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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lobal-MZ 북한인권 서포터즈 영상단’ 모집!!
    [동포투데이] 사단법인 글로벌청소년센터(대표 김수영)는 통일부로부터 ‘Global-MZ 북한인권 서포터즈 영상단 사업’을 위탁받아 실시한다. Global-MZ 북한인권 서포터즈 영상단 사업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관심과 공감대가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 청년·대학생, 이주배경청소년, 외국인 유학생이 함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실천 프로그램을 통해서 북한인권 개선활동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모집대상 : 서울거주 한국 청년·대학생, 이주배경청소년, 유학생 50명 모집기간 : 5월 15일까지 활동기간 : 2024년 5월 ~ 7월(3개월) 우수 참가자 통일부 장관상 수여 자세한 내용은 Global-MZ 북한인권 서포터즈 영상단 모집 포스터 참고 사단법인 글로벌청소년센터는 한국에 온 이주배경청소년(만 9세∼24세)에게 안정적인 한국사회 정착을 위하여 ▲단계별 한국어 교육 ▲한국 학교 편·입학을 위한 서류 안내 ▲개별 상담을 통한 정착 지원과 개별 사례관리 ▲대입 지원 ▲예체능 교육 등을 통하여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 신청 상담 및 문의 (사)글로벌청소년센터, 02-2201-7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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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4-04-24
  • 블링컨, 상하이 도착...미·중 갈등 여전
    [동포투데이] 4월 24일 오후, 불링컨 미 국무장관은 상하이에 도착해 임기 중 두 번째 중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미·중 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양국 관계 안정을 위협하는 현안이 잇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블링컨은 금요일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베이징으로 이동하기 전에 재계 지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지난 중국 방문(6월) 때처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블링컨의 이번 방문이 양국 간 최근 고위급 접촉으로, 글로벌 무역에서 군사 교류에 이르기까지 실무진과 함께 지난해 초 양국 관계를 역사적 저점까지 끌어내린 공개적인 갈등을 완화시켰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의 도전들은 분명해졌다. 블링컨의 비행기가 상하이에 착륙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미국 상원은 대만과 인도 태평양 지역에 80억 달러를 제공하고 미국에서 TikTok에 대한 전국적인 금지로 이어질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곧 법안에 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블링컨이 중국의 러시아 지원, 미국 관리들이 미국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는 값싼 중국산 제품, 남중국해에서 중국 선박의 공격적인 활동 혐의 등 다양한 문제에 대해 중국 관리들을 압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블링컨은 앞서 소셜미디어 X에 중국 측과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대면 회담을 갖고 대만 지원 문제를 언급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외교 이후, 특히 원조 법안이 통과된 직후에 우리는 대만에서 같은 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이번 방문의 주된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의 초청으로 24일부 26일까지 중국을 방문한다. 중국 외교부 북미대양주국 관계자는 22일 블링컨 장관의 방문 일정을 설명하면서 "미국은 특히 대만·민주·인권·발전권 문제 등에서 중국의 레드라인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최근 대만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잘못된 언행을 단호히 반대하며, 미국 측에 미·중 3개 공동보도문을 준수하고, 대만 무장을 중단하며, 중국의 내정 간섭을 중단하고, 중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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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4
  • 미, 이스라엘 군부대 첫 제재 예정... 네타냐후 “최선 다해 반격”
    [동포투데이] 최근 다수의 미국 언론은 미국 정부가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침해한 이스라엘 방위군 산하 '예후다 대대'를 제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스라엘군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소식에 이스라엘의 모든 정파는 21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일부 언론은 이로 인해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가 더욱 긴장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1일 두 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은 이르면 22일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AP 통신이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어떤 이스라엘 군이 제재를 받게 될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정부와 언론은 대체로 '예후다 대대'로 지목했다. '예후다 대대'는 서안지구에 영구 주둔하는 이스라엘의 초정통파 유대인과 종교적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남성 보병대대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현지 군 수비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AP 통신과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군에 대해 제재를 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인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1일 이스라엘 군에 대한 어떠한 제재에도 "모든 힘을 다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 군에 부과한 제재를 "매우 터무니없다"며 "도덕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극우 강경파인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미국 정부가 "완전히 미쳤다"고 말했고,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 장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제재를 부과하도록 압박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의 일원인 베니 간츠는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에게 결정을 재고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블링컨이 21일 성명에서 간츠와의 대화를 확인했지만 제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좌파 성향의 야이르 라피드 전 이스라엘 총리조차도 문제의 근원은 군대가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군은 제재와 관련해 구체적인 상황은 당분간 알지 못하지만 '예후다 대대'가 제재를 받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결과를 평가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한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 조치를 검토해왔다. 블링컨은 19일 "수일 내에 예상할 수 있다"며 제재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의 제재는 1990년대 연방정부가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외국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도록 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 19일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민에 대한 일련의 제재를 발표했다. '예후다 대대'는 수년 동안 인권 침해 혐의를 받아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최근 사건은 2022년 미국과 팔레스타인 이중 국적을 가진 80대 노인 오마르 아사드가 '예후다 대대'의 한 검문소에서 장시간 구타당하고 감금된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측의 강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우려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조사를 실시했지만 장교 3명에게만 징계를 내렸고 그 누구에게도 형사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예후다 대대'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철수하여 이스라엘 북부에 배치되었다. 이 대대는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서 이스라엘 남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의 접경지역에 파견돼 전투를 벌였다. AP통신은 미국 측의 제재가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평가된 것이지 이번 충돌에서 '예후다 대대'의 행동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충돌로 미국과 이스라엘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이 제재는 양국 간 긴장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이스라엘의 행동을 양국의 심화되는 갈등의 하나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후다 대대'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무기, 군용 차량 및 기타 장비의 공급과 민간 재단의 재정 지원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는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의 "독립적인" 사법 수사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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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4-04-24
  • 말레시아 군 헬기 에어쇼 훈련 중 충돌… 탑승자 10명 전원 사망
    [동포투데이] 말레이시아군은 23일 말레이시아 페락주에서 에어쇼 훈련을 하던 군용 헬기 2대가 충돌해 추락하면서 탑승자 10명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왕립 해군의 성명에 따르면 사고는 페락주의 한 해군 기지에서 발생했다. 이날 오전 에어쇼 훈련을 하던 중 헬기 2대가 충돌해 추락했다. 헬기 한 대에는 7명, 다른 한 대에는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희생자 10명은 신원 확인을 위해 해군기지 병원으로 이송됐다. 모하메드 칼레드 노르딘 말레이시아 국방부 장관은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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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4-23
  • 외신 “미,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 추가 파견 검토”
    [동포투데이]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이 20일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주재 자국 대사관에 군사고문단을 추가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21일 러시아투데이(RT)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군인들은 주로 물류, 미국 무기 인도 감시, 무기 유지 보수 지원 등 "비전투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폴리티코는 미 하원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610억 달러 규모의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 국방부는 지원 패키지에 "방공 및 포병 능력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작전 보안과 병력 보호를 위한 이유"로 키이우에 얼마나 많은 군사 고문단을 파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 문제에 정통한 인사들은 폴리티코에 그 수가 최대 60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새 군사고문들이 미국 대사관 국방협력실에서 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가 작년 여름 역공에 실패하고 최근 외국산 탄약 공급 감소로 피해를 입은 이후 전장에서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전장 상황이 러시아에 약간 유리하게 바뀌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은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인정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새 군사 고문단은 여름에 전투가 격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새로 전달된 장비로 우크라이나 돕는 임무를 맡고 있다.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모스크바는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을 분쟁의 실제 참여자로 간주한다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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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우크라이나
    2024-04-23
  • 블링컨 미 국무장관 방중 임박, 어떤 대화 오갈까
    [동포투데이] 미 국무부가 블링컨 국무장관의 24일부터 26일까지 중국 방문 계획을 발표하자 중국 외교부는 블링컨의 방중을 환영했다. 미국은 현재 블링컨의 중국 방문을 위해 여러모로 준비하고 있다. 지난주 G7 외교장관 회의에 참석한 블링컨은 글로벌 리더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러시아 측에 민군 이중 용도 장비를 공급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그는 중국이 한편으로 유럽 여러 나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냉전 후 유럽 안전에 제일 큰 위협으로 간주되는 러시아를 돕는 건 타당치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 러시아를 문제 삼아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 바이든 정부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산업계와 노조, 정치권은 중국의 전기차, 조선업 등 산업 전반에 있어 무역법 301조에 따른 관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상술한 원인 때문에 블링컨의 이번 중국 방문은 중국 측에 압력을 가하고 훈계를 하는 목적으로 언론 플레이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등 지역 문제에 대한 중국과의 협력 모색도 블링컨의 이번 중국 방문에서 검토할 핵심 문제이다. 또한 미국 측은 펜타닐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의 도움을 바라고 있다. 이는 모두 바이든 정부가 현재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다. 보름 전 중국을 방문한 옐런 재무 장관도 일부 의제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모색하려 했다. 지난 2일 바이든과 시진핑은 전화 통화를 갖고 고위급 외교와 실무 협의를 통해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번 블링컨의 중국 방문에서 어떤 대화를 나눌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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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24-04-23
  • 인도네시아서 열차와 버스 충돌...5명 사망, 15명 부상
    [동포투데이]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주에서 21일 열차와 버스가 충돌해 5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현지 철도 관계자 아자리는 도로와 철도의 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열차와 버스가 거의 동시에 교차로에 진입했고 기관사가 제동을 시도했지만 짧은 거리와 관성으로 인해 두 차량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버스는 약 50m가량 끌려갔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일부가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자리는 "1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4명이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으며 15명이 부상을 입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망자 모두 버스 승객이었고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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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4-22
  • 中 주요도시 82개 중 절반 침몰 중...큰 재난 유발할 수도
    [동포투데이] 19일에 발표된 전국 위성 데이터 연구에 따르면, 중국 주요 도시의 거의 절반이 "보통에서 심각한" 수준의 침하를 겪고 있으며, 특히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홍수 위험에 처해있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에 발표된 논문의 저자는 중국 도시 토지의 45%가 연간 3mm 이상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으며, 도시 토지의 16%가 연간 10mm 이상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지하수위 하락과 건축 환경의 무게로 인해 발생한다. 화남사범대 오주루이가 이끄는 연구팀은 중국의 도시 인구가 이미 9억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국의 땅이 조금만 가라앉아도 도시 생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침강으로 인해 중국은 이미 연간 75억 위안(10억 4천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해안 토지의 거의 4분의 1이 다음 세기 내에 실제로 해수면보다 낮아져 수억 명의 사람들이 더 큰 홍수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의 기후변화 연구 틴달 센터의 로버트 니콜스는 "이는 확실히 중국에게 한두 곳이 아닌 전국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며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인구 1500만 명이 넘는 북방 도시 톈진은 피해가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조사관들은 지난해 '돌발적인 지질재해'로 주민 3000명이 대피한 것을 수자원 고갈과 지열정 건설 탓으로 돌렸다. 중국의 오래된 석탄 생산 지역 중 많은 곳에서도 과잉 채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당국은 종종 땅을 보강하기 위해 무너져가는 광산에 콘크리트를 주입해야 했다. 문제는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월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630만 평방 킬로미터의 토지가 위험에 처해 있다. 인도네시아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 수도 자카르타의 대부분이 해수면보 아래에 있다. 니콜스는 취약한 도시들이 1970년대 지하수 채굴이 금지되기 전 약 5m(16피트) 침하된 도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침하 완화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적응과 제방 건설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이 문제를 겪고 있는 44개 주요 해안 도시 중 30개가 아시아에 있다. 중국의 지반 문제는 지하수면의 붕괴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무게와도 연관되어 있어 이것이 다면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지구 기후 변화가 심화되고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이 문제는 더욱 시급한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과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의 경우, 이는 훨씬 더 큰 재난을 유발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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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24-04-22
  •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2024 KUACE 문예총국제무용콩쿠르 성료
    [동포투데이] 대한민국 문화예술을 선도하고 있는 한국문화예술교육총연합회는 지난 4월6일부터 20일까지 제19회 2024 KUACE 문예총국제무용콩쿠르와 국제무용웍샵을 개최했다. 한국을 비롯한 10개국 참여로 상명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민족무용 부문을 필두로 실용무용,현대무용 발레 경연을 진행했으며 1천명이 넘는 참가자들의 열정은 글로벌 무대의 경쟁력있는 무대로 매년 위상을 높이고 있다. 특히 몽골과 중국 등 해외 참가자는 한류문화체험, 예절교육, 명소탐방을 비롯하여 컨템포러리댄스, 발레, K Pop댄스 워크샵과 무용공연관람 등 한국문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체감하며 피날레 갈라쇼 까지 어느해 보다 뜻깊은 프로그램으로 무용경연 축제의 장으로 성료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장유리교수는 참가자들의 기량이 해가 거듭할수록 훌륭한 무대를 만들고 한국무용계의 발전과 위상은 간접적 문화사절단 역할을 넘어 문화 공공외교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전하며 훌륭한 무대를 펼친 국내, 해외 참가자들에게 애정과 격려를 보냈다. 또한 2025년에는 더욱 확대된 스칼라쉽으로 무용인 후학 지원을 하겠다고 전했다. 장학금이 수여되는 각 부문별 그랑프리는 다음과 같다. ▲전 부문 Grand Prize - 종합대상 에스닉댄스 일반부 –BATCHULUUN ERDENEBAYAR(바트촐롱 에르덴바야르-몽골국립예술단) ▲전 부문 Semi Grand Prize – 종합 차상 발레 클래식 – Tian Shisha ( Beijing Normal University3) ▲현대무용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컨템포러리 댄스 창작 고진경 – 덕원중학교3 ▲ 발레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발레 클래식 – 에스메랄다 염다연-고등부 ▲ 대학.일반부 전 부문 Grand Prize (공동대상) 발레 클래식 조서현 - 일반부 / 발레 클래식 안재은 (경희대학교3) ▲ 고등부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컨템포러리 댄스 창작 강희수 – 덕원여자고등학교2 ▲ 중등부 전 부문 Grand Prize (공동대상) 에스닉댄스 창작 – 한지호 - 국립국악중학교3 발레 클래식 서은율 - 선화예술중학교3 컨템포러리 댄스 창작 – 백윤아 - 신월중학교1 ▲초등부 전 부문 Grand Prize (공동대상) 발레 창작 – 정예린 - 여울초등학교4 발레 클래식 – 정훤의 - 서울대영초등학교6 ▲유치부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발레 창작 – 봄날의 피크닉 이시현 ▲실용무용 전 부문 Grand Prize (대상) 코레오(Choreography ) - 민지우외 18인 중등부 Group – 아라댄스아카데미 ▲실용무용 초등부 전부문 Grand Prize (대상) K-Pop댄스 Group- Hogjiltei alialagch – 어서흐이래뒤 (몽골) ▲2024 최고작품상 에스닉댄스 group : 다시:어울림(Harmony) - 청심국제고등학교 실용무용 group : 스트릿댄스 - Tesrelt - 몽골 컨템포러리댄스 group - 9회말 투아웃 - 최효진무용학원 발레 group - 백조의 호수 3막 중 pas de six – 발레 숲 팀이 수상했으며 본상 외 기관장 상을 비롯한 특별상에 예원학교 민시유, 중앙대학교 마창성, 다나에스아이 리스킨드지아, 중국난징대학교 JIANGL luy, 명덕여중 정가은, 한강여중 신아린, 일반부 변현정 등 22명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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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美 고위급 잇따른 방중... 속내는?
    [동포투데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4월 23일 10개월 만에 중국에 방문한다. 지난 4월 4일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중국 방문했다. 이는 올해 미국 측 고위 당국자의 첫 중국 방문이었다. 지난 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년 8개월 만에 전화 통화에서 협력을 논의했으며 그 후 미국 측 고위 당국자들의 중국 방문이 잦아지고 있다. 미국 측 중국 방문 행위 원인은 아래와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첫째, 미중 양국은 관계 완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는 미중 외교관계 수립 45주년 되는 해이다. 특히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대중국 디커플링에 대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디커플링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세계 1위와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세계 경제의 비율과 기여율 모두 40%가 넘는다. 이 두 나라는 세계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두 나라 간의 지속 가능한 소통 채널 유지는 관계 완화의 첫걸음으로 간주된다. 둘째, 미국 경제는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인플레이션, 부채한도, 은행 부도 등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치면서 달러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있다. 미국은 중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중국의 거대한 시장과 자원을 활용해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받으려 한다. 2월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7750억 달러로 한 달 전보다 227억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미국 채권 보유 변화 움직임이 급격한 지정학적 변화 및 미국과 불안정한 관계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셋째, 미국은 중국의 태도를 탐지하려고 한다. 미국은 대만해, 남중국해, 인권 문제 등에서 중국에 대해 군사적 도발과 제재까지 가하는 등 강경한 자세를 취해 왔다. 이는 미중 관계의 심각한 악화로 이어졌고, 양국 간의 불신과 대립을 증가시켰다. 특히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의 추진으로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고위 관계자들을 중국에 파견해 중국의 양보나 타협을 이끌어내 자국의 전략과 이익을 조정할 수 있도록 중국의 속내와 반응을 떠보려 하고 있다. 넷째,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을 위해 더 많은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미국 측 고위 관계자의 중국 방문은 미국 당국이 11월 대선을 앞두고 중국과의 관계를 큰 파열음 없이 관리하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성적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사태, 한반도 긴장 격화로 비판을 받고 있는 만큼 바이든 정부는 미중 관계를 중요한 성적표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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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메리카
    202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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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조선족 가수·음악 프로듀서 김지문
    [동포투데이 김나래 기자] 중화권의 많은 가수 중 편곡과 가창력을 겸비한 조선족 음악 프로듀서가 있다. 그가 바로 김지문(金志文)이다. 1982년생인 김지문은 지린(吉林)시 출신으로 지린예술학원(吉林藝術學院)을 졸업하고 현재 가수,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김지문은 초·중학교 시절 학급의 문예위원으로 활동하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우상인 주화건·두덕위·유징칭의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중학교 졸업이 다가오자 김지문은 어머니의 뜻과 달리 지린예술학원에 진학해 노래를 배웠다. 졸업 후에는 술집에서 기타도 치고 노래도 부르면서 프로 가수에 못지않은 실력을 쌓았다는 후문이다. 김지문은 2002년부터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하면서 많은 인기 클래식을 만들었다. 2006년 그가 작곡한 원 월드 원 드림(One World One Dream)이 올림픽 노래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2007년 첫 싱글 앨범 '형제 소문'을 시작으로 2009년에는 두 번째 싱글 앨범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외로워’ 그리고 2010년에는 앨범 ‘도문 강 원’을 발표했다. 2012년에는 저장위성TV의 노래 오디션 프로그램 ‘중국의 고운 목소리’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사랑에 미쳐’를 각색해 불러 전국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 후 2013년 선전위성TV 음악 콩쿠르 프로그램인 ‘중국음초’(中國音超)에 출연해 ‘음초가왕’(音超歌王) 칭호를 수여받은 그는 같은 해 음악선봉차트 올해의 선두 싱어송라이터상을 수상하였으며 2014년에는 앨범 ‘꿈·집’으로 제18회 중화권 차트에서 신인 음악 프로듀서상을 수상했다. 김지문은 탄탄한 편곡과 창작 능력으로 2017년 노래 ‘옛날 일은 되새길 수밖에 없다’ ‘중국 처녀’로 각각 MTV 글로벌 중화음악축제 최우수 편곡상, 베스트 10 금곡상을 수상했다. 올해에는 싱글 ‘겨울철 지린에서 눈 놀이’를 시작으로 저장위성TV 음악프로그램 ‘천혜의 목소리 시즌2’ 그리고 후베이위성TV 춘제롄환야회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연예계의 한 축을 담당해 오고 있다.
    • 연예·방송
    2021-06-04
  • 中 '외교의 꽃' 미녀 대변인 - 화춘영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의 외교부는 긴장하고도 엄숙하며 또한 민감한 부문이다. 이러한 부문에서 근무한다는 건 분명 영광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자랑스럽기에 앞서 자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기민하고도 지혜로워야 하며 웅변능력 또한 비범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래에 소개되는 여성은 바로 웬간한 남자들도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는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의 일꾼, 그것도 외교부 대변인이다.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쩍하면 넘겨짚기를 잘하는 중외 기자들 앞에서 때로는 침착하게, 때로는 날카롭고도 당당하게 또한 어떤 경우에는 상냥하고도 겸허하게 기자들 앞에 나서는 그녀 - 화춘영(华春莹)은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1970년 화춘영은 중국 강소 회안의 한 간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화춘영은 별로 간부가정의 자녀라는 우월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자랐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단발머리를 하기 좋아했으며 늘 얼굴에 웃음기를 담고 있는 친절하고도 예의가 바른 소녀였다. 중학교 시절, 화춘영은 학습 성적이 돌출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남한테 뒤지는 편도 아니었다. 당시 그녀는 남자애들이 즐기는 축구운동을 좋아했으며 고중입시를 앞두고는 여학생들을 이끌고 남녀 축구 대 항전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고나 할까? 선생님과 동창생들의 눈에는 조용하고도 기타 사심이 없어 보이는 화춘영 - 그한테는 조용한 가운데 강인한 일면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그녀는 대학교 숙소의 ‘영춘화(迎春花)’로 불렸지만 대학교 4년간 그녀는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극소수 여학생 중의 한명이었다. 이렇게 아련한 것 같으면서도 강한 일면이 있고 또한 다른 측면으로 보면 부드럽기도 한 것이 화춘영의 과거의 주소라면 후에 외교관이 된 다음의 화춘영은 강자 앞에서는 약하지 않고 약자 앞에서는 또한 절대 강하지 않는 것이 외교부 대변인으로서의 현주소였다. 2012년 11월 19일, 당시 42세가 되는 화춘영이 중국외교부 브리핑 장소에 나타나자 장내는 삽시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발머리 미녀가 외교부 대변인의 신분으로 나섰으니 말이었다. “드디어 중국에도 미녀외교관이 나타났군 그래.” “그래그래, 미녀이면서도 어딘가 카리스마가 있어” 한편 화춘영의 언변과 실력에 대해 시험대에 올려 보려는 외신 기자들도 없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엉뚱한 속셈을 가졌던 외신기자들도 눈알이 동그랗게 되면서 잠잠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날카롭다가도 다시 친절한 화춘영의 언어실력은 장내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긴 화춘영은 외교부에 갓 입문한 햇내기가 아니라 이미 거의 20년간 외교전선에서 단련된 외교능수라는 것을 외신기자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사실 화춘영이 중국 외교부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3년이었다. 외교부에 입문한 화춘영은 선후로 서 유럽사(司) 과원, 주 싱가포르 대사관 수행인원, 3등비서, 외교부 서 유럽사 3등비서, 부처장, 주 유럽연맹 사절단 2등비서, 1등비서, 참사관, 외교부 유럽사 참사관 등 직에 머물다가 2012년 강유(姜瑜)에 이어 중국 외교부 보도 사 부사장으로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중국외교부 대변인으로 부임, 중국외교부가 대변인 제도를 건립한 이래 모두 5명의 여성대변인이 탄생했다. 역대 중국외교부의 여성대변인들로는 각각 이금화(李金华), 범혜연(范慧娟), 장계월(章启月), 강유와 화춘영이었다. 알려진데 의하면 화춘영이 외교사업에 종사한 28년 간 유럽사 및 유럽, 아시아 지구에서 근무하면서 비교적 풍부한 외교경험과 양호한 소통능력을 키웠으며 외교부 대변인으로 되기에 매우 합당한 인선이 되었던 것이다. 화춘영은 늘 “나는 최선을 다 하여 모든 이들을 도와 적시 적이고 정확하며 또한 전면 적으로 중국의 외교정책을 요해하게 하는 동시에 나 역시 모든 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평등하게 교류하며 그리고 양호하게 합작하는 것으로 중국과 세계와의 상호 요해와 이해, 신입과 합작을 추진하기에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군 했다고 한다. 화춘영은 진실로 그렇게 했다. 2012년 11월 16일, 화춘영은 중국외교부에서 개최한 정례브리핑이 거의 마무리가 될 무렵에 중국외교부의 신임대변인의 신임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그 때 그녀는 외교부의 제 27번째 대변인이자 5 번째 여성대변이기도 했다. 당시 자기의 어깨위의 책임이 중대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화춘영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는 한창 심각한 조정 시기에 있으므로 중국은 세계를 더욱 많이 요해해야 하며 세계 또한 중국을 더욱 많이 요해해야 한다고 표했다. 이어 11월 19일, 화춘영은 정식으로 중국외교부의 정례 브리핑을 주최, 브리핑에서 화춘영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연임 후 첫 출국방문이 아시아태평양 지구를 선택한 것과 중국공산당 제 18 차 당 대회 이래의 중국의 외교정책 등에 관한 기자들의 물음에 답하면서 논리성이 강한 그녀의 답변과 막힘없는 화술구사는 모든 기자들의 찬탄을 자아내면서 중국의 젊은 여 대변인의 매력과 풍격을 충분히 과시하였다. 그 이튿날 중국 홍콩의 한 매체는 당시의 정경을 두고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1월 19일 오후, 외교부의 신임대변인 화춘영이 첫 브리핑을 주최, 20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화춘영은 선후로 10명에 달하는 중외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주었다. 중일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구 전략 및 향후 어떻게 매체를 대하겠는가 하는 것을 두고 경외 기자들은 불쑥불쑥 ‘도전적’이고도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으나 신임대변인 화춘영은 기민하고도 자유자재로, 개방되고도 솔직하게 답했으며 난감한 문제들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대범하고도 상세하게 답변하여 모든 기자들의 긍정을 받았다. 브리핑이 끝난 후 화춘영은 웃음기가 어린 얼굴을 하고는 처음으로 발언대에 올라 기자들한테 진심으로 소통하고 평등하게 교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뒤로부터 중국과 외국의 매체의 기사들에는 중국외교부 대변인 화춘영이란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면서 그 이름은 지구촌 방방곳곳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화춘영은 외교부 대변인이란 본직에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이어 2020년 1월 1일, ‘중국부녀’ 편집부로부터 ‘2019년 10대 여성인물’로 평선 되었고 2020년 9월 8일에는 전국 코로나 19 대응 선진개인 및 전국 우수 공산당원으로 선정 되기도 했다. 현재 화춘영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보도사(司) 사장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 사람들
    2020-10-20
  • 中 성악계의 살아있는 전설의 조선족 원로가수 방초선
    ▲전설의 조선족 원로가수 방초선. [동포투데이]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베 짜기 노래’,‘연변인민 모주석을 열애하네’,‘붉은 해 변강 비추네’ 등 명곡을 불러 이름을 떨친 원로가수 방초선 선생은 지난 70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국가 1급 성악가인 방초선 선생은 연변에서 북경, 전국, 나아가 전 세계에 이르기까지 높은 실력을 인정받았다. 국무원에서 수여하는 “정부 특별예술가”칭호를 받은 방초선 선생은 “중국 예술가 사전”과 “중외 여성 명인 사전” 등 사전에 약력이 수록될 만큼 전문가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다. 1932년 조선 김책시에서 출생한 방초선은 여덟 살 되던 해에 부모님을 따라 길림성 왕청현으로 이주했다. 마을의 꾀꼴새로 불리던 그는 일본유학을 다녀온 아버지로부터 많은 외국 노래를 배우고 불러 늘 마을 사람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15살 나이의 방초선은 길동군분구 문공단의 선전대원으로 성장하였다. 1949년 연변가무단 전신인 연변문공단이 세워지면서 방초선은 연변문공단에 전근하여 독창 가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초선은 연변가무단에서 화려한 데뷔를 했다. 1957년, 방초선은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차 세계청년연환축제 음악콩쿠르에 참가할 기회를 얻었다. 삐어난 목청과 춤사위로 방초선은 ‘처녀의 노래’로 수백 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은상을 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다. 그 후 방초선 선생은 공장, 광산, 병영, 향촌 그리고 변방의 방방곡곡에 무수한 발자국을 남겼고 열정과 희망을 안고 북경 최고 음악학부에서 성악공부를 계속하였다. 방초선 선생의 음악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분을 말하면 인생 동반자인 남편 왕개평 선생이다. 1975년 방초선 선생은 연변가무단의 저명한 성악가인 남편 왕개평과 함께 중앙방송예술단에 전근되어 독창 가수와 성악교원으로 활동 분야를 넓혀갔다. 이 기간 방초선 선생은 북경, 연길 등 지역에서 개인 독창음악회를 가졌고 성악가인 남편 왕개평과 함께 북경, 상해, 남경, 중경, 연길, 카나다, 미국, 일본, 한국 등 국내외를 순회하면서 80차의 음악회를 개최했다. 많은 사람들은 방초선 선생을 보고 선천적으로 좋은 목청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그는 한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며 목소리 가꾸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방초선 선생은 음악은 자신 인생의 전부라고 말한다. 무대위에서 빛났던 그의 70여 년의 예술 생애를 돌이켜보면 실로 수많은 아름다운 멜로디들이 그의 고운 목청을 타고 ‘명곡’으로 탄생했다.
    • 사람들
    2020-09-20
  • 12년의 젊음을 과외교육에 바친 오미화 씨
    [동포투데이] 오미화 교원(41세)은 조선족 교육사업에 대한 불타는 신념과 의력으로 장장 12년동안 과외교육에 몸과 마음을 이바지하고 있다. 1997년 9월에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대학사범분원 한어문(중국어)전업을 졸업한 오미화는 선후로 왕청림업국 조선족학교에서 4년, 한국에서 중국어 강사로 6년동안 활약하면서 번 돈으로 연변자치주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대한 일편단심과 전력투구로 풍성한 성과를 거두어 학부모와 어린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지니고 있다. ▲왕청현좋은미래과외학습센터 오미화 교원 과외학습센터를 설립한 첫해에 40여 명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중 양부모가 없는 어린이 8명, 홀부모어린이 10명, 한족 어린이 9명으로서 한족, 결손가정 어린이는 인수의 65%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결손가정 어린이들은 친척 집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슬하에서 유치원에 다니고 있으며 성격이 활달하지 못하고 소극적이며 우울하고 괴벽했다. 오미화는 결손가정 어린이들에게 늘 사랑으로 어린이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하나하나 녹여주고 부모들이 외국으로 돈벌이를 가고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늘 집에 가 거짓말을 하여 노인이 교원을 오해하게 하였고 노인이 간혹 어린이의 필기장을 들여다보고는 전후를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담임교원만 탓했다. 오미화는 노인과 어린이에 대한 고까운 생각보다 우선 어린이가 거짓말을 하게 된 원인부터 찾기에 노력했으며 정황을 상세히 요해한 후에는 평소보다 더 따뜻한 사랑을 몰 부었다. 차츰 우울하던 어린이는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선생님을 잘 따르고 학급활동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였으며 하루는 “우리 엄마가 한국에서 오면 꼭 선생님께 고운 옷을 사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 오미화의 마음을 울려놓기도 하였다. 오미화는 어린이들의 정황을 요해하기 위해 늘 여유시간을 이용해 어린이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린이들 특히 결손가정 어린이들의 심리를 장악하였으며 자그마한 우점이라고 보이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신심과 용기를 북돋우어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한 남자애는 주먹이 세고 남의 음식을 잘 빼앗아먹고 수업시간 규율을 지키지 않았으며 다른 애들이 벗어놓은 신을 변기에 처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어린이는 반급 청소와 좋은 일을 하는 습관도 있어 오미화는 이와 같은 우점을 칭찬하면서 남을 때리고 욕하는 나쁜 습관만 고치면 반장감이라고 하였더니 그 애는 신심과 용기가 생겨 나쁜 습관을 차차 고치기 시작하였다. 그 어린이가 된 감기에 걸려 학습센터에 오지 못했을 때에도 오미화는 학급 어린이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담은 과일 구럭을 들고 찾아가 집단의 사랑을 느끼게 하였다. 하여 이 어린이는 학습과 생활면에서 많은 진보를 가져왔으며 소학교에 입학해서는 이제껏 반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오미화의 엄마와도 같은 사랑에 받들려 많은 결손가정 어린이들이 제 궤도에 들어섰고 마음껏 배움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어린이들의 매 하나의 성적과 진보에 학부모들은 너무도 고마워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오미화의 좋은미래강습과외학습센터는 처음의 50평방미터로부터 300평방미터로 늘어나고 어린이도 처음의 50명으로부터 지금의 150명으로 늘어났으며 교원대오도 처음의 2명으로부터 지금은 10명으로 늘어났다. 이외에도 오미화는 빈곤 어린이들의 학비는 면제해 주거나 1년에 300, 500위안씩 면제해 주어 학부모들의 뒷근심을 덜어주고 있으며 왕청현회중아동애심협회, 왕청현애심어머니협회에도 해마다 500, 1000위안씩 기부하고 있다. 오미화는“학부모들의 인정을 받을 때마다 교원 사업의 신성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고 학부모들의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백배로, 천배로 되는 힘을 얻게 된다”라고 하면서 오늘도 후대 양성사업에 혼신을 다 바쳐가고 있다.
    • 사람들
    2020-07-11

오피니언 검색결과

  • 中, 유엔 평화수호 행동의 관건역량으로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은 30년 넘게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면서 유엔 평화 유지부대의 핵심 역량으로 됐으며 말리, 콩고 등 임무 수행 지역에서도 그랬고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 시에도 중국의 평화유지군은 ‘대국의 담당역할과 세계 평화 수호’란 초심과 사명감을 안고 실제 행동으로 전란 충돌 지역 주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평화유지군 신분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 ● 짱민(张 珉) 2020년 9월, 중국 티베트 군구가 처음으로 유엔 평화유지 임무에 참가하면서 우리 일행 43명은 중국평화유지군 제24진으로 구성되어 콩고로 파견됐다. 당시 콩고는 에볼라, 말라리아 등 전염성 질병과 코로나19 확진자도 계속 늘고 있어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어려움과 안전 위험는 유례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의 임무수행 지역에는 여러 개 나라에서 온 4000여 명의 평화유지군들이 의료 보장 업무를 담당하였고 코로나19 검사와 백신 접종 등은 우리가 담당했다. 임무수행 지역인 부카부에서 중국 2급 병원을 인수하는 첫날부터 우리는 국내에서 쌓은 성숙한 방역 경험을 활용하였다. 대원들은 코로나19 방역 요구에 따라 군복을 방호복 안에 입고 파란 헬멧 대신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는 매일 진료를 진행했다. 옷이 땀에 흠뻑 젖었고 신체적 및 심리적 압박감이 컸지만 각국 평화유지군의 생명을 건지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시작은 순리롭지 못했다. 당시 “중국 2급 병원의 진료 방역이 과도하게 까다롭다”는 환자가 있었다. 우리가 방역기간 동안 2급 방역 기준을 적용해 분리와 직접 진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의료 분대의 책임자인 나는 신속하게 회의를 소집하여 연구하는 한편 모든 방문환자와 소통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급 의료진에게 2급 방역 진료의 필요성을 주동적으로 설명하고 유엔 콩고 안정화 특파단(이하 유엔 콩고 안정단으로 약칭)에서 조직한 각종 학술 세미나에서 중국의 성공적인 방역 경험을 소개했으며 또 별도의 격리 진료실을 신설해 환자들이 더 나은 진료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하였다. 우리는 창고에서 이미 준비된 야전 텐트 몇 개를 갖고 와서는 병원 입구에 80㎡ 면적에 가까운 독립 진료실을 설치하였다. 진료기기, 물자 등은 제한적이지만 방역상 우리의 일상적인 진료 수요를 거의 충족시켰다. 그 후 환자들은 점차 우리가 진료하는 과정에서 취한 2급 방역 조치와 과학적인 태도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표하였다. 그리고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한테도 교차 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유엔 콩고 안정단 각급 지도자들도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해 업무 지도를 하면서 우리의 행동과 성과에 대해 “중국 2급 병원의 방역 진료 업무는 완전히 방역 수요에 부합하며 환자나 의료진 모두에게도 최선의 보호”라고 강조했다. 임무는 하나에 이어서 또 생기고 도전 역시 하나에 이어서 재차 하게 된다. 2020년 10월 26일, 유엔이 전 세계 평화유지 임무지역에 바이러스 핵산검사 실험실을 18개 추가하기로 결정하자 우리는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그 임무를 원만히 수행했다. 당초 상급부서는 방 하나와 테이블 하나만 구하면 측정작업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교차 감염을 피할 수 있는 전문 핵산검사 실험실을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검사결과가 정확하고 검사인원의 안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조건 하에서 완벽한 실험실을 건설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대원들을 이끌고 유엔의 코로나19 측정 표준 조작 수첩과 국내 핵산측정 실험실 건설 표준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뒤 국내에 있는 군사 과학원, 해방군 총병원 등 의료부문의 전문가들과 원격 화상연계를 통해 실험실 건설의 안전성을 논의하는 등 학습에 매진하였으며 한차례 또 한차례의 노력을 거쳐 마침내 기능을 모두 갖춘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핵산검사 실험실을 마침내 완공하였다. 12월 12일, 브라이트 당시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집무실 주임이 중국의 2급 병원을 찾아왔다. 그가 코로나19 핵산검사 실험실 건설과 의료사업 진행상황을 둘러본 것은 이 실험실이 공식적으로 평화유지군 의료 분대의 사용관리로 이관됐음을 보여줬다. 이 실험실은 우리가 철수한 뒤에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임무 구역의 코로나19 발생 예방과 통제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유엔 의료 분야를 담당한 인사도 특별히 우리 의료분대에 찾아 “중국 군의관들 참 훌륭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매번 급하고 위험천만한 임무에 봉착하면 우리 의료 분대는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되었고 번마다 당원들이 앞장서 난제를 해결하곤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분자생물학 조작 프로그램을 전개한 검험사 라오제(罗杰), 정형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수술을 마친 외과 의사인 허얜린(贺焱林)…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유엔 평화유지군 의료진의 진료를 받고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현지 아이들을 보면 우리는 평화유지군 신분에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유엔 콩고 안정단 남전구 평화유지군 합동 수훈식에서 유엔 콩고 안정단 사령관 마르코스 데사 알폰소 코스타 중장은 “중국 의료 분대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평화유지군 장병들을 위한 친절 전문의료 서비스를 고집하면서 아낌없는 봉사정신과 최고의 직업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티베트 고원에서 콩고 강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중책을 맡고 용감하게 분투하는 정신을 발휘했으며 코로나19 사태와 현지 불안에 직면해 중국의 방역 경험을 평화유지군으로 적절하게 확산시키면서 인심인술(仁心仁术)로 각국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 주었다. (저자는 중국 24진 콩고 평화유지군 의료 분대장.)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2-05
  • 中, 30여 년간 산속에서 숨어 지내다 숨진 女매국노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이 근 현대에 들어서면서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일본 침략자들이 중국 전체를 차지하려고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31년 9.18사변이 발발한 후부터 일본군은 동북 3성을 교두보로 전반 중국 영토를 향해 침략 확장에 나섰다. 이러자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수많은 지사들이 끊임없이 용솟음쳐 나왔다. 그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생명의 최후 순간까지 일제와 싸웠다. 하지만 일본군의 위협과 회유에 의한 매국노들도 적지않다. 이들 매국노들은 자신의 생명과 이익을 위해 조국과 동포를 팔아 먹었으며 결과는 아주 수치스러운 끝장을 보기도 했다. 당시 중국 내의 매국노는 적지 않았다. 크게는 위 국민정부를 세운 왕정위(汪精卫)였고 작게는 보통의 촌락의 악질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라와 민족의 역적들이었다. 그들은 보기도 구차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동포와 형제의 목숨을 마구 팔아 먹었지만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동맹군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이들 매국노들은 그 대부분이 응분의 처벌을 받았다. 그중 한 미모의 여 매국노가 있었다. 그녀의 경력은 비교적 기구했다. 한 사냥꾼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산속에 숨어 살았다가 숨졌으니 말이다. 중국 동북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 장기(张琦)는 당시의 동북 군벌 장작림(张作霖)의 가문과 약간의 연계가 있었다가 장작림이 일본군에 의해 음해된 후 이는 그녀의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쳐 명문가도 살기가 어렵게 됐다. 그렇게 되자 장기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친구였던 장경혜(张景惠)를 찾아가게 되었다. 장경혜는 자기를 찾아온 그녀를 잘 대해 주었다. 시간이 흐른 뒤 두 사람은 연인으로 되었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장경혜는 일본군의 앞잡이로 되었다. 그러나 장기는 장경혜의 선택에 반대하지 않았다. 반면 장경혜의 권유에 꺼리낌 없이 일본군 진영에 가담하였으며 결국 매국노가 되고 말았다. 일본군이 동북을 점령한 10여 년 동안 일본군을 위해 동분서주했던 그녀는 처음에는 어딘가 양심가책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그 횟수가 잦아짐에 따라 매국 매족의 일에 익숙해졌다. 그 댓가로 장경혜와 장기 두 사람 모두 일본군 밑에서 상금도 조금씩 받았고 근사한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본군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면서 그들은 정부와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장경혜는 일본군이 중국 대륙에서 철수 한 뒤 현지 정부에 의해 나포되었지만 장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시 그녀가 어디로 도망갔는지는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장기는 자신이 그동안 한 짓거리들은 하늘이 천인공노할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자기의 얼굴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면 자신은 곧 죽는 길밖에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고민 중 그녀는 다른 도시로는 도망가지 않고 황량하고 인적기가 드문 산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당시 현지 정부와 주민들은 그녀의 행방을 한참 동안 추적했만 결국은 실패하고 그녀에 대한 수색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때로부터 30년이 흐른 뒤의 어느 날 산속으로 사냥하려고 들어온 한 사냥꾼이 장기의 거처를 발견하였지만 그 때는 그녀가 이미 죽은 뒤였다. 장기는 산속의 어느 한 동굴 내에 있는 헐망한 침대에서 죽었다. 신고를 받은 현지 공안은 즉각 산속에 있는 그 동굴로 찾아갔으며 장기의 죽음을 확인한 뒤 현장에서 발견된 그녀의 유품들을 정리했다. 장기의 유물 중에는 일본군을 위해 일했던 당시의 정경을 담은 사진과 함께 장기 자신이 직접 쓴 일기도 적지 않았다. 그것들을 보노라면 당시 그녀는 말 그대로 의기양양했고 대단했다. 그가 쓴 일기에 담긴 내용에는 허무맹랑한 대목도 여러 곳이 있었다. 원래 집안 형편이 넉넉했던 장기는 의지가 나약했기에 어쩔 수 없이 장경혜한테 찾아가 의탁했고 또한 그와 함께 일본인 대오에 가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일기에는 정의적 심판이 두려워 산속의 깊은 곳에 숨어 있어야 했던 선택에 대한 뉘우침을 전달했다. 30년이라는 긴나긴 세월을 혼자 보내야 했고 음식과 옷가지 등의 부족은 그닥 힘들게 하지 않았지만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것은 끝없는 외로움과 얘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감옥 생활이 무서웠기에 그녀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지내야 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녀한테 있어서 당시의 선택은 확실히 그녀를 후회하게 했다. 그것은 장기, 그녀의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으며 이는 결코 감옥생활보다 편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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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1
  • 中, 유엔 평화수호 행동의 관건역량으로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은 30년 넘게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면서 유엔 평화 유지부대의 핵심 역량으로 됐으며 말리, 콩고 등 임무 수행 지역에서도 그랬고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 시에도 중국의 평화유지군은 ‘대국의 담당역할과 세계 평화 수호’란 초심과 사명감을 안고 실제 행동으로 전란 충돌 지역의 인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본 ‘동포투데이’는 오늘부터 세 번에 나누어 중국 UN 평화유지군의 사적을 시리즈로 싣는다. 중국의 첫 아브예이 평화유지 헬기 분대 ● 주즈친(褚志勤) ‘평화 수리개’의 재 출정 2019년 8월 20일의 아침, 궂은비가 내리는 날씨도 출정 열기를 식히지 못했다. “푸른 헬멧 수리개, 사명 수행, 나는 나의 사명을 저버리지 않고 조국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쟁쟁한 다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는 일-76 항공수송기에 탑승한 뒤 배웅 나온 수장과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으며 모두들 오랫동안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중국인민해방군 제82집단군 모 육군항공여단으로 구성된 중국의 제3진 다르푸르와 행 헬기 분대의 140명 장병들은 평화를 위하여 만리 원정에 올랐다. 우리는 2년여 동안 다르푸르와 압예이에서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수단 정부의 교체와 코로나19의 확산 등을 겪었으며 새로운 지구에 대한 개척 임무의 시련과 도전으로 2회 연속 전체 장병이 유엔으로부터 평화영예훈장을 수상했다. 평화유지란 곧 전쟁터이며 비행기에 올라 이륙하면 곧 전쟁터에 투신하는 것이다. 평화유지부대의 임무지역 수송은 국내 여느 공군 비행훈련과는 달랐다. 기상, 고도와 환경 등을 고려하는 것 외 무장력 회피, 극한 날씨 대비 및 돌발 상황 대처 등 문제도 안고 있다. 2019년 10월 17일, 자링가이에서 중상을 입은 이집트 평화유지 경찰을 데리러 가던 중 우리 비행조는 산악지대의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큰 비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비구름이 형성되기 전에 회항할 수 있도록 임무진행을 앞당겨 실행하기로 합의했다. 그 후 우리가 중상자를 인계받아 수속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자 아니나 다를까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검은 구름이 몰려오면서 항로 앞쪽과 옆쪽의 멀지 않은 곳에서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항인가? 아니면 계속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가? 자링가이로 돌아오면 응급처치가 지연되고 비행을 계속하면 또 어느 정도의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생명이고 임무는 명령이었다. 나는 신속하게 조수석에앉은 사병한테 기상 레이더를 켜고 항로 전방의 구름 양상을 알아내라고 명령했다. 그 뒤 우리는 좁은 구름 사이로 통과할 수 있는 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항선 바꾸기 계산에 들어갔다. 당시 남쪽으로는 비행금지구역이 있었고 북쪽으로는 미라산이 있었다. 나는 조수석 사병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스럽게 항선을 수정하는 한편 구름 사이로 상황을 살피면서 무전기로 항선 바꾸는 정보를 주고받았다. 미구하여 헬리콥터가 하늘의 구름 사이로 더듬거리며 비행하던 중 갑자기 구름이 모였다 사라졌다 하면서 순식간에 강한 소낙비를 내리 쏟았으며 바람에 빗방울이 헬리콥터 창문을 때리면서 앞을 거의 분간할 수 없었다. 나는 즉시 조수더러 기계룸에 들어가 계기마다를 관찰하게 하였으며 그와 함께 헬기 상태를 협동으로 통제했다. 15분 뒤 마침내 헬기가 구름을 뚫고 나가자 파시르 공항이 내려다보였다. 이어서 우리는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고 이어서 중상자를 무사히 우리를 기다리는 의료진에 인계했다. 그 후 무사히 구급차에 실려 가는 중상자를 보며 구급요원이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순간 우리 또한 비가 멎고 하늘이 개인 뒤의 따뜻함을 느꼈다. 다르푸르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기간 동안 우리 헬기 분대는 잇달아 비행을 재개하여 임무 지점을 개척하였으며 그 항로는 총 3598km에 달한다. 그리고 전용기를 이용한 요원 수송, 긴급의료 후송, 낯선 지역에 대한 답사, 여객화물의 배달 등 임무를 90여 회 수행했고 요원 1195명과 화물 40여 톤에 달해 유엔 ․ 아프리카연합으로부터 각종 평화유지 활동을 수행한 ‘벤치마킹 팀(标杆团队)’으로 평가받았으며 전체 장병은 2020년 10월 ‘유엔 평화영예훈장’을 수여받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2559호 결의에 따라 유엔·아프리카연합은 2020년 12월 31일 당지에서의 임무수행을 종료했으며 이로써 UAE는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13년간 지속된 평화유지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바로 이때 우리는 또 새로운 명령을 받았다. 제자리에서 중국의 첫 번째 아브예이 평화유지 헬기 분대를 뽑아 즉각 새로운 임무구역을 개척하라는 것이다. 유엔은 현지에서 군사력 대국끼리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설립했다. 소식을 들은 후 우리 모두가 잇달아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자원하여 새로운 임무지구로 가서 평화유지 임무를 계속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붉은 손도장을 찍은 작전 청원장이 손에 건네졌을 때 나는 그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시 나의 눈앞에는 전화기가 있었고 뒤에서는 조국이 밀어주고 있었다. 새로 구성된 임무분대 86명 장병들이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결의에 우리는 서로서로가 감동했다. 행장을 정비한 우리는 다시 출정하여 새로운 지역으로 떠났다. 이적기간은 폭염우기여서 우리 모두는 함께 건량을 먹으면서 파시르에서의 철거를 완료했다. 그 뒤 100일간 우리는 천리를 넘나들고 지혜를 모아 난관을 돌파하면서 공중회전, 공중수송과 육지운송의 세 가지 방식을 사용, 마침내 86명의 인원, 헬기 2대, 장비 40대, 컨테이너 86개가 아비에이에 도착했다. 이어 우리는 그 어떤 조정도 할 겨를이 없이 바로 새로운 임무구역 건설에 투입되었다. 75명의 당원들은 적극적으로 임무를 받아서는 집을 짓고 길을 닦았으며 다시 파이프라인(管架线)을 매설하고 캠프를 치면서 준비근무를 하였다. 즉 맑은 날의 땀과 비 오는 날의 진흙탕으로 우리는 악전고투를 했던 것이다. 결국 도착 직후에 있은 장비 검증에서 높은 표준으로 1차적으로 통과되었다. 2021년 8월, 분대 장병들이 출정한지 꼭 2주년이 되는 해에 우리 분대 전체 장병들은 재차 유엔 평화영예훈장을 받게 되었다. 중국군이 31년간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가하면서 이처럼 순환, 철거와 전속의 재배치를 어느 한 평화유지 부대 항공 분대에 동시에 맡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며 86명 장병들이 2개 임무수행 구역을 돌면서 ‘평화영예훈장’을 연속 2번이나 받았다. 총적으로 우리는 2년간 3차에 달하는 최장 기간의 해외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는 기록을 세우면서 아브예이 지역의 첫 중국 평화유지 세력으로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임무 구역이 성공적으로 개척되어 중국이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범위를 넓혔으며 해외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을 효과적으로 검증하였다. 나는 이러한 큰 행동에 직접 참여하게 된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유지의 담당은 평화의 유전자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중국의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국가의 영예를 걸고 감히 총과 탄우를 뚫고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중국 공산당의 100년 행정에서 세세대대로 전해 내려온 분투정신이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고 아프리카에서의 고난과 기쁨, 피와 땀과 수확으로 되어 우리 평생의 재부와 추억으로 될 것이었으며 가슴에 달린 당 휘장과 빛나는 ‘평화 영예의 훈장’으로 되었던 것이다. (작자는 중국의 첫 번째 아브예이 평화유지 헬기 분대장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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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8
  •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무정장군⑥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전번 계속) 장군의 죽음 평양에서 후퇴한 후 무정이 이끄는 조선인민군 제7군단이 압록강 연안의 만포진에 주둔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무정은 팔로군 시절 부하였던 부상 장교 1명을 데리고 군단 의무소를 찾았다. 무정은 군의관을 보자 일손이 바쁜 그에게 데리고 온 부상 장교부터 돌보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군의관은 단도직입적으로 무정에게 “부상자가 매우 많기에 지금은 안 된다. 그리고 군단장의 옛 부하도 예외가 없이 반드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내뱉었다. 사실 군의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어조는 매우 오만했다. 규정을 지키더라도 겸손하게 말했으면 모를까? 처분받은 군단장이라고 군의관마저 무시한다고 느낀 무정은 참을 수가 없었다. 분이 상투밑까지 오른 무정은 권총을 꺼내들더니 겁에 질려 사시나무 떨 듯 하는 군의관을 한방에 쏴죽이고 말았다. 아무리 군단장이라 해도 이는 엄중한 과오였다. 아니, 군단장의 신분으로 말하면 더욱 엄중한 규율 위반이었다. 그리고 이는 가뜩이나 무정을 못 마땅해 하는 김일성한테 그를 숙청할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 얼마 안 되어 무정은 곧바로 군단 지휘권 해제에 이어 군에서 제명되고 말았다. 얼마 후 무정은 홍군 장정 때의 지병인 위궤양이 발작했다. 이러자 중국군을 지휘하던 팽덕회는 무정을 중국 동북의 최고로 꼽히는 병원으로 후송하도록 하여 또 한번 무정한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하지만 무정이 루마니아인이 장춘에 개원한 이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시간적으로 이미 늦었다. 무정 역시 자기가 건강을 회복할 가망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무정의 마지막 소원은 그의 고국 조선에서 생을 마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1952년 10월 조선으로 다시 호송된 무정은 얼마 뒤 어느 한 평범한 군부대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으며 향년 47세였다. 무정이 운명하자 당시 조선 정부는 형식적으로나마 그를 위해 성대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인물 평가 솔직함과 용기로 유명한 무정은 성격이 불같고 용감했으며 또한 끈질기게 헌신하는 혁명가이자 걸출한 지휘관이었다. 인민군의 장성 중에서 무정은 단호하고도 의욕적이었으며 또한 재능이 탁월했다. 특히 그는 포병분야에 정통했었다. 그것을 밑천으로 무정은 인민군 제1진 포병부대 지휘원들을 양성했으며 인민군 창설자 중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장에서의 무정의 용맹함과 우수한 포병 기술에 비해 그의 정치능력은 오히려 2류 정치인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한국전쟁에서의 표현을 볼 때 남반부에서의 인민군 실패를 그가 떠안는 것은 매우 불공정한 일이었다. 무정은 김일성과 더불어 전기적 색채를 띤 군사영웅이었다. 인물과 인물을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혁명생애에서의 무정은 시간적으로 보나 경력 혹은 자격적으로 보나 김일성보다는 차원이 높고 경력 또한 쟁쟁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국으로 입국한 무정은 직위적으로는 김일성보다 낮을 수밖에 없었다. 반대로 당시 김일성이 소련이란 강대국을 등에 업지 않고 직접 중국 동북으로부터 귀국했고 무정 또한 중국공산당이라는 뒷심이 없이 중국 화북으로부터 귀국했더라면 김일성이 전반 북조선을 장악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었을 것이고 한반도 북쪽의 현대사는 아마 다르게 씌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945년 당시 조선으로 귀국할 때 김일성의 빨치산 직계부대는 200여명인 반면 무정이 이끄는 조선의용군 부대는 수천 명으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부대였다. 하긴 그렇건 말건 그들 두 사람 중 김일성은 유명한 항일 빨치산의 지도자였고 무정은 중공군 소속 조선의용군의 지도자였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무정은 군사에서는 비범한 재능을 갖추고 있었으나 정치적 두뇌적으로는 김일성에 비해 한 수 아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다. 한편 중국공산당 군대의 포병과 조선의용군을 이끌었던 무정은 중국과 조선에서 모두 전설적인 군사적 성취를 이뤄냈다. 그는 줄곧 신비로운 인물이어서 역사학자들은 무정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와 그의 조선의용군은 많은 이들의 큰 기대를 받았었다. 그런데 그가 조선의 정치무대에 반짝 나타났다가 빠르게 사라진 것이 마치 떨어지는 별찌와도 같았다. 무정은 1946년 북조선공산당의 2인자로 선출됐지만 그의 정치적 지위는 빠르게 추락했다. 새로 건립된 나라에서 그는 순수한 군사적 직책만 남게 됐고 그 남은 군인생애도 1950년대에 있은 6.25전쟁으로 명예와는 인연도 없이 결속됐다. 에필로그 무정 개인에 대한 자료는 여전히 적은 상황이다. 1994년 중국 연변인민출판사가 ‘무정장군전(武亭将军传)’을 펴냈지만 발행 부수는 연변 지역에만 한정돼 있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은 최고지도자 외 다른 인물을 거의 선전하지 않기에 무정이란 인물이 알려질 리 만무했고 한국 또한 그가 공산주의자란 신분 때문에 유보하다가 2000년대 초에 와서야 교과서에 무정은 포병 전문가라고만 간단히 소개했다. 하지만 이는 차라리 그가 직업 혁명가라고 소개하기보다는 많은 거리가 있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1-28
  •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무정장군⑤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전번 계속) 남침 작전 기간의 장군 1948년 2월, 조선인민군이 창설되고 무정은 포병 총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정식으로 중장 계급장을 달게 됐다. 그해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무정은 민족 보위성 부상(국방부 부부장 격) 겸 인민군 포병사령관을 맡았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그해 7월 원래의 계획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김일성은 김광협의 뒤를 이어 무정을 2군단장으로 임명하고 중국 홍군 명장의 지혜와 기백을 떨칠 것을 희망했다. 인민군 2군단장을 맡은 무정은 국지적 포위, 우회와 퇴로 차단 등을 결합하면서 소백산을 지키는 미 8집단군을 격퇴하였으며 7월 말 경에 이르러서는 김천-상주-예천-안동-영덕까지 내려가 낙동강 강행도하를 준비했다. 한편 김일성은 미군 병력이 낙동강 방어권을 형성하고 미 본토로부터 육속 증원군을 부산에 보내는 것을 알게 되면서 충주 남쪽 수안보에 위치한 전선총사령부로 이동해 조선 광복 5주년 기념일인 8월 15일 전으로 부산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무정은 한 달 가까이 미군들과 겨루면서 인민군과 미군의 실력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8월 공세’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김일성은 자신의 고집(실제로는 배수진을 친다는 의미도 있다)을 내세우며 무정을 인민군 동부전선사령관으로 임명하고 6개 사단을 맡겨 ‘8월 공세’의 주공격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즉 김천 북쪽으로부터 영덕으로 전개하면서 대구, 영천과 포항을 점령할 계획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제15사단: 선산 부근에서 강을 강행 도하한 후 유학산을 거쳐 대구로 진격한다. 13사단: 낙동리 부근에서 강을 도하하여 다부동을 거쳐 대구로 진격한다. 1사단: 신속하게 군위를 점령하고 13사단과의 좌익 배합으로 대구로 진격한다. 8사단: 신속하게 의성의 적을 격파하고 영천으로 진군하여 경주나 대구로 진군할 준비를 한다. 12사단: 태백산맥을 가로질러 포항까지 신속하게 밀고 나가 연일이나 경주를 거쳐 부산으로 진격할 준비를 한다. 5사단: 신속하게 영덕 탈취 후 포항으로 진격하고 이후 12사단과 함께 부산을 향해 진격할 준비를 한다. 무정은 또 제766 유격대에 울진을 출발하여 안강리교(안강리 동면 형산강에 놓인 다리)와 청도 도로를 파괴하도록 명령했다. 1950년 8월 5일부터 1950년 8월 24일까지 계속된 전투로 인민군은 영덕과 군위, 왜관을 점령했다. 그리고 한시기 인민군의 포탄은 대구 시내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2사단은 한국군 제3사단 1만여 명을 포항에서 포위하기에는 성공했지만 해상봉쇄를 하기에는 실패했다. 12사단은 한국군 3사단의 1만여 명을 포항에서 포위했지만 해상을 봉쇄하지 못한 탓에 한국군이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총적으로 인민군은 약간의 승리는 있었지만 산악지대에서의 작전과 유엔군의 공습으로 후방 보급이 크게 파괴되었다. 또한 동부 전선의 인민군 부대들은 8월 12일 이후 쌀 한 톨도 보급 받지 못했고 현지에서는 보급품을 전혀 징수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8월 15일과 16일 이후로는 전반 부대가 움직일 능력이 없음에도 탄약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한 작전을 강행해야 할 때도 있었다. 한편 무정이 기대했던 제766 유격대는 청도터널을 파괴해 연합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임무를 명령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제766 유격대장은 “여러 갈래로 분산 침투해도 전투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남조선군 경계망을 뚫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정규 부대로 돌진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유격전에 능한 이 부대는 안강리 지대에서 생소한 정규 작전을 수행하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기 마련이었다. 이에 몹시 분노했지만 어쩔 방법이 없게 된 무정은 유격대를 해체하고 12사단과 병합했다. 하지만 유엔군의 막강한 화력(인민군에서는 ‘잔학한 괴멸적 전술’이라고 불렀음)과 병력의 반격이 끊이지 않았고 뒷심이 결핍한 인민군은 부득불 낙동강 우측 대안으로 후퇴해야 했다. ‘8월 공세’가 선승후패(先胜后败)하자 인민군은 앞으로 더 진격하려고 ‘9월 공세’를 준비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 당시 전선의 상황은 이미 유엔군과 한국군에 유리하게 역전되었다. 인민군 병력이 공세를 펴기 어려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요행 외에는 승리를 기대할 수 없었다. 이는 그야말로 도박꾼의 올인이었다. 이번에도 무정의 부대는 여전히 주 공격을 담당했다. 당시 주 공격을 앞두고 무정은 다음과 같은 계획을 세웠다. 제3공격군단(1사단, 3사단, 13사단, 105 기갑사단 주력)은 미 제1 기병사단과 남조선 1사단 방어망을 뚫고 대구를 점령한다. 제4공격군단(8사단, 15사단, 17 기갑여단)은 남조선 6사단과 8사단의 방어망을 돌파하고 하양과 영천을 점령한 뒤 대구나 경주를 향해 진격한다. 제5공격군단(5사단, 12사단)은 남조선 수도사단과 제3사단 방어망을 뚫고 포항동과 연일비행장을 점령하고 경주 일대에서 부산으로 진격할 준비를 한다. 9월 2일 밤, 무정 지휘사령부의 대대적인 야간공격이 시작되어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으며 특히 제12사단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한국군 수도사단과 5사단을 잇달아 격파하였고 유엔군의 동부전선에는 약 12킬로미터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9월 5일까지 미 1기병사단과 한국 3사단도 잇따라 패하면서 포항동이 점령당했고 8일엔 인민군이 영천도 점령했으며 미 제8군 사령부와 한국군 사령부는 모두 대구에서 부산으로 철수했다. 하지만 그 시각 서부전선의 인민군은 패배하고 말았다. 무정은 사방에서 밀려오는 유엔군과 한국군의 반격을 막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바로 그럴 즈음, 1950년 9월 15일 유엔군 인천상륙이 성공되면서 남쪽에 있는 인민군한테는 큰 재앙이 들이 닥쳤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으로 인민군은 어쩔 수 없이 철수해야만 했다. 후퇴 명령을 받자마자 유격전의 전략을 잘 알고 있던 무정은 각 사단의 퇴로를 마련한 뒤 모든 무전 연락을 끊었다. 결국 미군은 물론 평양의 김일성도 그가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평양의 김일성은 화가 나서 안절부절을 못했지만 무정의 안동 사령부는 별로 큰 장애가 없이 원주를 거쳐 38선 이북의 김화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무정이 거느리는 몇 개 사단 중 13사단이 괴멸적인 타격을 입은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순조롭게 북쪽으로 돌아감과 아울러 대부분의 골간 장병들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필요한 행동에 평양은 오랫동안 그의 소식이 끊겼기 때문에 극도로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이 오랫동안 무정과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소식에 소련 고문들은 공개적으로 무정의 개인주의 성향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무정은 평양을 사수하라는 김일성의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무정의 수하에는 만 명도 안 되는 예비사단 2개뿐이었고 무정 또한 포위섬멸되거나 포로가 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그는 정부가 북으로 철수하자 비교적 가벼운 저항만 하고는 부대를 이끌고 철수를 했다. 이어 유엔군이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그의 퇴로를 차단하려 했고 또한 무정 부대의 철수가 늦어지면서 마지막 1개 연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기실 당시 무정이 평양을 포기하고 유생역량을 보존한 것은 정확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수도를 쉽게 포기한 것은 그의 명성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다른 작은 정절에 있어서 무정이 임명한 한 관원이 정상적인 행정심사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 등으로 무정은 예비군단인 7군단의 군단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말았다. 이는 군인에게는 특히 수 십 년 간 전장을 누빈 군인 무정한테는 큰 실망을 의미했다. 이어 1950년 12월 21일부터 23일까지 있은 조선노동당 2기 3중 전회에서 무정은 ‘전쟁 중에 저지른 엄중한 과오’로 강력한 처벌을 받았다. 이는 무정의 개성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불평불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처벌이었다. 그리고 이는 정치와 전투장의 이중적 실정으로 인해 이런 비극적 결말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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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1
  •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무정장군④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전번 계속) 장군의 귀국 1945년 12월의 어느 추운 날, 낡은 증기기관차 한 대가 70여 명의 승객을 싣고 평양역으로 들어섰다. 당시 이 승객들 중에는 무정, 최창익 한빈 등 연안출신 조선독립동맹 간부들이 있었다. 그들을 맞는 평양역에는 격앙된 음악도, 휘날리는 깃발도, 귀국하는 혁명가들을 환영하는 열띤 인파도 없었다. 몇 명의 접대인원들만이 이들을 영접하기 위해 열차에 올라왔을 뿐이다. 그들은 긴 인사도 없이 무정 일행을 역에 대기 중이던 트럭에 서둘러 태우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조선에 진출한 소련 홍군은 조선의용군이 ‘비무장 차림’을 약속할 때까지 그들을 환영하지 않았고 한 시기 조선의용군의 조선입국을 막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군대나 정당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만 입국이 가능하게 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소련군이 그들의 입국을 막았기에 대부분 조선의용군 주력은 중국 동북 각지에 남아 중국의 내전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조선의용군이 조선으로 입국하는 데는 기나긴 여정도 있었다. 이에 앞서 1945년 8월 11일, 팔로군 사령부는 무정이 조선의용군을 이끌고 빠르게 북상하여 소련 홍군과 손잡고 조선광복을 이룩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일본군은 사흘 만에 항복 선언을 하면서 조선의용군으로 하여금 자신의 조국을 해방시킬 기회를 잃게 하였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지 이틀 만에 무정은 태항산(조선의용군의 주 근거지)에서 장병 100여 명을 거느리고 연안으로 돌아와 귀국 준비에 착수했다. 하지만 귀국 준비라고는 하였으나 구체적인 귀국 계획이 거의 없었다. 다만 어디에 집중하여 조선으로 돌아갈지에 대해 토론했을 뿐이다. 1945년 9월 5일, 조선의용군 300명 선봉대는 연안에서 출발했고 이어 여성과 어린이까지 동북에 도착하면서 대오는 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60여 일간의 고생 끝에 심양에 도착했을 때는 1945년 11월 초였다. 심양에 도착한 대오는 간부들만 병영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주민 집들에 분산돼 휴식할 수밖에 없었다. 11월 7일 조선의용군은 한 조선인학교의 운동장에서 조선의용군 군인대회를 열고 소련군과 교섭한 결과를 모두에게 알렸다. 소련홍군과의 교섭 결과 소수의 간부만 귀국이 허용되고 나머지는 중공 동북국의 지시에 따라 7개 지대(실제 4개)로 편성됐다. 제1지대는 남만에서 창설됐고 지휘관은 김웅, 방호산과 최인이 맡았다. 북만에 창설된 제3지대는 이상조, 주덕해가 지휘관을 맡았으며 연변에 창설된 제5지대는 이익성과 박일우가 지휘관을 맡았다. 그리고 제7지대는 길림에 창설됐으며 지휘관은 박훈일과 최명이 맡았다. 이후 이들 대부분은 개인 신분이나 작은 규모로 조선으로 나가게 됐다. 한편 귀국 간부단은 1945년 11월 20일 중조 접경도시 안동(지금의 단동)에 도착했으나 조선입국 허가를 받지 못했다. 무정이 소련군에 입국허가를 신청하자 무장을 해제하고 개인 자격으로 입국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열흘 뒤 이들이 압록강을 건너 신의주에 도착하자 소련군은 열차를 배치하여 그들을 평양으로 보냈다. 이들은 평양역에서 트럭에 실려 태평양 여관으로 옮겨져 임시 자리를 잡았다. 이때 조선독립동맹 지도자들은 매우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그들은 평양의 정치적 분위기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군대가 없었다. 그들은 자기의 조국에서조차 타국에서 떠도는 나그네처럼 소련 사람들의 배치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뒤 누구누구는 속속 보직을 받아 여관을 떠났지만 나머지 대다수는 여전히 여관에 남아 소식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김일성이 소련 대령과 함께 여관을 찾아왔다. 김일성은 최창익 등과 회담하였다. 김일성은 미군이 남조선에 진주했으며 그들은 남조선을 떠날 생각이 없어 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한편 그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배치할지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다가 1946년 1월 마지막 귀국자가 이 여관을 떠났다. 심하게 배척된 장군 무정은 조선인들에게는 영웅이었지만 소련 사람들이 보기엔 얄미운 놈이었다. 소련은 무정과 그의 조선의용군에냉담했으며 군인이 아닌 문인이 조선의 지도자로 활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굳이 군인이더라도 소련군이 잘 아는 김일성을 선호했다. 무정의 귀국에 앞서 1945년 10월 28일 신설된 북조선 5도의 행정 선거에서 무정은 2인자로 행정국 부위원장(1인자는 민족주의자 조만식이었음)으로 선출됐다. 무정은 1946년 4월까지 이 직책을 맡았고 그 달 있은 선거에서 곧 바로 밀려났다. 또한 무정과 함께 귀국한 저명학자 김두봉은 북조선 인민위원회 1인자로 ‘선거’됐고 김일성은 2인자로 선출됐다. 이어 무정은 인민보안간부학교 포병 교무장으로 파견됐다가 1948년 제2인민보안간부학교 교무장으로 임명됐다. (주): 인민보안간부학교는 조선의 군사간부를 양성하는 학교일 뿐만 아니라 당시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인민군 사령부였기에 무정의 교무장 직책은 사실상 인민군 포병사령관이다. 그 당시 무정은 정치투쟁에서 기교가 부족했거나 더 정확하게는 권력 다툼에 아주 서툴렀다. 무정은 아주 강직한 사람이라 일찍 연안에 있을 때에도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는 다른 지도자들과 충돌하는 바람에 다수의 독립동맹 간부들과 많은 불화를 겪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 이렇게 되자 결국 중공중앙은 조선독립동맹의 내부투쟁을 피하기 위해 무정더러 조선의용군을 전담하게 하는 동시에 비교적 상냥한 김두봉에게 독립동맹의 정치위원을 맡겼다. 그러던 무정이 조선에서 2인자로 등극했지만 또 광범위한 비난을 받았다. 즉 중국에서 온 간부들은 비교적 중요한 자리에 배치하고 국내 출신이나 빨치산 출신 간부들을 배척했다는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된 후 김일성 수상과 박헌영 부수상 모두 자신의 정치기반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 사이에 낀 무정은 더욱 실의에 빠졌다. 1946년 간부회의에서 무정의 참았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그는 자신의 옷자락을 와락 잡아당기며 놀란 관중들을 향해 그들에게 자신의 몸에 있는 총탄 흔적을 보여 주었다. “내 몸의 이 상처의 흔적 좀 보라구. 내가 조선을 위해 지불한 대가라구. 당신들은 지금 왜 다른 한 사람(김일성 지칭)만 찬미하는 거여?!” 무정의 이런 감정적 발로는 후에 그의 정치 인생에 막대한 악영향을 줄 것은 분명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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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20
  •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무정장군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전번 계속) 조선의용군 창설 사업 무정은 또 다시 과로로 인해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고질인 위장염이 재발한 것이다. 이러자 사령부에서는 재차 그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건강이 회복될 즈음 무정은 또 새로운 임무를 맡게 됐다. 대일 작전을 모색하기 위해 연안에 찾아온 조선인 청년들을 집중시켜 조선의용군 건군 작업에 착수했던 것이다. 그는 토지혁명시기에 살아남은 조선혁명가 10여 명을 골간으로 하고 연안에 찾아온 조선청년들 그리고 항일군정대학을 졸업한 조선청년 및 동북에서 활동하다가 소련으로 건너가 모스크바에서 군사를 배운 후 연안으로 온 조선청년들까지 모두 합류시켜 철저한 훈련을 실시했다. 이런 조선인 청년들은 1939년에 이르러 팔로군 전방사령부가 있는 진동남(晋东南)에 이르러 팔로군과 함께 항일전쟁에 투신했다. 조선인 스스로의 혁명 역량으로 날로 장대해졌다. 1941년 1월 10일 무정은 조선독립동맹의 전신인 화북 조선청년연합회 회장을 맡았고 그해 6월에는 중경 국민당 계열이던 조선의용대 일부가 화북의 항일근거지로 귀화했으며 무정은 이들을 조선의용대 화북 지대로 편성해 팔로군과 함께 일본군과 싸웠다. 1941년 8월, 산서성 동욕에 있는 팔로군 본부에 조선의용대 간부훈련반이 설치되었고 무정은 교장으로 부임되었다. 그는 항일 무장투쟁에 종사하는 군사간부를 전문적으로 양성했다. 이어 진동남 항일근거지에 조선청년간부학교와 조선무장선전대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26일에 열린 동방 각 민족 반파시스트 대회에서 무정의 초상은 외국 항일 지도자들과 함께 모택동 초상화와 나란히 걸렸다. 국제 사학자들은 이때 무정이 팔로군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중국 문헌의 한 기록에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다. 연안의 대생산 시기 남니만 개발에 관한 자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941년 1월 말부터 2월 초 사이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포병 퇀장인 무정은 2개 영을 거느리고 남니만으로 진군해 반년쯤 걸려 덤불숲에 폭 6미터가 되는 도로를 닦았으며 이후 남니만의 식량, 부식물과 공업제품은 모두 이 도로를 거쳐 끊임없이 항일 전선으로 운송되었다. 이렇게 무정 퇀장은 두 개 영을 이끌고 식량이 부족하고 집도 없는 등 상상할 수도 없는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개간한 황무지에 씨앗을 뿌렸다. 이어 얼마 되지 않아 왕진이 359여단을 이끌고 남니만으로 들어가면서 황무지를 개간하는 부대가 신속하게 확대되었다. 그 후 또 많은 부대와 구정부와 중앙군사위원회 등이 남니만에 잇따라 진출하면서 개황열기가 전례없이 형성되었다.……” 당시 무정은 이미 조선 반일세력의 지도자 일원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중국 공산당과 팔로군에서 그의 위상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평범한 공산당원과 팔로군 장령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조선의용군 창설임무를 무정에게 맡겼다. 그 이유는 광범위한 국제항일통일전선의 시범으로 국민당 정부가 지배하는 지역으로부터 더욱 많은 조선인을 데려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됐으며 또 일본군 병사들을 상대로 선전할 때도 일본어에 능한 조선인들의 우세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조선문제 전문가인 스마루는 어느 한 저서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주은래는 중조 관계의 미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또 무정의 전설적인 이미지는 광범위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국민당의 통제 하에 있던 조선의용대 조직원 89%가 낙양(洛阳)과 중경 등지로부터 태항산(太行山)으로 옮겨왔으며 이들은 화북지대의 각 분대에 편성되어 기로예(冀鲁豫), 진찰기(晋察冀), 태항산(太行山) 등지로 이동하여 유격전과 일본군 와해 투쟁을 전개하고 항일근거지 기층정권의 건설활동에 참여한 것 등은 이를 여실하게 증명하였다…” 장군의 위망 날이 갈수록 높아져 무정과 화북 조선청년연합회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조선의 유명한 독립운동 지도자 김두봉도 중경에서 태행산으로 직행하였고 멀리 조선 국내에 있던 여운형도 자신의 연락책 김명시(무정의 연인)를 서울에서 연안으로 보내 무정을 만나게 했으며 함께 합동건국 문제를 논의하게 했다. 실제로 무정의 이름은 소련의 크렘린궁까지 전해졌다. 1941년 7월, 스탈린은 비행기를 연안으로 파견하여 무정을 소련으로 인수하려고 했다고 한다. 무정의 비범한 포병기술을 높이 평가하면서 소련의 포병부대를 지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반년 전에 있었던 ‘완남사변(皖南事变)’을 염두에 두면서 장개석이 이번 무정의 소련 행을 가로막거나 말썽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 무정을 소련으로 보내지 않았다. 비록 무정의 소련행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스탈린의 항공기 파견은 국내외에서 무정의 명성을 더 한층 크게 높였다. 1942년 7월 11일, 화북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이 결성됐다. 화북 조선독립동맹 중앙 집행위원이자 의용군 사령관이었던 무정은 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특히 의용군을 구성함에 있어서는 기념비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 뒤 무정은 팔로군 포병 퇀장을 그만두고 조선의용군의 훈련과 지휘에 전념하였다. 그는 자신이 언젠가는 조선의용군들로 조국 광복을 이끌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당시 의용군 장병들 속에서는 조선은 일본한테 얼마간 더 점령당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무정은 조선의 독립이 멀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성심성의로 대원들을 이끌었다. 특히 무정은 독립 이후의 조선은 모든 애국당파가 연합하여 집권하는 국가이기를 원했다. 이는 당시만 해도 중국공산당의 연합정부 구상이 무정한테 영향을 미친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시 무정의 생각은 연안의 조선공산당 출신 중 좌파인 최창익 등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당시 조선독립동맹의 정치적 권력은 주로 좌파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에(무정은 군사만 담당) 이들과 무정의 견해는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이는 참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유감스럽게 했다. 1945년 8월에 이르러 일제의 멸망은 분명해졌고 무정은 소련이 꼭 조선을 장악하리라는 것을 예견했다. 이때 그는 황하 둔치에서 희생된 양림을 더욱 그리게 되었다. 양림은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였으며 의지가 굳세고 지혜가 넘치는 애국자였다. 무정은 양림이 살아 있었더라면 소련인들과의 관계를 잘 관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에 앞서 무정의 건의로 조선혁명 군정학교 전원은 1월 말부터 태행산을 출발해 2000리를 행군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본군의 3차 봉쇄선을 넘어 4월 7일 연안에 도착했다.(다음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1-19
  •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무정장군②
    [동포투데이] (전번 계속) 포병 전문가로 된 장군 중국 노농홍군 제3군단은 1930년 7월 31일 호남성 평강에서 군단 산포련을 창설했다. 당시의 포병이었던 한 노병은 무정이 이 해 말 포병련에 있었다고 회상한다. 무정은 소련에서 포병 기술을 배워 귀국해 포병 교관으로 있다가 제3련(第三連) 연장(連長)으로 되었다. 1931년 5월, 강서피두에서 중국 노농홍군 중앙군사위 포병퇀이 창설, 초대 퇀장이 실직행위가 있었기에 파면되고 대신 그해 6월에 무정은 이 포병퇀 제2임 퇀장으로 임명됐다. 홍군 시기에 전공이 혁혁한 무정은 승진이 빨랐고 급기야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아무런 정치적 배경이 없는 외국인이었던 무정으로서는 파격적인 승진이 아닐 수 없었다. 1930년 12월부터 1934년 10월까지 장개석은 다섯 차례에 거쳐 서금의 홍군을 포위토벌했다. 특히 5차의 포위토벌로중국 공산당의 소비에트 지역 대부분을 장개석 군대가 점령하고 장악했다. 이렇게 수세에 몰리자 중국 공산당 중앙과 중국 노농홍군은 강서성 서금에서 가까운 안전지대로 근거지를 옮기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2만 5000리 장정이다. 1934년 10월 14일에 출발하여 1936년 12월 12일에 섬서성 연안에 도착한 기나긴 대행군이었다. 장정 기간 동안 무정은 중앙군사위원회 직속 포병부대 지휘관으로 공격할 때나 후방 차단 때나 항상 전형적인 화력지원 임무를 맡았다. 한 노홍군이 쓴 ‘나원발 회고록(罗元发回忆录)’에서 무정의 업무 성격을 언급한 기록이 있었다. “11월 하순 중앙군사위원회는 4개 종대로 나뉘어 신안(新安)과 전주(全州) 사이에서 상강을 건너 적의 4차 봉쇄선을 뚫기로 했다. 이는 대장정 시작 이래 가장 긴장되고 치열했던 전투였다. 우리 5사단은 팽덕회 군단장의 명령에 따라 밤낮 급행군으로 하루 100여 리씩 줄달음치면서 상강나루터를 먼저 점령했다. 사단장은 “좀 있으면 무정 동지가 군사위원회 종대와 제3야전지대의 사령관이 되어 포병영, 공병영, 운수 제1대대 그리고 부속병원을 포함한 기술병종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라고 전해왔다. 후에 무정은 홍군 제3군단 포병영 영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정 시기 무정의 중요한 역할 장정 도중 무정의 중요한 역할에 관해서는 ‘장정: 전대미문의 이야기(长征:前所未闻的故事)’에서 찾아볼 수 있다. “팽덕회의 옥중 진술에 따르면 그때 사람들은 점점 더 두 홍군 군단 간의 충돌을 몹시 걱정했다. 특히 팽덕회는 홍군 제1군단과 연락이 끊길까 봐 걱정했다. 안내자가 없었기에 홍군 제1군단은 아계의 근처에서 발이 묶였다고 하며 그 당시 무전의 비밀번호가 바뀌었기 때문에 팽덕회는 홍군 제1군단과 연락할 수 없었다. 그는 새 비밀번호를 만들어 믿을 만한 조선인 장교인 무정에게 건네는 한편 나침반을 하나 주면서 임표와 섭영진에게 연락하게 하였다. 섭영진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홍군 제1군단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으며 그가 받은 유일한 전보는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는 것뿐이었다. 당시 무정은 팽덕회의 두터운 신임을 갖고 있었다. 중국 노농홍군의 대장정은 하루도 쉼없이 장개석 군대와 크고 작은 5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 이뤄낸 기아와 고난의 행군이었다. 장정이 시작됐을 때 홍군에는 조선인 혁명가 30여 명이 있었지만 섬북에 도착했을 때는 오로지 무정과 양림 두 사람만 남았고 그 양림 또한 얼마 후에 있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것이 이를 잘 설명했다. 그렇게 되어 무정은 장정 결속시의 유일한 조선인 생존자였다고 할 수 있었다. 후에 무정은 한 지인에게 이렇게 당시의 고통된 심정을 토로하였다고 한다. “장정 결속한 후인 1936년 2월, 홍군이 황하를 건너게 되었으며 그 때 양림은 황하강행도하 돌격대장으로 선발되었다. 이는 일종 결사대의 임무였다. 당시 돌격대는 강을 도하하여 개펄에 진지를 구축하였으나 양림은 적탄에 명중되었다. 그때의 의료 여건으로는 그의 생명을 구할 수가 없었다. 양림은 하루 종일 진통을 참아내다가 끝내는 숨을 거두었다.” 한편 양림의 희생은 아이러니하게도 무정의 생명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양림이 희생된 후 팽덕회는 “너무 많은 외국국적 혁명가들이 중국의 혁명사업을 위해 희생됐다. 만약 우리가 그들을 계속 중국에서 희생되게 한다면 누가 그들 조국의 혁명을 위해 싸울 것인가. 우리는 이미 죽은 그 동지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는 없으나 더 이상 외국동지들의 생명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팽덕회의 호소에 중앙 군사위원회에서는 무정에게 학습연구를 하라는 휴식 명령을 내렸고 당시 무정 또한 위장병 악화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던 터였다. 이렇게 팽덕회는 사실상 무정의 목숨을 구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평생 친구이자 동지로 되었다. 1936년 무정은 홍군대학에서 전략학과 당 사업 연구를 진행했다. 그 후 무정은 홍군대학을 다니면서 학습하는 한편 군관학교에서 강의까지 했다. 홍군대학을 졸업한 후 무정은 팔로군 총사령부 작전과장으로 임명되었다가 1937년 말 팔로군 포병부대 재편 임무를 받고 팔로군 본부 포병처 주임으로 임명되어 팔로군의 포병부대를 창설했으며 1938년 초 팔로군 본부 포병퇀장에 오르면서 팔로군 포병부대의 최고 권위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다음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1-14
  • 비운의 조선인 혁명가 무정장군①
    [동포투데이] 편집자의 말: 무정ㅡ그는 분명 그의 정치적 생애와 이념을 떠나 우리 민족이 낳은 출중한 군사가였다. 또한 무정은 이용만 되고 나중엔 버림받은 비운의 장군이기도 하다. 무정(武亭, 1905~1952)의 본명은 김무정(金武亭)이며 중국과 북한(조선) 군부의 고급 장령이다. 그는 1905년 조선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태어나 1925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며 중국 노농홍군과 함께 유명한 2만 5000리 장정에 참가한 많지 않은 조선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 중국인민 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 포병 퇀장으로 팔로군 포병 창시인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어릴 때 무정은 가정 경제상황이 어려웠기 때문에 서울에서 공부를 할 때 주로 근공 검학을 하였다. 1919년, 조선에서는 일제 식민지 통치를 반대하는 유명한 ‘3.1’ 운동이 폭발하였고 당시 무정은 그 애국적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으며 이는 그의 혁명 생애의 계기로 되었다. 그 뒤 무정은 당시 조선에서는 가장 훌륭한 학교인 경성 중앙고등학교에 입학, 바로 이 학교에서 무정은 당시 조선의 유명한 민족 지도자 여운형 선생을 알게 되었으며 여운형 선생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어 그는 혁명에 투신하기 위하여 1923년 경성 중앙고등학교에서 퇴학하고는 그해 3월 18세의 어린 나이에 조국광복의 꿈을 안고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으며 동북을 거쳐 북경에 도착하였다. 그렇게 건너간 압록강, 그 때 무정은 자기가 그 역사가 유구한 땅에서 20여 년 간 거처하게 될 줄은 진짜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 그는 1921년 5월 상해에서 고려공산당을 창건한 저명한 조선의 독립운동가인 이동휘가 세운 문화대학에 입학해 한어를 배우다가 그 이듬 해 북방군관학교(동북강무당이라고도 했음)에서 포병이론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그 때까지도 학생이었던 당시 무정은 중국의 북방 군벌들 사이에 벌어진 남구전쟁(南口之战)에 참가하였으며 얼마 뒤 천진을 점령하는 전쟁에서는 공을 세우기도 했다. 졸업 후 그는 포병 상위로 되었으며 얼마 후엔 또 그의 군사적 재능을 인정받아 포병 중령으로 되었다. 1925년, 무정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당원 수가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당이었다. 하지만 여운형의 영향을 받은 무정한테 있어서 공산당에 가입하는 것은 그한테 있어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 얼마 뒤 무정은 군벌부대에서의 모든 직함을 버리고 제1차 중국 국내혁명과 북벌전쟁에 참가했다. 1927년, 장개석은 공산당을 진압하면서 무정에 대해서도 체포령을 내렸으며 무정은 핍박에 의해 지하투쟁에 투입해야만 했다. 지하 활동을 하면서 무정은 장개석에 대한 원한이 뼈 속까지 파고들게 하였다. 당시 무정은 국민당군에 의해 누차 현상 수배 대상으로 되었으며 한구로 자리를 옮겨 지하활동을 계속 하던 중 얼마 후 무창에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 무렵, 무창에서는 만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면서 장개석의 백색테러 정책을 규탄하는 한편 무정을 포함한 정치범들을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거기에 당시 무창 법원의 판사 중 그의 동지들이 있는 등 배경으로 무정은 감옥에서 탈출하였고 중공중앙의 소재지 상하이로 갈 수 있었다. 무정은 상해에서 다시 공산당 내의 정치사업을 시작했다. 1929년 그는 지휘자의 일원으로 상해 노동자 폭동에 참가했다. 당시 무정은 비록 외국인이었지만 그의 군사재능을 인정받아 폭동 지휘부의 총지휘로 추천되기도 했다. 후에 폭동이 진압되면서 무정은 영국인들에 의해 체포되었으며 그해 10월 10일에 2개 월 형에 언도(이 상징적인 판결은 무정한테 있어서 매우 의미심장했음)되었다. 석방된 후 그는 홍콩에 도착했다. 이후 내륙을 돌며 제2차 국내혁명(즉 토지혁명)에 참여했다. 제2차 중국 국내혁명 중 무정은 팽덕회 장군의 휘하에 있다가 홍군이 호남 악주(岳州)를 함락하면서 75밀리 야포와 산포를 노획하는 바람에 무정은 자기의 재능을 발휘할 일이 생겼다. ‘팽덕회 자서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씌어져 있다. “악주를 점령하였지만 영국, 미국과 일본의 함정이 기승을 부리며 함포사격으로 성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러자 우리는 은밀하게 포를 설치(당시 포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나와 조선 동지 무정뿐이었음)했다. 미구하여 적함이 다가오자 우리는 수 십 발의 포탄으로 대응 사격을 했고 그 중 10발 이상 적함을 맞혔다. 이러자 적함은 더 이상 해안에 함포사격을 하지 못했다…” 이는 중국 홍군 신분으로 무정이 최초로 벌인 전투경력으로 간략하게 기록돼 있지만 전과는 분명 화려했다.(다음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1-13
  • 미국은 핵잠수함 충돌 사고 세계에 해명해야
    ●러수이(乐水·중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10월 초 남중국해에서 미 해군의 핵잠수함 ‘코네티컷호’가 잠항하던 중 미확인 물체를 들이받아 잠수함이 파손되고 부상자가 속출했다. 그런데 미국은 충돌사고 발생 한 달이 넘도록 구체적인 내용을 숨기면서 국제사회에 정확한 사고 경위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자오리젠(赵立坚)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 핵잠수함의 임무 수행과 충돌, 충돌 원인, 방사능 유출 우려 등에 대해 미국 측에 4가지 질문을 날렸고 미 해군 제7함대는 국제 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지난 1일 간단한 사고조사 성명을 발표했다. 미 해군 7함대는 핵잠수함은 남중국 해상에서 ‘미지의 해저산맥’을 들이받았다고 설명하면서도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방사능 유출에 대해서는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이런 기류는 최근 들어 미군의 남중국해 출입과 중국의 영해 주권침해 문제를 국제 이슈로 다시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제도와 그 인근 해역에 대해 명백한 주권을 갖고 있으며 중국인들이 남중국해에서 활동한 지도 2000년이 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몇 년 간 역사적 사실과 남중국해 영토에 관한 중국의 주권성명을 무시한 채 ‘자유항행’이라는 구실을 내세우면서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남중국해 해역에 자주 출동시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군 ‘라슨함’, ‘매케인함’ 등 구축함이 중국 난사(南沙)와 시사(西沙)군도 12해리 수역에 여러 차례 진입했고 바이든 취임 이후 미군의 남중국해 군사작전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거의 2배 이상으로 그 강도와 빈도가 높았다. 올해 들어 11월 1일까지 미국의 4개 항모타격전단과 2개 양륙경비대가 차례로 남해로 이동해 총 11회에 거쳐 남중국해에 진출했고 또 5척의 구축함이 중국 시사군도 영해와 남중국해 군도 12해리 인근 수역에 5차례나 진입했다. ‘국제해양법공약’에는 한 나라의 영해 기선인 12해리 이내 해역을 그 나라의 영해범위로 규정하고 영해 내에서 주권을 갖는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미 군함의 이 같은 움직임은 중국의 영해주권에 대한 강력한 도발이자 남중국해 해역에 대한 안보태세 훼손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내세우는 ‘자유항행’은 더 억지스럽다. ‘자유항행’이란 원래 국제법이 규정한 각국의 공해 상에서의 자유항행과 월선권이었지만 미국은 개념을 바꿔치기를 했다. 미국이 개념을 바꿔 ‘자유항행’을 명분으로 촉각을 중국 영해에 들이미는 것은 국제법에 대한 경멸이자 중국의 주권과 법률에 대한 무시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영해 및 접속구법’은 중국 영해에 들어오는 외국 선박에 대해 명확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중 제6조에서는 “외국 군용선박의 중화인민공화국 영해 진입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7조에서는 “외국 잠수함과 다른 잠수기가 중화인민공화국 영해를 통과할 때면 반드시 해상에서 항해하고 깃발을 전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핵잠수함의 충돌 사고가 발생한 곳은 중국 영해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미군은 왜 중국에 사전 허락을 요청하지도 않고 깃발을 달고 항해하지도 않았을까?! 이는 미국이 중국에 꼭 알려야 할 문제이다. 법적인 문제 외에도 이번 사태로 인한 방사능 누출도 무시할 수 없다.핵잠수함 방사능 누출 사고는 전 세계에서 많이 발생한다. 1987년 구소련의 핵잠수함 ‘공청단호’가 사고를 당해 바렌츠해 해저에 침몰됐으며 당시 원자로에서 흘러나온 방사능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주변의 바닷물을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또 2008년 영국 레알 해군의 핵잠수함 ‘트라팔가호’가 방사능 유출사고로 280l가 넘는 액체들이 바닷물에 방출됐다. 미국의 주장대로 ‘코네티컷호’가 미지의 해저산맥을 들이받았다면 똑같은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주변 어업생산과 해양항해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된다. 보도에 따르면 충돌 발생 후 미군은 이미 파견되었으며 WC-135w 핵 정찰기가 남중국해로 나가 정찰을 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은 미국에 핵 감시 결과 발표를 요구해 남중국해 주변국에 해명을 촉구할 이유가 더 큰 것이다. 잠잠하던 남중국해가 미국이라는 ‘훼방꾼’의 개입으로 시끌벅적 들끓고 있다. ‘코네티컷호’의 충돌사고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미국이 수년간 ‘자유 항행’을 구실로 남중국해에서 바람을 일으킨 필연적인 악과이다. 미국이 ‘자유 항행’의 지지자라고 자부해온 이상 핵잠수함 충돌사고의 실체를 만천하에 밝혀야 할 때이다. 그리고 각국의 선박들에 양심에 부끄러운 일을 한 것처럼 피하고 덮으려고만 하지 말고 각국 선박들이 안전하게 남중국해를 항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11-11

외국인· 출입국 검색결과

  • 일본, 외국인 유학생 취업비자 대폭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이 일본 취업에 필요한 재류자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서 실시한다. 3년 연속 유학생이어야 하는 요건을 완화하고 최근 1년체류한 유학생이라도 승인하기로 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국가지정기술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일본에서 학부와 무관한 일을 할 수 있으며, 이 새로운 조치로 연간 3,000명의 유학생이 취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를 시범으로 일본은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 환경 조성과 인재 유지를 촉진하기 위해 국가 전략 특구인 기타큐슈시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하여 전국 확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학생의 최근 상황을 추적하고 불법 체류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요구 사항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면접 및 기타 심사, 졸업 후 정기적인 면접, 취업 중단 시 본국으로의 귀국을 위한 적절한 안내 등이 포함된다. 현재 일본에 취업하고자 하는 해외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일본어 학교에 재학할 경우 유학을 위한 재류자격으로 일본에 남아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졸업한 경우 일본에서 계속 구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특정 활동'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약 75%가 일본 취업 희망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전문학교 졸업생은 더 이상 전공에 맞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더 다양한 업종에서 일할 수 있다. 현지 체류 및 활동에 종사하는 재류자격을 개정해 전문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졸업생이 일본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개정 이후 일본에 취업한 유학생이 연간 약 3,000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의 출생아 수는 2023년에 최저치를 기록해 80만명 이상 자연감소했다. 일본학생지원기구의 2021년 외국인 유학생 조사에서는 약 2,000명의 전문학교 학생 중 약 75%가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재계와 교육계에서는 일부 유학생이 일정 수준의 전문적 수준과 일본어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 제한으로 인해 강제로 일본을 떠나게 된 점을 지적하고정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4-03-02
  • 中,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한 중국대사관은 2월 18일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및 영사관은 한국인의 중국행 비즈니스,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고 72/144시간 무비자 체류 제한을 해제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 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이 조치는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2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10일 한국 정부가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40일 만에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다시 풀리게 됐다. 한국 측의 조치에 대응하여 주한 중국대사관은 1월 10일, 한국 주재 중국 영사관은 오늘부터 한국인의 중국 방문, 비즈니스, 관광, 의료,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5
  • 中 외교부 "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적극 검토"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내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마오 대변인은 "한국 측의 대중 비자 제한 조치 해제가 양국 인적 왕래 장벽을 줄이기 위한 올바른 발걸음"이라고 화답했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은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대등하게 재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한국 측이 중국과 함께 양국의 정상적 교류가 더욱 원활히 이뤄지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당초 1월 말까지였던 이 조치는 2월 말까지 연장됐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월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40일 만에 풀리는 것으로 된다. 한국의 조치에 대응해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영사관은 이제부터 한국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이 재개된다. 정부는 1월 2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이 조치는 당초 1월 말까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2월 말까지 한 달 연장되었다. 앞서 복수의 국내 언론은 방역·보건부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는 조만간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중단을 해제하고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사전 검사 및 현장 검사 조치는 유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은 주한 중국영사관은 한국인의,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관련 국가들이 사실에 입각해 과학적이고 적절한 방역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기회를 틈타 정치적인 농간을 부려서는 안 되며 차별적인 조치를 취해서도 안 되고 국가 간 정상적인 인적 왕래와 교류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중국, 일본 국민에 대한 일반 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일본 중국대사관 위챗 공식계정은 29일 자로 주일본 중국영사관이 일본 국민의 중국 일반비자 발급을 재개했다고 공지했다. 앞서 일본은 지난 1월 8일부터 중국에서 일본으로 직항하는 승객에게 탑승 전 72시간 내 음성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방역 조치를 강화하고, 입국 시 검사도 더 정밀도가 높은 핵산 검사나 항원 정량검사로 변경했다. 주일 중국대사관은 10일 주일 중국대사관과 영사관이 앞으로 중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일반 사증 발급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당시 관련 문제에 대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을류을관(乙類乙管)’ 총체적 방안과 중외 인사 왕래를 위한 잠정 조치를 발표한 뒤 여러 나라가 환영의 뜻을 밝혔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다만 일부 국가가 과학적 사실과 자국 내 전염병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를 고집하고 있다”며 “중국은 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1-29
  • 일본, 외국인 연구원 및 유학생 입국심사 강화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13일 니혼케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외국인 연구원과 유학생에 대한 입국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체류에 필요한 증빙서류에는 해외여행 이력, 일본체류 중 자금출처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는 해당 인원이 일본에 입국하기 전 중요한 연구 성과나 기술을 해외로 반출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기업과 대학이 지방 출입국관리소에 신청하는 '재류자격인정증명서'에 관련 심사항목이 추가됐다. 연구 또는 유학 자격을 취득한 모든 외국인은 이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서류에 기입해야 할 항목은 일본 입국 목적, 일본 내 거주지 등이다. 엄격한 심사는 지난해부터 시작됐으며 민감한 정보를 가진 인사들을 대상으로 했다. 여행 이력 및 자금 출처뿐만 아니라 과거에 발표된 논문이나 본국에서의 직장 및 생활 경험도 작성해야 한다. 앞서 일본 정부는 코로나19를 국경 밖에서 차단하기 위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2021년 일본에 입국하는 외국인은 약 15만 명이며 이 중 체류자격으로 입국하는 연구자는 89명에 불과하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관련 조치의 적용 범위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6월 1일 일본에 입국할 수 있는 일일 한도를 2만 명으로 상향 조정했고 이에 따라 해외 연구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신고 조치의 범위도 더 넓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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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3
  • 법무부, 우크라이나 동포·가족 사증 발급절차 간소화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장관 박범계)는 외교부와 협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현지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재외공관 관할구역에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동포 등의 사증 신청서류를 대폭 간소화하여 신속히 입국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결핵진단서, 한국어능력 입증서류 등 제출서류 간소화 및 사증발급 수수료가 면제된다.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 동포(우크라이나에 장기거주하다가 피난 중인 동포 포함)와 가족 및 국내 장기체류자 중 현행 규정 상 가족초청이 가능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코로나 19 방역 지침에 따라 잠정적으로 발급이 중단되었던 비자를 일부 재개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법무부는 우크라이나 현지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우크라이나 동포 및 가족 그리고 과거 동포방문(C-3),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동반가족(F-1) 자격으로 입국한 적이 있는 동포에 한해서 동포 입증서류 없이 과거와 동일 자격으로 사증을 발급하며 여권 또는 신분증 등으로 동포임이 입증된 사람 및 가족은 세대별 입증서류 없이 단기사증(C-3)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밖에 결혼이민자 등 국내 장기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의 가족을 입증하는 경우 조건에 따라 사증 발급 가능하다. 단, 입국금지 및 사증발급 금지 대상자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된다. 박범계 장관은 “이번 사태로 국내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현지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안타깝다”며,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 없이 전쟁이 종식되어 국내외 동포와 가족 모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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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9
  • 법무부, 전자여행허가제(K-ETA) 내달 3일부터 시범 운영
    [동포투데이] 법무부는 한국에 무사증으로 입국이 가능했던 국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출발 전 미리 여행 허가를 받는 대한민국 전자여행허가제도(K-ETA)를 다음 달 3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K-ETA는 미국의 ESTA 제도와 같이 한국에 무사증으로 입국이 가능한 112개 국가의 국민을 대상으로 출발 전에 개인 및 여행 관련 정보를 입력한 뒤 여행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대상은 무사증 한국 입국이 가능했던 112개 국가 국민이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종료 시까지는 미국·영국 등 4월 현재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국가(21개) 국민 및 무사증 입국이 잠정 정지된 국가(91개) 국민 중 ‘기업인 등 우선 입국 대상자’를 대상으로 우선 시행한다. 우선 입국 대상자는 기존의 재외공관을 통환 사증 발급과 K-ETA 신청을 병행해야 한다. 가족 단위나 단체 여행객은 대표자가 최대 30명까지 신청할 수 있다. K-ETA 허가 여부는 신청인 메일로 자동 통보된다. 수수료는 1인당 1만 원 상당이며 한 번 허가를 받으면 2년간 유효하다. 유효 기간 내 반복 사용도 가능하고, 입국신고서 작성도 면제된다. 법무부는 4개월 간 시범 운영 후 오는 9월 1일부터 K-ETA를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시범 운영 기간 동안 K-ETA 신청은 의무가 아니며 수수료가 면제 및 2년 유효의 K-ETA 허가서 발급 등 혜택이 제공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K-ETA 허가를 받은 경우 사전 신청 정보를 기반으로 입국신고서 제출을 생략하고, 도착 전에 신속심사 대상과 정밀심사 대상으로 분류해 대상에 따른 맞춤형 심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며 “출입국자의 약 52%를 차지하는 무사증입국 외국인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져 안전한 국경관리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4-29
  • 법무부, 외국인 계절근로 제도 대폭 개선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는 농․어업 분야 구인난 해결을 위하여 지자체 등 의견을 반영한 계절근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였다. 법무부는 올해 37개 지자체에서 신청한 4,631명의 계절근로자를 전원 승인 배정하였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여전히 신규 입국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들이 계절근로에 보다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코로나19로 인하여 출국하지 못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 ▲미얀마 현지 정세 불안으로 특별체류 허가 조치를 받은 미얀마인 ▲방문취업 자격 동포와 가족 ▲취업이 허용되지 않는 동반 체류자격 외국인까지 확대 하였다고 29일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외국인근로자가 취업기간이 만료되었음에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자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60일 이상 계절근로 취업활동에 종사하면 향후 고용허가제를 통해 다시 국내에 입국하기 위한 한국어 능력시험 응시 시 가점을 부여하고 국내에서 숙련기능 인력으로 체류자격 변경 시 계절근로 종사 기간에 따라 가점을 부여하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방문취업 자격 동포가 국내에서 국가공인기술 자격증을 취득하면 출국 후 해외에서 재외동포(F-4) 체류자격을 받아 입국하여야 했으나 60일 이상 계절근로 취업활동에 종사하면 출국하지 않고 국내에서 재외동포 자격으로 변경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다음 계절근로자를 해외에서 초청시 해당 외국 지자체의 귀국보증서도 가능하도록 하고 결혼이민자의 친척을 계절근로자로 초청할 경우에는 귀국보증서 제출 의무를 면제하였다. 법무부는 올해 전반기에 계절근로자를 신청하지 못해 추가 배정을 요청한 횡성 서천군 등 13개 지자체, 703명 계절근로자에 대해서도 신속히 심사 후 5월에 승인 배정하여 적시에 계절근로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4-29
  • 영주권자 자녀, 한국국적 취득 쉬워진다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는 ‘영주자의 국내출생 자녀에 대한 간이 국적취득제도’의 도입과 ‘예외적 국적이탈허가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국적법'개정안을 마련하여 26일 입법예고 했다. 영주자격 소지자의 국내 출생 자녀에 대해 간이 국적취득제도 신설 영주자 자녀 간이국적취득제도는 국내에서 출생하여 우리나라와 유대가 깊은 영주자의 미성년 자녀가 우리 국적취득을 원하는 경우 신고에 의해 간이하게 국적을 취득하는 제도이다. 그동안 영주자의 자녀는 국내에서 출생하고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여 국민에 준할 정도의 정체성과 유대감을 갖고 있더라도 부모가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한 본인이 성년이 되어 귀화허가를 받기 전까지는 우리 국적을 취득할 수 없었다.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영주자의 국내출생 미성년자녀는 법무부장관에게 국적취득 신고를 하고, 그 신고가 수리되면 우리 국적을 곧바로 취득하게 된다. 6세 이하의 자녀는 별도 요건 없이 신고가 가능하고, 7세 이상인 경우는 국내에서 5년 이상 체류한 경우만 신고가 가능하다. 다만, 국적 제도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고려하여 모든 영주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2∼3대에 걸쳐 국내에서 출생하거나 우리와 역사적, 혈통적으로 유대 관계가 깊은 영주자를 우선 대상으로 하였다. 법무부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해외 다수의 국가들도 혈통과 출생에 의한 국적취득방식을 병행하고 있고 최근 국내에서의 국민인식조사 및 연구용역 등에서도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어 법안을 마련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예외적 국적이탈 허가 제도를 신설 헌법재판소는 2020년 9월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복수국적자로서 국적선택기간 내에 한국 국적을 이탈하지 못한 대상자에게 일률적으로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국적법 제12조 등에 대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결정(헌법불합치)을 하였다. 그동안 직계존속이 외국에서 영주할 목적으로 체류하던 중 출생한 복수국적자(남성)는 18세 3월까지는 국적 이탈이 가능하였으나, 그 기간이 지난 경우 병역의무를 해소하기 전까지는 국적이탈이 제한되어 왔다. 이에, 헌법재판소 결정 내용 등을 반영하여 ‘국적선택 기간 내에 본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유*로 우리 국적을 이탈할 수 없었던 복수국적자에게 국적을 이탈하지 못함으로써 중대한 불이익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법무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예외적으로 우리 국적을 이탈할 수 있는 제도’를 신설하였다. 여기에는 주된 생활 근거를 외국에 두고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경우, 외국에서 출생하고 국내에 입국한 사실이 없는 경우 등 사회통념상 신고를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해 본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사유와 우리 국적을 이탈하지 못함으로써 심각하게 직업 선택이 제한되는 등 본인에게 중대한 불이익이 예상되는 경우가 해당된다. 예외적 국적이탈 요건에 해당하는 복수국적자는 해외에 주소를 두고 재외공관을 통해 법무부장관에게 국적이탈을 신청할 수 있고, 이 신청 건은 내·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국적심의위원회 심의를 통해 허가 여부가 결정되게 된다. 국적제도는 국가 공동체의 구성원을 결정하는 것인 만큼 국적법 개정은 그 근간이 되는 국민들의 의견 수렴이 필수적인 바, 법무부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여, 최종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 제도는 우리사회와 유대가 깊은 영주자 자녀에게 조기에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정체성 함양과 안정적 정착에 도움을 주고,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미래 인적자원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4-26

연예·방송 검색결과

  • “슈퍼리치 이방인” 유희라, 미스틱스토리와 전속계약
    [동포투데이] 유희라가 미스틱스토리와 전속계약을 맺었다. 8일 소속사 미스틱스토리는 “다채로운매력을 가진 유희라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라고 밝히며 “앞으로의 다양한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유희라는 “미스틱스토리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싶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한편 유희라는 상위 1% 슈퍼리치들의 럭셔리한 한국 라이프를 들여다보는 리얼리티 쇼 Netflix “슈퍼리치 이방인”에 출연하여 패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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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8
  • 이호원, RISE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체결
    [동포투데이] 최근 가수 겸 배우 이호원이 5월 2일 RISE 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호원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연기 및 음악 활동을 이어 나갈 예정이다. RISE 엔터테인먼트는 이호원의 연기 및 음악 활동을 전반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할 예정이며, 더욱 다양하고 풍부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돕고 협업을 통해 그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한다. 이호원은 이번 전속계약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포부를 밝히며, 배우로서 다양한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랑을, 가수로서는 팬들에게 새로운 음악과 퍼포먼스로 보답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RISE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그동안의 경험과 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성장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RISE 엔터테인먼트 역시 이호원의 합류를 환영하며, 그의 연기와 음악적 역량 및 재능을 통해 함께 발전해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호원은 2022년 영화 <서울괴담 - 에피소드 치충>, 영화 <탄생>의 최양업 신부 역, 2023년 <시네마틱 노블2>, <내 인생 최고의 날> 등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폭넓은 연기를 보여줬으며, 매 작품 안정감 있는 연기력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었다. 한편 5월 11일에는 6년 만에 팬미팅을 개최해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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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 황금색 거즈 스커트 입은 디리러바 '여신 분위기 물씬'
    디리러바(1992년 6월 3일)는 신장 우루무치 출신으로 중국 여배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으며 상하이연극학원 연기과를 졸업했다. 2013년 첫 TV 시리즈 <아나이한>에 출연했으며, 2015년 TV 시리즈 <다이아몬드 러버>에서 가오웬 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졌다.2017년에는 <삼생삼세십리도화>에 박풍지우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예능 프로그램 <달려라>에 고정 멤버로 합류해 감미롭고 능청스러운 개성으로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맞았다. 2018년에는 드라마 <표량적이혜진>으로 중국 TV 골든이글 어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및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여배우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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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8
  • 베이징국제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영화와 패션’ 섹션 도입
    [동포투데이] 베이징 국제 영화제는 14년 역사상 처음으로 '영화와 패션' 섹션을 도입하여 영화와 패션 산업의 공생 관계를 강조했다고 행사 주최 측은 밝혔습니다. 이 섹션은 4월 18일 영화제 개막식 직전에 옌치 호수의 멋진 배경을 배경으로 중국의 유명 다운재킷 및 아우터 제조업체인 보시덩(Bosideng) 의 자외선 차단 의류 패션쇼로 시작되었다. 이 쇼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호주의 사운드 디자이너 데이비드 화이트, 배우 궈샤오동, 가수 샹원지,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등 스타들과 저명한 영화 제작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데이비드 화이트는 중국 영화 시장의 성장 가능성과 중국의 급성장하는 영화 산업에 참여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를 언급하며 베이징으로의 이전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작업으로 유명한 화이트는 내러티브와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 사운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스토리텔링에서 사운드 디자인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이번 쇼의 무대 디자인을 담당한 보시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트로 페라기나는 프랑스 감독 알랭 레네의 1961년 영화 <마리엔바드에서의 마지막 해>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적 예술성과 패션쇼의 융합을 강조했다. 베이징 국제 영화제의 '영화와 패션' 섹션은 영화와 패션 산업의 상호 연관성을 강조하고 두 예술 영역 간의 창의적인 시너지 효과와 상호 영감을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는 중요한 발걸음이다.
    • 연예·방송
    2024-04-20
  • 배우 김홍파, 브뤼셀 영화제 공식 초청
    [동포투데이]19일 오달수, 장영남, 김홍파 배우가 출연하는 서스펜스 드라마 장르의 영화 ‘오후 네시’가 제42회 브뤼셀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경쟁부문에 공식 초청되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은 벨기에 작가 아멜리 노통브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오후 네시’는 매일 오후 4시만 되면 찾아오는 이웃 남자로 인해 평온했던 한 부부의 일상이 서서히 악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서스펜스 영화다. ‘오후 네시’의 주연인 김홍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견배우로서 많은 작품에서 주조연으로 출연하여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최근 왓챠(드라마) 트렌드 지수1위를 차지한 ‘나의 해피엔드’에서 서창석(장나라분 의 아버지)역으로 미세하게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대중들에게 완성도 높은 연기력을 보여주는 등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며 품격 있는 연기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영화제에 참석한 김홍파 배우는 “좋은 작품을 함께 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오후 네시’가 국제 영화제에 공식초청 되어 매우 영광이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들을 통해 여러분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는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홍파 배우의 주요 출연작으로는 ‘화란’,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괴기맨숀’, ‘싱크홀’, ‘남산의 부장들’, ‘비스트’, ‘배심원들’, ‘내부자들’, ‘국가부도의 날’, ‘공작’, ‘검사외전’, ‘사바하’, ‘말모이’, ‘보안관’, ‘카지노’, ‘법쩐’, ’형사록1,2’, ’낭만닥터김사부2’, ’블랙독’, ‘귓속말’, ‘어느날’, 등이 있으며,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폭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이고 있다.
    • 연예·방송
    2024-04-19
  • 배우 김다솜이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캐스팅
    [동포투데이] 배우 김다솜이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출연한다. 15일, 소속사 스토리제이컴퍼니 측은 "김다솜이 새 드라마 '살롱 드 홈즈'에 캐스팅됐다. 주부 탐정단 막내 '소희' 역으로 변신할 김다솜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살롱 드 홈즈'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전건우 作)을 원작으로, 집안일에 치이고 타인에게 무시당하며 때로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마저 접어야 하는 주부들이 무관심 속 지나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상 속 증거들을 추적하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스토리의 드라마다. 김다솜은 극 중 주부 탐정단 4인 중 막내 '소희'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선보인다. 소희는 가장 어리지만 야무진 성격의 소유자로, 스쿠터를 타고 다니며 동네의 신속 정확한 배달을 책임지는 프로 라이더. 배달을 오가며 수집한 정보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주부 탐정단 내의 정보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할 예정이다. 앞서 김다솜은 SBS '언니는 살아있다!', tvN '사이코메트리 그녀석', JTBC '우리, 사랑했을까', MBC '꼭두의 계절'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눈에 띄는 캐릭터 소화력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드라마 '우연일까'에 이어 '살롱 드 홈즈'에도 출연하며 멈추지 않는 연기 열정을 보여주고 있는 바.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갈 그의 행보에 관심이 커진다.
    • 연예·방송
    2024-04-15
  • 박한별, 라이즈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체결
    [동포투데이] 배우 박한별이 라이즈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 15일 라이즈 엔터테인먼트는 배우 박한별을 첫 아티스트로 영입하며, 사업 영역 확장에 나선다. 라이즈 엔터테인먼트는 “박한별이 연예계 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든든한 파트너로서 아낌없는 지원을 펼칠 예정이고 새출발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린다" 고 전했다. 박한별은 소속사를 통해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게 됐다. 항상 팬분들의 기대와 성원에 보답할 수 있는 배우 박한별이 되겠다. 또한 라이즈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더 좋은 모습과 연기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라고 밝혔다. 박한별의 주요 영화 출연작으로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 <두 개의 달>, <여고괴담3>, <숙명> 등에 출연했고 , 주요 드라마로는 <슬플 때 사랑한다>, <보그맘>, <애인있어요>, <냄새를 보는 소녀>, <잘 키운 딸 하나>, <프리즈>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박한별은 현재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 연예·방송
    2024-04-15
  • 연변 유명 소품배우 김문혁, 뒤늦게 알려진 사망 소식…향년 59세
    [동포투데이] 중국 연변의 유명한 소품배우(코미디) 김문혁의 사망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김문혁 씨가 2024년 3월 8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9세. 해당 소식이 전해진 뒤 각종 SNS에는 추모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10년 3월, 김문혁 씨는 중풍으로 연변병원에 입원하며 기나긴 투병 생활이 시작했다. 연변병원에서 짧은 치료와 함께 “적절한 휴식과 운동을 하면 괜찮다”는 결과를 받고 퇴원했지만 얼마 뒤 신장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1년간 신장을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2011년 김문혁 씨는 끝내 신장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에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병마와 싸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연길시 조선족구연단에 입단한 김문혁 씨는 근 20년간 ‘술친구’,‘이웃사이’ 등 80여 편의 소품과 ‘사랑의 품’, ‘샘’ 등 드라마에 출연한 중견 배우이다. 때로는 두 오누이를 둔 삼륜차몰이 조선족 아버지를 진솔하게 그려낸 연기자로, 때로는 조선 족들 특유의 일상을 재치 있게 무대에 녹여낸 소품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연예·방송
    2024-03-16
  • 양대혁, 미스틱스토리와 전속계약…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동포투데이] 양대혁이 미스틱스토리의 새 식구로 합류했다. 7일 소속사 미스틱스토리는 “다채로운 매력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갖춘 배우 양대혁과 전속계약을 하게 되어 기쁘다. 탄탄한 연기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양대혁은 2017년 KBS 2TV ‘고백부부’로 데뷔해 영화 ‘백두산’, tvN ‘슬기로운 감빵생활’, JTBC ‘야식남녀’, tvN ‘스타트업’, KBS 2TV ‘삼남매가 용감하게’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극에 몰입감을 더해왔다. 최근에는 KBS 2TV 새 주말 드라마 ‘미녀와 순정남’에 출연을 확정하며 활발한 활동을 예고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훈훈한 외모는 물론 맡는 배역마다 개성 넘치는 연기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양대혁이 미스틱스토리와 손을 잡고 펼쳐나갈 시너지에 귀추가 주목된다.
    • 연예·방송
    2024-02-07
  • 류더화,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 선출…대회 현장 공개
    [동포퉤이]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영화인협회(中國電影家協會) 제1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천다오밍이 중국영화인협 주석을 연임하고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가 처음으로 중국영화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류 부주석의 회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을 모았고, '싱다오환구망(星島環球網)'은 그의 대회 참가 사진을 여러 장 단독 입수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류더화는 블랙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포멀한 룩을 연출했다. 그가 투표할 때 웃는 얼굴로 '지나가던' 모자를 쓴 남자가 바로 우징. 류더화는 현장에서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유명 배우 리쉐젠을 부축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차기 중국영화인협회 지도부와 중국 문련 지도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앞줄은 리이 중국문련 당조 서기 등 문련 지도부와 천다오밍 영화인협회 주석, 리쉐젠 전 영화인협회 주석, 부주석이 뒷줄, 류더화가 뒷줄 오른쪽 2번째.
    • 연예·방송
    2024-02-01

스포츠 검색결과

  • 파리올림픽 ·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 공개
    [동포투데이]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가 3월 4일(현지시간) 오르세 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 프랑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우고 가토니가 만든 이 두 포스터는 올림픽 포스터 역사의 큰 혁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요소가 많고 디테일이 풍부해 기존 올림픽 포스터 디자인의 전통을 깼다. 색채 활용에 일가견이 있는 예술가로서, 가토니는 파리와 프랑스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이번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모든 스포츠를 포함하는 다원적이고 번영하는 미시세계를 상상했고, 동시에 파리 올림픽의 혁신적인 특징들을 보여주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두 개의 포스터를 별도의 두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하나로 합쳐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할 수도 있는데, 왼쪽이 올림픽, 오른쪽이 패럴림픽이다. 가토니는 "디자인한 영감의 원천은 파리의 랜드마크 건물들을 재배열한 거대한 도시 경기장"이라며 "에펠탑은 스타드 드 프랑스 중앙을 관통하며 센 강, 개선문, 콩코드 광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즐거운 스포츠 카니발처럼 보이는 포스터 전체는 즐거운 스포츠 축제를 원하는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비전과도 부합하며, 가까이서 보면 포스터의 수많은 디테일들이 관객들에게 발견의 즐거움과 새로운 탐구의 충동을 선사한다. 포스터에는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 8개가 숨겨져 있어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올림픽 오륜기와 패럴림픽 삼색 엠블럼, 대중 마라톤, 올림픽 격언 등도 찾아볼 수 있다. 두 포스터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것으로 전체 제작 과정은 약 2000시간이 걸렸다. 토니 에탕게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이 두 포스터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에탕게는 "이것은 단순한 포스터가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요소를 담고 싶고, 남들과 다르길 원한다"며 "이는 올림픽 역사상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두 포스터는 3월 10일까지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두 포스터는 공개 시점부터 파리 2024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각각 29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 스포츠
    2024-03-07
  • 호날두, 팬들 앞에서 ‘음란 제스처’...사우디축구협회 조사 착수
    [동포투데이]아랍 언론 '앗샤르끄 알아우싸뜨'는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 징계윤리위원회가 알 나스르의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알샤바브 FC 팬들을 향해 음란한 제스처를 취한 것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호날두는 지난 일요일 사우디아라비아 프로리그 2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알 나스르가 알샤바브 FC를 3-2로 꺾는 과정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했다. 경기 후 홈팬들을 향해 몸을 돌린 호날두는 사타구니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여러 번 흔들었다. 스페인의 스포츠 일간지 마르카(MARCA)는 상대팀 팬이 관중석에서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의 이름을 연호한 데 대한 호날두의 화답이었다고 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축구협회 징계윤리위원회는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논평을 낼 것으로 알려졌으며 조만간 호날두에 대한 징계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 스포츠
    2024-02-26
  • 네덜란드 국가대표 프로메스,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6년 선고
    [동포투데이] 유럽타임스(European Times) 보도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14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뛰고 있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퀸시 프로메스(Quincy Promes)가 1톤 이상의 코카인을 네덜란드로 밀반입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2020년 프로메스가 공범자들의 도움으로 벨기에 앤트워프 항구를 통해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로 1,363kg의 코카인을 운송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추정했다. 프로메스의 변호인은 검사가 프로메스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고 프로메스는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50경기 출전한 32세의 이 선수는 네덜란드 경찰에 체포될 것을 우려해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현재 프로메스에 대한 국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며 그는 아직까지 러시아로부터 송환되지 않았다. 프로메스는 또 다른 사건에서 목걸이를 도난당한 후 사촌동생을 칼로 찌른 혐의로 18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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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메시 경기 불참, 홍콩 정부 “매우 실망스럽다” 입장 표명
    [동포투데이] 지난 일요일(2월 4일) 홍콩에서 열린 인터 마이애미 FC VS 홍콩리그 플레이어스 친선경기에서 스타 리오넬 메시가 근육 염증으로 경기에 나서지 않아 야유 속에 경기를 마쳤고, 메시의 기량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홍콩 정부는 메시의 불참에 대해 극도의 실망감을 표하며 두 차례나 성명을 발표했다. 밍파오 데일리(Ming Pao Daily), Sing Tao Daily(싱타오 데일리),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경기에는 3만 8천여 명의 관중이 운집했으며, 일부는 경기장 밖 언덕에 앉아 멀리서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결국 마이애미가 홍콩 리그 플레이어스 팀을 4-1로 꺾었다. 하지만 마이애미에서 뛰고 있는 메시와 우루과이의 베테랑 루이스 수아레스는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수아레스는 사이드 라인에서 몸을 풀기만 했고 메시는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있었다. 팬들은 경기 시작 60분경부터 "메시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고, 야유와 함께 티켓 환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팬이 경기장 내 메시의 초상화처럼 보이는 광고판을 발로 차는 장면이 온라인 영상에 포착되기도 했다. 마이애미 마르티노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메시와 수아레스위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두 선수를 라인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마르티노 감독은 경기 전에 가능하면 메시를 기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성명을 내고 "메시의 불참과 관련해 가능한 한 빨리 자세한 설명과 해명을 하지 못한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며 "이번 대회에 1500만 홍콩 달러의 매칭 그랜트와 100만 홍콩 달러의 필드 보조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팬들에게 멋진 경기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기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장 마련과 관중 관리 등 여러 조정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홍콩 정부는 또한 문화체육관광국과 주요 스포츠 행사 위원회는 메시의 불참에 따른 후원금 공제 가능성을 포함하여 계약 조항에 따라 주최 측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 측인 태틀러도 성명을 내고 메시와 수아레스의 경기 불참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며 사전에 이들의 불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 스포츠
    2024-02-05
  • 日 국가대표 선수 '성폭행 스캔들' 연루
    [동포투데이] 일본 국가대표 이토 준야가 성폭행 논란에 휩싸여 아시안컵 도중 대표팀에서 하차하자 모리야스 감독이 화답했다. 3일 복수의 일본 매체에 따르면 일본 축구 대표팀 선수 이토 준야가 성추행 의혹이 언론에 폭로되자 아시안컵 일정 중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모리야스 일본 대표팀 감독은 2일 기자간담회에서 이토와 이야기를 나눴으며 "현재 정신상태로는 고강도 경기를 펼칠 수 없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모리야스 감독은 "이토 준야와 함께 우승을 목표로 아시안컵을 완주하고 싶었지만 본인의 의지와 일본축구협회의 결정에 팀을 떠나는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토가 그동안 여러번의 승리에 기여했다며 팀 이탈을 아쉬워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이토와 이야기를 나눴고 이토는 이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런 정신 상태로는 경기장에서 높은 강도로 활약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가능한 한 빨리 전성기 때의 컨디션을 되찾을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앞서 일본 언론은 지난 1월 31일 여성 2명이 지난해 6월 이토 준야가 자신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오사카부 경찰에 형사고발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이토 준야의 변호인 역시 위 진술이 허위사실이며 성폭행은 발생하지 않았다며 지난 2월 1일 오사카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이토 준야가 위에서 언급한 두 여성과 함께 호텔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들의 진술이 바뀌었고 물적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오사카부 경찰은 양측의 증언을 청취하고 사건을 신중하게 조사할 예정이다. 한편 일본은 3일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이란과 4강 진출을 다툰다.
    • 스포츠
    2024-02-03
  •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 부진은 낮은 IQ와 교육 수준 탓”
    [동포투데이]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의 낮은 IQ와 교육 수준이 점점 더 저조한 성적을 거두는 근본 원인이다.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의 성적이 저조한 이유는 수년 동안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연구되어 왔으며 결론은 다양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진단과 약물 처방후에도 베트남은 물론 인도네시아조차도 이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의 문제는 전문가들에 의해 성공적으로 해결된 적이 없다.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의 근본 원인은 선수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고 IQ가 낮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축구는 달리기와 볼 컨트롤 기술, 키와 힘 등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체력과 기술이 축구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축구가 왜 세계 최고의 스포츠일까? 축구는 체력과 기술뿐만 아니라 IQ도 축구의 일부이기 때문에 키가 크고 힘이 세고 빠른 팀도 IQ가 낮으면 작고 힘이 약한 팀에게 질 수 있다. 최고의 신체 조건을 갖춘 아프리카 선수들이 최강의 팀을 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중국 남자 축구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는 이유와 같은 이유, 즉 낮은 IQ 때문이다. 사실 축구 경기는 입구가 자기 골대 앞이고 출구가 상대 골대인 미로를 걷는 것과 같다. 양쪽에서 22명의 선수가 계속 뛰기 때문에 미로는 수시로 바뀌고 난이도가 높아진다. IQ가 낮으면 미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공을 패스하는 방법을 모르고 무작위로 공을 패스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번 아시안캅 예선에서 카타르 남자축구대표팀은 고의로 공을 내주고 교체선수를 내보내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 미로의 난이도를 낮춘 셈이다. 그런데 중국 남자축구대표팀은 왜 골을 넣지 못하는 걸까? 왜냐하면 중국 남자 축구 선수들의 IQ는 난이도가 낮아지든 말든 상관없이 현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중국 남자 축구 선수들은 어떻게 패스를 해야 합리적인 패스인지 전혀 모른다. 머리가 비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린펑은 체격이 좋고 경기 경험이 풍부하지만 공을 잡은 뒤 틈만 나면 상대 선수가 밀착 수비하는 동료에게 패스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에서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만 축구를 하는데 자라서 경기에 나갔을 때 어떻게 지능적인 축구, 창의적인 축구를 할 수 있을까? 모두가 머리 없는 파리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닐 뿐이다. 같은 동아시아 인종인 일본과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이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보다 나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남자 축구 대표팀은 30년 전에만 해도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보다 훨씬 열세였고, 현재도 중국 남자 축구 대표팀보다 신체 조건은 훨씬 열세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과 한국 남자 축구 선수들은 대학 리그를 뛰었고 적어도 대학생 인 반면 중국 남자 축구 선수들은 시험을 치르면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체적인 소질과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IQ가 부서지는 것이다. 실제로 IQ는 실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IQ가 낮은 사람은 무엇이든지 배우는 속도가 느리고, 유연성을 발휘하는 능력은 더욱 떨어진다. 축구 실력은 수학, 물리, 화학의 공식과 동일하므로 문제를 해결할 때 유연하게 활용해야 한다.(시나 스포츠)
    • 스포츠
    2024-01-29
  • 독일 축구 전설 베켄바우어, 78세로 사망
    [동포투데이] 독일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프란츠 베켄바우의 가족은 베켄바우어가 8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9일 확인했다. 베켄바우어는 1974년 월드컵 우승에 이어 1990년 감독으로 다시 월드컵 정상에 올랐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연속 우승으로 이끌며 '시저 대제'라는 칭호를 얻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서독과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선수였던 베켄바우어는 서독에서 103경기에 출전해 1972년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1974년 FIFA 월드컵에서도 우승했다.그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동안 바이에른은 세계 최강팀 중 하나로 유로파리그 3회 연속 우승과 분데스리가 3회 우승을 차지했고, 베켄바우어도 두 차례 올해의 유럽 축구 선수로 선정됐다.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서독 대표팀을 이끌고 1986년 월드컵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패했지만, 4년 후 독일은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저 대제'라는 별명을 가진 베켄바우어는 선수와 감독으로 월드컵에서 우승한 세 사람 중 한 명으로, 브라질의 저갈루(사망), 프랑스의 데샹과 함께 월드컵에서 우승한 인물이다. 감독 생활을 마친 베켄바우어는 축구 행정가로 자리를 옮겼지만, 2018년과 2022년 월드컵 개최권을 노린 부패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16년 FIFA 윤리위원회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았다.
    • 스포츠
    2024-01-09
  • 브라질 축구 ‘전설’ 자갈루 92세의 나이로 별세
    [동포투데이] 월드컵 4회 우승이자 브라질 축구의 전설 마리오 자갈루가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자갈루의 가족은 토요일 새벽 그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자갈루가 유일하게 월드컵 4회 우승을 차지한 전설이라고 밝혔다. 1931년 브라질 아라고아스에서 태어난 그는 선수와 감독 시절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선수 시절 자갈루는 작은 클럽에서 시작해 브라질 내 큰 클럽인 플라멩코, 보타포고에서 뛰었다. 주로 왼쪽 측면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 그는 1958년과 1962년 펠레, 가린샤와 함께 브라질의 월드컵 2회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1970년 은퇴한 자갈루는 감독으로 브라질을 월드컵에 출전시키고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이로써 월드컵 3회 우승을 거둔 삼바군단은 당시 세계 축구계 최고의 영예였던 쥘 리메 컵을 영구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자갈루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컵을 우승한 최초의 전설이 되었다. 자갈루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 업적을 달성한 사람은 독일의 축구 황제 베켄바우어와 프랑스 축구계의 거물 디디에 데샹뿐이다. 1994년 예순을 넘긴 자갈루는 페레이라 감독을 보좌하며 브라질의 월드컵 진출과 또 한 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삼바군단의 첫 네 차례 월드컵 우승 과정에는 모두 자갈로가 등장했다. 오늘날 브라질이 '축구 왕국'으로 불리는 데는 자갈루의 공이 크다. 자갈루는 브라질 대표팀 역사상 두 번이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개최국 프랑스에 0: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감독으로서 자갈로는 5번째 월드컵 우승의 기회를 놓쳤고, 그 결승전 때문에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브라질축구협회는 '영원한 챔피언'이었던 자갈루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7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브라질축구협회로드리게스 회장은 자갈루가 브라질 축구계의 가장 위대한 전설 중 한 명이라며 "우리의 축구 우상이 떠난 것을 아쉬워하는 이 시점에서 브라질축구협회는 그의 가족과 팬들에게 위로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 스포츠
    2024-01-07
  • 신화통신 선정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
    [동포투데이] 신화통신이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1. 막스 베르스타펜(네덜란드, 男 26세, 스포츠카) 2023시즌 포뮬러원 챔피언십(F1)이 마무리되는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레드불 레이싱팀의 베르스타펜이 폴포지션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올해 22개 대회에서 21차례 포디움에 오르며 19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F1 시즌 승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서 지난 10월 카타르 그랑프리에서는 올해의 드라이버 종합 우승을 일찌감치 차지한 바 있은 베르스타펜이다, 이번 우승은 그의 3회 연속이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레드불 레이싱의 네덜란드 선수인 막스 베르스타펜이 세계 포뮬러 원 챔피언십(F1) 바레인 그랑프리 본선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2. 아이타나 본마티, (스페인, 女 25세, 축구) 본마티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에서 팀메이트들과 함께 미드필드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사상 첫 우승컵을 안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지난 10월에 열린 2023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여자 골든글로브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사진은 지난 8월 20일 스페인 대표팀 아이타나 본마티가 2023년 여자축구 월드컵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3.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男 28세, 농구) 2022∼2023시즌 메이저리그(NBA)에서 덴버 너기츠를 창단 첫 종합 우승컵으로 이끈 세르비아 출신의 미드필더 요키치는 파이널 MVP에 개인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 MVP로 3연속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시즌 평균 24.5점, 11.8개의 리바운드, 9.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정상을 지켰다. 지난 6월 12일, 덴버 너기츠의 니콜라 요키치(전좌)가 2022-2023 시즌 NBA 파이널 MVP로 선정(사진)되었다. 4. 시몬 바일스(미국, 女 26세, 체조) 미국 체조선수 바일스가 심리적 문제로 도쿄올림픽에서 리타이어하는 파란을 겪은 뒤 2023년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 8월, 그는 전미선수권대회에서 사상 8번째로 여자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년 만에 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6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26세의 바일스는 체조 역사상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34개)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사진은 지난 10월 8일, 미국 선수 사이먼 바일스가 2023년 체조 세계선수권 평균대 시상에 나서는 모습이다. 5. 미카엘라 시플린(미국, 女 28세, 스키) 2022-2023 눈시즌에는 미국의 스키선수 시플린이 알파인스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쾰른플라츠에서 열린 예선에서 여자 그랜드슬램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83승으로 월드컵 최다 여자 알파인스키 선수가 되었고,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이를 88경기로 경신하며 스웨덴 남자선수 스텐마르크의 86경기를 제치고 월드컵 역사상 최다 우승을 차지하였다. 사진은 미국 선수 미카엘라 시플린이 2023년 1월 4일 자그레브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회전 경기에서의 모습이다. 6. 켈빈 킵툼(케냐, 男 24세, 육상) 2023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킵탐은 2시간 0분 35초로 완주하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공식 경기에서 2시간 1분을 돌파한 최초의 마라톤 선수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우승 기록은 케냐 명인 킵초그가 세운 2시간 1분 9초의 전 세계 기록을 34초나 뛰어넘었다. 사진은 지난 4월 23일 케냐의 캘빈 킵툼이 런던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7. 케일리 맥커운 (호주, 女 22세, 수영) 호주의 명장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0, 100m, 200m 배영 우승을 석권하면서 중국의친하이양(覃海洋)과 함께 같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여자 배영 금메달 9개를 석권하고 부다페스트에서는 50m와 100m 배영 결승에서 두 차례 세계 기록을 경신하면서 여자 50m, 100m, 200m 배영 세계 기록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지난 10월에는 세계수영연맹 올해의 여자 수영 선수로 선정되었다. 사진은 지난 7월 29일 호주 선수 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200m 배영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8. 페이스 킵예곤(케냐, 女 29세, 육상) 지난 6월, 두 번의 IAA 다이아몬드 리그에서 킵예곤은 여자 1,500m와 여자 5,000m 세계 기록을 연이어 경신했고, 7월에는 비올림픽 여자 1마일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5,000m 세계 기록은 지난 9월에 에티오피아가 경신했지만 킵예곤이 1년 동안 세 번이나 세계 기록을 깬 것은 아직 보기 드문 일이다. 지난 8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1500m와 5000m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재 세계주니어챔피언, 세계챔피언, 올림픽챔피언, 세계기록 보유자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선수이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케냐의 페이스킵예곤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9.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男 36세, 테니스) 조코비치는 2023년 네 번째 US오픈 우승 이후 통산 24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3관왕인 세리나 윌리엄스를 제치고 오픈 1위 독주 시대를 열었다. 연말에는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2023년 종별 결선에서 7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페더러와 통산 6번의 종별 결선 우승 기록을 깨기도 했다. 2023년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조코비치는 그중 3개의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윔블던 결승에서는 후발주자인 알칼라스에게만 졌다. 그가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이 경기에서 10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세르비아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가 2023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시상식에서의 모습이다. 10. 친하이양(중국, 男 24세, 수영) 지난 7월에 열린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친하이양(覃海洋)이 남자 50, 100m, 200m 평영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사상 최초로 같은 대회에서 평영 3개 종목 금메달을 석권하며 남자 200m 평영 세계기록을 깼다. 2023년에는 청두대학생운동회에서 그는 철물을 따내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MVP를 수상하면서 수영 월드컵에서 월드컵 올해의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23일, 중국 선수 친하이양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023년 세계수영연맹 최우수 남자 선수로 선정된 날의 모습이다.
    • 스포츠
    2023-12-31
  • 구아이링, '포브스' 선정 女운동선수 수입 2위 등극
    [동포투데이] 최근 포브스(Forbes)는 2023년 스포츠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여성 운동선수 순위를 발표했다. 구아이링(Gu Ailing)은 연봉 2,210만 달러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수입은 2010만 달러로 3위에 올랐고, 올해 수입과 순위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지배하는 목록이다. 골프와 축구가 그 뒤를 이었다. 틈새 스포츠 출신의 스키어들이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포브스는 2008년부터 이 (여성) 리스트를 발표해 왔는데, 1위 자리는 예외 없이 테니스 선수들이 독점해 왔다. 샤라포바는 8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뒤 2016년 세레나 윌리엄스로 교체됐다. 다음은 일본인 오사카 나오미이다. 올해 폴란드 선수 이가 시비옹테크는 2,390만 달러의 수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명단에는 구아이링을 제외한 여자 선수 상위 10명 중 9명이 테니스 선수였다. 11명에서 20명 사이에 골프와 테니스가 각각 2명씩 선정되었다. 배드민턴(신두), 농구(캔더스 파커), 체조(바일스)는 각각 1명의 선수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들은 모두 13위를 벗어나 있다. 테니스, 골프, 축구는 전문화된 스포츠로, 이들 스포츠에 종사하는 선수들의 대회 상금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가 시비옹테크의 경기장 내 수입은 미화 990만 달러이고, 경기장 밖 수입은 미화 1,400만 달러이다. 틈새 스포츠에 종사하는 선수들의 경기장 내 수입은 미미하며 주로 경기장 밖에서의 후원과 상업 활동에 의존한다. 2023년 구아이링의 경기장 내 수입은 미화 10만 달러에 불과한 반면, 경기장 밖 수입은 최대 2,200만 달러에 이른다. 즉, 구아이링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업적 가치를 지닌 여자 운동선수이다. 구아이링은 독보적인 스키 천재로 프리스타일 스키점프, 슬로프스타일, U자형 종목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해 동계올림픽 기간 중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구아이링은 미국을 대표할 기회를 포기하고 중국 편에 서서 중국인들의 호의를 극대화했다. 게다가 동서양 미학을 모두 갖춘 절묘한 얼굴을 갖고 있으며, 스탠포드 대학교 우등생의 모습도 갖고 있다. 이러한 요소가 그녀를 상업 브랜드의 '총아'로 만들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그녀가 광고한 브랜드 및 기타 비즈니스 제휴는 루이비통, IWC 만국표, 빅토리아 시크릿, 비자, 캐딜락 등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를 비롯해 안타, 멍뉴, 징둥 등 국내 유명 브랜드를 망라한 22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구아이링의 모델 출연료는 연간 1500만~1600만 위안까지 치솟았다. 2022년 말 포브스가 발표한 여자 선수 수입 순위에서 2010만 달러로 3위에 올랐다. 그녀가 많은 브랜드를 광고하고 국가 차원에서 주는 보너스가 두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구아이링의 수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동계 올림픽 이후 그녀의 수입이 감소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한편 그녀와 많은 브랜드의 협력은 주로 1년 계약이나 몇 개월의 단기 후원으로 올림픽 마케팅을 목표로 삼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정체성 문제로 인해 여론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다소 신중하게 행동하는 브랜드들을 외면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 스포츠
    2023-12-25

포토뉴스 검색결과

  • 황금색 거즈 스커트 입은 디리러바 '여신 분위기 물씬'
    디리러바(1992년 6월 3일)는 신장 우루무치 출신으로 중국 여배우이다. 어린 시절부터 무용,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으며 상하이연극학원 연기과를 졸업했다. 2013년 첫 TV 시리즈 <아나이한>에 출연했으며, 2015년 TV 시리즈 <다이아몬드 러버>에서 가오웬 역으로 출연해 유명해졌다.2017년에는 <삼생삼세십리도화>에 박풍지우 역으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예능 프로그램 <달려라>에 고정 멤버로 합류해 감미롭고 능청스러운 개성으로 인기를 끌며 전성기를 맞았다. 2018년에는 드라마 <표량적이혜진>으로 중국 TV 골든이글 어워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배우 및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여배우 2관왕에 올랐다.
    • 연예·방송
    2024-04-28
  • 재즈댄스페스타 유료관객 100% 기염...문예총국제댄스갈라쇼 초청공연 진행
    [동포투데이]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실용무용 김미정 교수의 프로젝트 재즈댄스페스타가 지난 2월 24일 SAC 아트홀에서 티켓 오픈 일주일 만에 전석이 매진되며 유료관객 100% 라는 무용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매진율을 기록하였으며 이어 매년 개최되는 2024문예총국제댄스 갈라쇼에 초청되어 다가오는 4월 8일~10일 몽골,중국 무용수들과 함께 국제청소년컨퍼런스홀에서 워크샵을 리드하며 다시한번 뜨거운 앵콜 공연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많은 관객의 뜨거운 호응 속에 성료된 재즈댄스페스타(Jazz Dance Festa) vol.1 메모리(Memory)는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재즈댄스전공 졸업자 안무가들이 주축이 되어 제작된 첫 번째 재즈댄스 페스티벌로서 다양성과 생명력 있는 콘텐츠로 호평을 받으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행사 1부에서는 재즈댄스 흐름과 방향성을 밝히는 학술세미나와 전수정, 박정은의 팀 나비야의 공연으로 이루어졌고 2부에서는 조혜성, 김수현.박윤지, 김지원, 이유진, 박예나 안무가들의 재즈댄스 작품과 비온더스테이지의 뮤지컬 축하 갈라쇼, 팀 프라우드먼에서 활동 중인 성민경 안무가와 이춘명 서울탄츠스테이션, 양시정 튠댄스컴퍼니, 김미정 나인아트프로젝트 재즈댄스 마스터들의 공연까지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작품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은 공연이다. 김미정 교수는 “뮤지컬 시장의 확대와 K-pop의 글로벌화 등 대중문화예술의 발전으로 실용무용의 위치가 높아지고 있고 재즈댄스 움직임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안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이번 행사를 계기로 재즈댄스 공연이 더욱 활성화되어 국내,해외 재즈댄스 아카이브가 구축되어 재즈댄스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교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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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뉴스
    • 문화
    2024-03-11
  • 광저우 리신샤 대교 붕괴...5명 사망
    [동포투데이] 22일 05시 30분경 컨테이너선 한 척이 포산 남해에서 광주 남사로 가는 길에 홍치류 수로를 항해하다가 리신샤 대교 교각을 들이받아 2차선 도로인 상판이 무너져 내렸다. 광저우시 해상수색센터는 차량 2대가 바다에 추락했고, 3대가 선박에 떨어졌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원인은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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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24-02-22
  • 고속열차에 설치된 어린이 놀이터
    [동포투데이] 최근 중국의 한 고속철도가 춘제 여행의 혼잡 속에서 식당차를 어린이 놀이터로 바꿔 많은 승객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1월 29일 푸젠성 샤먼에서 상하이로 출발하는 G1654 열차는 식당차의 일부를 장난감과 동화책이 제공되고 열차 승무원이 아이들과 게임을 하는 어린이 놀이터로 개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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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뉴스
    • 아시아
    2024-02-02
  • 류더화, 중국영화인협회 부주석 선출…대회 현장 공개
    [동포퉤이] 1월 29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영화인협회(中國電影家協會) 제11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천다오밍이 중국영화인협 주석을 연임하고 홍콩 스타 류더화(劉德華)가 처음으로 중국영화가협회 부주석에 선출되었다. 류 부주석의 회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을 모았고, '싱다오환구망(星島環球網)'은 그의 대회 참가 사진을 여러 장 단독 입수해 독자들에게 공개했다. 류더화는 블랙 슈트에 화이트 셔츠를 입고 포멀한 룩을 연출했다. 그가 투표할 때 웃는 얼굴로 '지나가던' 모자를 쓴 남자가 바로 우징. 류더화는 현장에서도 마스크를 자주 착용한다. 유명 배우 리쉐젠을 부축하여 제자의 예를 갖추었다. 차기 중국영화인협회 지도부와 중국 문련 지도부가 함께 찍은 사진도 있는데 앞줄은 리이 중국문련 당조 서기 등 문련 지도부와 천다오밍 영화인협회 주석, 리쉐젠 전 영화인협회 주석, 부주석이 뒷줄, 류더화가 뒷줄 오른쪽 2번째.
    • 연예·방송
    2024-02-01
  • 신화통신 선정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
    [동포투데이] 신화통신이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1. 막스 베르스타펜(네덜란드, 男 26세, 스포츠카) 2023시즌 포뮬러원 챔피언십(F1)이 마무리되는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레드불 레이싱팀의 베르스타펜이 폴포지션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올해 22개 대회에서 21차례 포디움에 오르며 19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F1 시즌 승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서 지난 10월 카타르 그랑프리에서는 올해의 드라이버 종합 우승을 일찌감치 차지한 바 있은 베르스타펜이다, 이번 우승은 그의 3회 연속이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레드불 레이싱의 네덜란드 선수인 막스 베르스타펜이 세계 포뮬러 원 챔피언십(F1) 바레인 그랑프리 본선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2. 아이타나 본마티, (스페인, 女 25세, 축구) 본마티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에서 팀메이트들과 함께 미드필드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사상 첫 우승컵을 안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지난 10월에 열린 2023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여자 골든글로브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사진은 지난 8월 20일 스페인 대표팀 아이타나 본마티가 2023년 여자축구 월드컵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3.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男 28세, 농구) 2022∼2023시즌 메이저리그(NBA)에서 덴버 너기츠를 창단 첫 종합 우승컵으로 이끈 세르비아 출신의 미드필더 요키치는 파이널 MVP에 개인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 MVP로 3연속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시즌 평균 24.5점, 11.8개의 리바운드, 9.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정상을 지켰다. 지난 6월 12일, 덴버 너기츠의 니콜라 요키치(전좌)가 2022-2023 시즌 NBA 파이널 MVP로 선정(사진)되었다. 4. 시몬 바일스(미국, 女 26세, 체조) 미국 체조선수 바일스가 심리적 문제로 도쿄올림픽에서 리타이어하는 파란을 겪은 뒤 2023년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 8월, 그는 전미선수권대회에서 사상 8번째로 여자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년 만에 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6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26세의 바일스는 체조 역사상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34개)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사진은 지난 10월 8일, 미국 선수 사이먼 바일스가 2023년 체조 세계선수권 평균대 시상에 나서는 모습이다. 5. 미카엘라 시플린(미국, 女 28세, 스키) 2022-2023 눈시즌에는 미국의 스키선수 시플린이 알파인스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쾰른플라츠에서 열린 예선에서 여자 그랜드슬램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83승으로 월드컵 최다 여자 알파인스키 선수가 되었고,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이를 88경기로 경신하며 스웨덴 남자선수 스텐마르크의 86경기를 제치고 월드컵 역사상 최다 우승을 차지하였다. 사진은 미국 선수 미카엘라 시플린이 2023년 1월 4일 자그레브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회전 경기에서의 모습이다. 6. 켈빈 킵툼(케냐, 男 24세, 육상) 2023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킵탐은 2시간 0분 35초로 완주하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공식 경기에서 2시간 1분을 돌파한 최초의 마라톤 선수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우승 기록은 케냐 명인 킵초그가 세운 2시간 1분 9초의 전 세계 기록을 34초나 뛰어넘었다. 사진은 지난 4월 23일 케냐의 캘빈 킵툼이 런던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7. 케일리 맥커운 (호주, 女 22세, 수영) 호주의 명장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0, 100m, 200m 배영 우승을 석권하면서 중국의친하이양(覃海洋)과 함께 같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여자 배영 금메달 9개를 석권하고 부다페스트에서는 50m와 100m 배영 결승에서 두 차례 세계 기록을 경신하면서 여자 50m, 100m, 200m 배영 세계 기록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지난 10월에는 세계수영연맹 올해의 여자 수영 선수로 선정되었다. 사진은 지난 7월 29일 호주 선수 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200m 배영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8. 페이스 킵예곤(케냐, 女 29세, 육상) 지난 6월, 두 번의 IAA 다이아몬드 리그에서 킵예곤은 여자 1,500m와 여자 5,000m 세계 기록을 연이어 경신했고, 7월에는 비올림픽 여자 1마일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5,000m 세계 기록은 지난 9월에 에티오피아가 경신했지만 킵예곤이 1년 동안 세 번이나 세계 기록을 깬 것은 아직 보기 드문 일이다. 지난 8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1500m와 5000m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재 세계주니어챔피언, 세계챔피언, 올림픽챔피언, 세계기록 보유자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선수이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케냐의 페이스킵예곤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9.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男 36세, 테니스) 조코비치는 2023년 네 번째 US오픈 우승 이후 통산 24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3관왕인 세리나 윌리엄스를 제치고 오픈 1위 독주 시대를 열었다. 연말에는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2023년 종별 결선에서 7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페더러와 통산 6번의 종별 결선 우승 기록을 깨기도 했다. 2023년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조코비치는 그중 3개의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윔블던 결승에서는 후발주자인 알칼라스에게만 졌다. 그가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이 경기에서 10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세르비아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가 2023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시상식에서의 모습이다. 10. 친하이양(중국, 男 24세, 수영) 지난 7월에 열린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친하이양(覃海洋)이 남자 50, 100m, 200m 평영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사상 최초로 같은 대회에서 평영 3개 종목 금메달을 석권하며 남자 200m 평영 세계기록을 깼다. 2023년에는 청두대학생운동회에서 그는 철물을 따내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MVP를 수상하면서 수영 월드컵에서 월드컵 올해의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23일, 중국 선수 친하이양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023년 세계수영연맹 최우수 남자 선수로 선정된 날의 모습이다.
    • 스포츠
    2023-12-31
  • [포토] 연길조선족민속원
    [동포투데이] 왕홍챵(网红墙)부터 조선족민속원까지, 연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정교한 화장과 색다른 민족의상, 웃음 가득한 젊은 얼굴들은 소도시 연길의 아름다운 풍경선이 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왕홍도시(网红城市)’로서 연길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높아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다. 현지 당국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2023년 10월 현재 이곳 한복대여점은 연초 102개에서 현재 573개로 증가했다. 민족적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이 변방의 소도시는 싼야, 리장 등 도시에 이어 국내에서 또 하나의 여행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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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10
  • 2023 문교협카시아국제무용콩쿠르 성료
    [동포투데이] 문화체육관광부 공익법인 사)한국문화예술국제교류협회가 주최한 ‘2023 문교협 카시아(KACIEA)국제무용콩쿠르’ 가 지난 9월 9일부터 상명아트센터 계당홀 대극장에서 개막하여 9월 2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 총 국내,해외 순수무용,실용무용 850명의 참가자가 참여하여 선의의 경쟁을 펼쳤으며 150명이 참여한 해외팀은 국내 교수진의 지도로 현대무용,발레,한국무용 연수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2023 문교협 카시아 국제무용콩쿠르는 올해 현대무용이 강세를 보였으며 유튜브 카시아TV로 생중계되어 국내,해외 가족들의 열띤 응원도 대회의 활기를 불어넣는데 일조 했다. 특히 K 문화에 관심이 높은 해외 참가자들은 코레오, K-pop댄스 등 2주간 진행된 강도 높은 심화 교육에도 열정으로 임하였고 9월 22일 갈라쇼와 함께 빛나는 시상식, 수료식을 진행하며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문교협 장유리이사장은 참가자들의 기량은 해마다 발전하고 있고,지도자들의 열정적인 교육에도 감사함을 전했으며 24년에는 더 많은 스칼라쉽과 스케일업 된 프로그램으로 글로벌 예술무대와 교육의 장으로 한층 도약할 것을 시사했다. 전 부문 종합대상(그랑프리)과 순수무용 실용무용 그랑프리는 장학금이 주어지며 영예의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전 부문 종합대상 (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한국예술종합학교 1년 정건세 ♣ 전 부문 종합차상 (세미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덕원중학교 2년 고진경 ♣ 순수무용 전 부문 대상 (Grand Prize) 컨템포러리 댄스 - 덕원중학교 2년 고진경 ♣ 순수무용 대학,일반부 전 부문 대상 (공동 그랑프리) 한국무용 창작 - 한성대학교 2년 임종근 컨템포러리 댄스 - 성균관대학교 (졸) 박서현 ♣ 순수무용 고등부 전 부문 대상 (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덕원여자고등학 교1년 강희수 ♣ 순수무용 중등부 전 부문 대상 (공동 그랑프리) 한국무용 창작 - 예원학교 1년 위서윤 컨템포러리 댄스 - 명덕여자중학교 2년 정가은 발레 - 예원학교 1년홍수림 ♣ 순수무용초등부 전 부문 대상 (공동 그랑프리) 컨템포러리 댄스 - 서울 강신초등학교 6년 백윤아 에스닉댄스 그룹 – 몽골 / TSAGAAN TEMEELTSEKH SUNDUISUREN TSOLMONERDENE 외 17인 ♣ 유치부 전부문 대상 (그랑프리) Ballet – 그랑드발레학원 최은유 ♣ 실용무용 고등부 전 부문 대상 Dance Sports – 안양예술고등학교 3년 신바다 ♣ 실용무용 중등부 전 부문 대상 Jazz Dance - 환호여자중학교 2년 정휘서 ♣ 초등부 전 부문 대상★ 코레오 그룹 – Mongolia / JANJIN CHOIR AMARSAIKHAN ANIR 외9인 ♣ 교육부장관상 컨템포러리 댄스 –Mexico / Ara Jun (전아라) Colegio Inglés 2년 졸 -Maries Dance Studio 전아라가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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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9-22
  • 송혜교·차은우 투샷 공개, 완벽한 비주얼 뽐내
    [동포투데이] 배우 송혜교와 그룹 아스트로의 멤버 겸 배우 차은우의 투샷이 공개돼 네티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8일 헤어 스타일리스트 손혜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프랑스 샤토 드 바가텔에서 열린 명품 주얼리 ‘쇼메’ 행사에서 찍은 차은우와 송혜교의 사진을 공개했다. 두 사람은 샤토 드 바가텔에서 열린 만찬에 참석했고, 새로운 시리즈 'JARDIN DE CHAUMET' 런칭 행사에 초대받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송혜교는 화이트 실크 드레스에 브랜드 주얼리를 착용하고 ‘쇼메’ 행사장에 등장해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냈다. 차은우는 블랙 수트에 화이트 셔츠를 매치하고, 블랙 타이로 스타일을 변화시켰으며, 바다를 형상화한 ‘쇼메’ 브로치를 더해 감각적인 룩을 완성했다. 차은우는 블랙 슈트, 송혜교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특히 가슴에서 과감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선택해 특유의 순수함과 섹시함을 더했다. 차은우는 블랙 수트에 스카프를 두르고 한 쪽 머리를 늘어뜨려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레전드, 동화책에 나오는 백설공주와 왕자같아”, “두 사람의 비주얼이 너무 잘 어울려 공주님과 왕자님 같은 로맨틱한 분위기 물씬 풍긴다”, “송혜교 차은우 파리 같은 프레임, 재벌남매 같아!”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은 여러번 함께 사진을 찍었고, 매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앞서 유튜브에는 두 사람이 16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열애 중이라는 루머가 나돌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42세의 송혜교는 27세의 차은우와 16살 차이가 나며, 차은우는 2014년 영화 '찬란한 내 인생'에서 주인공 강동원과 송혜교의 가상 아들로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송혜교는 당초 배우 한소희와 함께 드라마 ‘고백의 대가’에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취소됐다. 그는 넷플릭스의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 역으로 ‘제59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했다. 차은우가 차기작으로 배우 김남주 주연의 드라마 ‘원더풀월드’를 선택했다. ‘원더풀월드’는 어린 아들을 억울하게 잃은 은수현(김남주 분)이 가해자를 직접 처벌하고 치유하는 감성 힐링 스릴러다. 의대를 중퇴한 권선률 역을 맡은 차은우는 여주인공 은수현을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서로의 삶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2024년 상반기에 방송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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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08
  • "여보!"…'닥터 차정숙' 김병철, 폭탄 엔딩 장식
    [동포투데이] '닥터 차정숙' 김병철이 폭탄 엔딩을 장식했다. 지난 13일 방송된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는 서인호(김병철 분)와 차정숙(엄정화 분)이 부부라는 사실을 병원 사람들이 알게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서인호는 차정숙의 생일을 맞아 가족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앞서 최승희(명세빈 분)와의 외도를 들켜 눈치를 보고 있던 만큼, 아내에게는 이를 걸리지 않기 위해 표정 관리에 애썼고, 이내 등장한 차정숙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늘한 분위기는 계속됐고, 아니나 다를까 케이크에 얼굴이 처박히는 치욕을 맛봤다. 차정숙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서인호였지만, 그보다 자신의 이중생활을 눈치챈 건 아닐지 전전긍긍해하던 중 그는 집을 나가 전공의 숙소로 들어가겠다는 아내의 깜짝 발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단호한 결정에 반대할 수 없었던 터. 아내가 떠난 뒤 가지런히 정리된 방안을 보며 왠지 모를 섭섭함과 쓸쓸함을 느꼈다. 반면 서인호는 병원 사람들과 의료 봉사를 가게 됐고, 그곳에서도 붙어있는 차정숙과 로이킴(민우혁 분)에 질투를 느꼈다. 다정한 두 사람에 성질이 뻗쳐 과음을 했고, 취기와 흥이 올라 그동안의 체통을 잠시 내려놓고 노래를 열창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때 차정숙을 발견한 서인호는 돌발행동을 보였는데, 손을 번쩍 들며 해맑게 "여보"라 외쳐 모두를 기함하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김병철은 그간 쌓아온 문제적 면모들을 잠시 잊게 하는 반전 매력을 발산하며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불타는 질투심부터 친근함, 귀여움, 유쾌함 등 숨겨져 있던 다채로운 매력을 드러내 보는 이들을 폭소케 한 것. 특히 디테일이 살아있는 능청 연기는 캐릭터에 숨을 불어넣으며 극의 몰입도를 배가시켰다. 이렇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서인호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열연을 선보이며 하드캐리하고 있는 김병철에 시청자들의 호평 역시 쏟아지고 있는바. 과연 파격 엔딩을 장식하게 된 서인호의 폭탄 발언이 앞으로의 전개에는 어떠한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이는 오늘 밤(14일) 10시 30분 방송될 '닥터 차정숙'에서 마저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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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4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하늘을 나는 중국 자동차, 광저우 도심 상공 횡단
    [동포투데이] 3월 8일 샤오펑후이톈 비행 자동차 여행자 X2가 도심 '티안더 광장-광저우 타워' 지역에서 저고도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여 향후 도심 항공 모빌리티 및 저고도 관광과 같은 저고도 경제 응용 시나리오의 포괄적인 보급을 위한 경험을 제공했다. 이번 비행에서 여행자 X2는 광저우 톈허구의 티안더 광장 A급 오피스 단지에서 수직으로 이륙해 자율주행 모드로 랜드마크인 광저우타워 방향으로 비행하며 광둥성 박물관, 화청 광장, 하이신아시안게임공원 등 광저우의 랜드마크를 횡단했다. 이 비행경로는 향후 도심 항공 교통뿐만 아니라 관상 가치가 높은 저고도 투어 루트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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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 조선족 어떻게 빨갱이 되었나
    빨갱이란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이해하려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이해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왜 조선족이 빨갱이 되었고 또 조선족이 빨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한국사람들이 이해하고 나아가서 조선족이 빨갱이기 때문에 차별하고 거부했던 편견을 버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건설에 함께 노력하기를 원하는 입장에서 본 강의를 진행하였음. https://youtu.be/tw2fMhYOBjw?si=p8r6AiD6IsG5RkL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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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25
  • 中 산시성 한 회사 고위 간부, 가정폭력 혐의로 정직 처분
    [동포투데이 김다윗 기자]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시 한 남성이 한밤중 자녀 앞에서 아내를 구타하는 동영상이 온라인에서 광범위한 비난을 받은 후 회사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았다. 산시 공항그룹 계열사인 뉴실크로드무역은 회사 한 부서의 부국장인 왕펑페이(王鹏飞)가 가한 가정폭력을 깊이 규탄한다고 밝혔다. 회사측은 18일 성명을 통해 왕씨를 정직 처분하고 징계 감찰부에 넘기기로 결정했으며 왕씨의 아내 병문안을 위해 사람들을 보냈다고 밝혔다. 영상에는 왕씨가 주먹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아내의 머리를 한동안 계속해서 때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시안 공안당국은 20일 성명을 통해 경찰이 왕씨의 아내로부터 신고를 받고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1차 조사 결과 왕씨는 지난 18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한 후 아내를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산시성 여성연합회는 여성의 법적 권리와 이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며 사회 전체가 여성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형태의 가정 폭력을 근절할 것을 촉구하며 왕씨의 행동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연합회 측은 또 왕씨의 아내에게 필요한 법률지원과 심리적인 도움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르면 이러한 행위를 저지른 모든 사람은 행위의 경중에 따라 행정 또는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 이 사건은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네티즌들의 강력한 비난을 촉발했다. 시나 웨이보 마이크로 블로그 플랫폼에서는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시태그가 18일 밤까지 수억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네티즌은 해당 영상을 보고 충격적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결혼 생활에서 폭력 행위가 발생하면 부부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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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2
  • 헤이룽장, 구조된 동북호랑이 다시 자연으로
    [동포투데이] 중국 국가임업초원국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밀산시의 한마을에 침입했던 동북호랑이가 구조에 성공한 뒤 18일 무링(穆棱) 임업유한공사 시업구에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다. 전문가는 동북호랑이가 생리지표가 정상이고 이상행동이나 질병 위험이 없어 자연으로 빨리 돌아가는 것이 적합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야생 동북호랑이를 구조해 풀어 준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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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8
  • 中, 90세 동생 106세 형님에게 세배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11일, 중국 매체에 따르면 지난 10일 중국 산둥 허쩌(山东菏泽)에서 106세 되는 한 노인의 세배를 받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무수한 찬탄의 댓글이 붙여졌다. 이는 90세가 되는 동생이 온 가정 식구를 이끌고 106세 되는 형님한테 세배를 올리는 모습으로 특히 세배를 올리려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장면이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당시 노인의 얼굴에 광채가 흘렀고 아주 건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못 즐거워 하였다. 그리고 아주 유쾌한 어조로 후배들에게 신체가 건강하고 만사대길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노인에 따르면 이미 5세대를 가진 가문의 어른으로 자손후대가 전반 마을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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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2
  • 中 1월 1일 설날-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
    [동포투데이 김현나 기자] 1월 2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월 1일 설날-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분망하게 설날을 보내는 종업원들의 모습을 담은 10장의 사진을 실으면서 간단한 설명을 달았다. 그 근무현장 사진들로는 새벽부터 교통질서를 유지하는 교통경찰, 중국의 명승지 장가계 고공엘리베이터 내에서 점검 작업을 하는 기술자, 추위를 무릅쓰고 고속도로 공사장에서 작업하는 인부, 산부인과 영아 실에서 갓 출산한 아기를 돌보는 간호원 등이 선보였고 또한 여객들이 승차하기 전 지하철에서 소독작업을 하는 방역요원, 새벽 거리를 쓸고 있는 환경미화원, 도로 가드레일을 수리하는 도로공단 근로자, 자동차박물관 내를 청소하는 직원의 모습, 이 외에도 고속철 다리부설 현장모습과 고압 송전탑 위의 특수 작업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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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2
  • 中 항저우 아내 '토막살해'한 남편 체포
    [동포투데이] 8월 6일 항주시 인민검찰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许国利)에 대하여 체포를 허가하였다. 2020년 7월 5일 새벽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을 겪던 중 항주시 강간구(江干区) 자택에서 아내가 잠든 틈을 타 살해한 후 시체를 토막내 여러 곳에 나누어 유기하고 부분적인 신체 조직은 변기를 통해 정화조로 흘려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중국 관영 CCTV 보도에 따르면 7월 30일 항주시 공안국은 고의살인 혐의로 쉬궈리에 대한 체포를 신청하였다. 항주시 인민검찰원은 심사를 거쳐 쉬궈리는 범죄 수단이 잔인하고 성질이 악랄하며 고의살인죄 혐의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8월 6일 체포 신청을 허가하였다. 7월 6일 20시 07분 항주시 강간구 공안분국은 라이 씨 여성의 실종 신고를 받았다고 항주시 공안국은 통보하였다. 경찰은 아파트 단지 내 6개동 1만여㎡ 등 공공장소의 은밀한 부분에 대하여 전후로 4차례 이 잡듯이 수색하였다. 전담팀 기동대는 정화조에서 뽑아올린 38차량의 분뇨에 대하여 세척하고 걸러낸 결과 인체조직으로 의심되는 물체를 발견하였으며 DNA 검식 결과 라이 씨의 인체조직으로 판명되었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경우 라이 씨는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녀의 남편인 쉬궈리의 범죄 혐의가 명확해졌다. 경찰조사에서 쉬궈리는 가정생활 갈등으로 아내 라이 씨에게 불만이 쌓인 자신은 7월 5일 새벽 집에서 라이 씨가 잠든 틈을 타서 그녀를 살해하고 토막 내서 정화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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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9
  • 中 당산 규모 5.1 지진 발생, 북경 천진 등 지역서 진동 감지
    [동포투데이] 중국 지진대망은 오늘(12일) 아침 6시 38분경 하북 당산시 고야구(북위 39.78도, 동경 118.44도)에서 규모 5.1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진원 깊이는 10킬로미터 지점이다. 네티즌들은 지진이 발생한 당산시와 가까운 하북, 북경, 천진 등지에서도 진동이 감지됐다고 전했다. 중국지진대망에 따르면 진앙은 고야구와 7킬로미터, 개평구와 19킬로미터, 란주시와 23킬로미터, 풍윤구와 24킬로미터 로북구와 27킬로미터, 당산시와 28킬로미터, 천진시와 132킬로미터 상거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지진대망은 또 최근 5년래 진앙지 주변 200킬로미터 이내에서 규모 3 이상 지진이 도합 17차례 발생했는데 이번 지진이 규모가 가장 큰 지진이라고 전했다. 한편 하북성 동부에 위치한 당산시는 지난 1976년 7월 28일 3시 42분 7.8급 대지진이 발생해 242,419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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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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