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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이스라엘 군부대 첫 제재 예정... 네타냐후 “최선 다해 반격”
    [동포투데이] 최근 다수의 미국 언론은 미국 정부가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인권을 침해한 이스라엘 방위군 산하 '예후다 대대'를 제재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이 이스라엘군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소식에 이스라엘의 모든 정파는 21일(현지시간) 만장일치로 반대했다. 일부 언론은 이로 인해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가 더욱 긴장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1일 두 명의 미국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은 이르면 22일 제재를 발표할 것이라고 AP 통신이 전했다. 미국 관리들은 어떤 이스라엘 군이 제재를 받게 될지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정부와 언론은 대체로 '예후다 대대'로 지목했다. '예후다 대대'는 서안지구에 영구 주둔하는 이스라엘의 초정통파 유대인과 종교적 민족주의자들로 구성된 남성 보병대대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현지 군 수비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난을 여러 차례 받아왔다. AP 통신과 파이낸셜 타임스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군에 대해 제재를 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 전반에 걸쳐 이스라엘인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21일 이스라엘 군에 대한 어떠한 제재에도 "모든 힘을 다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 군에 부과한 제재를 "매우 터무니없다"며 "도덕적으로 낮은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극우 강경파인 베잘렐 스모트리치 재무장관은 미국 정부가 "완전히 미쳤다"고 말했고,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 장관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제재를 부과하도록 압박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스라엘 전시 내각의 일원인 베니 간츠는 앤서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에게 결정을 재고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블링컨이 21일 성명에서 간츠와의 대화를 확인했지만 제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좌파 성향의 야이르 라피드 전 이스라엘 총리조차도 문제의 근원은 군대가 아니라 정치적 차원에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스라엘군은 제재와 관련해 구체적인 상황은 당분간 알지 못하지만 '예후다 대대'가 제재를 받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결과를 평가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미 국무부는 한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 조치를 검토해왔다. 블링컨은 19일 "수일 내에 예상할 수 있다"며 제재 조치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의 제재는 1990년대 연방정부가 '심각한 인권침해'를 저지른 외국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중단하도록 한 법률에 따른 것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지난 19일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민에 대한 일련의 제재를 발표했다. '예후다 대대'는 수년 동안 인권 침해 혐의를 받아왔다. 가장 주목할 만한 최근 사건은 2022년 미국과 팔레스타인 이중 국적을 가진 80대 노인 오마르 아사드가 '예후다 대대'의 한 검문소에서 장시간 구타당하고 감금된 후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측의 강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미국의 우려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조사를 실시했지만 장교 3명에게만 징계를 내렸고 그 누구에게도 형사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예후다 대대'는 요르단강 서안에서 철수하여 이스라엘 북부에 배치되었다. 이 대대는 지난해 10월 발발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에서 이스라엘 남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의 접경지역에 파견돼 전투를 벌였다. AP통신은 미국 측의 제재가 충돌이 일어나기 전에 평가된 것이지 이번 충돌에서 '예후다 대대'의 행동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 충돌로 미국과 이스라엘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만큼 이 제재는 양국 간 긴장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이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이스라엘의 행동을 양국의 심화되는 갈등의 하나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예후다 대대'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무기, 군용 차량 및 기타 장비의 공급과 민간 재단의 재정 지원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는 이스라엘군과 이스라엘의 "독립적인" 사법 수사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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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4-04-24
  • 외신 “미, 우크라이나에 군사고문단 추가 파견 검토”
    [동포투데이] 팻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이 20일 미국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주재 자국 대사관에 군사고문단을 추가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21일 러시아투데이(RT)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군인들은 주로 물류, 미국 무기 인도 감시, 무기 유지 보수 지원 등 "비전투 임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폴리티코는 미 하원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610억 달러 규모의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고, 미 국방부는 지원 패키지에 "방공 및 포병 능력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작전 보안과 병력 보호를 위한 이유"로 키이우에 얼마나 많은 군사 고문단을 파견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이 문제에 정통한 인사들은 폴리티코에 그 수가 최대 60명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더 대변인은 새 군사고문들이 미국 대사관 국방협력실에서 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우크라이나가 작년 여름 역공에 실패하고 최근 외국산 탄약 공급 감소로 피해를 입은 이후 전장에서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최근 "전장 상황이 러시아에 약간 유리하게 바뀌기 시작했다"며 "우크라이나군은 방어선을 사수하는 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라고 인정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새 군사 고문단은 여름에 전투가 격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새로 전달된 장비로 우크라이나 돕는 임무를 맡고 있다. 폴리티코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미군을 우크라이나에 파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모스크바는 미국과 다른 나토 회원국을 분쟁의 실제 참여자로 간주한다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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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우크라이나
    2024-04-23
  • 인도네시아서 열차와 버스 충돌...5명 사망, 15명 부상
    [동포투데이] 인도네시아 남수마트라주에서 21일 열차와 버스가 충돌해 5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쳤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현지 철도 관계자 아자리는 도로와 철도의 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열차와 버스가 거의 동시에 교차로에 진입했고 기관사가 제동을 시도했지만 짧은 거리와 관성으로 인해 두 차량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버스는 약 50m가량 끌려갔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일부가 차량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자리는 "1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4명이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으며 15명이 부상을 입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사망자 모두 버스 승객이었고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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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4-04-22
  •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선박 침몰 사망자 62명으로 증가
    [동포투데이] 토마스 지마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민방위국장은 언론에 지난 19일 수도 방기의 인근 하천에서 발생한 선박 침몰 사고로 사망자가 62명으로 늘었다고 확인했다. 목격자와 잠수부들은 20일 저녁 침몰선에서 멀지 않은 수역에서 여성 3명과 어린이 1명 등 4구의 시신이 추가로 인양됐다고 전했다. 지마스는 20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희생자 58구의 시신이 인양됐다며 "물속에 얼마나 많은 시신이 남아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방기 인근 우방기 강에서 19일 오후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소식통은 침몰 선박에는 300명 이상의 승객이 타고 있었으며 심각한 과적 상태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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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4-04-22
  • 中 주요도시 82개 중 절반 침몰 중...큰 재난 유발할 수도
    [동포투데이] 19일에 발표된 전국 위성 데이터 연구에 따르면, 중국 주요 도시의 거의 절반이 "보통에서 심각한" 수준의 침하를 겪고 있으며, 특히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홍수 위험에 처해있다. 과학 학술지 사이언에 발표된 논문의 저자는 중국 도시 토지의 45%가 연간 3mm 이상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으며, 도시 토지의 16%가 연간 10mm 이상의 속도로 가라앉고 있음을 발견했다. 특히 지하수위 하락과 건축 환경의 무게로 인해 발생한다. 화남사범대 오주루이가 이끄는 연구팀은 중국의 도시 인구가 이미 9억 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중국의 땅이 조금만 가라앉아도 도시 생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침강으로 인해 중국은 이미 연간 75억 위안(10억 4천만 달러) 이상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해안 토지의 거의 4분의 1이 다음 세기 내에 실제로 해수면보다 낮아져 수억 명의 사람들이 더 큰 홍수 위험에 처하게 될 수 있다. 이스트 앵글리아 대학교의 기후변화 연구 틴달 센터의 로버트 니콜스는 "이는 확실히 중국에게 한두 곳이 아닌 전국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며 세계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인구 1500만 명이 넘는 북방 도시 톈진은 피해가 가장 큰 도시 중 하나로 꼽혔다. 조사관들은 지난해 '돌발적인 지질재해'로 주민 3000명이 대피한 것을 수자원 고갈과 지열정 건설 탓으로 돌렸다. 중국의 오래된 석탄 생산 지역 중 많은 곳에서도 과잉 채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으며, 당국은 종종 땅을 보강하기 위해 무너져가는 광산에 콘크리트를 주입해야 했다. 문제는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월에 발표된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630만 평방 킬로미터의 토지가 위험에 처해 있다. 인도네시아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국가 중 하나이며, 현재 수도 자카르타의 대부분이 해수면보 아래에 있다. 니콜스는 취약한 도시들이 1970년대 지하수 채굴이 금지되기 전 약 5m(16피트) 침하된 도쿄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침하 완화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적응과 제방 건설에 대해서만 논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이 문제를 겪고 있는 44개 주요 해안 도시 중 30개가 아시아에 있다. 중국의 지반 문제는 지하수면의 붕괴뿐만 아니라 건축물의 무게와도 연관되어 있어 이것이 다면적인 문제임을 보여준다. 지구 기후 변화가 심화되고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이 문제는 더욱 시급한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과 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의 경우, 이는 훨씬 더 큰 재난을 유발하여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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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美 심각한 재정적자, 글로벌 경제에 '중대 위험'"... IMF 경고
    [동포투데이]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겨 세계 경제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IMF의 최근 '재정 모니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내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7.1%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다른 선진국의 평균은 2%에 불과하다고 영국 언론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IMF 보고서를 인용하여 미국의 대규모 지출이 세계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다른 경제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미국은 지출과 수입의 심각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게 됐다. MF 자에 따르면 지난해 유로존 등 선진국 재정적자는 통제됐지만 미국은 GDP 대비 적자 비율이 2022년의 두 배가 넘는 8.8%로 '상당한 폭의 재정 둔화'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미 재무부 일일 보고서에 따르면 연방정부 부채가 34조 달러를 넘어섰다. 에르 올리비아 구린샤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재정 상황이 "특히 우려스럽다"며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연준의 대응 국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이는 글로벌 경제가 직면한 재정 및 금융 리스크를 끌어올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IMF는 미국 차비용이 글로벌 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미국 금리가 '갑자기 큰 폭으로' 상승하면 글로벌 국채 수익률이 치솟고 신흥시장과 개발도상국 환율이 요동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같은 글로벌 금리 파급효과는 금융여건 경색으로 이어져 각국이 직면한 리스크를 상승시킬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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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2
  • 中 수소차, 1500km 장거리 운송 테스트 성공
    [동포투데이] 시노펙은 최근 수소 연료 차량 2대가 베이징에서 상하이까지 1500km 장거리 운송 테스트에 성공했으며, 이는 중국 최초의 대규모 장거리 지역 간 수소차 실제 운송 테스트라고 밝혔다. 이번 수소차 장거리 운송 테스트는 180kW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을 장착하고 수소 연료전지 냉각수, 디젤 배기 처리액 및 기타 친환경 과학기술 제품을 운반하는 차량으로 차량 무게는 최대 28톤에 달한다. 이 차량은 베이징 다싱에서 출발해 이틀 동안 6개 성(省)과 도시를 거쳐 마침내 상하이에 도착했다. 시노펙 판매공사 신에너지관리부 관계자는 전체 주행 거리가 약 1,500킬로미터이며, 도중에 수소 충전소 7곳에서 수소 충전 테스트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수소차는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으로, 순수 전기차와 함께 신에너지 차량이다. 수소차는 에너지 보충이 빠르고 장거리 운행에 유리하지만 수소 충전소 네트워크와 주행거리의 한계로 인해 수년 동안 수소 운송은 한 지방 또는 한 지역에만 국한되어 왔다. 장거리, 지역 간 수소 에너지 운송을 실현하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은 수소 충전소 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중국은 베이징-톈진, 청두-충칭, 상하이-자싱-닝보, 지칭, 한이 등 여러 고속 수소 에너지 회랑을 우선적으로 실현했다. 중국 수소연료전지차 생산과 판매 고속 성장세 수소차는 수소를 연료로 사용하는 차량으로, 친환경 및 저탄소 발전의 중요한 매개체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수소연료전지차 생산과 판매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중국에 건설된 수소 충전소 수는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집계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수소연료전지차 생산량과 판매량은 각각 5,600대와 5,8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55.3%, 72.0% 증가해 생산과 판매 모두 빠른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수소차는 현재 약 21000대 수준이며, 동시에 수소연료전지차의 원가도 빠르게 하락하고 있어 수소 모빌리티 발전에 매우 좋은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중국의 수소 충전소 네트워크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며 수소차 개발에 중요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전 세계 수소 충전소 누적 수는 1,152개에 달하며, 이 중 428개가 중국에 건설되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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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파키스탄, 일주일간 폭우로 최소 87명 사망
    [동포투데이]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국은 19일 지난 일주일간 파키스탄에서 폭우로 인한 홍수 등 피해가 지속돼 최소 87명이 사망하고 82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 북서부 카이베르-파슈툰주는 폭우로 인한 피해로 최소 36명이 사망하고 53명이 부상을 입는 등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보고됐다. 또 폭우로 동부 펀잡주에서 25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으며, 남서부 발로치스탄주에서 15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에서는 11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폭우로 전국 주택 2715채가 파손되고 일부 교량과 도로가 홍수와 산사태 등으로 훼손돼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자르다리 파키스탄 대통령, 샤바즈 총리는 이날 각각 성명을 내고 최근 폭우로 인한 인명피해에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샤바즈는 또한 국가재해청 등 중앙과 지방정부 관련 기관에 신속하게 행동해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긴급 지원을 제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끊어진 도로와 교량 복구에 박차를 가할 것을 지시했다.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국은 19일 일기예보를 통해 이번 집중호우가 22일까지 계속될 것이며 전국 곳곳에서 돌발홍수 위험이 높다고 예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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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미 하원의장 존슨 “우크라이나에 미군 파병하지 않을 것”
    [동포투데이] 미국 하원의장인 공화당 마이크 존슨이 우크라이나에 미군을 파견할 가능성을 배제하면서도 미국의 동맹국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고 18일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존슨은 CNN 방송에 출연해 “이것은 (미국)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세계 경찰은 아니지만 올바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존슨은 또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이 얼마나 절실하게 이것(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으며, 우리는 가까운 동맹이자 소중한 친구인 이스라엘의 편에 서서 자유를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미 하원에 제출된 법안에 따르면 미 행정부는 우크라이나에 610억 달러의 자금 원조를 요구하고 있다. 이 중 230억 달러는 우크라이나군에 미국 무기를 보급하는 데 사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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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20
  • 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지뢰 폭발로 10명 사망, 23명 부상
    [동포투데이] 4월 17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북동부에서 현지 주민들을 태운 차량이 지뢰를 밟아 폭발하면서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고 AFP 통신이 소식통 3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지 농부와 어부들을 태운 차량이 4월 17일 차드 호수로 이동하던 중 지뢰를 밟았다. 한 소식통은 지뢰가 이슬람 국가의 서아프리카 지역과 관련된 지하디스트가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한 반 지하디스트 민병대원은 같은 날 오전 9시 30분경 차량이 지뢰를 밟으면서 폭발이 일어나 차량 전체가 파괴되었고, 현장에서 10명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23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반 지하드 민병대원은 부상자들이 지역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전했다. 나이지리아 군부는 아직 이 사건에 대한 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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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9

사람들 검색결과

  • 18세 저우쉰의 마네킹 그림, 그것은 예술을 위한 그녀의 헌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얼마 전 TV 드라마 ‘완벽하지 않은 그녀(不完美的她)’가 중국 국내에서 히트, 저우쉰(周迅)만의 독특한 기품과 선명한 이미지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음이 있었다. 지금도 저우쉰은 연예계에 자주 등장, 그럼 오늘은 그녀의 그제 날 이야기를 알아보기로 하자. 저우쉰, 1974년 저장(浙江)에서 태어난 저우쉰은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를 좋아했고 스크린에 나오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마침 아버지는 당시 영화관의 방영원이라 영화를 좋아하는 어린 저우쉰을 영화관으로 늘 데리고 다녔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저우쉰은 중학교 명문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예술학교를 선택, 민속춤을 배운다는 사실에 부모님을 놀라게 했지만 부모님은 인차 그녀의 선택을 존중했다. 한편 저우쉰은 학창시절부터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서는 자신의 얼굴을 달력에 곧 잘 나타내곤 하여 당시 아주 작은 명성을 얻기도 했다.  언젠가 세테리(谢铁骊)란 촬영사가 고분황재(古墓荒斋)’를 촬영할 때 저우쉰더러 합작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당시 그녀는 거절, 후에 세테리가 저우쉰의 공부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해서야 그녀의 동의를 얻어냈다.  또한 저우쉰은 달력을 찍을 때부터 늘 레이밍(雷鸣)과 함께 있었지만 레이밍은 전형적인 남성주의자여서 저우쉰이 모델 등 작품을 찍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다. 하지만 저우쉰은 마음속에 오직 꿈만 있었다. 결국 레이밍은 그녀를 설득하지 못하자 두 남녀는 즉시 헤어져 연락이 끊어졌다. 1992년, 18세의 나이로 모델분야에 데뷔한 저우쉰은 꿈을 위해 마네킹(人体模特)을 선택했다. 소녀 시절 저우쉰은 청순함과 볼 살 한 가닥으로 강남 여자의 특징을 잘 살렸다. 화백은 판훙하이(潘鸿海) 선생으로 당시 그는 세계적으로도 좋은 명성을 갖고 있었다. 일찌감치 저우쉰의 저력을 보아낸 판훙하이선생은 일찍부터 저우쉰의 앞날은 창창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저우쉰은 손님에게 물을 따라주다가 실수로 자신의 다리에 뿌렸는데요. 하지만 그녀는 살짝 닦고 여유롭게 계속 물을 따랐어요.”  판훙하이는 이런 저우쉰의 여유작작한 자태가 앞으로의 성공을 이끈 건지도 모른다고 회고했다.  판훙하이한테서는 성공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 판훙하이는 많은 유화작품으로 저우쉰의 강남여성을 잘 그려냈다. 그리고 판훙하이가 그린 작품에는 저우쉰이 초지의 들판과 냇물을 배경으로 모델을 선 작품이 많았다. 당시나 지금이나 소중한 작품들이라 판훙하이의 유화작품은 많은 소장가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다.  판훙하이의 작품 중에는 반쯤 벗은 채 옹기동이를 안고 있는 저우쉰의 작품도 있다. 이는 당시의 미적 예술과 잘 맞아떨어져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고 있다. 유화 ‘햇빛 아래의 소녀(阳光下的少女)’는 184만 위안, ‘외할머니의 다리(外婆桥)’는 165만 위안, ‘먼 옛날의 바람(远古的风)’은 80만 위안에 팔렸다. 후에 저우쉰은 이 일을 별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는 저우신과 화가의 예상을 뒤엎은 것이었다. 당시 저우신은 예술을 위해 헌신한 것이지 많은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1991년부터 2000년 사이에 저우쉰의 인생길은 여전히 힘든 여정이었다. 1993년 저우신은 술집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당시 그녀는 손님들한테서 술 접대부 취급을 받았다. 저우쉰은 감정생활이 매우 복잡하지만 당시에도 매우 원칙적인 여자인지라 단번에 거절하는 바람에 깡패에게 입 주위를 두 번이나 얻어맞기도 했다. 2000년 이후 저우쉰은 큰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관객들에게 좋은 영상물을 많이 남겼으며 영화스타로도 평가받으면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의 저우쉰은 인생의 성공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거기에는 그녀가 모델로 선 유화작품들도 매우 큰 예술적 자산이 되었다.
    • 사람들
    2021-06-15
  • 中 '외교의 꽃' 미녀 대변인 - 화춘영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의 외교부는 긴장하고도 엄숙하며 또한 민감한 부문이다. 이러한 부문에서 근무한다는 건 분명 영광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자랑스럽기에 앞서 자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뿐만 아니라 거기에 기민하고도 지혜로워야 하며 웅변능력 또한 비범해야 가능한 일이다. 아래에 소개되는 여성은 바로 웬간한 남자들도 능력의 한계를 느낀다는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의 일꾼, 그것도 외교부 대변인이다. 까다롭기도 하거니와 쩍하면 넘겨짚기를 잘하는 중외 기자들 앞에서 때로는 침착하게, 때로는 날카롭고도 당당하게 또한 어떤 경우에는 상냥하고도 겸허하게 기자들 앞에 나서는 그녀 - 화춘영(华春莹)은 지금까지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1970년 화춘영은 중국 강소 회안의 한 간부의 가정에서 태어난 화춘영은 별로 간부가정의 자녀라는 우월감을 별로 느끼지 못하며 자랐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그녀는 단발머리를 하기 좋아했으며 늘 얼굴에 웃음기를 담고 있는 친절하고도 예의가 바른 소녀였다. 중학교 시절, 화춘영은 학습 성적이 돌출한 편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남한테 뒤지는 편도 아니었다. 당시 그녀는 남자애들이 즐기는 축구운동을 좋아했으며 고중입시를 앞두고는 여학생들을 이끌고 남녀 축구 대 항전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라고나 할까? 선생님과 동창생들의 눈에는 조용하고도 기타 사심이 없어 보이는 화춘영 - 그한테는 조용한 가운데 강인한 일면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그녀는 대학교 숙소의 ‘영춘화(迎春花)’로 불렸지만 대학교 4년간 그녀는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극소수 여학생 중의 한명이었다. 이렇게 아련한 것 같으면서도 강한 일면이 있고 또한 다른 측면으로 보면 부드럽기도 한 것이 화춘영의 과거의 주소라면 후에 외교관이 된 다음의 화춘영은 강자 앞에서는 약하지 않고 약자 앞에서는 또한 절대 강하지 않는 것이 외교부 대변인으로서의 현주소였다. 2012년 11월 19일, 당시 42세가 되는 화춘영이 중국외교부 브리핑 장소에 나타나자 장내는 삽시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단발머리 미녀가 외교부 대변인의 신분으로 나섰으니 말이었다. “드디어 중국에도 미녀외교관이 나타났군 그래.” “그래그래, 미녀이면서도 어딘가 카리스마가 있어” 한편 화춘영의 언변과 실력에 대해 시험대에 올려 보려는 외신 기자들도 없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엉뚱한 속셈을 가졌던 외신기자들도 눈알이 동그랗게 되면서 잠잠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날카롭다가도 다시 친절한 화춘영의 언어실력은 장내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긴 화춘영은 외교부에 갓 입문한 햇내기가 아니라 이미 거의 20년간 외교전선에서 단련된 외교능수라는 것을 외신기자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으랴. 사실 화춘영이 중국 외교부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93년이었다. 외교부에 입문한 화춘영은 선후로 서 유럽사(司) 과원, 주 싱가포르 대사관 수행인원, 3등비서, 외교부 서 유럽사 3등비서, 부처장, 주 유럽연맹 사절단 2등비서, 1등비서, 참사관, 외교부 유럽사 참사관 등 직에 머물다가 2012년 강유(姜瑜)에 이어 중국 외교부 보도 사 부사장으로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중국외교부 대변인으로 부임, 중국외교부가 대변인 제도를 건립한 이래 모두 5명의 여성대변인이 탄생했다. 역대 중국외교부의 여성대변인들로는 각각 이금화(李金华), 범혜연(范慧娟), 장계월(章启月), 강유와 화춘영이었다. 알려진데 의하면 화춘영이 외교사업에 종사한 28년 간 유럽사 및 유럽, 아시아 지구에서 근무하면서 비교적 풍부한 외교경험과 양호한 소통능력을 키웠으며 외교부 대변인으로 되기에 매우 합당한 인선이 되었던 것이다. 화춘영은 늘 “나는 최선을 다 하여 모든 이들을 도와 적시 적이고 정확하며 또한 전면 적으로 중국의 외교정책을 요해하게 하는 동시에 나 역시 모든 이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 평등하게 교류하며 그리고 양호하게 합작하는 것으로 중국과 세계와의 상호 요해와 이해, 신입과 합작을 추진하기에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하군 했다고 한다. 화춘영은 진실로 그렇게 했다. 2012년 11월 16일, 화춘영은 중국외교부에서 개최한 정례브리핑이 거의 마무리가 될 무렵에 중국외교부의 신임대변인의 신임으로 기자들 앞에 나타났다. 그 때 그녀는 외교부의 제 27번째 대변인이자 5 번째 여성대변이기도 했다. 당시 자기의 어깨위의 책임이 중대함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화춘영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는 한창 심각한 조정 시기에 있으므로 중국은 세계를 더욱 많이 요해해야 하며 세계 또한 중국을 더욱 많이 요해해야 한다고 표했다. 이어 11월 19일, 화춘영은 정식으로 중국외교부의 정례 브리핑을 주최, 브리핑에서 화춘영은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연임 후 첫 출국방문이 아시아태평양 지구를 선택한 것과 중국공산당 제 18 차 당 대회 이래의 중국의 외교정책 등에 관한 기자들의 물음에 답하면서 논리성이 강한 그녀의 답변과 막힘없는 화술구사는 모든 기자들의 찬탄을 자아내면서 중국의 젊은 여 대변인의 매력과 풍격을 충분히 과시하였다. 그 이튿날 중국 홍콩의 한 매체는 당시의 정경을 두고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1월 19일 오후, 외교부의 신임대변인 화춘영이 첫 브리핑을 주최, 20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내에 화춘영은 선후로 10명에 달하는 중외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주었다. 중일관계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지구 전략 및 향후 어떻게 매체를 대하겠는가 하는 것을 두고 경외 기자들은 불쑥불쑥 ‘도전적’이고도 민감한 문제에 대해 질문을 쏟아냈으나 신임대변인 화춘영은 기민하고도 자유자재로, 개방되고도 솔직하게 답했으며 난감한 문제들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대범하고도 상세하게 답변하여 모든 기자들의 긍정을 받았다. 브리핑이 끝난 후 화춘영은 웃음기가 어린 얼굴을 하고는 처음으로 발언대에 올라 기자들한테 진심으로 소통하고 평등하게 교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 뒤로부터 중국과 외국의 매체의 기사들에는 중국외교부 대변인 화춘영이란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면서 그 이름은 지구촌 방방곳곳에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화춘영은 외교부 대변인이란 본직에는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이어 2020년 1월 1일, ‘중국부녀’ 편집부로부터 ‘2019년 10대 여성인물’로 평선 되었고 2020년 9월 8일에는 전국 코로나 19 대응 선진개인 및 전국 우수 공산당원으로 선정 되기도 했다. 현재 화춘영은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보도사(司) 사장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걸로 알려지고 있다.
    • 사람들
    2020-10-20

오피니언 검색결과

  • 시대를 빛낸 할리우드 여배우- 마릴린 먼로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그녀는 60년대까지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유혹의 여신’이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그녀의 별명은 노마 제인 모테이센(Norma Jeane Baker)으로 미국계 유대인이었으며 출생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다. 마릴린 먼로: 출생일 1926년 6월 1일, 사망일 1962년 8월 5일, 별자리 쌍둥이자리, 혈형 AB형, 키 166cm, 몸무게 53kg, 직업 프로배우, 모델, 대표작 ‘7년차 가려움’, ‘버스터미널’, ‘용놀이’, ‘열정은 불처럼’ 등 다수 주요 성과로는 제9회 영국․TV예술아카데미상 영화상 최우수 외국여배우상, 제14회 미국영화방송 골든글로브 영화부문-뮤직코미디부문 최우수 여주연상, 제11회 영국 영화·TV예술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여배우상, 제17회 미국영화․TV 골든글로브 영화-뮤직코미디 최우수 여주역상, 100년 만의 가장 위대한 여배우 랭킹 6위… 1926년 6월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본병원에서 태어난 마릴린 먼로는 당시 노마 제인 모태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한 차례의 세례 후 그녀는 이름을 노마 제인 베이커로 변경했다. 불행한 것은 그녀가 사생아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멀리 타향으로 떠났으며 먼로는 태어난 지 13일 만에 브라운다이 부부의 집에서 매주 5달러씩 내기로 하고 입양됐다. 1933년 가을, 마릴린 먼로는 어머니 글라디스 바크르에게 인계되었다. 글라디스는 1935년 6월 1일 먼로의 보호자가 됐지만 몇 개월 후인 9월 13일 먼로를 고아원에 보냈다. 이어 먼로는 1937년 11월부터 안나란 여인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고교생이던 1941년 마릴린 먼로는 어린 나이에 결혼과 함께 ‘아름다운 여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결혼 후 마릴린 먼로는 올림픽 챔피언 하워드한테서 역도와 서핑을 배웠으며 1944년 5월부터는 항공기 무전기 제조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45년 6월 26일 마릴린 먼로는 사진작가 데이비드 코너일과 함께 잡지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사진작가 데이비드 코너일은 그녀가 사진을 게재하여 미군을 고무시키기를 희망했다. 마릴린먼로는 1946년 5월 26일 ‘가족권’ 잡지 표지를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알렸다. 1946년 7월 19일,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폭스로 처음으로 가게 되었고 7월 26일 폭스와 첫 6개월 계약을 맺었다. 또 머리를 황금색으로 염색하면서 ‘제인 아델’이라는 예명을 붙이기도 했다. 1948년 마릴린 먼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슈쿠다, 허!스쿠다, 하이!(It's Shukuda, Huh! It's Shukuda, Hi!)’에서 교회를 달군 여자 역을 맡았지만 그한테 차례진 대사는 한 줄밖에 없었다. 이후 그녀는 한 영화에서 여자아이를 연기하였으나 역시 대부분의 장면은 삭제되었다. 1949년 5월 27일, 사진작가 톰 켈리는 먼로의 누드 사진을 여러 장 촬영하여 골드 미스 드림 달력을 출판했다. 하지만 먼로는 달력에 실린 자기의 사진에 싸인을 하지 않아 50달러만 받게 되었다. 그해의 8월 15일, 먼로는 뮤지컬 영화 ‘토마호크행 티켓(Tickets to Tomahawk)’의 촬영에 참여했고 10월에는 또 범죄영화 ‘밤의 밤’ 촬영에도 참여했다. 1950년 1월 5일, 먼로는 드라마 ‘화구(火球)’의 촬영을 시작했고 4월에는 또 드라마 ‘혜성미인’에서 어느 한 주요 배역을 맡았다. 같은 해 먼로는 잡지 ‘성조기’가 선정한 ‘매력 아가씨’로 뽑히기도 했다. 1951년 4월 18일, 먼로가 출연하는 애정 코미디 영화 ‘사랑의 둥지’ 촬영이 시작되면서 그해 5월 1일, 폭스는 먼로와 6개월 계약 기간을 7년으로 연장했다. 뒤이어 먼로는 1952년 5월 7일 ‘라이프(life!)’지의 표지모델로 데뷔했으며 6월 1일에는 멜로영화 ‘신사는 미인을 사랑한다’의 주역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그해 8월 31일 라디오 생방송에 첫 출연 했고 9월 2일에는 ‘미스 아메리카 모델 쇼’에 출연했다. 1953년 6월 26일 마릴린 먼로가 미국 연예계에 짙은 손자국과 발자국을 남겼으며 9월 13일에는 TV에 처음 등장했다. 이어 11월 5일 로렌 바이콜, 로리 캘헌과 함께 출연한 애정 코미디 영화 ‘결혼하고 싶어’가 개봉됐다. 영화에서 먼로는 어릴 때부터 백만장자와의 결혼에 목마른 성감 모델 ‘보라 드 베이워스’ 역을 맡았다. 1954년 4월 30일, 마릴린 먼로가 로버트 미첨과 함께 촬영한 서부 모험영화 ‘동으로 흐르는 강물’이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먼로는 팜므파탈의 바 가수 ‘카이’역을 맡았다. 먼로는 9월 1일 로맨틱 코미디 영화 ‘7년차 가려움’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로 먼로는 제9회 영국영화·텔레비전예술아카데미상 영화상인 외국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1955년 1월 7일, 마릴린 먼로는 밀턴 그린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 센터’의 설립을 발표하였고 1월 15일 20세기 폭스 프로덕션과의 계약은 종료됐다. 1956년 1월 4일,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폭스프로덕션과 재계약을 맺고 2월 25일 할리우드에 복귀했다. 그 때로부터 그녀는 마릴린 먼로로 개명했고 이어 3월 3일에는 주연 로맨틱 코미디 영화 ‘버스터미널’에 출연했다. 그녀는 이 영화로 제14회 미국 영화 TV 골든글로브 영화․TV 부문 여 최우수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57년 6월 13일, 마릴린 먼로가 로런스 올리버와 함께 주역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드래곤 봉황’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는 관능적이고 매력적인 쇼걸 ‘엘시 마리나’의 역을 맡았으며 이 역할로 제11회 영국영화·TV예술 아카데미상 영화상-외국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다. 1958년 8월 4일, 마릴린 먼로는 애정 코미디 영화 ‘열정은 불처럼’에서 마이애미 악단의 아름다운 관능의 여인 ‘수가’ 역을 맡았다. 1960년 3월 8일 먼로는 영화 ‘열정은 불처럼’으로 제17회 미국 영화․TV 골든글로브 영화 부문-뮤직코미디 부문 여 최우수 주연상을 받았다. 1961년 1월 31일, 마릴린 먼로는 클라크 게이블,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함께 촬영한 서부 애정 영화 ‘난점 원앙보’가 개봉됐다. 1962년 3월 5일, 마릴린 먼로는 ‘세계 최고의 여배우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4월 23일에는 그녀는 주연 코미디 단편 영화 ‘멘붕’ 촬영을 시작했다. 1962년 6월 1일은 마릴린 먼로의 20세기 폭스프로덕션에서의 마지막 출근 날이자 마지막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6월 7일, 20세기 폭스프로덕션은 먼로와 계약을 종료했다. 하지만 그해의 8월 1일, 20세기 폭스프로덕션은 월급을 2배로 주기로 하고 마릴린 먼로를 다시 고용하기로 결정했으며 8월 3일, 먼로는 ‘라이프’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멘붕'의 재촬영에 동의하면서 ‘라이프’지의 표지모델이 됐다. 1999년 미국영화학회가 선정한 ‘100년 만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여배우 랭킹’ 6위에 올랐다.
    • 연예·방송
    2021-12-29
  • 中, '융합'에서 '세계화'로 이끈 역사적 변혁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의 약속, 그것은 역중천균(力重千钧)이다. 또한 수파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이 말한 것처럼 “중국이 ‘WTO 가입’시 약속한 대외 개방을 이행한 것은 구성원 중 가장 깊고도 광범위하였다” 그리고 진리췬(金立群)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 총재는 “‘WTO 가입’ 초기 중국이 발전 배당금을 더 많이 받았더라면 현재와 미래는 세계가 중국의 기회를 더욱 많이 공유할 것”라고 말했다.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회 이래 중국은 개방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파악하여 대외 개방의 질적 증가속도를 높였다. FTA 시험 구역과 자유무역 항구의 범위를 끊임없이 확대하였으며 외국인 투자 진입 네거티브의 부단한 축소와 ‘일대일로(一带一路)’의 가일층 심화…세계는 중국을 집중 조명하면서 중국 발전의 ‘급행열차’와 ‘편승열차’를 함께 타기도 했다. 푸젠(福建)에서 태어난 ‘중국초(中国草)’는 초대목(草代木)으로 식용균을 재배할 수 있어 경제적 가치와 생태적 효과를 겸비했다. 중국은 이 균초 기술을 전문가 그룹과 더불어 사심 없이 세계, 특히는 저개발국과 공유하고 있다. 현재 ‘중국초’는 세계 100여 개 국가에 뿌리를 내리고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중국초’가 빈곤 지역의 발전 희망을 부풀리는가 하면 ‘중국 도로’, ‘중국 교량’과 ‘중국 열차’도 국경을 넘어 우정과 발전의 맥을 전하고 있다. 지난 12월 3일 중국-라오스 국제철도가 개통됐다. 북쪽 쿤밍(昆明)에서 출발하여 남쪽의 비엔티안에 도착하는 국제 열차이다. 전체 길이는 1035킬로미터이다. 이 ‘강철 실크로드’는 동남아 국가들에 피복되어 번영과 풍요로움을 주는 큰 통로가 됐다. 또한 중국과 아프리카 27억 대중이 손잡고 높은 수준의 중국―아프리카 운명공동체 구축을 추진하고 중국·아세안 협력도 가일층 승화돼 동아시아 경제통합을 이끌고 있다. ‘차이나 기회(中国机遇)’의 스토리가 매일 이어지면서 전 세계 우호 국가가 확대되고 개방과 공영의 굉장한 힘을 모으고 있다. 중국식 다스리기- 개방은 개혁을 추진하고 중국식 현대화의 새로운 길 개척 이는 ‘WTO 가입’의 배당금이자 개혁의 배당금이었다. 개혁은 진통이 있지만 개혁하지 않으면 긴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중국 기적’은 대외 개방과 개혁 심화를 결합한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왕원타오(王文涛) 중국 상무부장은 “WTO에 가입한 이래 중국은 개방으로 개혁과 발전을 촉진하면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끊임없이 완전하게 추진해 시장과 사회의 역동성을 불러일으켰다”며 “개방은 체제의 문제점을 표출시키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바로 개혁의 주안점이다”라고 밝혔다. 1986년 중국이 정식으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총 협정 체결국 지위 회복신청을 낸 이래 15년이란 긴 회복기간과 ‘WTO 가입’ 협상이 있었다. 이로 하여 중국은 WTO에 미리 적응하는 시간을 벌었고 국내 경제 개혁에 방향을 제시했다. 장샹천(张向晨) 세계무역기구 사무 부총장은 “다자간 무역체제와 국내 경제체제 개혁을 통합해야 국제무역체제에서 수혜를 볼 수 있다”며 “결재기간은 15개의 영업일에서 3개의 영업일로 압축되었으며 올해 4월 하이난(海南) 해상사무 부문의 개혁으로 하이난 FTA항의 첫 외국인 독자기업인 양푸항(洋浦港) 착지가 빨라졌다”고 평가했다. 20년 동안 중국의 이러한 국내개혁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났었으며 경제 분야의 각종 체제기제의 약점을 부단히 보충했다. 개방하면 늑대와 춤을 추는 업종이 반드시 있을 법이기에 중국은 오히려 개혁을 가속화하면서 ‘굳은 살을 헤치고 다시 태어나라’고 몰아붙이곤 했다. 자동차업계의 경우 더 많은 외국 브랜드를 유치했지만 자국 브랜드에도 기회를 주어 중국 자동차도 경쟁에서 ‘물 대포’를 맞으며 ‘보위전’을 치렀지만 그것이 ‘진급전’을 이어갈 정도로 경쟁이 커졌다. 469만 대와 5000만 대, 이는 2001년과 2020년 중국 자동차생산 판매량의 비율로 거대한 차이가 업계의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2018년 합자주율 제한이 가시화되면서 신에너지 트랙에서 중국산 자동차들이 앞지르기를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 유치 네거티브 리스트 개정(负面清单) ‘감법(减法)’ 하나하나가 더 개방적인 영역을 의미했고 리스트가 적어질수록 관리 틀과 모델상의 개혁 요구는 더 높아졌다. 개방은 제도로 보장하고 개방은 제도로 확대한다는 것이 중국이 세계에 보내는 더 높은 수준의 개방 신호다. 2018년에는 중국의 첫 ‘제도적 개방’을 실시했고 2019년에는 ‘규제·관리·기준 등 제도적 개방 추진’을 명시해 중국의 개방 개혁이 국내제도 차원으로 한 단계 더 확대됐음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WTO 가입’은 중국이 시장경제를 하겠다고 전 세계에 약속하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있는 중대한 돌파구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룽융투(龙永图) 중국의 ‘WTO 가입’ 수석협상대표는 “오늘날 인민 중심으로 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길이 세계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20년간 중국은 개발도상국의 발전 수준, 발전 단계, 수용 능력에 입각하여 질서정연하게 시장 개방을 추진하였다. 또 선진국 발전 경험과 사회주의 제도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중국식 현대화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냈다. 금융업에서 중국은 서방의 100년 간 경험을 전면적으로 부정하지 않았으며 한편으로는 열심히 공부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의 발전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았다. 즉 본토와 결합해 제도 혁신을 하였고 나름대로의 세계적 금융허브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중국은 반성과 함께 금융업 개혁과 개방을 자국의 절주대로 밀고 나갔다. ‘선위불가승, 이대적지가승(先为不可胜,以待敌之可胜)’이라고 ‘손자병법’의 이 구절은 소박한 진리를 말한다. 자신의 단점을 직시해 약한 부분을 공략하면 후발 강점을 살리고 결국에는 경쟁에서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다음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2-23
  • 中, '융합'에서 '세계화'로 이끈 역사적 변혁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세계경제가 중국을 ‘수용’했기에 새로운 시대에 들어 중국의 더욱 폭 넓은 개방에 더욱 경탄하고 있다. 중국공산당 제18차 대표 대회 이래 중국의 대외 개방은 수동적으로부터 주동적으로 세계 경제를 이끄는 뚜렷한 특징이 나타났다. 지난 12월 1일, 중국-유럽행 열차가 충칭 단결촌에 있는 철도 중심역에서 화물을 가득 실은 채 천천히 빠져나왔다. 충칭세관이 올해 들어 감독관리를 더 한층 풀어준 2191번째 중국-유럽행 열차로 그 옛날 사막의 낙타방울이 오늘날의 ‘강철 낙타 행렬’로 된 셈이다. 10년간 중국-유럽행 열차는 이미 일대일로를 공동 건설하는 중요한 운반체가 되어 중국의 대외개방 판도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서도 큰 진전을 보여주고 있다. 충칭이란 이 ‘산성’은 세계에로 통했고 ‘옛 고지’는 다시 새로운 봉우리로 올라가게 되었다. FTA 실험 구역은 수차례 중국의 동서남북에 일떠섰다. 선전 경제특구의 40년 재출발, 하이난 자유무역항은 돛을 올려 항해를 시작했고 광둥, 홍콩과 마카오는 공동으로 국제 일류의 걸프 지역과 세계적인 도시 군을 건설했으며 슝안 신구(雄安新区) 천년대계와 국제소비중심도시 건설은 쾌속 궤도에 진입했다. 이렇듯 하나의 강력한 움직임이 모여 중국경제 총량을 100만 억 위안의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했고 1인당 GDP는 1만 달러를 돌파하였다.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공업 분야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빠른 걸음으로 고품질 발전을 향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즉 신에너지차, 인공지능(AI), 디지털경제 등 분야에서 대규모의 추월을 야망하고 있다. 중국의 기회, ‘세계시장’을 개방 육성하고 세계경제를 일지춘수(一池春水)로 활성화 시켜 중국은 개방 속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개방 속에서 세계를 행복하게 한다. ‘중국의 기회’는 세계적인 대 변혁사였으며 4회 연속 거행된 수입품 박람회는 경전적인 주목으로 ‘이전난구(一展难求)’의 큰 인기였다. 곧 바로 세계 각국이 개방 확대와 세계화의 종심(纵深) 발전을 향해 던진 중국의 ‘신뢰표’는 중국 시장의 큰 매력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2018년, 중국은 보호무역주의 역풍에 맞서 세계 최초로 수입을 주제로 한 국가 급 수입품박람회를 상하이(上海)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무역자유화와 경제세계화를 지지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또한 2019년에 있은 제2회 수입품박람회는 신 중국 창립 70주년을 맞아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이라는 시대적 강음을 전했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의 재출발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그리고 2020년에 있은 제3회 수입품박람회는 전 세계 코로나19 상황의 충격에 직면하여 중국은 세계에 향해 “새로운 발전 구도는 결코 폐쇄적인 국내 순환이 아니다”라고 정중히 선언했다. 국내와 국제라는 쌍 순환 트랙을 더욱 활짝 열어놓은 셈이다. 2021년 제4회 수입품박람회의 취지는 ‘개방의 봄바람으로 세계가 따뜻하게 하자’는 대국의 드넓은 도량이었다. 중국은 인구 14억여 명과 중위소득 4억 명 이상으로 연간 약 2조5000억 달러의 수입과 서비스를 제공하였고 시장 규모도 엄청나게 크다. 수입품박람회의 ‘로드맵’중국 시장은 ‘세계의 시장, 공유하는 시장, 우리 모두의 시장’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WTO 가입 20년, 중국은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으로 세계와 시장 기회를 확고히 공유하고 있다. -화물 부문은 전체 관세가 7.4%로 낮아지고 서비스 부문은 120개 가까이 개방돼 모두 ‘WTO 가입’ 시의 약속 수준을 웃돌았다. -중국은 120여 개국의 주요 교역 파트너로 부상해 지난 20년간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연평균 기여율이 30%에 육박했다. -세계적인 수입대국이 되어 42개 최빈 개도국의 97%에 대해서는 관세면제 혜택을 주었고 25%에 해당하는 그들의 수출을 유치하여 최빈개도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되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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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9
  • 53년 전, 생명으로 지킨 中극비문서...22일 후 세계를 진감④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번 계속) 1968년의 10월 초부터 곽영회는 핵 실험장에서 중국의 첫 열핵탄두 발사 준비작업에 참여하면서 12월 초까지 머물렀다. 그날 저녁 그는 북경으로 가는 항공편을 알아보고는 곧 비행기를 탈 목적으로 비행장으로 향했다. 당시 야간항공편을 타지 말고 다음날 아침에 출발하라는 동료의 만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곽영회는 역시 “야간항공편을 이용하면 이튿날 근무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기다리는 사이 곽영회는 과제 연구조 성원의 회보를 받은 후 인차 비행기에 올랐다. 5일 새벽, 곽영회가 탑승한 비행기는 북경 수도공항에 서서히 착륙하다가 지상 400미터 되는 지점에서 갑자기 균형을 잃었으며 한동안 허우적거리다가 공항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옥수수 밭에 추락했다. 당시 탑승한 승객과 승무원 도합 14명 중 중상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그 생존자는 당시 추락 직전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곽영회가 생명의 마지막 시각에 “아, 나의 서류!”라고 소리쳤다고 회고했다. 사고 직후 구조대원들이 추락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나머지 13구의 희생자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타고 너부러져 있었지만 유독 2구의 시신은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시커멓게 탄 시신 2구를 떼어내려고 애를 쓰던 중 그 2구의 시체의 가슴사이에서 뭔가를 발견하였다. 거의 멀쩡한 서류 가방이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서류 가방을 열자 그 안에는 곽영회가 상급에 보고하려고 했던 그 열핵미사일 시험 데이터 자료가 있었다. 그 시신 2구의 시신은 곧 바로 곽영회와 경호원으로 확인됐다. 열사의 정신은 영생한다 곽영회가 당한 조난은 삽시에 세상을 진동하였다. 주은래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한 결과 비행기는 내비게이션시스템(导航系统)에 고장이 난 것으로 추정되었다. 곽영회의 비보를 듣고 울음을 터뜨리던 전학삼은 “그냥 10초였다. 생명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우수한 역학 연구 대가가 세상을 떠났다. 삶과 죽음, 10초였다!”며 몇 번이고 되뇌이었다. 한편 조난 소식을 접한 곽영회의 아내 이패는 눈물을 흘리지 않고 혼자 베란다로 나와 먼 곳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2007년 이패 여사는 평생 모은 돈 60만 위안을 두 차례에 걸쳐 중국과학기술대학과 중국 과학원 역학연구소에서 설립한 ‘곽영회 장학금’에 기부했다. 들려오는 풍문에 따르면 당시 누군가 이패 여사에게 “왜 기부의식을 차리지 않느냐”고 묻자 이패 여사는 그냥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의식은 무슨 의식? 그냥 원해서 기부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1968년 12월 25일 중공중앙에서는 곽영회에게 열사 칭호를 수여했다. 그리고 12월 27일 즉 곽영회가 사망한지 22일 후, 그가 생명으로 지켜낸 중요한 자료에 따라 중국은 첫 열핵미사일 실험이 성공하여 수소폭탄의 무기화가 실현되었다. 또한 1970년 4월, 곽영회가 직접 설계한 ‘동방홍 1호(东方红一号)’ 인공위성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1999년 9월 18일, ‘양탄일성(两弹一星)’프로젝트에 탁월한 공헌을 한 중국 과학자 23명이 국가로부터 ‘양탄일성공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23명 중 곽영회는 유일하게 핵폭탄, 미사일과 인공위성 연구개발에 모두 참여하고 이바지한 과학자이자 유일한 열사였다. 2018년 7월, 국제 소행성센터는 국제사회에 정식으로 공지를 발표하여 일련번호 212796과 212797의 소행성은 ‘곽영회성’과 ‘이패성’으로 영구 명명했다. 매번 우리가 고개를 들고 먼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항상 우리의 진로를 안내하는 것은 언제나 빛나는 그 별이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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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8
  • 中, '융합'에서 '세계화'로 이끈 역사적 변혁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일전,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11일은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20주년을 맞은 날(이하 ‘WTO 가입’으로 약칭)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나무채 하나, 사인펜 하나로 중국은 세계 무역의 대 가정에 ‘입성’, 카타르의 도하 만에서 이를 지켜보며 글로벌 산업 고리의 가치 고리를 공유하는 역사적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년 간 중국은 개방으로 개혁을 촉진하고 개혁으로 발전을 촉진해 ‘세계의 공장’과 ‘세계의 시장’으로 도약하겠다는 ‘WTO 가입’ 약속을 전면적으로 이행했다. 전면적으로 샤오캉 사회(小康社会)를 건설하는 첫 번째 100년 분투 목표의 실현을 추진하였다. 그 20년 후, 역사의 새로운 길에 들어서면서 중국은 ‘탈군(退群)’, ‘탈연(脱钩)’이라는 세계화의 역류 앞에서 강대국의 담당과 역사의 주도권을 보여주었으며 '융합'에서 '세계화'로 이끄는 역사적 변혁을 맞았다. “군자는 근본에 충실하고 그 본은 도생으로 일어선다(君子务本,本立而道生)”. 100년 만의 큰 변화에 직면한 중국은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했으며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의 발걸음은 지축을 울렸다. 중국의 기적: 개방은 ‘세계의 공장’을 만들었고 중국 발전의 도도한 물결을 격발시켰다 현재의 중국으로 된 데는 개방전략의 힘이 컸다. “‘WTO 가입’이 분수령이었다.” 중국 대외경제무역대학 세계무역기구연구원 도신취안(屠新泉) 원장의 말이다. 그렇다면 1971년 유엔에서의 합법적 지위가 회복된 것이 중국의 ‘정치적 신분’이었다면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은 중국의 ‘경제적 신분’을 해결한 것이다. 세계경제가 중국을 ‘수용’했기 때문에 세계는 곧 급성장하는 ‘중국의 기적’을 맞이했다. 거시적 안광으로 보면 중국 경제는 후발 우세와 비교 우세를 과시했다. 2010년 경제 총량은 일본을 앞지르면서 6위에서 10년 만에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WTO 가입’ 전까지 4%에 불과했던 중국의 GDP가 2020년에는 전 세계 17%를 점했다. 다음 미시적 안광으로 보면 ‘늑대가 왔다’는 경고에 중국 업체들은 늑대와 함께 춤을 추며 국제경쟁의 시련을 이겨내면서 큰 잠재력을 발휘했다. ‘WTO 가입’ 전까지 세계 500대 기업 중 10여 개에 불과했던 중국 기업이 2021년에는 143개의 기업이 명함장을 올렸다. 그리고 효율적 안광으로 보면 20년 전 중국에서 하룻동안 드나들던 수출입 물량을 지금은 3시간 남짓하면 완료할 수 있고, 20년 전 중국이 1분 동안 일궈내던 GDP 수치는 지금은 7초면 충분하다. “큰 보폭으로 시대를 성큼 따라갔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 부장에 따르면 지난 20년 간 중국의 경제 총량과 화물 무역은 모두 8배나 증가하면서 중국은 세계 1위의 무역대국이 됐으며 대외직접투자는 세계 26위에서 1위로 성큼 올라섰다. 세계경제가 중국을 ‘수용’했기 때문에 중국이 ‘WTO 가입’ 약속을 전면 이행했음을 세계가 증명하고 있다. "‘WTO 가입’ 3년이 지나자 중국은 무역 경영권을 개방할 것을 약속했다. 2004년 7월 새 무역법을 시행하여 반년 앞당겨 실현했다. ‘WTO 가입’ 약속을 이행하여 3년 동안에 증권회사 주식 3분의 1을 외국인이 차지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지식재산권 보호를 약속하면서 중국은 ‘국가 지식재산권 전략요강’을 제정, ‘중국 지식재산권 보호 행동계획’ 등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다양한 분야로부터 1000여 건의 구체적 조치를 시행했다. 사실 중국은 WTO 가입 약속을 10년 만에 모두 이행했으며 많은 부분에서 초과기여를 했다. 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라미 등 유지인사들은 모두 중국에 ‘WTO 가입’ 답안지에 ‘A+’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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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1-12-18
  • 53 년 전, 생명으로 지킨 中극비문서...22일 후 세계를 진감③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번 계속) 곽영회는 귀국하자 모택동 주석과 주은래 총리의 직접적인 접견을 받았다. 접견 장소에서 주은래가 곽영회에게 “무슨 요구가 있는냐”고 묻자 곽영회는 머뭇거리지도 않고 “하룻 빨리 업무에 임하고 싶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조국이 수요하는 사업에 투신 1956년 말, 중국역학연구센터가 설립되자 전학삼이 소장을 맡았고 곽영회가 상무부소장이 됐다. 그 이듬해에는 역학연구센터와 청화대학이 공동으로 공학역학 연구반을 운영하였으며 곽영회가 담임교원과 강사를 맡았다. 1958년 중국 과학기술대학에서 화학물리학과를 설치했으며 초대 학과장에는 곽영회가 부임했다. 그러는 동안 곽영회는 ‘역학보’와 ‘역학번역총서’를 창간하였으며 동시에 많은 역학학술 명작을 번역 출판하였다. 이렇게 곽영회는 전학삼과 더불어 중국 근대 역학사업의 창시자로 되었다. 이후 곽영회가 참여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교수나 연구보다 어렵고 간고하였으며 또한 중요한 것이었다. 그것인 즉 중국이 자체로 핵무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소련은 중국과의 관계 파탄으로 관련 전문가와 기술 장비 및 관련 자료를 모두 철수해 중국의 ‘양탄 프로젝트(원자폭탄과 수소탄 프로젝트)’는 심한 난항을 겪었다. 당시 곽영회는 도면과 자료도 없는 상황에서 위기 앞에서 왕감창(王淦昌), 팽항무(彭桓武) 등과 함께 중국 핵무기 연구의 최초 3대 기둥을 형성, 당시 중국과학원 제9연구원(현재의 중국공정물리연구원)에는 4개의 첨단기술위원회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그 중 곽영회가 장외 실험위원회를 이끌면서 핵무기 개발의 실험과 무기화를 담당했다. 원자폭탄 연구 과정에서 곽영회는 한편으로는 과학자들을 위해 폭발역학과 탄두설계의 기본 이론을 전수시킴과 아울러 신속하게 실험실을 건립하여서는 구조의 강도와 진동과 충격 등의 데이터를 연구했다. 특히 대잠 핵무기의 수중폭발역학과 수역학 등에 관한 연구도 담당, 거기에 폭발 물리 실험에서 곽영회는 연구팀을 이끌고 실험을 거듭하면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했으며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 최종 우열을 가리는 것’으로 중국의 첫 원자폭탄 폭발을 위한 최선의 방안이 결정됐고 이후 이는 중국의 1세대 핵무기에 사용됐다. 1963년, 곽영회는 핵무기 개발 연구진과 함께 핵무기 연구 기지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이미 반백이 넘은 곽영회는 중국의 1세대 핵무기 연구자들과 동고동락을 함께 했다. 영하 40도의 혹한과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량한 대지 그리고 고지대 반응으로 인한 두근거림과 가슴의 답답함, 부종을 견뎌야 하고 밤낮없이 계산하고 연구, 실험과 폭파를 반복하면서 곽영회는 중국의 원폭 실험을 성공에로 몰고 갔다. 1964년 10월 16일, 중국 신강의 뤄푸버(罗布泊) 상공에는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중국의 첫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했던 것이다. 순간, 환호하는 인파 속에서 곽영회는 격정의 눈물을 쏟으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원자폭탄 실험이 성공한 뒤에도 곽영회의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수소폭탄과 미사일 개발에 관한 작업 외 1965년 9월부터 곽영회는 중국 최초의 인공위성 개발 중 위성 본체가 지구로 귀환하게 하는 연구팀을 지휘하게 됐다. 고강도, 고밀도 작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곽영회한테는 여가시간이란 전혀 없었다. 그는 워낙 음악 감상을 좋아했다. 미국에서 귀국할 때 음반 두 상자를 가져왔지만 오랫동안 봉투도 뜯지 않고 있다가 결국에는 몽땅 중앙인민방송에 보냈다. 그리고 그는 우표 수집을 좋아했으며 그한테는 수집해 놓은 우표만도 책 세 개에 달했다. 그러나 이 역시 국가 우정총국에 몽땅 보내졌다. 그는 또 촬영도 좋아했으나 결국에는 렌즈를 만질 틈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당시 곽영회는 실험기지와 북경을 자주 오가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늘 비행기를 탔다. 당시 중공중앙은 그의 안전을 위해 늘 걱정했으며 주은래 총리 역시 곽영회 같은 과학자들의 비행기 탑승을 아주 못 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을 쫓기 위해 늘 비행기에 탑승했다. 1968년 12월 4일, 그날도 곽영회는 야간항공편을 이용했다.(다음 계속)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2-17
  • 53 년 전, 생명으로 지킨 中극비문서...22일 후 세계를 진감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번 계속)당시 곽영회를 포함한 중국의 유학파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임이 인차 증명되었다. 곽영회, 전위장과 임가추 등 3명은 함께 캐나다 토론토대학 응용수학부에 보내져 반년 만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곽영회는 1941년 미국 캘리포니아 이공대학 공기역학연구센터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됐다. 당시 이 연구센터의 구겐하임 항공실험실(GALCIT)은 전 세계 최고의 연구센터였다. 왜냐하면 이 센터의 기둥 교수는 세계 기체역학의 신격인 폰 카르멘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곽영회는 훌륭한 교수를 만났고 또한 평생의 지기였던 선배 전학삼을 알게 되었다. 학업기간 곽영회는 ‘초음속류 불연속해결’ 연구를 주도적으로 제안했다. 이는 당시 공기역학 분야에서의 최우선 과제였으며 후에 곽영회는 이 연구로 박사학위를 따냈다. 1946년, 폰 카르멘의 학생 빌럼 힐스는 코넬대학에 항공공학 연구원을 설립하려 했다. 이러자 폰 카르멘은 곧바로 그에게 제자 곽영회를 추천했다. 또한 매사추세츠 이공대학(MIT)으로 강의하러 가려던 전학삼은 직접 차를 몰고 와서는 후배 곽영회를 코넬대학으로 호송하기도 했다. 코넬대학 교수로 부임한 곽영회는 비행기의 초음속 장애 제거를 위한 돌파 연구에 몰두했다. 당시 초음속 비행을 갓 실현한 항공기는 일반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것인즉 일단 비행기가 초음속에 가까워지면 저항이 급증하는 것이었다. 일단 조작이 먹통이 되면 추락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초음속 장애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곽영회는 자신의 끈질긴 연구끝에 업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완전히 새로운 계산 방법을 창조하여 인류가 음향 장애를 돌파함에 있어서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1946년 5월, 전학삼과 곽영회는 미국 캘리포니아 이공대학을 떠나 미국항공자문위원회(NACA)에 부임했다. 이들 두 사람은 당시의 NASA에 ‘압축이 가능한 무선 아음속과 초음속 혼합형 흐름 및 상임계 마하수(可壓縮無旋亞聲速和超聲速混合型流動和上臨界馬赫數)’란 제목으로 된 논문을 제출해 초음속 흐름에서의 이론과 계산 문제를 해결하고 초음속 비행체 설계를 크게 촉진했다. 공기역학과 응용수학에서 뛰어난 활약과 공로로 곽영회가 미국 업계에서 크게 명성을 얻게 되자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요청했고 관련 기업들도 높은 연봉을 대가로 스카우트했다. 당시 곽영회는 이미 코넬대학의 교수이자 항공공학 연구원의 3명 핵심 중 한 명으로 미국에서 자동차와 집이 있었고 생활도 편했다. 그러나 1949년 이후부터 그의 마음속엔 귀국이라는 욕구가 더 강열해졌다. 그때 어떤 친구가 “장차 아이들도 이곳에서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왜 빈곤하고 낙후된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가”며 곽영회의 생각을 돌려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곽영회의 대답은 “가정과 나라가 가난한 것은 아들로서의 무능을 말해줄 뿐이다. 나는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자부하며 나한테는 귀국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조국을 건설할 책임이 있다”는 몇 마디였다. 그러나 곽영회의 귀국길 쉽지 않았다. 그때 곽영회는 코넬 대학에 도착하자 “내가 이 대학교에 온 것은 그냥 잠깐 온 것 뿐이며 이제 적당한 시기가 되면 곧 떠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항공공학연구회에서 근무하면서 곽영회는 많은 기밀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한번은 곽영회의 테이블 위에 한 장의 등록지가 놓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만약 전쟁이 발발하면 미국을 위해 복무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란도 있었다. 그것을 본 곽영회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NO(아니오)’라고 적었다. 그 이후 곽영회는 더 이상 기밀 자료를 열람할 권한을 잃었다. 1950년 전학삼은 미국당국에 귀국 제의를 했다가 수감되었으며 아울러 자택도 검문검색을 받았다. 동시에 곽영회의 출국 자유도 제한되기 시작했다. 곽영회는 영국에 가서 강의하는 것조차 불가능 했다.이런 상황은 1955년까지 지속되었고 중미 양국이 대사급 회담에서 합의를 보고 나서야 미국은 자국 내 중국 유학생과 과학자들의 귀국을 허용했으며 전학삼은 마침내 먼저 귀국할 수가 있었다. 전학삼이 귀국한 후 곽영회는 귀국 욕망이 더욱 강렬해져 매일 아내 이패(李佩)와 귀국 계획 의논했다. 그동안 코넬대학은 곽영회를 잡아 두기 위해 높은 급여를 제시했고 대만 당국도 후한 대우로 그가 대만으로 오기를 희망했다. 드디어 귀국 날짜가 다가왔다. 곽영회는 자신이 10여 년간 심혈을 쏟아왔던 대량의 연구 자료와 강의 원고를 태웠다. 이에 아내 이패의 회억에 따르면 연구자료는 남편의 오랜 정성이란 사실을 알고 말렸지만 당시 남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곽영회 또한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렇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것을 가지고는 미국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이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었다” 곽영회가 이렇게 과단한 결심을 내린데는 선배 전학삼이 귀국할 때 갖고 있던 서적과 공책 800킬로그램이 모두 미국 세관에 의해 압수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곽영회가 원고를 태운 바로 다음 날 코넬대학 항공공학 연구원 원장은 곽씨네 부부를 위해 대형 피크닉 파티를 열었다. 파티에서 곽영회는 곧 완성될 원고를 불태워 버렸다. 이에 현장에 있던 교수들과 학생들은 모두 타오르는 불빛을 바라보며 묵묵부답이었다. 1956년 9월 30일, 마침내 곽영회 부부는 몇몇 중국 과학자들과 함께 귀국하는 ‘클리블랜드 프레지던트호’에 탑승했다. 그런데 배가 출항하기 직전 미국 이민국과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갑자기 배에 올라 귀국하는 모든 중국 과학자들의 짐을 강제로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패는 사전에 남편이 서적을 다 태워버린 것이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 그때에야 알았다고 회고했다. 2시간여 만에 ‘클리블랜드 프레지던트호’가 드디어 고동을 울렸고 곽영회는 마침내 귀국하게 되었다. 그해 그의 나이는 47세였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12-10
  • 中, 유엔 평화수호 행동의 관건역량으로③
    [동포투데이] 중국은 30년 넘게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면서 유엔 평화 유지부대의 핵심 역량으로 됐으며 말리, 콩고 등 임무 수행 지역에서도 그랬고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 시에도 중국 평화유지군은 ‘대국의 담당역할과 세계 평화 수호’란 초심과 사명감을 안고 실제 행동으로 전란 충돌 지역 주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중국 평화유지군 참모 장교, 평화유지활동 차질 없이 진행 ● 쥐환레이(勾焕蕾) 1990년 4월, 유엔 정전감시기구에 군사관찰원 처음 파견하면서 중국군이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가하는 길이 열렸다. 30여 년간 25개의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가한 중국군은 매년 말리, 남수단과 콩고 등 위험한 전란국가와 뉴욕 유엔본부에 군사관찰관, 참모장교, 기간제 장교를 파견해 휴전, 연락협상, 행동지휘, 조직계획 등을 관찰, 감독했다. 우리가 평화 유지의 길에 오른 것은 인류의 평화를 지켜낸 것이자 세계에 중국을 알리고 책임 있는 대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3년 전 평화유지 임무를 맡고 콩고로 떠난 데 이어 2020년 3월 6일, 우리는 사명감과 영예감을 안고 다시 평화유지 일선인 서아프리카의 말리로 향했다. 말리는 사하라 사막과 가깝기에 날씨가 무덥고 늘 황사가 하늘을 뒤덮었으며 무장충돌이 빈번히 발생했다.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이후 말리에서는 247명의 유엔 평화유지군이 순직했으며 2020년 3월,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유엔 평화유지군은 13차례나 공격을 받아 7명이 숨지고 66명이 다쳤다. 당시 말리에는 중국 평화유지군의 공병, 의료분대가 일선에서 안전보호, 공사건설, 의료보장 등 평화유지 활동을 원만히 수행하고 있었다. 말리에서 다 층차의 유엔 종합안정특파단(이하 유엔 안정단으로 약칭)에 배치된 중국군 참모장교는 모두 13명으로 업무는 인사, 작전, 훈련, 공사 등 다양한 직종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처음 도착하자 사령부 업무 영역 내에 빨리 편입되기 위해 선배들이 남긴 경험을 배우는 한편 프로세스를 익히기에 주로 노력했다. 동시에 영어 대화 연습을 추가하는 등 대외교제를 능력 제고에 힘썼다. 2020년 3월 25일, 말리에서는 처음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보고됐으며 4월에는 유엔 안정단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당시 사령부 내의 방역조치에는 손 씻기와 재채기를 할 때면 팔꿈치로 가려야 하는 등이 있었다. 우리는 국내 효과적인 방역 경험을 주둔지와 공유하기 위해 코로나19 방역 지도팀을 구성하자는 제안을 채택했다. 또한 군인 전원에게 마스크 착용과 방역 방법 홍보, 밀접촉 상황 추적과 통계 작성, 격리병동 건립 등 많은 일을 하였지만 모두들 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낌새였다. 그래도 성과도 있어 6개월 후 1만3000여 명의 주둔지에서 확진 자 제로(0)를 달성하였으며 코로나19 1차 확산 사태를 이겨내고 작전 능력을 최대한 보장했다. 초심을 잊지 않으면 사명은 반드시 달성되는 법이다. 참모 장교는 개인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중국의 목소리를 세계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명감이 곧바로 스트레스를 동력으로 삼아 도전장을 내밀고 평화유지 활동에 적극 기여하게 한 것이다. 말리 수도에서 400킬로미터 떨어진 동부의 중등 도시 자오에서 나의 동료인 리윈강(李云钢)은 유엔 안정단 동부 전구 훈련처 수석 참모장교로 근무했다. 해마다 7월에서 9월까지는 말리는 우기여서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도로가 질척거려 열악한 자연환경이 후방 수송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 훈련과 실전을 결합하기 위해 리윈강은 공병부대를 조직하여 숙영지내에 깊은 도랑을 파서 물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하천을 만들었다. 이어 도하전술 동작에 대해서는 안전 경계, 팀 편성, 위험 제거 등을 보급했다. 이 도하 훈련 방법은 유엔 안정단 총사령관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동부 전구 의료처 참모 장교인 장웨이(张伟)는 작전 중 부상자 이송과 의료기재 후송 등을 조율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수년간 무전기를 들고 다니다가 돌발상황이 닥치면 정신적으로 대처했으며 늘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라 한치의 소홀함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해 6월 1일 새벽, 다급한 전화 소리에 잠들었던 장웨이는 잠을 깼다. 독일 평화유지군 작전 소대가 자폭공격을 받아 6명이 다쳤던 것이다. 부상자 후송이 시급했다. 장웨이는 즉시 구조에 응하는 절차를 개시하여 작전지휘센터에 연락해 헬리콥터가 사고 지점으로 출동하도록 조정하고 아울러 중국 2급 병원에 즉시 진료준비를 하도록 통지하여 부상자가 제때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직책에서 빈틈없이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사령부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했다. 평화 유지 임기는 짧은 것이다. 나는 훈련담당 사령부 전투준비처 처장에서 훈련평가를 담당하는 부참모장으로 성장하면서 잊지 못할 경험을 많이 했다. 이렇게 우리는 30여 년 간 평화를 지켜온 릴레이 바통을 이어받아 분쟁지역 주민들에게 믿음과 힘을 불어넣었으며 평화의 희망을 심어주었다. (작자는 유엔 말리 다층차 통합 안정특파단 사령부 전 부참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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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0
  • 53 년 전, 생명으로 지킨 中극비문서...22일 후 세계를 진감①
    [동포투데이] 1968년 12월 5일, 중국 중남해 회인당, 비서 1명이 부랴부랴 들어오더니 외빈을 접대하고 있는 주은래 총리에게 귓속말로 몇 마디 건네였다. 그러자 웬간해서는 놀라지 않던 주은래 총리는 갑자기 안색이 달라지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당시 비서가 주은래 총리한테 보고한 것은 북경 수도 공항에서 착륙하던 비행기가 한 대가 추락하면서 탑승해 있던 인원 13명이 조난당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주은래 총리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은 조난자 중 1명인 과학가 곽영회 때문이었다. 주변 일꾼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후 주은래는 오열하며 대성통곡했다고 한다. 1968년 12월 25일, 중공중앙은 과학가 곽영회에게 혁명열사 칭호를 수여했다. 그 후 12월 27일 곽영회가 사망한 지 22일 만에 그가 생명으로 지킨 중요한 자료에 의해 중국의 첫 번째 열핵미사일 시험 폭발이 성공하여 수소폭탄의 무기화가 실현되었다. 1999년 9월 18일, ‘양탄일성(两弹一星: 원자폭탄, 수소폭탄 그리고 인공위성)’ 프로젝트에서 탁월한 공헌을 한 중국 과학가 23명이 국가로부터 ‘양탄일성 공훈상’을 수여받았으며 곽영회 열사는 이 군체에서 유일하게 핵폭탄, 미사일과 인공위성을 성공시키는 데 모두 이바지한 과학가이자 유일한 혁명 열사였다. 그럼 지금까지 유일하게 ‘열사’로 ‘양탄일성’ 표창장이 수요된 과학가 곽영회에 대해 그 인생을 더듬어 보자. 놀라운 천부 곽영회는 1909년 중국 산동(山東)의 영성(榮成)등가(滕家)진 곽가(郭家)촌에서 곽씨 가문의 넷째 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세세대대로 농사를 지어왔으나 아버지 곽문길은 그래도 어느 정도 문맥을 익혔기 때문에 곽영회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했다. 그러나 곽영회는 아홉 살 되던 해에야 삼촌 곽문수(郭文秀)가 차린 학당에서 글을 읽을 기회가 생겼다. 곽영회는 책 읽을 기회가 생기면 놀라운 재능을 보이군 했다. 1922년, 13살의 곽영회는 부지런하고 학업을 좋아한 덕에 석도진의 명덕소학교 고급학년에 보내져 공부하게 되었다. 그 뒤 1926년 곽영회는 17살 나이에 우수한 성적으로 청도대학 부속중학교에 우수한 합격하여 고향 최초로 국비 중학생이 되었다. 이어 1929년, 곽영회는 다시 남개 대학 예과 이공반에 합격되어 고향의 첫 대학생으로 되었다. 계속하여 1931년 곽영회는 본과로 편입되어 물리학 전공을 선택, 당시 중국 국내에서 유명 교수였던 고정미(古靜尾)의 제자가 되었다가 2년 뒤 고정미는 다시 곽영회에게 북경대학 물리학부 진학을 추천했다. 그러던 중 1938년 여름, 곽영회의 운명을 바꿀 시험이 다가왔다. 당시 ‘중영 경모관리 이사회(管理中英庚款董事会)’는 제7회 영국 유학생 모집을 실시해 20명을 뽑으려 했지만 지원자가 3000명이 넘었으며 곽영회가 지원한 항공공학 공기역학과는 1명만 모집함에도 50명이나 지원했다. 그 시험에서 곽영회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5개 과목의 총점수는 350점을 초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곽영회와 똑같은 점수를 받아 공동 1위를 한 수험생이 2명이나 되었다. 학생 1명만 모집하는 시험에 세 사람이 동점이니 어떻게 처리하는가? 이사회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이들 3명을 모두 채용하기로 하였다. 이는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당시 곽영회와 동점이었던 두 학생, 한명은 전위장(錢偉長·나중에 저명한 과학자, 교육자가 됨)이었고 다른 한명은 임가추(林家翘 ․ 나중에 저명한 수학자, 천체물리학자로 됨)였다. 1941년 1월, 곽영회는 선발된 학생 수십 명과 함께 상해에 모여 해외유학을 준비할 때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이 전쟁 상태에 돌입했다. 이렇게 되자 이 학생들을 영 연방의 각 국가에 보내 공부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친인척들과의 작별 후 배에 승선한 곽영회는 자신의 여권이 일본 정부로부터 발급받은 것임을 알게 됐으며 여권에는 또 “여행 도중 일본의 요코하마에서 3일간 머물며 뭍으로 놀러 가는 것도 허락된다”고 씌어져 있기도 했다. 이러자 학생들은 즉각 영국 대리 점원에게 항의하며 여권 변경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절대 안된다면서 “내키지 않으면 유학을 포기하라”고 했다.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앞에 두고 적지 않은 학생들은 침묵에 빠졌다. 그러자 평소 말이 없던 곽영회가 나섰다. “출국하지 못하게 하면 출국하지 말자. 중국인은 기개가 있어야 한다.” 이어 몇몇 학생들이 닻을 올리는 배에서 짐을 들고 내렸으나 곽영회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중국은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고전을 거듭하고 있었다.(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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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5
  • 中, 유엔 평화수호 행동의 관건역량으로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중국은 30년 넘게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하면서 유엔 평화 유지부대의 핵심 역량으로 됐으며 말리, 콩고 등 임무 수행 지역에서도 그랬고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 시에도 중국의 평화유지군은 ‘대국의 담당역할과 세계 평화 수호’란 초심과 사명감을 안고 실제 행동으로 전란 충돌 지역 주민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평화유지군 신분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 ● 짱민(张 珉) 2020년 9월, 중국 티베트 군구가 처음으로 유엔 평화유지 임무에 참가하면서 우리 일행 43명은 중국평화유지군 제24진으로 구성되어 콩고로 파견됐다. 당시 콩고는 에볼라, 말라리아 등 전염성 질병과 코로나19 확진자도 계속 늘고 있어 우리 모두의 앞에 놓인 어려움과 안전 위험는 유례없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의 임무수행 지역에는 여러 개 나라에서 온 4000여 명의 평화유지군들이 의료 보장 업무를 담당하였고 코로나19 검사와 백신 접종 등은 우리가 담당했다. 임무수행 지역인 부카부에서 중국 2급 병원을 인수하는 첫날부터 우리는 국내에서 쌓은 성숙한 방역 경험을 활용하였다. 대원들은 코로나19 방역 요구에 따라 군복을 방호복 안에 입고 파란 헬멧 대신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고는 매일 진료를 진행했다. 옷이 땀에 흠뻑 젖었고 신체적 및 심리적 압박감이 컸지만 각국 평화유지군의 생명을 건지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시작은 순리롭지 못했다. 당시 “중국 2급 병원의 진료 방역이 과도하게 까다롭다”는 환자가 있었다. 우리가 방역기간 동안 2급 방역 기준을 적용해 분리와 직접 진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의료 분대의 책임자인 나는 신속하게 회의를 소집하여 연구하는 한편 모든 방문환자와 소통하기로 했다. 그리고 상급 의료진에게 2급 방역 진료의 필요성을 주동적으로 설명하고 유엔 콩고 안정화 특파단(이하 유엔 콩고 안정단으로 약칭)에서 조직한 각종 학술 세미나에서 중국의 성공적인 방역 경험을 소개했으며 또 별도의 격리 진료실을 신설해 환자들이 더 나은 진료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강구하였다. 우리는 창고에서 이미 준비된 야전 텐트 몇 개를 갖고 와서는 병원 입구에 80㎡ 면적에 가까운 독립 진료실을 설치하였다. 진료기기, 물자 등은 제한적이지만 방역상 우리의 일상적인 진료 수요를 거의 충족시켰다. 그 후 환자들은 점차 우리가 진료하는 과정에서 취한 2급 방역 조치와 과학적인 태도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표하였다. 그리고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한테도 교차 감염 사례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유엔 콩고 안정단 각급 지도자들도 여러 차례 병원을 방문해 업무 지도를 하면서 우리의 행동과 성과에 대해 “중국 2급 병원의 방역 진료 업무는 완전히 방역 수요에 부합하며 환자나 의료진 모두에게도 최선의 보호”라고 강조했다. 임무는 하나에 이어서 또 생기고 도전 역시 하나에 이어서 재차 하게 된다. 2020년 10월 26일, 유엔이 전 세계 평화유지 임무지역에 바이러스 핵산검사 실험실을 18개 추가하기로 결정하자 우리는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그 임무를 원만히 수행했다. 당초 상급부서는 방 하나와 테이블 하나만 구하면 측정작업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교차 감염을 피할 수 있는 전문 핵산검사 실험실을 건립할 것을 제안했다. 검사결과가 정확하고 검사인원의 안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당시의 조건 하에서 완벽한 실험실을 건설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대원들을 이끌고 유엔의 코로나19 측정 표준 조작 수첩과 국내 핵산측정 실험실 건설 표준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뒤 국내에 있는 군사 과학원, 해방군 총병원 등 의료부문의 전문가들과 원격 화상연계를 통해 실험실 건설의 안전성을 논의하는 등 학습에 매진하였으며 한차례 또 한차례의 노력을 거쳐 마침내 기능을 모두 갖춘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핵산검사 실험실을 마침내 완공하였다. 12월 12일, 브라이트 당시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 집무실 주임이 중국의 2급 병원을 찾아왔다. 그가 코로나19 핵산검사 실험실 건설과 의료사업 진행상황을 둘러본 것은 이 실험실이 공식적으로 평화유지군 의료 분대의 사용관리로 이관됐음을 보여줬다. 이 실험실은 우리가 철수한 뒤에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으며 임무 구역의 코로나19 발생 예방과 통제에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유엔 의료 분야를 담당한 인사도 특별히 우리 의료분대에 찾아 “중국 군의관들 참 훌륭하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매번 급하고 위험천만한 임무에 봉착하면 우리 의료 분대는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되었고 번마다 당원들이 앞장서 난제를 해결하곤 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분자생물학 조작 프로그램을 전개한 검험사 라오제(罗杰), 정형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한 차례, 또 한 차례의 수술을 마친 외과 의사인 허얜린(贺焱林)…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유엔 평화유지군 의료진의 진료를 받고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현지 아이들을 보면 우리는 평화유지군 신분에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유엔 콩고 안정단 남전구 평화유지군 합동 수훈식에서 유엔 콩고 안정단 사령관 마르코스 데사 알폰소 코스타 중장은 “중국 의료 분대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평화유지군 장병들을 위한 친절 전문의료 서비스를 고집하면서 아낌없는 봉사정신과 최고의 직업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티베트 고원에서 콩고 강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중책을 맡고 용감하게 분투하는 정신을 발휘했으며 코로나19 사태와 현지 불안에 직면해 중국의 방역 경험을 평화유지군으로 적절하게 확산시키면서 인심인술(仁心仁术)로 각국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 주었다. (저자는 중국 24진 콩고 평화유지군 의료 분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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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5

연예·방송 검색결과

  • 저우쉰·황레이·탕웨이, 드라마타운 행사 참석
    [동포투데이] 일부 네티즌이 SNS에 공유한 장시 후이창 드라마타운 개막식 영상과 사진에는 행사에 참가한 황레이(黄磊), 저우쉰(周迅), 탕웨이(汤唯) 등 모습이 담겼다. 황레이는 검은색 슈트 차림으로 등장했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어 산뜻해 보였다. 저우쉰은 프린트된 레깅스에 블랙 재킷과 네이비 컬러의 와이드 팬츠를 매치해 동양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멋을 뽐냈다. 탕웨이는 검은색 이너에 말차녹색 재킷과 카키색 바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캐주얼한 모습을 연출했다. 황레이, 저우쉰, 탕웨이 등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팬들이 와서 쪼그려 앉아 기다렸고, 이들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이들 또한 팬들의 호명에 일일이 화답하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저우쉰이 등장했을 때, 그녀는 마침 동료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팬들의 호명에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탕웨이는 무대에 등장하자 팬들에게 직접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행사 기간 동안 황레이, 저우쉰, 탕웨이는 주최 측의 안내하에 행사장을 방문하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많은 참석자들은 저우쉰과 탕웨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우쉰이 정말 말랐지만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탕웨이는 마른 체형이지만 키가 170cm가 넘는 큰 키가 눈에 띄고 기질도 좋아 보였고 웃으면 목춘풍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고 한다.
    • 연예·방송
    2024-01-07
  •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개막
    [동포투데이] 제80회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30일 저녁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니스에서 개막했다. 총 23편의 영화가 본선에 진출해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쟁을 펼친다. '라라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데이미언 샤젤은 이번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아 8명의 다른 심사위원들과 함께 올해 황금사자상 등 주요 대상을 누가 차지할지 결정하게 된다. 개막식에서 이탈리아 여성 감독 릴리아나 카바니가 평생공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탈리아 에도아르도 데 안젤리스 감독의 '코만단테'가 영화제 개막작으로 이날 밤 세계 최초 개봉됐다. 이번 영화제는 9월 9일 폐막하며, 수상자는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독일 베를린 국제영화제와 함께 유럽 3대 국제영화제로 꼽힌다.
    • 연예·방송
    2023-09-01
  • 탕웨이, 제16회 아시안필름어워즈 최우수 여우주연상 수상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3일, 펑황망에 따르면 12일, 홍콩에서 열린 제16회 아시안필름어워즈 시상식에서 중국 배우 탕웨이(汤唯)가 ‘헤어질 결심’으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나 허리 부상으로 참석하지 못해 박해일이 대신 수상했다. 한편 량차오웨이(梁朝偉)가 ‘바람이 다시 불 때’로 우수 주연상과 함께 아시아영화 공헌 영예 대상도 받았다. 흥미로운 것은 아내 류자링(刘嘉玲)이 남편에게 직접 상을 수여했다는 점이다. 다음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브로커’로 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이번 심사단은 장이머우(张艺谋)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이에 앞서 탕웨이는 제27회 춘사영화상, 2022년 한국 부일영화상, 제42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제43회 청룡영화상, 제42회 황금 촬영상, 제9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 등의 7개 ‘여우수주연상’을 연속 수상했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멜로 영화로 탕웨이, 고경표, 박해일, 유태오, 이정현, 박용우가 주역을 맡았으며 올해에 있은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단숨에 감독상을 거머쥐었다. ‘헤어질 결심’은 '아가씨' 이후로 6년 만에 나온 박찬욱의 11번째 장편 영화.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가 사망자의 아내와 만난 후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박찬욱 감독은 탕웨이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이유에 대해 “영화 ‘색계’를 보고 함께 일하고 싶었으며 탕웨이는 우리가 만들고 싶은 캐릭터였다”고 밝혔다. 한편 탕웨이의 차기작은 AI를 소재로 한 한국 영화 ‘원더랜드’로, 탕웨이는 ‘만추’에 이어 두 번째로 김태용과 호흡을 맞췄으며 공유, 박보검, 수지, 정유미, 최우식 등이 주연을 맡았다.
    • 연예·방송
    2023-03-13
  • 전통여성의 소박한 형상을 스크린에 올린 中 영화배우-백양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민국시기인 1947년에 제작된 영화 ‘동으로 흐르는 봄 물결(一江春水向东流)’은 문화혁명 시기 상영이 금지되었다가 70년대 말 재방영이 되자 이 영화를 두 번 이상을 본 관람객은 기수부지였으며 심지어 다섯 번 이상 본 이들도 적지 않았다. 40년대에 제작된 영화, 그것도 흑백영화가 왜 이다지도 관객들의 마음을사로잡았을까? 그것은 간단했다. 영화에서의 여주인공의 연기력 때문이다. 그 여주인공의 이름은 백양이다. 백양(白杨-1920년 4월 22일~1996년 9월 18)일)의 본명은 양성방(杨成芳)으로 본적은 중국 호남성 멱라(汨罗)시 고륜향(古仑乡)이며 출생지는 북경이다. 백양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태어날 당시 백양의 부모는 중남경녀(重男轻女)의 봉건의식이 매우 농후하였기에 여아이로 태어난 백양은 부모로부터 가정과 남자에 순종하는 사상을 진절머리가 나도록 주입받았다. 한편 백양은 어릴 적부터 유모에 의해 시골로 끌려가 생활하면서 신물이 나도록 가난과 고난을 겪었다. 1931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자 더 이상 어머니처럼은 살 수 없다고 생각한 백양은 연화영업공사(联华影业公司)가 북평에 설립한 배우양성소를 찾아갔으며 거기에서 무성영화 ‘고궁신원(故宫新怨)’에서 여자아이의 역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회사가 해체되자 백양은 극단 ‘보리바(苞莉芭)’에 가담해 연극 ‘난종(乱钟)’, ‘전우’ 등에 출연했으나 얼마 후 이 극단은 강제 해산됐다. 1934년 백양은 선후로 중국여행극단과 중국무대협회 등 극단에 입사했다가 1936년 다시 상해의 스타필름회사 제2 지사가 설립되자 홍심(洪深) 소개로 계약을 맺고 첫 영화 ‘십자거리(十字街头)’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영화에서 백양은 사랑스럽고도 지독한 여직원 양지영(杨芝瑛) 역을 맡았다. 백양은 또 1937년 가족영화 ‘사천금(四千金)’에 출연하였고 같은 해에는 장석천(张石川) 감독이 연출하는 ‘사회의 꽃(社会之花)’에 출연하기도 했다. 1937년 ‘7.7’사변 발발 이후 백양과 진백진(陈白尘), 심부(沈浮) 등은 영화극단을 결성해 항일구국을 알리는 공연을 펼치기로 했다. 그리고 1939년에는 자오단(赵丹) 등과 함께 영화 ‘중화의 아들딸(中华儿女)’에 출연했으며 1940년에는 손유 감독의 영화 ‘창공 만리’에도 선보였다. 또한 같은 해 도금(陶金)과 합작하여 항일영화 ‘청년중국’에서 주역을 맡았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하자 백양의 영화배우 생애에도 전성기가 찾아왔다. 1946년 백양은 영화 ‘팔천리 길운과 달(八千里路云和月)’, 1947년에는 영화 ‘동으로 흐르는도도한 물결’에서 주역를 맡는 등 말 그대로 그녀의 영화배우 생애에는 전성기가 찾아왔다. 1949년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하자 백양은 여전히 변함없이 영화배우 생활에 충실하면서 많은 영화에 출연하였다. 1950년엔 ‘단결하여 내일에로(团结起来到明天)’, 1956년에는 중국의 첫 칼라 영화 ‘축복’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1960년에는 전쟁영화 ‘동매(冬梅)’에서 주역을 맡았다. 이 외에도 해방 후 백양이 출연한 영화들로는 ‘평화를 위하여(为了和平1955년)’, ‘김옥희(金玉姬-1960년)’, ‘봄빛 찬란한 세상(春满人间)-1959년’ 등 여러 편이 있으며 그가 출연한 드라마로는 중국의 저명한 여성 지도자 송경령의 생애를 부각한 ‘인간세상에 뿌려지는 건 모두 사랑(1989년-洒向人间都是爱)’이 유일했으며 이 드라마의 출연으로 백양은 중국 방송․영화TV드라마 부문의 영예 배우상을 받았다. 백양의 예술풍격은 소박하고 아름다우며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양 여성의 자태 표현에 능숙하다. 특히 그녀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여성의 모습을 잘 형상화했다. 백양은 자신이 가진 여성스러움과 배역을 절묘하게 결합해 관객들에게 무한한 동정심을 부여함으로써 항상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그가 연기하는 모습의 하나하나가 관객들에게 인정받았으며 맘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 깊고도 다각적인 연기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출연하게 되는 인물에 대한 깊은 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 세계 영화 탄생 100주년, 중국 영화 탄생 90주년을 맞아 백양은 중국 국가 문화부로부터 중국 영화 세기 상, 여배우상을 수여받았다. 1996년 9월 18일, 백양은 향년 76세로 별세했다. 백양의 임종은 남편 장군초(蒋君超), 아들 장효송(蒋晓松)과 딸 장효신(蒋晓真) 그리고 언니 양말(杨沫)이 지켜보았다.
    • 연예·방송
    2022-02-28
  • 시대를 빛낸 할리우드 여배우- 마릴린 먼로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지난번 계속) 마릴린 먼로의 본명은 노마 진 베이커이다. 그녀의 외할아버지 성은 먼로, 그는 정신 질환으로 앓고 있는 자동차 엔지니어였으며 늘 자신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의 자손이라고 했다. 그리고 외할머니인 델라에게도 정신적인 장애가 있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매우 격렬했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 글래디스는 MGM 콜롬비아의 한 영화제판공장에서 스크랩 작업을 했으며 어머니 역시 심각한 정신분열증 환자로 평생 수용소 출입이 아주 잦았다고 한다. 1942년 6월 19일, 마릴린 먼로는 제임스 아이젤 돌티와 결혼했으나 1946년 9월 13일 첫 결혼은 이혼으로 막을 내렸다. 그 뒤 마릴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는 1954년 1월 14일 샌프란시스코의 한 모텔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2월 2일 일본 도쿄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이 혼인신고를 한 지 274일 만에 마릴린 먼로가 이혼을 제출했고 1954년 10월 31일, 법원은 마릴린 먼로가 조 디마지오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뒤이어 마릴린 먼로는 1956년 6월 29일 극작가 아서 밀러와 극비리에 결혼했고 그해 8월 메릴린 먼로는 임신했지만 곧 유산했다. 마릴린 먼로는 1957년 8월 1일 자궁외 임신으로 다시 유산했다. 1961년 1월 20일 두 사람은 멕시코에서 정식 이혼하고 말았다. 18세 때 마릴린 먼로는 기독교인이 됐다. 하지만 1956년 아서 밀러와 결혼하면서 먼로는 유대교로 전향했다. 생전에 마릴린 먼로는 생전에 애완견을 많이 키웠으며 그 중 마지막 한 마리는 시나트라가 선물한 몰타 개로 이름을 지어 ‘마피아(Mafia)’라고 불렀다. 1960년 8월 28일, 마릴린 먼로는 정신과 입원치료를 받았으며 그 뒤 1961년 2월 7일 재차 뉴욕에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3월 5일에 퇴원했다. 1962년 1월, 마릴린 먼로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으며 7월 20일 자궁내막염으로 또 입원치료를 받았다. 1962년 8월 4일, 마릴린 먼로는 심리치료사와 6시간을 보냈다. 이는 그녀의 생에 있어서 마지막 하루가 됐다. 그 이튿날 즉 8월 5일, 로스앤젤레스 경찰은 마릴린 먼로가 로스앤젤레스 브라이든무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36세의 나이로 사망했음을 확인했다. 8월 8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마릴린 먼로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마릴린 먼로는 익숙한 이름이었고 익숙한 이미지였다. 그녀는 트레이드마크식의 웃음과 매혹적인 몸짓으로 하나 또 하나의 성감적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녀의 감동적인 연기 스타일과 죽음은 영화 팬들의 영원한 성감 적인 아이콘이자 대중문화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았다. 많은 팬들은 살아가면서 그녀의 사진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아니 보고 또 보았을 것이다. 하얀 치마를 입고 뉴욕 거리에 있는 모습과 땅속 열기에 그녀가 걸친 치마가 나팔을 벌린 듯한 모습의 흑백사진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눈을 살짝 감은 듯 입술을 감빠는 모습, 소파 위에 하얀 다리를 드러낸 모습 등을 보노라면 사진만이 아닌 특별한 감정의 전달과 순수하고 성감적인 정국이 될 때가 많다. 공개된 사진에서 마릴린 먼로는 이전과는 다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청순하기도 하고 털털하기도 한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좀 길게 땋은 머리 태, 청바지, 리넨 스커트 등은 다양한 스타일링으로 생활 속 먼로의 사랑스러움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먼로는 1962년 8월 5일, 자기의 거처이 로스앤젤레스 브라이든 무브먼트의 거실에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이후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을 떠올리면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케네디 가문과 정치권의 암막에 휘말렸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었다. 그가 죽은지 수 십 년이 넘도록 그녀에 대한 공식 조사서류는 대부분 고급기밀로 분류돼 있었다. 2006년까지 FBI(미 연방수사국)는 미국 자유정보법에 따라 500쪽 분량의 먼로 관련 문건의 비밀을 해제했다. 그러자 마릴린 먼로의 죽음이 그가 적어놓은 비밀일기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을 역사 전문가들은 뒤늦게 밝혀냈다. 먼로의 일기에는 먼로와 케네디 형제의 ‘베갯머리 대화’가 다수 기록돼 있었다. 1962년 8월 초, 케네디 형제는 약속이나 한 듯 먼로와의 모든 왕래를 끊었다. 갑작스런 격변에 직면하여 마릴린 먼로 역시 자신의 위험을 의식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8월 4일 오후 9시 반, 그녀는 절친인 시드니 길라로프에게 전화로 케네디 형제와 있었던 자신의 사생활을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한 가지 위험한 비밀을 알고 있다”고 했다. 다음날 새벽 LA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마릴린 먼로는 공교롭게도 그날 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비밀 일기’도 신비롭게 사라졌으며 LA지검 사무실 또한 마릴린 먼로가 일기를 썼다는 것과 먼로의 죽음이 모살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부인했다. 2012년 5월 16일, 제65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마릴린 먼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제 홍보 포스터가 나붙었고 현장의 대형 스크린에는 마릴린 먼로 주연의 각종 다른 영화의 스틸 사진이 끊임없이 상영되면서 그녀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유명 조각가 수어드 존슨이 만든 마릴린 먼로 조각상 ‘영원한 먼로’가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에서 전시되기도 했다. 그녀는 줄곧 어떤 남자가 그녀를 사랑하기를 원했고 그녀도 전심으로 상대방을 사랑했지만 안타깝게도 먼로는 평생 이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는 여인으로서 먼로는 전심전력으로 절대적인 관심을 필요로 했다. 이런 100%의 사랑을 남편들은 주지 못했고 애인들은 더욱 주지 못했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 36세의 마릴린 먼로는 그 길지 않은 생을 마감했다. 하늘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용모를 주었지만 운명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인생을 주지 않았다. ‘세상의 좋은 물건은 견고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구름은 쉽게 흩어진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아마도 마릴린 먼로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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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연재
    2022-01-01
  • 시대를 빛낸 할리우드 여배우- 마릴린 먼로①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그녀는 60년대까지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배우였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 마음속에 자리 잡은 ‘유혹의 여신’이기도 했다. 마릴린 먼로-그녀의 별명은 노마 제인 모테이센(Norma Jeane Baker)으로 미국계 유대인이었으며 출생지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다. 마릴린 먼로: 출생일 1926년 6월 1일, 사망일 1962년 8월 5일, 별자리 쌍둥이자리, 혈형 AB형, 키 166cm, 몸무게 53kg, 직업 프로배우, 모델, 대표작 ‘7년차 가려움’, ‘버스터미널’, ‘용놀이’, ‘열정은 불처럼’ 등 다수 주요 성과로는 제9회 영국․TV예술아카데미상 영화상 최우수 외국여배우상, 제14회 미국영화방송 골든글로브 영화부문-뮤직코미디부문 최우수 여주연상, 제11회 영국 영화·TV예술아카데미 영화상 최우수 여배우상, 제17회 미국영화․TV 골든글로브 영화-뮤직코미디 최우수 여주역상, 100년 만의 가장 위대한 여배우 랭킹 6위… 1926년 6월 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본병원에서 태어난 마릴린 먼로는 당시 노마 제인 모태슨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한 차례의 세례 후 그녀는 이름을 노마 제인 베이커로 변경했다. 불행한 것은 그녀가 사생아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멀리 타향으로 떠났으며 먼로는 태어난 지 13일 만에 브라운다이 부부의 집에서 매주 5달러씩 내기로 하고 입양됐다. 1933년 가을, 마릴린 먼로는 어머니 글라디스 바크르에게 인계되었다. 글라디스는 1935년 6월 1일 먼로의 보호자가 됐지만 몇 개월 후인 9월 13일 먼로를 고아원에 보냈다. 이어 먼로는 1937년 11월부터 안나란 여인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고교생이던 1941년 마릴린 먼로는 어린 나이에 결혼과 함께 ‘아름다운 여자’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결혼 후 마릴린 먼로는 올림픽 챔피언 하워드한테서 역도와 서핑을 배웠으며 1944년 5월부터는 항공기 무전기 제조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45년 6월 26일 마릴린 먼로는 사진작가 데이비드 코너일과 함께 잡지 사진을 찍었다. 그 때 사진작가 데이비드 코너일은 그녀가 사진을 게재하여 미군을 고무시키기를 희망했다. 마릴린먼로는 1946년 5월 26일 ‘가족권’ 잡지 표지를 통해 처음으로 얼굴을 알렸다. 1946년 7월 19일,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폭스로 처음으로 가게 되었고 7월 26일 폭스와 첫 6개월 계약을 맺었다. 또 머리를 황금색으로 염색하면서 ‘제인 아델’이라는 예명을 붙이기도 했다. 1948년 마릴린 먼로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슈쿠다, 허!스쿠다, 하이!(It's Shukuda, Huh! It's Shukuda, Hi!)’에서 교회를 달군 여자 역을 맡았지만 그한테 차례진 대사는 한 줄밖에 없었다. 이후 그녀는 한 영화에서 여자아이를 연기하였으나 역시 대부분의 장면은 삭제되었다. 1949년 5월 27일, 사진작가 톰 켈리는 먼로의 누드 사진을 여러 장 촬영하여 골드 미스 드림 달력을 출판했다. 하지만 먼로는 달력에 실린 자기의 사진에 싸인을 하지 않아 50달러만 받게 되었다. 그해의 8월 15일, 먼로는 뮤지컬 영화 ‘토마호크행 티켓(Tickets to Tomahawk)’의 촬영에 참여했고 10월에는 또 범죄영화 ‘밤의 밤’ 촬영에도 참여했다. 1950년 1월 5일, 먼로는 드라마 ‘화구(火球)’의 촬영을 시작했고 4월에는 또 드라마 ‘혜성미인’에서 어느 한 주요 배역을 맡았다. 같은 해 먼로는 잡지 ‘성조기’가 선정한 ‘매력 아가씨’로 뽑히기도 했다. 1951년 4월 18일, 먼로가 출연하는 애정 코미디 영화 ‘사랑의 둥지’ 촬영이 시작되면서 그해 5월 1일, 폭스는 먼로와 6개월 계약 기간을 7년으로 연장했다. 뒤이어 먼로는 1952년 5월 7일 ‘라이프(life!)’지의 표지모델로 데뷔했으며 6월 1일에는 멜로영화 ‘신사는 미인을 사랑한다’의 주역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그해 8월 31일 라디오 생방송에 첫 출연 했고 9월 2일에는 ‘미스 아메리카 모델 쇼’에 출연했다. 1953년 6월 26일 마릴린 먼로가 미국 연예계에 짙은 손자국과 발자국을 남겼으며 9월 13일에는 TV에 처음 등장했다. 이어 11월 5일 로렌 바이콜, 로리 캘헌과 함께 출연한 애정 코미디 영화 ‘결혼하고 싶어’가 개봉됐다. 영화에서 먼로는 어릴 때부터 백만장자와의 결혼에 목마른 성감 모델 ‘보라 드 베이워스’ 역을 맡았다. 1954년 4월 30일, 마릴린 먼로가 로버트 미첨과 함께 촬영한 서부 모험영화 ‘동으로 흐르는 강물’이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먼로는 팜므파탈의 바 가수 ‘카이’역을 맡았다. 먼로는 9월 1일 로맨틱 코미디 영화 ‘7년차 가려움’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로 먼로는 제9회 영국영화·텔레비전예술아카데미상 영화상인 외국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1955년 1월 7일, 마릴린 먼로는 밀턴 그린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마릴린 먼로 프로덕션 센터’의 설립을 발표하였고 1월 15일 20세기 폭스 프로덕션과의 계약은 종료됐다. 1956년 1월 4일, 마릴린 먼로는 20세기 폭스프로덕션과 재계약을 맺고 2월 25일 할리우드에 복귀했다. 그 때로부터 그녀는 마릴린 먼로로 개명했고 이어 3월 3일에는 주연 로맨틱 코미디 영화 ‘버스터미널’에 출연했다. 그녀는 이 영화로 제14회 미국 영화 TV 골든글로브 영화․TV 부문 여 최우수 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1957년 6월 13일, 마릴린 먼로가 로런스 올리버와 함께 주역을 맡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 ‘드래곤 봉황’이 개봉되었다. 이 영화에서 마릴린 먼로는 관능적이고 매력적인 쇼걸 ‘엘시 마리나’의 역을 맡았으며 이 역할로 제11회 영국영화·TV예술 아카데미상 영화상-외국 여배우상 후보에 올랐다. 1958년 8월 4일, 마릴린 먼로는 애정 코미디 영화 ‘열정은 불처럼’에서 마이애미 악단의 아름다운 관능의 여인 ‘수가’ 역을 맡았다. 1960년 3월 8일 먼로는 영화 ‘열정은 불처럼’으로 제17회 미국 영화․TV 골든글로브 영화 부문-뮤직코미디 부문 여 최우수 주연상을 받았다. 1961년 1월 31일, 마릴린 먼로는 클라크 게이블,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함께 촬영한 서부 애정 영화 ‘난점 원앙보’가 개봉됐다. 1962년 3월 5일, 마릴린 먼로는 ‘세계 최고의 여배우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4월 23일에는 그녀는 주연 코미디 단편 영화 ‘멘붕’ 촬영을 시작했다. 1962년 6월 1일은 마릴린 먼로의 20세기 폭스프로덕션에서의 마지막 출근 날이자 마지막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6월 7일, 20세기 폭스프로덕션은 먼로와 계약을 종료했다. 하지만 그해의 8월 1일, 20세기 폭스프로덕션은 월급을 2배로 주기로 하고 마릴린 먼로를 다시 고용하기로 결정했으며 8월 3일, 먼로는 ‘라이프’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멘붕'의 재촬영에 동의하면서 ‘라이프’지의 표지모델이 됐다. 1999년 미국영화학회가 선정한 ‘100년 만에 나타난 가장 위대한 여배우 랭킹’ 6위에 올랐다.
    • 연예·방송
    2021-12-29
  • 中, 영화 ‘장진호’ 국경일 하루 관객 4억명 돌파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지난 9월 30일 중국에서 개봉 첫날에 관객 2억을 돌파한 영화 ‘장진호’ 국경일 하루 4억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이후 파죽지세의 흥행으로 치닫고 있다. ‘장진호’는 제작 규모, 투자 규모, 촬영 기간, 출연진과 스태프 수 모두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영화 준비 기간은 2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초기 단계에는 7,000명 이상이, 후반에는 12,000명이 영화에 참여하였으며 100,000명 이상의 엑스트라가 동원됐다. 10월 1일 20시 35분 현재 ‘장진호’와 ‘나와 나의 아버지 세대’ 등 2부의 영화에 힘입어 국경절 첫날 티켓 판매액은 이미 6억 위안을 돌파하였으며 국경절 첫날 티켓 판매는 역대 3위에 올랐다. ‘장진호’는 2일 만에 누적 흥행 6억 위안을 기록 중이며 또 다른 국경절 연휴 기간의 새 영화 ‘나와 나의 아버지 세대’는 개봉 2일 만에 누적 티켓 판매액 2억6000만 원을 돌파했다. ‘장진호’는 6.25 전쟁 기간인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24일까지 북한 장진호 지역에서 중국군 제9병단과 미 제10사가 직접 대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장진호 전투에서 중국군 제9병단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기 장비가 세계 일류이고 전공이 혁혁한 미 10사와 직접 교전하였던 곳으로 당시 미군 1개 사를 골탕 먹이면서 이 미군 정예부대는 역대 최장기 퇴진을 경험하게 됐다. 한편 2021년 상반기 중국 영화 매출은 30억1200만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3.23% 증가했고, 순이익은 3억500만 위안의 흑자로 돌아섰다.
    • 연예·방송
    2021-10-02

스포츠 검색결과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 스포츠
    2024-03-27
  • 이반코비치 중국 대표팀 감독 “최종 목표는 월드컵 진출”
    [동포투데이] 8일 오전 11시, 중국축구협회는 톈진에서 브란코 이반코비치 신임 축구대표팀 감독을 위한 정례 기자회견을 마련했다. 크로아티아 출신의 이반코비치 감독은 "이렇게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위대한 국가인 중국 축구 대표팀의 감독이 된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중국 대표팀은 3월 21일과 26일 조별리그 36강전 싱가포르와의 연속 경기를 앞두고 있다. 이반코비치는 “지금 기자회견부터 경기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리그가 시작된 지 얼마 안돼 선수들의 경기 감각도 좋지 않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우리의 1차 목표는 최종예선 진입이고 최종 목표는 강한 국가대표팀을 구성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스포츠
    2024-03-09
  • 中 U-20 여자축구, 일본에 완패…월드컵 진출 불투명
    [동포투데이] 7일 밤에 끝난 AFC U-20 여자 아시안컵 경기에서 중국이 일본에 0 : 2로 패하면서 U-20 여자 월드컵 진출이 이론상으로만 가능해졌다. 이번 U-20 여자 아시안컵에서 중국은 전년도 준우승팀인 일본, 그리고 전년도 준우승팀인 북한과 같은 조에 편성되어 있어 U-20 여자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 2위 안에 들어가야만 했다. 상대의 강한 실력에 비해 중국은 라인업이 불규칙했고 중앙수비수인 차오루치(乔睿琪)가 경기 준비 마지막 순간 부상으로 물러났다. 1차전에서 중국은 1 : 1로 힘겹게 북한과 비기면서 월드컵에 진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일본은 지난 경기에서 베트남을 10 : 0으로 대파했다. 중국은 월드컵 진출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이번 경기에서 적어도 골을 넣어야 하고 최소 1점을 따내야 했다. 왕쥔(王军) 중국팀 감독은 경기 전 “일본은 기술이 뛰어난 팀이고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강팀”이라며 “북한과의 경기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싸워야 하고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기술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지난 경기에 비해 중국팀의 이번 라인업이 다소 미세하게 조정되었으며 리팅잉거(李渟英格), 장천징(姜晨璟), 천자위(陈佳宇)가 선발로 나섰다. 초반에는 양 팀 모두 골문 앞의 절대적인 찬스가 있었지만, 득점을 못했다. 경기 20분 중국은 상대의 실수를 기회를 만들었지만, 아쉽게도 루자위(卢家玉)의 슛은 상대 골키퍼에 의해 무산되었다. 26분 페널티 구역에서 동료의 크로스를 받은 일본의 마야 히지카타가 슈팅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고 88분에 아마노 스즈가 페널티 지역 정면에서 얻은 프리킥을 득점으로 연결하며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이번 대회에는 8개 팀이 참가하며, 중국은 일본, 북한, 베트남과 함께 B조에 편성됐다. 각 조 상위 2개 팀이 본선에 진출해 2024년 콜롬비아 U20 여자 월드컵 출전권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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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8
  • 파리올림픽 ·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 공개
    [동포투데이] 파리 올림픽과 패럴림픽 공식 포스터가 3월 4일(현지시간) 오르세 미술관에서 공개되었다. 프랑스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우고 가토니가 만든 이 두 포스터는 올림픽 포스터 역사의 큰 혁신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요소가 많고 디테일이 풍부해 기존 올림픽 포스터 디자인의 전통을 깼다. 색채 활용에 일가견이 있는 예술가로서, 가토니는 파리와 프랑스의 상징적인 요소들과 이번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모든 스포츠를 포함하는 다원적이고 번영하는 미시세계를 상상했고, 동시에 파리 올림픽의 혁신적인 특징들을 보여주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이념을 부각시키기 위해 두 개의 포스터를 별도의 두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하나로 합쳐 하나의 거대한 그림으로 완성할 수도 있는데, 왼쪽이 올림픽, 오른쪽이 패럴림픽이다. 가토니는 "디자인한 영감의 원천은 파리의 랜드마크 건물들을 재배열한 거대한 도시 경기장"이라며 "에펠탑은 스타드 드 프랑스 중앙을 관통하며 센 강, 개선문, 콩코드 광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즐거운 스포츠 카니발처럼 보이는 포스터 전체는 즐거운 스포츠 축제를 원하는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비전과도 부합하며, 가까이서 보면 포스터의 수많은 디테일들이 관객들에게 발견의 즐거움과 새로운 탐구의 충동을 선사한다. 포스터에는 파리 올림픽 마스코트 8개가 숨겨져 있어 찾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올림픽 오륜기와 패럴림픽 삼색 엠블럼, 대중 마라톤, 올림픽 격언 등도 찾아볼 수 있다. 두 포스터 모두 그가 직접 그린 것으로 전체 제작 과정은 약 2000시간이 걸렸다. 토니 에탕게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장은 이 두 포스터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에탕게는 "이것은 단순한 포스터가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요소를 담고 싶고, 남들과 다르길 원한다"며 "이는 올림픽 역사상 새로운 시도"라고 말했다. 두 포스터는 3월 10일까지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두 포스터는 공개 시점부터 파리 2024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각각 29유로에 판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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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7
  • 네덜란드 국가대표 프로메스, 마약 밀매 혐의로 징역 6년 선고
    [동포투데이] 유럽타임스(European Times) 보도에 따르면 암스테르담 지방법원은 14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서 뛰고 있는 네덜란드 국가대표 퀸시 프로메스(Quincy Promes)가 1톤 이상의 코카인을 네덜란드로 밀반입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법원은 2020년 프로메스가 공범자들의 도움으로 벨기에 앤트워프 항구를 통해 브라질에서 네덜란드로 1,363kg의 코카인을 운송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고 추정했다. 프로메스의 변호인은 검사가 프로메스에게 징역 9년을 구형했고 프로메스는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국가대표로 50경기 출전한 32세의 이 선수는 네덜란드 경찰에 체포될 것을 우려해 법원에 출석하지 않았다. 현재 프로메스에 대한 국제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이며 그는 아직까지 러시아로부터 송환되지 않았다. 프로메스는 또 다른 사건에서 목걸이를 도난당한 후 사촌동생을 칼로 찌른 혐의로 18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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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9
  • 아시안컵 첫 이변, 일본 이라크에 1-2로 패배
    [동포투데이] 일본은 19일 오후 8시30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라크와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D조 2차전 경기에서 1-2로 패배하면서 한 라운드 앞당겨 16강에 진출할 기회를 놓쳤다. 이는 지금까지 아시안컵에서 생긴 가장 큰 이변이다. 이번 경기는 세계랭킹 17위이자 아시아 랭킹 1위인 일본이 세계랭킹 63위인 이라크와 치르는 경기였다. 그렇다 할 스타가 없는 이라크는 견고한 밀집 수비와 역습으로 두 골로 일본을 꺾으면서 최근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11연승 기록을 깨뜨렸다. 경기 5분 만에 이라크는 전방에서 공을 가로채며 빠르게 반격했고, 이 과정에서 아이멘 후세인이 일본 골키퍼 스즈키 아야키 실수를 기회로 삼아 골문을 갈랐다. 전반전 마지막 순간 아이멘 후세인이 추가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두 골 차로 벌렸다. 경기가 지속됨에 따라 일본은 결정적인 찬스를 놓치면서 득점에 실패했고, 추가 시간에 코너킥 찬스에 의해 1점을 만회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일본으로서는 다소 늦은 득점으로 끝내 판세를 바꾸지는 못했다. 결국 이라크가 2-1로 일본을 이겼다. 경기 이후 이라크는 2승 6패로 D조 1위를 차지하면서 1경기 앞당겨 16강 진출을 확정 지었고 유력한 우승 후보 일본으로 뼈아픈 1- 2 패전에 땅을 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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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0
  • 8회 챔피언 광저우 헝다, CEO 체포되고 부채는 수조위안
    [동포투데이] 최근 에버그란데(헝다·恒大) 고위급 간부 류융줘(劉永灼)가 범죄 혐의로 구금되었다. 이로써 에버그란데 그룹 이사회 회장 쉬자인(許家印), 신에너지차 부회장 류융줘, 전 에버그란데 축구단 회장 커펑(柯鵬)등이 구금되었고, 에버그란데 그룹은 수조 위안의 부채를 떠안았다. 광저우로 이름을 바꾼 에버그란데는 이미 2부리그로 강등되었고, 호화 맴버는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주로 젊은 선수들로 대체되었지만 축구협회의 빚 청산 1차 명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에버그란데는 2011년 승격팀으로 중국 슈퍼리그에 출전해 그해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이후 7년 연속 중국 슈퍼리그 정상에 오른 데 이어 또다시 우승을 차지하며 다롄 완다가 세운 중국 최고 리그 8회 우승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광저우 축구단의 전신은 1954년에 설립된 광저우시 축구단이다. 1993년 1월, 광저우시 축구단은 태양신 그룹과 합작하여 중국 최초의 정부와 기업이 공동 소유한 프로축구단이 되었다. 2010년 3월 1일 광저우 에버그란데 축구단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2013년에는 중국 축구단 최초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했으며, 같은 해에 AFC 최우수 클럽상을 수상했다. 2021년 1월, 구단 명칭을 '광저우 축구단'으로 변경하였으며, 2022 시즌,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에버그란데는 중국 슈퍼리그 8회, 중국축구협회 슈퍼컵 4회, 중국축구협회 컵 2회, 아시아챔피언스리그 2회, 중국축구협회 2부리그 2회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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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0
  • 브라질 축구 ‘전설’ 자갈루 92세의 나이로 별세
    [동포투데이] 월드컵 4회 우승이자 브라질 축구의 전설 마리오 자갈루가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자갈루의 가족은 토요일 새벽 그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브라질 축구협회는 자갈루가 유일하게 월드컵 4회 우승을 차지한 전설이라고 밝혔다. 1931년 브라질 아라고아스에서 태어난 그는 선수와 감독 시절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선수 시절 자갈루는 작은 클럽에서 시작해 브라질 내 큰 클럽인 플라멩코, 보타포고에서 뛰었다. 주로 왼쪽 측면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한 그는 1958년과 1962년 펠레, 가린샤와 함께 브라질의 월드컵 2회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1970년 은퇴한 자갈루는 감독으로 브라질을 월드컵에 출전시키고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이로써 월드컵 3회 우승을 거둔 삼바군단은 당시 세계 축구계 최고의 영예였던 쥘 리메 컵을 영구 보존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자갈루는 선수와 감독으로서 월드컵을 우승한 최초의 전설이 되었다. 자갈루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 업적을 달성한 사람은 독일의 축구 황제 베켄바우어와 프랑스 축구계의 거물 디디에 데샹뿐이다. 1994년 예순을 넘긴 자갈루는 페레이라 감독을 보좌하며 브라질의 월드컵 진출과 또 한 번의 우승을 이끌었다. 삼바군단의 첫 네 차례 월드컵 우승 과정에는 모두 자갈로가 등장했다. 오늘날 브라질이 '축구 왕국'으로 불리는 데는 자갈루의 공이 크다. 자갈루는 브라질 대표팀 역사상 두 번이나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개최국 프랑스에 0:3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감독으로서 자갈로는 5번째 월드컵 우승의 기회를 놓쳤고, 그 결승전 때문에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브라질축구협회는 '영원한 챔피언'이었던 자갈루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7일간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브라질축구협회로드리게스 회장은 자갈루가 브라질 축구계의 가장 위대한 전설 중 한 명이라며 "우리의 축구 우상이 떠난 것을 아쉬워하는 이 시점에서 브라질축구협회는 그의 가족과 팬들에게 위로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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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07
  • 신화통신 선정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
    [동포투데이] 신화통신이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1. 막스 베르스타펜(네덜란드, 男 26세, 스포츠카) 2023시즌 포뮬러원 챔피언십(F1)이 마무리되는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레드불 레이싱팀의 베르스타펜이 폴포지션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올해 22개 대회에서 21차례 포디움에 오르며 19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F1 시즌 승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서 지난 10월 카타르 그랑프리에서는 올해의 드라이버 종합 우승을 일찌감치 차지한 바 있은 베르스타펜이다, 이번 우승은 그의 3회 연속이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레드불 레이싱의 네덜란드 선수인 막스 베르스타펜이 세계 포뮬러 원 챔피언십(F1) 바레인 그랑프리 본선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2. 아이타나 본마티, (스페인, 女 25세, 축구) 본마티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에서 팀메이트들과 함께 미드필드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사상 첫 우승컵을 안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지난 10월에 열린 2023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여자 골든글로브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사진은 지난 8월 20일 스페인 대표팀 아이타나 본마티가 2023년 여자축구 월드컵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3.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男 28세, 농구) 2022∼2023시즌 메이저리그(NBA)에서 덴버 너기츠를 창단 첫 종합 우승컵으로 이끈 세르비아 출신의 미드필더 요키치는 파이널 MVP에 개인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 MVP로 3연속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시즌 평균 24.5점, 11.8개의 리바운드, 9.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정상을 지켰다. 지난 6월 12일, 덴버 너기츠의 니콜라 요키치(전좌)가 2022-2023 시즌 NBA 파이널 MVP로 선정(사진)되었다. 4. 시몬 바일스(미국, 女 26세, 체조) 미국 체조선수 바일스가 심리적 문제로 도쿄올림픽에서 리타이어하는 파란을 겪은 뒤 2023년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 8월, 그는 전미선수권대회에서 사상 8번째로 여자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년 만에 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6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26세의 바일스는 체조 역사상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34개)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사진은 지난 10월 8일, 미국 선수 사이먼 바일스가 2023년 체조 세계선수권 평균대 시상에 나서는 모습이다. 5. 미카엘라 시플린(미국, 女 28세, 스키) 2022-2023 눈시즌에는 미국의 스키선수 시플린이 알파인스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쾰른플라츠에서 열린 예선에서 여자 그랜드슬램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83승으로 월드컵 최다 여자 알파인스키 선수가 되었고,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이를 88경기로 경신하며 스웨덴 남자선수 스텐마르크의 86경기를 제치고 월드컵 역사상 최다 우승을 차지하였다. 사진은 미국 선수 미카엘라 시플린이 2023년 1월 4일 자그레브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회전 경기에서의 모습이다. 6. 켈빈 킵툼(케냐, 男 24세, 육상) 2023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킵탐은 2시간 0분 35초로 완주하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공식 경기에서 2시간 1분을 돌파한 최초의 마라톤 선수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우승 기록은 케냐 명인 킵초그가 세운 2시간 1분 9초의 전 세계 기록을 34초나 뛰어넘었다. 사진은 지난 4월 23일 케냐의 캘빈 킵툼이 런던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7. 케일리 맥커운 (호주, 女 22세, 수영) 호주의 명장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0, 100m, 200m 배영 우승을 석권하면서 중국의친하이양(覃海洋)과 함께 같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여자 배영 금메달 9개를 석권하고 부다페스트에서는 50m와 100m 배영 결승에서 두 차례 세계 기록을 경신하면서 여자 50m, 100m, 200m 배영 세계 기록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지난 10월에는 세계수영연맹 올해의 여자 수영 선수로 선정되었다. 사진은 지난 7월 29일 호주 선수 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200m 배영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8. 페이스 킵예곤(케냐, 女 29세, 육상) 지난 6월, 두 번의 IAA 다이아몬드 리그에서 킵예곤은 여자 1,500m와 여자 5,000m 세계 기록을 연이어 경신했고, 7월에는 비올림픽 여자 1마일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5,000m 세계 기록은 지난 9월에 에티오피아가 경신했지만 킵예곤이 1년 동안 세 번이나 세계 기록을 깬 것은 아직 보기 드문 일이다. 지난 8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1500m와 5000m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재 세계주니어챔피언, 세계챔피언, 올림픽챔피언, 세계기록 보유자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선수이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케냐의 페이스킵예곤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9.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男 36세, 테니스) 조코비치는 2023년 네 번째 US오픈 우승 이후 통산 24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3관왕인 세리나 윌리엄스를 제치고 오픈 1위 독주 시대를 열었다. 연말에는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2023년 종별 결선에서 7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페더러와 통산 6번의 종별 결선 우승 기록을 깨기도 했다. 2023년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조코비치는 그중 3개의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윔블던 결승에서는 후발주자인 알칼라스에게만 졌다. 그가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이 경기에서 10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세르비아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가 2023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시상식에서의 모습이다. 10. 친하이양(중국, 男 24세, 수영) 지난 7월에 열린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친하이양(覃海洋)이 남자 50, 100m, 200m 평영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사상 최초로 같은 대회에서 평영 3개 종목 금메달을 석권하며 남자 200m 평영 세계기록을 깼다. 2023년에는 청두대학생운동회에서 그는 철물을 따내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MVP를 수상하면서 수영 월드컵에서 월드컵 올해의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23일, 중국 선수 친하이양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023년 세계수영연맹 최우수 남자 선수로 선정된 날의 모습이다.
    • 스포츠
    2023-12-31
  • FIFA 남자축구 연말 랭킹 발표, 아르헨티나 1위
    [동포투데이] FIFA가 21일 2023년 마지막 남자 축구 세계 랭킹을 발표한 가운데 세계 챔피언 아르헨티나가 4월 세계 1위로 복귀한 이후 단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2023년을 1위로 마감했다. 아르헨티나가 2022년 월드컵에서 우승했지만 당시 2위에 그쳤다. 지난 4월 세계 1위 자리를 6년 만에 되찾은 아르헨티나는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남자 축구 세계 랭킹 상위 10개 팀에는 벨기에, 브라질,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가 포함됐다. AFC 남자 축구는 일본, 이란, 한국 순이다. 중국 남자 축구는 세계 79위, AFC 팀 중 11위를 유지하고 있다.
    • 스포츠
    2023-12-23

포토뉴스 검색결과

  • [월드컵 2차 예선]중국, 싱가포르에 4-1 대승
    [동포투데이] 이반코비치 감독이 이끈 중국은 26일 톈진 올림픽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조별리그 4차전 싱가포르와 홈경기에서 우레이(21',85), 페르난둬(65'페널티), 웨이시하오(90')의 골에 힘입어 4-1로 대승을 거뒀다.(사진출처 : 차이나데일리)
    • 스포츠
    2024-03-27
  • 저우쉰·황레이·탕웨이, 드라마타운 행사 참석
    [동포투데이] 일부 네티즌이 SNS에 공유한 장시 후이창 드라마타운 개막식 영상과 사진에는 행사에 참가한 황레이(黄磊), 저우쉰(周迅), 탕웨이(汤唯) 등 모습이 담겼다. 황레이는 검은색 슈트 차림으로 등장했고,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어 산뜻해 보였다. 저우쉰은 프린트된 레깅스에 블랙 재킷과 네이비 컬러의 와이드 팬츠를 매치해 동양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멋을 뽐냈다. 탕웨이는 검은색 이너에 말차녹색 재킷과 카키색 바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캐주얼한 모습을 연출했다. 황레이, 저우쉰, 탕웨이 등이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많은 팬들이 와서 쪼그려 앉아 기다렸고, 이들이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이들 또한 팬들의 호명에 일일이 화답하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저우쉰이 등장했을 때, 그녀는 마침 동료와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팬들의 호명에 손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탕웨이는 무대에 등장하자 팬들에게 직접 손을 흔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행사 기간 동안 황레이, 저우쉰, 탕웨이는 주최 측의 안내하에 행사장을 방문하고 현장을 둘러보았다. 많은 참석자들은 저우쉰과 탕웨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저우쉰이 정말 말랐지만 매우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탕웨이는 마른 체형이지만 키가 170cm가 넘는 큰 키가 눈에 띄고 기질도 좋아 보였고 웃으면 목춘풍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고 한다.
    • 연예·방송
    2024-01-07
  • 신화통신 선정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
    [동포투데이] 신화통신이 '2023 세계 10대 스포츠 선수'를 다음과 같이 선정했다. 1. 막스 베르스타펜(네덜란드, 男 26세, 스포츠카) 2023시즌 포뮬러원 챔피언십(F1)이 마무리되는 아부다비 그랑프리에서 레드불 레이싱팀의 베르스타펜이 폴포지션을 잡고 정상에 올랐다. 이로써 그는 올해 22개 대회에서 21차례 포디움에 오르며 19개 대회에서 우승하며 F1 시즌 승률 기록을 갈아치웠다. 앞서 지난 10월 카타르 그랑프리에서는 올해의 드라이버 종합 우승을 일찌감치 차지한 바 있은 베르스타펜이다, 이번 우승은 그의 3회 연속이다. 사진은 지난 3월 5일, 레드불 레이싱의 네덜란드 선수인 막스 베르스타펜이 세계 포뮬러 원 챔피언십(F1) 바레인 그랑프리 본선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2. 아이타나 본마티, (스페인, 女 25세, 축구) 본마티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열린 여자월드컵에서 팀메이트들과 함께 미드필드 핵심으로 활약하면서 팀의 사상 첫 우승컵을 안았고, 개인적으로는 이번 월드컵에서 골든글로브를 수상했다. 지난 10월에 열린 2023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여자 골든글로브 수상이 유력하게 점쳐졌다. 사진은 지난 8월 20일 스페인 대표팀 아이타나 본마티가 2023년 여자축구 월드컵 시상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3.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男 28세, 농구) 2022∼2023시즌 메이저리그(NBA)에서 덴버 너기츠를 창단 첫 종합 우승컵으로 이끈 세르비아 출신의 미드필더 요키치는 파이널 MVP에 개인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시즌 MVP로 3연속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시즌 평균 24.5점, 11.8개의 리바운드, 9.8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정상을 지켰다. 지난 6월 12일, 덴버 너기츠의 니콜라 요키치(전좌)가 2022-2023 시즌 NBA 파이널 MVP로 선정(사진)되었다. 4. 시몬 바일스(미국, 女 26세, 체조) 미국 체조선수 바일스가 심리적 문제로 도쿄올림픽에서 리타이어하는 파란을 겪은 뒤 2023년 화려하게 돌아왔다. 지난 8월, 그는 전미선수권대회에서 사상 8번째로 여자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10월 체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4년 만에 종합 금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선수권대회 종합 6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26세의 바일스는 체조 역사상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34개)을 획득한 선수가 됐다. 사진은 지난 10월 8일, 미국 선수 사이먼 바일스가 2023년 체조 세계선수권 평균대 시상에 나서는 모습이다. 5. 미카엘라 시플린(미국, 女 28세, 스키) 2022-2023 눈시즌에는 미국의 스키선수 시플린이 알파인스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쾰른플라츠에서 열린 예선에서 여자 그랜드슬램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83승으로 월드컵 최다 여자 알파인스키 선수가 되었고, 시즌이 끝날 무렵에는 이를 88경기로 경신하며 스웨덴 남자선수 스텐마르크의 86경기를 제치고 월드컵 역사상 최다 우승을 차지하였다. 사진은 미국 선수 미카엘라 시플린이 2023년 1월 4일 자그레브 알파인 스키 월드컵 여자 회전 경기에서의 모습이다. 6. 켈빈 킵툼(케냐, 男 24세, 육상) 2023년 시카고 마라톤에서 킵탐은 2시간 0분 35초로 완주하며 남자 마라톤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고, 공식 경기에서 2시간 1분을 돌파한 최초의 마라톤 선수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우승 기록은 케냐 명인 킵초그가 세운 2시간 1분 9초의 전 세계 기록을 34초나 뛰어넘었다. 사진은 지난 4월 23일 케냐의 캘빈 킵툼이 런던 마라톤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다. 7. 케일리 맥커운 (호주, 女 22세, 수영) 호주의 명장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0, 100m, 200m 배영 우승을 석권하면서 중국의친하이양(覃海洋)과 함께 같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여자 배영 금메달 9개를 석권하고 부다페스트에서는 50m와 100m 배영 결승에서 두 차례 세계 기록을 경신하면서 여자 50m, 100m, 200m 배영 세계 기록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지난 10월에는 세계수영연맹 올해의 여자 수영 선수로 선정되었다. 사진은 지난 7월 29일 호주 선수 맥커운이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200m 배영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8. 페이스 킵예곤(케냐, 女 29세, 육상) 지난 6월, 두 번의 IAA 다이아몬드 리그에서 킵예곤은 여자 1,500m와 여자 5,000m 세계 기록을 연이어 경신했고, 7월에는 비올림픽 여자 1마일 세계 기록을 경신했다. 5,000m 세계 기록은 지난 9월에 에티오피아가 경신했지만 킵예곤이 1년 동안 세 번이나 세계 기록을 깬 것은 아직 보기 드문 일이다. 지난 8월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1500m와 5000m 두 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그는 현재 세계주니어챔피언, 세계챔피언, 올림픽챔피언, 세계기록 보유자 타이틀을 모두 보유한 선수이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케냐의 페이스킵예곤이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결승에서 우승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이다. 9.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 男 36세, 테니스) 조코비치는 2023년 네 번째 US오픈 우승 이후 통산 24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23관왕인 세리나 윌리엄스를 제치고 오픈 1위 독주 시대를 열었다. 연말에는 남자프로테니스협회(ATP) 2023년 종별 결선에서 7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페더러와 통산 6번의 종별 결선 우승 기록을 깨기도 했다. 2023년 4대 메이저 대회에서 조코비치는 그중 3개의 우승컵을 거머쥐면서 윔블던 결승에서는 후발주자인 알칼라스에게만 졌다. 그가 호주 오픈에서 우승한 것은 이 경기에서 10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6월 11일, 세르비아 선수 노바크 조코비치가 2023년 프랑스 오픈 남자 단식 시상식에서의 모습이다. 10. 친하이양(중국, 男 24세, 수영) 지난 7월에 열린 후쿠오카 수영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친하이양(覃海洋)이 남자 50, 100m, 200m 평영 3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사상 최초로 같은 대회에서 평영 3개 종목 금메달을 석권하며 남자 200m 평영 세계기록을 깼다. 2023년에는 청두대학생운동회에서 그는 철물을 따내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MVP를 수상하면서 수영 월드컵에서 월드컵 올해의 종합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사진은 지난 10월 23일, 중국 선수 친하이양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2023년 세계수영연맹 최우수 남자 선수로 선정된 날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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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2-31
  • 2023 미스 유니버스, 미녀들의 민족 의상 쇼
    산살바도르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선발대회에서 각국의 미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민족 의상 쇼.(AP 사진/모이세스 카스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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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동·아프리카
    2023-11-22
  • 76.8m! 中 대륙서 가장 높은 나무 '부탄송'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티베트 모퉈(墨脱)현 베이벵背崩향 거린(格林)촌에서 76.8m 높이의 부탄송 한 그루가 발견됐다. '부탄송'으로 불리는 이 나무는 윈난 가오리공산(高黎贡山)에 있던 72m의 독삼나무의 높이 기록을 갈아치우며 중국 대륙에서 가장 높은 나무로 되었다. '부탄송'은 해발 1400~2500m의 산지우림과 아열대 기후 지역으로 수열조건이 우수하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동부 히말라야에만 분포하는 수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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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2
  • 中, 목조건축물 순회전 닝바오서 개최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2일, 신세계 중국 연합 K11 공예기금회와 닝바오 건조학사(宁波建造学社)가 주최하에 ‘목조건축물 부흥’을 주제로 한 중국 목조건축물 순회전이 닝바오 신세계 닝주센터(宁铸中心)에서 개막되었다고 당일 중신망(中新網)이 보도했다. 목조건축물은 중국 고대의 건축물 중의 중요한 일환으로 수천년래 중국의 건축미학과 설계철학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 닝바오의 목조 건축물은 7000여 년 전 하무나루(河姆渡)의 맹장구조(干阑式木构)에서 발전하여 장뭇 구멍(榫卯) 구조로 파생되어 내려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기나긴 역사의 나날을 거쳐 목조건축물의 공예는 부단히 차원이 높아져 단지 거주수요를 만족시키는 외에도 예술적 미학을 융합해 더욱 감상성이 짙게 만들어졌으며 이 중 천일각(天一阁), 경안회관(庆安会馆), 천동사(天童寺), 자성고건축군(慈城古建筑群) 등은 모두 목조건축물의 대표적 작품들이다. 이 날 개막식에서 신세계 중국 우한(武汉) 지역 총경리 장옌(张燕) 여사가 개막사를 하였다. 그는 개막사에서 이번 중국 목조건축물 순회전은 목조 부흥에 대한 초심을 갖고 기획된 목조건축물 전시회이며 그 취지는 고전 목조건축물이 현대생활에서 활용되고 있는 최신 작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천년의 동양 목조건축물 미학을 사회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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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3
  • 영하 40℃- ‘자연 냉장고’의 작은 도시 머허의 현주소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머허(漠河)는 중국대륙에서 전형적인 ‘자연냉장고’에 속하는바 가장 추울 때면 영하 50℃ 이라로 내려가기도 한다. 17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최근 며칠 사이 머허의 기온은 영하 40℃ 좌우이다. 하지만 머허 사람들의 일상은 온대지구의 사람들의 일상과 별반 다름이 없다. 거리에 나가면 인파의 흐름은 여전하고 가끔씩 난전을 펼치고 있는 장사군들도 보이곤 한다. 그리고 행인들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어린애들은 추운줄도 모르고 뛰놀기도 한다. 사진은 일전 무인기로 촬영한 ‘중국의 북극’ 머허 현성의 야경이다.(사진=신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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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18
  • 中 산둥 ‘신견기병(神犬奇兵)’ 동계훈련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6일, 인민망에 따르면 일전 중국 산둥 르자오(山东日照)에 있는 경찰견 훈련장의 ‘신견기병(神犬奇兵)’이 화제로 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경찰견 훈련장에서는 훈련지도원의 지휘하에 경찰견이 장애물 통과하기, 물건 감별하기와 인질구조하기 등 항목을 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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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7
  • 中 제72집단군 자주 로켓포 연대 실탄전술 연습 진행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15일,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군 동부전구 육군 모려에서 자주 로켓포 중대가 야외의 생소한 지역에서 전천후(全天候) 실탄사격 연습을 진행, 부대의 전천후 작전능력을 점검하고 제고시켰다. 사진은 중국군 자주 로켓포에서 불을 내뿜는 장면이다.(사진=인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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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16
  • 세계 10대 고대건축물 중 4개는 중국의 것
    [동포투데이 철민 기자] 우리는 간혹 고대의 많은 사물들에 대해 발전이 아주 뒤처졌다고 여길 때가 있다. 그것은 현대의 과학기술에 대해 너무 자호 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의 일부 사물들은 우리가 현대의 이념으로는 도무지 해석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아래에 소개되는 고대의 10대 건축물- 우리는 지금도 여기에 대한 미스테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중국의 만리장성 장성은 중국의 ‘명물’이고 중국의 자랑이자 세계 급의 문화 대 유산이다. 중국의 장성은 15개성을 지나며 그 총 길이가 2만 119618 킬로미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를 갖고 있다. 그럼 그 장성을 어떻게 구축했을까? 조상들의 그 지혜에 대해 후손들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고 한다. 화산 창공의 잔도(栈道) 중국 안휘성 화산의 전도는 7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화산 험도(险道) 중의 험도이다. 전도의 아래는 현애 절벽이고 전도는 철삭(铁索)로 만들어졌으며 돌을 엮어 노면을 깔았다. 당시 구경 어떻게 이 전도를 만들었는지에 대해 진짜로 상상할 수가 없다고 한다. 사천 낙산 대 불상 전하는데 따르면 사천의 낙산 대 불상은 당조시기부터 수건하기 시작하여 90년이란 긴 시간을 소모하여 비로서 완성되었다고 한다. 대 불상의 총체는 산을 허물면서 만들어졌는바 상투 등 부분의 결구는 후기에 첨가된 것이다. 그리고 발면 하나에 사람 100명 이상이 둘러앉을 수 있다고 한다. 이 낙산 대 불상은 세계에서 높이가 가장 높은 석불 상으로 알려져 있다. 서안 현공사(西安悬空寺) 서안 현공사는 북위(北魏) 연간에 만들어지기 시작, 전반 사원은 취봉산(翠峰山)의 허리께에 건립되었고 27개의 나무기둥이 전반 사원의 주요 건축물들을 떠받치고 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사원 전체가 공중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고 있다. 이렇듯 정묘하고도 뛰어난 설계는 그야말로 고대인들의 지혜에 탄복토록 하고 있다. 피라미드(金字塔) 피라미드(金字塔)는 응당 모두가 익숙히 잘 알 것이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서남쪽으로 약 10킬로미터 상거한 기자(吉萨)에 있는 피라미드는 지금으로부터 약 2580년 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약 2560년 전에 완공, 지금까지 줄곧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대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다. 피라미드는 중국 문 ‘金’자와 비슷하다고 하여 일명 ‘금자탑’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리스의 메테오라 수도원 그리스 메테오라 수도원은 15세기에 수건, 전도사들에 의해 수건 된 이 수도원은 천연적인 사암 기둥 위에 우뚝 솟아있으며 멀리서 보면 그 풍광은 사람을 경탄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스 북부의 카람바카에 있는 이 수도원은 낭떨어지 같은 현애절벽 위에 건립, 세워진 수백만 년 전 이 곳은 망망한 바다였다가 후에 지각운동과 해수의 충격으로 석림(石林)으로 변했고 이 우중충한 암석 산정들 사이로 점점으로 보이는 지붕이 보이는데 절벽 사이의 공중에 걸려있는 듯한 것이 곧바로 메테오라 수도원이다. 터키의 수메이라 수도원 터키의 수메이라 수도원은 1200미터 높이의 현애절벽에 세워졌다. 이 수도원은 서기 386년에 건립, ‘수메이라’란 그리스어로 수도원이 메이라 산에 세워졌음을 뜻한다. 이 수도원의 원주민은 워낙 그리스인들이었고 386년 당시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의 명령에 의해 지어졌으며 원명은 ‘수메이라 성녀 수도원’이었으며 현재의 수도원 모습은 서기 13세기에 갖춰진 것이다. 부탄의 타케상 사원 부탄의 타케상 사원은 ‘호혈사(虎穴寺)’ 혹은 ‘호소사(虎巢寺)’로도 불리며 부탄 서부 파로 협곡 900미터 높이의 현애절벽에 지어졌으며 해발로는 3120미터에 달한다. 이 사원은 연화생 대사(莲花生大师)가 호랑이를 타고 이 곳을 날아 지났다는 전설에 의해 1692년에 건립됐다. 그리고 타케상 사원은 부탄 왕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고대 건축물의 하나로 이 나라 서적들에 많이 소개되었으며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것도 여러 편 있다고 한다. 그리스의 패터넌 사원 그리스 아테네의 패터넌 사원에 대해 우리는 경상적으로 역사서적을 통해 보았었다. 패터넌 사원은 기원 전 5세기 아테네 성에 건립,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원이었다고 한다. 패터넌 사원은 그리스 아테네 성의 가장 높은 곳 석회암 산정에 위치, 아테네 성 중 가장 중요한 주체 건축물로 되고 있으며 패터넌이란 이름 외에도 ‘파터넌 사원’이란 이름도 갖고 있다고 한다. 현재 패터넌 사원의 유적은 19세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누차 수건한 건축물이다. 페루의 마추픽추 페루 맞추픽추의 전체 유적은 해발 2350-2430 사이의 산등성이에 있으며 우루밤바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모습은 사진만 보아도 절경이다. 맞추픽추 유적은 페루의 유명한 전 콜롬버스 시기 인자제국이 서기 1500년에 건설한 유적으로 역시 세계 신 7대 기적 중의 하나이며 현재 페루 경내의 쿠스코 서쪽으로 75킬로미터 상거, 열대우림에 둘러 싸여 있다. (철민 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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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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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을 나는 중국 자동차, 광저우 도심 상공 횡단
    [동포투데이] 3월 8일 샤오펑후이톈 비행 자동차 여행자 X2가 도심 '티안더 광장-광저우 타워' 지역에서 저고도 비행을 성공적으로 완료하여 향후 도심 항공 모빌리티 및 저고도 관광과 같은 저고도 경제 응용 시나리오의 포괄적인 보급을 위한 경험을 제공했다. 이번 비행에서 여행자 X2는 광저우 톈허구의 티안더 광장 A급 오피스 단지에서 수직으로 이륙해 자율주행 모드로 랜드마크인 광저우타워 방향으로 비행하며 광둥성 박물관, 화청 광장, 하이신아시안게임공원 등 광저우의 랜드마크를 횡단했다. 이 비행경로는 향후 도심 항공 교통뿐만 아니라 관상 가치가 높은 저고도 투어 루트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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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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