천다오밍이 중국영화인협 주석을 연임하고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가 처음으로 중국영화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류 부주석의 회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을 모았고, '싱다오환구망(星島環球網)'은 그의 대회 참가 사진을 여러 장 단독 입수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류더화는 블랙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포멀한 룩을 연출했다. 그가 투표할 때 웃는 얼굴로 '지나가던' 모자를 쓴 남자가 바로 우징. 류더화는 현장에서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유명 배우 리쉐젠을 부축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차기 중국영화인협회 지도부와 중국 문련 지도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앞줄은 리이 중국문련 당조 서기 등 문련 지도부와 천다오밍 영화인협회 주석, 리쉐젠 전 영화인협회 주석, 부주석이 뒷줄, 류더화가 뒷줄 오른쪽 2번째.
    • 연예·방송
    2024-02-01
  • 쑨이, 핑크색 밀착 드레스와 섹시한 다리로 男心 저격
    • 연예·방송
    2024-01-19
  • 저우쉰·황레이·탕웨이, 드라마타운 행사 참석
    [동포투데이] 일부 네티즌이 SNS에 공유한 장시 후이창 드라마타운 개막식 영상과 사진에는 행사에 참가한 황레이(黄磊), 저우쉰(周迅), 탕웨이(汤唯) 등 모습이 담겼다. 황레이는 검은색 슈트 차림으로 등장했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어 산뜻해 보였다. 저우쉰은 프린트된 레깅스에 블랙 재킷과 네이비 컬러의 와이드 팬츠를 매치해 동양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멋을 뽐냈다. 탕웨이는 검은색 이너에 말차녹색 재킷과 카키색 바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캐주얼한 모습을 연출했다. 황레이, 저우쉰, 탕웨이 등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팬들이 와서 쪼그려 앉아 기다렸고, 이들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이들 또한 팬들의 호명에 일일이 화답하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저우쉰이 등장했을 때, 그녀는 마침 동료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팬들의 호명에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탕웨이는 무대에 등장하자 팬들에게 직접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행사 기간 동안 황레이, 저우쉰, 탕웨이는 주최 측의 안내하에 행사장을 방문하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많은 참석자들은 저우쉰과 탕웨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우쉰이 정말 말랐지만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탕웨이는 마른 체형이지만 키가 170cm가 넘는 큰 키가 눈에 띄고 기질도 좋아 보였고 웃으면 목춘풍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고 한다.
    • 연예·방송
    2024-01-07
  • 신화통신 선정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
    [동포투데이] 신화통신이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1. 막스 베르스타펜(네덜란드, 男 26세, 스포츠카) 2023시즌 포뮬러원 챔피언십(F1)이 마무리되는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레드불 레이싱팀의 베르스타펜이 폴포지션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올해 22개 대회에서 21차례 포디움에 오르며 19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F1 시즌 승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서 지난 10월 카타르 그랑프리에서는 올해의 드라이버 종합 우승을 일찌감치 차지한 바 있은 베르스타펜이다, 이번 우승은 그의 3회 연속이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레드불 레이싱의 네덜란드 선수인 막스 베르스타펜이 세계 포뮬러 원 챔피언십(F1) 바레인 그랑프리 본선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2. 아이타나 본마티, (스페인, 女 25세, 축구) 본마티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에서 팀메이트들과 함께 미드필드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사상 첫 우승컵을 안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지난 10월에 열린 2023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여자 골든글로브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사진은 지난 8월 20일 스페인 대표팀 아이타나 본마티가 2023년 여자축구 월드컵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3.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男 28세, 농구) 2022∼2023시즌 메이저리그(NBA)에서 덴버 너기츠를 창단 첫 종합 우승컵으로 이끈 세르비아 출신의 미드필더 요키치는 파이널 MVP에 개인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 MVP로 3연속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시즌 평균 24.5점, 11.8개의 리바운드, 9.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정상을 지켰다. 지난 6월 12일, 덴버 너기츠의 니콜라 요키치(전좌)가 2022-2023 시즌 NBA 파이널 MVP로 선정(사진)되었다. 4. 시몬 바일스(미국, 女 26세, 체조) 미국 체조선수 바일스가 심리적 문제로 도쿄올림픽에서 리타이어하는 파란을 겪은 뒤 2023년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 8월, 그는 전미선수권대회에서 사상 8번째로 여자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년 만에 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6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26세의 바일스는 체조 역사상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34개)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사진은 지난 10월 8일, 미국 선수 사이먼 바일스가 2023년 체조 세계선수권 평균대 시상에 나서는 모습이다. 5. 미카엘라 시플린(미국, 女 28세, 스키) 2022-2023 눈시즌에는 미국의 스키선수 시플린이 알파인스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쾰른플라츠에서 열린 예선에서 여자 그랜드슬램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83승으로 월드컵 최다 여자 알파인스키 선수가 되었고,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이를 88경기로 경신하며 스웨덴 남자선수 스텐마르크의 86경기를 제치고 월드컵 역사상 최다 우승을 차지하였다. 사진은 미국 선수 미카엘라 시플린이 2023년 1월 4일 자그레브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회전 경기에서의 모습이다. 6. 켈빈 킵툼(케냐, 男 24세, 육상) 2023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킵탐은 2시간 0분 35초로 완주하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공식 경기에서 2시간 1분을 돌파한 최초의 마라톤 선수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우승 기록은 케냐 명인 킵초그가 세운 2시간 1분 9초의 전 세계 기록을 34초나 뛰어넘었다. 사진은 지난 4월 23일 케냐의 캘빈 킵툼이 런던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7. 케일리 맥커운 (호주, 女 22세, 수영) 호주의 명장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0, 100m, 200m 배영 우승을 석권하면서 중국의친하이양(覃海洋)과 함께 같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여자 배영 금메달 9개를 석권하고 부다페스트에서는 50m와 100m 배영 결승에서 두 차례 세계 기록을 경신하면서 여자 50m, 100m, 200m 배영 세계 기록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지난 10월에는 세계수영연맹 올해의 여자 수영 선수로 선정되었다. 사진은 지난 7월 29일 호주 선수 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200m 배영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8. 페이스 킵예곤(케냐, 女 29세, 육상) 지난 6월, 두 번의 IAA 다이아몬드 리그에서 킵예곤은 여자 1,500m와 여자 5,000m 세계 기록을 연이어 경신했고, 7월에는 비올림픽 여자 1마일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5,000m 세계 기록은 지난 9월에 에티오피아가 경신했지만 킵예곤이 1년 동안 세 번이나 세계 기록을 깬 것은 아직 보기 드문 일이다. 지난 8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1500m와 5000m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재 세계주니어챔피언, 세계챔피언, 올림픽챔피언, 세계기록 보유자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선수이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케냐의 페이스킵예곤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9.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男 36세, 테니스) 조코비치는 2023년 네 번째 US오픈 우승 이후 통산 24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3관왕인 세리나 윌리엄스를 제치고 오픈 1위 독주 시대를 열었다. 연말에는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2023년 종별 결선에서 7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페더러와 통산 6번의 종별 결선 우승 기록을 깨기도 했다. 2023년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조코비치는 그중 3개의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윔블던 결승에서는 후발주자인 알칼라스에게만 졌다. 그가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이 경기에서 10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세르비아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가 2023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시상식에서의 모습이다. 10. 친하이양(중국, 男 24세, 수영) 지난 7월에 열린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친하이양(覃海洋)이 남자 50, 100m, 200m 평영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사상 최초로 같은 대회에서 평영 3개 종목 금메달을 석권하며 남자 200m 평영 세계기록을 깼다. 2023년에는 청두대학생운동회에서 그는 철물을 따내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MVP를 수상하면서 수영 월드컵에서 월드컵 올해의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23일, 중국 선수 친하이양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023년 세계수영연맹 최우수 남자 선수로 선정된 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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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31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러시아 대외정보국 “프랑스, 우크라이나에 기동부대 파견 준비”
    [동포투데이] 19일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나리슈킨 러시아 대외정보국장은 프랑스가 우크라이나에 약 2,000 명의 군인으로 구성된 기동부대를 파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외정보국은 나레쉬킨의 말을 인용해 "프랑스 현 집권당은 일반 프랑스인들의 죽음에 관심이 없고 장군들의 우려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대외정보국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파견될 기동부대가 편성되고 있으며 첫 단계로, 약 2,000 명의 군인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나레쉬킨은 프랑스군이 러시아군의 최우선 타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 언론은 "프랑스 군부가 우려하는 것은 이 중무장한 부대가 눈에 띄지 않게 우크라이나에 진주시킬 수 없다는 점"이라며 그렇게 되면 이 부대는 러시아군의 우선적이고 합법적인 공격 목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기사는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살해된 프랑스인들의 수가 증가하는 것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외정보국 관계자에 따르면 프랑스는 20세기 후반 알제리 전쟁 이후 프랑스가 해외에서 이런 피해를 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다. 기사는 1월 17일 하루에만 러시아군이 하르코프 인근의 외국인 무장세력 임시 배치 지점을 파괴해 프랑스 시민 수십 명이 사망한 뒤 "우크라이나 분쟁에서 이런 공격이 일상화됐다"지적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군 지도부는 현재 프랑스군 중위급 장교들의 반발을 우려하고 있다. 엘리제궁은 우크라이나에서 사망한 프랑스인의 수가 "심리적으로 중요한 임계치를 넘었다"며 이 수치를 공개하면 시민들의 시위를 촉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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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우크라이나
    2024-03-20
  • 하늘을 나는 중국 자동차, 광저우 도심 상공 횡단
    [동포투데이] 3월 8일 샤오펑후이톈 비행 자동차 여행자 X2가 도심 '티안더 광장-광저우 타워' 지역에서 저고도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여 향후 도심 항공 모빌리티 및 저고도 관광과 같은 저고도 경제 응용 시나리오의 포괄적인 보급을 위한 경험을 제공했다. 이번 비행에서 여행자 X2는 광저우 톈허구의 티안더 광장 A급 오피스 단지에서 수직으로 이륙해 자율주행 모드로 랜드마크인 광저우타워 방향으로 비행하며 광둥성 박물관, 화청 광장, 하이신아시안게임공원 등 광저우의 랜드마크를 횡단했다. 이 비행경로는 향후 도심 항공 교통뿐만 아니라 관상 가치가 높은 저고도 투어 루트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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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중국공산당은 악의 모체? 조선족간부는 악의 실천자? 황당주장
    악의 평범성이란 말이 있는데 독일 유태인 출신 미국 정치철학자가 1963년 '이스라엘 아이히만'이란 책을 출간하면 내놓은 개념인데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가 600만 유태인 학살 당시 나치스 친위대 장교로서 유태인을 수용소에 이송하는 임무를 담당했다. 2차 대전에 끝나자 아이히만이 아르헨티나에 망명 갔는데 1960년 이스라엘 모사드에 체포되었고 이듬해에 재판이 열렸는데 아이히만은 이미지가 아주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고 그는 재판장에서 자신은 상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 한 사람도 직접 죽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무죄다라고 진술했다. 재일조선족 학자가 지난해에 한국에서 '한국인이 모르는 조선족 정체성'이란칼럼을 발표했는데 "조선족간부들은 악의 평범성을 실천하는 모범생들이라고 말했고 조선족 지식인을 얼치기 중국인이라고 공격했는데 같은 조선족으로서 굳이 이렇게 까지 비하하고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이 분의 주장은 너무 항당하다.(김정룡) https://youtu.be/EMQe8mETHps?si=Wg92x3QheDi0zNKA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4-01-13
  • 조선족 어떻게 빨갱이 되었나
    빨갱이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려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왜 조선족이 빨갱이 되었고 또 조선족이 빨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한국사람들이 이해하고 나아가서 조선족이 빨갱이기 때문에 차별하고 거부했던 편견을 버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함께 노력하기를 원하는 입장에서 본 강의를 진행하였음. https://youtu.be/tw2fMhYOBjw?si=p8r6AiD6IsG5RkL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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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3-11-25
  • 홍범도는 한국인인가?
    앞 부분은 방송 프로그램 설명입니다. 뒤 부분은 제1편 입니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홍범도에 대한 이념 논쟁이 심각합니다. 우선 이념논쟁은 시대역행이라는 저의 관점을 피력하고 한국법무부 정책에 따르면 홍범도는 무연고동포일 뿐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저의 이 관점에 대해 찬반양론이 뜨거울 거라 믿습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21
  • 중국인은 왜 만만디인가
    한중일 세 민족성격 비교 한 민족의 성격형성에 있어서 자연지리환경이 결정적인 역할한다. 중국은 황하중하류 지역은 물이 부족하고 수질이 나빠 물을 끓여 마시고 차를 타 마시는 과정이 긴데서 만만디 성격이 형성되었다. 한반도는 산이 많고 물이 좋아 과정이 생략된 민족이고 멋의 민족이다. 일본은 열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절약적이고 섬세하고 정교한 민족이며 대신 츠츠우라우라 고인물 환경에서 정을 나누지 않는 고립된 민족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3-11-19
  • 中 산시성 한 회사 고위 간부, 가정폭력 혐의로 정직 처분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한 남성이 한밤중 자녀 앞에서 아내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광범위한 비난을 받은 후 회사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산시 공항그룹 계열사인 뉴실크로드무역은 회사 한 부서의 부국장인 왕펑페이(王鹏飞)가 가한 가정폭력을 깊이 규탄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18일 성명을 통해 왕씨를 정직 처분하고 징계 감찰부에 넘기기로 결정했으며 왕씨의 아내 병문안을 위해 사람들을 보냈다고 밝혔다. 영상에는 왕씨가 주먹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의 머리를 한동안 계속해서 때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시안 공안당국은 20일 성명을 통해 경찰이 왕씨의 아내로부터 신고를 받고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1차 조사 결과 왕씨는 지난 18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한 후 아내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시성 여성연합회는 여성의 법적 권리와 이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 전체가 여성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형태의 가정 폭력을 근절할 것을 촉구하며 왕씨의 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연합회 측은 또 왕씨의 아내에게 필요한 법률지원과 심리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은 행위의 경중에 따라 행정 또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네티즌들의 강력한 비난을 촉발했다. 시나 웨이보 마이크로 블로그 플랫폼에서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시태그가 18일 밤까지 수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네티즌은 해당 영상을 보고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결혼 생활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하면 부부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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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2
  • ‘얼쑤~좋구나’ 추석 맞이 조선족 민속 문화제
    [동포투데이] 조선족 추석 민속행사 겸 중국·안도 제3회 조선족 민속 문화제가 19일 안도현 장백산 문화엑스포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현 문화관 배우들과 현지 주민들이 '조선족 농악무'를 선보였고 9개 마을 주민들은 줄다리기 등 경연을 벌였다. 씨름, 윷놀이, 투호 등 경연장에서도 관객들이 즐겼고 전통음식 코너에서는 찰떡, 순대, 막걸리 등 전통음식은 관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이밖에 무형문화재 작품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돼 관광객들이 안투 무형문화재의 매력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国润影视航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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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2
  • 헤이룽장, 구조된 동북호랑이 다시 자연으로
    [동포투데이] 중국 국가임업초원국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밀산시의 한마을에 침입했던 동북호랑이가 구조에 성공한 뒤 18일 무링(穆棱) 임업유한공사 시업구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전문가는 동북호랑이가 생리지표가 정상이고 이상행동이나 질병 위험이 없어 자연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적합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야생 동북호랑이를 구조해 풀어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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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8
  • [동영상] 중국·화룡 진달래 국제문화예술축제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5.1 국제 노동절 연휴 첫날 길림(吉林)성 연변(延邊) 조선족 자치주 화룡(和龍)시 서성(西城)진 진달래 마을에서 제12회 진달래 국제문화예술제가 열렸다. 이날 조선족 민속 패션쇼, 전통 씨름, 대형 가무 '고향 진달래' 등 조선족만의 독특한 민속예술 공연이 번갈아 막을 올렸다. 본회장과 분회장에서 열린 '만인 김치 만들기', '백 미터 순대 만들기', '천인 비빔밥' 코너 그리고 '조선족 꽃떡' 등 민속음식 체험부스에는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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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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