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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프랑스 공동성명...“민간인 강제이주·라파 공격 반대”
    [동포투데이] 중국과 프랑스 양국은 7일 중동 정세와 관련해 공동성명을 내고 중국과 프랑스가 국제인도법에 기반한 가자 민간인 보호의 절대적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양국 정상은 더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할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과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강제 이전에 반대했다. 성명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중국과 프랑스 양국이 국제법에 기반한 건설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국제 안보와 안정이 직면한 도전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중국과 프랑스 양국은 모든 테러 폭력 행위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포함한 모든 국제 인도법 위반을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양국은 국제 인도법에 근거하여 가자 주민들을 보호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재확인하고 더 큰 규모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할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과 팔레스타인인들의 강제 이주 반대했다. 양국 정상은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인도적 지원을 확보하고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즉각적인 지속가능한 휴전이 시급하다며 모든 사람의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 인도적 접근 보장, 그들의 의료 및 기타 인도적 요구 해결, 모든 억류자에 대한 국제법 준수, 유엔 관련 결의, 특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2712호, 제2720호 및 제2728호의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이행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것은 모두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가 2023년 10월 7일 공격 이후 끔찍한 고통을 겪지 않도록 보장하는 유일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성명은 양국 정상이 가자지구 전체에서 인도적 지원이 신속하고 안전하며 지속 가능하고 방해받지 않고 제공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통로와 국경을 효과적으로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고 밝혔다. 양국 정상은 국제인도주의 노력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성명에 따르면 양국 정상은 결정적이고 비가역적으로 정치 과정을 재개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롭고 안전한 공존과 함께 공동으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사용하고, 1967년 국경을 기반으로 생존 가능하고 독립적이며 자주적인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두 국가 방안'을 구체화할 것을 호소했다. 두 정상은 지속적인 평화와 안보에 대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의 정당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이 해결책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했다. 양국 정상은 또한 역내 정세 악화 위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역내 불안정을 피할 것을 촉구했다. 중국과 프랑스는 파트너들과 함께 상황 악화를 완화하고 모든 당사자들에게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성명은 중국과 프랑스가 이란 핵 문제에 대한 정치적, 외교적 해결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고 홍해와 아덴만에서 항해의 자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두 정상은 또 2024년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 기간 동안 올림픽 휴전을 준수할 것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초청으로 시진핑 중국 주석이 2024년 5월 5일부터 7일까지 프랑스를 국빈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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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2024-05-07
  • 시진핑, 마크롱-폰데어라이엔과 3자 회동
    [동포투데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6일 오전(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과 중국-프랑스-유럽 정상 3자 회동을 가졌다. 중국 관영 CCTV에 따르면 시진핑은 마크롱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 다시 한번 회동을 갖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가 올해 그의 첫 해외 방문지이며, 오늘 3자 회담이 유럽 방문의 의미를 더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은 시종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국-EU 관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유럽을 중국 특색을 지닌 강대국 외교의 중요한 방향이자 중국식 현대화 실현의 중요한 파트너로 간주하고 중-프랑스, 중-유럽 관계가 서로를 촉진하고 함께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시진핑은 오늘날 새로운 격동의 전환기에 접어들어 이 세계의 두 가지 중요한 힘으로서 중국-유럽 양측이 동반자적 위치를 고수하고 대화협력을 지속하며 전략적 소통을 심화하고 전략적 상호신뢰를 증진하며 전략적 공감대를 결집하고 전략적 협력을 전개하여 중국-유럽 관계의 안정적이고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세계 평화와 발전에 새로운 기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슈유크 헝가리 대통령과 오르반 총리의 초청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5월 5일부터 10일까지 이들 3국을 국빈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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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 시진핑, 파리에 도착... 아탈 총리 영접
    [동포투데이]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 국빈 방문을 시작하기 위해 5일 오후(현지시간) 특별기를 타고 파리 오를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탈 프랑스 총리가 공항에서 시 주석을 영접했다. 시 주석은 오늘(6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3자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에 대한 중국의 투자를 확대하는 동시에 중국이 글로벌 이슈에 계속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일부 학자들은 유럽에 전쟁이 재발하고 안보와 외교를 미국에 의존하는 등의 요인으로 인해 프랑스의 불안감이 깊어졌으며, 프랑스가 유럽에서 전략적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 주석은 올리국제공항 도착 후 서면 연설을 통해 중국-프랑스 수교 60년간 양국관계가 많은 '퍼스트'를 창조하고 결실을 맺었으며, 이는 양국 국민에게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 국제 관계의 다극화와 민주화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마크롱 대통령과 새로운 정세 속에서 중국과 프랑스, 중국과 유럽의 관계 발전, 그리고 현재의 중대한 국제 및 지역 문제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교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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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6
  • 브라질 남부 폭우로 57명 사망, 수만 명 이재민 발생
    [동포투데이] 브라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 당국이 발표한 최신 소식에 따르면 브라질 남부의 폭우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57명으로 늘었고 실종자 74명, 실종자 6만9천여 명에 달했다. 로이터 통신은 공식적으로 약 57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현지 당국은 현재 7명의 추가 사망이 폭우와 관련이 있는지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4월 29일부터 히우그란지두술 지역에 계속되는 폭우가 쏟아져 홍수, 산사태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다. 주 내 절반 이상 또는 최소 265개 도시가 폭우의 영향을 받아 많은 도로와 다리가 파괴되고, 여러 지역사회에서 물과 전기, 인터넷이 차단되었으며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다. 또한 폭우로 인해 최소 356,000명의 고객이 정전을 겪었고 많은 고속도로가 통행이 불가능해졌다. 주도인 포르투알레그레의 많은 지역이 물에 잠겼고, 버스 정류장과 공항이 폐쇄되었다. 기상청은 일요일(5일)까지 주 북부 및 북동부 지역에 비가 계속 내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강수량은 계속해서 감소되거나 주 초에 기록된 최고치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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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5
  • 바이든, 양자경에게 '대통령 자유훈장' 수여
    [동포투데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일 오스카상을 수상한 여배우 양자경과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등 19명에게 민간인 최고 영예인 '대통령 자유훈장'을 수여했다. AFP 통신은 백악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존 케리 전 국무장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대통령 자유훈장' 수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통령 자유훈장'은 미국의 안보와 국익, 세계 평화, 문화예술 등 분야에서 탁월한 공적으로 쌓은 인물에게 매년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이다. 61세의 말레이시아 여배우 양자경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의 연기로 작년에 아카데미상 역사상 아시아 여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양자경이 "고정관념을 깨고 미국 문화를 풍요롭게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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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4
  • CIA국장, 가자 휴전 협의차 카이로 도착... 하마스, 대표단 파견
    [동포투데이]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 관계자는 하마스 대표단이 오늘 이집트 수도 카이로를 방문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휴전 및 인질 석방 제안에 대한 서면 답변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집트 보안소식통 1명과 공항 관계자 3명은 미 중앙정보국(CIA) 윌리엄 번스 국장이 카이로에 도착해 가자 충돌에 대해 회의를 한 뒤 익명을 요구한 하마스 관리 1명이 이같이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했다. CIA는 국장의 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반영해 논평을 거부했다. 이집트, 카타르, 미국은 가자지구 휴전과 인질 석방 합의를 위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중재를 해왔다. 이집트는 이스라엘이 가자 남부 라파에서 하마스에 대한 지상 공격을 계획하자 지난달 말 다시 협상 재개를 촉구했다. 라파는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의 국경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100만 명 이상이 대피해 있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대치 중인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ALF)은 어제 팔레스타인 정파의 요구는 영구 휴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 철수, 모든 실향민의 고향 복귀라고 거듭 강조했다. PALF는 성명을 통해 "모든 파들 사이에 완전하고 지속적인 조정이 이뤄지고 있으며, 대결 요구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집트 알 카헤라 뉴스도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카이로 당국이 가자 휴전 협상의 진전을 논의하기 위해 오늘 하마스 대표단을 맞이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재자들은 휴전과 인질 석방에 대한 하마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통계에 따르면 하마스 무장 세력은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에 전례 없는 공격을 가해 약 1,200명이 사망했고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이스라엘군의 사망자 수는 600명을 넘어섰다. 가자 보건부는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지금까지 최소 34,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고 77,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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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4
  • 미 정보당국 “중-러 대만해협 군사훈련, 미 계획 변경 불가피”
    [동포투데이] 중국과 러시아가 대만에 대한 무력 공격 가능성을 포함해 다양한 군사 분야에서 공조가 긴밀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는 미국이 새로운 대응 계획을 세우도록 압박했다. 미 국방정보국은 국방부가 중-러와 동시에 전투를 벌일 경우에 대비해 부대구조를 조정·점검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목요일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마이크 라운즈 공화당 상원의원이 향후 중-러 관계가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 묻자 "우리(미국)는 중-러가 대만해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고, 중국이 러시아와 협력하기를 원하는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그들이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헤인스는 정치, 경제, 군사, 기술 분야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상호 작용이 증가함에 따라 미국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의 파트너십 강화에 따른 영향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계속 군사력을 이용해 이웃 국가들을 위협할 것"이라며 "중국 인민해방군이 새로운 기술을 배치해 연합작전 능력을 강화하고, 핵 및 인터넷 역량을 강화하여 미국과 유럽·인도·태평양의 동맹을 분열시키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국방정보국(DIA) 국장 크루스 중장은 "국방부가 다양한 위협 시나리오에서 필요할 수 있는 조치와 이러한 계획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군사력의 범위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크루스는 이어 "중·러의 협력 강화에 대비해 국방부는 "3군의 연합작전 능력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라운즈 상원의원은 "미국은 중·러 연대에 대비해야 한다"며 "미국과 한쪽이 충돌할 경우 제2의 전선이 생겨 계획과 장비, 인력 수요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헤인스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 정보기관은 2024년 연례 위협 평가 보고서에서 중-러 협력이 성장하고 있지만 상한선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10년간 중국과 러시아의 연이은 훈련은 협동작전 능력을 소폭 강화하는 데 그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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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3
  • 미국인 80%, 중국에 부정적…'중국은 적' 42%
    [동포투데이] 미국 싱크탱크인 퓨리서치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약 8명이 5년 연속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베이징 당국의 역량을 제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지난 4월 초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1%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며, 그중 43%는 중국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의 71%는 최근 몇 년간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이 증가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인의 61%는 중국과 이웃 국가 간의 영토 분쟁에 대해 어느 정도 우려하고 있다. 미중 관계와 관련해서는 중국을 파트너(6%)로 보는 미국인은 소수에 불과한 반면, 대부분의 미국인은 중국을 경쟁자(50%) 또는 적(42%)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한 공화당과 공화당 성향의 무소속 유권자들이 중국에 대해 불법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민주당과 민주당 성향의 유권자보다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는 중국을 적으로 볼 가능성이 더 높다. 나이 든 미국인들은 일반적으로 중국에 더 비판적이다. 65세 이상 성인의 61%가 중국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30세 이하 성인은 27%에 불과하다. 퓨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미국인 중 상당수는 중국이 점점 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견해에는 중국과 이웃 국가들의 관계에 대한 우려와 중국 국가주석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동반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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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2
  • IMF, 아시아 성장률 전망 상향 조정... 중-인도 낙관적
    [동포투데이]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아시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2%에서 4.5%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경제대국인 중국과 인도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 때문이다. 내년 성장 전망치는 4.3%를 그대로 유지했다. 급격한 인플레이션 냉각, 유연한 경제성장, 그리고 통화정책의 조기 완화가 아시아의 연착륙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IMF는 아시아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중국 부동산 산업의 장기적인 조정으로, 이로 인해 수요가 약화되고 장기적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높아져 결국 다른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아시아는 중동과 우크라이나의 분쟁으로 인한 무역 중단뿐만 아니라 상품 가격의 변동에도 여전히 취약하다. IMF는 또한 중국이 지방 정부 부채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생존 가능성이 없는 부동산 개발업체의 시장 퇴출을 가속화하기 위한 정책 바스켓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IMF는 수출과 제조업 수요 호조로 1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아 성장 전망을 다시 상향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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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5-01
  • 세한총련, 한인회 차세대사업 추진 사례 모집
    [동포투데이] 사단법인 세계한인회총연합회(약칭 ‘세한총연’/회장 심상만)는 전세계 한인회를 대상으로 차세대사업 추진사례를 오는 6월15일까지 모집한다. 동 사례 모집은 세한총연이 9월말 개최 예정인 '한인회 차세대사업 활성화 세미나' 발표 대상 선정을 위한 절차로서 대상 사례는 차세대 인재 육성사업, 차세대네트워크 구축사업, 차세대와의 이해증진 사업, 차세대단체와의 연대 활동 등에 한인회가 진행하거나 관여한 활동이며, 복수 지원도 가능하다. 세한총연이 추진하고 있는 '한인회 차세대사업 활성화 세미나'는 세계 각 지역 한인회의 차세대사업을 한인회간 공유함으로써 차세대사업의 활성화를 도모하는 한편, 바람직한 차세대사업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응모방법은 모집기간내에 참가신청서와 관련자료를 세한총연 이메일(info@waka2021.org)로 제출, 신청하여야 한다. 심사를 통해 선발된 사례는 『한인회 차세대사업 활성화 세미나』에서 발표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세한총연 홈페이지(www.waka2021.org)를 참고하면 된다. 세한총연은 전세계 한인회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회원은 한인회장들로서 구성되어 있으며, 전세계 한인들의 지위향상을 도모하고, 모국과의 각종 협력활동을 확대함으로써 한민족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2021년 10월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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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외동포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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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박동웅 구로구의장, “구민과 더불어 외국인 주민도 살기 좋은 구로 만들 것”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한국은 노동력 공백에 따른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에 의한 결혼이민자의 증가로 사실상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를 보면 장단기 체류 외국인은 2021년 6월 말 기준 1,981,035명이다. 그중 서울시 구로구에 체류하고 있는 25,316명 외국인 주민 중 18,190명이 중국동포이다. 기자는 지난 4일 구로구의회 7대 후반기 부의장으로 또한 3선 의원으로서 지역발전과 의정활동에 열정을 바치고 이번 제8대 의회에서도 후반기 의장으로 지역주민은 물론 외국인 주민 민원이 발생한 곳은 어디든지 달려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박동웅 의장을 만나 그동안 의정활동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동포 및 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과 지원계획에 대해 들어 봤다. 다음은 박동웅 구로구의회 의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Q. 현재 시행 중에 있거나 계획 중인 중국동포 관련 사업은? A.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은 보육료를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데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중국동포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닐 때 보육료를 전액 자비로 부담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산에서는 아마 시행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제 구로구도 내년부터 보육료 20%가량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려고 한다. 현재 한국에 있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외국인 주민 자녀들을 조사해보니 약 천명 조금 넘는데 그 아이들에 대해 우선 보육료 20% 정도 지원해주고 차후에는 그냥 100% 지원하는 쪽으로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그래서 올해 최초로 이와 관련한 예산 편성을 준비하려고 한다. 한 해에 7억 정도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Q. 구민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A. 그런 분들도 있지만 우리끼리만 살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글로벌시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만으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서울에서 구로만, 구로구 사람들만 뭉치는 것도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에 체류하고 있는 중국동포분들도 다 같은 한민족이고 외국인이던 한국인이던 차별 없이 함께 사회에 흡수돼서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주민들에게 잘 이해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Q. 지역주민과 중국동포 간 소통과 화합에 대한 모범 답안이 있다면? A. 가리봉을 중심으로 구로구는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구로구에는 다문화 정책과가 있는데 중국동포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이라든가 필리핀 일본 등 이주민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도 명예 통장으로 활동하는 경우도 있고 또 구로구에는 봉사단이 매우 많다. 이를테면 구로 4동 같은 경우는 다문화 봉사자들이 야간 순찰도 하고 있고 다문화 경노당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구로구가 소통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근래 산발적으로 좀 많이 하고 있는데 향후에는 체계적인 시스템 상에서 동포들과 구청 간에 소통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Q. 현재 가장 시급한 현안과 해결책은? A. 현재 구로구에는 이주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그중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분들이 중국동포들이다. 과거 코로나 이전에는 우리 동포들이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장사가 잘 안되는 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에 대한 것은 우리가 추정할 수 있지만 정책은 정확한 수치를 갖고 하는 것이기에 다문화 정책과에서 우리 동포사회 실태 파악을 다시 해서 제도 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Q. 상호우호도시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문화교류 계획은? A. 한국의 수출 규모를 보면 중국과의 교역이 미국을 앞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에는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계시고 또한 중국과 한국 사이에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문화적인 이해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연변과 교류(공무원 교류)를 했지만 사실 문화 교류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향후에는 여러 중국 도시와 자매결연을 맺어서 서로 간 문화를 교류하고 우리 축제 때 해당 국가 도시의 전통적인 문화행사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또 거꾸로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축제라든가 행사가 있을 때 우리 구로구에서도 문화예술단이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는 그런 교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임기 내 꼭 이루고 싶은 것은? A. 현재로서는 일단 코로나19 사태가 빨리 안정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대한민국 자체도 K-방역을 통해서 그냥 열심히 뛰고 있지만 우리 구로구에서도 구로구만의 어떤 방향 시스템을 잘 구축해 구로구가 코로나19에서 좀 더 안전한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안정돼야 구로에서 사업하시는 분들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고 지역경제도 활성화 될 것이다. Q. 중국동포에 대한 이해정도는? A. 한 예로 아마 한국사람 중에서 가장 양꼬치와 고량주를 많이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좋아한다. 젊었을 때 사실 한국에서 투자 목적으로 중국에 들어가려고 했었는데 여러 가지 어떤 사정 때문에 결국 못 들어간 경험이 있다. 개인적으로 도시계획 전공이다 보니 연변은 물론 선양, 광저우, 칭다오, 상하이, 홍콩, 마카오 등 중국의 많은 도시들을 다녀봤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중국에 대한 이해도는 많다고 생각하고 중국 양꼬치를 중국동포보다도 내가 더 많이 먹는다고 감히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Q. 중국동포에 한 말씀 부탁한다면? A.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고향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충 그냥 돈을 벌고 살다가 중국으로 가면 된다는 인식보다도 역시 우리 조상의 뿌리는 한국이기 때문에 한국이 잘 돼야 동포사회도 잘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한민족으로 역할을 한다면 지역주민들과 잘 화합할 수 있고 이제 동포들이 중국에 들어가서도 한민족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생활할 수 있다고 본다. 구로구의장으로서 향후 그 어떤 정책이나 개인적인 꿈도 있겠지만 중국 동포들이 구로구에 와서 잘 살고 여기에서 내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도시가 구로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생각이다.
    • 사람들
    2021-09-09

오피니언 검색결과

  • ‘왕’이 되려는 윤석열에게는 ‘왕의 수업’이 우선이다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전 정권 치하에서 ‘변방’을 맴돌던 자신을 벼락출세 시켜준 임명권자에게 반항하는 배짱으로 재직 시부터 야권 차기 대선후보1위로 부상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하 윤석열이라 함)은 3월 4일 사퇴하고 ‘대통령공부’에 몰입해왔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전해진 바에 의하면 야당의원 누구누구를 만나고 김형석 학계 원로를 비롯해 여러 교수들을 만나고 기타 분야의 영향력이 있는 분들을 만나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하고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수’에 노력해온 것 같다. 이런 과정을 밟는 것은 정치초보인 윤석열에게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코스’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만 의해서는 왕이 되기 어렵고 가령 왕이 되었다 해도 통치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야밤삼경에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왕이 되려면 우선 왕의 통치술부터 공부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삼김 정치’ 이후 대통령들은 왕의 통치술이 부족해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왕의 통치술이 부족한 것은 ‘왕의 수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정당 내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이 많다. 여당인 민주당에는 9명이고 야당인 국민의힘에는 아직 출마선언에 불이 붙지 않아 잠잠하지만 8월 ‘버스’가 본격 출발하면 족히 10여 명의 정치인이 나서지 않을까 전망된다. 문제는 왕이 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정치인은 많은데 정작 왕의 통치술에 관심 있는 정치인은 없다. 출마를 선언한 정치인과 출마를 눈앞에 둔 정치인 중 다수는 이미 정치판에서 정치 물을 마셔본 경험이 있어 왕이 되면 왕의 통치술이 저절로 쏟아져 나올 것처럼 ‘왕의 수업’에 신경을 쓰지 않는데 이런 정치인들이 왕이 되면 100% 실패한다. 전통시대에 왕자는 왕자의 수업, 세자는 ‘세자 수업’ 태자는 ‘태자 수업’이 있었다. 이런 수업들이 괜히 있은 게 아니다. 이런 수업을 거쳐야 각자 처한 자리에서 무난하게 살면서 나라에 기여할 수 있고 특히 왕이 된 자는 왕의 대업을 수행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대한민국은 유교의 왕의 수업이라는 훌륭한 전통이 있었으나 민주화시대에 들어, 특히 ‘삼김 정치’ 이후 이런 전통은 사라지고 개인 인기에만 매달려 대통령이 되다 보니 대통령이 된 후 통치술이 부족해 천하가 아주 혼란스럽다. ‘왕의 수업’을 거치지 않은 대통령들의 어설픈 통치술에 의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정치판의 물을 전혀 마시지 못했던 윤석열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마땅히 더욱 ‘왕의 수업’에 신경을 써야 하건만 그도 역시 다른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이 부분을 아예 의식하지 않은듯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윤석열은 앞서 논의했던 여러 분야의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한편으로는 ‘왕의 수업’을 병행했어야 한다. 특히 대선캠프를 차리는데 있어서 각 분야의 전문가 그룹을 섭외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왕의 수업’ 그룹도 반드시 차려야 한다. 윤석열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상황에서 ‘왕의 수업’조차 없으니 그 폐단이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벌써 터져 나오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윤석열 캠프에 1호 인사로 영입된 참모이자 대변인인 이동훈 전 조선일보 기자가 10일 만에 사퇴하는 불상사가 터졌다. 이 사건을 두고 온 대한민국이 시끌벅적하게 떠들썩하다. 100%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를 내린다. 이동훈 대변인의 사퇴이유가 건강상의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온천지에 단 한 사람도 없다. 윤석열의 식 전언정치가 빚은 결과라는 지적이 다수다. 이준석 신임 당대표는 윤석열을 ‘침대축구’에 비유했다. 점수가 앞섰다고 공격을 전혀 하지 않고 수비만 하려고 조금만 다쳐도 누워 딩구르는 것이 침대축구다. 매우 생동하고 적절한 비유이다. 이동훈 대변인의 사퇴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유로서 윤석열의 소통부족을 꼽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일보에 <흔들리는 윤석열, 그에게 없는 세 가지에 답이 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는데 세 가지 답이란 무소통, 무세력, 무콘텐츠이다. 무세력과 무콘텐츠에 관해서 추후 다른 편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할 생각이며 여기서는 무소통을 주제로 논의해 보려고 한다. 정치를 한다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일이다. 왕이 그 정점에 있는데 왕이 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인사권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요즘 민주화시대에도 대통령의 인사권은 어마어마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00개의 자리에 사람을 앉힐 수 있는 인사권을 갖고 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한 권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00개나 되는 자리를 대통령이 전부 일일이 관여할 수는 없고 수하에 10여 명의 인재만 두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 보수적으로 말하자면 수하에 3명만 진짜 인재가 있어도 성공한 왕이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말하자면 왕의 성공여부는 곁에 어떤 사람을 두는가는 데 달려 있다. 당나라 때 출간된 조유의『반경』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상등의 군주 곁에는 스승이 있고, 중등의 군주 곁에는 친구가 있고, 하등의 군주 곁에는 관리가 있고, 망국의 군주 곁에는 시종이 있다.” 문재인 곁에 포진된 참모들은 ‘동지들’이니 문재인 대통령은 상등의 군주는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신은 최순실 아바타’라는 말이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최순실은 나의 시종 같은 사람이었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시종 같은 사람이 곁에서 보좌했으니 ‘망국의 군주’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박근혜는 이 한 마디 말만 보아도 왕의 수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왕은 어떤 사람을 곁에 두어야 성공할 수 있는가? “막사 안에서 전략을 세워 천 리 밖에서 승리를 이끄는 일이라면 나는 장량(張良)만 못하다.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보살피며 군량을 공급하고 보급로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라면 나는 소하(蕭何)만 못하다. 백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아가 싸우고 공격해 반드시 승리를 거두는 일이라면 나는 한신(韓信)만 못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걸출한 인물들이다. 그들을 잘 등용한 것이 바로 내가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던 이유다.” 유방이 천하의 주인이 되고 나서 한 말이다. 유방의 말대로 하면 요소요소에 모두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앉혀야 천하를 거머쥘 수가 있다. 유방처럼 이렇게 성공하려면 군주 되려는 자와 군주가 된 자는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춰야 한다. 첫째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부하가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정해 주면서 장끼를 발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순신이 자신보다 우수하다고 여긴 선조(宣祖)는 질투심이 강해 이순신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선조야말로 왕의 자질이 부족한 군주였다. 둘째 믿음이 있어야 한다. 중국속담에 “의심스런 자는 기용하지 않고 사람을 일단 기용했으면 끝까지 믿으라.”라는 말이 있다.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은 말이 쉽지 실천에 옮기는 일은 정말 어렵다. 역대로 성공한 군주는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춘 자들이고 반대로 이 두 가지 마음가짐을 갖지 못한 자들은 모두 천하의 주인이 되지 못했거나 가령 운이 좋아 되었다 해도 실패한 군주로 역사에 기록되고 만다. 일각에서는 이동훈 대변인 사퇴이유에 대해 이런 추측을 내놓았다. 윤석열이 이동훈을 ‘기자 좀 했다고 나를 끌고 가려하나?’라는 생각으로 내 친 것 아니냐. 유방처럼 성공하려면 이 두 가지 마음가짐 외에 부하들과 소통하는 행동이 필요하다. 소통 없는 성공은 없다. 그럼 어떻게 소통해야 할 것인가? 이 면에 있어서 가장 모범적인 인물로서 유비를 들 수 있다. 유비는 소통의 달인이었다. 필자가 아는 역사인물 중 유비는 가장 뛰어난 소통가였다.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만나 의형제를 맺은 이후로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이 얘기는 진수의 <삼국지>에 기록된 것이니 믿을만하다. 어떤 학자들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한다. 유비가 매일 밤 부하들과 잠을 잤으면 그의 부인은 독수공방했단 말인가? 그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유비가 부하들과 잠을 자주 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관우와 장비뿐만 아니라 후에 삼고초려로 모셔온 제갈량과도 잠을 함께 잤다고 하고, 모사인 법정과 방통과도 한 침대에서 잤다고 한다. 부하들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잠을 잤다는 것은 유비가 부하들과 얼마나 많은 소통이 있었는가는 좋은 증거이다. 유비의 이런 소통노력이 결국 일단 그의 부하가 된 자는 주군을 배반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무일푼으로 출발한 유비는 말이 왕족이지 정확한 족보는 없이 허울 좋은 왕족이지만 ‘한왕실부흥(漢王室復興)이라는 정치신념과 부하들과 소통하여 형제처럼 지내는 믿음으로 나중에 천하의 한 모퉁이의 주인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조도 소통의 능수였다. 유비와 순욱을 비롯해 괜찮은 인물을 만나면 좌석격식 없이 함께 식사하고, 같은 수레를 타고, 때로는 잠도 같이 자면서 담론을 이어갔다고 한다. 모든 내를 흡수하는 큰 강처럼 천하의 영웅이 모두 조조에게 몰려든 이유 역시 조조가 소통의 능수였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조조는 넓은 도량으로 찾아오는 인재들과 소통하는 노력 덕분에 당시 천하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방과 대조적인 인물이 바로 항우다. 항우는 유방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했고 천하쟁패에 있어 유리한 고지에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유방이 승리했고 항우가 실패하는 대역전극이 벌어졌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을까? 항우는 명문가문 출신으로 농민출신인 유방에 비해 우선 가문이 좋았다. 항우는 타고난 싸움꾼이었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뜻) 영웅으로 묘사될 만큼 힘이 천하의 으뜸이었다. 전투도 잘했다. 70여 차례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천하는 항우의 것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 그토록 유리하던 항우가 보잘 것 없이 여겼던 유방에게 천하를 빼앗기고 말았다. 항우의 실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본문의 주제와 연관시켜 말하자면 항우는 자신이 너무 뛰어나다고 여겨 부하들을 믿지 않았고 부하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했다. 논공행상은 병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항우는 이 중요한 일마저 부하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처사했다. 부하들과 소통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예 소통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한신, 진평, 경포는 모두 본래 항우의 부하였다. 이들은 항우의 사람 됨됨이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고 게다가 천하의 주인이 될 그릇이 못된다고 판단되어 유방에게 귀의했다. 원소가 조조에 비해 여러모로 유리한 고지에 있었으나 실패한 원인 중에 그가 부하들과의 소통이 부족한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원소가 소통이 보족했기 때문에 순욱, 허유를 비롯한 훌륭한 부하들이 원소를 버리고 조조에게 귀의했던 것이다. 윤석열은 유비처럼 한 침대에서 만날 잠을 잘 정도는 아니더라도 함께 천하를 도모할 의기투합으로 캠프에 합류된 사람들과 긴밀한 소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입당 문제를 두고 한 시간 격차로 대변인의 말이 다르고 본인의 말이 다른 것은 소통이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는 증거다. 대변인이 10일 만에 사퇴한 이유가 바로 소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앞으로 헤쳐나아가야 할 일이 태산 같다. 현재 상황에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치술을 익히는 왕의 수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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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03
  • 조국사태와 성인숭배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1년 남짓 대한민국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이른바 ‘조국사태’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떠나기 시작한 줄 알았는데 요즘 또 재 점화되고 있다. 이번에 불을 지핀 장본인은 보수 언론이나 보수유튜브도 아니고 ‘먼지 털이’로 조국일가를 지옥에 몰아넣은 검찰도 아니다. 조국 자신이다. 도무지 억울해 죽겠으니 변명으로 맘의 짐을 털려는 절박한 심정으로『조국의 시간』을 집필해 세상에 내놓았다. 대박이 터졌다. 『조국의 시간』이 6월 1일 시중에 ‘얼굴’을 내밀었는데 사전 예약 주문이 밀려 며칠씩 지나서야 책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베스트셀러다. 며칠 전 통계에 의하면 17만부 팔렸으니 지금쯤은 20만부 훌쩍 넘었을 것이다. 인세만 3억을 벌었다고 하니 실로 ‘헐, 대박이다.’ 책을 집필한 본인은 대박이 터져 만족했을 것이고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도 어느 정도 풀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만만치 않다. “왜 하필 이때?” 재판 중에 있는 피의자가 책을 통해 자기의사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다. “이 사람 왜 이래?” 이런 질문도 있다. 나서지 말아야 할 사람이 나서서 세상을 또 한 번 시끌벅적하게 만든다는 의미일 게고 이 사람 진짜 얼굴에 철판을 깔았나? 하는 공격의 암시적 뜻도 있을 것이다. 조국을 공격하는 쪽과 공격 받는 쪽, 조국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양대 진영을 이뤄 마치 ‘큰 판돈’이나 걸고 게임하는 듯 매우 분위기가 치열하다. 헌정사상 한 선비 출신을 둘러싸고 조국사태처럼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전투’를 벌인 적이 없다. 조국을 반대하는 광화문 태극기부대와 조국수호를 외친 서초거리의 시위는 이른바 조국사태를 낳았고 지금까지도 진행형이며 앞으로도 몇 년간은 ‘전투’가 지속될 것으로 짐작된다. 여기서 의문 하나를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조국이란 인물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듯 찬반양론이 심각한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국사태는 조선의 역사적인 유교적인 성인숭배에서 기인된 사건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동양성인의 모습은 서양성인의 모습과 완전 다르다. 세계 사대 성인인 공자, 부처, 소크라테스, 예수 중 앞 두 사람은 아시아인이고 뒤 두 사람은 서양인이다. 그런데 앞 두 성인은 결점과 단점이 없는 완전무결한 인물인데 비해 뒤 두 사람은 결점과 단점이 많은 그냥 한 인간의 모습이다. 앞 두 사람은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천수를 누렸고 뒤 두 사람은 세상의 논란을 야기하여 사형에 처해져 비운을 맞은 불행한 사람이다. “이게 무슨 성인이냐?” 동양의 성인에 대한 인식으로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고 힘든 일이다. 노나라에 유하혜(柳下惠)라는 사람이 있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 어느 날 어슬녘에 한 여성이 유하혜의 집 문을 노크했다. 유하혜가 집 문을 열고 보니 꽤나 매력적인 여성이 찾아왔다. “길 잃어 굶어죽을 직전인데 선생께서 가엽게 여기시어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인의 몸은 손끝부터 발끝까지 얼어 온기가 전혀 없이 동태가 되어 있었다. 유하혜는 얼른 맞아들여 자기 몸 체온으로 여인의 몸을 녹여주었다. 잠깐이 아니라 온밤 품속에 품고 있었다. 마치 어미닭이 병아리 품듯이 애틋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희한한 일이 있었다. 유하혜는 여인을 밤을 지새우도록 품고 있었으나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녀 간의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이 일을 두고 품에 안고서도 음란하지 않았다는 ‘좌회불란(坐懷不亂)이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그 후 노나라에 홀아비 한 사람이 살고 있었고 옆집에는 한 과부가 살았다. 어느 날 폭우가 내려 과부의 집이 무너졌다. 과부는 오갈 데가 없어 옆집 홀아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홀아비는 문을 닫고 과부를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부인이 이같이 말했다. “선생은 왜 유하혜를 배우지 않았소?” 그러자 홀아비가 이렇게 대답했다. “유하혜는 여인을 품고 있더라도 아무 동요가 없었으나 나는 그렇지 못하오. 내가 잘할 수도 없으면서 유하혜의 전례를 좇아 당신을 방안에 들일 수는 없소.” 오갈 데 없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인을 건드리지 않을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 방치하는 것이 과연 도덕에 맞는 것인지? 이런 질문은 필자 같이 칠정육욕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나 하는 것이지 성인은 이 홀아비에게 후한 값을 매겨주었다. 공자는 이 얘기를 들은 후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유하혜를 배운 사람으로 노나라의 이 사람을 따를 자는 없을 것이오.” 공자의 이 한 마디 평가에 의해 유하혜는 지조가 있는 사나이로 기록되었고 후세 사람들은 유하혜를 성인으로 받들었다. 여인을 구해주고 사랑하면 안 되나? 서양의 귀족인 기사(騎士)들은 이렇게 한다. 동양의 선비들은 이렇게 하면 망나니로 몰린다. ‘처음부터 동기와 목적이 불순하다.’고 비난 받는다. 선비들의 세계에서 유하혜의 이 미담적인 이야기가 널리 전파되고 이를 따라 배우기 전통이 생겨났고 이 전통이 강호에게까지 전염병처럼 유행되었다. 결과 중국의 강호에 몸담은 영웅호걸 사나이들은 하나 같이 여인을 멀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의 노예가 되어 마땅히 누려야 할 남녀 간의 환락을 누리지 못하고 쓸쓸하게 일생을 보내는 것을 신념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여자문제는 그렇거니와 다른 모든 방면에서 성인은 완전무결해야 한다. 성인을 본받은 선비들도 마찬가지로 도덕수양에 위배되는 문제가 없어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주는 일은 전혀 없어야 하고 매사에 사람 됨됨이의 사표(師表)가 되어야 한다. 우리 어릴 적에 주변에 남과 다투지 않고 남을 잘 배려하고 매사에 사리 밝은 사람을 선비 같다고 흔히 말해왔다. 즉 선비의 모습은 마땅히 완전무결해야 하는 인간의 모범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다. 선비도 성인도 마찬가지로 완전무결하지 않다. 더욱이 인간은 모두 누구를 막론하고 전부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를 착취와 피착취의 관계로 설정하고 이로 생겨난 불평등의 자본의 논리를 파헤친『자본론』의 저자 마르크스는 25년 동안이나 가정부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자는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이라 부인이 남편의 목상태가 걱정되어 늘 과일즙을 다려 공대했는데 과일즙에서 탄내가 난다는 이유로 부인을 세 번이나 쫓아냈음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인류역사상 최고의 도덕권자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조국도 보통 인간이고 가정을 꾸린 가장이다. 그가 아무리 완전무결해 보여도 자본주의사회에서 완전무결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조국사태의 본질은 조국이 교단에 있을 때 발표한 글들을 통해 조국을 지지하는 진영에서 그를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낙인을 찍어버린 것이 문제의 발단이 아닐까? 즉 조국을 선비의 정신으로 무장된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는 완전무결한 성인으로 추앙하고 숭배해 왔는데 이런 선비를 건드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는 하늘이 노할 일이라는 분노에 휩싸여 ‘조국수호’를 자신들의 신성한 의무로 간주하는데서 생겨난 현상이 아닐까? 조국은 문제가 없는데 ‘윤석열의 칼’이 조국을 마녀사냥으로 몰고 간 탓이라는 것이 조국지지자들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여기서 필자는 ‘윤석열의 칼’이 마녀사냥인지? 공정과 정의를 수호하는 칼인지? 이에 대한 논의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조국지지들도 조국을 한 평범한 인간으로 이런저런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보기를 바라는 맘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만약 조국이 계속 선비로 교단에서 여생을 보냈더라면 이렇듯 가문이 풍비박산 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 아닌가? 민정수석까지 마치고 교단으로 돌아갔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조국의 사례와 같이 한국정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선비가 아무리 허물이 많더라도 법을 위반한 행위가 드러나지 않으면 선비로 여생을 마무리 할 수 있다. 그런데 욕심에 의해 정계에 입문하면 ‘먼지 털이’를 당하고 특히 장관급에 진출하게 되면 ‘먼지 털이’를 호되게 당한다. 조국도 마찬가지. 민정수석 때까지 별로 문제가 없던 사람이 법무부장으로 부임하게 되자 가족문제까지 ‘먼지 털이’당해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비운을 맞게 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문제들이 진정 해악이라면 왜 진즉에 파헤치지 않고 하물며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니까 ‘칼’을 휘두르는지? 이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조국과 그 가족이 풍비박산 맞은 것은 검찰개혁의지가 그 누구보다 가장 강한 자와 그 누구보다 검찰조직을 지켜내려는 의지가 가장 강한 자의 충돌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은 깨지기 마련이다. 깨지는 쪽은 당연히 선비출신이다. 조국지지자들의 생각이다. 한국사회에서는 ‘펜이 총보다 더 무섭다.’는 속설이 있긴 하지만 조국과 윤석열 싸움에서 붓이 결국 ‘칼’을 이기지 못했다. 왜일까? 정(鄭)나라의 재상으로 15년 동안 태평성세를 구가하게 했던 신불해는 정치의 생명은 세(勢)에 달렸다고 했다. 세(勢)에 힘을 얹으면 세력(勢力)이 된다. 정치는 세력으로 하는 것이다. 세력이 약하면 세력을 키워야 한다. 약세에 있던 모택동이 강세에 있던 장개석을 무너뜨린 것은 민심이라는 세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선비는 세력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취약하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것이다. ‘조국은 대통령이 뒷받침하고 지지자가 어마어마한데 왜 세력이 약하다는 것인가?’ 필자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조국의 세력은 허상이다.” 조국의 자리를 이은 추미애는 같은 장관이지만 5선 국회의원에 플러스 당대표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것이 바로 정치판의 세력이다. 조국은 이에 비해 정치적인 세력이 전무하다. 그래서 ‘윤석열의 칼’은 조국에게는 아주 쉽게 겨눌 수 있었던데 비해 추미애에게는 함부로 겨누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윤석열은 결국 추미애의 ‘등살’에 시달려 아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던 조국과 추미애, 이 두 사람의 세력은 결이 달랐다. 선비는 선비로 남는 것이 아름답지 않을까? 선비들이여! 괜히 어설프게 함부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개고생 하지 말고 학문에 정진하여 여생을 평안히 보내소서!
    • 오피니언
    • 칼럼/기고
    2021-06-22
  • 대한민국은 선비들의 왕국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해당 부처의 차관이 장관이 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사방침에 맞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부처의 각종 행정시스템과 업무시스템을 잘 알고 있고 게다가 차관을 지냈으면 행정경험이 있고 업무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가장 적합하고 가장 이상적인 인선이다. 물론 그 차관이 특별한 흠결이 있다면 말이 달라질 수 있는 변수(이럴 경우 그 부처의 고위관료 중에서 장관으로 승진시키는 것)는 있겠으나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인사는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하는 것이 모양새도 좋고 나라 발전에 이득이 된다. 진정한 좋은 인사는 본래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에서는 장관 인사를 이 원칙에 따라 시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 고위급 인사는 이 원칙을 적용하는 사례가 쌀에 뉘만큼 드물다. 문재인 정부 나머지 1년을 책임질 개각이 5월 14일 마무리 되었다. 이번 인사에 있어서 차관이 장관으로 승진시키는 사례가 어쩌다 시도되었다가 결국 불발되었다.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의 얘기다. 부인의 ‘도자기 사건’이 문제가 되어 자진사퇴하는 바람에 가장 이상적인 인사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여의도 정가의 뒷이야기에 의하면 박준영 후보자의 자진사퇴는 자신의 본의가 아니라고 한다. 박준영의 흠결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부 장관후보의 논문 표절, 국비가족여행, 위장전입 등등의 흠결이 더 심한데도 문재인 대통령의 여성할당제 공약 때문에 남자인 박준영이 밀려났다는 후문이다. 남녀의 비례문제를 떠나 결과적으로 해당부처의 전문가가 장관이 되는 가장 이상적인 인사가 물거품이 되고 또 교수인 선비가 장관에 오르는 현인정치가 실시된 셈이다. 신임 금융감독원장 후보군으로 학계 출신 인물들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기존 금감원장 후보군으로 올랐던 관료 출신, 내부 인사 외에 전혀 새로운 인물들이 물망에 오르며 업계 안팎에서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 선비 등용 인사의 전형(典型)이다. 연구원, 교수를 하다가 그 분야의 이론적인 전문성이 강해 학회 부회장, 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이런 선비에게 갑자기 최고 행정직인 장관을 맡게 하는 것은 머슴에게 갑자기 비단옷을 입히는 것과 같이 전혀 맞지 않아 우스꽝스런 일이며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고위급 인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으로 여겨왔으니 이것이야말로 비정상이 정상화로 되어온 전형(典型)적인 비극이다. 교수나 변호사가 고위급에 직행하는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은 따지고 보면 본질과 형식의 문제이다. 행정력이 있든지 말든지, 그 분야의 실천 경험이 있든지 말든지 겉 무늬만인 형식만 갖추면 된다. 진정 나라 발전을 위하는 본질을 추구하지 않는 허무맹랑한 인사방침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개각을 지켜보노라니『한비자에』에 있는 두 고사가 떠올랐다. 옛날 진백(秦伯)이 자신의 딸을 진(晉)나라 공자에게 시집보낼 때 딸의 옷차림새는 진나라에 가서 꾸미도록 하고 몸종 칠십 명을 하려한 옷을 입혀 따라가게 했다. 진나라에 도착하자 진나라 사람들이 그 몸종만을 아끼고 공주는 천대했다. 이것은 몸종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있지만 딸을 잘 시집보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또 초나라 사람으로 정나라에서 진주를 파는 자가 있었는데 목란(木蘭)으로 나무 상자를 만들고 계수나무와 초(椒)로 향기를 냈으며 주옥을 달고 붉은 보석으로 장식했고 비취 깃을 달았다. 그러자 정나라 사람은 상자만 사고 그 진주는 돌려보냈다. 한비는 이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이것은 상자를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진주를 잘 팔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주변은 모두 교묘한 말이거나 장식적인 말이다. 군주는 그 꾸민 면만을 보고 실용적인 면은 잊고 있다. 만일 말을 교묘하게 한다면 사람들이 그 꾸민 면만을 마음에 담고 실질적인 면은 잊을까 두렵다. 이것은 꾸밈으로 실용적인 면을 해치는 것이며 초나라 사람이 진주를 팔려고 한 것이나 진백이 딸을 시집보낸 것과 같은 일이다.” 대한민국 선비들은 고위급에 직행하는 벼슬 외에도 사회 전반을 통틀어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신문에 칼럼을 쓰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으로 대한민국 여론을 독점하고 있다. 한나라 때 한 무제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이후로 유학자인 선비들이 여론을 장악해 온 전통이 유교의 본산지인 중국에서는 사라진데 비해 한국은 유교일변도인 조선조 500백년을 거쳐 오늘까지도 선비들의 왕국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론을 주도하는 기관은 주로 신문과 방송이다. 온라인 시대를 맞아 신문은 예전 같지 않게 인기를 잃어가고 있는데 비해 방송은 점점 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많은 이유이다. 방송 프로그램 중에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상파 방송이든 종편방송이든 평일에는 거의 두 시간 간격으로 뉴스를 송출한다. 이 중에서 저녁 황금시간대인 8뉴스와 9뉴스가 뉴스 중의 메인이다. 한국에 이주해서 처음 몇 년 동안 한국뉴스를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많은 분야의 뉴스를 비롯해 민생 분야까지 고르게 진행하여 다양성이 풍부한 재미도 있지만 특히 찬양일색 뉴스만을 보다가 부정적인 뉴스가 비중이 더 많은 뉴스를 접하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얼굴인 대표방송 메인 뉴스인 9뉴스가 심지어 오토바이 안장 밑에 벌이 둥지를 튼 일까지 뉴스로 취급하는 것을 보고 쇼크를 먹은 적이 있다. 만약 중국에서 이런 일까지 뉴스로 취급한다면 하루 뉴스시간이 24시간이 아니라 240시간도 모자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렇듯 한국뉴스를 재미있게 보다가 어느 시점에 맛을 잃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사소한 가령 살인사건과 뉴스를 매일 여러 차례 한두 동안 너무 지루하게 방송하니 신물이 나고 지겨워서 뉴스에서 눈을 떼기 시작했던 것 같다. 특히 조국사태와 윤석열사태는 일 년 넘게 매일 수차례씩 지속적으로 뉴스로 다루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뉴스를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을 지겹고 지치게 만드는 뉴스는 이른바 뉴스분석 프로그램이다. 대한민국 지상파방송과 종편방송은 교수, 변호사, 연예인 등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의 세상이다. 시청자들이 먹고 살만한 세상이라 그들에게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을 마들다보니 연예인의 대거 출연은 이해할 만한데 교수와 변호사의 대거 출연은 어쩐지 시청자들의 눈꼴을 시게 만든다. 특히 종편방송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시간까지 하루 종일 뉴스와이드, 뉴스파이터, 돌직구쇼, 신통방통, 정치부회의 등 패널들을 출연시켜 뉴스분석 프로그램이 엄청 많다. 이 모든 프로그램이 다루는 뉴스의 주제는 거의 비슷하게 거기서 그것이다. 패널들도 이 방송국 저 방송국에 요일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쳇바퀴 돌듯 빙빙 돌아다닌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들의 패널들이 절대다수가 교수와 변호사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분야의 패널, 예하면 전직 국회의원, 가끔 행정직에 있었던 전직 고위공무원들이 가끔 출연하고 있고 박사출신 연구원들도 출연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패널은 선비중심으로 채워져 있다. 이론만 강하고 실전경험과 현장경험이 전무한 선비들이 뉴스분석을 하는 것을 보면 마치 다른 세상의 얘기를 하는듯한 웃기는 일들이 많다. 여의도 00연구소 00박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방송 저 방송, 시간대에 따라 여기 저기 출연하는데 하는 발언을 듣노라면 이 분은 마치 진공 속에서 사는 인간 같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 분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은 거짓말을 한 것인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십계명을 어긴 행위’라는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 범죄혐의가 드러나면 일차적으로 하는 말이 ‘절대 그런 일이 없다.’ 증거가 하나 둘 밝혀지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범죄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면 그때서야 ‘신중치 못했다.’는 말로 한 발 크게 물러선다. 어떤 거물급 정치인은 ‘만약 사실이라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다.’ ‘지하철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고 만천하에 하늘에 맹세하듯 결백을 주장하다가 범죄사실이 드러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눈을 질끈 감는다. 이렇듯 대한민국에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많은데 이 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지? 김정은 국방위원장에게 십계명을 들이대는 언행을 너무 유치해서 차마 듣기조차 보기조차 거북할 정도다. 학계는 학계의 생리가 있듯이 행정은 행정의 생리가 있다. 어쩌면 행정의 생리가 학계의 생리보다 더 복잡하고 추접스럽기까지 하다. 학계는 행정에 비해 보편적으로 깨끗하고 신성한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청정지역’에서 살아온 학자가 갑자기 흙탕물로 비유되는 고위행정직에 오르면 맡은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은 뻔한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 도리로 뉴스분석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정부의 행정비판에 열을 올리는 선비들은 오히려 사회를 혼란시키는 작용을 일으키기 일쑤이다. “세상의 어리석은 학자들은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서 옛 서적들만 읊어대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으니 이는 시대의 치세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이나 생각만으로는 인간사의 재난을 피하기에 부족한데도 함부로 통치술을 익힌 인사들을 헐뜯고 있다.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은 위험해질 것이며 그들의 계획을 사용하는 자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가장 심한 재앙인 것이다. 그들은 통치술에 정통한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담론과 유세에 뛰어나다는 세상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것이 명분은 같으나 실질이 다르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리석은 학문을 추종하는 자와 통치술을 익힌 인사를 비교한다는 것은 개미구릉을 큰 언덕에 비교하는 것과 같이 차이가 대단히 크다.” 한비자가 한 말이다. 선비들이 판치는 선비의 왕국, 이것도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취급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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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6-04
  • 조국은 문재인 정권의 주공?
    ●김정룡(多가치 포럼 위원장) 민주당과 청와대는 4.7보궐선거 참패의 데미지가 치명적이다. 순간 된 매를 맞아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있을 때 순발력이 있는 80여 명의 여당 초선의원들이 데미지를 안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조목조목 짚어서 반성문을 냈다. 그런데 바닥까지 추락한 당을 추슬러보려는 순수한 동기로 출발한 초선의원들의 반성이 외려 자신들이 큰 데미지를 입게 생겼다. 조국사태 때문이다. 문재인 열렬 지지자, 이른바 강성 문파들이 조국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초선의원들을 향해 막말에 상욕까지 해가며 당을 떠나라고 협박하고 심지어 적을 대하듯 다섯 명을 지칭하여 ‘오적(五賊)’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하루 수백 통에 달하는 메시지 발신자와 내용을 일일이 확인할 순 없지만 육두문자나 성희롱은 부지기수고, 심한 경우 가정사나 가족의 장애까지 들먹이며 악담을 퍼붓는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진 의원은 “역사적으로 강성 지지자들이 이렇게까지 한 경우는 없었다."며 "꼬리가, 아니 깃털이 몸통을 흔들게 되면서 당이 선거 이후에도 반성할 기회를 잃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하여 여당 내에서 쓴 소리 잘하는 조응천 의원이 4월 13일 의미심장하고 심사숙고할 만한 발언을 했다. “조국사태는 보수 탄핵 같이 장기적으로 진보의 발목 잡을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진보진영의 이러한 혼란스런 ‘추태’를 지켜보던 2030젊은이들이 ‘왜 조국이 그토록 중요한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왜 조국이 문재인 정권에게 있어서 그토록 중요한 인물인지? 이에 관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답을 제시해보려고 한다. 하나는 역사적으로 흘러온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에서 문제점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의 강성지지자들의 종교가 아닌 종교적인 신앙 심리에서 찾으려 한다.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란 선비 중에서 뛰어난 자를 고위관료로 등용하는 인재중용시스템이다. 동양역사에서 언제부터 유교적인 현인정치시스템이 시작되었나? 주나라 때 선비가 하나의 계급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함에 따라 시작되었고, 주공 이후 특히 춘추시대에 이르러 각 제후국들은 선비를 중용하는 바람이 불었고 이때부터 선비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역사무대에 등장했다. 선비를 ‘사(士)’라고 하는데 ‘사’는 주나라 천자, 제후, 대부, 사, 서민 등 다섯 계급 중에서 아래로 두 번째에 속했다. 서민은 백성이니 ‘사’는 엘리트층에서 말단 계급이었다. ‘사’는 비록 계급은 낮은 편이지만 취직에 있어서 유동성이 강해 대부에게 중용되거나 제후국에서 각 부처의 장·차관은 물론 재상자리까지 쉽게 오르는 등 하루아침에 벼락출세할 수 있었다. 유가의 이상인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선비가 공부를 통해 수양을 닦아서 대부를 도와 제가를 하고, 제후를 도와 나라를 다스리고, 천자를 도와 천하를 태평하게 한다는 뜻이다. 『한비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강대한 초나라 한 선비가 쇠약한연(燕)나라가 걱정되어 연의 재상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었다. 한참 편지를 진지하게 쓰고 있는데 날이 어두워지자 하인에게 촛불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선비는 잠시 집중을 잃었는지 그만 편지에 ‘거촉(擧燭)’이란 두 글자를 써넣었다. 편지를 받아 본 연나라 재상은 ‘거촉’의 의미를 진지하게 연구한 끝에 자기 나름대로 ‘어두운 세력을 몰아내고 현인을 등용하라’는 뜻으로 이해하였고 이를 왕에게 보고했다. 연나라 왕은 과연 현인을 등용했고 그 결과는 나라가 잘 다스려졌다고 한다. 한비자는 이 이야기를 본래의 뜻을 떠난 오해의 사건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당시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활발했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의도로 생겨났고 전해온 것이 아닌가 싶다. 춘추시대에 이르러 각 제후국들이 패권을 다투려고 선비를 애지중지 받들었으며 선비 중 뛰어난 현인들은 왕을 우습게 여길 정도로 높은 대우와 예우를 받았다. 전국시대에는 이런 기류가 더욱 농후해졌다. 유가는 명사, 도가는 은사, 법가는 모사라고 정리한다면 전국시대 말기, 유가의 명사인 현인들과 도가의 은사들은 찬밥신세였고 간혹 그들을 중용한 나라들은 실패하여 법가의 모사들을 중용한 진나라에게 모두 먹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법가를 중용하여 천하통일이라는 위대한 대업을 이뤄냈고 천년만년 영원하리라던 진나라는 2세를 넘기지 못하고 15년 만에 홀딱 망해버렸다. 중국 23개 왕조역사에서 가장 단명이었다. 진의 뒤를 이은 한고조 유방은 천신만고 끝에 나라를 세웠으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법가의 설계도에 따라 군·현제를 실시하자니 단명인 진나라 전철을 밟을 것 같고, 그렇다고 유가의 패턴으로 이뤄졌던 주나라 봉건제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 않느냐? 결국 수도권인 경기지역은 군·현제를, 각 지방은 제후를 세우는 봉건제를 실시하였고 통치무기는 유가도 아니고 법가도 아닌 속박이 없이 스스로 그렇게 맡겨서 돌아가게 하는 도가의 무위자연론이었다. 백성들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나 신나게 일한 덕분에 곡식이 곳간에 넘쳐났고 서로 다툼이 없는 태평성세를 맞았던 것이다. 화무십일홍이라더니 한나라 초기 좋았던 세상이 오래가지 못했다. 문제는 너무 느슨한 통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느슨해져 기강이 문란하고 국가는 강력한 힘을 가질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전반 사회기강이 바로 서고 나라가 힘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이때 눈치 구단인 동중서(董仲舒)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한 무제를 찾아가 역사를 바꾸는 거대한 흥정을 한다. “유가를 다시 살리고 선비(유생)들을 관료로 전면 등용하십시오.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고 유씨 왕조는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OK!” 한 무제는 동중서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유생을 관료사회에 전면 배치한다. 선비들이 살판났다. 한 무제는 관료로 써먹을 유생을 배출하는 태학을 세운다. 후한에 이르면 유교가 뿌리를 내려 낙양의 태학 학생은 3만 명에 달했고, 태학의 건물도 여러 번 증축되어 말기에는 24동에 1,850개의 교실을 갖게 되었다. 아마 요즘 지구촌의 지식분야의 최대 상징인 하버드를 훨씬 능가하는 규모였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지방에서도 각각 사숙이 만들어져 이름 있는 학자를 스승으로 하는 동문의 학생들이 배출되었다. 동중서와 한 무제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흥정에 의해 선비를 관료로 전면 등용하는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청나라 말기까지 이어진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때에 중앙 귀족 자제에게 경학, 문학 따위를 가르치던 국립 교육 기관을 설치하였다. 고려 인종 때에 국자감을 설치하여 고급 벼슬아치의 자제들에게 유가 경전인 사서오경을 가르쳤다. 1308년에 성균감을 성균관으로 바꾼 최고 국립교육기관에서 역시 유학교육이 중점이었고 고려 말기에 이르러 정몽주와 정도전 같은 뛰어난 학자를 배출하여 정계를 흔드는 거목으로 역할 한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있어서 선비 현인정치 모델이었고 중국 주나라 주공에 비견할 만한 인물이었다. 그 후 조선조 500년 동안 선비가 관료사회에 등용되는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한다. 유교적인 현인정치가 똑 같이 근대시기까지 유지되어 오다가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폐지한데 비해 한국은 아직도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을 그대로 시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교수와 변호사가 고위관료로 직행하고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현시대에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매우 특이한 사례이다. 현재도 진행형인 조국사태의 논란에 대해 말하자면 조국의 정체성은 문재인의 뒤를 이어 노무현의 유업을 계승하는 사명을 지닌 인물이다. 노무현의 숙원사업이었던 검찰개혁을 문재인이 바통을 이어받아 역시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로 추진하려고 했는데 이 역사적인 사명을 완수할 인물로서 바로 조국이 선택받았던 것이다. ‘검찰개혁의 대명사’ 이것이 조국에게 붙여진 ‘오사모(烏紗帽)’이다. 조국의 이 ‘오사모’는 조국이 선비 중 으뜸의 현인이라는 의미를 강력하게 지니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게 그렇고 강성 문파들에게도 그렇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재인 정권과 강성 문파들은 조국을 주나라의 치국시스템을 창안해낸 주공처럼 대한민국 검찰역사를 바꿀 인물로 강력한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굳게 믿었던 ‘현인 조국’이 가족이 탈탈 털리는 사태가 벌어지자 문재인 정권과 강성 문파들은 도무지 견뎌 낼 수가 없어 분노에 가득 차 펄쩍 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성 문파들은 서초거리에서 데모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장장 1년이란 시간을 끌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국사태는 문재인 정권에게 있어서 현인 중 현인으로서 마치 주공에 버금가는 조국이 아니면 검찰개혁을 완수할 수 없을 것처럼 국민에게 비쳐졌기 때문에 오늘 날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현대사에서 ‘두 대통령 종교’가 생겨났는데 하나는 ‘박정희 종교’이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 종교’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박정희 종교’ 덕분이고 박근혜가 탄핵되자 광화문에 나선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바로 ‘박정희 종교’ 독실한 신도들이다. ‘박정희 종교’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바로 ‘노무현 종교’인데 그 신도들이 현재 강성문파들이다. 이들은 노무현이 사라지고 문재인은 곧 5년 임기를 마치면 정계를 은퇴할 것이니 조국을 정신지주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누구든 조국을 건드리면 마치 자기네 조상을 욕보이는 것처럼 간주하고 도저히 용납 못하고 곧 공격적인 행동에 나선다.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조국사태 같은 정치파문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을 폐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제2, 제3의 조국사태가 벌어질 것이며 사회는 내편 네편 가르기로 크게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한편 조국과 같은 선비를 고위관료로 중용하는 유교적인 현인정치 인사시스템이 대한민국 발전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는 폐단에 관해서 다음호에 논의를 이어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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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04
  • 잃어버린 조선족의 역사
    ● 김 규 조선족은 중국에 살고 있는 한민족으로 대개 조선시대 말부터 중국으로 이주하여 생활하면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형성된 역사가 짧기에 여기서 잃어버린 역사 얘기를 하게 되면 대부분 조선족 지식인들이나 역사학가들은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백여 년밖에 안되는 조선족 역사에 그 무슨 비밀 같은 것이 있으며 잃어버린 것이 있을쏘냐고... 역사는 예전에나 지금이나 잃어버리고 고쳐지고 망각되는 일이 허다하다. 중국 조선족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1931년 중국은 동북의 만주국 통치를 인정하면서 일본에 동북을 빼앗기고 만다. 동북을 강점한 일본은 바로 중국 동북의 길림성 조선 접경지대의 백두산 일대에서 맹활약하던 조선독립군(조선 독립을 위하여 싸우는 군대로 잠시 지칭하며 당시 이 군사력의 정확한 명칭은 모른다)을 첫 타깃으로 삼는다. 사실 1931년 전까지 동북은 중국 땅이어서 일본은 영사관의 병력과 현지 경찰 등으로는 조선독립군을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31년 이전의 조선독립 세력은 이미 중조 접경 지역에서 이십여 년간 발전을 하여 대규모의 병력을 가졌던 것이다. 그 예로 최서해 강경애 등 당시 프롤레타리아 계열의 작가들을 보면 모두 중국 땅으로 이동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제의 검열로 다만 중국 땅을 생존과 기회의 땅으로 묘사하였지만 실제는 백두산 일대에는 조선의 독립투사들이 대거 포진하여 있었다. 그중에는 파산된 농민도 있었겠지만 땅과 집을 팔고 구국 운동을 하려는 조선의 의로운 사대부 귀족과 의인들도 많았었다. 하여 연변과 동북에는 그 당시 애국지사들이 세운 학교가 많았다. 그 예로 윤동주는 심지어 기독교 계열의 학교를 용정에서 다니며 애국주의를 전수받았다. 1931년은 중국 조선인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 해였다. 그러나 역사에서는 그냥 일본의 동북 강점으로 나온다. 중국 조선인의 역사에서 백두산 일대에서 총칼을 갈며 광복을 꿈꾸는 피 끓는 인생들을 그냥 별 볼일 없는 사람들로 취급하고 있을 때 중국공산당은 당시 그렇게 보지 않았다. 중국 역사에서의 항일연군은 곧 조선독립군과의 연합을 의미한다. 정사에서는 지금 그 누구도 당시 조선독립군의 세력이 어떠했는가가 나오질 않는다. 다만 중국공산당의 영도하에서의 항일연군의 활동이 부각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 역사적 환경하에서의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해석되지만 결코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될 역사이다. 조선독립군의 군사세력은 당시 동북에서 으뜸가는 위치에 있었으며 이 사실을 잘 아는 중국공산당은 조선독립군에 연합 제의를 한다. 그 당시 중공은 중국 전역에서 국민당에게 잔혹하게 탄압을 당해 겨우 수만 명이 정강산에 오를 때라 동북지역은 군사력과 당조직이 상대적으로 약해있었다. 일설로 양정우가 동북으로 올 때에도 단신으로 왔었다. 그만큼 동북의 중공의 조직과 군사력은 약했다. 1931년 일본의 동북 강점 이후 연변 일대 조선독립군에게 있어서 중국공산당과의 연합 유혹은 컸다. 다만 조선독립군은 성분이 복잡했는데 독립군 중 젊은층은 소련 사회주의 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나이가 있는 일부는 서방 민주주의 혁명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대체로 소련의 혁명 성공을 인정하는 편이었으며 소련이 이끄는 국제공산당과 연계를 가지고 있었다. 국제공산당은 조선독립군의 현 병력으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소련 접경지대로 이동하여 세력 보전하라고 조선독립군에 제의하였다. 중국공산당은 조선독립군이 중국 경내에 남아서 같이 항일연군을 성립하여 일제와 싸울 것을 요구하였다. 1932년, 일제는 동북 강점을 마치고 백두산 일대의 조선독립군에 대한 정벌을 준비한다. 조선독립군은 연변과 동북 각지에 산재하여 있는 독립군 우두머리들을 모아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회의를 연다. 즉 소련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중국에 남아서 유격전을 할 것인가? 이 고위층 회의가 반역자 혹은 간자에 의하여 일본군에 알려지며 조선독립군의 각 지대의 중대장들과 수령들이 포위를 당해 전부 희생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어랑촌 13용사가 나타나게 된 전말이다. 어랑촌 13용사는 사실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유격대원들의 희생이 아니고 동북 일대 조선독립군 영수들의 마지막 울부짖음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김구를 말하고 이승만을 알지만 이들을 모른다. 어랑촌 13용사는 유격대원으로 포장이 되었으며 그들의 이름도 사적도 전부 허구로 되어있으며 심지어 이 사건이 발생된 시점도 전부 허구로 되어있다. 우두머리들을 전부 잃은 조선독립군은 일부분은 소련으로 들어갔으며 (김일성) 일부분은 중국공산당과 합병하여 항일연군을 이루었다. 후에 이들의 대부분은(일설에 6개 사단 6만 명이라고 함) 김일성을 따라 조선군으로 편입되었으며 나중에 조선전쟁에서 대부분이 사라졌을 것으로 믿는다. 하여 오늘날에 와서 백두산 조선독립군의 역사는 영원히 미제로 남아있으며 전부 김일성 주석(그 당시 나이가 십 대)이 한 일로 역사를 쓰게 되었다. 1957년에 조선에서 사람이 와서(옛 조선독립군으로 추측이 된다) 어랑촌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사적을 묻는다. 이때에서야 중국에서는 이 부분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이들의 이름을 복구하려 했으나 이미 이십여 년이 흘렀는지라 어려웠다. 문화대혁명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연변에 어랑촌 13용사의 기념비가 세워진다. 그러나 그중의 인물들은 이젠 더는 알 수 없었으며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이 용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일이 발생했다. 역사는 똑똑히 적은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중공의 유격대와 유격대원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수십 년간 방치할 수도 없었으며 죽은 뒤에도 사적이 모호한 일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오늘날에 우리가 보는 어랑촌 13용사는 일개인의 서술에 의하여 역사를 이용하는 자들에 의하여 가공이 되고 흐트러진 것이지만 역사의 진면모는 그 자리에 있었으며 지나간 역사는 결코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백 년이 다 돼가는 이 시점.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걸 증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마 우리의 후대들은 지금 역사책으로 전해져오는 어랑촌 13용사 이야기를 알고 믿으며 자랄 것이다. 조선족의 역사는 이렇게 영원히 잃어버렸다. 주 : 본문은 본지의 주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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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2
  • 조선의용군과 만주독립군 활동
    ● 김 규 한국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조선의용군’을 검색해보면 만주에서 싸우던 독립군 부대라고 버젓이 나온다. 해서 만주에서 조선의용군 혹은 조선 의용대가 싸웠거니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조선의용군이 곧 조선독립군이고 만주에서 만들어진 조선독립군 백두산 독립군이나 만주 독립군이라고 생각하고 나아가서 항일연군에도 가담하지 않았나 혹은 항일연군에 속하거나 관련된 거 아닌가 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 모처에서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건 맞으나 조선의용군은 1920년 좌우부터 진행된 만주의 독립운동 독립혁명 독립군 그리고 항일연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조선의용군은 1938년경에야 만들어졌으며 즉 급조한 것이며 광복이 될 때까지 300명 좌우였으며 게다가 대부분이 비전투원이었다. 조선의용군을 조선독립군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만주의 조선 독립 세력은 훨씬 전에 이루어졌다. 1938년이면 김좌진이 가담한 청산리 전투도 끝난지 십수 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장소도 틀린다. 만주가 아니라 한구 즉 오늘의 중국 후베이성 무한시에서 의용군을 설립했다. 설립한 배경에는 장개석은 상하이에 있는 김구와 호흡이 맞았고 조선 독립을 돕고자 했으나 김원봉 같은 좌파랑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국공합작을 빌미로 김원봉 세력을 연안에 보냈는데 그게 조선의용군이다. 그 당시 동북의 항일연군에는 만주의 조선독립군 세력이 절반 넘어 포진해 있었으며 중국공산당의 입장으로 볼 때 조선인은 모두 한민족이고 같은 부류라고 생각하였기에 김원봉의 조선의용군에 대해 접대를 잘해줬다. 1945년 항일 전쟁이 끝나자 항일연군에 속해있던 수만 명의(일설에 6개 사단 6만 명) 조선독립군과 화북 일대의 조선의용군이 조선 김일성 휘하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정율성이라고 봐야겠다. 하여 모택동이나 중공의 입장에서는 조선인은 대단히 고마운 존재로 그것이 조선 의용대이든 만주 독립군이든 모두 동일시 하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김학철에 대한 예우이다. 김학철은 나이를 보나 독립활동에 가담한 시기나 시간을 보나 항일연군과 다른 조선의용군에 비겨도 한참 떨어진다. 그러나 김학철이 중국에 왔던 시기는 중국에서 공을 세웠던 조선인들이 대거 조선반도로 회 괴하던 시기였으며 중국은 아직 그 감사함이 따뜻하게 몸에 배어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분대장에 불과한 김학철은 버젓이 모택동과도 이웃으로 잠깐 산 적이 있다. 그리고 해방 후 행정구역을 정할 때 원체 연변은 조선인의 공헌으로 볼 때 연변조선족 자치구로 해줄 수 있다는 게 중공의 공론이었지만 그 당시 주덕해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비교적 적은 조선족 인구와 지역을 감안하여 조선족 자치주로 하겠다고 겸손하게 결정하였으며 이것이 그 후 중공에서 조선족이라면 소수민족 중 최고로 취급하는 결정적 계기다. 말이 엇나갔지만 조선의용군은 만주 독립군 혁명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김원봉이 개인적으로 만주에는 자주 다녀갔지만 조선의용군은 한날한시라도 만주 땅을 디딘 적이 없었으며 전투나 혁명은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만주의 독립군이 조선의용군으로 버젓이 나오는데 이는 역사 왜곡이다. 만주의 독립군은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한 1912년경부터 중국과 조선의 접경지대인 백두산 약수동 근처에서 태동을 하였으며 1931년 만주가 일본의 손에 들어가자 일본 관동군을 상대하여 소탕당할 험악한 상황에 맞닥뜨려 일부는 소련 경내로 이동을 하였으며 대부분은 중공과 연합하여 항일연군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서 항일연군 중의 조선인이 곧 만주의 독립군 활동을 한 장본인이란 말이다. 조선 의용대는 그냥 조선인이라는 것 외에 활동 무대는 중국 화북 일대였으며 최고 인수가 300명에 그쳤다. 항일연군 중의 조선인은 나중에 조선에 들어간 것만 6만 명이다. 개중에 안 간 사람과 군인이 아니어서 못 간 사람(중국공산당 지하당원) 등을 포함한다면 만주 독립군 활동 세력은 십수만도 가능하다. 중국에서는 항일연군의 조선인 사적을 최대한 줄여 중공의 업적을 과시하는데 유리하므로... 이 세 세력은 조선족이라는 근대의 가장 위대한 한민족의 역사적 업적을 가로채였으며 김원봉 같은 300명 부하를 거느린 하루라도 제대로 된 전투도 못해보고 테러분자 비스름한 행적을 기록한 사람에게 영광을 주었다. 누구를 탓하랴 우리 조선족 자신도 우리의 역사를 모르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설령 눈앞에 있다고 하여도 ……. 주 : 본문은 본지의 주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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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20
  • 고강, 임표가 항미원조를 반대했는가?
    ○김희수 1954년에 중국공산당 제7기 4중전회에서 고강(高岗), 요수석사건에 대해 결정을 내린 후 고강이 조선(북한)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이 있었다. 1971년의 “9.13”사건 후에도 또 임표(林彪)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이 있었다. 20세기 90년대 말까지 항미원조전쟁(6.25전쟁)에 대해 언급한 개별적인 저작에서 이런 설법이 있었다. 그럼 고강과 임표가 정말로 항미원조 출병을 반대했을까? 고강과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은 근거가 부족하다. 1950년 6월 하순에 미국이 무장으로 6.25전쟁에 개입하고 대만해협을 노리자 중공중앙에서는 조선에 출병하고 대만 해방을 뒤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당시 각 중앙국의 주요 지도자들 중 고강이 제일 먼저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1950년 7월 7일에 중앙군위에서 동북변방군을 조직할 데 대한 문제를 연구했고 그 이튿날에 변방군에 편입된 부대는 즉시 광주, 중원 등지로부터 동북으로 집중되었다. 이미 확정된 변방군 사령원 겸 정치위원 속유, 부사령 소경광, 부정치위원 소화는 병으로 직무를 맡을 수 없었다. 1950년 7월 22일에 주은래와 섭영진은 연명으로 모택동에게 “변방군을 먼저 동북군구에 귀속시켜 고강(사령원 겸 정치위원)의 지휘를 받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하고 건의했다. 모택동은 그 건의를 비준했다. 동북변방군의 공급과 참전에 수요되는 물자준비, 장비의 보충과 수리, 운수, 전방동원 등 참전준비는 모두 고강의 직접적인 지도하에서 진행되었다. 1950년 8월 중순 후에 6.25전쟁은 대치국면이 나타났다. 그해 8월 31일에 고강은 모택동에게 6.25전쟁 상황과 변방군 준비사업에 대한 몇 가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 “현재 아군의 어떤 간부들 중에는 일본군이나 국민당군과 싸울 때의 안광으로 오늘의 적을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적들의 전술, 공군, 대포 등 특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또 일부 간부들은 미국 공군에 대해 속수무책인데 전문가들을 조직하여 적의 작전 특점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만이 작전 시 적을 소멸할 파악이 있게 됩니다.” 모택동은 1950년 9월 3일에 고강에게 “반드시 현대 전쟁의 관점으로 부대를 교육해야 합니다. 절대 적을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의 의견은 정확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 연구해봅시다”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이는 고강이 동북 변방군의 작전 준비사업에 대해 적극적이고 주동적으로 나섰다는 것을 말해준다. 주은래와 팽덕회가 그 후에 했던 보고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조선 출병에 대해 토론할 때 확실히 부동한 의견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상곤 신변에서 사업했던 일군의 말에 의하면 양상곤은 “당시 출병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출병을 하지 말자거나 잠시 출병을 하지 말자는 의견이 다수였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고강이 출병하는데 찬성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혼자 아니었을 것이다. 찬성했건 반대했건 모두 당내의 민주 체현으로 정상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어떤 의견이든 모두 당과 국가의 이익을 책임지기 위해 고려한 것이었다. 때문에 누가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해서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고 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것이다.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결정을 내린 후 출병을 찬성하는 고강의 태도는 견결했고 매우 적극적이었다. 1950년 10월 8일에 모택동이 중국인민혁명군사위원회 주석의 명의로 서명한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할 데 관한 명령 중의 규정에는 “중국인민지원군은 동북행정구를 총후방기지로 한다. 총후방기지는 모든 후방사업과 조선을 지원할 데 대한 사무를 담당한다. 동북군구 사령원 겸 정치위원 고강 동지가 총부방사업의 배치를 지휘하고 책임진다”는 내용이 있다. 그날 고강은 방금 지원군 사령원 겸 정치위원직을 맡은 팽덕회와 함께 심양으로 날아갔다. 1950년 10월 9일에 고강은 팽덕회와 함께 지원군 군 이상 간부회의를 열고 출국 작전에 대해 상의했다. 1950년 10월 8일에 주은래는 모택동과 중공중앙의 위탁을 받고 임표더러 소련에 가서 스탈린 등 소련 지도자들에게 중공중앙정치국 회의에서 출병을 결정한 정황을 통보하고 소련 측에서 무기장비와 공중엄호를 제공해 줄 것을 요구하라고 부탁했다. 스탈린은 소련 공군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3개월 내에는 중국군 작전을 엄호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 소식이 북경에 전해지자 모택동은 1950년 10월 13일에 다시 중공중앙정치국회의를 소집했다. 그 번 회의에서 고강은 조선 출병에 대한 태도가 매우 견결했다. 고강과 팽덕회는 소련에서 공군이 출동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반드시 출병해야 한다고 표시했다. 모택동은 그날 주은래에게 보내는 전보에서 “고강, 팽덕회동지 그리고 기타 정치국 동지들과 상의한 결과 우리 군은 반드시 조선에 출병해야 한다고 일치하게 인정했습니다”하고 썼다. 1950년 10월 14일 3시에 모택동은 다시 주은래에게 전보를 보내어 “팽덕회와 고강 동지는 적군과 싸우면 승산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들과 나는 모두 참전이 꼭 유리하다고 인정했습니다. 첫째, 지원군이 출동한 후 팽덕회는 동북 총후방기지의 사업에 만족을 표시했다. 팽덕회는 항미원조전쟁 기간에 “지원군이 전선에서 승리한데는 두 사람의 공로가 크기에 응당 그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중 한 사람은 고강이고 다른 한 사람은 홍학지(지원군 부사령원 겸 지원군 후방근무 사령부 사령원직을 맡았음)이다. 둘째,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중국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결책을 내온 후 고강의 태도와 행동을 보면 고강이 항미원조에 대해 태도가 견결했고 적극적 이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1951년 11월에 고강과 임표는 동시에 중앙군위 부주석으로 임명되었다.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은 주요하게 그가 병을 핑계로 지원군 통수직을 맡지 않겠다고 한 것과 관계된다. 그리고 또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조선 출병을 결정한 후에도 임표가 의연히 출병을 반대했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확실히 임표에게 지원군 통수직을 맡기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950년 8월 31일에 고강은 변방군이 출동 후 해당 문제 대해 모택동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부대를 지휘하는 통수와 전문인재가 빨리 동북에 올 것을 건의합니다. 그래야 충분히 준비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모택동은 1950년 9월 3일에 고강에게 회답 편지를 보냈다. “임표와 속유는 병이 있고 또 두 사람은 이 기간에 해야 할 사업이 있어서 잠시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몇 개월 후에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모택동의 이 편지에서 임표는 확실히 병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한 달 후에 중국 인민지원군을 조직하여 항미원조에 출병할 때 임표는 지원군 통수를 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공중앙의 결정에 의해 임표는 소련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 임표는 중공중앙정치국 위원이 아니었다. 양상곤의 일기와 이번 회의에 참가했던 박일파에 따르면 임표는 1950년 10월 4일 오후와 5일 오후에 중공중앙정치국 확대회의에 참가했다. 임표가 회의에서 무슨 의견을 발표했던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고 말할 수 없다. 중공중앙정치국에서 조선 출병을 결정한 후에도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는 설법은 증거가 없어 믿음성이 없다. 그러나 1951년 11월 5일에 중앙인민정부위원회 제13차 회의에서 고강과 임표를 동시에 중앙군위 부주석으로 보충선거했다. 1951년 말과 1952년 초에 임표가 3개월간 중앙군사위원회의 일상 사업을 주최했다. 항미원조는 당시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에게 첫째가는 대사였기에 만약 고강과 임표가 조선 출병을 반대했다면 모택동과 중공중앙에서 그들을 그토록 신임하지 않았을 것이고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되어 1년이 지난 후 그들을 중앙군위 부주석으로 보충선거하지 않았을 것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1-02-16
  • [이슈 분석]체육강국 중국, 왜 축구만 약한가?
    ●리병천 올림픽 등 국제체육대회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석권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왜 유독 축구에서만 세계적으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가? 정말로 팬들의 씁쓸한 우스개처럼 메시가 될 인물이 시골에서 밭을 갈고 있기 때문일가. 중국축구가 아직도 부진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분석해본다. ◆중국, ‘체육강국’으로 우뚝 서다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 중국은 성공적 올림픽 개최와 세계 최강 미국을 꺾고 종합 1위를 달성하는 등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올림픽 역대 종합순위를 살펴보면 각국의 국력과 세계 질서의 변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어있다. 1940년대 이전에 프랑스, 영국, 독일이 각각 한차례씩 종합 1위를 차지한 적이 있고 1948년 이후 대회부터는 미국과 소련이 종합 1위를 양분했으며 소련 붕괴 이후 1996년 이후는 미국이 종합 1위를 독차지하고 있다. 메달수가 국력을 직접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2008년 당시 중국은 금메달수에서 51대36으로 미국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종합 1위를 차지했고 종합 1위의 이 막강한 상징성은 중화민족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작동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차이로 종합 2위를 하면서부터 2008년 북경올림픽에서는 종합 1위를 차지해 이미 세계의 강자가 됐음을 보여줬다. 비록 중국은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는 2, 3위를 기록, 종합 1위는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세계적 체육강국임은 증명됐다. 당대 스포츠에서나 국제질서에서 미국의 독주에 유일하게 도전장을 내고 있는 중국이다. ◆왜 축구에서만 유독 두각을 드러내지 못할가? 지난 7월, 국제축구연맹이 발표한 세계축구 랭킹에서 중국은 세계 76위, 아세아 9위를 기록했다. 일본, 한국, 이란 등 전통 강호들은 물론 카타르, 이라크 등 나라들에도 밀리고 있다.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중국은 2승, 1무, 1패를 기록, 필리핀과 승점은 7점으로 같지만 골 득실에 앞서 간신히 조 2위를 유지, 수리아(4승, 승점 12점)와는 어느덧 승점 5점 차로 벌어지며 최종예선 진출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11월 U-19팀은 26년 만에 아시아축구연맹 U-19 챔피언십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근래 중국축구가 각 대회에서 보인 성적은 그야말로 암울, 그 자체이다. 올림픽 등 국제체육대회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석권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왜 유독 축구에서만 지금까지도 제자리 걸음, 아니 후퇴를 하고 있을가? ◆‘한 자녀 정책’의 부작용 중국은 198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인구억제를 실시했다. 바로 ‘한 자녀 정책’이다. 축구가 조직력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개인 기량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탁구나 체조 등에서 중국이 세계 최정상을 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11명이 하나로 묶여 움직여야 하기에 누구 한명의 기량으로 승부를 뒤집기가 쉽지 않다. 또 80년대 이후 출생한 자녀들에 대해 부모들은 투자는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프로선수가 돼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축구에 대한 인식하에 부모들이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게 축구를 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또 한 자녀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개인주의 성향이 짙어지게 됐고 축구와 같이 조직력을 요소로 하는 종목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젊은 선수들의 프로의식 부재 중국 프로축구리그는 자금적인 면으로만 볼 때 세계 5대 리그중 하나라고까지 할 수 있다. 최근 몇년간 거액의 투입을 해오며 외국인 용병들에게 엄청난 돈을 투자해 그 지명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토종 선수들의 실력은 리그 수준과는 왼전히 동떨어져 있다. 젊은 선수들이 외국 리그에 대한 도전에는 눈을 돌리지 않고 국내에 안주한 것 역시 높은 년봉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굳이 험한 길을 가지 않아도 엄청난 년봉이 보장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중국축구의 자국내 인기와 대우는 좋아졌지만 자국 선수들의 성장에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측면도 있다. 한국이나 일본이 최근 몇년간 무수한 자국 유망주들을 유럽무대로 진출시켜 급격한 기량 향상을 일궈낸 것과 달리, 중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무뢰(에스파뇰) 등 일부를 제외하면 극히 드물고 성공 사례도 부족하다. 과거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부유한 중동팀들이 겪었던 문제처럼 현재의 중국 프로 선수들은 높은 몸값과 스타대우를 받고 있는 자국리그에서의 성공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 선수들 특유의 개인주의 성향도 팀플레이와 높은 전술 이해도를 요구하는 현대축구의 기준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중국축구가 아시아에서조차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런 문제점들을 감지한 중국축구협회는 최근 거품 빼기에 나섰다. 슈퍼리그에 년봉 상한제를 도입해 국내선수 년봉 상한을 1200만 위안으로 규정했다. ◆공격형 용병들 국내선수 발전 공간 점령 근래 중국 프로축구에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몰려들면서 국내 공격수들이 설자리가 없게 됐다. 이는 그대로 축구 유망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슈퍼리그, 갑급리그 각 팀들을 살펴보면 공격수들은 전부 이름값 비싼 용병들을 쓰고 있다. 국가팀 역시 전방에 엘케손 등을 귀화시켰다. 때문에 젊은 유망주들도 공격수보다는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되기 위해 훈련한다. 엄청난 재부를 상징하는 프로 무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공격수보다는 수비수가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들이 국내에서 공격수로서는 프로 무대의 경쟁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헐크, 자하비 등 세계급 용병들보다 잘할 수 없다면 그냥 미드필더나 수비수가 되는 게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계속 중국으로 모여들고 있는 상황이 끝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중국축구의 공격수 부재는 앞으로도 더 심해질 것이다. 어쩜 메시와 같이 천성적 공격수 자질을 갖춘 국내 유망주가 이미 헐크와 자하비 등 세계급 공격수들 때문에 수비수가 돼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체계적으로 축구팀 만들기 위한 인내심 결핍 세계의 그 어느 프로리그든 경쟁은 치열하다. 하지만 중국리그에서의 경쟁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심각하다. 국내 구단들은 감독을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없다. 대기업이 축구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인내심이 극히 부족하고 성적에 따라 감독을 갈아치우는 게 전통이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들이 전술실험을 할 수도 없고 새로운 선수에게 기회를 줄 수도 없다. 이름값 비싼 용병들을 최전방에 배치해놓고 그들의 능력을 믿으면서 나머지 선수들은 안정적인 수비를 하는 것 뿐이다. 때문에 국가팀에서도 자유롭게 실험하고 도전하는 분위기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가 공인하는 스포츠 강국이다. 인구 14억의 거대한 인적자원을 배경으로 다양한 스포츠 분야에서 초강세를 보여왔다. 때문에 왜 축구에서 만큼은 ‘중국산’이 전혀 통하지 않는지, 중국축구협회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중국축구는 언젠가는 국력처럼 세계적 최강이 될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주어진 숙제가 너무도 많아 보인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8-06
  • 속담으로 본 우리의 민족적 특성
    ●권진홍 “한국에는 멀리 내다보는 속담이 없어. 중국에서는 ‘나무를 기르는 데는 십년이 필요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데는 백년이 필요하다(十年树木,百年树人)’라고 하잖아? 한국 속담에는 이렇게 멀리 내다보고 계획하는 속담이 어디 있냐?” 얼마 전에 가족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오빠가 나한테 한 말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 말이 나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말만은 유독 머리에 박혔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여서인지 아니면 또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말은 우리말에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게 정말 크게 다가왔다. 말 듣는 순간 머릿속 채널을 부지런히 돌려보았지만 반박할 만한 속담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이 지나고도 이 말은 여전히 귀전에서 맴돌았고 속담들을 좀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네이버사전에 들어있는 한국의 ‘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우리말샘’에 수록된 속담들을 다 추출해냈다. 어마어마한 양이였다. 학생들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혼자서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다음은 속담들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워낙 방대한 양이라 보는 데만 해도 엄청난 시간이 필요했다. 절반 정도를 봤는데도 내심 기대했던 속담은 없었다. 실망감이 들기도 하고 왜 이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오빠의 그 한마디를 듣고 속담에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속담은 여느 말들과는 달리 한 민족의 역사, 풍습, 민속, 지혜 등을 담은 정신적 유산이기 때문이다. 백과사전(1998)에서는 속담에 대해 옛날부터 말로 내려온 교훈이나 비유의 뜻을 담은 짤막한 말로 민중의 지혜가 응축된 민간 격언, 이언, 속언이라고 정의하였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서는 오랜 세월을 거쳐 삶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나 어떠한 가치에 대한 견해를 간결하고도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어떤 학자는 속담을 어떤 종류의 교훈, 기지, 상상, 경계, 비유, 풍자 또는 모든 관찰 경험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표현하는 말로서 인간 생활에 관한 진리를 말할 목적으로 쓰이는 말이라고 기술하였다. 이처럼 속담은 인간이 집단적 사회생활을 해 오는 과정에서 개인적 또는 집단적 사유 및 공감을 통해 수렵된 세상사 및 인간 삶에 대한 지식이며 신념체계라고 볼 수 있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 속담에 내포된 심리적 특성을 “한 국가의 기질과 정신은 속담에 의해 발견된다”라고 하였듯이 속담에는 민족의 마음이 반영되고 민중의 꿈과 슬기가 새겨져있다. 민족의 특성, 슬기, 정신을 언어화한 것이 속담이기 때문에 나는 더욱더 기대하는 속담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런데 속담을 토대로 한국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한 심리학자의 연구결과는 언어중시, 체면지향, 목전실리, 피해의식 네 가지로 정리되여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공짜는 양잿물도 마다 아니한다’, ‘나중에 꿀 한 식기 먹기보다 당장 엿 한 가락이 낫다’, ‘내일의 천자보다 오늘의 재상’ 등 속담처럼 목전실리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우리 속담에 멀리 내다보면서 장기 계획을 하는 속담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속담은 어느 짧은 시간 내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는 우리 민족 전체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왜 목전실리를 중시하고, 이런 목전실리를 중시하는 심리는 어떻게 형성되고 계속 이어졌을 가 하는 사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담은 역사성, 문화성, 사회성을 갖는 만큼 이러한 속담들이 많이 형성 된 것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 문화, 종교와 갈라놓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우리 민족의 고유의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가를 들여다보았다. 보통 우리는 민족 고유의 종교가 없다고들 한다. 종교만큼 한 집단의 의식과 문화에 영향을 많이 끼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진정 우리는 토착종교가 없었을까? 아니면 우리의 토착종교는 완전 사라져버린 걸가? 대부분의 민족이 나름의 원시종교가 있듯이 우리 민족도 토착 종교가 있었다. 샤머니즘, 무교/무속(巫教/巫俗)이 바로 우리 민족의 토착 종교였다. 다만 우리 민족 대부분은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신이라면서 저속하게 여긴다. 우리 민족 대부분의 심리 깊은 곳에는 무속적 특징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대체 무속이란 어떤 것일까? 무속은 신령이 실재하여 샤먼이라는 주술자에게 붙어 신에게 소속되고, 신으로서 행동하여 악마와 요정을 쫓고, 인간에게 복지를 가져다준다는 원시적인 민간신앙이다. 샤머니즘은 북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와 남•북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지에 분포된 하나의 원초적 종교였다. 무속은 수천 년이란 시간을 연속해오는 과정에 박해와 수난을 당하면서도 지금까지 지속되여오는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언어, 풍습 제도 등에 영향을 끼쳐왔다. 우리 민족의 흥, 노래, 춤, 술문화 등은 바로 무속의 제의 형식인 굿에서 발전하여 온 것이다. 무당의 무가, 신무 등이 오늘날의 우리의 가요, 춤으로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여준 것이다. 우리 민족의 이 원시종교는 언제부터일가? 우리 민족의 기원을 알리는 신화에 ‘단군신화’가 있다. 천제의 아들 환인이 웅녀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 단군왕검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신화이다. 그런데 ‘단군’이라는 명칭은 하늘을 뜻하는 알타이어 ‘텡그리(Tengri)’의 음에서 유래한 것이며, ‘왕검’의 ‘검’은 신령을 뜻하는 ‘캄(Kam)’의 음역을 따서 한자로 표시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즉 우리 민족 무속의 역사성을 단군신화에서부터 찾는 것이다. 무속이 문헌상에 나타난 것은 삼국시대인데 신라 2대왕 남해차차웅은 왕호이자 무칭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처럼 고대사에 있어서 무당은 부족 내지는 부족 련맹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였다. 신라시대에는 불교를 수용하면서 고대 신앙이 불교와 혼합하여 창조적인 형태로 전개 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화랑도이다. 그러다가 신라의 쇠퇴기에 사회가 불안해지자 집단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의 무속이 개인의 안전과 축복을 찾는 무격신앙으로 발전되였다. 고려시대에 들어서서 유학자들이 서서히 많아지면서 무당들이 억압을 받기 시작하였다.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극력 꺼렸기 때문에 유학자들에게 무속이 곱게 보일리 없었다. 하지만 고려 때에도 무속은 생활면에서 광범위하게 적용 되였고. 개인이 발병을 해도, 국가의 행사에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귀족의 딸 가운데에도 무당이 된 경우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유학, 그중에서도 성리학이 국시가 되면서 무속은 전례 없는 압박을 당하고 무당들은 천민계급으로 강등되고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다. 유교를 숭상하는 량반들은 무속을 빈천한 것으로 폄하하면서 멀리했다. 그렇다고 무속이 도성에서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었다. 나라에는 성수청, 활인서 등의 무청이 있었고 사제무가 기우제, 산천신제, 성황제 등을 도맡아서 하였다. 그리고 유교적 고상함으로 표방하고 있는 양반들도 정작 가문에 불행한 일들이 생기거나 하면 부인들에게 못이기는 것처럼 하면서 야밤중에 무당들을 불러다 제사를 지내고 굿을 하곤 하였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무당들이 다 도성에서 쫓겨났지만 도성 속의 무당에 대한 수요는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무속은 오늘까지 이어져왔다. 조선조 500여 년 동안의 억압과 핍박하에서도 요절하지 않고 지속되여올 수 있었던 것은 존재의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민중들이 믿고 신앙하고 위기 때마다 민중들을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으로 되였기 때문에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 문화의 핵이 무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무속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현세중심, 현실중심, 실용주의, 인간중심이라고 한다. 이햇님(1997)은 무속의 성격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첫째, 자연주의적이고 현세 중심적이다. 무속에는 초지상적인 가치나 형이상학이 없고 오직 자연 질서에 따른 생자필멸사상(生者必灭思想)과 현세에서의 가족 내지 부락 공동체의 구복(求福)과 제재(除灾)를 위한 현세 중심적 가치관과 도구적 신관이 있을 뿐이다. 민족의식•국가의식•역사의식 같은 자연적 공간을 초월하는 넓은 의미의 공동체 의식은 대단히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혈연•부락 등 일차적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좁이 의미의 공동체 의식은 비록 범위는 좁을지라도 의식의 강도는 높다. 둘째, 평화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무속에서는 선•악 같은 양극적 가치들 사이의 갈등이나 대립보다는 평화나 화해를 추구한다. 셋째, 현실 중심적이고 실용주의적이다. 무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긍정하고 그 현실에 적응하면서 최대한의 이익을 찾는다. 현세적 이익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건 실용적으로 이용한다. 우리 민족 문화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무속의 특징을 보면 왜 우리 속담들에 현실 중심적이고 실리적인 속담들이 많은지 자연 이해가 된다. 그리고 또 왜 장기성을 나타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속담이 없는지도 이해가 된다. 혈연, 마을공동체의 리익은 중시하면서 그 범위를 벗어난 민족의식, 국가의식이 결핍하였던 문화원류가 그 원인이 아닐가 싶다.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속담처럼 철저하게 즉 ‘지금’, ‘이곳’을 중시하는 현재 중심적 사고,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신도 인간의 삶을 부러워하고 인간의 조종을 받는 현세중심, 인간중심의 세계관에서 비롯되였을 것이다. 무속이 심한 박해와 핍박을 받으면서도 수천 년을 존속되여올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름대로의 존재의 이유가 있고 끈질긴 생명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문 무속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서 무속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글을 쓰면서, 사고를 하면서 느낀 점이 피해의식을 나타내는 속담이 많을 정도로 우리 민족이 피해의식의 심리가 강한 것은 자기 부정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흔히 우리 민족을 ‘한’의 민족이라고 한다. 강국들 사이에 끼여있는 지역적 특성에서 ‘한’이 맺혀 피해의식이 많아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많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문화의 핵인 무속에서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고려, 조선, 일제시대 그리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무속에 대한 부정과 폄하, 핍박으로 하여 점차 무속을 저속한 것으로, 미신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원초적인 종교를 부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부정하기 전에 이미 형성된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는 무속 의식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고, 핍박받을수록, 부정할수록 그에 대한 의지는 오히려 더 단단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을 우리의 문화의 핵이라고 하는 것을 당당하게 인정하지 못할 뿐더러 부정하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불교적으로, 유교적으로 기독교적으로 포장하면서 살아왔다. 자기에 대한 강한 부정은 내심 속 자리하고 있는 덩어리와 충돌하면서 한이 생기고 피해의식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된다. 피해의식이 생길수록 이해관계에 민감해지고, 이해관계에 민감해질수록 미래를 지향한 장기적 계획보다는 단기적 즉각 만족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자기 부정이라는 것도 우리 민족의 원초적 심리인지도 모르겠다. 민족의 시조 단군을 탄생시킨 웅녀는 곰이라는 자신을 부정하면서 인간이 되려고 하였고, 일련의 시련을 거쳐 녀자가 되였고, 환인과 혼인하여 단군 왕검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다른 종교들처럼 신에게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조종하여 인간의 행복을 만들어주고, 신도 인간세계를 부러워하는 인간중심의식, 민족•국가의식보다 더 강한 혈연의식, 그 범위를 더 좁혀보면 강한 자기애라고 할 수 있겠다. 강한 자기애와 강한 자기부정, 서로 반대되고 상충되는 이 두 의식이 강렬하게 부딪치면 어떤 심리가 만들어질까? 그러면서 어떤 특징이 보여질가? 세상을 비추기도 하고 담기도 하는 말의 일부인 속담으로부터 민족의 성격을 보았고, 심리를 보았고, 그 원류로 생각되는 것에 거슬러 올라가 보면서 우리 문화의 핵을 짚어보고 그것이 집단심리형성의 원인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나의 좁은 식견으로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새로운 과제도 남겨본다. 필자/권진홍(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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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기고
    2020-06-21
  • [역사산책] 훙커우 공원 그리고 매헌 윤봉길 ②
    ●강순화 “사람의 자유와 인류의 평등을 실현하고 세계평화를 달성하는 것이 지상(至上)의 정의이고 정의를 위하여 삶을 희생한 이를 의사(義士)라 한다. 영웅과 성인군자는 살아서 명예가 있지만 의사는 죽어서 말한다. 매헌 윤봉길(梅軒 尹奉吉)을 의사로 흠모하는 뜻이 거기에 있다.” 위의 글은 서울 양재동소재 윤봉길의사기념관 뜰에 세운“숭모비”에 새긴 비문의 첫 구절이다. 매헌 윤봉길은 겨우 24년 6개월의 짧은 삶을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가 순국하기 8개월 전에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으킨 역사적 의거로 그는 청사에 길이 빛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만민의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오만한 일본, 천장절(天長節)행사에서 폭탄공격을 받다 상해사변은 일본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끝날 무렵에 정전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의기양양한 일본군은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虹口)공원에서 그들의 소위 천장절행사를 크게 열어 승전기념을 겸한 군사적 시위를 펼치고자 획책하였다. 천장절이란 일본왕의 생일로 군국주의 일본의 우두머리들이 일본인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강요하고 그들을 전쟁마당에 끌어낼 목적으로 왕을 신격화하고 왕의 생일을 일본의 최대의 명절이자 신성한 날로 지켰던 그들의 국경일이다. 일본은 마치 1871년 프로씨야군대가 파리를 점령하고 베르사이유궁전(凡爾賽宮)에서 윌헬름 1세 독일황제 대관식을 연 것을 흉내라도 내듯이 남의 나라에서《만세 일본》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이고 오만한 행사를 펼친것이다. 당시 홍구공원안은 상해거주 일본인 1만여명, 상해 침략 일본군 1만여명, 그밖에 각국 사절과 각계 초청자 등 2만여명 인파가 회집하여 성황을 이루고있었다. 여기에 한국의 청년 윤봉길이 일본 국기를 들고 도시락과 물통을 메고 잠입한 것이다. 일본군은 오전 10시부터 분열식과 사열식을 마치고 기념식을 시작하였다. 높은 단위에 상해파견군 총사령관 시라가와 요시노리(白川義則)대장을 비롯한 고관들이 도열하고 그 오른쪽에 도모노(友野) 거류민단 서기장이 닭벼슬모자를 쓰고 사회를 봤다. 식이 시작되고 오전 11시 40분쯤 되여 윤봉길은 성난 사자처럼 뛰어나가 지니고 있던 도사락을 던졌다. 중국군 병공장(兵工廠)에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중국 귀주의 륙군강무학교를 졸업한 독립운동가)이 만든 폭탄은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을 내며 작렬하였다. 단상에서 기고만장하게 서있던 원흉들이 엎어지며 연단 아래로 쓰러졌다. 제국주의가 쓰러지는 모습이었다. 축하객으로 참석했던 한 쏘련 인이 촬영한 현장필림을 보니 일본뿐아니라 세계 제국주의가 무너지는 모습 같았다. 이때 상해파견군 사령관 시라가와 요시노리대장과 상해의 일본거류민단장 가와바다(河端定差) 등은 즉사하고 일본 제3함대 해군사령관 노무라 기찌사부로(野村吉三郞)중장, 제9사단장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 등 나머지 놈들도 눈과 다리를 잃었다. 당시 주중(駐中) 일본공사였던 시게마쯔(重光葵)는 왼다리를 잃은 채 13년 뒤인 1945년 9월 2일 패전 일본의 외무대신으로 미주리함에서 항복문서에 조인했다. 윤봉길은 거사후 군 경찰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쓰러졌다. 주먹질, 발길질, 몽둥이가 그의 몸으로 퍼부었다. 그가 입고 있은 회색정장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몸의 형태는 알아볼수 없게 되여 땅바닥에 쓰러졌는데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군경들은 경계선을 치고 그를 감시하다가 이윽고 차가 와서 머리와 다리를 집어 들어 짐짝처럼 차 뒷좌석에 처넣었다. 윤봉길의사의 최후를 기록한 일본 륙군성 극비문서 만밀대일지(滿密大日記)에는 이렇게 기록되여있다. 4월 29일 상해에서 시라가와 군사령관 등에게 폭탄을 던져 상해파견군 군법회의에서 5월 25일 살인, 살인미수, 상해, 폭발물 단속벌칙위반으로 사형이 선고된 범인 윤봉길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가나자와(金澤)시 교외 육군 공병작업장내의 서북쪽 골짜기에서 제9사단 군법회의 검찰관 겸 육군 감옥장 네모토 소타로의 지휘하에 사형이 집행되였다. 사형집행이 끝나자 유해(遺骸)를 씻고 납관(納棺)한 다음에 가나자와시 공동묘지의 서쪽에 깊이 약 6척을 파서 매장하여 오전 10시 30분 모두 종료되었음. 처형 직전의 윤봉길의사:“사형은 미리 각오한 것이니 지금에 임하여 아무것도 해야 할 말이 없다.” 일본어로 하는 말이 명료하고 미소를 짓는 등 그 태도가 극히 담력이 굳세고 침착하였다. (일본 헌병사령관 보고서) 꼭 실현되고야말 대한독립 “아직은 우리가 힘이 약하여 외세의 지배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세계대세에 의하여 나라의 독립은 멀지 않아 꼭 실현되리라 믿어마지않으며 대한 남아로서 할 일을 하고 미련 없이 떠나가오.” 이는 1932년 12월 19일 윤의사의 희생직전 마지막 유언 이였다. 중국 연안에서 조선의용군으로 활략하던 김학철씨는 그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동기는 바로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 의거에 충격을 받아서였다고 하였다. 홍구공원의 정의로운 죽음은 우리 계레의 갈 길을 밝혀주었을뿐아니라 당시 중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커다란 자극과 공명을 남겼다. 이 쾌거로 인하여 수괴를 잃은 일제는 기세가 크게 꺾기여 급진적침략행보를 늦추지 않을 수 없었으며 중국은 민족적 자각의 계기로 삼아 일제침략에 대처할 준비를 서두름과 동시에 한국을 동반자로 재인식하게 되였다. 또한 전 세계가 베르사이유(凡爾賽) 체제의 무력함을 인식하고 피압박민족의 해방 없이는 세계평화를 기대할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였다. 림시정부와 광복군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도 시작되었고 독립을 기다리다 지친 세계 모든 약소민족의 가슴에 확고한 신념과 희망을 심어주게 되었다. 일제가 윤봉길의사를 가두고 처형하여 땅에 매장해도 윤봉길의사의 기개는 싹이 트고 일제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만한 폭발적이고 값진 민족의 에너지로 작동 되였다. 윤의사의 의거는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새롭게 한 통쾌한“독립전쟁”의 한 장면 이였으며 민족자존을 세계만방에 선양하는 계기가 되였음도 당연한 리치였다. 당시 세계 언론들은 이를 일제히 보도하였고 그 정의의 기록은 지금도 역사속에서 살아숨쉬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할빈 의거와 더불어 한국독립운동사상 2대 쾌거인 상해의거가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을“백범일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이 의거로 말미암아 한인들에 대한 중국인의 감정은 놀랄 만큼 호전되었다. 특히 이 의거를 계기로 중국 국민당정부는 임시정부에 대한 물심 양면으로의 협력과 원조를 베풀기로 다짐했다. 둘째, 이 거사로 말미암아 미국, 하와이, 메히코, 쿠바 등에 사는 한인교포들의 애국열정은 전무후 무했으리만큼 높아졌고 그리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납세와 백범에 대한 후원이 격증했다. 초대부통령을 지낸 성재 이시영(省齋 李始榮)도 조국광복 이후 출판한“도왜실기”에서 상해의거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우리가 조국을 되찾고 조국 땅을 밟게 된 것이 모두가 윤의사의 덕이요. 우리 임시정부와 윤의사를 비겨서 말하자면 갓 난 어린이가 깊은 연못에 빠져서 금방 가라앉는 위급한 찰나에 윤의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물속에 뛰어들어 이 어린이를 번쩍 건져 구해놓았소. 이 어린이가 자라서 오늘 삼천리강산을 달리고있는 것이요. 조국독립투쟁이 우로부터의 부과된 의무조항이 아니라 밑으로부터 광범위하게 솟아오르는 민중의식의 일환이기에 윤봉길의사의 쾌거는 결코 일회적 투쟁의 뜻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항일투사의 출현과 열렬한 투쟁의 지속과 확산을 예고하는 것이였다. 윤의사의 의거이후 중국 국민당은 적극적인 지원책을 모색하여 김구와 장개석은 중앙육군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의 후신)에서 영수회담을 갖고 군사교육에 관한 지원을 협의했다. 어쨌든 한국독립군의 본격적 편성을 위해 독립군장교양성에 착수했다는 것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획기적인 일이였다. 이 획기적 조치가 마련된 촉매제는 바로 홍구공원 의거이며 그 주인공은 윤봉길의사였던 것이다.” 김구-장개석 회담의 산물로 낙양군관학교에 한인반을 설치하여 광복군조직의 기간요원 확보책이 마련된 이후 중국대륙에서의 독립운동은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였다. 그것은 전적으로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가 직접적 도화선이 된 것이다. 상해의거로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이 주로 하게 되였다. 한인애국단의 윤봉길의사의 의거로 20년대 이후 침체상태에 있던 임시정부의 기능을 회복하는 작용을 하였다. 그후 중국정부의 지원이나 동포들의 지원도 모두 한인애국단의 김구를 통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게 되여 자연 임시정부는 한인애국단이 주도하게 되었다. 임시정부의 기반은 굳어졌고 체제가 강화되었다. 독립 운동가는 모두 살신성인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의열투쟁자(義士)처럼 죽음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윤봉길의사의 길은 그래도 죽음의 길이다. 그 죽음의 길에서 보여준 윤봉길의사의 용기와 여유, 그야말로 순결무구한 애국애족의 정신과 태도는 누구보다 먼저 독립운동자 모두가 따라 배웠다. 윤봉길의사는 무식하거나 천박한 청년이 아니므로 그의 상해의거는 충동적이거나 감상적 행동에 의한것이 아니였다. 그는 식민지하 청년의 역사의식이 투철하였고 배웠기에 자유 아니면 죽음을 택한다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윤의사의 활동은 일제가 지적하는 것처럼 단순한 테러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임시정부에 의한 의열투쟁의 일환이였다. 이와 같이 임시정부의 기반이 굳어짐에 따라 임시정부가 초기처럼 전체 독립운동계의 주심적위치를 회복한 점이다. 임시정부는 상해의거를 계기로 만주와 미주 동포사회의 독립운동을 포용 통일하게 되여 그 수립초기처럼 독립운동의 구심체 또는 통합기능을 회복하였고 특히 미주지방의 동포들은 초기처럼 다시 임시정부에 재정지원활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한중연합 항일운동전선을 구축하는 계기가 되였다. 완바오산 사건 등으로 한중민족감정이 소원하던 무렵이고 더우기 상해사변 등으로 중국인의 배일감정이 팽배한 시점에서 윤의사의 의거로 한중연합전선이 형성되었다. 상해의거 직후 각 신문에서는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중국청년의 행동이라고 잘못 보도하였는데 김구의 성명서가 발표된 뒤에야 전 세계가 진상을 알게 되였다. 각 신문에서 중국청년이라고 오보할 만큼 상해전쟁 뒤 중국국민의 항일감정이 치솟아있었던 것이다. 동북의 땅(만주)을 빼앗기고 또 상해에서 굴욕을 당한 중국이였다. 그런데 상해의거 후 장개석정부와 중국국민은 일변하여 장개석이 김구를 초청하여 양자 단독회담이 이루어질 정도로 중국정부와 중국국민은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하게 되였고 그들의 군관학교 낙양분교에 한인특별반을 설치해주기까지 하였다. 임시정부가 중국에 있으면서 그들의 지원이 없이 활동할 수 있는 일은 아니였다. 물론 그들도 일제의 침략을 받고있었으니 당연한 것으로 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를 통하여 장개석을 비롯한 그의 정부가 한국 임시정부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상해의거는 국제적으로 전례 없는 외교적 효과를 올렸다. 상해의거는 전 세계의 각광을 받은 것이 사실이고 그 충격적인 사건에 전 세계가 놀랐다. 임시정부 수립후 어느 외교활동보다도 한국인의 독립항쟁이 한낱 감상적구호가 아니라는 점을 명백하게 입증하고 과시한 것이 상해의거였으니 그 외교적 성과는 가히 짐작될 것이다. 세계 모든 신문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를 다루었고 오랫동안 친일노선을 택하던 영국에서도“런던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이 일본을 규탄하였다. 상해의거는 한국민족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의거이후의 항일독립투쟁은 비밀결사적인 투쟁이 지닌 의의를 계승함과 동시에 그것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여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후일의 한국광복군 성립으로 이어졌고 군관양성에 주력하여 한국독립운동은 다시 무력항쟁의 실마리를 풀기에 이르렀다. 이 무렵 임시정부에서는 윤봉길의사의 상해의거내막을 기록한 소책자를 만들어 각국 역사관과 단체에 배포하였다. 이 소책자의 표지에는 김오연이라는 사람이 두동강난 일본도(日本刀)를 그려놓아 통쾌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더욱 통쾌하고 신선한 반응은 국민당정부의 장개석의 언급이였다.“중국의 백만대군이 해내지 못한 일을 윤봉길의사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놓았다.” 중국인들의 감정과 감탄을 너무나 잘 집약해서 표현한 말이였다. 윤봉길의사의 홍구공원의거가 한 의혈남아의 의협적테러가 아니라 일본에 대한 독립전쟁을 수행하는 한국인들의 의지를 단적으로 표상하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1946년 6월 30일, 윤봉길의사에게 해방 후 첫 국민장이 엄수 되였고 서울 효창공원에 그의 유해가 안장 되였다. 1962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 되였고 1988년“상해인민혁명사화책”에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윤의사를 크게 소개하였다. 맺 음 말 민족의 독립을 갈구하는 시대상황과 관련하여 역사적 인물을 평가한다면 매헌 윤봉길이 걸어간 역사의 길은 항일독립투사의 길이였다고 감히 결론 짓고 싶다. 사람과 사회, 사람과 시대를 매개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시대정신일진대 윤봉길의사의 행위와 발자취는 역사의 발전방향에 크게 이바지한 것이었다. 매헌 윤봉길은 일신의 안일과 가족의 평안을 돌보지 않고, 일생을 항일독립운동가로서 일관하였다. 매헌은 멸사봉공의 원칙을 벗어난 일이 없었고 평생을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헌신하였다는 점이다. 지적방황과 고뇌와 충절의 길을 걸어온 의사의 신념과 행동을 관통하는 기본적전제가 애국충절이였다. 매헌의 고결한 일생은 개인의 영광이라기보다는 조국광복의 정의를 위해,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더 나아가 자라나는 후손들을 위해 영원한 귀감이 아닐 수 없다. 매헌 윤봉길은 조국광복의 순교자이기에 앞서 농촌부흥운동의 선구자였다. 매헌은 선각적지식인이요, 동시대인을 뛰어넘는 식견과 신조를 지닌 인격자요, 양심가였다. 그는 농촌을 배우기 위하여 살고 농민을 살리기 위하여 배웠다. 매헌 윤봉길은 입으로만 독립을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불의를 철저히 거부하는 비타협주의와 민족의 독립을 찾고야말겠다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지녔다. 즉 매헌은 양심과 행동을 겸비한 항일독립운동가였으며 정녕“민족정기의 화신이며 행동적지성의 본보기이며 구국애족의 영원한 사표”였다. 윤봉길의사의 생애를 둘러싼 자기희생과 처형의 비장성(悲狀性)은 한민족의 숙명 또는 한반도의 상황이 지닌 독특한 비극성(悲劇性)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에 윤봉길의사의 정신은 언제나 구국의 길이자 통일의 길임을 굳게 믿기에 윤의사의 충의 혼을 기려 민족정기 함양의 산 교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요약하면 윤봉길의사는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보아 한 가닥의 부끄러움이 없는 길을 걸어 소신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단 한 번도 한 일이 없거니와 추호도 량심의 가책을 받을 일이 없었다. 그는 식민지 민중의 사표요, 한국독립운동사의 화신이며 조국광복의 초석인 것이다. 나라와 민족독립의 틀과 뼈를 세운 열사였다고 하겠다. 어두운 역사의 하늘에 한때 찬란하게 수놓은 광망(光芒)의 상해의거를 감행한 윤봉길의사의 생애는 너무나 짧았다. 그러나 그가 이룩한 장거가 한민족독립운동의 기관차 역할을 하였고 그 우에 대한민국이 섰다. 이렇게 보면 의사는 결코 죽지 않았다. 의사는 이 땅의 역사, 이 땅의 민중과 더불어 늘 푸르게 살아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조국광복의 밑거름이였고 조국광복의 홰불을 들었던 의사가 오늘날에도 길이 추모되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 오피니언
    • 기획/연재
    2020-06-14

외국인· 출입국 검색결과

  • 일본, 외국인 유학생 취업비자 대폭 완화
    [동포투데이] 일본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이 일본 취업에 필요한 재류자격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에서 실시한다. 3년 연속 유학생이어야 하는 요건을 완화하고 최근 1년체류한 유학생이라도 승인하기로 했다.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국가지정기술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일본에서 학부와 무관한 일을 할 수 있으며, 이 새로운 조치로 연간 3,000명의 유학생이 취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를 시범으로 일본은 외국인 유학생의 취업 환경 조성과 인재 유지를 촉진하기 위해 국가 전략 특구인 기타큐슈시에서 파일럿 테스트를 실시하여 전국 확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학생의 최근 상황을 추적하고 불법 체류를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요구 사항에는 외국인 유학생에 대한 면접 및 기타 심사, 졸업 후 정기적인 면접, 취업 중단 시 본국으로의 귀국을 위한 적절한 안내 등이 포함된다. 현재 일본에 취업하고자 하는 해외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일본어 학교에 재학할 경우 유학을 위한 재류자격으로 일본에 남아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채 졸업한 경우 일본에서 계속 구직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자격을 '특정 활동'으로 변경해야 합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약 75%가 일본 취업 희망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전문학교 졸업생은 더 이상 전공에 맞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유연하게 더 다양한 업종에서 일할 수 있다. 현지 체류 및 활동에 종사하는 재류자격을 개정해 전문학교에 재학 중인 외국인 졸업생이 일본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개정 이후 일본에 취업한 유학생이 연간 약 3,000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의 출생아 수는 2023년에 최저치를 기록해 80만명 이상 자연감소했다. 일본학생지원기구의 2021년 외국인 유학생 조사에서는 약 2,000명의 전문학교 학생 중 약 75%가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재계와 교육계에서는 일부 유학생이 일정 수준의 전문적 수준과 일본어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 제한으로 인해 강제로 일본을 떠나게 된 점을 지적하고정부에 개선을 요청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4-03-02
  • 中,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주한 중국대사관은 2월 18일부터 주한 중국대사관 및 영사관은 한국인의 중국행 비즈니스,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고 72/144시간 무비자 체류 제한을 해제한다고 15일 발표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 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이 조치는 원래 1월 말까지였으나 2월 말까지 연장되었다. 10일 한국 정부가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40일 만에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다시 풀리게 됐다. 한국 측의 조치에 대응하여 주한 중국대사관은 1월 10일, 한국 주재 중국 영사관은 오늘부터 한국인의 중국 방문, 비즈니스, 관광, 의료,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5
  • 中 외교부 " 한국인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 적극 검토"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 재개를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내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중국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마오 대변인은 "한국 측의 대중 비자 제한 조치 해제가 양국 인적 왕래 장벽을 줄이기 위한 올바른 발걸음"이라고 화답했다. 마오 대변인은 "중국은 한국인의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대등하게 재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한국 측이 중국과 함께 양국의 정상적 교류가 더욱 원활히 이뤄지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2일부터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했다. 당초 1월 말까지였던 이 조치는 2월 말까지 연장됐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월 1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는 중국인의 한국행 단기비자가 40일 만에 풀리는 것으로 된다. 한국의 조치에 대응해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영사관은 이제부터 한국인을 대상으로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잠정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인 11일, 중국 국가이민관리국도 소수국가에서 중국인에 대한 차별적 입국 제한 조치가 시행됨에 따라 국가이민관리국은 이날부터 한국인에 대해 단기비자 발급과 중국 내 72/144시간 무비자 경유 정책을 중단한다고 공고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재개
    [동포투데이] 내일(11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이 재개된다. 정부는 1월 2일부터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며, 이 조치는 당초 1월 말까지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이후 2월 말까지 한 달 연장되었다. 앞서 복수의 국내 언론은 방역·보건부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정부는 조만간 중국발 단기비자 발급 중단을 해제하고 중국발 입국자에 대한 사전 검사 및 현장 검사 조치는 유지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지난달 10일, 주한 중국대사관은 주한 중국영사관은 한국인의, 비즈니스, 관광, 의료, 경유 및 일반 개인 사무에 대한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은 관련 국가들이 사실에 입각해 과학적이고 적절한 방역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기회를 틈타 정치적인 농간을 부려서는 안 되며 차별적인 조치를 취해서도 안 되고 국가 간 정상적인 인적 왕래와 교류 협력에 영향을 미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3-02-10
  • 법무부,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3,865명 적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는 10월 11일부터 2개월간 코로나19 확산 이후 잠정 중단되었던 관계부처 정부합동단속을 재개하여 불법체류 외국인 3,865명, 불법 고용주 466명, 불법취업 알선자 17명 등 총 4,348명을 적발했다고 14일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번 정부합동단속은 유흥․마사지업소 등 사회적 폐해가 큰 분야와 택배․배달 대행 등 국민의 일자리 잠식 업종에 대해 중점적으로 실시됐으며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총 3,865명을 적발하였다. 이 중 3,074명은 강제퇴거명령, 207명은 출국명령, 170명은 범칙금 처분의 조치를 하였으며 나머지는 조사중에 있다. 국적별로는 태국 1,441명, 베트남 814명, 중국 587명, 몽골 165명, 우즈베키스탄 126명, 카자흐스탄 119명, 러시아 109명, 필리핀 85명, 기타 419명이다. 아울러 법무부는 불법고용주 총 466명과 불법취업 알선자 17명을 적발하여 범칙금 등을 부과하였으며 그 중 단속을 거부하거나 불법취업을 알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단속하는 등 엄정히 대처하여 1명 구속, 38명 불구속 수사하였다. 또한 법무부는 이번 정부합동단속과 병행하여 범칙금 면제 및 입국규제를 유예하는 자진출국유도 제도를 시행하여 10월 11일부터 12월 10일까지 불법체류 외국인 7,378명이 자진 출국하도록 하였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는 유연성 있는 이민․출입국정책의 전제는 일관성 있고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이므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불법체류 단속 체계를 가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2-12-14
  • 법무부,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 재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법무부는 5일 코로나19 확산 이후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한 방역 점검에 중점을 두어 왔으나, 최근 불법체류 외국인이 다시 증가함에 따라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을 위해 관계부처와 함께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번 정부합동단속은 10월 11일부터 ~ 12월 10일까지 2개월간 법무부 주관으로 경찰청,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경찰청 등 5개 부처가 택배․배달대행 등 국민의 일자리 잠식 업종과 유흥업소, 외국인 마약범죄 등 사회적 폐해가 큰 분야에 대한 집중단속을 실시한다. 법무부는 이번 정부합동단속 시 정당한 이유 없이 단속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영장을 발급받아 단속을 실시하는 등 적극 대처하고, 단속과정에서 적법절차 준수와 안전사고 예방, 외국인 인권보호에도 철저를 기하기로 했다. 또한 단속에 적발된 불법체류 외국인에 대해서는 강제퇴거 조치가 이루어지고, 일정기간 입국을 금지한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유연한 외국인 정책의 전제는 ‘엄정한 체류질서 확립’이므로, 엄정하고 일관성 있는 불법체류 단속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앞으로도 관계부처와 긴밀히 협력하여 불법체류․취업 외국인에 대하여 엄정 대응함으로써 외국인 체류질서를 확립해 나갈 방침이다.
    • 외국인· 출입국
    2022-10-11
  • 일본, 외국인 연구원 및 유학생 입국심사 강화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13일 니혼케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외국인 연구원과 유학생에 대한 입국 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일본 체류에 필요한 증빙서류에는 해외여행 이력, 일본체류 중 자금출처 등 내용이 포함된다. 이는 해당 인원이 일본에 입국하기 전 중요한 연구 성과나 기술을 해외로 반출할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보도에 따르면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기업과 대학이 지방 출입국관리소에 신청하는 '재류자격인정증명서'에 관련 심사항목이 추가됐다. 연구 또는 유학 자격을 취득한 모든 외국인은 이 서류를 제출해야 하며, 서류에 기입해야 할 항목은 일본 입국 목적, 일본 내 거주지 등이다. 엄격한 심사는 지난해부터 시작됐으며 민감한 정보를 가진 인사들을 대상으로 했다. 여행 이력 및 자금 출처뿐만 아니라 과거에 발표된 논문이나 본국에서의 직장 및 생활 경험도 작성해야 한다. 앞서 일본 정부는 코로나19를 국경 밖에서 차단하기 위해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바 있다. 2021년 일본에 입국하는 외국인은 약 15만 명이며 이 중 체류자격으로 입국하는 연구자는 89명에 불과하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관련 조치의 적용 범위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일본 정부는 올해 6월 1일 일본에 입국할 수 있는 일일 한도를 2만 명으로 상향 조정했고 이에 따라 해외 연구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며, 신고 조치의 범위도 더 넓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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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3
  • 법무부, 우크라이나 동포·가족 사증 발급절차 간소화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법무부(장관 박범계)는 외교부와 협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현지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재외공관 관할구역에 상관없이 우크라이나 동포 등의 사증 신청서류를 대폭 간소화하여 신속히 입국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결핵진단서, 한국어능력 입증서류 등 제출서류 간소화 및 사증발급 수수료가 면제된다. 이번 조치는 우크라이나 동포(우크라이나에 장기거주하다가 피난 중인 동포 포함)와 가족 및 국내 장기체류자 중 현행 규정 상 가족초청이 가능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코로나 19 방역 지침에 따라 잠정적으로 발급이 중단되었던 비자를 일부 재개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법무부는 우크라이나 현지 정세가 안정화될 때까지 우크라이나 동포 및 가족 그리고 과거 동포방문(C-3), 방문취업(H-2), 재외동포(F-4), 동반가족(F-1) 자격으로 입국한 적이 있는 동포에 한해서 동포 입증서류 없이 과거와 동일 자격으로 사증을 발급하며 여권 또는 신분증 등으로 동포임이 입증된 사람 및 가족은 세대별 입증서류 없이 단기사증(C-3)을 발급받을 수 있다. 이 밖에 결혼이민자 등 국내 장기체류 중인 우크라이나인의 가족을 입증하는 경우 조건에 따라 사증 발급 가능하다. 단, 입국금지 및 사증발급 금지 대상자는 이번 조치에서 제외된다. 박범계 장관은 “이번 사태로 국내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현지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안타깝다”며, “더 이상의 무고한 희생자 없이 전쟁이 종식되어 국내외 동포와 가족 모두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2-03-09
  • 법무부, 외국인정책 전문가 간담회 개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외국인 정책 전문가들과 만나 외국인 정책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법무부는 6일 학회(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장, 윤인진 한국이민학회장, 최승범 한국이민행정학회장) 전문가들과 함께 현(現) 외국인정책을 성찰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고민해야 할 정책들을 검토·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날 전문가들은 ▲외국인정책에 대한 국민 공감대 형성▲부처 간 데이터망 연계, 이민·통합기금 설치 등 인프라 강화▲ 외국인정책 총괄 기구 신설▲결혼이민자 이외 모든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외국인정책 추진을 건의했다. 박 장관은 한국 사회는 이주민과 공존 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이르렀고,국민과 외국인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포용과 공존의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면서 "이를 위해서는 국민 공감과 국민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다양한 분야의 의견과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이민정책 간담회 및 포럼등을 통하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이민정책의 현실과 정책적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국민이 공감하는 미래 지향적 이민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5-07
  • 법무부, 전자여행허가제(K-ETA) 내달 3일부터 시범 운영
    [동포투데이] 법무부는 한국에 무사증으로 입국이 가능했던 국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출발 전 미리 여행 허가를 받는 대한민국 전자여행허가제도(K-ETA)를 다음 달 3일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K-ETA는 미국의 ESTA 제도와 같이 한국에 무사증으로 입국이 가능한 112개 국가의 국민을 대상으로 출발 전에 개인 및 여행 관련 정보를 입력한 뒤 여행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대상은 무사증 한국 입국이 가능했던 112개 국가 국민이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종료 시까지는 미국·영국 등 4월 현재 무사증 입국이 가능한 국가(21개) 국민 및 무사증 입국이 잠정 정지된 국가(91개) 국민 중 ‘기업인 등 우선 입국 대상자’를 대상으로 우선 시행한다. 우선 입국 대상자는 기존의 재외공관을 통환 사증 발급과 K-ETA 신청을 병행해야 한다. 가족 단위나 단체 여행객은 대표자가 최대 30명까지 신청할 수 있다. K-ETA 허가 여부는 신청인 메일로 자동 통보된다. 수수료는 1인당 1만 원 상당이며 한 번 허가를 받으면 2년간 유효하다. 유효 기간 내 반복 사용도 가능하고, 입국신고서 작성도 면제된다. 법무부는 4개월 간 시범 운영 후 오는 9월 1일부터 K-ETA를 본격 시행할 예정이다. 시범 운영 기간 동안 K-ETA 신청은 의무가 아니며 수수료가 면제 및 2년 유효의 K-ETA 허가서 발급 등 혜택이 제공된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K-ETA 허가를 받은 경우 사전 신청 정보를 기반으로 입국신고서 제출을 생략하고, 도착 전에 신속심사 대상과 정밀심사 대상으로 분류해 대상에 따른 맞춤형 심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며 “출입국자의 약 52%를 차지하는 무사증입국 외국인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해져 안전한 국경관리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 외국인· 출입국
    2021-04-29

연예·방송 검색결과

  • 태국 탑스타 뮤 수파싯, 한-태 합작 드라마 '사랑은 고양이처럼' 주인공으로 캐스팅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태국 아티스트 뮤 수파싯이 한국과 태국의 합작 BL드라마 <사랑은 고양이처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었다. 배우이자 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뮤 수파싯은 태국뿐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글로벌 아티스트다. 특히 태국 아티스트 최초로 한국의 매거진과 전광판 광고로 얼굴을 알렸고, 국내에서도 탄탄한 팬덤을 보유한 만큼 내한당시 그의 입국을 반기는 수많은 팬들이 새벽부터 몰려 큰 화제가 되었다. 뮤는 이번 드라마에서 어릴적 트라우마로 동물을 피하는 인기스타 '피우노' 역할을 맡았고, 우노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애견유치원 원장 '대별' 역은 보이그룹 저스트비(JUST B) 의 멤버 JM(추지민) 이 맡아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태국가수로는 최초로 빌보드 ‘월드 디지털 송 세일즈’(World Digital Song Sales) 차트 톱10에 5곡이나 랭크되며 가수로서도 놀라운 행보를 보이는 그는 가수 샘김, 범키와의 콜라보 등 국내 활동에도 본격적인 시동을 걸고 있어 이번 드라마 출연에 전세계 팬들의 기대가 쏟아지고 있다. 태국을 넘어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뮤 수파싯의 첫 한국 드라마 진출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사랑은 고양이처럼> 은 '피치 오브 타임(peach of time)' , ' 기이한 로맨스(eccentric romance)' 에 이은 한양제작소(주)의 세번째 한태 합작드라마이며 스튜디오 스카이가 공동제작한다.
    • 연예·방송
    2022-07-22
  • 제17회 미중영화제 및 TV 축제 미국 로스앤젤레스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샌 가브리엘 쉐라톤 호텔에서 제17회 미중 영화제 및 TV축제가 개막한 가운데 수백 명의 미중 영화인과 정부관리 등이 온·오프라인으로 참석했다. 이번 영화제와 TV 축제에는 모두 600편이 넘는 출품작이 접수됐다. 중국 장이머우(张艺谋) 감독의 영화 ‘벼랑 위(悬崖之上)’와 류웨이창(刘越昌) 감독의 영화 ‘중국의사’가 각각 개막식과 폐막식 영화에 선정됐으며 ‘각성의 연대’ 등 10편의 중국 드라마가 ‘골든엔젤상(金天使奖)’을 수상했다. 그리고 ‘스피드와 파워 나인’, ‘고스라 워즈 킹콩’, ‘통제 불능의 플레이어’ 등이 중국 관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미국 영화로 꼽혔다. 이날 장핑(張平) 주 로스앤젤레스 중국 총영사는 개막식에 참석해 “영상 교류와 협력은 중미 인문교류의 중요한 내용”이라며 “비록 코로나19의 발생이 많은 어려움을 가져왔지만 양국 영화계의 협력은 여전히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중미 영화인들은 양국 영화제와 TV 축제라는 플랫폼을 더욱 잘 활용해 양국 인민의 상호 이해와 친목을 증진시키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미중 영화제 및 미중 TV 축제 의장인 쑤옌타오(苏彦韬) 미국 잉룽미디어(鹰龙传媒) 회장은 “중미 영화제와 TV 축제는 양국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번 연도 문화교류는 영상교류 강화를 통해 양국의 인문교류와 민간친선을 심화발전시킬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자오메이신 미 연방 하원의원은 영상 인사말에서 “미중 영화제와 TV 축제를 통해 미국 시청자들에게 중국 영화를 더 많이 선사했으며 이는 양국의 문화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번 영화제와 TV 축제 기간 행사조직위는 미중 주류 영화·방송 기관을 초청해 공동으로 영화·방송 협력 정상 포럼을 개최하게 되며 ‘코로나19 후기에 들어 미중 영상 협력의 기회와 도전 등을 주제로 교류하게 된다. 그리고 100개가 넘는 미국 영화업체가 영상 ‘클라우드 시장’에 입주해 협업을 상담하게 된다.
    • 연예·방송
    2021-11-07

스포츠 검색결과

  • 中, 귀화 선수 4명 대표팀 소집...축구팬 “늦었지만 다행”
    [동포투데이] 새로 부임한 이반코비치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대표팀의 최근 훈련 명단에 귀화 선수 4명을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중국 축구팬들의 관심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둬, 엘케손, 리커, 장광타이 등 4명의 귀화 선수가 포함된 이번 명단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귀화 정책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결정이다. 중국의 한 축구 블로그는 귀화 선수를 한 명만 기용했던 이전 관행과 비교하면 이번 4명의 귀화 선수 소집은 대표팀 역사상 처음이며 새로운 시대에 중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화 전략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분명히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평가했다. 오랫동안 중국 축구의 발전을 지켜본 팬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의심할 여지없이 흥미진진한 일이다. 지난 4년 동안 귀화 선수들은 축구 대표팀에서 보수적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중국 축구 발전을 위한 중요한 기회를 놓친 것으로 간주했다. 특히 얀코비치 감독 시절에는 엘케손과 페르난둬 같은 수준급 귀화 선수들조차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고, 부패혐의로 구속된 전 중국 대표팀 감독 리톄와 전 중국축구협회 회장 천쉬위안 시절에는 귀화 선수의 활용이 더욱 제한적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 대규모 귀화 선수 영입은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중국축구협회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엘케손과 페르난둬의 복귀, 특히 페르난둬의 부활은 대표팀에 새로운 활력과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리커와 장광타이의 귀화도 대표팀의 기술적인 측면과 전술적 다양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 축구가 지난 4년간의 보수적 전략에서 벗어나 귀화 선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을 재개한 것으로 널리 읽힌다. 아울러 대표팀이 새로운 감독과 코칭 스태프의 지도 하에 돌파구를 찾고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는 신호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표팀의 이번 소집명단 발표는 귀화 선수 전략의 중대한 조정일뿐만 아니라 중국 축구가 더 높은 수준의 경기 성과를 추구하는 중요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향후 대표팀의 경기가 전개됨에 따라 이들 귀화 선수들의 경기력과 그들이 팀의 전술 시스템에 어떻게 융합되는지가 모든 중국 축구 팬들의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또한 이러한 전략 변화는 중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 스포츠
    2024-03-12
  • ‘홍콩 노쇼’ 메시 “다치진 않았지만 불편했다”
    [동포투데이] 아르헨티나 스타 메시의 홍콩 친선경기 불참으로 많은 팬들과 홍콩 각계 인사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 메시는 6일 인터 마이애미 일본 투어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다치진 않았지만 불편했다"며 "다시 홍콩에서 뛸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싶다"고 화답했다. 메시는 스페인어로 "정말 운이 없었다. 사타구니를 다쳤다. MRI 검사 결과 부상은 없었지만 여전히 매우 불편했다"고 밝혔다. 메시는 “홍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왔고 뛰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상황이 어려워졌다. 또 한 번 홍콩에서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메시는 2월 4일 인터 마이애미의 홍콩 올스타 팀과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팬들은 불만을 표시했고, 경기는 야유로 끝났다. 홍콩 특구 정부는 메시의 불참에 대해 '극도의 실망'을 표명하는 성명을 두 차례나 발표했다. 존 리(李家超) 홍콩 특구 행정장관은 6일 “메시가 대중의 기대만큼 참가하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며 “홍콩 특구 정부는 여전히 주최 측에 사건 설명을 제대로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 마이애미는 2월 7일 빗셀 고베와 친선경기를 펼친다. 메시는 기자회견에서 뛸 수 있느냐는 질문에 "며칠 전보다 몸 상태가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훈련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달려 있다. 아직 경기에 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훨씬 나아진 느낌이다"라고 답했다. 홍콩 특구 정부 양룬슝(楊润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6일 라디오에 출연해 메시는 홍콩이 아닌 일본에서 뛸 수 있다며 "여러분 모두가 당연히 불쾌하고 불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 스포츠
    2024-02-06
  • 메시, 경기 전 기자회견 홀로 참석 "일본에서 뛸 수 있어 매우 기쁘다"
    [동포투데이] 메시는 일본행 브리핑에 참석해 개인적인 상황과 내일 경기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메시는 "개인으로서나 팀으로서 일본에 오게 돼 정말 기쁘다. 일본에 여러 번 왔는데 프리시즌 투어 마지막 경기가 좋은 경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 오게 되어 기쁘다. 나는 여기서 즐거운 여행을 하고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멋진 경기를 하고 싶고 좋은 결과를 얻어 첫 리그를 준비하고 싶다"고 밝혔다. 바르셀로나, 파리 시절 일본 방문에 대해 메시는 "열정적이고 특별한 환영을 받았고 다시 오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또 "나는 이니에스타를 알고 있다. 비셀 고베의 경기 결과도 봤고, 그들이 챔피언이고 어려운 상대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일 경기에 최선을 다해 팀에 긍정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스포츠
    2024-02-06
  • 인터 마이애미, 일본서 친선경기…네티즌, 메시 불참 우려
    [동포투데이] 아르헨티나의 스타 리오넬 메시가 홍콩 친선경기에 출전하지 않아 팬들의 분노를 샀다고 일본 iZa 뉴스가 보도했다. 미국프로축구 메이저리그 인터 마이애미 FC와 홍콩 올스타팀이 4일 오후 홍콩스타디움에서 친선경기를 가졌다. 메시가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 팬들의 불만이 컸다. iZa에 따르면 인터 마이애미는 5일 일본에 도착해 7일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비셀 고베와 친선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이런 배경에서 일본 네티즌들은 "비싼 티켓에 업무 일정을 조정하고 그의 경기를 보려고 경기장에 왔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환불을 요구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남겼다. 또한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메시의 일본전 출전 여부에 대해 우려했다. 한 네티즌은 "메시와 수아레스가 비셀 고베와의 경기에 뛸 수 있을까, 아, 티켓을 사기 위해 28,000엔을 썼는데 메시가 뛰지 않는다면 정말 우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티켓을 구매한 사람으로서 경기장에서 메시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실망할 것"이라고 적었다. 메시가 홍콩 올스타전에 출전하지 않은 데 대해 양룬슝 홍콩 문화체육관광국장은 4일 홍콩이 좋은 경기를 펼쳤지만 메시가 출전하지 않아 홍콩 정부, 팬들이 실망했다고 밝혔다. 홍콩 정부와 주최 측인 태틀러가 협력하여 체결한 스폰서십 계약에는 안전과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메시가 최소 45분 이상 뛰도록 명시되어 있다. 양룬슝은 "경기 시작 전 주최 측이 메시의 후반전 등판을 확인했지만, 후반전에 메시가 빠진 것을 발견하고 즉시 팀에 연락할 것을 주최 측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은 뒤늦게 메시가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다고 밝혔고, 홍콩 정부는 즉석에서 메시의 등판을 요구했다. 경기 종료 10분 전 주최 측이 메시의 출전 불가를 재차 확인하자 특구 정부는 메시를 찾아가 팬들에게 설명하고, 팀을 대표해 상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지만 모두 이뤄지지 않았다.
    • 스포츠
    2024-02-05
  • 메시 경기 불참, 홍콩 정부 “매우 실망스럽다” 입장 표명
    [동포투데이] 지난 일요일(2월 4일) 홍콩에서 열린 인터 마이애미 FC VS 홍콩리그 플레이어스 친선경기에서 스타 리오넬 메시가 근육 염증으로 경기에 나서지 않아 야유 속에 경기를 마쳤고, 메시의 기량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홍콩 정부는 메시의 불참에 대해 극도의 실망감을 표하며 두 차례나 성명을 발표했다. 밍파오 데일리(Ming Pao Daily), Sing Tao Daily(싱타오 데일리),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친선경기에는 3만 8천여 명의 관중이 운집했으며, 일부는 경기장 밖 언덕에 앉아 멀리서 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결국 마이애미가 홍콩 리그 플레이어스 팀을 4-1로 꺾었다. 하지만 마이애미에서 뛰고 있는 메시와 우루과이의 베테랑 루이스 수아레스는 경기에 나서지 않았다. 수아레스는 사이드 라인에서 몸을 풀기만 했고 메시는 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있었다. 팬들은 경기 시작 60분경부터 "메시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고, 야유와 함께 티켓 환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팬이 경기장 내 메시의 초상화처럼 보이는 광고판을 발로 차는 장면이 온라인 영상에 포착되기도 했다. 마이애미 마르티노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메시와 수아레스위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두 선수를 라인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마르티노 감독은 경기 전에 가능하면 메시를 기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는 성명을 내고 "메시의 불참과 관련해 가능한 한 빨리 자세한 설명과 해명을 하지 못한 것이 매우 실망스럽다"며 "이번 대회에 1500만 홍콩 달러의 매칭 그랜트와 100만 홍콩 달러의 필드 보조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팬들에게 멋진 경기와 세계 정상급 선수들의 기술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경기장 마련과 관중 관리 등 여러 조정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홍콩 정부는 또한 문화체육관광국과 주요 스포츠 행사 위원회는 메시의 불참에 따른 후원금 공제 가능성을 포함하여 계약 조항에 따라 주최 측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최 측인 태틀러도 성명을 내고 메시와 수아레스의 경기 불참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며 사전에 이들의 불참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 스포츠
    2024-02-05
  • 축구스타 메시, 홍콩 방문…이른 아침부터 팬들 몰려
    [동포투데이] 아르헨티나 축구왕 리오넬 메시가 소속팀 인터 마이애미와 함께 홍콩을 깜짝 방문했다. 하이라이트는 오늘(4일) 오후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홍콩 대표팀과의 친선경기로 많은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메시가 소속팀과 함께 홍콩을 방문해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가운데, 일부 팬들은 팀 숙소인 호텔 밖에서 메시의 역대 유니폼을 입고 메시를 보기 위해 기다리는가 하면, 축구공이나 핑크색 등번호 10번 유니폼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메시의 사인을 받을 기회를 기다리는 일부 부모들도 있었다. 한편 이날 오전 호텔에서 인터 마이애미 선수들의 비공개 사인회가 열렸고, 베이쥔치 추구협회 회장이 기자들에게 팀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보여줬다.
    • 스포츠
    2024-02-04
  • 美 언론 “구아이링, 2026년 동계올림픽에 중국 대표로 출전”
    [동포투데이] AP통신은 27일(현지시간)은 프리스타일 스키 세계챔피언 구아이링이 최근 인터뷰에서 2026년 이탈리아 동계올림픽에도 중국 대표로 계속 출전할 계획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구아일링은 이를 통해 수천 명의 중국 소녀들에게 빙설 스포츠의 잠재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더 넓은 여성 스포츠 분야에 더 큰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2024 엑스게임은 미국 콜로라도주 아스펜에서 개최되며 구아이링도 참가할 예정이다. 구아이링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프리스타일 스키와, 슬로프스타일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획득하여 한 번의 동계 올림픽에서 3개의 메달을 획득한 최초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로 되었다.
    • 스포츠
    2024-01-28
  • 호날두 선전공항 도착... 8번째 중국 방문
    [동포투데이] 1월 21일, 광둥성 선전. 리야드 승리가 탄 전세기가 선전 바오안 국제공항에 착륙하자 호날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기내에서 걸어 나왔다. 공항에는 많은 팬들 기다리고 있었고, 호날두는 팬들을 향해 중국어로 두 차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번 중국 방문 기간 리야드 승리는 1월 24일 상하이 선화, 1월 28일에는 저장과 선전 유니버시아드 스포츠센터에서 경기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날두의 중국 방문은 이번이 8번째다. 호날두는 앞서 2005년, 2007년, 2011년, 2015년, 2017~2019년 7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 스포츠
    2024-01-21
  • 구아이링, '포브스' 선정 女운동선수 수입 2위 등극
    [동포투데이] 최근 포브스(Forbes)는 2023년 스포츠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받는 여성 운동선수 순위를 발표했다. 구아이링(Gu Ailing)은 연봉 2,210만 달러로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수입은 2010만 달러로 3위에 올랐고, 올해 수입과 순위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지배하는 목록이다. 골프와 축구가 그 뒤를 이었다. 틈새 스포츠 출신의 스키어들이 이 카테고리에 포함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포브스는 2008년부터 이 (여성) 리스트를 발표해 왔는데, 1위 자리는 예외 없이 테니스 선수들이 독점해 왔다. 샤라포바는 8년 연속 1위를 차지한 뒤 2016년 세레나 윌리엄스로 교체됐다. 다음은 일본인 오사카 나오미이다. 올해 폴란드 선수 이가 시비옹테크는 2,390만 달러의 수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명단에는 구아이링을 제외한 여자 선수 상위 10명 중 9명이 테니스 선수였다. 11명에서 20명 사이에 골프와 테니스가 각각 2명씩 선정되었다. 배드민턴(신두), 농구(캔더스 파커), 체조(바일스)는 각각 1명의 선수가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이들은 모두 13위를 벗어나 있다. 테니스, 골프, 축구는 전문화된 스포츠로, 이들 스포츠에 종사하는 선수들의 대회 상금이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가 시비옹테크의 경기장 내 수입은 미화 990만 달러이고, 경기장 밖 수입은 미화 1,400만 달러이다. 틈새 스포츠에 종사하는 선수들의 경기장 내 수입은 미미하며 주로 경기장 밖에서의 후원과 상업 활동에 의존한다. 2023년 구아이링의 경기장 내 수입은 미화 10만 달러에 불과한 반면, 경기장 밖 수입은 최대 2,200만 달러에 이른다. 즉, 구아이링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업적 가치를 지닌 여자 운동선수이다. 구아이링은 독보적인 스키 천재로 프리스타일 스키점프, 슬로프스타일, U자형 종목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획득해 동계올림픽 기간 중국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구아이링은 미국을 대표할 기회를 포기하고 중국 편에 서서 중국인들의 호의를 극대화했다. 게다가 동서양 미학을 모두 갖춘 절묘한 얼굴을 갖고 있으며, 스탠포드 대학교 우등생의 모습도 갖고 있다. 이러한 요소가 그녀를 상업 브랜드의 '총아'로 만들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그녀가 광고한 브랜드 및 기타 비즈니스 제휴는 루이비통, IWC 만국표, 빅토리아 시크릿, 비자, 캐딜락 등 수많은 글로벌 브랜드를 비롯해 안타, 멍뉴, 징둥 등 국내 유명 브랜드를 망라한 22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구아이링의 모델 출연료는 연간 1500만~1600만 위안까지 치솟았다. 2022년 말 포브스가 발표한 여자 선수 수입 순위에서 2010만 달러로 3위에 올랐다. 그녀가 많은 브랜드를 광고하고 국가 차원에서 주는 보너스가 두둑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구아이링의 수입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동계 올림픽 이후 그녀의 수입이 감소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한편 그녀와 많은 브랜드의 협력은 주로 1년 계약이나 몇 개월의 단기 후원으로 올림픽 마케팅을 목표로 삼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정체성 문제로 인해 여론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다소 신중하게 행동하는 브랜드들을 외면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 스포츠
    2023-12-25
  • 열살 “김민재” FIA공식국제경기 최초 최연소 카트 챔피언 달성
    [동포투데이] 지난 10월 1일 말레이시아 세팡에서 치뤄진 아시아 퍼시픽 모터스포츠 챔피언쉽에서 기마레이싱 소속의 김민재(심석초등학교 4학년, 만10세) 선수가 KART Sprint Race Cadet Class(만 8세부터 12세)에서 챔피언에 올라 금매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한국 최초로 FIA공식국제경기에서 최연소 카트 챔피언 성적을 달성하며 국위를 선양하였다. 아시아 모터스포츠 챔피언쉽(Asia Pacific Motorsport Championship)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의 Asia-Pacific Region에서 주최하는 게임으로 18개국 APN에서 선발된 상위권 성적의 대표 171명의 선수가 5개 종목에 (eSport,AutoGymkhana,Karting,KartingSlalom,RallyTrial) 참가하여 각 종목의 아시아 태평양 챔피언을 결정하고, 순위에 따라 최종 우승 국가를 가리는 아시아올림픽의 형태로 진행 되었다. 김민재 선수는 이번 경기 1주일전 태국 BIRA 경기장에서 진행된 ROTAX ASIA Tropy경기중 후미 차량이 핸들로 올라타는 사고로 인해 손가락 부상중임에 불구하고 2일간 4번에 걸쳐 진행된 예선에서 체력적으로 우세한 11세, 12세 선수들과 치열한 경합을 통해 최종예선 3위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결승에 진출하였다. 총 12랩으로 진행되는 결승에서는 3위의 자리를 지키며 안정적으로 출발, 경기 후반부터 피치를 올리던 김민재 선수는 마지막 랩에서 3위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서며, 1위와 0.14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치열한 배틀하는 모습을 보여, 현장 관중들의 함성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국가 아시아 태평양 침피언 타이틀이 걸린 만큼 이미 한 단계 높은 주니어 클래스의 12세 선수들도 클래스를 낮추어 출전하는 등 치열한 레이스를 보여주었다. 최종 경기 결과 김민재 선수가 한국인 최초 최연소 아시아 태평양 챔피언 타이틀과 금메달을 거머쥐게 되었다. 레이스를 마치고 나온 김민재 선수는 “스타트 경합에서 타 선수의 차량과 접촉으로 손가락이 아파 왔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였으며, 레이스 후반에는 타 차량들의 경합에 동요하지 않고 가장 빠른 레코드 라인으로 결승선을 통과 하는데 집중을 하였다”고 밝히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 아시아 퍼블릭 모터스포츠는 김민재 선수의 금메달 1개로 국가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김민재 선수는 한국 포뮬러 대표팀인 이레인 모터스포트의 유경사 감독의 눈에 띄어 카트레이싱을 권유 받아 카트레이싱에 입문한지 불과 2년여 만에 국제경기에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 기마레이싱팀에서 대표드라이버로 국내외 활동을 하고 있다. 기마레이싱팀은 증평 블랙스톤 벨포레 내에 있는 벨포레 인터네셔널 모토아레나서킷(올해 10월 오픈 예정인 국제A등급의 서킷으로 가장 높은 등급의 국제경기가 가능한 서킷)의 메인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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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0

포토뉴스 검색결과

  •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 아끼고 사랑해요!”
    [동포투데이]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교장 손성호)는 제557돌 한글날(10월 9일)을 맞아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자긍심을 북돋기 위한 '한글사랑주간'을 지난 2일(월)부터 10일(화)까지 운영했다고 밝혔다. 학교는 이 행사를 통해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의 소중함을 학생들에게 마음 깊이 새기는 한편, 올바르게 우리말을 사용할 기회를 주고자 하였다. 특히 베트남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잊기 쉬운 한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한글문화를 체험하며 올바르게 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사랑주간’을 기획하였다. 학생들은 학년별 수업 시간을 통해 한글날의 의미를 배우고, 한글을 이용한 예술 작품을 제작하며 한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학년별로 ▲순우리말이 불어오는 한글사랑 부채 만들기(1학년) ▲아름다운 한글 부채 만들기(2학년) ▲하늘에 수놓은 한글 부채(3학년) ▲한글날 가치 글씨 꾸미기(4학년) ▲한글 에코백 꾸미기(5학년) ▲대한민국 글자 만들기(6학년) 등의 예술 작품 만들기를 진행했다. 참여한 학생들은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아름답고 창의적인 한글 작품을 만들어 냈다. 행사에 참여한 한 학생은 “한글을 활용한 그림 그리기 활동을 하며 우리 말이 정말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한글이 들어간 예쁜 디자인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며 한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또한 “한글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고 앞으로도 한글을 아끼고 사랑하며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손성호 교장은 “한글날을 맞아 해외에서 거주하는 우리 학생들이 한글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새롭게 깨닫고 한글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라고 운영 취지를 설명하였고, “한글날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올바르게 한글을 사용하려는 다짐과 실천 의지를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하는 KIS 학생들이 되길 바란다”라고 학생들에게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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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1
  • 열살 “김민재” FIA공식국제경기 최초 최연소 카트 챔피언 달성
    [동포투데이] 지난 10월 1일 말레이시아 세팡에서 치뤄진 아시아 퍼시픽 모터스포츠 챔피언쉽에서 기마레이싱 소속의 김민재(심석초등학교 4학년, 만10세) 선수가 KART Sprint Race Cadet Class(만 8세부터 12세)에서 챔피언에 올라 금매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한국 최초로 FIA공식국제경기에서 최연소 카트 챔피언 성적을 달성하며 국위를 선양하였다. 아시아 모터스포츠 챔피언쉽(Asia Pacific Motorsport Championship)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의 Asia-Pacific Region에서 주최하는 게임으로 18개국 APN에서 선발된 상위권 성적의 대표 171명의 선수가 5개 종목에 (eSport,AutoGymkhana,Karting,KartingSlalom,RallyTrial) 참가하여 각 종목의 아시아 태평양 챔피언을 결정하고, 순위에 따라 최종 우승 국가를 가리는 아시아올림픽의 형태로 진행 되었다. 김민재 선수는 이번 경기 1주일전 태국 BIRA 경기장에서 진행된 ROTAX ASIA Tropy경기중 후미 차량이 핸들로 올라타는 사고로 인해 손가락 부상중임에 불구하고 2일간 4번에 걸쳐 진행된 예선에서 체력적으로 우세한 11세, 12세 선수들과 치열한 경합을 통해 최종예선 3위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결승에 진출하였다. 총 12랩으로 진행되는 결승에서는 3위의 자리를 지키며 안정적으로 출발, 경기 후반부터 피치를 올리던 김민재 선수는 마지막 랩에서 3위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서며, 1위와 0.14초 격차를 줄이기 위해 치열한 배틀하는 모습을 보여, 현장 관중들의 함성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국가 아시아 태평양 침피언 타이틀이 걸린 만큼 이미 한 단계 높은 주니어 클래스의 12세 선수들도 클래스를 낮추어 출전하는 등 치열한 레이스를 보여주었다. 최종 경기 결과 김민재 선수가 한국인 최초 최연소 아시아 태평양 챔피언 타이틀과 금메달을 거머쥐게 되었다. 레이스를 마치고 나온 김민재 선수는 “스타트 경합에서 타 선수의 차량과 접촉으로 손가락이 아파 왔지만 최선을 다해 경기를 하였으며, 레이스 후반에는 타 차량들의 경합에 동요하지 않고 가장 빠른 레코드 라인으로 결승선을 통과 하는데 집중을 하였다”고 밝히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 아시아 퍼블릭 모터스포츠는 김민재 선수의 금메달 1개로 국가 4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김민재 선수는 한국 포뮬러 대표팀인 이레인 모터스포트의 유경사 감독의 눈에 띄어 카트레이싱을 권유 받아 카트레이싱에 입문한지 불과 2년여 만에 국제경기에서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 기마레이싱팀에서 대표드라이버로 국내외 활동을 하고 있다. 기마레이싱팀은 증평 블랙스톤 벨포레 내에 있는 벨포레 인터네셔널 모토아레나서킷(올해 10월 오픈 예정인 국제A등급의 서킷으로 가장 높은 등급의 국제경기가 가능한 서킷)의 메인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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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0-10
  • 2023 중국·용정 “연변의 봄” 배꽃축제 성황리 개막
    [동포투데이] 2023 용정 ‘연변의 봄’ 배꽃축제가 30일 용정 해란강 스타디움에서 성황리에 개막됐다. “연변의 봄, 꽃 피는 용정”을 주제로 한 올해 배꽃축제는 행사 기간 동안 민속교류, 풍속체험, 상품전시 및 판매, 음식 시식, 예술공연 등의 활동을 통해 중국 조선족의 전통문화를 만끽하고 조선족 민속 풍습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사진출처=길림신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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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3-04-30
  •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 ‘하나로 어울리는 다문화 교육 주간’운영
    [동포투데이] 호치민시한국국제학교는 5월 9일부터 13일까지 다문화 교육 주간을 운영하였다. 이번 다문화 교육 주간은 여러 나라의 문화를 배우며 문화적 다양성을 이해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체험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학교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의식주 문화 알아보기’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각 학년 교육과정과 연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1~2학년 학생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인사말’을 학습하였고, 3~4학년 학생들은 ‘다양한 나라의 전통 놀이’를 경험하였다. 5~6학년 학생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가옥과 음식’에 대하여 배우고 체험하였다. 다문화 교육 주간 중 5월 12일(목)에는 ‘KIS 다문화 DAY! 세계 전통의상 입는 날’을 운영하였다. 이 날 학생들은 교복 대신 한복, 아오자이, 바틱 등 다양한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고 등교하였으며 전통의상이 없는 학생들은 한복과 아오자이를 학교에서 대여하여 포토존에서 사진을 촬영하였다. 학생들이 형형색색 다양한 옷을 입은 이 날은 축제의 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나라의 전통의상의 멋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문화 교육 주간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여러 나라의 전통의상을 입은 선생님,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니 마치 외국에 온 기분이었다.”, “여러 나라의 전통 놀이에 참여하면서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사는 베트남에 대하여 조금 더 알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라고 교육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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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21
  • 中, 삼강원 지역의 ‘야생동물’ 왕국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중국 청해성(青海省) 남부에 위치한 삼강원(三江源) 지역은 장강과 황하 그리고 란창강(澜沧江)의 발원지이며 중국에서도 중요한 생태 안전지대이다. 28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청해성은 지속적으로 생태 보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생태 보호와 복원을 핵심으로 생태계의 자연 복원과 생태 건설을 통한 유기적인 생태계를 건설해왔다. 특히 초원, 사막, 습지와 호수의 생태계 보존과 건설을 강화하여 오늘날 삼강원 지역은 생태계 생산력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며 야생동물 마리수도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사진은 삼강원 코코시리(可可西里)에서 활동하고 있는 티베트 영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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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1-04-29
  • 월미도, 나들이객들로 '북적'..사회적 거리 두기 무색
    [동포투데이] 설날인 2월 12일 '사회적 거리두기' 수도권 2.5단계, 비수도권 2단계가 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월미도는 나들이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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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2021-02-12
  • KIS 오케스트라 제4회 정기연주회
    [동포투데이] 49명으로 이루어진 KIS 오케스트라(악장 김연우)는 지난 5월부터 꾸준히 연습하여 가온홀 개관의 첫 문을 열었다. 이번 연주회 부제는 ‘비상(Flying)’으로 애벌레가 인고의 세월을 딛고 마침내 나비로 찬란하게 비상하는 KIS 학생들의 꿈과 의지를 담아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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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7
  • 中 대우주발사체 기지 ‘창정 5호’ 조립직장 공개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최근 중국 텐진(天津)에 있는 대우주발사체 기지의 내부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세계의 큰 주목을 끌고 있다. 25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텐진 대우주발사체 기지는 2008년 텐진 경제기술 개발구에서 착공, 부지면적이 약 3000무에 달하며 로켓연구제작 생산구, 우주기술응용 산업구와 보조부품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기지는 로켓부품 집중생산, 부분 구성품 조립, 총 조립 및 검증시험이 일체화가 된 중국의 우주수준과 국제 선진수준을 대표하는 신형의 우주성으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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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
    2020-12-26
  • 2020 세계한인회장대회 폐회식
    2020 세계한인회장대회 폐회식 후 단체사진.ⓒ2020 세계한인회장대회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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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3
  • 2020 세계한인회장대회 3일차 정부와의 대화
    세계한인회장대회 3일차 정부와의 대화 행정안전부 이지성 부이사관의 발표 현장ⓒ2020 세계한인회장대회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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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3

동영상뉴스 검색결과

  • 中, 90세 동생 106세 형님에게 세배
    [동포투데이 허훈 기자] 11일, 중국 매체에 따르면 지난 10일 중국 산둥 허쩌(山东菏泽)에서 106세 되는 한 노인의 세배를 받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무수한 찬탄의 댓글이 붙여졌다. 이는 90세가 되는 동생이 온 가정 식구를 이끌고 106세 되는 형님한테 세배를 올리는 모습으로 특히 세배를 올리려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장면이 말 그대로 장관이었다. 당시 노인의 얼굴에 광채가 흘렀고 아주 건강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못 즐거워 하였다. 그리고 아주 유쾌한 어조로 후배들에게 신체가 건강하고 만사대길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노인에 따르면 이미 5세대를 가진 가문의 어른으로 자손후대가 전반 마을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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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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